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양한 철학자가 다양한 주제를 논하였지만,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인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과거엔 신의 존재 여부가 철학의 중요한 주제인 시절도 있었습니다. 특히 기독교가 서양 철학과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세엔 수많은 신학자들이 철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했죠. 안셀름의 존재론적 논증이나 아퀴나스의 다섯 가지 신의 존재 증명법, 그리고 데카르트(그는 현대 철학의 아버지이지만, 중세 스콜라 철학의 전통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중세적인 면도 강합니다)의 신 존재 증명 등은 이러한 노력의 예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러한 노력은 결국 실패하였고, 지금은 더 이상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신은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할 뿐이죠. 신의 존재를 증명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은 기독교 철학가들의 지나친 열정이었을 뿐이죠. 마찬가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버트란트 러셀이나 리처드 도킨스 등 유명한 무신론자도 신의 부재를 증명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신의 존재를 믿을만한 증거가 없다"는 수준에서 신에 대한 불신을 합리화할 뿐입니다.

이처럼 신의 존재나 부재는 철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서양 철학이 신에 대한 믿음을 흔들어 놓았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서양 철학이 존재하기 전, 거의 모든 인간은 신에 대해 믿었습니다(지금도 서양 문명과 접촉이 적은 원시민족은 대부분 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그에 비해 고대 그리스에서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철학이 등장한 이래로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아졌고(최초의 무신론자라고 할 수 있는 아낙사고라스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다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중요해 보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엔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이처럼 서양 철학이 신이 없는 사회를 낳은 것은 서양 철학이 신을 배제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문명 최초의 철학자인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만물이 물에서 나왔다는 말일 수도 있고, 만물이 물로 구성되었다는 말일수도 있기에 조금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그의 전통을 이은 아낙시만드로스("만물의 근원은 무한자다")나 아낙시메네스("만물의 근원은 공기다")의 말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 철학자들이 비인격적인 물질로 만물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세상에 합리적인 질서가 존재한다"는 믿음과 "인간의 이성은 세상의 합리적인 질서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 결합될 때만 가능하죠. 이러한 믿음에 기초하여 철학자들은 점차 세상을 이성으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러한 이성을 통한 세상의 이해는 근대에 들어 과학혁명을 낳고, 17세기에 뉴튼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쓰면서 정점에 이릅니다. 뉴튼은 자연의 움직임이 인간의 수학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였고, 그의 이론은 명쾌하면서도 정확해서 감히 그의 이론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죠.

하지만, 이처럼 서양 철학, 그리고 서양 철학이 낳은 과학이 세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게 되자 신은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고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신을 믿었던 것은 신이 비를 내리고, 자녀가 생기게 하는 등 여러가지 역할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신이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고 믿는 인간은 농사를 지을 때도, 국가를 운영할 때도 신에 의존해야 한다고 느꼈죠. 하지만 이제 인간이 과학을 통해 자연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자, 많은 사람은 신이 필요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신이 필요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법이죠. 물론 아직도 과학만으론 세상을 설명할 수 없고, 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세상이 설명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론은 틈의 신(God of the gaps)을 만들 뿐이고, 과학이 발달하여 과학이 세상을 잘 설명할 수록 신의 영역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앞날이 어둡다고 하겠습니다.

프랑스의 과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가 나폴레옹을 만난 자리에서, 나폴레옹이 라플라스의 책에 신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자 라플라스가 "저는 그러한 가정(hypothesis)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시대에 신은 필요 없는 개념일 뿐이죠.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고, 그래서 지금은 많은 사람이 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이 없다는 생각은 여러가지 면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신이 없다는 말은 영적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고(영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면 이 세계를 지배하는, 또는 대표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믿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영적인 측면인 영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면 도덕, 정의 등의 개념도 의미를 잃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많은 철학자들은 신이 없다는 결론을 피하려고 노력했고(예를 들어 순수이성의 영역에서는 신의 존재를 논하기 거부했지만, 실천이성의 영역에서는 신의 존재를 가정한 칸트가 좋은 예죠), 어떤 철학자는 아예 신의 존재를 철학의 핵심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신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철학을 한다고 말한 소크라테스가 좋은 예죠. 흥미롭게도, 현대인들이 신이 없다고 느끼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과학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은 대부분 신의 존재를 확신하였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영국 국교회의 헌신적인 신자였고, 르네 데카르트는 가톨릭 신학을 지지하기 위해 제1 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을 썼으며, 요하네스 케플러는 천문학을 통해 창조주의 지혜를 드러내기 원했고, 뉴튼은 과학 연구만큼이나 성경 연구에 많은 시간을 들일 정도로 열성적인 신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개인적인 신앙과는 별개로, 이들이 이룬 과학적 업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이 필요 없다고 느끼도록 했고, 결국 많은 사람이 신앙을 버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과학만을 놓고 보자면 신이 필요 없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과학의 영역에서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도덕, 예술 등의 영역을 보자면 세상은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고, 그렇기에 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이 발전할수록 종교를 믿는 사람의 숫자는 줄어만 들리라는 예상과 다르게, 종교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삶을 지배하는 원리로 남아 있고, 이러한 상황은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의 존재는 앞으로 볼 다른 궁극적인 질문과도 연관이 깊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선 다음에 올리는 글도 참고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P.S. 혹시 궁금해 하시는 분이 있을 까봐 덧붙이자면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P.S.S. 이번주에 밀라노에서 강의하느라 글을 늦게 올리게 되었네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강의는 잘 끝났고, 내일은 독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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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