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인터넷에선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통큰치킨은 롯데마트에서 판매하는 닭튀김인데, 일반 치킨 제품보다 양은 많으면서 가격은 절반 밖에 안 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롯데마트가 이러한 제품을 내놓으면 다른 치킨집의 영업에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죠. 실제로 최근 10여 년간 직장인들은 "잘리면 치킨집 차리겠다."는 말을 쉽게 할 정도로 치킨집은 경험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자영업의 대표였는데, 대기업이 물량공세로 나오면 치킨집을 운영하는 사람들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소비자들도 싼값에 치킨을 즐길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도 언젠가 치킨집을 차려야 할지 모르는 불안한 현실을 생각할 때, 마냥 통큰치킨이 맛있게만 느껴질 수는 없겠죠.
결국,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중단으로 통큰치킨을 둘러싼 논쟁은 어느 정도 끝이 났지만, 이번 사태는 이마트 피자를 둘러싼 논쟁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마트 피자는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피자로, 크기는 엄청나게 크지만, 가격은 저렴해서 많은 관심을 끈 제품입니다. 이마트피자가 화제를 일으키면서 이 제품 때문에 동네 피자집이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비판을 접한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은 "님이 걱정하는만큼 재래시장은 님을 걱정할까요?" "본인은 소비를 실질적으로 하시나요 이념적으로 하시나요?"라며 "싸게 공급하는 제품을 선택하면 되지, 이를 이념의 문제, 사회의 문제로 확대하면 안된다."라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러한 정용진 부회장의 발언은 지금 대형 마트들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통해 작은 규모의 슈퍼마켓 시장까지 독점하려는 움직임을 두둔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러한 대형 마트의 동네 상권 진출은 기존의 슈퍼마켓에 커다란 위협이지만, 엄밀히 말해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기에 불법은 아닙니다. 따라서 대형 마트는 "기업 경영의 자유"를 강조하며 지역 소매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고, 기존의 슈퍼마켓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형 마트의 "탐욕"을 비난하며 이를 막으려고 하는 중입니다.
이처럼 대형 마트의 영업행위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의 뒤에는 "경제활동이 도덕적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만약 경제활동이 도덕의 영역에 속한다면 모든 경제활동은 도덕의 잣대로 평가해야 마땅하고, 경제활동이 도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면 경제활동을 할 때는 도덕을 무시해도 괜찮기 때문이죠.
전통적인 사회에서 경제활동은 늘 도덕의 영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공정한 가격"(just price)이라는 개념을 통해 각 상품은 가치에 따른 공정한 가격을 지니고, 따라서 어떤 제품을 공정한 가격보다 높게 판다면 이는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동양에서도 팔 매(賣)자엔 선비 사(士)자를 넣는 등 경제활동을 할 때 도덕을 따라야 한다는 믿음이 강했습니다. 상도덕이라는 말의 존재도 이러한 관점의 표현이죠. 하지만,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국제 무역이 발달하면서 제품의 가격이 급격하게 변동하면서 전통적인 경제관은 변화를 맞게 됩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선 밀 1파운드가 은화 하나라고 모두 알고 있었지만, 경제가 복잡해진 오늘날 23인치 모니터의 가격이 얼마이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된 것이죠. 이처럼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제관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애덤 스미스였습니다. 그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우리는 정육점 주인, 양조업자, 빵집 주인의 착한 마음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경제활동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행동이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보자면 비난받아야 마땅할 행동도 경제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면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많은 문제를 낳았습니다. 우선, 경제를 도덕의 영역에서 분리하자 사람들은 경제의 영역에서 비도덕적인 행위도 쉽게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즉,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에서(또는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한에서) 모든 활동이 허용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영리한 사람만 이득을 보고 사회 전체로는 손해를 보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투기가 대표적인 예인데, 경제가 발달하던 70-80년대에 수많은 사람은 부동산 투기에 나섰고, 이런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한국 사회 전체로 보자면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서 대부분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경제의 영역에서는 부동산 투기로 돈 번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부동산 투기 전력이 있는 사람이 공직에 출마하면 "저런 사람이 어떻게 공직자가 될 수 있느냐"며 비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의 탈도덕화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경제를 다시 도덕과 연관하려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도덕적 의미를 고려해 소비한다는 윤리적 소비주의(Ethical consumerism)가 좋은 예죠 (한겨레가 쓰는 "착한 경제"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에 따르면 물건을 살 때도 제일 싼 제품을 살 것이 아니라 제3세계의 생산자가 생계를 유지하기에 적절한 가격을 지급한 원료로 만든 Fair trade제품을 사야 합니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커피숍에서 Fair trade 커피나 초콜렛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제와 도덕을 결합한다면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불의한 경제구조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경제에 지나치게 도덕적인 관점을 도입한다면 경제가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가격의 결정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시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가 불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이 인기가 많으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고, 이 제품을 비싸게 판매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생산에 뛰어들면서 가격이 내려갑니다. 즉, 사회적 필요가 큰 제품에 자원이 모여들면서 결국 싼 값에 제품의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시장의 기능을 도덕이 대체한다면, 제품의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오르면 이를 "상인들의 탐욕이 가격을 올린다."라는 식으로 해석하게 되고(실제로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요가 많다고 가격을 올리는 상인은 도둑질하는 셈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생산자들은 비난이 두려워서, 또는 정부의 가격 규제 때문에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생산에 참여할 의욕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는 많은데 생산은 적은 상태가 지속하고, 이는 제품의 품귀현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원유가가 올랐는데 가격을 통제해 주유소마다 휘발유가 동났던 오일쇼크 당시의 미국이 그러한 예죠. 더 흔한 경우는 도덕적 비난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가격 통제에도 가격이 오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면서 몇몇 생필품의 가격을 특별히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정부가 관리하는 품목의 가격은 일반 물가보다 더 많이 오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도덕적 관점과 시장의 기능은 상충하기 때문에 공존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을 도덕과 무관한 영역으로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특히, 시장이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은 현대 사회에서 시장의 활동이 도덕과 무관하다면, 인간의 삶은 대부분 도덕과 무관하다는 말이 되고, 이는 인간의 본성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입니다. 만약 시장이 도덕과 무관하다면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를 핍박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이는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이어져, 강대국은 약소국을 경제적으로 착취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결국, 인간사회는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정글이 되고 말겠죠. 이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이 아니라, 극단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던 19세기의 역사적 현실입니다.
경제를 지나치게 도덕과 연관한다면 경제는 활력을 잃고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반대로, 경제를 도덕에서 완전히 분리한다면 인간성의 파괴와 구조적 불의를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안에 따라 경제와 도덕을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해야 합니다. 통큰치킨 사태만 해도 단순한 상황 같지만 실제로는 "싼값에 제품을 공급하고 소비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는 경제적 시각"과 "가난한 소시민이 대기업의 위협이 없이 치킨집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도덕적 권리"가 부딪치면서 많은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쨌든 이번 사태는 경제와 도덕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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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중단으로 통큰치킨을 둘러싼 논쟁은 어느 정도 끝이 났지만, 이번 사태는 이마트 피자를 둘러싼 논쟁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마트 피자는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피자로, 크기는 엄청나게 크지만, 가격은 저렴해서 많은 관심을 끈 제품입니다. 이마트피자가 화제를 일으키면서 이 제품 때문에 동네 피자집이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비판을 접한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은 "님이 걱정하는만큼 재래시장은 님을 걱정할까요?" "본인은 소비를 실질적으로 하시나요 이념적으로 하시나요?"라며 "싸게 공급하는 제품을 선택하면 되지, 이를 이념의 문제, 사회의 문제로 확대하면 안된다."라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러한 정용진 부회장의 발언은 지금 대형 마트들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통해 작은 규모의 슈퍼마켓 시장까지 독점하려는 움직임을 두둔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러한 대형 마트의 동네 상권 진출은 기존의 슈퍼마켓에 커다란 위협이지만, 엄밀히 말해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기에 불법은 아닙니다. 따라서 대형 마트는 "기업 경영의 자유"를 강조하며 지역 소매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고, 기존의 슈퍼마켓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형 마트의 "탐욕"을 비난하며 이를 막으려고 하는 중입니다.
이처럼 대형 마트의 영업행위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의 뒤에는 "경제활동이 도덕적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만약 경제활동이 도덕의 영역에 속한다면 모든 경제활동은 도덕의 잣대로 평가해야 마땅하고, 경제활동이 도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면 경제활동을 할 때는 도덕을 무시해도 괜찮기 때문이죠.
전통적인 사회에서 경제활동은 늘 도덕의 영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공정한 가격"(just price)이라는 개념을 통해 각 상품은 가치에 따른 공정한 가격을 지니고, 따라서 어떤 제품을 공정한 가격보다 높게 판다면 이는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동양에서도 팔 매(賣)자엔 선비 사(士)자를 넣는 등 경제활동을 할 때 도덕을 따라야 한다는 믿음이 강했습니다. 상도덕이라는 말의 존재도 이러한 관점의 표현이죠. 하지만,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국제 무역이 발달하면서 제품의 가격이 급격하게 변동하면서 전통적인 경제관은 변화를 맞게 됩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선 밀 1파운드가 은화 하나라고 모두 알고 있었지만, 경제가 복잡해진 오늘날 23인치 모니터의 가격이 얼마이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된 것이죠. 이처럼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제관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애덤 스미스였습니다. 그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우리는 정육점 주인, 양조업자, 빵집 주인의 착한 마음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경제활동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행동이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보자면 비난받아야 마땅할 행동도 경제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면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많은 문제를 낳았습니다. 우선, 경제를 도덕의 영역에서 분리하자 사람들은 경제의 영역에서 비도덕적인 행위도 쉽게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즉,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에서(또는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한에서) 모든 활동이 허용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영리한 사람만 이득을 보고 사회 전체로는 손해를 보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투기가 대표적인 예인데, 경제가 발달하던 70-80년대에 수많은 사람은 부동산 투기에 나섰고, 이런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한국 사회 전체로 보자면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서 대부분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경제의 영역에서는 부동산 투기로 돈 번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부동산 투기 전력이 있는 사람이 공직에 출마하면 "저런 사람이 어떻게 공직자가 될 수 있느냐"며 비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의 탈도덕화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경제를 다시 도덕과 연관하려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도덕적 의미를 고려해 소비한다는 윤리적 소비주의(Ethical consumerism)가 좋은 예죠 (한겨레가 쓰는 "착한 경제"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에 따르면 물건을 살 때도 제일 싼 제품을 살 것이 아니라 제3세계의 생산자가 생계를 유지하기에 적절한 가격을 지급한 원료로 만든 Fair trade제품을 사야 합니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커피숍에서 Fair trade 커피나 초콜렛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제와 도덕을 결합한다면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불의한 경제구조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경제에 지나치게 도덕적인 관점을 도입한다면 경제가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가격의 결정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시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가 불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이 인기가 많으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고, 이 제품을 비싸게 판매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생산에 뛰어들면서 가격이 내려갑니다. 즉, 사회적 필요가 큰 제품에 자원이 모여들면서 결국 싼 값에 제품의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시장의 기능을 도덕이 대체한다면, 제품의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오르면 이를 "상인들의 탐욕이 가격을 올린다."라는 식으로 해석하게 되고(실제로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요가 많다고 가격을 올리는 상인은 도둑질하는 셈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생산자들은 비난이 두려워서, 또는 정부의 가격 규제 때문에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생산에 참여할 의욕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는 많은데 생산은 적은 상태가 지속하고, 이는 제품의 품귀현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원유가가 올랐는데 가격을 통제해 주유소마다 휘발유가 동났던 오일쇼크 당시의 미국이 그러한 예죠. 더 흔한 경우는 도덕적 비난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가격 통제에도 가격이 오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면서 몇몇 생필품의 가격을 특별히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정부가 관리하는 품목의 가격은 일반 물가보다 더 많이 오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도덕적 관점과 시장의 기능은 상충하기 때문에 공존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을 도덕과 무관한 영역으로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특히, 시장이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은 현대 사회에서 시장의 활동이 도덕과 무관하다면, 인간의 삶은 대부분 도덕과 무관하다는 말이 되고, 이는 인간의 본성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입니다. 만약 시장이 도덕과 무관하다면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를 핍박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이는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이어져, 강대국은 약소국을 경제적으로 착취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결국, 인간사회는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정글이 되고 말겠죠. 이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이 아니라, 극단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던 19세기의 역사적 현실입니다.
경제를 지나치게 도덕과 연관한다면 경제는 활력을 잃고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반대로, 경제를 도덕에서 완전히 분리한다면 인간성의 파괴와 구조적 불의를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안에 따라 경제와 도덕을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해야 합니다. 통큰치킨 사태만 해도 단순한 상황 같지만 실제로는 "싼값에 제품을 공급하고 소비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는 경제적 시각"과 "가난한 소시민이 대기업의 위협이 없이 치킨집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도덕적 권리"가 부딪치면서 많은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쨌든 이번 사태는 경제와 도덕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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