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하는 분은 풋옵션이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풋옵션은 주식을 특정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입니다. 만약 내가 어느 회사의 주식을 주당 만원에 사들였고, 1년 후 이 주식을 주당 만원에 팔 수 있는 풋옵션까지 보유한다면 나는 주가와 상관없이 손해를 입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주가가 만 원이 넘는다면 풋옵션을 포기하고 시중가에 주식을 팔면 되고, 주가가 만 원에 미치지 못한다면 풋옵션을 행사해서 만원에 팔면 되기 때문이죠. 풋옵션은 이처럼 투자자에게 유리한 권리지만, 이러한 권리를 사려면 많은 돈을 내야 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식 투자자는 풋옵션 없이 주식만 거래하죠.
그런데 90년대말 미국 증시에는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풋옵션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그린스펀 풋이 그것인데, 물론 문서로 보증하는 정식 권리는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문서 만큼이나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그래프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주가와 기준금리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앨런 그린스펀이 FRB 의장으로 취임한 1987년 이후 주가의 추이를 보면, 1987년 10월의 블랙 먼데이를 제외한다면 주가가 크게 내리지 않고 꾸준히 상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간에 미국이 S&L 사태, 걸프전, 멕시코 페소 위기, 러시아 디폴트 등을 겪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주가의 꾸준한 상승은 대단히 놀랍습니다. 이처럼 그린스펀이 FRB 의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어느 수준 이상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그린스펀 풋"이라고 불렀죠. 즉, 그린스펀에 대한 믿음 때문에 풋옵션을 사놓은 것만큼이나 마음이 든든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미국 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누린 90년대엔 인터넷의 발달과 중국, 인도의 세계 경제 편입, 그리고 금융공학의 발달로 세계 경제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고 따라서 과거의 경제 상식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습니다. 앨런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 자체가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잘 대변합니다.
FRB 의장이었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파티가 무르익을 때 술병을 없애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말은, 경기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높여 경기가 과열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뜻이죠. 경기가 과열되면 반작용이 일어나 다시 급랭하기 마련이고, 이는 경제 전체에 대단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면 경기기가 지나치게 과열되지 않도록 막아야죠.
그런데 만약 경제에서 불황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불황이 없다면 경기가 과열돼도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억제할 필요가 없겠죠. 따라서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불황을 제거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경기 과열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써서 경기를 늘 호황으로 유지할 것입니다.
물론 그린스펀이 정말 호황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의 정책을 보면 그가 불황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걱정하지 않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경기를 늘 과열상태로 유지하는 정책을 썼을 리가 없기 때문이죠. 그가 90년대에 주식 시장에 대해 "비이성적 과열"상태라고 경고한 것은 그가 전통적인 중앙은행총재 처럼 경기 과열을 경계한 예이지만, 이러한 예는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은 90년대엔 성공적으로 작용합니다. 당시엔 워낙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정책상의 실수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닷컴 버블이 터지고, 9/11 사태가 일어나고, 엔론과 월드콤이 파산하면서 미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린스펀은 다시 한 번 저금리라는 무기를 들고 불황을 사냥하러 나섭니다. 그러자 정말 곧 불황이 사라지고, 미국 경제는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역시 마에스트로"라고 그를 치켜세웠죠.
하지만 2000년대의 미국 경제는 90년대와는 다르게 체력이 매우 허약했고, 저금리 정책은 달러화의 약세와 이에 따르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 그리고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당황한 그린스펀과 그의 후임자 벤 버넝키는 물가를 잡으려 고금리 정책으로 돌아서죠.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합니다. 당시 주택 가격이 급등한 것은 돈을 쉽게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줄여버리니까 돈을 쉽게 빌리 수 없게 되고, 돈을 쉽게 빌릴 수 없으니까 빚으로 떠오르던 부동산 시장이 빚의 무게를 못 견디고 한순간 무너져 내립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 하락 문제는 파생상품을 타고 금융계 전체로 퍼지고, 세계화를 타고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까지 퍼집니다. 금리 좀 올린다고 문제가 없을 것 같았는데, "어, 어" 하는 사이에 세계 대공황 이후로 최대의 위기에 빠지는 황당한 결과가 나와 버린 것입니다.
그린스펀은 중앙은행의 능력을 과신했고, 중앙은행이 처신을 잘하기만 한다면 경제를 늘 호황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재임 동안 미국은 여러 가지 위기 상황 속에서도 주가가 꾸준히 오르는 호황을 누렸고, 그는 역사상 가장 인기가 높은 FRB 의장이 되었죠. 하지만, 그가 경기의 흐름을 무시한 결과 미국은 불황을 통해 경제를 교정(correction)할 기회를 놓쳤고, 그 결과 작년부터 올해까지 여러 불황을 묶은 하나의 거대한 재앙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고 말했습니다. 그린스펀이 남긴 교훈은 지나치게 "지식의 힘"만 믿고 세상의 질서를 무시한다면 결국 큰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겪고도 이러한 교훈을 진심으로 깨달은 사람은 적은 것 같군요. 내일은 이에 대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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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90년대말 미국 증시에는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풋옵션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그린스펀 풋이 그것인데, 물론 문서로 보증하는 정식 권리는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문서 만큼이나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그래프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주가와 기준금리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앨런 그린스펀이 FRB 의장으로 취임한 1987년 이후 주가의 추이를 보면, 1987년 10월의 블랙 먼데이를 제외한다면 주가가 크게 내리지 않고 꾸준히 상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간에 미국이 S&L 사태, 걸프전, 멕시코 페소 위기, 러시아 디폴트 등을 겪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주가의 꾸준한 상승은 대단히 놀랍습니다. 이처럼 그린스펀이 FRB 의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주가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어느 수준 이상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그린스펀 풋"이라고 불렀죠. 즉, 그린스펀에 대한 믿음 때문에 풋옵션을 사놓은 것만큼이나 마음이 든든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미국 경제가 최고의 호황을 누린 90년대엔 인터넷의 발달과 중국, 인도의 세계 경제 편입, 그리고 금융공학의 발달로 세계 경제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고 따라서 과거의 경제 상식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습니다. 앨런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 자체가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잘 대변합니다.
FRB 의장이었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은 중앙은행의 역할을 "파티가 무르익을 때 술병을 없애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말은, 경기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높여 경기가 과열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뜻이죠. 경기가 과열되면 반작용이 일어나 다시 급랭하기 마련이고, 이는 경제 전체에 대단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면 경기기가 지나치게 과열되지 않도록 막아야죠.
그런데 만약 경제에서 불황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불황이 없다면 경기가 과열돼도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억제할 필요가 없겠죠. 따라서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불황을 제거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경기 과열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써서 경기를 늘 호황으로 유지할 것입니다.
물론 그린스펀이 정말 호황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의 정책을 보면 그가 불황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걱정하지 않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경기를 늘 과열상태로 유지하는 정책을 썼을 리가 없기 때문이죠. 그가 90년대에 주식 시장에 대해 "비이성적 과열"상태라고 경고한 것은 그가 전통적인 중앙은행총재 처럼 경기 과열을 경계한 예이지만, 이러한 예는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은 90년대엔 성공적으로 작용합니다. 당시엔 워낙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정책상의 실수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닷컴 버블이 터지고, 9/11 사태가 일어나고, 엔론과 월드콤이 파산하면서 미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린스펀은 다시 한 번 저금리라는 무기를 들고 불황을 사냥하러 나섭니다. 그러자 정말 곧 불황이 사라지고, 미국 경제는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역시 마에스트로"라고 그를 치켜세웠죠.
하지만 2000년대의 미국 경제는 90년대와는 다르게 체력이 매우 허약했고, 저금리 정책은 달러화의 약세와 이에 따르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 그리고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당황한 그린스펀과 그의 후임자 벤 버넝키는 물가를 잡으려 고금리 정책으로 돌아서죠.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합니다. 당시 주택 가격이 급등한 것은 돈을 쉽게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줄여버리니까 돈을 쉽게 빌리 수 없게 되고, 돈을 쉽게 빌릴 수 없으니까 빚으로 떠오르던 부동산 시장이 빚의 무게를 못 견디고 한순간 무너져 내립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 하락 문제는 파생상품을 타고 금융계 전체로 퍼지고, 세계화를 타고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까지 퍼집니다. 금리 좀 올린다고 문제가 없을 것 같았는데, "어, 어" 하는 사이에 세계 대공황 이후로 최대의 위기에 빠지는 황당한 결과가 나와 버린 것입니다.
그린스펀은 중앙은행의 능력을 과신했고, 중앙은행이 처신을 잘하기만 한다면 경제를 늘 호황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재임 동안 미국은 여러 가지 위기 상황 속에서도 주가가 꾸준히 오르는 호황을 누렸고, 그는 역사상 가장 인기가 높은 FRB 의장이 되었죠. 하지만, 그가 경기의 흐름을 무시한 결과 미국은 불황을 통해 경제를 교정(correction)할 기회를 놓쳤고, 그 결과 작년부터 올해까지 여러 불황을 묶은 하나의 거대한 재앙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Those who can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고 말했습니다. 그린스펀이 남긴 교훈은 지나치게 "지식의 힘"만 믿고 세상의 질서를 무시한다면 결국 큰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겪고도 이러한 교훈을 진심으로 깨달은 사람은 적은 것 같군요. 내일은 이에 대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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