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09/04/30 두뇌의 역할분담 (1)
  2. 2009/04/29 비범한 사람 (7)
  3. 2009/04/28 The Crazy Missing Part (6)
  4. 2009/04/25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6)
  5. 2009/04/24 80/20 법칙 (9)
  6. 2009/04/23 Intensive Learning (10)
  7. 2009/04/22 생산과 소비 (6)
  8. 2009/04/20 가치와 가격 (16)
  9. 2009/04/10 지식과 창조성 (18)
  10. 2009/04/10 창의성의 궤도 진입
요즘 휴대폰이나 PDA 등으로 일정을 관리하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디지털 건망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정을 관리하는 기기를 보지 않으면 일정이 생각나지 않고, 휴대폰이 없으면 가까운 사람의 전화번호조차 기억을 못하기도 하죠. 이러한 증상은 "Use it or lose it"(쓰지 않으면 퇴화함)의 원칙에 따라 쓰지 않는 기억저장 능력이 쇠퇴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기억력은 점차 감퇴하는 추세입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엔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저장할 방법이 기억 밖에 없었고, 따라서 당시 사람들의 두뇌는 기억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지금은 글로 전해지는 일리아드나 오딧세이 등은 고대 그리스에서 구전되던 내용인데, 당시 시인들은 이렇게 방대한 서사시를 몇시간씩 원고도 보지 않고 사람들에게 줄줄 암송해주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판소리도 완창에 5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긴 내용이지만, 명창들은 이렇게 긴 내용을 암송하길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자가 발명되고,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자 기억력은 점차 감퇴하였고, 지금은 전자장치로 인해 웬만한 정보는 기역할 필요가 없게 되어 디지털 건망증까지 나타난 것이죠.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렴 감퇴 현상을 안 좋게만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두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자신의 임무를 외부에 아웃소싱하는 정상적인 변화이기도 합니다. 오늘 일정을 휴대폰에 담아 놨는데, 같은 정보를 두뇌에도 기록해 놓는다면 이는 공학에서 말하는 reduncancy이고,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죠. 그에 비해 외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두뇌에서 삭제한다면, 두뇌는 기억에 쓰던 공간을 다른 정보 처리에 쓸 수 있기에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죠.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도,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머리속에 생각이 계속 떠도는데, 이는 두뇌가 아이디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붙잡아 두기 때문이죠. 하지만 생각을 글로 써 놓고 나면 아이디어가 안전하게 외부에 저장되는 셈이고, 따라서 머리는 과거의 아이디어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준비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글을 계속 쓰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르지만, 글을 쓰지 않는다면 옛날에 떠오른 몇가지 아이디어가 두뇌를 꽉 차지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두뇌의 놀라운 점은 두개골 바깥의 세상을 자신의 일부처럼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휴대폰에 정보를 저장한다면 휴대폰은 두뇌의 일부처럼 작동합니다. 수첩에 생각을 기록한다면 수첩도 두뇌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으로,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두 사람의 두뇌가 한 사람의 두 부분처럼 작동하게 됩니다. 즉, 남편이 외부의 일을 하고 아내가 집안일을 돌보는 가정이라면 남편은 집안의 상황에 대해 거의 전혀 기억을 못하고, 아내는 외부의 일에 대해 거의 전혀 기억을 못해도 가정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도 두 사람의 두뇌가 협력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협력하던 부부가 이혼하게 된다면,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을 뿐 아니라, 두뇌에도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즉, 부부로 살 때는 배우자 두뇌를 내 두뇌처럼 활용했는데, 이제 두 사람이 헤어졌으니 배우자의 두뇌에 더 이상 접근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엄청나게 많은 정보와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셈이죠. 실제로 제가 만난 어떤 사람은 이혼의 경험을 "몸의 한 부분이 떨어져나간 것 같은 아픔"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이는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두뇌가 겪는 현실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많은 현대인에게 하드 드라이브 고장은 엄청난 고통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찍은 사진, 자신이 쓴 글 등을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하는데, 이렇게 모아 놓은 자료가 사라진다면 이는 뇌의 일부분이 죽어버리는 것 만큼이나 충격적일 수 있죠. 저도 얼마전에 하드 드라이브가 고장난 적이 있는데, 지난 10여년간 모은 자료가 모두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참 암담하더군요. 결국 소프트웨어로 고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때 이후로 백업을 자주 하려고 노력합니다.

두뇌가 외부로 기능을 확장하는 메카니즘은 때로는 신비의 영역에 속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두뇌가 다른 두뇌에 말 없이 영향을 끼치는 예를 묘사하는 설명이지요. 영어로는 이를 telepathy라고 하는데, 텔레파시에 대해선 과학적 설명은 어렵지만 그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기는 힘듭니다. 운동경기에서 완벽하게 호흡이 맞는 선수들의 플레이나, 연기력이 뛰어난 두 배우의 호연 뒤에는 텔레파시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동물의 세계를 보자면, 바닷속에 떼를 지어 다니는 물고기들은, 앞 부분에 적이 나타나면 앞에 있는 물고기 부터 차례로 방향을 트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고기가 동시에 방향을 틉니다. 이것도 일종의 텔레파시인 셈이죠.

운동장에 가서 경기를 보거나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보는 경험은, TV로 경기 중계나 콘서트 중계를 보는 것과 매우 다른 경험입니다. 여기엔 많은 원인이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할 때는 개인을 뛰어 넘는 유대감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들이 함께 흥분하면 두뇌끼리 연결이 되고, 이렇게 연결된 상태에서는 개인이 겸험할 수 없는 에너지가 분출되기 마련이죠. 이러한 집단의식은 전쟁 등의 상황에서도 생겨나는데,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이라도 국가를 위해 총으로 적을 쏴 죽일 수 있는 것은 집단적 흥분상태로 말미암아 개인의 의식을 넘어서는 다른 힘이 개인에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두뇌에 관한 연구는 아직 초보 단계이고, 어떻게 두뇌가 집단으로 연결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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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TAG 두뇌
저는 작년부터 맥에 관련한 짧은 글을 올리는 영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길 기대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재미삼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글 블로그와 비교해서, 영어로 같은 내용을 올리면 방문객이 얼마나 올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죠. 한글로 운영하는 블로그는 꾸준히 글을 올리기만 하면 꼭 글의 수준이 높지 않아도 하루에 100명 정도는 쉽게 오더군요. 그래서 영어는 잠재독자층이 워낙 두터우니 영어로 블로그를 운영하면 최소한 한글 블로그만큼은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어 블로그를 운영해 보니, 하루에 열 명 오기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이는 제가 워낙 글을 잘 올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한글 블로그는 숫자가 그리 많지 않고, 따라서 특정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면 상위에 노출되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에 비해 영어 블로그는 워낙 숫자가 많고, 따라서 웬만한 주제에 대해서는 검색결과 상위에 노출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블로그의 검색어 게재 순위를 보려면 구글 webmaster tools에 등록하고 통계>인기검색어를 방문하면 됩니다). 즉, 한글 블로그는 독자가 적은 대신 경쟁이 느슨해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데, 영어 블로그는 독자가 많아도 경쟁이 치열하기에 독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그저 그런 실력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인데, 과거에는 조금만 노력을 하면 누구나 중산층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특별한 분야가 아니라면 여유 있게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자영업이 대표적인 예인데, 과거엔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기에 가게 하나를 열면 한 가정이 살아갈 소득을 얻을 가능성이 컸지만, 지금은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가게 하나에 의존해서 한 가정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보통 사업이나 보통 사람이 살기가 어려워지는 데 비해, 특별한 장점이 있는 사업이나 사람은 엄청난 소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화배우의 예를 보자면, 말론 브랜도는 1979년에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출연료로 2백만 달러나 받아 당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톰 크루즈가 영화 한 편으로 7천만 달러를 벌어도 신문에 나지도 않을 정도로 주연배우의 출연료가 대폭 인상되었습니다. 이처럼 유능하거나 인기가 높은 사람의 소득이 증가하는 경향은 CEO 봉급이나 스포츠 스타의 계약금 인상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는 경쟁이 치열해지면 조금이라도 보통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여기저기서 끌어들이려고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산층의 몰락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경쟁이 심해지면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이지요.

이러한 현실 때문에 우리는 세스 고딘이 보랏빛 소가 온다(Purple Cow)에서 했던 "비범한 사람이 되어라"(Be remarkable!)는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그저 그런 존재는 여기저기 치이고, 무시당하고, 생존조차 걱정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마련입니다. 그에 비해 비범한 사람은 주목받고, 인기를 끌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범한 존재가 아닌 비범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한국 사람은 "비범한 사람"이 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한국인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너무나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노력하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이 될 뿐, 비범한 사람이 되지는 못합니다. 비범해지려면 평범한 사람의 한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자신이 무얼 잘하는지 모르고,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이 무얼 잘하는지 알고,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안다면, 그는 벌써 비범한 사람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겠죠.

평범한 사람은 보통교육(universal education)이 만들어냅니다. 교육과정에 따라 열심히 공부만 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대학에 갔어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비범한 사람은 교육의 틀을 깨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입니다. 그는 더 이상 남의 말을 따라 살지 않고, 자신의 원칙과 생각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주체가 되어 움직이지요.

세상을 평범하게 살기는 참 쉽습니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서 살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대엔 남이 하는 대로 따라 살다간 죽을 때 까지 생존을 걱정하는 수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남을 따라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다고 해도 상황이 나아지긴 어렵죠. 그렇다면,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비범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도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범한 삶의 시작은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는 것이겠죠. 부디 이 블로그에 오는 모든 분이 비범한 삶을 살게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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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90년대 미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시트콤 사인펠드에서 마이클 리차즈가 연기한 코즈모 크레이머는 등장할 때마다 박수를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캐릭터였습니다. 이 시리즈를 만든 래리 데이빗이 자신의 이웃을 모델로 하여 창조한 크레이머는 원래 멍청한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실제로 파일럿을 보면 크레이머는 멍청한 표정으로 등장해 잡지를 찢었다가 침으로 다시 붙이는 등 전형적인 바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신선하고 기발한 시트콤을 지향하였기에, 바보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매우 제한되었고, 제작자들은 크레이머 캐릭터를 어떻게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이클 리차즈가 "다른 사람은 다 똑똑한데 크레이머만 멍청한 컨셉이 아니라, 다른 사람은 다 멍청한데 크레이머만 똑똑한 컨셉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합니다. 자신이 역할을 해 보니 그 쪽이 더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죠. 그래서 크레이머는 기이한 행동은 계속하지만,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는 해결책을 찾아내서 스토리의 실마리를 푸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인펠드네 집 청소부가 작은 인물상을 훔쳐갔을 때, 크레이머가 경찰인 듯 꾸미고 들어가 다시 찾아오는 에피소드는 좋은 예죠. 그가 기이하지만 때로 매우 똑똑한 행동을 하게 되면서 크레이머는 극의 전체적 흐름에 맞는 인물로 거듭났고, 시리즈가 끝날 때 까지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처럼 작은 방향의 전환이 큰 변화를 일으킨 예는 여러곳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사인펠드의 제작자 레리 데이빗도 그러한 예죠. 뉴욕 출신의 코미디언 래리 데이빗은 유머감각이 뛰어나 다른 코미디언들이 존경하는 "코미디언들의 코미디언"이었죠. 하지만 그는 성격이 워낙 유별나서 사회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유머를 했는데 청중이 반응이 없자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고 나가버린 일화는 유명하죠. 그는 또 Saturday Night Live(SNL) 작가로도 잠시 있었는데, 제작진과 마음이 맞지 않자 "나 이딴 일 안하겠다"며 때려치고 나왔는데, 나오고 나서 생각하니 먹고 살 일이 막막해 다음날 그냥 아무 일 없던 듯 돌아가서 일했다고 합니다(이 일화는 직장을 때려친 조지의 에피소드에 등장하죠). 이처럼 전형적인 사회 부적응자로 살아가던 레리 데이빗의 삶에 광명이 비춘 것은 그가 우연히 제리 사인펠드를 알게 되고, 둘이 의기투합해 함께 코미디를 개발하게 되면서였습니다. 둘이 잘 맞은 까닭은, 래리가 쉽게 흥분하지만 제리는 흥분을 가라앉히는데 뛰어난 등 성격 보완이 잘 되었기 때문이겠죠. 또한 둘 다 뛰어난 코미디언으로 유머를 합치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사인펠드는 이미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크게 인정받아서 당대 최고의 인기쇼인 자니 카슨의 투나잇쇼에 출연하는 등 인기 정상이었죠. 결국 NBC는 그에게 시트콤을 만들 것을 제안했고, 그는 아이디어를 얻고자 래리 데이빗과 이야기를 나누다 "코미디언이 생활을 하다가 소재를 얻어 그 소재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데 동의합니다. 이렇게 해서 사인펠드쇼가 시작하였고, 결국 9시즌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누리게 되었죠. 래리 데이빗은 이 쇼의 판권으로 2억 5천만 달러를 버는 등 갑부가 되었을 뿐 아니라, 몇년 전 부터 HBO에서 Curb Your Enthousiasm이라는 시트콤을 제작하며 주연을 맡아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즉, 그는 제작자의 역량 뿐 아니라 코미디언의 진가도 인정받은 것이죠. 그가 얼마 전까지 재능은 많았지만 생계유지가 어려운 무명의 코미디언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놀라운 발전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꼭 재능에 달린 문제는 아니고,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도록 도울 사람을 못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설화는 이러한 교훈을 담은 이야기죠. 온달은 힘은 좋지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바보"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평강공주와 결혼한 후, 왕족의 세련된 몸가짐을 익히고 나니 더 이상 바보로 불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가를 위해 큰 공을 세우는 장수로 성장했습니다. 물론 이야기 속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만남을 통해 인생의 전환이 찾아오지만, 실제로는 친구를 만나거나 스승을 만나서 인생이 바뀌는 예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의미있는 인생으로 바꾸어 놓을 계기를 Keith Green은 Your Love Broke Through라는 노래에서 "the crazy missing part"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 하나만 더 있으면 인생이 완성될 것 같은데, 없으니 미칠 지경이라는 뜻이겠죠. 이는 단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Keith Green이 경험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10대때 부터 음악성을 인정받아 음반을 내려고 매우 노력했는데(가수에게 음반은 "구슬을 꿰는 일"이겠죠), 이상하게도 모든 계약이 틀어지고 그는 늘 "잠재력이 큰 가수"라는 칭호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기독교를 믿고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 기독교 음악가로 변신을 하게 됩니다. 그는 구원을 감격을 담아 거칠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 결국 그가 만든 앨범은 기독교 음악 최대 발매기록을 세울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자신에게 맞는 음악의 장르를 찾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자신에게 정말 잘 맞는 일을 찾기는 매우 힘듭니다. 저도 지금 있는 단체에서 12년 이상 일했는데, 지금에서야 내가 할 일을 찾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지금까지 한 일도 크게 봐서 나쁘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제가 관심이 많은 분야인 철학이나 경제 등이 업무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업무시간에는 한가지 일을 하고, 업무가 끝나면 다른 종류의 책을 읽어서 좀 답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세계관 학교에서 일하게 되면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게 되어서 제가 관심을 가진 분야가 업무에도 유용한 환경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더 이상 "남의 일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일하지 않고, "내 일을 한다"는 태도로 일을 하게 되어서 훨씬 힘이 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the crazy missing part를 찾고 있는 분들이 계실텐데, 포기하지 말고 계속 찾도록 격려해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내 인생을 바꿀 계기는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는 법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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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우리나라에 그리 잘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Now, Discover Your Strengths)은 개인의 강점을 34가지로 분류하고, 자신의 강점 다섯 가지가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매우 유용한 책입니다. 저도 몇년전에 책을 읽고 온라인으로 테스트를 해 봤는데, 결과가 무척 정확하더군요. 저의 다섯 가지 강점 중 하나는 input입니다. Input은 한국어판에서 탐구심으로 번역되었던데, 더 정확한 번역은 자료수집이라고 생각합니다. Input이 강한 사람은 자료 수집에 열심을 내기 때문이죠. 제 컴퓨터에는 책 부터 인터넷에서 찾은 기사까지 수 많은 자료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물론 컴퓨터에 저장하지 않더라도 책이나 잡지 등을 읽다가 흥미로운 내용은 꼭 머리속으로 기억을 해두려고 노력합니다. 요즘은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않더라도, 대략 요점만 기억해 뒀다가 필요할 때 검색을 해서 자세한 내용을 찾아 쓰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렇게 모인 자잘한 정보는 일상생활에서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 요즘 취직 시험에서 상식이 그리 중요시되는 분위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말 자잘한 사실을 많이 기억해 퀴즈 대회에 나갈 정도의 실력은 못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찢어진 백과사전"처럼 연결이 안되는 정보는 거의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죠.

그런데 요즘 블로그에 글을 열심히 올리면서, 이렇게 머리속에 담아두었던 정보가 얼마나 유용한지 깨닫게 됩니다. 제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좀 추상적인 주제가 많은데, 이러한 주제를 전달하는데 구체적인 예가 필수적입니다. 만약 구체적인 예가 없는 심각한 얘기는 지나치게 진지한 대학교수의 딱딱한 수업처럼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말겠죠. 즉, 마치 VTR이 발명되면서 창고에 잠자던 오래된 헐리웃 영화들이 부활했듯, 제게 블로그는 쓸모 없는 자료의 파편을 유용하게 바꾸는 매우 의미 깊은 도구입니다.

옛말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이를 의미 있는 단위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죠. 삶에서도 이러한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잘 꾸며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가 이야기를 꾸며내면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귀담아 듣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이야기의 재능을 특별한 형태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그는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잠시 즐거움을 주는 사람으로 끝나고 말겠죠. 그런데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출판이 가능한 수준으로 적어내거나, 아니면 무대에 올라가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시킨다면, 그는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재능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취미가 될지, 아니면 직업이 될지는 "꿰어서 보배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뛰어난 아이디어가 많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잊지 않기 위해 공책에 적어 놓는다면, 자신에게는 유용하겠지만 남에겐 전혀 쓸모가 없겠죠(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사람의 아이디어 공책은 지금도 출판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지만, 이는 예외라고 봅니다). 만약에 그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블로그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아이디어 몇개를 모아서 잘 설명하면 블로그 포스팅 하나는 뚝딱 나올테니,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라면 아이디어 중심의 블로그를 운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블로그 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의사전달은 책입니다. 물론 요즘 상황에서 독자의 숫자는 블로그가 책보다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책은 상업적인 면이 중요하고, 따라서 출판사에서는 책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어야 출판을 결정하겠죠. 즉, 책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은 그만큼 글의 수준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책이 블로그보다 더 중요한 또 다른 까닭은, 블로그는 관련이 없는 글 여러 개를 순서와 상관 없이 올려도 문제가 없는데, 책은 하나의 제목을 달고 나오는 이상 내용의 통일성이 필요하고, 이는 대충 블로그 포스팅 100개 이상 분량의 글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서 구조를 만들어야 하기에 훨씬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블로그가 구슬을 모아 만든 팔찌라면, 책은 목에 칭칭 감는 목걸이라고 할만하죠.

제가 옛날에 다양한 주제의 지식이 유용하다는 글을 올렸는데, 어제는 또 소수의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글을 올려서 혼동스러웠던 분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다양한 지식은 귀중하지만, 다양한 지식을 꿰어서 보배를 만들지 못한다면 큰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다양한 지식 보다, 보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집중적인 몇가지 지식이 유용하겠죠. 즉, 지식은 꿰어서 보배를 만들 수 있는 역량만 된다면 넓을 수록 좋고, 꿰어서 보배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면 보배를 만들 수 있는 영역에만 집중을 해야겠죠. 중요한 것은 "내가 구슬이 몇개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몇개의 구슬을 꿰었는가"겠죠.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내 인생에서 구슬을 꿴다는 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시는 것도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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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0 법칙

경제 2009/04/24 04:44
며칠전 RJR Nabisco의 LBO 과정을 다룬 Barbarians at the Gates를 다 읽었습니다. RJR Nabisco의 LBO(돈을 빌려 상장회사의 주식을 모두 사들인 후 이익을 남기고 매각하는 거래)는 총 거래액이 310억달러에 달하는, 당시 최대 규모였는데, 전개 과정이 매우 흥미롭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몰두하게 되더군요. 이 책을 쓴 Bryan Burrough와 John Helyar는 원래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였는데, 이 책을 쓰기 위해 8개월간 무급휴가를 냈다고 합니다. 실제로 책을 쓴 기간도 1989년 1월에서 8월 사이의 8개월이었다죠. 그런데, 이 책은 59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담았고, 내용의 많은 부분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하기에 어떻게 8개월에 끝낼 수 있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둘이서 작업해도 2-3년이 걸릴 프로젝트로 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출판사는 RJR Nabisco가 화제에서 멀어지기 전에 책을 출판하고자 저자들에게 집필을 빨리 끝내도록 재촉했고, 저자들은 미친듯 일을 해서 기적적으로 8개월만에 작업을 끝냈다고 합니다. 즉, 이 책은 급박한 상황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면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일을 마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업계 평균보다 훨씬 빨리 일을 처리한 예로는 영화 폰부스(Phone Booth)를 들 수 있습니다. 콜린 파렐이 폰부스에서 인질범과 대치하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스튜디오가 아닌 실제 거리를 막고 촬영을 했기에 빨리 촬영을 마쳐야 했고, 결국 12일만에 촬영을 마쳤다고 합니다. 보통 헐리우드 영화가 몇달 동안 촬영을 하는데 비하면 엄청나게 짧은 시간 안에 작업을 마친 셈이죠. 중요한 사실은, 이 영화가 빨리 찍었다고 날림으로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폰부스는 조엘 슈마허라는 노련한 감독의 연출과 콜린 파렐의 연기가 잘 조화된 그럴듯한 작품이죠. 그러고 본다면 긴박한 상황에 처하면 같은 일을 단기간에 끝낼 능력이 솟아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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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양의 일을 빠른 시간 내에 끝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80/20 법칙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을 따서 파레토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칙은, "원인의 20%가 결과의 80%를 만들어낸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대부분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반대로 소수의 원인은 대단한 결과를 낸다는 말이죠. 경제에서는 "인구의 20%가 전체 재산의 80%를 소유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것도 80/20 법칙의 예라고 할 수 있죠. 또한 범죄자의 20%가 실제로 벌어지는 범죄의 80%를 저지른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대학에서 축제를 할 때 술을 많이 마시는 학생 20%가 축제 기간에 소비되는 술의 80%를 소비한다고도 하죠. 이처럼 80/20 법칙은 여러 사회 현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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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노동에 적용해 보자면, 하루에 노동하는 시간의 20%에서 업무의 80%가 이루어지는 법이죠. 만약 열 시간동안 일을 한다고 하면, 두 시간 동안 처리하는 업무가 전체 업무의 80%인 셈입니다. 나머지 8시간은 겨우 20%의 일을 가지고 씨름하는 시간이죠. 이를 회사 전체로 놓고 본다면 전체 직원 중 20%가 일의 80%를 처리하고, 나머지 80%는 겨우 20%의 일을 담당할 뿐입니다. 물론 "우리 회사는 안 그렇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겠지만, 이는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뜻이지, 모든 회사가 꼭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일의 80%를 하는데 20%의 시간이 걸리고, 일의 20%를 하는데 80%의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즉, 일의 뼈대를 만드는 과정은 쉽게 진행이 되는데, 일을 꼼꼼하게 마무리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뜻이죠. 예를 들어, 신발 하나를 대충 만드는데 두 시간이 걸린다면, 매우 정성스럽게 최고의 신발을 만드는데는 열 시간이 걸린다는 식이지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은 근거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작은 차이를 만드는데는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를 공부에 적용해 보자면,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80점을 맞을 수 있지만, 100점을 맞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 됩니다. 즉, "60점에서 80점으로 올리는 노력이면 80점에서 100점으로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은 틀릴 가능성이 큰 것이죠.

어제 쓴 집중을 통한 업무 처리 향상과 80/20 법칙을 결합해 보자면, 집중적으로 일을 하면 조금 부실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일의 대부분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을 쓰는데 보통 1년이 걸린다면, 집중해서 쓰면 한 두달 안에 책의 초본을 완성할 수가 있죠. 물론 글을 다듬고, 사실 확인하고, 레퍼런스를 찾는데는 그 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겠죠. 어쨌든 한 두달 안에 책을 대충 끝내고 나면 출판사에 원고를 보여주고 출판 용의를 물어볼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출판에 합의를 하면 계약서 쓰고, 편한 마음으로 후반 작업을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접근하지 않고, "완벽한 책을 쓰겠다"고 1년간 준비를 하다간, 3년이 지나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니 계약도 하지 못하고, 결국 흐지부지될 수가 있겠죠. 음, 이건 저 자신이 기억해야 할 내용이네요.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일은 잠재력이 발휘되지 않는 것이고, 잠재력이 발휘되지 않는 가장 흔한 이유는 잠재력을 완벽하게 발휘하려고 하다 보니 기회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너무 준비되지 않는 모습으로 나섰다가 이미지를 망칠 수도 있지만, 너무 완벽한 기회만 기다리다 움직임이 느려진 분이라면, "쉽게 80%만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도전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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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nsive Learning

문화 2009/04/23 04:55
제가 일하는 베이스엔 한국 사람이 흔치 않은데, 이번에 와 보니 잠시 방문중인 한국분이 한 분 계셔서 반갑더군요. 이 분은 디자인을 잘 하는 분인데, 베이스에서 필요한 홍보용 브로셔를 만드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보통 서양 사람은 브로셔를 만들면 일주일간 도안을 하고, 수정 사항을 말하면 다시 일주일간 고쳐서 두 주 이상 시간이 걸려야 완성이 됩니다. 그런데 이 분은 거의 하루에 디자인을 마치고, 고치는데 하루면 되기 때문에, 이틀이면 뚝딱 브로셔를 만드는 것이죠. 따라서 이 분은 짧은 기간 머물러도 베이스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국인과 일하다 보면 이렇게 일을 빨리빨리 처리하는게 당연하지만, 외국인과 일하다 보면 일처리가 늦어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 11월 부터 미국인 한 명이 베이스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겠다고 머물렀는데, 결국 완성을 하지 못하고 떠나가더군요. 그렇다고 베이스 홈페이지가 무슨 다이나믹하게 변하는 컨텐츠를 관리하는 복잡한 구조도 아니고, 그냥 90년대식으로 페이지 하나에 부서 하나 소개하면 되는데, 그걸 거의 반년 동안 붙잡고 일해도 끝을 못내니 답답한 일 아니겠습니까.

물론 "한국인은 일을 너무 빨리 해서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에는 완성에 필요한 속도가 있고, 그러한 속도를 내지 못하면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일이 끝나지 않는 법입니다. 이는 마치 우주선이 대기권을 탈출하려면 충분한 속도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죠.

예를 들어, 외국어로 책을 읽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아마 여러분 중에서도 영어로 책을 읽으려고 시도한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천히 1년안에만 끝내자"라고 생각한 책을 몇 년이 지나도 못 끝낸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하루에 한 페이지만 읽어도 300페이지짜리 책을 1년에 끝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텐데, 왜 끝내지를 못하는 것일까요? 이는 책을 읽는 속도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외국어로 책을 완독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좀 근거 없는 소리긴 하지만, 영어로 한 시간에 다섯 페이지를 읽는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면 200페이지 이상 되는 영어책을 끝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에 미국인 자원봉사자가 베이스 홈페이지 작업을 시작했을 때, 저도 우리 부서 홈페이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홈페이지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복잡하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고, RapidWeaver를 써서 템플릿에 텍스트만 붙여 넣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작업을 했습니다. 구조 잡고 필요한 텍스트 작성하는데 일주일 정도가 걸리더군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피드백을 받고 몇 주간 더 수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지 거의 한 달 만에 기존 홈페이지를 새로운 홈페이지로 교체했습니다. 물론 그 후로도 몇 달간 계속 미비한 점을 보완해 나갔죠. 이처럼 초고속으로 끝내려고 하면 초보자도 끝낼 수 있는 일을, 느슨하게 하면 전문가가 몇달을 걸려도 끝이 나지 않는 법입니다.

일을 끝내는데 필요한 속도라는 개념을 교육에 적용해 보면, 우리는 왜 대부분의 대학이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학생을 전문가로 바꾸어 놓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 신입생이 들어오면, 그는 각종 교양 강좌부터 듣기 시작합니다. 전공수업도 듣기는 하지만, 처음엔 개론 위주로 넓게 배우다가 나중에야 구체적이고 세분화한 내용을 배웁니다. 이러한 교육 방식 뒤에는 "넓게 가르쳐 교양인을 만들어 낸다"는 철학이 깔려 있습니다. 물론 저도 교양교육의 중요성은 인정하고, 지나치게 전공만 파는 것은 너무 편협한 전문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이러한 교육방식 때문에 많은 학생이 4년이나 공부를 하고 나서도 전공 분야에 대해 전문가로서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은 매우 슬픕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4년이나 한 분야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귀중한지 잘 아실 것입니다.

이와 다른 방식으로는 모듈화 교육(modular education)을 들 수 있습니다. 모듈화 교육은 교육을 여러개의 모듈로 나누어서, 주어진 기간 동안은 하나의 모듈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일하는 단체엔 깨끗한 식수가 부족한 곳에 물을 공급하는 방법을 배우는 3개월짜리 코스가 있습니다. 여기 가면 3개월 동안 물이 오염되는 원인, 물을 정화하는 방법, 각종 펌프와 정수장치 작동 법 등 물에 관계된 내용만 집중적으로 배우죠. 이렇게 3개월간 공부하고 나면 물에 관해선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목적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쉽게 전문가가 되는 것이죠.

집중적인 교육이 성공하려면 공부를 하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작년에 외국에 머무는 동안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환율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가 무척 궁금했고, 이 사태를 설명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경제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약 6개월간 경제관련 서적을 수십권 읽다 보니 공부가 많이 되더군요. 물론 평소에도 경제에 대해 관심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워낙 막연한 관심이라 공부를 해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었는데, 경제위기 덕에 알차게 공부를 많이하게 된 셈입니다.

결국 인생을 효율적으로 살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분야, 꼭 필요한 분야라면 막연하게 "조금씩 공부하자"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음 잡고 특정한 기간(3개월, 6개월, 1년 등)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전문가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한 공부는 짧은 기간에도 많은 성과를 내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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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 소비

경제 2009/04/22 03:13
N. 그레고리 맨큐는 하버드대 경제학교수로 한국에서도 인기 높은 "맨큐의 경제학"저자로 유명합니다. 그가 며칠전에 뉴욕타임스에 올린 칼럼을 보면 이번 경제위기에 대한 주류경제학의 교과서적인 해법이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경기침체를 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이자율을 낮춰야 하지만, 지금 이자율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더 이상 이자를 낮출 수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맨큐는 0%로 이자를 낮춰도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면 이자를 0%미만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자가 -3%라면 100달러를 빌려간 사람은 1년후 97달러만 갚으면 될테니 돈을 빌리는 사람이 늘어나겟죠. 이러면 빌리는 사람은 좋지만, 빌려주는 사람이 없을 테니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마이너스 이자율을 이루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맨큐가 소개한 어느 학생의 아이디어를 보자면, 연방준비은행이 1년에 한 번 0-9 사이의 숫자를 하나 뽑아, 그 번호로 끝나는 돈은 무효로 선언한다면, 돈을 가진 사람들은 연 10%의 손해를 볼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손해를 피하고자 마이너스 3% 금리로라도 돈을 빌려주겠죠.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은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늘여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는 것이죠. 만약 이자율이 0%인데 물가 상승률이 3%라면, 실제 이자율은 -3%인 셈이 되죠. 이렇게 되면 돈을 빌려 소비하거나 투자하려는 사람이 대폭 늘어나고, 그러면 경기침체가 끝나리라고 맨큐는 설명합니다.

이처럼 이자율을 낮추고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켜 소비를 늘려야 경제위기를 끝낼 수 있다는 주장은 미국 연방준비은행 이사장 벤 버냉키부터 작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까지, 그리고 오바마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대부분의 정치지도자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이러한 주장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면 정신병자로 몰리기 쉽죠. 하지만 이렇게 인기가 높은 주장이 정말 근거가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소비촉진을 통한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소비가 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생각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소비 증가는 정말 경기침체를 끝낼 수 있을까요? 물론 올바른 소비, 적절한 소비는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지만, 무조건 소비가 는다고 경제가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만약 모든 소비가 경제를 살린다면 전쟁을 일으키면 경제가 금방 살아날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소비도 증가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전을 일으키고 전쟁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미국 경제도 이라크 경제도 살아나지 않았죠. 같은 원리에서 허리케인, 지진 등도 소비를 늘린다는 점에서 재난이 아니라 경제를 살리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큰 자연재해를 만난 나라가 이로 인해 잘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물론 특정한 지역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복구사업을 벌이기에 GDP가 성장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는 GDP라는 개념 자체의 한계지, 정말 재해를 경제의 구조자로 보면 안 되겠죠.

소비증가가 경제를 살린다는 주장에 대해 제가 문제를 제기하는 또 다른 근거는, 이러한 정책이 큰 경제위기를 끝낸 예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으로 이러한 주장이 제기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였는데, 존 메이나드 케인즈가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을 반박하며, "지금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시초였죠. 하지만, 정부지출을 늘려 경제위기를 끝내려는 각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은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케인지언들은 "대공황이 지속된 것은 정부의 지출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어쨌든 케인즈의 주장이 맞는다는 증거는 1930년대 대공황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2차세계대전 때문에 군사수요가 증가해서 대공황이 끝났다는 통설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대공황은 1929년에 시작했고,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한 것은 1941년입니다. 즉, 12년의 시차가 있는데, 12년이면 어차피 공황 사이클이 끝나는 시점입니다. 즉, 전쟁이 없었어도 1940년대엔 미국 경제가 살아났을 가능성이 큰 것이죠.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또 다른 경제위기의 예인데, 이자율을 낮추고 정부의 지출을 늘려 경제위기를 끝내려고 10년 이상 노력했음에도 일본의 경제위기는 지속되었습니다.  여기서도 인위적인 소비촉진이 경제위기를 끝낸 예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1997년말에 한국이 맞은 외환위기는 또 다른 흥미로운 예인데, 당시 한국은 국가부도 상황에서 소비가 위축되어 큰 위기에 빠졌지만,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IMF의 요구 때문에 정부도 돈을 쓸 수가 없는 어려운 처지였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은 1년 반 만에 IMF의 지원금을 갚는 기적을 이루어냅니다. 물론 이러한 결과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기에 꼭 하나의 원인을 지적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공황(recession) 상황에서 소비가 줄었는데도 경제위기가 끝났다는 사실은 흥미롭다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해 세계 대부분의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고 이자율을 낮춰서 정부와 민간의 소비를 모두 늘이는 정책을 펴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성공했다는 증거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잠깐 경기가 좋아지는 듯 보이지만, 앞으로 다시 나빠질 가능성은 계속 남아있죠.

그렇다면 "소비촉진을 통한 경제위기 돌파"라는 공식은, 이론으로만 존재하지 현실에서 증명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작은 경기침체 정도는 소비자가 지출을 늘이면 금방 끝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제의 구조가 바뀌는 큰 위기 상황이 소비촉진으로 끝난 예는 없다는 말이죠.

소비는 자원을 쓰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꼭 필요한 소비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소비는 곧 자원의 낭비죠. 이명박 정부는 계속 "대운하를 만들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데, 대운하가 꼭 필요한 시설이 아니라면 이를 짓는 것은 거대한 경제적 낭비일 뿐, 경제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소비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가 어떠한 물건이 필요해서 산다면 이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이고, 국가 경제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만,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산다면 이는 낭비일 뿐이고, 결국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죠. 정부가 이러한 낭비를 조장한다고 경제위기가 끝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거대한 오해일 뿐입니다.

결국, 세계 경제는 각국 정부가 이러한 잘못된 이론을 버리고 새로운 해답을 찾아 나서기 전까지는 개선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어쩌면 그때가 되면 이미 경제위기는 자연스럽게 끝나 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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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가치와 가격

경제 2009/04/20 22:16
오스카 와일드는 "냉소주의자는 모든 것의 가격을 알지만 어떤 것의 가치도 모르는 사람"(The cynic knows the price of everything and the value of nothing.)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러한 정의를 경제학자에게 적용합니다. 경제학자는 가격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경제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경제학자가 단지 가격 뿐 아니라 가치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제학이 발달하던 초기에 경제학자들을 지배한 이론은, 제품의 가치는 노동에서 온다는 노동가치이론(Labour Theory of Value)였습니다. 리카르도부터 막스까지 수 많은 경제학자가 받아들인 노동가치이론은, 경제적 가치의 근원은 노동이고, 따라서 제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노동의 양이 많을 수록 가치가 높은 제품이라는 주장입니다. 특히 막스는 이 이론을 대단히 중요시했는데, 이는 그가 "노동이 가치의 근원이라면 경제체제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주체는 오직 노동자 뿐이고, 자본가와 지주는 노동자가 마땅히 얻어야 할 이익을 빼앗아간다"며 노동가치이론을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중요한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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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Wikipedia

하지만 오스트리아학파는 한계효용이론을 내세워 노동가치이론에 맞섭니다. 한계효용이론이란, 어떤 제품의 소비가 늘어날수록 증가하는 유용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매우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잔은 엄청나게 유용합니다. 하지만, 물을 한 잔 마신 사람에게 다시 또 한 잔의 물을 준다면 그리 유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물을 한 잔 더 준다면 그는 물을 마시기 보다는 세수를 하는데 쓸 가능성이 더 크겠죠. 이처럼 재화나 서비스가 증가한다면 총효용은 어느 지점까지 계속 커지겠지만(예를 들어, 물을 한 잔만 가지는 것 보다는 물을 열 잔 가지는 것이 전체적으로 봐서는 더 유용하겠죠), 한계 유용성은 양이 증가할수록 줄어들기 마련입니다(예를 들어, 첫 번째 물 한잔은 너무도 유용했는데, 아홉 잔을 가진 상태에서 받는 물 한잔은 별로 유용하지 않은 것이죠).

한계효용이론은 가치의 중심을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놓았다는데서 대단히 혁명적이었고, 실제로도 한계혁명(the Marginal Revolution)이라고 불립니다. 이제는 생산자가 "이 제품은 만드는데 대단한 고생을 했으니 대단히 가치가 높다"고 말해봤자 의마가 없고, 소비자가 "이 제품은 내게 유용하니까 가치가 높다"고 말해야 의미가 있는 시대가 되었죠. 이처럼 경제의 주체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변한 데는 한계효용이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가격은 가치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즉, 가치가 높은 제품은 가격도 높고, 가치가 낮은 제품은 가치도 낮아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에서 가격은 가치와 상관 없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지만, 가치는 천천히 변하지만, 수요와 공급은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가치와 가격의 차이가 벌어질 때가 많죠. 예를 들어, 작년에 석유 가격은 급등 후 급락을 하였습니다. 석유를 생산하는데 들어간 노동력이나, 석유가 소비자에게 주는 한계유용성은 1년 사이에 얼마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은 급작스럽게 변했고, 이는 가격의 급격한 변동을 일으킨 것이죠. 이는 한국의 집값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집값은 지난 몇년간 엄청나게 상승했는데, 그렇다고 집이 과거에 비해 몇 배나 유용해진 것은 아닙니다. 단지 경제상황에 따라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다 보니 집값이 지나치게 오른 것 뿐이었죠. 가치와 가격의 괴리는 돈의 가치가 급격히 변할 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돈은 가치를 가격으로 바꾸는 기준인데, 돈 자체의 가치가 급격히 변한다면(예를 들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돈의 가치가 뚝 떨어진다면), 제품의 가치와 상관 없이 제품의 가격이 크게 변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가격은 가치를 반영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올바른 투자는 가치에 비해 가격이 낮은 품목을 사들이는 것이겠죠. 이것이 바로 벤자민 그레이엄이 주창한 가치투자(Value Investing)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가격의 변동이 매우 심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은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 올바른 자리로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죠. 따라서 가격에서 거품이 빠지고 나면 위기도 끝이 나겠죠. 빨리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해 봅니다.

P.S. 독일에 잘 도착했고, 열심히 적응하고 있습니다. 기억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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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저는 다음주에 독일에 있는 기독교 단체에서 일하기 위해 출국합니다. 일단 연말까지 독일에 머물 예정이니 한 동안 한국을 떠나 있게 되는군요. 독일은 이미 6개월 이상 머물렀던 나라이기에 친근한 느낌이 드는 나라입니다.

저는 젊어서부터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유럽에서 사는 것이 잘 맞고, 이번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갑니다. 하지만 제가 유럽에 가지 않고 한국에 남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결국 제가 한국에 잘 맞지 않기 때문에 떠나는 면도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여러 모로 한국 사회가 원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닙니다. 한국 사회가 원하는 사람은 조직에 죽도록 충성하고, 시키는 일 잘하고, 윗사람 기분 좋게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저는 일을 열심히 하기 보다 일을 열심히 안하고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시키는 일을 하기 보다 내가 보기에 조직에 필요한 일을 알아서 하고, 윗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보다 내게 일할 자유를 줄 윗사람 밑에서 일하기 원하죠.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한국에서 조직 생활을 해 보면 꼭 안 좋은 평가가 나오거나, 윗사람들이 불안해합니다. 나도 조직을 위해 일하고, 윗사람들도 조직을 위해 일하니 결국 서로 지향점이 같지만, 실제로는 윗사람들이 나를 위험한 존재, 또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전에 만난 어떤 지도자는 솔직하게, "당신 같은 사람은 한국에서 받아주는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런 점에서 독일은 제게 대단한 기회의 땅입니다. 이번에 제가 가서 함께 일하는 사람은 독일 전체 책임자인데, 제게 훈련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일을 맡겼고, 제가 이 일을 능동적으로 잘 준비하도록 많이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보았던 몇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고 훈련 과정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변화를 구상중인데, 대부분 수용되리라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 조직을 바꾸어 놓아도 독일의 지도자들은 저를 위협적인 존재로 보기 보다는, 그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또 조직을 위해 유익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는 몇년 전부터 인생의 모토를 "지식과 창조성"(vision & Logic)으로 정하고, 이를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지식이란 지식사회에서 지식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와 지식, 논리적 사고를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창조성이란 남들과 다른 나만의 개성, 과거에 없었지만 나부터 시작되는 변화, 그리고 문제에 대한 창의적 접근을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즉, 농경사회에선 힘쎈 사람이 사회를 주도했고, 산업사회에선 조직력 좋은 사람이 사회를 주도했듯, 21세기엔 지식과 창조성을 갖춘 사람이 사회를 주도하고, 따라서 이러한 사람이 되자는 뜻이죠.

문제는, 한국은 아직도 산업사회의 멘탈리티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지금 한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 높은 산업 세 가지가 반도체, 조선, 자동차 아닙니까? 이러한 산업들은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고, 일단 공장(또는 조선소)을 짓고 나면 규모의 경제로 생산원가를 줄여 경쟁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에서 앞서려면 덩치 큰 재벌이 유리하고, 군대 처럼 윗사람의 명령을 아랫사람이 그대로 따르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물론 아이디어도 중요하겠지만,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를 세울 수는 없겠죠. 한국이 이런 산업에서 앞선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즉, 한국은 아직도 창의력보다는 복종, 참신한 아이디어 보다는 규모의 경제를 중요시하는 사회라는 말이죠.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릴 수 있는 나라는 없고, 한국도 언젠가는 지식과 창조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러한 면에서 앞서는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로 바뀔 것입니다. 그나마 지식과 창조성의 정신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이 블로그에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에서 저는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봅니다.

세상을 바꾸는 블로그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다음 한 주간은 출국 준비 및 현지 적응을 하느라 블로깅을 못할 것 같고, 다다음주 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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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TAG 21세기
움베르토 에코는 대학에서 중세 철학과 문학을 전공한 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이 익숙한 중세를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이 바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장미의 이름"(Il nome della rosa)이었죠. 그는 장미의 이름이 성공한 후, "과연 내가 소설을 쓸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작가가 아닌 학자가 본업이었기에, 장미의 이름 만큼 그럴듯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실험적으로 써 본 소설이 "푸코의 진자"(Il pendolo di Foucault)였습니다. 이 작품이 다시 성공을 거두면서 작가로서 그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그는 그 이후로도 전날의 섬(L'isola del giorno prima), 바우돌리노(Baudolino),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La misteriosa fiamma della regina Loana) 등 많은 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입니다.

학자였던 그가 이처럼 많은 소설을 창작한 비결은 우선 그가 뛰어난 학자였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중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학자였기 때문에 중세를 배경으로한 소설을 쉽게 쓸 수 있었고, 또한 기호학에 능통한 학자였기 때문에 이 소설을 열린 작품 (opera aperta)으로 구성할 수 있었죠. 즉, 그는 창의성의 바탕이 되는 지식을 풍부하게 소유하였기에 쉽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런 점에서 부족한 창의성을 쥐어 짜내서 한 권을 겨우 쓰는 작가들보다 훨씬 출발이 수월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그가 계속 소설가로 성공을 거둔 비결은 어쩌면 그의 서재 덕인지도 모릅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블랙 스완에서 에코의 서재에는 책이 3만권 있다고 말합니다 (위키피디아에 보니, 에코는 집이 두 채인데, 한 집에 있는 서재에는 3만권, 다른 집에 있는 서재에는 2만권이 있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책이 많으니 모르는 내용도 쉽게 찾을 수 있고, 늘 지식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창의성의 샘이 마르지 않는 것이죠.

예술 창작의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늘 창의성을 계속 발휘하기 원합니다. 만약 창의성을 계속 발휘하지 못한다면 예술가로서 생명이 끝날 수 밖에 없는 법이죠. 예술사를 보면 창의력을 계속 발휘하는데 실패한 예술가가 많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이라는 걸작을 내 놓은 J. D.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성공을 거둔 후 새로운 장편소설을 발표하지 못하고 단편, 중편만 쓰다가 삶을 마감헀죠. 핀란디아를 써서 핀란드의 영웅으로 떠오른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는 젊은 시절 일곱 개의 심포니를 쓸 정도로 작곡을 많이 했지만, 생의 마지막 30년간 새로운 음악을 거의 쓰지 못하였습니다. 시, 희곡, 문학비평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T.S. 엘리엇은 나이가 많이 든 후 더 이상 심각한 시를 쓸 능력이 사라졌다고 합니다(그래서 그가 가벼운 마음으로 장난처럼 쓴 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는 나중에 뮤지컬 Cats의 원작이 되었으니, 그런 점에서 엘리엇은 재능을 잃은 후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 셈입니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아인슈타인은 젊어서 특수 상대성이론, 일반 상대성이론을 내놓고 세계적인 스타 과학자가 되지만, 그 후 거의 주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만약 그가 젊은 시절처럼 창의적인 연구를 계속했다면 과학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움베르토 에코의 예에서 보듯, 창의성을 유지하려면 첫 작품을 내놓을 때 얼마나 창의성의 여력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만약 창의성이 부족한 예술가가 첫 작품에 지나치게 창의성을 쏟아놓고 만다면, 다음 작품을 만들 창의성이 없어서 예술가로서 생명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창의성이 워낙 풍부해 첫 작품을 쉽게 작성했다면, 둘째 작품 부터는 창의성의 입력, 출력을 잘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창의성을 증진하는 활동 (독서, 여행 등)을 함으로 창의성이 줄어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창의성을 써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창의력의 수위 조절을 잘 한다면, 오랜 기간 동안 창의성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다행인 사실은, 첫 작품을 만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첫 작품을 끝내고 나면 창조가 쉬워진다는 점입니다. 즉, 인공위성도 궤도진입이 어렵지, 일단 궤도에 진입하고 나면 별 문제 없는 이상 계속 지구 주위를 돌 듯, 예술가도 일단 예술가가 되고 나면 비교적 쉽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죠.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10대 시절부터 엄청나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끊임 없이 쏟아낼 능력이 있었을까요? 또, 일가 친척의 돈을 모아 힘들게 영화를 만들던 젊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자신의 머리 속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블록버스터의 아이디어 수십가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창조가 시작되고 난다면, 잘 관리하기만 해도 창의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죠.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 보면 스티브 코비는 생산/생산능력 균형 (P/PC balance)에 대해 말합니다. 즉, 너무 생산만 하지 말고 생산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는 창조적인 작업에도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자신의 창조적 생산능력을 잘 이해하고 이를 잘 관리한다면, 창의성의 샘물은 바닥이 나지 않고 계속 흘러나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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