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프랑스

해외 2009/02/20 00:30
미국인이 즐겨먹는 감자튀김은 보통 프렌치 프라이라고 부르지만, 한때 미국에선 이 음식을 프리덤 프라이 (Freedom fries)라고 부르던 때가 있습니다. UN을 등에 업고 이라크전을 시작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대해, 프랑스가 독일, 러시아 등과 연합해 거부권 행사로 맞서던 2003년이었죠. 많은 미국인들은 "우리가 2차대전때 프랑스를 구해줬는데 프랑스가 감히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몹시 분개하였고, 프렌치라는 말을 제거하고, 프랑스 회사의 제품도 불매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죠. 저는 당시 프랑스에 살았기에 미국쪽 주장 보다는 프랑스쪽 주장을 더 많이 들었는데, 프랑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라크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기엔 명분이 너무 부족했고, 특히 다른 나라를 무시하는 미국의 태도는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었죠. 결국 미국은 원하는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에 대해선 여러분도 잘 아시는 대로입니다.

이라크전을 둘러싼 마찰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더라도 미국과 프랑스는 두 개의 전혀 다른 문화적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두 나라의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는 모두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따라서 합리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죠. 하지만 미국은 유럽에서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간 이민이 많은 나라이기에 종교적 신념도 강하였고, 따라서 기독교를 중요한 문화적 유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에 비해 프랑스는 "가톨릭 교회의 장녀" (la fille ainé de l'eglise catholique)라고 불릴 정도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강력한 국가였지만, 18세기에 이르면 이미 상당수의 국민이 교회를 곧 국민을 착취하는 세력으로 보기에 반가톨릭, 반성직자 (anti-clerical) 정서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지요. 지금도 미국은 중요한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기도할 정도로 기독교가 문화로나마 살아있지만, 프랑스는 비종교성 (Laïcité)을 추구합니다. 몇년 전 프랑스 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이 히잡을 쓰는 문제로 논쟁이 크게 벌어졌는데, 이것도 "학교에서는 종교적 상징을 허용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죠.

미국 문화는 종교적 전통의 영향 때문인지, 영적인 세계나 종교적 체험에 대해 훨씬 열려 있는 듯이 보입니다. 특히, 대중문화를 보면 "기적을 통해 결국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구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죠. 그에 비해 프랑스인들은 기독교에 등을 돌린지 오래이고, 따라서 기적을 통한 구원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기에 대중문화에서도 이러한 모티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인지 미국인은 대체적으로 낙관적인데 비해 프랑스인은 대체로 비관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독일인이 프랑스에 몇달 살더니 "독일인이 우울한 줄 알았더니 프랑스인은 더하다"고 혀를 내두르더군요).

미국과 프랑스는 테크놀로지를 대하는 태도도 매우 다릅니다. 근대는 유럽이 기술적으로 커다란 진보를 이룬 시기이고, 이러한 시대에 형성된 국가인 미국은 지금도 기술에 대한 애정이 크고, 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합니다. 그에 비해 프랑스인들은 기술의 진보가 결국은 비인간화를 낳는다는 믿음이 강하고 (기술에 의존하는 현대사회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한 자끄 엘룰은 프랑스 사람이었죠), 따라서 기술을 의지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두 나라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미국은 자본주의자들의 국가이고, 개인이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무한히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비해, 프랑스인들은 미국인의 "소비주의" (consumerism)를 강하게 비판하고, 적게 벌고, 적게 일하면서 문화와 음식, 인간관계를 즐기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가 주당 35시간 근무를 도입하였고, 이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이 불평하지 않는 것은, 월급이 적더라도 노동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좋은 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프랑스는 1년에 한달 유급휴가를 즐기는 나라로도 유명하죠.

근래 들어 미국은 자본주의를 발전하기 위해 빚에 많이 의존하였고, 특히 신용카드를 통한 대출을 늘렸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도 많은 비판이 일어났는데(Credit Card Nation에 잘 나와 있죠) 어쨌든 미국에서는 신용카드가 생활의 필수품이고, 지출을 늘려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미국인의 의지를 담은 상징으로 볼 수 있죠. 그에 비해 프랑스는 신용카드 한도가 워낙 적고, 리볼빙 등의 제도가 별로 없어서, 카드를 썼다고 갚지 못하면 바로 정지되기에 돈이 없는데 카드로 마구 돈을 쓰는 일이 매우 적습니다.

정부에 대한 태도를 보자면,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극히 존중하고, 정부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험한 존재로 보는데 비해, 프랑스인들은 정부를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안전장치로 봅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정부는 개인이 어려움에 빠지면 언제나 의존할 수 있습니다.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젊었을 때 정신병원에서 10여년을 살았기에 지금은 전혀 사회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을 만났는데, 생활을 어떻게 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정부에서 싸구려 호텔에 묵게 해주고, 음식과 용돈도 줘서 근근히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물론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일찌도 모르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의식주를 직접 해결해주는 제도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만큼, 사회에 대한 간섭도 많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프랑스 정부의 간섭이 프랑스 경제를 망친다"고 진단하기도 하죠.

이렇게 문화가 서로 다른 두 나라이기에, 서로 의견도 많이 틀리고 논쟁이 벌어지면 끝이 없습니다. 이번 경제 위기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낳은 산물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사실 프랑스도 지금 경제사정이 그리 좋지 않으니 남을 꾸짖을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과연 독립 250주년을 향해 다가가는 미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금 더 프랑스와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을찌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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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