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생활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현지 언어 습득이겠죠. 저도 독일에서 당분간 지낼 생각이라 독일어를 배우려고 노력중입니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이 워낙 영어를 잘해서 독일어를 쓸 일이 많이 없고, 따라서 독일어 실력이 늘지가 않아 답답할 때가 잦습니다. 프랑스에선 영어를 하는 현지인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가 프랑스 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상대방이 늘 프랑스 어로 이야기를 했고, 나도 말이 되건 안되건 프랑스 어로 답해야 했기 때문에 언어가 빨리 늘었는데, 독일에선 내가 독일어를 잘 못하니 상대방이 답답해서라도 영어로 말을 하고, 나도 영어가 편하니 영어로 답하다 보니 독일에 살지만 독일어를 배우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아는 단어가 늘어나고, 아는 표현이 늘어나면서 요즘은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시작 부분이 제일 어렵기 마련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면 문자 쓰는 법부터 배워야 되고(물론 한국인은 어릴 때부터 알파벳을 배우니 영어에 대해선 그런 부담이 없지만), 전혀 낯선 문법, 단어, 표현, 발음 등을 익히려니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땐 머리에 쥐가 나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는 말을 계속 들어야 할 때(외국어로 된 영화를 보거나, 그 나라 언어로 하는 강의를 통역 없이 들을 때) 매우 답답하게 느끼죠. 이렇게 어려움을 겪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 나라 언어를 피하게 되고, 이렇게 외국어에 노출되지 않다 보면 언어를 배울 기회가 없기에 언어를 배우기 어려운 악순환이 발생하죠. 많은 사람은 이 단계에서 외국어 배우기를 포기합니다.

그런데 못 알아듣는 언어라도 자꾸 듣다 보면 귀가 조금씩 열리게 되고, 언어 학습에서 새로운 단계가 시작됩니다. 이 단계가 되면 그 나라 언어로 TV를 보거나 신문을 읽을 때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를 이해하면 이해하는 부분을 바탕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추측할 수 있게 됩니다.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볼 때도, 과거엔 사전에서 찾아본 단어가 너무 많아 기억에 남지 않는데, 이제는 몇몇 단어만 모르기 때문에 사전에서 찾아보면 기억에 남는 비율이 높아집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현지인과 대화가 늘어나고, 현지어로 된 TV나 신문도 재미 삼아 보게 됩니다. 그러면 현지어에 노출되는 양이 대폭 늘어나면서 언어 습득 속도가 빨라지는 선순환이 발생합니다. 이런 상태로 2-3년 지나면 현지어를 유창하게 하게 되죠.

현지어가 유창해지면, 결국 현지인처럼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현지어를 잘하는 것과 현지어를 현지인처럼 하는 것 사이엔 대단한 간격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데, 현지인들은 모두 아는 표현도 많습니다. 현지인들은 이러한 표현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는 혼자 이해를 못하는 것이죠. 또한, 현지인들은 쉽게 구분하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구분하기 어려운 용법(영어에서 the를 쓰는 경우와 안 쓰는 경우가 좋은 예죠)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10년 현지에서 살았는데도 현지인과 언어적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 언어 학습에서 답답한 단계에 이른 것이죠.

정리해 보자면, 언어를 배울 때 처음은 학습 속도가 느렸다가, 중간에 갑자기 가속도가 붙으면서 빨라졌다가, 나중엔 다시 느려집니다. 그래프로 그려 놓으면 S자를 펼쳐 놓은 듯한 모양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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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wikipedia

이 그래프가 바로 학습 곡선(Learning Curve)입니다. 이 그래프는 학습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죠. 우선, 어느 분야에서든 초보자 과정을 마치는 일이 가장 힘들죠. 만약 초보자 과정에 계속 머물게 된다면 배우는 일이 부담스럽게만 느껴 저서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초보자 과정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 분야는 나랑 맞지 않는구나'하고 판단하고 다른 분야로 옮겨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특정 분야에서 초보자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각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는데, 머릿속의 음악을 피아노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 분야에 대해 대단한 재능이 있다고 볼 수 있죠.

초보자 단계를 지나고 나면 중급 단계에 들어갑니다. 이 단계에선 학습의 대부분이 이루어집니다. 즉, 어떤 사람이 3년을 공부하고, 어떤 사람이 10년을 공부했어도, 3년 공부한 사람이 중급 단계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면 10년 공부한 사람보다 앞설 수 있는 법이죠. 언어도 꼭 현지에 오래 산다고 언어를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도착하고 첫 몇 년간 익힌 실력이 그 사람의 실력으로 남기 마련이죠.

마지막으로, 고급 과정에 들어가면 작은 차이가 중요해집니다. 고급 과정에선 워낙 학습 속도가 느려서, 이 과정에서 남보다 조금만 뛰어난 사람은 대단한 재능이 있거나 대단히 노력을 많이 했다고 볼 수 있죠. 이는 자전거나 음향제품도 처음엔 돈을 조금만 투자하면 제품의 질이 대단히 높아지는데, 나중엔 조금만 높은 품질의 제품을 사려면 거금을 투자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죠.

학습 곡선은 꼭 언 뿐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배울 때 적용되기 때문에, 자신이 학습 곡선의 어느 지점에 왔는지를 파악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계획을 짜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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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