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의 의미

분류없음 2010/12/27 06:55
다음은 월간 <새가정>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는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입니다. 이타카의 왕이었던 그는 다른 그리스의 장수들과 트로이 전쟁에 참여했고, 전쟁이 끝난 후 아내와 자식이 기다리는 고국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금방 끝날 것 같던 여행은 10년이나 걸리고, 그의 집안은 그의 아내를 차지하려고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풍지박산이 날 위기에 처합니다. 이처럼 곤경에 처한 오디세우스와 그의 가정을 불쌍히 여긴 아테나 여신은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Mentor)로 변신하고 나타나 오디세우스의 아들이 오디세우스를 찾도록 도와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멘토"라는 명칭은 바로 이 이야기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처럼 멘토라는 이름은 역사가 깊지만, 막상 멘토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멘토는 조언이 필요한 젊은이, 즉, 멘티(mentee)와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맺으면서 삶과 업무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인생의 본을 보여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멘토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멘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전통적인 관계와는 다릅니다. 멘토는 아버지처럼 도덕적 권위를 지니지만 가족은 아닙니다. 멘토는 때로 교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개인적인 관계가 중요시된다는 점에서 학습지도가 중요한 임무인 교사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또한, 멘토는 일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해 충고를 한다는 점에서 직장 상사와도 다른 개념입니다. 그리고 멘토는 조언을 통한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재정과 영향력으로 도움을 주는 후견인과도 다릅니다. 멘토는 삶의 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할 모형(role model)과 비슷하지만, 일방적인 존경심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역할 모형과 다르게 멘토 관계를 맺으려면 상호 동의가 필요합니다. 멘토와 멘티는 자발적으로 연결된 친밀한 관계이기에 친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서로에게 조언하는 관계인 친구와 다르게 멘토 관계에선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도해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마지막으로, 멘토는 고민거리가 있을 때만 찾아가는 관계가 아니라 꾸준히 만나는 관계라는 점에서 상담가와도 구별됩니다.

이렇게 엄밀히 멘토의 기준을 적용하자면 진정한 멘토의 개념에 맞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에 나오는 오비완 케노비는 젊은 제다이를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멘토보다는 전통적인 스승의 모습에 가깝고,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매과이어 교수는 윌 헌팅에게 멘토처럼 조언을 하지만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조언자라고 볼 수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요나단은 멘토 관계보다는 친구 관계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들이 굳이 고대 그리스 서사시에 나오는 멘토의 이름을 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멘토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를 지도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특정한 영역의 교육을 담당하지는 않았기에 스승은 아니고,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였지만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친구였고, 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니 직장 상사도 아니었으며, 평등한 관계가 아니니 친구도 아니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역사상 "멘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바로 오디세이에 나오는 "멘토"라고 하겠습니다.

최근 들어 멘토라는 개념이 대중에게 전파된 것은 무엇보다도 인격적인 관계에 바탕을 둔 교육을 회복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때문입니다. 공교육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교육은 늘 친밀한 인간관계에 기초하였습니다. 배우기 원하는 사람은 스승을 찾아가 자기를 소개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후 학문을 배웠고, 스승도 배우려는 사람의 됨됨이를 보며 그를 가르칠지 결정했습니다. 이처럼 교육이 인격적 관계에 기초하던 시절, 스승은 정보전달자이자 인생의 조언자였고, 따라서 스승 이외에 멘토라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육이 제도가 되면서, 가르쳐야 하는 임무를 띤 교사와 배워야 하는 임무를 띈 학생이 만나는 학교에서 따뜻한 인간관계는 약해지거나 사라지게 되었고, 교사가 인격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사람들은 지식의 전달자는 아니지만 인격적으로 인생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원했습니다. 멘토는 이러한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죠.

멘토라는 개념이 주목받는 또 다른 원인은 오늘날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려면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엔 일단 교육을 마치고 나면 사회의 일원이 되어 관습에 따라 살아가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오늘날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가능성을 보며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이들은 인생의 선배로서 인생의 지혜를 나눠줄 사람의 조언을 구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멘토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멘토를 만난 사람은 멘토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멘토 관계는 멘티에게 뿐 아니라 멘토에게도 유익한 법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의 관계는 이처럼 서로에게 유익한 멘토관계의 예를 보여줍니다. 프로이트와 융이 만났을 때 프로이트는 원숙한 심리학자였고 칼 융은 그보다 스무 살이 어린 젊은 의사였지만, 둘은 나이를 뛰어넘어 심리학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바탕으로 가까운 관계로 발전합니다. 두 사람은 수많은 토론을 벌였고, 서로의 꿈을 분석했으며, 함께 여행을 다녔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융이 프로이트로부터 배웠을 뿐 아니라 프로이트도 융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래 융이 개발했지만 나중엔 프로이트도 자주 사용한 콤플렉스라는 개념은 융이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끼친 좋은 예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성인이 된 후에도 좋은 멘토를 통해 조언을 얻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겠죠. 물론 좋은 멘토를 만난 사람이라면 언젠가 자신도 좋은 멘토가 되어 젊은이들을 지도해 줘야 마땅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세대 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사회의 유기적 연결성을 강화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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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