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경제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위험요소의 한가지는 바로 KIKO 라는 금융상품입니다. KIKO (Knock In Knock Out)는 환율변동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파생상품으로, 일정한 구간을 정해놓고 환율이 그 구간 안에서 움직인다면 처음 정해놓은 환율을 적용받는 대신, 환율이 최저치 (Knock Out)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이 무효가 되고, 환율이 최고치 (Knock In)이상으로 올라가면 처음 정한 환율과 실제 환율의 두 배 이상을 물어내는 계약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를 들자면 현재 환율이 1000원인데, 기준환율을 1010원으로 정하고 낙인-낙아웃 구간을 950원-1050원으로 정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수출기업 입장에선 1달러를 바꿀 때 KIKO가 없다면 1000원밖에 못받지만, KIKO에 들었다면 1010원을 받으니 1% 이익을 봅니다. 그리고 환율이 떨어져 960원이 되도 여전히 1010원을 받으니 환율이 조금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기업이 이익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작년에는 KIKO로 이익을 본 기업들도 있었고, 은행도 장사가 잘 되겠다 싶어 기업들에게 열심히 판촉을 했습니다.

문제는 KIKO 계약에 따르면 환율이 대폭 떨어지면 기업은 보호를 못받는 대신, 환율이 대폭 오르면 큰 손실을 본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위의 조건에서 환율이 900원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950원이라는 최저기준을 벗어나기 때문에 KIKO계약은 무효가 되고, 기업은 1달러에 900원으로 환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대폭의 환율 하락시 환헤지가 전혀 안된다는 뜻이지요. 반대로, 환율이 대폭 올라 1달러당 1100원이 되었다고 보면, 계약을 맺은 기업은 기준환율인 1010원과 1100원의 차이인 90원의 두배, 즉 180원을 내야 합니다. 만약 백만달러를 KIKO에 걸어두었다면, 1,000,000x180=1억8천만원을 내야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작년에 키코가 많이 판매된 시점에서 환율이 900원대였기에, 지금 키코에 가입한 대부분의 기업은 큰 손실을 보았습니다. 환율이 올라 수출기업의 수익이 좋아야 정상인데, 파생상품 하나 때문에 오히려 큰 적자를 본 셈이지요.

키코의 문제는 이익대 위험이 비대칭이라는 점입니다. 환율이 정해놓은 구간 내에서 움직인다면, 기업은 조금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을 벗어나면 기업은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즉, 이익을 볼 때는 조금 보고, 손해를 볼 때는 크게 보는 것이지요. 이처럼 말도 안되 보이는 키코에 많은 기업이 가입한 이유는 작년에 환율이 내려가는 추세였고, 따라서 환율이 급격히 올라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즉, 작년 상황에서는 KIKO가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선 후 환율은 급격히 상승했고, 아무도 예상 못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예상"을 따라 작은 이익을 보려던 기업은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물론 기업이 자발적으로 KIKO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은행의 강요 때문에 억지로 가입했다거나, 은행이 이러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에 소개한 LTCM가 몰락한 이유도 이처럼 작은 이익을 올리기 위해 큰 위험을 감수하는 사업방식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시장 가격이 조금이라도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면, 결국 정상적으로 돌아오리라고 계산하고 남의 돈을 빌어 큰 투자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장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크게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방식이었고, 실제로도 시장이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움직이자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투자 방식을 "불도저 앞에서 동전 줍는 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작은 이익을 위해 큰 위험을 감수하는 어리석은 방식이라는 뜻이지요.

The Black Swan을 쓴 나심 니콜라스 탈렙은 또 다른 저서 Fooled by Randomness에서 그가 겪은 일화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지금 공매도를 한 상태다"라고 말한 후, "나는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공매도를 했다면 주가가 떨어질 것을 기대한다는 뜻인데,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서 왜 공매도를 했는가? 당신은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탈렙은 "나는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지만, 만약에 혹시나 떨어진다면 대단히 많이 떨어지리라고 예측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즉, 어떤 상황은 쉽게 벌어지지는 않지만, 한 번 벌어지면 대단히 큰 규모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이라도 나타나면 이를 예측한 투자자에게 큰 이익을 안겨준다는 것이지요.

KIKO를 판매한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이 상품은 외국회사가 개발했고, 한국 은행들은 그저 상품을 가져다 수수료 받고 판매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지금 상황에서 원화 환율이 오를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만약 원화 환율이 오른다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보자. 이런 상품을 판매하려면 구매자에게 매력적이어야 할테니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구매자가 조금 이익을 보고, 원화가 크게 오르는 특수한 상황이 되면 우리가 큰 이익을 얻도록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들의 생각대로 KIKO는 환율이 안정되던 작년에는 한국 기업들에게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고, KIKO에 가입한 기업이 많이 늘어난 직후 환율이 갑자기 오름으로 KIKO를 판매한 회사는 큰 이익을 보았습니다. 계산이 딱 들어맞은 셈이지요.

물론 KIKO가 정말 공정한 상품인가의 문제는 금융당국과 법정에서 가릴 문제입니다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세상엔 흔하지 않지만 큰 손해 (또는 이익)를 가져오는 사건이 존재하고, 이러한 사건을 배제하고 과거의 패턴이 되풀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위험을 계산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질 수록 위험을 계산하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사고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율은 왜 오를까?  (5) 2008/10/01
미국 구제금융 법안 거부의 파장  (3) 2008/09/30
키코 (KIKO) 사태가 남기는 교훈  (5) 2008/09/29
검은새, 날다  (0) 2008/09/26
시장의 실패  (2) 2008/09/24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  (5) 2008/09/21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