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고백을 하자면, 저는 경제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저는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지금까지 월급이 없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를 배워본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셈이지요.

그럼에도 제가 경제 관련 글을 거의 매일 올리는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학문도 텍스트를 많이 다루긴 하지만, 인문학은 인간 (人)에 대한 글 (文)의 학문이기 때문에 텍스트가 엄청나게 중요하고, 따라서 인문학을 하려면 텍스트를 잘 해독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결국 제가 여기 올리는 글은 남들이 이미 써 놓은 글을 교본 삼아 읽고 소화해 저의 언어로 바꾸어 놓은 결과물이죠. 그에 비해 제 머리 속에는 경제에 관한 지식이 거의 들어있지 않습니다.

몇년 전 피터 드러커의 글을 모아놓은 The Essential Drucker를 읽다 보니 "경영학은 인문학이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즉, 경영은 결국 인간의 활동이고, 따라서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점에서 인문학에 뿌리를 둔다는 뜻이었습니다. 하긴 경영학 뿐 아니라 자연과학에서 심리학까지 인문학에서 출발하지 않은 학문은 많지 않을만큼 인문학은 학문의 기초로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인문학을 잘 활용하면 다른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쓸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레스는 그러한 좋은 예죠.

서양 최초의 철학자로 불리는 탈레스는 인문학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너는 뭐에 쓸려고 그렇게 깊이 사색하며 사느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변호하는 대신 조용히 돌아다니며 올리브 기름짜는 기계에 대해 사용계약을 맺었습니다. 얼마 후 올리브 추수기가 다가왔는데, 그 해는 올리브 농사가 대풍이 들었죠. 그런데 올리브에서 기름을 짜내는 기계는 이미 탈레스가 예약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탈레스에게 가서 기계를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정해야 했고, 탈레스는 자신이 빌린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기계를 빌려줌으로 큰 돈을 벌었죠.

물론 "독점으로 돈 버는 것이 올바른 일이냐"라고 물으시겠지만, 엄밀히 말해 탈레스는 올리브 농사가 풍작을 이루리라는 사실을 예상했기에 돈을 번 것입니다. 즉, 올리브 수확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면 농부들이 직접 기계를 만들던, 손으로 기름을 짜건, 차례가 오길 기다리던 할 수 있었겠지만, 수확량이 너무 많아 기름짜는 기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기계를 독점해 놓은 탈레스가 돈을 번 것이지요. 그리고 그가 올리브 풍년을 예견한 것은 그가 자연철학자로서 자연의 이치를 파악했듯, 올리브 농사의 이치를 파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인문학적 소양을 세상에 적용하면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부분을 볼 수 있다는 뜻이지요.

모든 사람이 인문학을 공부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인문학적 소양은 누구나 필요하고, 또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인문학적 소양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우선, 철학은 세상을 한걸음 떨어져 보는 태도를 가르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이라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매일 닥치는 일들을 감당해 내기 위해 애쓰며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국제중학교가 생긴다고 하면 우리 애를 어떻게 국제중에 보낼 수 있을까 걱정하고, 펀드가 반토막났다고 하면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재산을 늘릴까를 생각합니다. 이처럼 삶에서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직접 유익을 얻기 위한 노력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일만 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삶, 공동체, 관계, 자연의 의미를 잃기 마련이죠. 만약 우리가 삶을 한걸음 떨어져 바라본다면, 우리는 인간이 돈만 있다고 행복하지 않고,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만이 자식을 위하는 태도가 아니며,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에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철학은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도록 돕습니다.

역사는 인류가 때에 따라 다른 태도로 현실에 직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농경사회의 노동윤리 (자연의 리듬을 따라 노동과 휴식을 교차함)와 산업사회의 노동윤리 (기계처럼 단조로운 작업을 감당함)가 다르고, 조선시대의 가치관과 현대인의 가치관이 다릅니다. 역사적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60년대 이렇게 했더니 좋은 결과가 있었다. 따라서 21세기에도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식의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쉽게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변하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는 자는 결국 시대정신에 맞지 않기에 도태하기 마련이죠.

마지막으로, 문학과 어학은 언어의 신비를 가르칩니다.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 아니라 예술의 도구이기도 하고, 관계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언어의 신비를 "아다르고 어다르다"는 말로 표현했죠. 아나 어나 전달되는 정보는 비슷하겠지만, 어감이 달라지면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관계에도 영향이 미치기 마련이죠.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마디를 할 때도 "이 말이 올바른가? 다른 좋은 표현은 없는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요즘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많아도 외국인과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은 적은 이유도, 언어를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로만 알지, 언어의 복잡성과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제위기 속에서 인문학은 더욱 소외되고 무시당하기 쉽죠. 하지만 인문학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돕기에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학문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요즘 경제 공부하느라 바쁘시겠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일에도 조금이나마 시간을 투자하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경제 환경이 척박하다고 마음까지 여유를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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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