무의식

분류없음 2008/02/13 20:38
스티븐 킹은 On Writing에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황 (situation)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등장 인물 (character)이라고 하는군요. 그에 비해 줄거리 (plot)는 가장 중요하지 않은 요소라고 합니다. 그는 줄거리를 중심으로 소설을 쓰면 억지로 만들어낸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상황을 먼저 생각하고 그 상황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할찌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고 합니다.

스티븐 킹은 이처럼 상황과 인물 중심의 소설 쓰기의 예로 미저리 (Misery)를 듭니다. 그는 비행기에서 잠을 자다가, 유명한 작가가 정신병자의 농장에서 괴롭힘 당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는 깨자 마자 냅킨에 자신의 꿈을 기록하였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이 꿈을 바탕으로 소설을 씁니다. 이 소설이 바로 미저리이지요.

 흥미로운 사실은 스티븐 킹은 그 당시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았고, 그러한 삶에서 도망치길 간절히 원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러고 보면 미저리 속에 나오는 작가는 바로 스티븐 킹 자신이고, 작가를 붙잡고 괴롭히는 존재는 술과 마약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요 (이는 스티븐 킹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상황을 의식하고 소설을 쓴 것이 아니었고, 단지 꿈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나니 소설이 자신의 상황과 일치하였다는 것이지요. 즉, 꿈이 자신의 상황을 자신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이처럼 꿈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쓴 예는 흔히 찾을 수 있습니다. 폴 매카트니의 Let It Be도 그러한 예죠. 그가 이 곡을 만들 당시, 비틀즈는 다양한 이유에서 서로 감정이 상해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를 정상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맴버들은 그의 이러한 태도를 간섭으로 보고 그를 몰아세웠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폴 매카트니는 꿈 속에서 자신이 10대 때 돌아가신 어머니 (이름이 Mary)를 만납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그냥 두어라" (Let it be)라고 말했다죠. 그는 그 말을 들으며, 아, 이건 내가 나선다고 좋아질 상황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 꿈을 바탕으로 Let It Be를 작곡합니다.

이러한 꿈은 무의식이 의식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인간은 평소에 열심히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실제로 인간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정보는 인간의 의식보다 훨씬 많죠. 예를 들어, 내가 걸어가며 본 거리의 모습은 대단히 다양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그 중 매우 일부분만을 기억할 뿐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근처에 우리 은행 어디 있어요?"하고 물으면, 우리는 저쪽 어디선가 우리 은행을 봤던 기억이 나서 그 사람에게 답해줄 수 있죠. 평소엔 그 위치에 우리은행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살지만, 자극을 받으면 무의식의 정보가 의식으로 넘어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얻은 정보의 많은 부분은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무의식은 의식이 담지 못하는 정보 뿐 아니라, 의식이 거부한 감정이나 생각도 담은 영역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 이런 감정을 품으면 안돼" 하고 우리의 생각을 스스로 검열하죠. 따라서 실제로는 머리 속에 많은 생각이 들지만, 그 중 의식의 영역에 남는 생각은 일부분이고, 나머지는 모두 무의식의 세계로 보내집니다. 따라서 무의식은 도덕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감정의 세계이기도 하지요.

이처럼 무의식은 의식의 영역과 다른 생각과 감정을 담는 거대한 그릇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는 무의식을 무시하고 살아가지요. 이는 합리적인 사고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믿음직한 길잡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생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기는 한데, 이러한 삶은 세상을 논리의 관점에서만 보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보려고 하는 면만 보는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면, "공부를 많이 해야 인생에서 성공한다"고 배우며 자란 사람은, 많이 배울 수록 취직이 힘든 상황을 무시하고 무조건 공부를 더 할 방법만 찾을지도 모르죠. 무의식은 이러한 논리적 사고가 못보는 면 까지 보기에 의식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습니다.

무의식이 의식을 돕는 가장 흔한 방법은 꿈입니다. 물론 모든 꿈이 의미 있지는 않겠지만, 어떤 꿈은 분명히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칼 융은 어떤 성공지향의 교수가 꿈 속에서 구불구불한 철로위를 달리는 기차가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탈선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당신은 성공을 하기 위해 인생의 속도를 지나치게 내고 있습니다.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당신의 인생도 탈선하고 말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교수는 융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성공만을 추구하다가 인생을 망쳤다고 하는데, 만약 그가 꿈의 메시지에 귀기울였다면 인생을 망치지 않았겠죠.

제가 작년에 블로그를 공개한 것도 무의식에 의존한 결정이었습니다. 꼭 그 시점에서 블로그를 공개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것도 아니었지만, 무의식이 원하는 것 같아 별 생각 없이 블로그를 공개했습니다. 그러고 몇 달을 지나고 나니 그때 공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반대로 지난 주에는 거의 한 주간 글을 쓰기 힘든 경험을 하며,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느 순간에 "다음 블로거뉴스에 더 이상 송고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까 다시 글을 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즉, 글을 못썼던 것은 무의식이 의식에 메시지를 보내고자 파업 (?)을 했던 것이고, 그 메시지를 접수하고 나니 무의식이 다시 협력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 의식을 중심으로 사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무의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무의식을 무시한다면 내면의 상당 부분을 무시하는 것이고, 이는 건전한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리고 무의식을 평생 무시하고 억누르기만 한다면 무의식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나 우울한 감정 등으로 의식을 괴롭히기 마련입니다.

무의식은 나의 친구일 수도 있고, 나의 적일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에 귀기울인다면, 무의식은 의식을 괴롭히지 않고 도와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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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