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중요한 차이점 하나는 경제활동의 도덕성 여부입니다. 자본주의는 크게 봐서 경제활동을 도덕성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즉, 자본주의자들은 어떤 사람이 물건을 사건, 팔건, 돈을 벌건, 돈을 쓰건, 경제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은 경제활동일 뿐이지, 이를 두고 도덕적으로 올바르냐, 그르냐를 따지지 않는 경향이 강하죠. 그에 비해 공산주의자들은 경제활동을 도덕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올바른, "정의로운 경제체제"를 이뤄야 한다고 믿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스타급 영화배우가 영화 출연료로 수억 원을 버는 데 비해, 그 영화를 만드는데 참여하는 스탭은 1년 수입이 수백만 원 밖에 안되는 상황을 놓고, 자본주의자는 "스타는 관객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영화의 상업적 성공에 크게 이바지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받는 것이고, 스탭은 어차피 영화가 좋아 적은 월급을 받고서라도 일하려고 자원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월급이 적어도 당연하다"고 볼 것이고, 그에 비해 공산주의자는 "스타는 착취 세력의 일부분이라 많은 돈을 쉽게 벌고, 스탭은 착취당하는 빈민이라 생계유지가 어렵다. 이러한 불의한 제도는 바꿔야 한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미국인이 개 사료 사는 데 쓰는 돈으로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많은 어린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놓고도, 자본주의자는 "미국인은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쓸 자유가 있고, 그에 비해 아프리카인들은 자꾸 남이 도와주다 보니 더 가난해졌기에 오히려 도움을 멈춰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공산주의자는 "인간이 죽어가는데 죄책감 없는 소비를 하는 인간은 인간성이 파괴된 것이다"고 맞설 것입니다. 즉, 자본주의자는 경제활동을 도덕과 연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데 비해, 공산주의자는 경제활동을 도덕으로 해석하기에 같은 현상을 놓고도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되지요.(물론 "자본주의자는 이러한 경향이 있다"는 말과 "이러한 경향이 있는 사람은 자본주의자다"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경제활동을 도덕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지만, 자본주의자는 아닌 사람도 있고, 경제활동을 도덕의 관점으로 해석하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닌 사람도 있겠죠.)

자본주의가 경제활동을 도덕의 관점에서 해석하지 않게 된 중요한 계기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때문입니다. 국부론은 경제활동을 도덕에서 해방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책이었습니다. 국부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회가 잘되려면 모든 사람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을 하는 도덕심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죠. 그런데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경제가 잘 되려면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각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경제활동을 벌일 때,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일을 조화롭게 버무려 결국 최고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니 그전까지 "이기적인 활동"으로 비난받던 이윤추구는 "결과적으로 모두를 위한 활동"으로 여겨져서 부도덕하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이는 또한 서양의 개인주의를 낳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철저하게 인간을 도덕에서 해방하려고 노력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가 국가론만큼이나 심혈을 기울여 쓴 "도덕 감정론"(Theory of Moral Sentiments)은 인간의 도덕 감정, 특히 동정심(Sympathy)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국부론의 논조와 매우 다른 느낌이 들죠. 사실 19세기 독일 학자들은 국부론과 도덕 감정론을 조화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여겨 이러한 불일치를 "Das Adam Smith Problem"(애덤 스미스 문제)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경제학계를 보면, 케인스주의는 경제를 철저하게 도덕과 연관이 없는 활동으로 보고, 따라서 전통적으로 나쁘게 여기던 소비를 "경제를 살리는 유익한 행위"로 추켜세우는 데 비해, 전통적으로 좋게 여기던 저축을 "경기침체의 원인"으로 나쁘게 봅니다. 즉, 전통적인 도덕 평가를 완전히 뒤엎은 것이죠. 그에 비해 오스트리아학파는 저축을 미덕으로 보고, 지나친 소비, 특히 빚에 의존하는 소비를 악덕으로 본다는 점에서 경제를 여전히 도덕과 연관시켜 봅니다.

저는 작년에 이명박 정부의 경제 도덕주의라는 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자꾸 경제를 도덕의 잣대로만 재다가 경제를 망친다고 썼습니다.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긴 하지만, 공부를 할 수록 "그렇다면 모든 경제 활동에서 도덕의 잣대를 제거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더군요. 어떤 경제활동은 분명히 정의롭지 못하고(예를 들어 힘없는 사람에 대한 착취, 공익을 해하면서 사익만 추구하는 행위 등), 이에 대해선 도덕적 판단을 제거하면 안 되기 때문이죠.

물론 경제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자칫하면 대중영합주의로 흐를 수 있기에 늘 경계해야 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리고 경제는 자유롭게 돌아가야 생산성이 올라가기 마련이죠. 하지만, 경제가 도덕과 상관없는 돈과 이윤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경제를 제외한 사회의 많은 부분은 해를 입기 마련일 것입니다. 결국, 일부 학자들의 주장과 다르게 애덤 스미스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문제이고, 경제활동의 도덕성 여부는 여전히 탐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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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