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09/03/31 다양한 분야의 지식 (4)
  2. 2009/03/30 환율은 어디로 움직일까? (4)
  3. 2009/03/27 글쓰기와 영감 (9)
  4. 2009/03/26 이미지와 실체 (8)
  5. 2009/03/25 연역법과 귀납법 (4)
  6. 2009/03/24 경제위기, 끝날 조짐이 보이는가? (3)
  7. 2009/03/23 헌신의 위험 (4)
  8. 2009/03/21 직관 (3)
  9. 2009/03/19 Visionary의 시대 (4)
  10. 2009/03/18 한국의 이야기 (4)
심리학자 칼 융은 젊은 시절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자들을 대상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정신병자들이 하는 말은 겉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는 헛소리였고, 따라서 의사들은 그들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죠. 융은 평소에 연금술에 관심이 많아서 연금술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어느날 정신병자들이 하는 말이 중세 연금술 서적에 나오는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과연 어떻게 정신병자들이 하는 말과 중세 연금술의 교리가 비슷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그는 인간의 무의식이 연관되어 있다는 집단적 무의식 (collective unconscious)의 개념을 발견합니다. 즉, 바다의 섬들이 각각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물 밑으로 연결되었듯, 인간도 무의식의 수준으로 내려가면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무의식의 흐름이 연금술로도 표현되고, 정신병자의 중언부언을 통해서도 표현된다는 해석이지요.

이는 어떠한 분야에서 직면하는 문제의 해답을 다른 분야의 지식에서 찾은 예입니다. 이러한 예는 학문과 산업 곳곳에서 찾을 수 있죠. 제프 호킨스가 팜의 입력 체제인 그래피티를 개발한 이야기도 그러한 예입니다. 호킨스는 원래 두뇌의 작동에 관심이 많았고, 전공도 두뇌 관련으로 하고 싶었지만, 당시만 해도 두뇌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했기에 연구를 하려고 해도 연구 거리가 없는 지경이었죠. 결국 그는 컴퓨터쪽으로 진로를 바꾸고, 나중에 Palm 기기 개발에 참여합니다. 당시 애플은 뉴튼이라는 PDA를 내놓았는데, 나름대로 관심을 끌었지만 대중화에 실패하고 맙니다. 뉴튼이 실패한 원인의 하나는 바로 입력 방식 때문이었죠. 뉴튼은 사람이 쓴 글씨 그대로 인식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문제는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호킨스는 인간의 두뇌가 불확실성을 대단히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필기 인식 기술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키보드가 개발된지 몇 백년 밖에 안되지만, 늘 정확한 결과를 내기에 인간이 키보드 쓰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에 주목하죠. 이에 근거해서 그는 글자를 쓰되, 특별한 공간에 컴퓨터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자를 쓰는 입력 방식인 그래피티를 개발합니다. 결국 그래피티는 팜 OS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쓰는 대중적인 방식이 됩니다. 그런데 당시 다른 엔지니어들은 그래피티라는 아이디어가 실패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생각은 "기술이 인간에 맞춰야지, 인간이 기술에 맞추면 안된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필기 인식 방식 입력은 에러가 많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90년대의 필기 인식 기술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호킨스는 두뇌의 작동에 대해 잘 알았기 때문에 다른 엔지니어들이 실패한 영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죠. 참고로, 호킨스는 현재 사업계를 떠나 신경 과학자 (neuroscientist)로 활동하며, 두뇌의 작동을 설명하는 On Intelligence라는 책도 썼습니다. 평소의 꿈을 이룬 셈이죠.

저는 다음 달에 독일로 가는데, 독일은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포괄하는 학풍이 강한 곳입니다. 물론 지금은 독일 학문계가 꼭 앞선다고 말하기가 뭣하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진정한 독일 학자는 자신의 전공 분야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 대해 아는 지식에서 영감을 얻곤 했죠. 불확실성의 원리를 발견한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도 그러한 예인데, 그가 쓴 '부분과 전체'에 보면, 그가 칸트 등 철학자들의 사상을 물리학에도 적용했고, 물리학의 개념을 설명할 때 철학의 개념을 빌려썼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나중에 물리학과 철학의 관계를 탐구한 '물리학과 철학'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죠.

하지만 분업을 강조하는 산업혁명의 영향이 학문계에도 미치면서, 점차 전문가는 곧 자신의 분야를 제외한 분야에 대해선 무지해도 괜찮다는 태도가 퍼지면서, 박식한 전문가는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철학에서는 헤겔, 역사학에서는 토인비 정도가 마지막 박식한 전문가의 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종합 (synthesis)능력을 갖춘 사람의 가치가 다시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에도 썼지만 외국에서 변호사나 의사가 되려면 학부에서 다른 분야를 공부해야만 하는 것도,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를 키워내려는 뜻이죠. 하긴 한 가지 문제를 한 관점에서만 보는 사람과 두 가지 이상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 중 누가 더 심도 있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제도의 타당성은 분명해 보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대입시험도 교과서에서만 문제가 출제되는 학력고사가 수학능력 고사로 바뀌었는데, 이것도 고등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식을 쌓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수능은 또 다른 학력고사로 변질 되었고, 지금 고등학생들은 과거보다 더 틀에 박힌 공부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 싶어서 안타깝습니다.

진정으로 21세기를 주도할 사람은 판에 박힌 지식을 잘 암기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한 분야에 대해서만 잘 알면 안되겠죠. 부디 다음 세대라도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능력을 키우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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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빠르게 떨어지던 환율이 1300원 하단에 부딪친 후 월요일 다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로써 환율의 하락세는 일단 진정된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앞으로 환율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주목됩니다.

물론 단기간 환율의 방향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고, 특히 지금처럼 국내외의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는 누구도 환율의 정확한 움직임을 미리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환율 변동의 큰 줄기가 보입니다.

1990년대엔 외환위기 전까지 원달러 환율이 700-800원대에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김영삼 정부는 국민소득이 높게 나타나도록 환율을 지나치게 내렸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당시 경제 상황에선 900-1000원선이 적정 환율이라는 말이죠. 그러다가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환율은 2000원까지 오르지만, 금방 1600원선으로 떨어지고, 다시 1600원선에서 점차 떨어져서 900원선까지 내려옵니다. 그런데 1600원선은 작년말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직전에 오를만큼 오른 환율이었고, 이번달 중순에도 가장 많이 오른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국가 부도 상황이 아니라면 환율은 1600원 이상이 최고점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죠.

2000년대 중반인 노무현 정부 시절엔 외환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와서 환율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정부 입장에선 환율이 너무 낮으면 수출에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당시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사들여서 환율을 조절 했죠. 그렇게 본다면 900원 초반이라는 당시 환율은 지나치게 낮은 환율이었고, 따라서 700-800원 정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 환율이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환율은 선물환 거래가 영향을 미쳤는데, 전에 설명을 했지만 1년짜리 선물환 거래를 하면 1년 후에 들어올 외환이 지금 들어오게 되고, 이렇게 외환시장에 풀린 외환은 환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선물환 거래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반대로 실제보다 외환이 부족한 상황이 되었지요 (다른 말로 하자면, 선물환 거래 때문에 미래의 외환이 먼저 들어오고, 미래에는 외환이 부족하게 되었는데, 그 미래가 바로 지금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본다면 정부 개입으로 환율이 오른 것과 선물환 거래로 환율이 내린 것이 상쇄되고 난다면 당시 환율인 900원 초반 대가 자연스러운 환율로 볼 수 있죠. 이는 90년대의 정상적인 환율이라고 추정되는 900-1000원선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면, 원달러 환율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900원 정도가 정상이고, 위기가 닥치면 1600원선까지 오를 수 있고, 국가 부도 상황이 되면 1600원 이상 오를 수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환율인 1300원대는 900원대와 1600원대의 중간 정도인데, 900원을 향해 떨어질찌, 다시 1600원을 향해 올라갈찌 고민하는 모습 같습니다.

지금 보다 환율이 내려가려면 우선 외환 수급상황이 좋아져야 하는데, 아직도 한국에 달러가 많이 들어오기엔 외국 금융기관들의 사정이 좋지 않고, 한국에 대한 평가도 그리 좋지 않아 보입니다. 따라서 환율이 조금 더 내려갈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정상적인 환율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900원대로 하향안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하겠습니다.

그에 비해 1600원선을 돌파할 정도로 폭등할 가능성도 지금으로선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부도의 위기는 정말 국가가 망할 상황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냥 "외환 수급 사정이 안 좋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뜻이죠. 외환 수급 사정이 안 좋으면 외환을 더 끌어와서 수급 사정을 좋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국가 부도 위기에선 외환을 끌어오기가 불가능합니다. 누가 망해가는 나라에 돈을 꿔 주겠습니까? 제가 얼마전 환율이 1600원선까지 올랐을 때 "환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이유도, 당시 한국이 달러가 부족하긴 했지만, 높은 이자를 주면 달러를 빌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말 국가 부도 상황이라면 이자를 아무리 줘도 돈을 빌릴 수가 없었겠죠. 따라서 한국은 국가 부도 상황이 아니고, 그렇다면 1600원은 overshooting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다음 달에 외국으로 가기 때문에 환율이 더 내리면 좋지만, 지금으로선 환율이 크게 내리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만약 앞으로 몇 달간 경제 사정이 더 좋아진다면 1100원선 정도까지 내려갈 수도 있긴 하겠지만, 경제 사정이 더 좋아진단 보장이 없기 때문에 환율이 하락한단 보장도 없죠. 그에 비해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면 환율은 다시 1600원선을 위협할 정도로 올라가겠죠. 결국 환율의 향방은 한국 경제의 영향이 절대적이고,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영향에 좌우되는데, 세계 경제가 중기적으로 보자면 전망이 어둡기 때문에  원화도 잠시 약세에서 벗어날 수는 있어도 중기적으로는 약세가 지속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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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영감

문화 2009/03/27 23:47
저는 현재 직장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직장인 처럼 주말이면 즐겁고 월요일이면 괴롭습니다. 그것은 바로 블로그에 글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죠.

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한지 1년이 넘었지만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려면 늘 부담스럽습니다. 특히 요즘 처럼 주중에 매일 글을 올리려면 늘 아이디어와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게다가 제가 쓰는 글은 딱 정해진 틀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틀에 맞춰 글을 쓸 소재를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전에는 시간 날 때 글을 많이 써두었다가 아이디어가 부족하면 미리 써놓은 글을 올리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저장했던 글을 읽어보면 영 신선한 맛이 없는게, 반쯤 상한 과일 같은 느낌이 나서 요즘은 좀 괴롭지만 매일 신선한 재료로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러고 보면 매일 아침 맑은 정신에 당일 촬영 대본을 쓴다는 홍상수 감독의 정신을 이해하겠단 생각이 드네요 (물론 제가 그분만큼 창조적이진 못하지만).

생각을 해보면 글이란게 노력만 한다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른바 "영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영감이 떠오르면 글이 술술 풀리고, 글이 술술 풀리면 읽는 사람도 술술 읽게 됩니다. 그에 비해 영감이 깃들지 않은 글은 왠지 어색하고, 쓰기도 읽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저는 글의 소재가 산책을 할 때 떠오를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오디오북을 들으며 산책을 하는 동안, 귀로 들리는 글의 내용에 동감이 되면서, 그 글에 이러 저러한 예를 덧붙이면 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가 흔하죠. 만약 바뻐서 산책을 못하는 날이면 글을 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몹시 고생을 합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산책을 통해 영감을 얻은 예술가나 사상가는 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자연을 사랑해 자연 속으로 산책하며 음악의 영감을 얻었다는데, 물론 자연이 영감을 불어 넣기도 했겠지만, 산책이라는 행위 자체도 창의력 발산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산책시간이 너무 일정해 그가 나타나면 농부들이 그를 기준으로 시계를 맞췄다죠. 그러고 보면 칸트가 철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도 꾸준한 산책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걸어가다가 어떠한 문제를 골몰히 생각하게 되면 가만히 서서 생각을 계속했고, 심지어 그렇게 길에 서서 밤을 세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산책을 멈춰야 생각이 잘된 예라고 보이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소크라테스는 길을 걷다 영감을 얻었기에 멈춰서 골몰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죠.

모든 창의적인 활동은 인간의 기술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시인을 "신들린 존재"라고 생각했고,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연기를 잘하면 "신들린 연기"라는 칭찬을 하죠. 이는 꼭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만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쳐야 창의적 활동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저는 건전하게 산책을 영감의 근원으로 들었지만, 사실 많은 예술가는 각종 마약을 영감의 기원으로 듭니다. 예를 들어 비틀즈도 마약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노래가 꽤 되죠 (60년대는 마약이 불법이라기 보다 하위문화의 정당한 일부분이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비틀즈도 마약 복용에 대해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창의적 활동에서 영감의 역할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에디슨이 대표적인 예인데, "천재는 99%의 땀 (perspiration)과 1%의 영감 (inspiration)으로 이루어진다"라는 그의 말은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 중엔 영어 글쓰기의 고전인 On Writing Well을 쓴 William K. Zinsser가 그러한 예인데, 그는 글을 쓸 때 영감을 구하지 않고, 일단 써 놓고 수십 번 고치는 방식으로 글을 개선해 나가는 방법을 씁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예술이라기 보다 기술이고, 글 쓰는 사람이 영감 운운하는 것은 사치이자 허영이지요. 이러한 태도는 특히 저널리스트 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Zinsser도 저널리스트 출신이죠). 하긴 데드라인과 싸워야 하는 기자들이, "저 아직 영감이 안 떠오르는데요" 하는 핑계로 원고 마감을 미룰 수는 없을 테니 신입기자 시절부터 시간이 되기 전까지 기계적으로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결국 영감이 있든 없든 글을 쓰는 능력을 키우게 되는 것이죠.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으로 유명한 기자 출신의 작가 김훈씨도 자신이 기자로 일할 때 혹독하게 글을 쓰는 훈련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창의적인 일을 할 때 어디선지 알 수 없는 근원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능력 이상의 창의력을 발휘한다는 사실도 신기하지만, 이러한 영감조차 젊은 시절부터 철저하게 훈련하면 인간이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 더욱 신기하게 보이네요. 역시 인간은 신비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끝으로 이번 주도 마감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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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실체

정치 2009/03/26 21:20
어떤 남자가 처음 만난 여자와 술을 마시가 정신을 잃은 후, 깨어보니 목욕탕 욕조 속이고 신장이 없어진 상태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미국에서 자동차를 몰다가 앞차에게 빨리 가라고 전조등으로 신호를 보냈다간 앞차에 탄 갱단이 당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어떨까요? 이러한 이야기들은 도시의 전설 (urban legends)라고 불리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이러한 이야기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고, 잊을 수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어 결국 사회 전체로 퍼지기 마련이죠. 심지어 "할로윈에 아이들에게 독이 든 사탕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지만, 몇몇 주에서는 이러한 루머 때문에 아이들에게 독이 든 사탕을 나누어주면 가중처벌하는 법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때 배운 교과서 내용은 거의 잊었는데, 어디서 줏어 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는 몇십년이 지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만약에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렇게 오래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죠.

이처럼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메시지의 특성에 끈끈함 (stickiness)라는 명칭을 붙인 사람은 The Tipping Point를 쓴 말콤 글래드웰이었죠. 그는 자살에서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범죄까지 특정한 행동이 갑자기 사회에 퍼지는 현상을 놓고 연구한 결과, 소수의 영향력 있는 사람, 끈적한 메시지, 그리고 적절한 상황이라는 세 박자가 맞는다면 하나의 현상이 사회 전체로 순식간에 확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찌보면 뻔한 말이라 그리 중요하지 않긴 하지만, 책 자체가 워낙 재미있기 때문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죠. Chip Heath와 Dan Heath는 이를 발전시켜 "메시지를 끈적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하는 주제로 책을 썼는데, 제가 요즘 읽는 책이 바로 이들이 쓴 Made to Stick 입니다. 위에 나온 예들도 대부분 이 책에서 인용하였죠.

기억에 남는 메시지가 중요한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정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후보의 정책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관심이 없고,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에 따라 투표할 후보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대통령 후보가 옷에 미국 국기 뱃지를 달았는지 여부에 따라 투표를 결정한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상황이니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정책을 잘 세우는 능력 보다, 간결한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능력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존 F. 케네디는 대중을 상대로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했던,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 물으라"는 말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메시지입니다. 그가 국회연설에서 했던 "60년대가 끝나기 전,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말은 우주경쟁에서 뒤처져 패배감에 사로잡혔던 미국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실제로 미국은 1969년 달에 인간을 보내게 됩니다.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하여 위기가 찾아오자, 그는 베를린으로 날아가 "모든 자유인은 베를린 시민이다. 나도 자유인이기에 자랑스럽게 말한다. Ich bin ein Berliner"라는 유명한 연설로 베를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베를린을 구해냅니다. 그가 대통령직을 얼마나 잘 수행했냐에 대해선 의견이 다양하지만, 그가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잘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물론 "그의 연설은 그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작성했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차피 미국 대통령은 모두 남이 써 준 원고를 읽습니다. 그런데 케네디와 동시대를 살았던 닉슨 대통령의 말 중 기억에 남는 말은 "I am not a crook"(나는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이 말을 했다가 범죄자라는 인상이 남았죠)이고, 존슨 대통령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았는데, 케네디 대통령이 한 말은 여러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는 사실은 케네디 자신이 뛰어난 communicator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정치인이 만들어내는 메시지는 때로는 현실과 전혀 상관이 없는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말도 때로는 매우 성공적으로 사람들에게 퍼집니다. 예를 들어 노태우씨는 5공화국의 핵심인물이었지만,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열겠다"는 구호로 민심을 사로잡아 대통령에 당선이 됩니다. 5공화국 정부에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던 사람들이, 다시 5공화국 후보가 나왔는데도 찍어주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죠.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로도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가는 등 대단히 성공적으로 "쇼"를 함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능이 드러나면서 민심은 멀어져갔고, 결국 임기말이 되어선 완전히 무시 당하는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보통사람"이라는 말에 속았던 국민으로선 후회해도 소용 없는 일이었죠.

이와 비슷한 일이 2007년말에도 벌어집니다. 당내 입지가 약했던 이명박 후보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경선에서 승리했고, 대통령 선거까지 쉽게 이깁니다. 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된 후로, 그가 보여준 모습은 경제를 잘 알고, 경제를 살릴 능력이 있는 "경제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었죠. 즉, 이명박=경제 대통령은 분명히 끈적한 메시지이긴 했지만, 실체는 없는 허상이었다는 말입니다.

다음 선거에서 군인 출신 후보가 "결단력 있는 대통령"이미지를 들고 나오거나, 경제 학자 출신 후보가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 이미지를 들고 나오면 국민들은 또 사실 검증은 건너뛰고 이미지에 근거해 투표하겠죠. 그러고 보면 끈적한 메시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끈적하면서도 사실과 다른 메시지를 구분해 내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선거도 "뽑아놓고 후회하는" 패턴이 나타날까봐 두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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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법과 귀납법

경제 2009/03/25 19:28
중세가 끝나고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유럽의 지성인들은 "진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두 가지 주장이 제기되는데, 하나는 "경험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경험론 (empiricism)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성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합리론 (rationalism)이었습니다.

경험론의 시조는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이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알려면 세상을 잘 관찰하고, 그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진리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관찰만 하는 사람을 개미 (모으기만 하니까), 관찰은 하지 않고 생각만 하는 사람을 거미 (자기 머리 속에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니까), 그리고 관찰을 바탕으로 유용한 지식을 창조하는 사람을 꿀벌 (꽃에서 모은 단물로 꿀을 만드니까)에 비유했죠 . 그에 비해 프랑스의 철학자 르데 데카르트는 "진리의 확실한 기초"를 찾는 작업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확실한 기초 위에 논리적으로 건축한다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그가 찾아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는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습니다. 즉, 나는 영화 매트릭스 속의 인간처럼 환상의 세계를 참된 세계로 믿고 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을 하는 이상 "나"라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본 것이죠.

우리는 경헙론과 합리론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국민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국인의 중요한 특징은 no-nonsense, 즉 헛소리를 싫어하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상식에 잘 맞는 사고를 하기 위해선 현실을 벗어나면 안되고, 그러기 위해선 생각을 먼저 하고 관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을 먼저 하고 관찰의 결과에 근거해서 생각을 해야죠. 그에 비해 프랑스인은 현실에 얽매이기 보다 이상에 맞는 세계를 건설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의 표현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는데,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원칙에 따라 국가를 새롭게 건설하려고 노력했죠. 그래서 영국은 지금까지도 귀족제도가 남았는데, 프랑스는 빠른 시일 내에 신분의 차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험론은 귀납법 (inductive method)에 의존을 합니다. 귀납법은 관찰에서 시작해 결론을 나중에 내리는 방법입니다. 그에 비해 합리론은 연역법 (deductive method)에 의존하죠. 연역법은 확실한 명제에서 시작해, 논리적으로 파생해 나가는 방법이죠. 귀납법의 문제는 관찰만 하다간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진정 관찰에 의존해서 결론을 내리려면 세상의 모든 케이스를 다 조사해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하기 마련이죠. 따라서 몇 가지 샘플만 놓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엄밀히 말해 이것은 "관찰에 의한 결론"이 아니라, "관찰자가 임의로 선정한 샘플에 의한 결론"이기에 경험론에 충실한다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역법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맞는 말 같아도 현실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칼 마르크스는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하고, 자본주의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면 공산주의가 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곧 무너지고 공산주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는 너무도 논리적인 말이라 현실은 당연히 논리를 따라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지금, 마르크스의 논리적인 주장은 그리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경험론과 합리론, 귀납법과 연역법의 대결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기에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중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분야에서는 합리론과 연역법이 훨씬 강세로 보입니다. 귀납법으로는 미래를 예측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현실은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기 때문이죠. 그에 비해 합리론자들은 미래에 대해 대단히 자신있게 예측을 합니다. 몇년 전에 골드만 삭스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BRICs로 묶어서 "이 네 나라가 몇십년 안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리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죠. 골드만 삭스가 점쟁이도 아니면서 이 나라들의 미래를 예측한 근거는 논리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합리주의자들은 논리를 근거로 하면 자잘한 현실의 변화를 뛰어 넘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최근 화제를 모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은 철저하게 경험론의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블랙 스완은 경험론자였던 데이비드 흄이 들었던 예인데, "눈에 보이는 백조가 모두 흰 색이라고 해도, 세상에 검은 백조가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뜻이죠. 이 말은, 관찰만 해서는 일반론을 주장할 수 없고, 따라서 "미래가 이럴 것이다"는 식의 절대적 예측도 불가능하다는 말이죠 (실제로 유럽인들이 호주를 발견한 후, 호주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블랙 스완이 인기를 끄는 원인은 최근 예상 밖의 경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계 경제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이 많이 나왔지만, 작년 9월부터 벌어진 일련의 사태 때문에 이러한 예측이 하나 같이 어긋났고, 이처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는 블랙 스완이 인기를 끈 것이지요.

우리가 이번 사태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예상을 하다가는 꼭 크게 틀리기 마련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요즘이야 말로 "경제가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주장이 많이 나오는 중입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꼭 논리적인 근거를 덧붙이고, 그 글을 읽는 사람은 "그래, 이러한 근거에서 나온 예측이니 분명히 맞겠지"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현실이 논리적인 예측에 맞게 움직이리라는 것은 합리론의 망상입니다. 언제보다 합리론의 권위가 떨어진 지금, 합리론에 근거해서 예측을 너무 믿으면 안되겠죠.

지금 상황은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경제 위기를 가장 잘 맞춘 외국의 저자들도, 경제 위기와 함께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은 하나같이 틀렸습니다. "미국이 경제 위기에 빠지면서 달러화는 반대로 초강세를 보일 것이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맞을 수 없었던 것이죠. 앞으로도 경제에 대한 예측은 많이 나오겠지만, 아무리 그럴듯하게 들린다 할지라도 지나치게 신뢰하지는 말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P.S. 당연한 얘기지만, 제가 가끔 하는 예측도 같은 이유에서 지나치게 신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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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만 불던 경제계에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어제 미국 다우지수는 6.84%가 오르면 7800선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이로써 얼마전 6500선까지 떨어졌던 다우의 대반등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도 3월 위기설이 남의 나라 일만큼 멀게 느껴지는데, 1600원선까지 갔던 환율은 1300선으로 내려왔고, 주가도 연일 상승세를 보이는 중입니다. 아직 실물 경제가 나아졌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지만, 경제위기가 금융 부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금융 부분이 정상화하면 실물경제도 정상화하리라는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몇가지 이유에서 세계적 경제위기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자본주의 경제는 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호황이 클 수록 불황도 크기 마련이죠. 그런데 미국 경제는 1990년대 초반 이후로 계속 호황을 누렸고,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와 2001년 9/11 사태로 잠시 불황이 왔을 뿐, 큰 관점에서 호황은 거의 20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호황으로 생겨난 거품이 엄청나게 크다는 뜻인데, 지난 반 년간 경제가 큰 홍역을 앓았다고는 하지만 거품은 아직 덜 꺼진 상태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동안 거품이 꺼져야 하고, 이는 경제위기가 끝나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뜻입니다.

두번째로, 경제는 늘 대중의 뜻과 반대로 움직입니다. 특히 모두가 한 방향으로 몰려야 하나의 커다란 흐름이 끝나기 마련이죠. 예를 들어,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애 업은 주부가 장바구니 들고 객장에 나오면 상투다"는 말을 합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는 보통 육아와 가사에 바빠 주식에 관심이 없는데, 남들이 "주식을 하면 돈번다더라"니까 자기도 주식을 하려고 객장에 나타날 정도라면 대중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뜻이고, 따라서 주가의 큰 흐름이 바뀐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죠. 같은 원리를 적용해 보자면, 대중의 입에서 "경기가 너무나 나쁘고, 좋아질 희망이 안보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인터넷을 잘 살펴보면,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랄지, "곧 경기가 풀릴 것이다"는 일반인의 주장이 많습니다. 이는 바닥은 멀었다는 뜻이지요.

사람들은 전문가의 경기 예측에 귀를 기울이지만, 사실 전문가의 말은 잘 맞지가 않는 법이고, 전문가 중엔 소수의 똑똑한 사람도 섞여 있기 때문에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하지만 대중은 큰 흐름이 바뀌는 순간에는 꼭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중의 움직임을 잘 관찰한다면 큰 흐름을 집어낼 수가 있죠. 3월 초에 환율이 폭등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환율은 끝이 없이 오르겠구나" 했을 때, 저는 대중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느꼈습니다. 얼마 후엔 평소에 환율에 관심 없는 사람 조차 "환태크로 돈을 모으겠다"고 나서기 시작하길래, "그렇다면 환율이 꼭지점에 달했구나"하는 판단이 들었죠. 결국 그때부터 환율이 미끄럼을 타기 시작해 200원 이상 떨어졌습니다. 대중의 판단은 거의 정확히 반대로 맞는 법이죠.

그러면 지금 주가가 오르는 현상은 무엇이냐고 물으시겠지만, 불황기에도 가끔씩 작은 호황은 생기는 법입니다. 미국도 1929년에 주가가 대폭락했지만, 1930년엔 다시 주가가 많이 회복했죠. 하지만 1931년엔 또 주가가 떨어지면서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이번 랠리도 몇 달 이상 지속될 수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 경제가 완전히 위기를 탈출했다는 신호는 아직 없습니다.

위기의 한복판에 서면 위기가 어느 방향으로 갈찌 짐작하기가 극히 힘듭니다. 따라서 위기가 시작하기 전에 앞으로 큰 흐름에 대해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는 2007년 말에 미국발 경제위기가 시작하리라고 예상하였고, 만약 중국, 인도 등이 미국과 상관 없이 경제가 잘 돌아가는 디커플링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장기간 경제 위기가 지속되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경제가 미국 경제 이상으로 흔들린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디커플링은 발생하지 않았고, 결국 세계 경제는 장기 불황이 진행하는 중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경기가 좋아지는 듯 보여도 너무 안심하지 마시고, 언젠가 다시 닥칠 불황을 대비하는 태도를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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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의 위험

사회 2009/03/23 18:23
어느 심리학자가 하바드대학에서 MBA 과정 학생들에게 경매를 제안했습니다. 경매 물품은 현금 20달러인데, 경매 방식은 1달러 단위로 입찰을 하고, 1등은 자신이 부른 가격에 20달러를 얻지만, 2등은 자신이 부른 가격을 지불하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조건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서 1달러 부터 경매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12달러를 넘어가면서 대부분의 학생은 '이러다가 2등을 해서 돈을 내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경매를 포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경매를 포기하지 못하는 두 명이 꼭 남기 마련인데, 이 두 명은 지금 경매에서 1위를 하는 사람과, 바로 직전에 1등을 하던 사람입니다. 지금 1등을 하는 사람은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위치이기에 포기할 이유가 없고, 직전에 1등을 하던 사람은 지금 경매가 끝나면 자신은 손해를 보기 때문에 포기를 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A가 11달러를 부르고 B가 12달러를 불렀다면, A는 13달러를 부를 수 밖에 없고, 그러면 B는 손해를 피하기 위해 14달러를 부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A는 다시 손해를 피하기 위해 15달러를 부르고, 이런 식으로 경매가는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갑니다. 이러한 경매를 여러 번 실시했는데, 최고가는 204달러까지 올라갔다고 하는군요. 20달러를 얻기 위해 204달러를 냈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한 셈이죠. 만약에 20달러 경에서 깨끗하게 "내가 졌다"고 손을 털었다면 손해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하바드대 MBA 학생이라면 경제감각이 뛰어나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매우 비합리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습니다. Ori Brafman과 Ram Brafman은 Sway라는 책에서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가 헌신 (commitment)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헌신은 늘 희생이 적은 상황에서 시작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경매에 참가한 학생들은 '만약 2등을 한다고 해도 몇 달러 내면 그만'이라고 생각을 하고 경매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2등이 감당해야 하는 손해는 갈수록 커지고, 나중엔 손해를 피하려고 내린 결정 때문에 더 많은 손해를 보기 마련이죠.

이처럼 손해를 보기 싫어하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는 경제 활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은 손절매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실제로 주가가 떨어진다면 손절매를 하기 보다는 "곧 오를거야"라는 생각으로 주식을 계속 보유합니다. 주가가 더 떨어진다면, "조금만 다시 오르면 팔아야지"하는 생각으로 팔지 못하죠. 이렇게 하다 보면 결국 기약 없는 비자발적 장기 투자자가 되는 것이죠. 아마 몇년 전 펀드 넣다가 큰 손해를 보고 지금까지 보유하신 분이라면 이런 심리에 쉽게 공감하실 것입니다.

손해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지금 부동산 가격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최근 몇년간 부동산 호황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부동산에 투자를 했는데, 지난 1-2년간은 부동산 가격이 주춤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은 "최소한 내가 구입한 가격만큼 오르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는 심리로 물건을 내놓지 않는 중이고, 따라서 매수세도 없지만 매도세도 없기에 거래가 잘 안되는 중입니다. 만약 부동산을 팔려는 사람이 많았다면, 경기 불황을 반영해 가격이 많이 떨어졌겠죠.

손해를 피하기 위해 한 방향으로 헌신했다가 손해를 보는 예는 정치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 (The Great Society)를 만들겠다며 흑인의 인권을 신장하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회보장을 실시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베트남이라는 수렁에 빠지면서 정치적으로 몰락하고 맙니다. 당시 북베트남은 워낙 군사력이 변변치 못하기에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죠. 따라서 미국은 북베트남에 대포만 쏘고도 "미국은 베트남에서 공산주의자를 섬멸하는 중이다"라고 자랑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씩 베트남에 개입하게 되자, 전쟁은 점차 확대되었고, 미국은 특별한 명분이 없이 전쟁을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히 미국인들에게는 베트남에서 승리하는 중이라고 선전했는데, 갑자기 군대를 철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글에서 벌이는 전쟁에서 미군이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도 어려웠죠. 결국 베트남전은 미국에서 대단한 논쟁을 일으키고, 린든 존슨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재선 포기를 선언합니다. 쉽게 시작한 베트남전이 확대하면서, 헌신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놓쳤기 때문에 자신의 대통령직을 망친 것이지요. 결국 미국은 닉슨 대통령때가 되서야 매우 부끄럽게 베트남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이처럼 국가관계에서 강경책을 쓰기 시작하면 결국은 전면전을 벌이거나 큰 수치를 당하고 나서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강경책을 쓰기 전에는 여러 번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자 북한의 비위에 맞추려고 아양을 떠는 추태를 보였죠. 결국 처음부터 잘못된 정책 때문에 강대국 미국이 "깡패 국가" 북한한테 수모를 당한 것입니다. 최근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문제 때문에 미국이 북한에 직접 접근하면서, 보수 언론은 "북한에 끌려가면 안된다" "6자회담에서 박차고 나와야 한다"는 식으로 강경책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중입니다. 하지만 북한과 전면전을 벌일 것이 아닌 이상, 북한과 대치국면으로 몰고 가는 정책은 매우 위험합니다. 6자회담을 박차고 나오는 일은 매우 쉽지만, 그러고 나면 북한과 대화할 최소한의 자리조차 없어지는 셈이고, 결국 미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해 주길 기다려야만 하는 신세가 된다는 뜻이지요.

헌신은 늘 작은 희생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거래입니다. 끝까지 그 방향으로 갈 용기가 없다면, 헌신을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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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

문화 2009/03/21 00:29
십 여년전 프랑스에 살 때 일입니다. 제가 일하던 센터에 학생들이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명단을 보니 영국에서 알던 사람과 first name이 같은 학생이 보이더군요. 과연 내가 알던 사람이 명단에 나온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궁금했지만 워낙 잠깐 만난 사람이라 first name 밖에 아는 것이 없었기에 맞는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사람이 맞다"는 생각이 번뜩 들더군요. 그 이후로는 곧 올 학생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실제로 며칠 후 보니 영국에서 봤던 그 사람이 맞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어떻게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 그리고 정말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맞출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근원을 알 수 없는 지식을 직관 (intuition)이라고 부르죠.

합리성이 지배하던 시대엔 직관이 무시당했고, 기껏해야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이죠. 여성이 직관이 강하다는 인식도 남성이 우월한 합리성을 맡는 대신 여성에게 열등한 직관을 할당한 면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면서 이성 (reason)의 독재가 끝나고, 요즘은 이성을 보완하는 직관의 역할에 대해 점차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직관의 지위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심리학자 칼 융이었습니다. 그는 심리 유형 (Psychological Types)라는 책에서 이성, 감정, 감각과 함께 직관을 심리적 유형의 하나로 인정합니다. 그 후,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융의 연구를 기반으로 Meyers-Briggs Type Indicator (MBTI)를 개발하였고, 많은 교육 기관과 기업에서도 MBTI를 받아들이면서 융의 심리 유형이 대중화 되었기에 "나는 심리 검사 결과 직관이 강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요.

물론 아직도 직관을 "근거 없는 망상" 정도로 폄하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직관을 인정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도 직관을 존중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경험 많은 성인이라면 마땅이 할 일"이라고 지적했죠. 예를 들어, 어떤 사업상의 결정을 내릴 때, 마음이 불안하거나, 이유 없이 찜찜하다면 이를 무시하지 말고 결정을 미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마 합리적인 시대였다면, "근거 없이 불안한 마음이 들어도 무시하고, 객관적 자료에 기초한 합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겠지만, 이제는 합리성과 객관성이 유일한 판단의 근거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직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선 워낙 여러가지 의견이 존재하고, 꼭 어떤 주장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칼 융은 인간의 영혼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나 (ego)와 함께, 무의식의 영역을 포함하는 자신 (Self)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무의식의 영역은 인류 전체가 연결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무한한 지식과 지혜를 소유하지요. 따라서 직관은 이러한 자신 (Self)의 영역에서 오는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티핑 포인트 등을 쓴 말콤 글래드웰은 좀 더 합리적인 접근을 합니다. 그는 블링크 (Blink)에서 카드 묶음 둘을 놓고 카드를 뒤집어 나오는 패에 따라 돈을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벌인 실험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런데 한쪽 묶음은 돈을 많이 따고 적게 잃는데 비해, 다른쪽 묶음은 돈을 적게 따고 많이 잃도록 카드를 준비합니다.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은 계속 카드를 뒤집다 보면 한쪽 묶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쪽만 뒤집겠죠. 그런데, 도박사들에게 이러한 실험을 시켜보면, 열 장쯤 뒤집다 보면 불리한 쪽 묶음에 손을 댈 때마다 맥박이 빨라지고, 땀 분비가 증가합니다. 이들이 이성적으로 한쪽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50장 쯤 뒤집은 후이지만, 그들의 몸은 이미 어느 쪽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깨달은 것이지요.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직관은 곧 이성이 처리하지 못한 정보를 다른 경로 (몸?)로 얻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참고로, 블링크는 직관에 대해 흥미로운 예가 많지만, 말콤 글래드웰의 다른 책들이 그렇듯 재미는 있는데 결론이 똑 부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실망스럽습니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났는데, 몇년 전 어느 나라에서 수영을 하는데 좀 더 깊은 쪽으로들어가고 싶었지만, 바다 속을 들여다 보니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냥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오다 보니 내 눈 앞으로 작은 상어 한마리가 지나가더군요. 혹시 저도 그 때 상어가 물 속에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직관의 존재는 인간에게 인생과 세상의 신비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좁은 생각이 모든 진리를 안다고 고집하기 보다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답이 세상 어딘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세상의 질서에 더 맞는, 진정으로 합당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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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Visionary의 시대

문화 2009/03/19 22:54
얼마전 홍익대 미대가 2013년까지 입시 실기평가를 전면폐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전통 있는 홍대 미대의 실기 평가 폐지 방침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을 일으켰는데, 많은 사람은 "미대가 미술에 재능이 있는지 확인도 안하고 학생을 뽑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대했지만, 정작 미대생을 지도하는 홍대 미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지금 행해지는 미대 실기평가는 일정한 규칙에 맞는 작품을 잘 만드는 학생에게 절대로 유리하기 때문에, 틀에 맞지는 않지만 예술성이 넘치는 학생을 많이 뽑지 못하고, 따라서 앞으로 '기능인'이 아닌 '예술인'을 뽑으려면 차라리 이러한 거추장스러운 시험을 폐지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죠.

하긴 현대 미술관에 가보신 분이라면, "저런 작품은 나라도 만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보셨을 것입니다. 현대 미술에서는 데생 능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고, 번뜩이는 재치만 있다면 뛰어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천안 아라리오 그룹의 김창일 회장은 현대예술작품 수집가로 유명한데, 최근엔 아예 자신이 작품 제작에 나섰습니다. 김회장은 10년전 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데, 전통 미술계에서는 중년에 시작해가지고는 화가가 되기 힘들겠지만, 현대 미술에선 감각만 있다면 실기 능력이 부족해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창일 작품 빈센트 반고호

빈센트 반 고호는 데생 능력이 부족해 미술학교 시험에 떨어졌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기법을 연마하여 결국 죽은 후에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19세기는 이미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가 나타나며 전통적인 미학이 무너지던 시기였는데, 대부분의 미술학교는 고전 미술의 규범에만 매달리다가 반 고호 같은 천재를 못 알아본 것이였죠. 그렇게 본다면 홍대 미대의 실기평가 폐지 결정은 충격적이긴 하지만, 잘 운영하기만 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만 합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분업이 점차 발달하였고, 20세기에 접어들면 모든 직업과 학문의 영역이 수천 수만 분야로 갈라지게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직업과 학문이 세분화하면서, 자신의 영역에 대해서는 대단히 잘 알지만, 남의 영역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매우 편협한 전문가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점이지요. 이와 반대되는 흐름도 20세기 중반 이후로 나타났습니다.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자신의 전공이 아닌 분야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열정만 있다면 여러 영역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영역에 대해 아는 사람은 시야가 편협하지 않고,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지요. 이러한 사람은 넓게 보는 안목을 지녔다는 점에서 visionary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Visionary가 특히 앞서가는 분야로는 사업계를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컴퓨터에 대해서만 잘 아는 사람이 컴퓨터 회사를 잘 운영하리라고 생각하지만,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기술자라기 보다는 경영자고, 사회의 흐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난 visionary입니다.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앞으로 성장할 것을 예견하고 하버드 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웠고, 스티브 잡스는 학비가 너무 비싸 대학을 중퇴했지만, 서체 (calligraphy)에 대해 관심이 있어 서체 과목을 청강했고, 나중에 컴퓨터에 대한 열정과 서체에 대한 지식을 결합해 매킨토시를 만듭니다. 이처럼 넓은 관점이 있다면 궁극적으로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제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는 visionary의 필요성은 언제보다 더 큽니다. 미국에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려면 학부에서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Law school 이나 Medical school 을 나와야 합니다. 즉, 법학이나 의학만이 아니라 다른 공부를 마친 상태에서 법이나 의학을 공부하게 함으로 자연스럽게 편협하지 않은 전문가를 키워내겠다는 생각이지요. 한국에서도 법학전문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였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제도의 취지와 다르게 학부 전공은 무시하고, 처음부터 전문대학원 입시준비에만 열심이라는 소식이 들리니 안타깝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경제에 대한 글을 올리는 분들을 보자면, 경제를 전공한 분은 극히 드뭅니다. 다른 분야를 전공하였지만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혼자서 공부를 해서 글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런 분들은 오히려 경제만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 현상을 더 넓은 관점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울론 하나 이상의 영역을 전문가 수준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넓은 시야를 소유한 visionary에게 이 세상은 가능성으로 가득찬 놀라운 곳입니다. 너무 하나의 영역에 얽매이지 말고 시야를 넓힐 때 새로운 문이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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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야기

사회 2009/03/18 18:54
서울은 불빛 때문에 별을 많이 보기가 힘들지만, 인적이 없는 지역에 가보면 밤에 많은 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전등이 개발되기 전까지, 인류가 보았던 밤하늘은 이처럼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이었겠죠. 그런데 아무리 별이 많아도, 그 자체로는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인류는 별들을 연결해 별자리를 만들었고, 별자리를 연결해 이야기를 만들었죠. 이러한 이야기의 세계에서 엄마곰은 아기곰 주변을 돌고, 견우와 직녀는 까마귀가 만든 다리위에서 만납니다. 이처럼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의미가 없는 세상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만약 이야기가 없다면 인간은 무의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죠.

최근 경제계에는 이야기를 마케팅에 이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예를 들어, 마케터이자 블로거인 세스 고딘은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all marketers are liars)라는 책에서 마케터는 곧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또한 스타벅스나 나이키 처럼 유행을 선도하는 기업일수록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판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블로그 운영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블로그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 원해서일 것입니다.

아마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회사 중 이야기를 마케팅에 가장 잘 활용하는 회사는 애플이 아닐까 합니다. 애플의 이야기는 여러가지이지만, 그중에서도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 친구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들어서 팔았고, 여기서 애플 컴퓨터가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성공을 거둘 기미가 보임). 그 후 잡스는 애플 II 컴퓨터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매킨토시를 만들면서 지나치게 고집을 부리가다 애플에서 쫓겨났죠 (교만에 빠진 영웅의 몰락). 넥스트 컴퓨터로 재기를 노리던 그는, 결국 애플이 넥스트 컴퓨터를 인수하면서 애플에 돌아오고, 리더십 부재로 어려움을 겪던 애플의 CEO가 되어 애플을 정상화합니다 (시련 끝에 지혜를 얻고, 그 지혜로 성공을 거둠). 이러한 스티브 잡스의 영화 같은 삶은 곧 그를 신비에 싸인 인물로 만들고, 많은 사람이 애플 제품에 열광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만드는 제품을 자신의 철학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애플은 늘 게임의 규칙을 바꾸어 놓는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대표적인 예가 iPhone) 애플의 시장 점유율이 그리 높지 않다 하더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지요.

그에 비해 한국 회사들 중에는 이야기를 잘 활용하는 회사가 극히 적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자회사인 삼성전자는 연간 매출액이 1000억 달러로, 분기별 매출액이 100억 달러가 훨씬 안되는 애플에 비해 몇배나 큰 회사지만, 삼성전자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삼성제품은 가격대 성능비가 좋아서 많은 사람이 구입할 뿐이지, 삼성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고객은 매우 적죠. 오히려 삼성엔 부정적인 이야기 (비자금 조성, 상속문제 등)이 따라 다니기 때문에, 삼성에 대한 이야기는 오히려 삼성제품의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입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부재는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과거에 "전쟁의 아픔을 이기고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엔 (올해엔 국민 소득이 이보다 훨씬 낮지만, 2007년엔 2만 달러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습니다. 즉, 한국은 중진국의 이야기는 있지만, 선진국의 이야기는 없고, 이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대단한 장벽인 것이지요.

이야기가 없는 한국의 현실은 국민의 삶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길을 막고 사람들에게 "당신은 왜 삽니까"라고 물을 때, 대단한 인생의 목표를 제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가족 먹여사는 재미로 삽니다"라는 정도의 답이라도 나오면 다행이겠죠. 만약에 한국도 다른 선진국 처럼 가족해체 현상이 발생한다면, "가족을 위해 산다"는 이야기 조차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긿을 잃은 한국인들은 "과거엔 길이 분명했는데...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자"라는 생각 때문에,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가난을 이기고 부와 권력을 움켜쥔 성공의 화신"이었고, 많은 국민이 "그래, 저런 모습이야 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방향이다"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대통령으로 그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이는 이미 한국이 더 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고, 따라서 "무조건 열심히 일해 가난을 극복하고, 이를 방해하는 사람은 모두 잡아 가둬서 효율을 높이자"는 식의 생각은 성공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행하는 것은 다 따라서 해보는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나라가 브랜드 개발에 힘을 쏟는다는 소식을 듣더니 "국가 브랜드를 덴마크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로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는 곧 이야기에서 나오는데, 이명박 정부의 이야기는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브랜드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부실한데 브랜드만 그럴듯 하게 만든다면, 이는 과대광고이자 사기겠죠.

국민이 빨리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이야기를 찾지 않는다면, 한국은 그저 그런 나라로 머물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으려면 "과거 한국을 움직이던 가난 탈피의 이야기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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