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전반에 활동한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당시의 많은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에 심취했지만, 이와 동시에 개인을 억누르는 집단주의의 위험에 대해 깊이 깨달았고, 전체주의 국가가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경고하기 위해 1984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가 창조한 미래의 세계에서 시민은 정부의 사실 날조에 근거한 선전에 세뇌되어 암울한 현실에도 정부에 저항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이 소설 속의 독재정부는 국민을 조종하기 위해 Newspeak을 이용합니다. Newspeak은 영어와 비슷하지만, 정부의 정책과 어긋나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문법을 단순화하고 어휘를 줄인 언어입니다. 소설 속의 독재정부가 Newspeak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람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는데 언어가 단순해지면 생각도 단순해지고, 따라서 생각이 단순한 국민은 어리석을 수밖에 없기에 정부에 함부로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치가가 국민을 속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언어를 파괴하고 나면 국민은 정치자의 잘못을 지적할 방법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정직한 정치가일수록 언어를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써서 국민의 비판을 막아버립니다. 그에 비해 정직한 정치가라면 속일 필요가 없기에 말이 시원시원하게 나오기 마련이죠.
정치가 언어를 파괴하는 예는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라크 침공"을 "이라크 해방"으로 표현한 부시 행정부도 그러한 예죠.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문화 혁명"이라고 부른 중국 정부도 언어를 파괴한 예입니다. 하지만, 언어 파괴에서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정부는 바로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언어파괴는 대통령 취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출퇴근 시간대 직행열차 운영 등 각종 세부사항에 대해 시시콜콜 정책을 쏟아내던 인수위는 영어조기교육 등 민감한 사항에 대해 발표를 했다가 여론이 안 좋으면 무조건 "오해다." 한마디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서 처음부터 이명박 정부는 "오해정부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통신비 인하" 공약을 내걸었다가 "통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통신비가 싸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통신비를 절약하는 방법은 통신비를 올리는 것이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정부가 통신비 인상을 추진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습니다(믿기지 않겠지만, 제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쓴 이명박 정부, 양치기 소년이 되려는가?에 보면 좀 더 자세한 상황이 나옵니다). 미국과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임하겠다"는 말은, "문제 있으면 안 사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뜻으로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촛불시위가 절정에 이르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촛불 시위를 바라봤다"는 그의 감상적인 발언은, 결국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공격 앞에서 의미를 잃고 말았죠. 그리고 떠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깍듯이 예우하겠다"는 말은... 이건 뭐 말할 가치도 없군요.
이명박 정부의 언어사용은 단지 화려한 수사를 넘어 언어의 본질을 뒤흔드는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환경을 보전하는 대신 개발함으로 환경을 파괴하면서, 이러한 작업을 "녹색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환경 보호론자들이 좋아하는 Green이라는 말을 가져다 환경을 파괴하는 데 써 버리는 것이지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언어를 파괴한다면, 도대체 정부의 어떤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정부가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말하면 믿어도 될까요?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언어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간단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을지언정, 언어의 유희를 즐기지도 않고, 문학작품을 읊조리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언어는 인간성의 반영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올바른 언어를 써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처럼 언어를 파괴한다면 인간성도 따라서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인간성이 파괴된 인간은 정의감은 없고 본능만 남기 때문에 권력자가 아무리 불의를 저질러도 본능만 충족시킬 수 있다면 권력자에게 반항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권력자라면 인간성이 파괴된 인간을 다스리기가 훨씬 편한 법이지죠.
하지만, 진정한 인간성이 남아있는 인간이라면 이처럼 언어가 파괴되는 현상을 받아들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해야 올바른 언어이고, 올바른 인간이지요. 지금 한국에 어둠이 짙게 깔린 형상이지만, 이러함 어둠 속에도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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