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한 23일, 조선일보는 '이유 없는 열병(熱病)' 앓는 한국 경제를 구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올렸습니다. 내용을 보면 한국은 경제가 어려울 이유가 없는데도 어렵다는 상당히 애매한 내용입니다. 내용이 애매해서인지 결론도 애매해서, 이미 시장에서 버림받은 정책을 잔뜩 내놓은 정부에게 "이럴수록 정부는 정책 대응의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하였고 (정책을 또 내놓으라는 뜻?), "경제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면 그걸 바로 세우는 데 망설여서는 안 된다"고 알뜻말뜻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강만수 장관을 자르라는 뜻?).

조선일보의 사설이 중요한 이유는, 조선일보의 사설은 청와대 대변인의 공식 발표 이상으로 여권의 의중을 잘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사설은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의 “ (지금 경제 상황은)총괄적으로 아이엠에프(IMF) 위기 때보다 심각하다”는 발언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 안쓰겠다"는 발언도 이러한 여권의 태도 변화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죠.

원래 조직의 지도자는 웬만한 위기가 닥쳐도 절대 "위기다"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위기라는 말이 조직을 흔들뿐 아니라, 지도자인 자신이 위기의 책임을 져야 할까봐 두렵기 때문이죠. 하지만 엄청나게 큰 위기가 닥치면 태도를 바꿔 "지금은 대단한 위기 상황이다"는 말을 하기 마련입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잔말 말고 나를 따르라"는 뜻이지요 (실제로 검찰은 25일 촛불집회에 대해 금지를 검토하며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처럼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 사상 초유의 혼란 상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핑계, 아니 이유를 댔습니다).그런데 이렇게 태도를 바꾸는 지도자 치고 큰 위기를 제대로 이겨내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지도자라면 처음 위기가 닥쳤을 때부터 정직하게 위기를 인정하고 차근차근 대책을 실행했겠죠.

지금 한국이 겪는 경제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대통령의 지도력 부재입니다. 이미 한국인 대부분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고방식이 21세기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듯, 외국인이 보기에도 이런 대통령이 있는 나라가 잘 될리 없다는 생각이 퍼진 것이지요. 특히 시장이 철저하게 외면한 강만수장관을 교체하지 않는 것은 경제를 살릴 마음이 없다는 뜻으로까지도 해석하게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만수 장관을 자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사람만 쓰기 좋아하는 대통령의 특성에 맞춰 생각해 볼 때, 대통령 주위에 강만수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인사 비판하던 언론은 다 어디로 숨었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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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핵심이 대통령인데, 대통령을 공격하지 못하는 소심한 조선일보는 엉뚱하게 외국언론을 탓하였습니다. 즉, "외국 언론들이 돌아가면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는 논리지요. 하지만 파이넨셜타임스를 비롯한 외국의 저명한 언론들이 서로 짜고 멀쩡한 한국경제만 피멍이 들도록 공격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한국의 경제 상황이 안좋기 때문에 안좋은 그대로 보도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저는 지난 몇주간 한국의 경제상황을 지켜보면서, 최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작년말 부터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찾아오리라고 예상하였기에 한국도 어려움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최악의 상황만은 오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위기 없다"를 "중대한 위기다"로 말바꾸기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대통령을 보면서, '아, 한국경제는 당분간 소망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를 빠른 시일 내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문제의 장본인인 김영삼 정부가 바로 퇴진하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문제의 장본인인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도 여러해 동안 권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슬픈 마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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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