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시장

정치 2009/01/04 21:20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도 1년이 다되어 갑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국민은 왜 그가 경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믿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부분 점수는 0점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경제에 대한 무지가 드러나는 그의 발언과,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정부의 정책을 생각한다면, 세계 경제가 좋은 상황이었더라도 그가 경제를 잘 이끌었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생각해보면, 경제를 잘 알지도 못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한 의미는, "경제 논리를 사회 전체에 적용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정부를 이끄는 지도자이고, 정부는 국가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조직입니다. 국가는 국민이 모여 사는 사회이고, 따라서 경제, 정치, 문화 등 다양한 현상이 벌어지는 무대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은 어느 한 분야만을 대변하면 안되고, 사회 전체의 조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 대통령"을 추구하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사회 전체의 조화가 깨어진 것은 당연하죠.

예를 들어, 교육의 영역을 봅시다. 교육은 인간의 성품을 훈련하고, 지식을 공급하고, 유용한 인간으로 살도록 준비하는 등 다양한 의미를 담은 과정입니다. 그런데 교육을 경제의 원리인 "경쟁을 통한 효율성 추구"만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교육에 경쟁을 강화해야겠죠.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교육을 무한 경쟁의 장으로 바꾸어 놓길 바라고, 국제중, 자사고 등은 이처럼 경쟁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문제는 교육에 경쟁이 없을 수 없지만, 경쟁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다른 요소, 즉 공동체 의식이나 희생정신을 가르칠 여지가 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과거엔 경쟁이 교육의 한 가지 요소였는데, 경제 대통령이 등장하고 나니 교육에 경쟁이라는 하나의 관점만 남았고, 이로 인해 교육이 비교육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의료부분을 봅시다. 과거엔 "의술 (醫術)은 인술 (仁術)이다"는 말로 의료행위가 인간적인 활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의료를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돈 많은 사람은 좋은 치료를 받고, 돈 없는 사람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그러나 4천만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받고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면 불행한 일이겠죠.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는 의료보험제도를 통해 모든 국민이 의료비를 지원 받도록 돕습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의료를 경제의 논리로 해석해 의료보험제도를 바꾸거나 없애자는 주장이 들린다는 점입니다. 말로는 의료 선진화, 의료 산업 육성 등 그럴 듯한 핑계를 대지만, 결국 가난한 사람은 싸구려 병원에 가고, 돈 많은 사람은 좋은 병원에 가도록 바꾸겠다늦 뜻이죠. 그렇다면 의술은 인술이 아니라 상술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에 따른 세금 징수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많은 경제학자는 소득에 따라 과세비율이 달라지는 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열심히 경제논리에 따라 돈을 벌었으면 그 돈을 지키고 살아야지, 정부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은 경제 논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부가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 빈곤층을 돕는데 쓰지 않는다면, 부자는 계속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해집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미워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두려워하는, 모두가 불행한 사회가 되겠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부자에 대한 감세를 경기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내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정부의 수입이 줄어들면 결국 빈곤층 지원비용이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즉, 부자에 대한 감세 정책은 빈부의 격차를 벌여 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 아닌, 경제 논리를 사회 모든 분야에 적용하는 대통령입니다. 즉, 국가를 위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시장의 대변인이 되겠다는 뜻이지요. 이는 시장을 사회 전체로 확대하기 원하는 신자유주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가 있죠.

대단히 역설적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경제논리를 적용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분야에 대해선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즉, 특정 경제 현상에 대해 "이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꾸짖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대통령의 꾸짖음은 다른 분야에서는 통해도 경제에서는 통하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대입제도를 바꾸면 따라오지 않는 수험생이 없지만, 정부가 환율 정책을 바꾼다고 시장 참가자가 정부의 정책을 따라오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시장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정부는 경제 정책에 대해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시장을 완전히 정부의 권위하에 두고, 정부의 말을 따르지 않는 시장 참가자를 처벌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80년대까지 한국 정부가 취한 방식이고, 지금도 많은 후진국 정부가 취하는 방식입니다. 지금 정부가 은행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면 80년대식 관치금융이 부활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하게 은행을 쥐고 흔듭니다. 하지만 이는 시대에 맞지 않는 방식이고, 특히 한국의 은행들이 대부분 외국인이 대주주라는 현실을 볼 때, 언젠가는 외국인 주주들의 반발을 사거나 아예 투자금을 회수해 한국을 떠나도록 만들 가능성이 큰 태도입니다.

두번째로, 정부가 시장에 하나의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푸는 방식인데, 정부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이기기는 매우 힘듭니다. 1992년 환율을 높게 유지하려고 외환시장에 개입했던 영국 은행의 실패가 이를 잘 보여주죠. 강만수 장관도 외환시장에서 달러 풀었다가 환율은 잡지 못하고 외환보유고만 축냈습니다 (물론 본인은 "원없이 돈 써봤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지만). 만약 시장에 개입하려면 작전을 치밀하게 써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겠죠. 그런데 이명박 경제팀에는 그러한 계획을 짜고 집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안보이는군요. 결국 정부는 첫번째 방식 (권위에 의한 시장 지도)와 두번째 방식 (시장 직접 개입)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시장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지금 어느 쪽으로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은 경제 논리를 무시함으로 망치고, 사회의 다른 부분은 경제 논리를 적용함으로 망치는 더블 플레이를 범할 위험이 큽니다. 시장의 논리를 사회 전체로 확대하려는 신자유주의가 쇠퇴하는 끝물에, 신자유주의를 고수하려는 대통령이 이끄는 나라에 살려니 참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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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