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썼지만, 현대 경제학의 두 가지 큰 흐름은 케인스주의와 통화주의입니다. 이 두 학파의 태두인 케인스와 프리드먼은 공황극복을 위해 전혀 다른 처방을 내놓습니다. 케인스는 공황은 수요가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 대규모 사업을 벌여 수요를 일으켜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에 비해 프리드먼은 공황은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줄였기 때문에 발생했고, 따라서 공황을 극복하려면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늘려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금리가 중요한 이유는, 금리가 낮아야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제가 살아나기 때문이죠. 폴 크루그먼에 따르면 케인스가 저금리 정책을 경제위기의 해결책으로 내놓지 않은 이유는 1930년대엔 이미 금리가 매우 낮았고, 따라서 통화량을 늘려 금리를 더 낮추는 것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에 비해 통화주의를 주창한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끔찍하게 싫어했고,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가 없었겠죠.
보통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정부는 케인스와 프리드먼의 충고 중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이는 두 가지 해결책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죠.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려 열심히 통화를 공급하더라도, 정부가 대형 국책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시중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즉, 이 두 가지 정책의 특성상 둘 중 하나만 써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작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경험한 미국 정부는 급한 마음에 두 가지 정책을 함께 추진합니다. FRB 의장 벤 버넝키는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통화량을 대폭 늘려 금리를 0%에 가깝게 끌어내립니다. 그와 동시에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는 엄청난 양의 국채를 발행해서 부실기업 지원 및 경기부양에 예산을 퍼부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느낀 위기의 강도가 워낙 셌기 때문에, 안전자산을 찾는 자금이 미국 국채로 흘러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미국 국채가 워낙 인기가 높으니 이자를 조금 줘도 발행에 문제가 없었고, 따라서 미국 정부가 대규모 재정 적자를 내도 시중 금리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경제가 조금 살아나는 기미가 보이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미국 국채에 투자해봤자 이자가 1% 나올까 말까 한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차라리 조금 불안하더라도 다른 곳에 투자하자"는 심리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죠. 작년 말에는 경기 전망이 안 좋았기 때문에 미국 국채 말고는 투자하기가 꺼려졌는데, 지금은 경기가 좋아지면서 안전해 보이는 투자처가 많이 생겨났고, 따라서 자금이 미국 국채 시장을 떠나면서 국채 금리가 올라간 것입니다.
문제는 금리가 올라가면 시중금리가 오르고, 시중금리가 오르면 모기지 금리도 따라서 오르기 때문에 조금 회복되는 듯 보이던 주택시장이 다시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즉, 경기를 살리려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경기 부양책을 썼는데, 그 과정에서 금리가 오르면서 경기가 다시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는 말이죠.
미국에서 나타나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엇박자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경기가 완전히 살아날 때까지 계속 위험요소로 남을 것입니다. 물론 1년도 안 되 경기가 살아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라는 두 가지 강력한 약물을 한꺼번에 처방했기 때문이지만, 그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미국 경제의 흐름을 보며 불안한 또 다른 원인은 지금 미국 정부와 FRB가 보이는 태도가 결국 이번 사태를 몰고 온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앨런 그린스펀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린스펀은 경기의 순환이라는 기본 질서를 무시하고, 이성의 힘으로 불황을 없앨 수 있다는 듯 통화정책을 썼기에 결국 미국은 20년치 불황을 몰아서 겪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 아직도 경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 정부와 FRB는 경제 정책을 잘 쓰면 이번 경제 위기를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는 듯 강력하게 경기 회복책을 쓰는 중입니다. 즉, 그린스펀의 실수가 남긴 교훈을 배우지 못한 것이죠.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계몽주의자들의 생각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산산이 깨졌습니다. 이제 인간이 원하는 대로 자연을 이용해도 된다는 태도는 설득력을 잃었고, 자연을 보호해가며 경제를 발전하려면 자원을 아껴쓰고, 싼 석유가 있어도 대체 에너지에 투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지는 중이죠. 즉, 21세기인이라면 "내가 지식이 많으니까 상대방을 착취의 대상으로 봐도 된다."고 생각해선 안 되고, 아무리 내가 똑똑해도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경제학은 워낙 젊은 학문이라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계몽주의자들처럼 이성의 힘에 의지해 욕심을 절제하지 않고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 듯 보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에게는 "경제 위기가 닥쳤으니 지나친 탐욕이나 과시적 소비에 대해 반성하고 건전한 소비생활을 회복하자."라는 주장이 불필요한 도덕주의로 들리고, "국민이 소비를 늘리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정책을 잘 쓰기만 하면 아무런 희생 없이도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라는 말이 진리로 들리겠죠.
물론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일반 학문에서 계몽주의가 도태한 것은 많은 지식인이 이성을 맹신했다가 이성의 한계를 절감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번 경제위기의 결과에 따라 경제학계에도 반성과 방향전환의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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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정부는 케인스와 프리드먼의 충고 중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이는 두 가지 해결책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죠.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려 열심히 통화를 공급하더라도, 정부가 대형 국책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시중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즉, 이 두 가지 정책의 특성상 둘 중 하나만 써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작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경험한 미국 정부는 급한 마음에 두 가지 정책을 함께 추진합니다. FRB 의장 벤 버넝키는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통화량을 대폭 늘려 금리를 0%에 가깝게 끌어내립니다. 그와 동시에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는 엄청난 양의 국채를 발행해서 부실기업 지원 및 경기부양에 예산을 퍼부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느낀 위기의 강도가 워낙 셌기 때문에, 안전자산을 찾는 자금이 미국 국채로 흘러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미국 국채가 워낙 인기가 높으니 이자를 조금 줘도 발행에 문제가 없었고, 따라서 미국 정부가 대규모 재정 적자를 내도 시중 금리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경제가 조금 살아나는 기미가 보이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미국 국채에 투자해봤자 이자가 1% 나올까 말까 한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차라리 조금 불안하더라도 다른 곳에 투자하자"는 심리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죠. 작년 말에는 경기 전망이 안 좋았기 때문에 미국 국채 말고는 투자하기가 꺼려졌는데, 지금은 경기가 좋아지면서 안전해 보이는 투자처가 많이 생겨났고, 따라서 자금이 미국 국채 시장을 떠나면서 국채 금리가 올라간 것입니다.
문제는 금리가 올라가면 시중금리가 오르고, 시중금리가 오르면 모기지 금리도 따라서 오르기 때문에 조금 회복되는 듯 보이던 주택시장이 다시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즉, 경기를 살리려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경기 부양책을 썼는데, 그 과정에서 금리가 오르면서 경기가 다시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는 말이죠.
미국에서 나타나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엇박자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경기가 완전히 살아날 때까지 계속 위험요소로 남을 것입니다. 물론 1년도 안 되 경기가 살아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라는 두 가지 강력한 약물을 한꺼번에 처방했기 때문이지만, 그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미국 경제의 흐름을 보며 불안한 또 다른 원인은 지금 미국 정부와 FRB가 보이는 태도가 결국 이번 사태를 몰고 온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앨런 그린스펀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린스펀은 경기의 순환이라는 기본 질서를 무시하고, 이성의 힘으로 불황을 없앨 수 있다는 듯 통화정책을 썼기에 결국 미국은 20년치 불황을 몰아서 겪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 아직도 경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 정부와 FRB는 경제 정책을 잘 쓰면 이번 경제 위기를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는 듯 강력하게 경기 회복책을 쓰는 중입니다. 즉, 그린스펀의 실수가 남긴 교훈을 배우지 못한 것이죠.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계몽주의자들의 생각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산산이 깨졌습니다. 이제 인간이 원하는 대로 자연을 이용해도 된다는 태도는 설득력을 잃었고, 자연을 보호해가며 경제를 발전하려면 자원을 아껴쓰고, 싼 석유가 있어도 대체 에너지에 투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지는 중이죠. 즉, 21세기인이라면 "내가 지식이 많으니까 상대방을 착취의 대상으로 봐도 된다."고 생각해선 안 되고, 아무리 내가 똑똑해도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경제학은 워낙 젊은 학문이라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계몽주의자들처럼 이성의 힘에 의지해 욕심을 절제하지 않고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 듯 보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에게는 "경제 위기가 닥쳤으니 지나친 탐욕이나 과시적 소비에 대해 반성하고 건전한 소비생활을 회복하자."라는 주장이 불필요한 도덕주의로 들리고, "국민이 소비를 늘리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정책을 잘 쓰기만 하면 아무런 희생 없이도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라는 말이 진리로 들리겠죠.
물론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일반 학문에서 계몽주의가 도태한 것은 많은 지식인이 이성을 맹신했다가 이성의 한계를 절감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번 경제위기의 결과에 따라 경제학계에도 반성과 방향전환의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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