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1년여가 지난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의 의견을 무자비하게 억압하고, 조직력을 잃은 시민들은 부당한 처사에 대해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정부에게 밀리는 중입니다. 이러한 사태를 우려한 교수나 종교인 등의 시국선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철저하게 정부 편을 드는 언론 때문에 이들의 목소리는 널리 퍼지지 못하는 중입니다. 이제는 이명박 정부를 "독재 정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늘었고, 심지어 파시즘 출현을 우려하는 목소리조차 커지는 중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통해 힘들게 얻어낸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빠르게 무너져내리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지금의 사태는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많은 사람은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선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등 독재가 출현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민주주의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지 못한 해법입니다. 대통령의 권한 문제만 해도, 대통령의 권력을 줄이면 그만큼 다른 부분의 권력이 늘어나고, 따라서 나중에 진정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통령이 당선된다 하더라도 사회를 바꿀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봐도 이탈리아는 민주주의를 잘 구현할 수 있다는 내각제를 채택했지만, 서유럽의 어느 나라 보다 민주주의 전통이 약하고 정치권의 부정부패가 심합니다.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죠.

사실 한국의 정치체제는 시민의 민주의식이 매우 발달해 있던 1987년 토대가 놓였기 때문에 제도 자체만 보자면 대단히 민주적입니다. 대통령이 중임 할 수 없고 5년 만에 임기를 마치는 제도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중임 없는 7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독재를 자행했기에 이러한 대통령의 출연을 막기 위해 만들어낸 독특한 제도입니다. 즉, 다른 나라의 대통령 임기인 4년보다 임기가 조금 긴 대신 중임을 금함으로 장기 독재의 싹을 자른 것이죠.

이렇게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에도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것은 무엇보다 시민의 민주의식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국민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독재를 선택한다면, 훌륭한 민주주의 제도는 오히려 엄청난 독재를 낳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쟁 후 찾아온 경제위기로 굶주림에 시달리던 독일인들은 게르만 민족의 번영을 약속하는 극우 정치인 히틀러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결국, 히틀러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얼마 전까지 매우 민주적인 바이마르 공화국 국민이었던 독일인들은 최악의 독재정부가 탄생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권력을 주지만, 민주의식이 없는 국민은 자신의 권력을 독재자에게 주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여러 국가는 지나치게 민주적인 장치를 도입한 이후 독재권력의 출현을 보게 되죠. 한국도 4.19 의거로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그 이후 군사독재가 시작된 것은 그만큼 당시 한국인들의 민주의식이 낮았기 때문이죠. 이는 오늘날 이라크가 직면한 문제입니다. 미국은 이라크를 독재자에게서 구해내고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기만 한다면 이라크가 민주국가가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라크 국민이 민주주의를 실천할 만큼 시민의식이 성숙해지지 않는다면 이라크는 정치적 혼란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미군이 철수한다면 다시 독재자가 출현해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을 잡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종파별로 나뉘어 서로 살상을 벌이는 사태가 더욱 악화할지도 모르죠.

한국도 민주주의 위기 상황에 대한 해법은 제도의 개선이 아닌 시민의식의 고취에서 찾아야 합니다. 시민이 독재를 거부한다면 정부가 권력을 남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권력을 남용할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도 않겠죠. 그에 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에릭 프롬의 표현을 빌자면 "자유에서 도피"하기로 선택하는 시민이 많다면 독재는 피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부디 한국이 더 나쁜 상황으로 빠지기 전, 한국인들의 의식이 바뀌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동기가 없는 아이들  (3) 2009/06/27
불신의 시대  (4) 2009/06/20
민주주의와 시민의식  (4) 2009/06/19
바보 노무현을 떠나보내며...  (6) 2009/05/29
남자는 왜 예쁜 여자에게 끌릴까?  (6) 2009/05/19
초식남의 시대  (1) 2009/05/13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