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독과 속청

기술, 장비 2009/04/07 23:32
얼마전에 언급한 책 The Brain That Changes Itself에 보면 저자가 시력을 잃은 사람을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시력을 잃고 나서 오디오북으로 책을 듣기 시작했는데, 특수 프로그램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듣는다고 합니다. 저자가 들어보니 자신은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 들을 정도로 빨랐다고 하더군요. 이 사람은 시각을 쓰지 않기 때문에 시각 정보를 다루는 뇌의 부분이 청각을 다루는 기능으로 전환될 수 있고, 따라서 일반인 보다 훨씬 빠르게 청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사람은 이렇게 빠르게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으니 하루에도 여러 권 책을 읽는 셈이고,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유명 작가의 책을 다 끝냈다고 합니다. 시각을 잃었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니 대단히 역설적이죠.

이러한 내용을 읽고 나서, 저도 오디오북의 속도를 올려 봤습니다 (아이팟 터치는 오디오북을 Faster로 설정해 놓으면 1분 분량을 40초에 들려 주는 비율로 속도가 올라갑니다). 원래 저는 오디오북을 들을 때 정상속도로 듣는 대신, 눈이 심심하기 때문에 테트리스 같이 간단한 게임을 합니다. 그러면 뇌가 귀로는 오디오북의 정보를 처리하고, 눈으로는 게임의 정보를 처리하죠. 헛갈릴 것 같지만 게임은 게임대로 하면서 오디오북은 오디오북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책을 읽을 때는 귀가 심심하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는 뇌의 효율적인 활용이 아니더군요. 예를 들어, 오디오북을 들으며 게임을 하는 것은 게임을 좋아해서라기 보다 오디오북만으로는 뇌가 심심하기 때문입니다. 즉, 오디오북의 정보를 처리하는데 뇌 기능의 30%가 필요하다면, 오디오북을 듣는 동안은 뇌 기능의 70%가 idle하게 놀기 때문에 심심하단 느낌이 드는 것이죠. 그래서 게임을 하면 시각 정보가 들어와 뇌가 추가로 30% 정도를 쓰고, idle한 뇌 기능이 40%정도로 낮아집니다. 이러면 뇌가 심심하지 않아서 좋긴 하지만, 게임을 하는데 쓰는 뇌기능의 30%는 어차피 낭비라는 점에서 좋을 게 없죠. 그래서 오디오북의 속도를 올려보니, 처리해야 할 정보가 늘어나면서 뇌가 심심하단 느낌이 들지 않고, 따라서 게임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오직 오디오북에만 신경을 쓰니 전보다 더 이해력이 올라가더군요. 즉, 오디오북을 천천히 듣는 것 보다 빠르게 듣는 것이 이해력을 높이는데 더 좋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긴 IQ가 너무 높은 사람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너무 시시하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고, IQ가 적당히 높아야 성적이 좋다고 하던데, 뇌는 너무 쉬거나 어렵지 않은, 적절히 어려운 환경에서 가장 잘 배우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오디오북을 빠르게 듣다 보니 속독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팟 터치를 찾아보니, 전에 공짜로 받아놓은 속독 프로그램이 보였습니다. Simian Speed Reader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Rapid Serial Visual Presentation(RSVP) 방식을 이용한 속독을 훈련합니다. RSVP는 쉽게 말해 화면에 한 단어씩 빠르게 쏴 주는 방식이죠. 예를 들어, Hello, my name is Cimio.라는 문장은

Hello,

My

name

is

Cimio

하는 식으로 한 단어씩 화면에 나타나게 됩니다. 보통 책을 읽을 때는 눈이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데, 이렇게 눈의 위치를 바꿔 주는데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죠. 그에 비해 이러한 방식의 프로그램을 쓰면 눈이 같은 지점을 주시하고 있으면 알아서 글의 내용이 나타나기 때문에 독서속도가 훨씬 향상된다고 합니다. 아직 써 본지 며칠 안 되서 읽는 속도가 크게 빠르진 않지만, 이러한 방식에 익숙해지면 책 읽는 속도가 훨씬 빨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맥용 RSVP 프로그램으로는 iReadFast가 있습니다).

저는 과거에 뇌의 능력이 유한하고, 따라서 지나치게 뇌를 혹사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속독을 배우지 않고, 오디오북도 정상 속도로만 들은 것도 그러한 생각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이제는 뇌가 훈련에 따라 계발될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뇌 기능을 활성화 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간이 뇌 기능의 10%만 쓴다는 말은 과장이라 하더라도, 보통 사람도 헬스클럽에서 열심히 운동 하면 근육질의 몸매로 바뀌듯, 뇌 근육도 연단하면 단단해지겠죠. 몸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데 노력하듯, 뇌도 방치하지 말고 좋은 상태로 유지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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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