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노벨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대표적인 케인지언 경제학자로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케인즈의 이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근에 개정판이 나온 공황경제의 재림과 2008년의 위기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and the Crisis of 2008)에서 그는 "사라진 듯 하던 공황 경제가 다시 나타났고,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선 대공황기에 형성된 케인즈 학파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경제 공황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이런 비유를 듭니다. 미국 워싱턴 DC에 사는 젊은 부부들이 서로 애를 봐 주는 조합을 구성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들은 남의 애를 봐주면 쿠폰을 받고, 자신이 남에게 애를 맡기면 쿠폰을 주죠. 그런데 이 조합이 쿠폰을 많이 준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상태에서는 남에게 애를 맡기고 싶어도 쿠폰이 없으니 맡길 수 없고, 따라서 아주 중요한 행사를 대비해 쿠폰을 아끼느라 평소에는 남에게 애를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남에게 아이를 맡기지 않으려고 한다면, 남의 애를 봐 주고 쿠폰을 얻으려는 사람도 쿠폰을 얻을 기회가 없겠죠. 따라서 애를 봐주는 조합에 애를 봐주는 활동은 거의 정지하게 됩니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불황이란 근본적으로 이와 동일한 상황입니다. 즉, 경기가 침체에 빠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방탕하기 때문이 아니라, 통화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지요. 경기침체가 "도덕적 문제가 아니고 기술적 (technical) 문제"라면, 이에 대한 해답도 기술적이겠죠. 케인즈 학파에서 내놓는 경기 침체의 해결책은 바로 통화량 공급의 확대입니다. 애 봐주는 조합의 예로 돌아가서, 애를 봐 주고 얻는 쿠폰이 부족해서 애를 봐주는 활동이 줄어들었다면, 쿠폰의 발행을 늘리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경제활동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상태라면, 정부가 적자 예산을 편성해 지출을 확대하면, 돈이 돌기 시작하고, 따라서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쿠폰의 발행을 늘려도 사람들이 쿠폰을 쌓아두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쿠폰을 빨리 쓰도록 유인할 조치가 필요하겠죠. 예를 들어, 과거에 얻은 쿠폰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조항을 마련한다면, 사람들은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빨리 쿠폰을 쓰겠고, 따라서 애 봐주는 활동이 다시 활발하게 일어나겠죠. 크루그먼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이처럼 소비를 촉진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돈을 푸는 정도로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인플레이션을 일으켜야 하지요.

실제로 지금 각국 정부의 정책을 보면 크루그먼 교수가 제시하는 케인즈학파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대규모 적자 예산을 편성해 돈을 풀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발권력까지 동원해 자금을 공급합니다. 그러면 시중에선 돈이 넘치고,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지요.

작년 가을 이후로 한국은행은 발권력을 동원해 거의 40조억원의 돈을 풀었습니다. 이러니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환율과 물가가 함께 오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케인즈 학파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아주 좋은 정책입니다. 물가가 올라야 소비자들이 돈을 쌓아두기 보다는 돈을 써버리는 편이 낫다고 깨닫기에 소비가 늘기 때문이죠. 하긴 전자 제품을 살 때, "조금 더 참으면 더 싸고 더 좋은 제품이 나올텐데" 하는 심리 때문에 구입을 늦춰본 사람이라면, 그 반대 되는 상황에서는 지출을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는 말도 잘 이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이론일 뿐이고, 실제로 물가 상승은 경제 위기를 심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경제 상황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인 인식이 강한데, 물가까지 오르면 "정말 살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에서 소비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큽니다. 즉, 인플레이션은 경제의 불쾌지수를 올리기에 경제에 커다란 짐으로 작용한다는 말이지요. 게다가, 사람들이 돈을 안 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돈이 없기 때문인데 (주거비, 이자비용, 자녀 교육비 등의 부담이 크기에), 돈이 없는 상황에서 물가가 오른다고 지출을 늘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물가상승은 경제는 살리지 못하고 서민의 삶만 힘들게 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케인즈 학파의 해법이 꼭 틀리다는 보장이 없긴 하지만, 함부로 인플레이션 유발했다가 국민의 생활만 어렵게 하는 실수는 저지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작년 8월까지만 해도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던 한국은행의 배신은 뼈아프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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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