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 "당신을 전문가로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시리즈 글이 인기를 끈다고 합니다. 원래 듀나 게시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인터넷 곳곳으로 퍼지면서 새로운 분야가 많이 추가되었습니다. 워낙 많은 글이 존재하지만, 이 시리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예로 두 가지만 옮겨보겠습니다.

당신을 클래식 전문가로 만들어 드립니다


음악은 절대~들을 필요 없습니다. 매뉴얼만 숙지하시면 됩니다.

일단 클래식 전문가가 되기 위해 좋아해야 하는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지휘자 쪽에서는 카라얀과 번스타인을 꼽아선 안됩니다. 그들을 꼽는 것은 다른 클래식 전문가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제일 좋은 매뉴얼은 아르농쿠르나 칼뵘 정도입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DVD 하나 안 봐도 됩니다.

피아노에서는 호로비츠 말고 기제킹. 바이올린은 오이스트라흐보단 코간을 추앙해야 합니다. 이도저도 다 싫으면 하인츠 홀리거 정도 추천 드립니다.

요즘 현역 중에서는 키신을 타겟으로 잡고 앵콜용이라 까대며 프레디 켐프나 루간스키를 좋아하십시오. 안데르셰프스키는 조금 애매한 위치군요. 이외에도 소콜로프 추천 드립니다. 녹음을 싫어하는 양반이라 음반 구하기도 어렵지만 안들어도 됩니다. 소콜로프를 좋아하십시오.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빈 시카고 런던 필라델피아 이런 데는 꼽지 마십시오.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클리블랜드 이 정도 가능합니다.

작곡가는...바로크에서 바흐나 헨델 빼면..비발디 안됩니다. 텔레만 강추.
낭만파 이후에서도 멘델스존 슈만 쇼팽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이런 작곡가 꼽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음악 잘 몰라도, 곧죽어도 라벨, 바르토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말러 이 정도 좋습니다. 그 중에서 말러가 가장 좋습니다. 말러는 2번이랑 9번만 알면 됩니다. 걍 댓글마다 말러 ㄷㄷㄷ하시면 됩니다.


대충 이 정도입니다...

아..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다메 칸타빌레 보고 나서부터 클래식 듣기 시작했다고 절대 고백하지 마십시오. 캐무시 당합니다...


당신을 비틀즈 전문가로 만들어 드립니다.


비틀즈라면 츄잉 캬라멜 이름밖에 모른다고해도 상관 없습니다. 매뉴얼만 숙지하시면 됩니다.

일단 좋아하는 곡으로 yesterday나 Let it be는 절대 입에도 올려서는 안됩니다. 그것들을 뽑는다면 비틀 매니아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제일 무난한 매뉴얼은 A day in the life나 Abbey road side B의 매들리 정도를 뽑을 수 있습니다.  Anthology 앨범의 Strawberry fields forever 어쿠스틱 버전도 괜찮습니다.
무모한 실험정신으로 Revolution 9을 꼽지는 마세요. 그 순간 당신은 너무 먼 길을 와버린 것입니다.

좋아하는 앨범을 물어온다면 Revolver나 White album 아니면 써전 페퍼가 역시 제일인 것 같다고 하시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써전 페퍼' 혹은 '후추 상사'라고 말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괜히 'Sgt. Peppers`s Lonely Hearts Club Band'라는 풀네임을 대실 필요는 없습니다.
밤새워 외운 거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만 돌아옵니다.

비틀 매니아가 되려면 좋아해야 하는 멤버가 있어야합니다.
여기서는 스탠다드하게 존 레논이나 폴 매카트니를 꼽으면 됩니다. 비틀즈 제 5의 멤버로서 조지 마틴의 공적을 높이 산다면 플러스 점수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매니악한 선택을 한다고 링고 스타를 꼽지는 마십시요. 뒷감당이 어려워 질 수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얼마나 얼굴이 썩어들어가야 비틀즈 노래 저작권을 토해 놓을 것인지 한탄하고, 폴 매카트니 생가는 참 찾아가기가 힘들다면서 추억에 잠기는 척 하십시요.
리버풀에 한 번도 가본적이 없다해도 상관 없습니다.


비틀즈 리메이크 넘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모두 쓸데없이 조미료를 많이 넣어 원재료의 맛을 상실한 요리라고 치부해 버리면 됩니다. 단 U2의 Helter Skelter 리메이크 정도라면 곡으로 승부할 자신이 없어 딜레이 이펙트로 떡칠하는 U2지만 그래도 들을만 하다. 그렇지만 헤비메탈까지 커버하는 무한한 폴 매카트니의 장르 소화력에 비하면 기특한 정도라고 해 두십시요. 루퍼스 웨인라이트 버전 Across the universe나 에이미 만의 Two of us이야기는 꺼내지 마십시요. 영화 [아이 앰 샘]은 비틀즈 로얄티 때문에 리메이크곡으로 땜빵한 저예산 영화에 불과합니다.

아..마지막으로..무한 도전에서 처음 All you need is love 들었다고 절대 고백하지 마십시오.
캐무시당합니다..


두 글을 비교해 보면 아시겠지만, 같은 패턴에 내용만 바꾸는 형식입니다. 이 시리즈의 교훈은 "어느 분야에서 남들이 위대하다고 떠받드는 사람은 무시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실력자라고 치켜세워야 남에게 전문가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긴 각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야 일반인도 알 수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훌륭하다고 평가할 정도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방법을 잘 이용하면, 너무 꼬리가 길게 활동하지 않는 한 정말 특정 분야에선 전문가인 듯 보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문가를 흉내내기는 쉽지만,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전문가는 특정한 분야에 대해 정통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을 뿐 아니라, 그 분야를 오래 공부한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법입니다. 이처럼 특정한 분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영어로 taste라고 부릅니다. Taste를 우리말로 흔히 "기호"라고 번역하는데, 엄밀히 말해 taste와 기호는 매우 다릅니다. 전문 분야에서 taste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호불호의 감정입니다. 즉, 특정한 분야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taste가 비슷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good taste이죠. 그에 비해 그 분야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전문가와 매우 다른 taste를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bad taste입니다. 즉, taste는 객관적으로 좋고 나쁨을 논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기호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 사항이고, 좋고 나쁠 수 없는 영역입니다(Taste를 취미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는 전문 용어로는 괜찮지만, 일반인이 "취미"라는 단어를 들으면 꼭 "심심할 때 하는 일"(hobby)을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를 피하기 위해 쓰지 않겠습니다).

영어에서는 taste의 수준에 따라 사람을 lowbrow, middlebrow, highbrow로 구분합니다. 삼류 통속 소설만 좋아하는 사람은 lowbrow고, 상업 소설 중에서도 어느 정도 예술성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면 middlebrow, 그리고 전문가들이 극찬하는 명작을 좋아하면 highbrow라고 볼 수 있죠. 이러한 구분은 영화나 음악 등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교양 있는 사람일수록 brow의 수준이 높아지지만, 너무 전문가의 의견만 좇다 보면 자신의 특색을 잃고, 그저 남의 의견에 따라가는 사람, 즉, 속물(snob)이 됩니다. 따라서 taste를 개발할 때는 처음에는 전문가들이 좋다고 하는 작품을 많이 접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고 나면 전문가와 다른 의견을 내놓게 됩니다.

문화의 영역에서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나타난 중요한 변화는 전문가의 권위 추락입니다. 영화의 예를 들자면, 과거엔 영화에 대해 평가를 하는 사람은 영화 평론가뿐이었는데, 이제는 영화 평론가의 글은 영화 전문 사이트에 가야 볼 수 있고, 일반인이 접하는 영화에 대한 글은 대부분 일반인의 감상기입니다. 이처럼 일반인이 문화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이제는 전문가로부터 무시당하던 작품이나 문화 영역이 새롭게 문화의 주류로 떠오르고, 전문가들도 이러한 문화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만화와 홍콩 무술영화인데, 타란티노나 워쇼스키 형제가 이러한 문화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었으니, 이러한 문화를 더는 저질이라고 비난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즉, lowbrow가 middlebrow, 또는 highbrow로 격상한 셈입니다.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아 과거에 "B급 문화"로 평가받던 작품들이 새로운 문화의 주류가 되었고, 이제는 "나는 B급 문화가 더 좋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하지만, 일반인 중심의 B급 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시 한 번 전문가를 중요시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반인에게 "쉽게 전문가가 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시리즈의 유행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죠.

결국, 대중은 전문가의 의견에서 독립한 자신들만의 taste를 개발하기 원하지만, 동시에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고, 자신도 전문가가 되기 원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앞으로도 "쉽게 전문가가 되는 요령"을 가르쳐 주는 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P.S. 전에 썼듯, 다음주는 네델란드에 출장을 가기 때문에 블로그를 한 주간 쉽니다. 다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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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속성

정치 2009/07/24 06:37
요즘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이 쓴 서양 문학의 정경(The Western Canon)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서양의 문학사에서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권위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해설을 곁들여서 서양 문학사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줍니다(그런데 일반이 대상이 아닌, 문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해서인지 내용이 몹시 어렵군요). 이 책에서 블룸이 서양 문학의 최고봉이자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으로 꼽는 것은 바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입니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서양 문학의 흐름을 결정했고, 그 후에 온 작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으며 그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서양 문학이 성립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세속의 성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하도 셰익스피어 찬양을 읽다 보니 저도 셰익스피어를 접해보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글로 읽으면 오늘날의 영어와는 매우 다른 언어 때문에 이해가 어렵고, 대부분이 연극의 대본이기 때문에 그냥 읽어서는 아무래도 흥이 안 납니다. 그래서 전부터 눈 여겨두었던 BBC Shakespeare Collection을 사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한국에선 Yes24에서 판매하더군요), 유튜브에 이미 작품 대부분이 올라와 있더군요. 그래서 천천히 한 작품씩 보고 있습니다.

요즘 보는 작품은 리어왕입니다. 아시겠지만 리어왕은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좋은 말을 하는 딸들에게 영토를 배분해준 리어왕이 딸들의 버림을 받고 미쳐가는 비극을 그린 작품입니다. 극 중 리어왕은 "내가 남에게 죄를 지은 것보다 남이 나에게 죄를 지은 것이 더 많다."("I am a man more sinned against than sinning.")라고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이 장면에서 셰익스피어는 관객들에게 "정말 리어왕은 억울하게 해를 입은 사람인가? 리어왕의 잘못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지요. 과연 리어왕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리어왕의 가장 큰 잘못은 권력을 포기하면서 권력의 특권을 누리기 원한 것입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 왕의 책임을 벗어 버리고 인생을 즐기기 원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죽은 후 국가를 유산으로 남기는 대신 살아 있을 때 딸들에게 영토를 배분합니다. 하지만, 그는 권력을 넘겨주면서도 권력의 특권은 누리기 원했습니다. 이는 그가 백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기 원했다는 사실에서 드러나죠. 그는 '권력을 넘겨주고 나서도 권력의 특권을 누리려면, 나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넘겨줘야겠다.'고 판단합니다. 그가 영토를 배분하기 전, 딸들에게 "나를 향한 사랑을 표현해 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딸들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이 권력의 특권을 누리도록 도와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단 영토를 배분받은 딸들은 그의 특권을 박탈하고, 그를 박대합니다. 권력은 넘겨줘도 권력의 특권은 누리겠다는 그의 계획은 차질을 빚고, 그가 의지할 대상은 그에게 사랑을 표현하기를 거부했던 딸 코델리아 밖에 남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보여주는 권력의 속성은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자는 언젠가 "이 권력을 계속 잡을 것인가, 아니면 넘겨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권력을 계속 잡았다간 국민의 반발 때문에 권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고(이승만 대통령처럼), 아니면 조직 내부의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권력을 상실할지도 모릅니다(박정희 대통령처럼). 따라서 많은 권력자는 후계자를 정해서 그에게 권력을 넘겨줍니다. 이때 권력자가 후계자를 선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신에 대한 충성도이지요. 만약 후계자가 권력을 넘겨 받고 나서 자신을 배반한다면 자신은 감옥에 가거나 처형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권력자는 보통 자신과 절친한 사람에게 권력을 넘겨줍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절친한 친구 노태우 씨를 후계자로 선정한 것이 매우 좋은 예죠. 하지만, 후계자가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전임자에 대한 충성심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됩니다. 우선 자신의 권력이 막강하기에 전임자를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으로 보기가 힘들 뿐 아니라, 자신이 인기를 끌려면 전임자를 비난하거나 처벌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청문회에 나와 곤욕도 치러야 했고, 백담사에 유배도 가야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도 김영삼 씨가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고 어느 정도 기대했지만, 결국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친구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같은 당 이회창 후보를 어느 정도 밀어줬는데, 나중엔 이회창 후보가 자신을 보호해 줄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그와 거리를 둡니다. 결국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패하고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슬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임자 김영삼 대통령이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대표적인 예가 1997년 외환위기), 그를 전혀 처벌하려고 들지 않았죠. 그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전임자를 야멸차게 몰아쳤습니다. 그러고 보면 권력을 내준 사람의 말년이 어떻게 될지는 후임자의 자발적인 태도가 결정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힘없는 아기로 태어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힘없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노년에 이르면 다시 자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인간은 이러한 자연적인 흐름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지만, 결국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 순간 권력을 쥔 사람의 마음에 달린 일입니다. 아무리 내가 잘해준 사람이라도 나중에 나를 배신할지 모르고, 내가 잘 해주지 않은 사람이라도 나를 보호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이것이 인생의 흐름 앞에서 연약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죠.

그렇게 볼 때 셰익스피어가 그리는 인간은 권력을 잡아도 유지할 수 없고, 일단 권력을 잃고 나면 철저하게 무력해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임자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사람이 권력을 함부로 써서 전임자를 괴롭혀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무고하게 전임자를 핍박하는 사람에겐 정의의 처벌이 따르는 법이죠. 그렇기에 리어왕의 등장인물들은 끊임 없이 신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주 먼나라의 이야기인데 우리 사회에도 울림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리어왕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이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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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윤리

사회 2009/07/23 06:18
사람들이 흔히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대비해서 말하지만, 체계의 규모로 봤을 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같은 급으로 놓기는 어렵습니다. 공산주의는 정치, 경제 이론을 중심으로 예술, 도덕 이론을 포함하고, 종교적인 성격까지 갖추었기에 근대에 들어 인간이 만들어낸 이념 중에선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이론이 중심이고, 경제를 넘어선 부분에 대해선 별로 제공할 이론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는 예술가가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정교한 공산주의 예술이론을 개발했는데, 자본주의는 예술가, 특히 순수 예술가에게 이러한 지침을 제공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에 살던 예술가들은 공산주의의 표현으로 예술을 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예술가들은 자본주의와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 활동을 벌이기 마련이죠.

정치의 영역을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공산주의는 정치와 경제를 긴밀한 관계로 보고, 따라서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일관된 이념을 제시합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노동자가 경제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당이 정치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지요. 그에 비해 자본주의는 정치의 영역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만약 자본주의를 정치에 적용한다면 자본가가 경제의 중심이기 때문에 자본가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본주의를 따르는 국가는 대부분 정치권력을 일반 국민에게 돌리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민주주의 체제는 "경제권력은 자본가가, 정치권력은 일반 국민이 갖는" 기묘한 구조라고 할 수 있죠.

자본주의가 이처럼 경제의 영역만 다루는 규모가 작은 이념이기에, 자본주의를 사회에 받아들이려면 자본주의 만으로는 안 되고 이를 보충하는 다른 이념이 필요합니다. 유럽은 기독교 전통과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보충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자면 노동자에게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월급을 주면 됩니다. 즉,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이 많다면 노동의 공급이 많은 셈이니 노동의 가격이 내려가고, 따라서 매우 적은 월급만 주고 일을 시켜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농촌이 몰락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이 늘면서 노동시장은 포화 상태가 되었고, 자본가들은 이들에게 생계를 유지하는데도 부족한 월급만 주고 험한 일을 시켰습니다. 수입이 적어 생계가 어려워진 노동자들은 아이들을 노동 시장으로 내몰았고, 이로 말미암아 어른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일하는 아이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알려지면서 때문에 "존엄한 인간을 이렇게 대해선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정치인에게 압력으로 작용해 노동환경 개선, 아동 노동 금지, 최저 임금제 등의 결실을 보았습니다. 만약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보는 전통이 없었다면, 그리고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정치권력으로 바꾸어 놓을 정치 제도가 없었다면 지금도 유럽에선 기름 범벅이 된 꼬마 아이들이 공장에서 큰 기계 틈으로 다니며 위험한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는 윤리의 영역에 대해 제공할 이론이 없지만, 20세기 들어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윤리학을 건설하는 야심 찬 작업을 추진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인 아인 랜드(Ayn Rand)가 바로 그 사람인데, 그녀는 아틀라스(Atlas Shrugged) 등의 소설을 썼을 뿐 아니라 객관주의(Objectivism)라는 철학을 주창하기도 했습니다. 랜드는 자본주의- 알려지지 않은 이상(Capitalism: The Unknown Ideal)을 쓴 데서 알 수 있듯, 자본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우파였습니다. 그가 쓴 이기심이라는 덕목(Virtue of Selfishness)은 그가 생각하는 윤리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랜드는 각 사람은 행복해지려고 태어났고, 따라서 개인의 행복 추구는 최고선이기에,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놓는 태도야말로 미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남에 대한 배려나 불쌍한 사람에 대한 동정 등은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악덕이고, 배척해야 마땅하죠. 그런데 랜드가 옹호하는 태도는 바로 "우리가 낸 세금으로 왜 가난한 자를 돕느냐?"고 항변하는 부자들의 태도와 일치합니다. 즉, 부자에 대한 감세 정책은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랜드의 윤리관을 따르자면 대단히 도덕적인 정책입니다. 그에 비해 돈 많은 사람에게 세금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부는 랜드에 따르자면 대단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 있죠.

"이기심이 곧 덕목이다."는 아인 랜드의 주장이 단지 한 궤변가의 헛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인 랜드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그의 말을 쉽게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지금도 영어권 국가에서는 랜드가 쓴 Fountainhead나 Atlas Shrugged가 많이 팔립니다. 이러한 책들은 단지 소설이 아니라 랜드의 사상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랜드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 할 수 있죠. 또한, FRB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이 랜드가 이끌던 Objectivism 그룹에서 열심히 활동했고,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그는 랜드의 "자본주의- 알려지지 않은 이상"에 한 챕터를 쓰기도 했죠), 랜드의 사상이 그린스펀 등의 고위 관료를 통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추측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다른 이념이나 종교에서 윤리관을 빌려와야 하는데, 다른 이념이나 종교가 대부분 쇠퇴한 오늘날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라는 자신 내부의 논리를 윤리로 발전시키려 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전통적인 개념의 윤리는 무너져 버리고, 사회는 오직 욕심이 가득 찬 인간들이 무한투쟁을 벌이는 전쟁터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막으려면 자본주의가 윤리의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게 제한해야 합니다. 즉, 자본주의에 대한 견제가 필요한 것이죠.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이기심을 덕목으로 치켜세운다면 진정한 윤리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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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아는 철학자의 이름을 대 보라"고 물으면 플라톤 부터 칸트까지 다양한 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이들 중 오늘날 생존하는 철학자는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사르트르나 푸코 정도가 대중에게 알려진 철학자 중 가장 최근에 살았던 사람이겠죠. "원래 철학자는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철학의 역사에서 당대에 인정을 받지 못한 철학자는 소수이고, 대부분의 철학자는 당대의 독자들에게 인정받았죠. 예를 들어 플라톤은 당시 아테네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저자였고, 헤겔은 유럽의 지적인 영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50년간 대중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철학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거대한 학문적, 사회적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철학을 하려면 시간적, 물질적 여유(leisure)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여유가 있는 계층은 귀족 뿐이었고, 따라서 생업의 부담이 없는 귀족들이 철학을 시작했죠. 이들 귀족은 철학의 생산자일 뿐 아니라 철학의 소비자이기도 했습니다. 철학자들이 쓴 심오한 책들은 비싼 가격에 귀족들에게 팔렸고, 귀족들이 이처럼 철학을 소비했기에 철학자들은 자신의 노력이 낭비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었죠. 오늘날 철학 서적을 출판하며 '이걸 누가 사 읽을까?'라고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이처럼 철학책을 꾸준히 읽는 독자층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 것입니다.

귀족이 철학자들을 배출하고, 철학을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교육 방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당시 귀족의 교육은 실용적 지식의 전달을 완전히 무시한채 극단적인 지능의 발달을 추구하였습니다. 특별히 언어 교육이 대단히 중요시되었는데, 많은 지역의 귀족들은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배우며 자랐고(고대 로마 귀족들의 그리스어 공부나 조선 양반들의 한자 공부), 암송을 중요시해 고전의 많은 부분을 암송하였습니다(고대 그리스 귀족의 호머 암송이나 동양 귀족들의 경전 암송). 또한 소수만이 모여 공부하거나, 개인교사를 통해 공부하였기에 한 반에 수십명이 모인 교실에서 행하는 교육과는 교육의 질이 달랐고, 귀족 자녀라도 공부를 게을리하면 매를 맞았기 때문에 공부의 동기도 확실했습니다. 이처럼 강도 높은 교육을 받고 자라난 귀족은 20대가 되면 이미 대단한 지적인 성숙도를 보였고, 이처럼 지적으로 성숙한 젊은이들이 다시 대학에 모여 공부했으니, 대학을 나올 정도면 대단한 지성인이었죠.

하지만 근대에 들어 귀족의 특권에 대한 반발이 증가하고, 교육의 대상을 확대해서 산업사회에 맞는 일꾼을 길러내야할 사회적 필요가 커지면서 보편 교육(universal education)이 도입되었고, 계급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학교에 다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보편 교육은 모든 면에서 귀족교육과 반대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우선, 모든 사람에게 교육을 제공하려다 보니 한 명의 교사가 많은 학생을 지도해야 했고, 문학과 외국어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양한 과목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교육의 목표도 "귀족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교양의 습득"이 아닌 "객관적으로 평가 가능한 지식, 실용적인 능력의 습득"으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 모든 국민이 어느 수준의 학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교육은 마쳤지만 깊이 생각하는 능력은 없는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은 부정적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한국처럼 교육 경쟁이 치열한 사회는 귀족 시대 만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긴 합니다. 또한, 외국인 가정교사에게 영어를 일대일로 배우는 부잣집 자녀는 귀족 교육을 받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러한 교육은 모두 보편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귀족 교육은 귀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귀족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유럽의 귀족이나 조선의 사대부 모두 돈 버는 일을 대단히 비천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이들이 땅과 재산을 부모로부터 물려 받아 가만히 있어도 돈이 저절로 들어왔기 때문이죠. 따라서 귀족은 다른 귀족을 만나 고전을 읊으며 자신이 얼마나 학식이 높은지 자랑하며 살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그가 부자집에서 자랐다 할지라도)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사회적 지위와 부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목표와 관계 없는 교양 공부는 사치일 뿐이고, 따라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꼭 교양이 많다고 하기는 힘들지요.

이러한 사회적 변동이 꼭 나쁘지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귀족들이 유유자적하게 한시를 읊으며 사는 동안, 평민들은 언문 조차 배우지 못하던 시절을 이상적으로 볼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귀족 계급이 사라지고, 귀족 교육이 없어지면서 귀족 교육의 결과로 탄생하던 지식인이 사라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모두가 철학을 즐길 필요는 없지만, 위대한 사상가가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인류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는데, 그러한 존재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은 우리 모두에게 큰 손해인 것이죠.

철학과 인문학이 탄생하고 자란 사회 배경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중요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단지 정부가 인문학을 지원하지 않았다거나, 출판사가 상업성 높은 책만 출판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죠. 따라서 인문학이 진정으로 위기를 넘어서려면, 보편 교육의 시대에 인문학을 누가 어떻게 진행하고, 누가 이를 소비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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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썼듯, 저는 지난 주에 스위스에 다녀왔습니다. 스위스에 갈 때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일행이 있다고 해서 차를 얻어타고 갔는데, 알고 보니 그 중 한 분이 스위스에서 가장 득표율이 높은 스위스 국민당(Schweizerische Volkspartei)의 총서기(general secretary)를 지낸 분이더군요. 이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위스 정치의 특징에 대해 들었는데, 스위스는 많은 선출직 정치인이 무보수라고 합니다. 즉, 수입원은 다른 곳에 있으면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20-30년씩 삶을 투자한 사람들이 스위스 정치계의 중추 역할을 한다는군요. 이런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스위스의 정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 부패가 적다고 합니다.

그분과 대화하다 생각해보니, 제가 만난 외국인 중엔 정치인이나 정치인 지망생이 참 많더군요. 작년에 훈련 과정에 들어온 인도인도 고등학교 교사인데 앞으로 자기 지역에서 정치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고, 올해 훈련을 받으러 오는 학생 한 명도 중년의 IT 전문가인데 정치계에서 활동하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전에 독일에서 만난 어느 브라질 청년은 베이스를 연주하는 뮤지션인데, 브라질에서 다시 만나 보니 지금은 정당에서 활동중이라고 했습니다. 전에 한국에서 통역을 하게 된 어느 핀란드 강사는 아내가 작은 마을의 시장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스위스로 가는 차에서 만난 분도 원래는 기독교 단체에서 간사로 일하던 분인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정치계에 들어섰고, 정치에 입문한지 10여년만에 여당의 당수를 지낼 정도로 성공을 하였죠.

이에 비해, 한국에서 내 주위에 아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정치인이나 정치인 지망생은 커녕 정당에 가입한 사람조차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니 "한국인은 정치과잉이다"라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정치인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우선, 젊었을 때 정치인이 되고자 정계에 입문해 평생 정치만 하고 사는 전문 정치인이 있고, 두번째로 자기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둔 후, 이를 바탕으로 정치 영역에 진출한 전문가 출신 정치인이 있습니다. 전자의 예로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들 수 있고, 후자의 경우로는 이명박 대통령을 들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일반인은 젊었을 때 부터 정치만 붙들고 살기도 힘들고,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정치계로 넘어가기도 힘들다는 점입니다. 즉, 한국에서 일반인은 정치계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렵고, 따라서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둘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죠.

한국에서 정치가 일반인의 삶과 거리가 먼 또 다른 원인은 지방 정치의 침체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인은 지방 정치를 중앙 정치로 들어가는 관문 정도로 생각할 뿐, 크게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방정치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정치인들은 결국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 나아가려고 할 뿐, 지방정치에 전념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그에 비해서 외국은 지역 정치 자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지역 정치계에서만 활동할 뿐, 중앙 정치로 진출할 생각이 없는 사람도 사람이 많습니다(클린튼 이스트우드도 미국에서 유명한 배우지만, 인구가 4천명 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인 Carmel-by-the-Sea에서 시장을 지냈죠). 지방정치는 생활과 직결되고 경쟁이 적기 때문에 일반인이 진입하기가 쉬운 영역인데 한국은 지방 정치가 워낙 침체되었으니 일반인의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정치는 공동체가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즉 수많은 선거와 대결과 타협은 지역이나 국가가 의사를 결정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죠. 그렇게 본다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가 어떻게 의사를 결정하든 상관하지 않는 셈입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결정은 곧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서 어떤 정책을 펼치는가에 따라 국민의 삶은 크게 영향을 받죠. 그러니 투표는 안해 놓고 "왜 이렇게 살기가 힘느냐!"고 하소연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직 깨닫지 못한 셈이죠.

노무현 대통령이 이끈 정부의 정식 명칭은 "참여정부"였습니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정치에 직간접으로 참여할 때에,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사회의 불합리가 해소된다는 뜻이겠죠. 진정으로 일반인의 정치 참여를 이끌어 내려면 정치권에서도 일반인에게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일반인들도 정치 혐오증을 버리고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으로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한국의 정치계가 진정으로 국민의 마음을 반영하는 곳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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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선언문 작성은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앞서가는 조직은 사명 선언문에 따라 운영됩니다. 하지만, 일반인이나 작은 조직이 제대로 된 사명 선언문을 작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명 선언문 작성법을 배우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봐도 크게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별로 없더군요. 기적의 사명 선언문(The  Path)이라는 책을 저도 읽어 봤는데, 크게 도움이 될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명 선언서를 작성하려는 분을 위해 간단하게나마 도움이 될만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선, 많은 조직이 사명 선언문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억지로 작성하기는 하는데, 길고 장황할 뿐, 조직이나 구성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명 선언문이 많습니다. 어제 썼듯, 사명 선언문은 조직의 특색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동기부여를 해야 합니다. 만약 사명 선언문을 읽었는데도 조직의 특색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특별히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면, 이는 무의미한 사명 선언서를 작성한 것입니다.

이처럼 무의미한 사명 선언문이 많기 때문에 서양에는 "사명 선언문 회의론"이 번지는 추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Dilbert Mission Statement Generator인데, 미국의 기업문화를 풍자한 만화 Dilbert의 주인공이 그럴듯한 사명 선언문을 무작위로 만들어 줍니다(인터넷에 찾아보니 지금은 서비스가 사라졌군요). 즉, "힘들게 사명 선언문 작성하느니 이렇게 무작위로 만들어주는 사명 선언서를 갖다 써라."는 뜻이죠. 유명한 사업가이자 저자인 Guy Kawasaki도 사명 선언문 무용론을 주장합니다. 그의 강연을 보면 "복잡한 사명 선언문보다 짧은 구호(mantra)가 낫다."는 말이 나옵니다(8분경 부터). 예를 들어, Wendy's의 사명 선언문은 "지도력, 혁신, 협력을 통해 고객과 지역사회에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인데, 이보다는 "Healthy fast food"라는 구호가 외우기도 편하고 의미도 있겠죠. FedEx는 지금 배송 중인 제품이 어디서 어떤 속도로 어디를 향해 움직이는지 추적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갖추었는데, 이를 요약해 구호로 표현하면 "Peace of mind"가 됩니다. 엄밀히 말해 이러한 구호도 사명 선언문의 변형으로 볼 수가 있고, 따라서 사명 선언문의 작성하듯 정성을 들여 만들어야겠죠.

사명 선언문을 작성하기 어려운 가장 중요한 원인은 조직(또는 개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조직에 속해 일하면서도 이 조직이 어떤 조직인지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조직의 특징에 이해하지 못한다면,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도 없고, 따라서 좋은 사명 선언문을 작성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조직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간단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짐 콜린스는 자신의 조직에 대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어떤 일을 잘하는가, 어디서 수입이 들어오는가, 이렇게 세 가지 영역을 생각하라고 충고합니다. 이 세 가지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 조직이 나아갈 방향이기 때문이죠. 물론 세 가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겠죠. 예를 들어, 노키아는 원래 고무 타이어 등을 제조하던 회사였고, 나중엔 다양한 전자제품도 생산했죠. 그런데 90년대 초에 정보통신기기에 집중하기로 하고, 다른 사업을 정리합니다. 이는 주된 수입원을 포기하는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결국 열정적으로 뛰어든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둠으로 노키아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죠. 어쨌든 이러한 세 가지 질문은 조직의 특징을 이해하고,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이는 또한 조직이 정말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죠.

결국, 사명 선언문은 조직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온 사람이라면 쉽게 작성할 수 있고, 조직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작성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개인의 사명 선언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많은 젊은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릅니다. 아직 인생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서 점차 자신을 발견하고, 그러다 보면 사명 선언문을 쉽게 작성하는 때가 오겠죠.

사명 선언문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이 블로그의 사명 선언문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서 적어봤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블로그는 지식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한 재미있고 유익한 글을 제공함으로 한국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이바지한다.

지식과 창조성은 제가 인생의 주제로 삼은 개념입니다. 특히 이 블로그는 지식과 창조성을 글 쓰기에 적용한 예죠. 재미있고 유익한 글은 제가 쓰는 글의 방향입니다. 저는 읽으면서 재미가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재미만 있으면 오락이고, 대부분의 오락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죠. 따라서 재미와 함께 유익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힘씁니다. 이렇게 독자가 즐겁게 읽으며 도움을 얻는 글 속에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아서 결국 한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조금씩 영향을 끼치는 것이 제가 궁극적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바라는 것입니다.

이 사명 선언문은 글의 주제를 인문학이나 경제 등으로 한정 짓지 않았기에, 원하는 주제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자유를 내포합니다. 또한, 지식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글(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글 등)을 제외하기에 글의 특징을 명확하게 한정 짓죠. 무엇보다 작은 블로그지만 한국 사회를 돕는다는 원대한 꿈을 담았기에 글을 쓰는 동기 부여도 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사명 선언문에 따라 블로그를 운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P.S.
전에 썼듯 다음 주 출장 다녀오고 그 다음 주부터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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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면, 많은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입니다.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집단이고, 따라서 영리, 즉 금전적 이익은 기업이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경영학의 귀재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당연하게 보이는 생각이 틀렸다고 단언합니다. 그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이는 이윤이 기업 활동의 일차적 목표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윤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이윤은 기업의 생존 수단일 뿐, 생존의 목적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기업과 돈의 관계는 정치인과 권력의 관계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은 권력을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정치인이 특별한 비전 없이 오직 권력을 얻고 싶은 마음에 정치활동을 한다면, 그는 매우 치졸한 정치인일 뿐입니다. 진정한 정치가는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이상을 품고,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권력을 추구합니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기업이라면 단지 돈을 벌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돈을 넘어서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었다,"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겠죠.

실제로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기업은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인 구글은 세계의 정보를 조직해서 이를 누구나 접근하도록 하는 것("To organize the world's information and make it universally accessible")을 목표로 삼습니다. 최근 구글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중인 Facebook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나누는 능력을 줌으로 세상을 더 열리고 연결된 곳으로 만드는 것("To give people the power to share, in order to make the world more open and connected")입니다. 3M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함("To solve unsolved problems innovatively")이 목표입니다. 월마트는 "보통 사람에게 부자들과 같은 제품을 살 기회를 주는 것"("To give ordinary folk the chance to buy the same thing as rich people.")이 목표입니다.

이처럼 회사가 이루고자 하는 사명을 요약한 문장을 보통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사명 선언문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합니다. 우선, 사명 선언문은 회사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운영 방법이나, 활동하는 영역이 바뀌기가 쉽습니다. 만약 회사가 추구하는 사명이 명확하지 않다면,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조직의 특성을 잃고 말겠죠. "조직의 특성이 뭐가 중요하냐? 돈만 많이 벌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어떻게 해서든 돈만 많이 벌면 된다."라는 지극히 천박한 생각입니다. 사람이 가난할수록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만, 돈을 벌수록 인생의 의미는 돈이 아닌 잠재력의 실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법이죠. 조직도 조직의 특성에 맞는 일을 할 때 효율도 오르고, 조직의 구성원도 만족을 느끼는 법이죠. 따라서 사명 선언문을 작성하여 조직의 특색과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한다면 불필요한 활동을 제거하고, 정말 중요한 활동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사명 선언문의 또 다른 유익은 동기부여입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나?"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면, 일할 마음이 들지 않겠죠. 만약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하는 사람은 돈이 없을 때는 열심히 하겠지만, 돈을 많이 벌고 나면 일할 동기를 잃을 것입니다. 실제로 선진국일수록 인재들이 월급을 많이 주는 회사보다 보람이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니 구글처럼 업계를 선도하는 회사일수록 영감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사명 선언문을 만들기 마련이죠.

사명 선언문은 기업뿐 아니라 비영리 단체, 가정, 개인도 작성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사명 선언문도 있는데, 로마제국으로부터 근대의 영국까지 유럽을 주도하는 국가들은 "문명의 빛을 비춘다."는 개념을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개인이 마음껏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제공한다"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빛을 비춘다"는 두 가지를 사명으로 삼은 듯 보이는군요.

여러분은 사명 선언문이 있는 조직에서 일하십니까? 이 사명 선언문을 읽으면 여러분이 속한 조직의 특색과 추구하는 목표가 분명히 드러나고, 일을 열심히 하고픈 마음이 생깁니까? 만약 여러분이 정말로 여러분의 조직을 사랑한다면, 이 조직을 위한 사명 선언문을 만들도록 제안하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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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기업, 사명
안녕하세요.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 나누겠습니다. 지난 주에 여기서 독일 거주 2년 비자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늘 3개월 단위로 움직였기에 장기 비자가 필요 없었는데(사실 한국인은 대부분 나라를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죠), 이번엔 독일에 정착해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장기 비자를 신청했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일하는 단체가 이곳의 비자 발급 관청과 관계가 좋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비자를 받았습니다. 신청서와 단체의 증명서만 가지고 가니 30분도 안되서 비자를 발급해주더군요(작년에 사진을 등록해놔서 사진을 따로 내지도 않았습니다). 몇년 전 이탈리아에 살다가 계획보다 일찍 떠난 이유가 비자 때문이었는데(이탈리아는 현지 단체 사정상 비자 받기가 지극히 어려웠습니다), 독일에선 비자 문제가 잘 풀려 매우 기쁩니다. 당분간 비자 걱정 안하고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군요.

이와 함께 죄송한 소식도 하나 있는데, 제가 7월 중에 일정이 많아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당장 내일 부터 사흘간 회의가 있고, 다음주엔 스위스로 출장, 그리고 3주 후엔 네델란드로 출장이 잡혀 있습니다. 오늘은 글을 올리려고 생각했는데, 내일 회의 준비 때문에 아무래도 힘들 것 같군요. 그래서 목요일날 회의 끝나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7월의 바쁜 일정 때문에 블로그 운영에 차질이 생겨 죄송합니다. 부족한 블로그지만 자주 찾아와 주시는 분들을 기억하며 열심히 글을 올리려고 노력합니다. 부디 양해해 주시기 바라고, 앞으로도 자주 찾아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목요일(한국 시간으로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Cimio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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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오늘은 같이 일하는 사람네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 아기를 잠깐 봐주게 되었습니다. 돌을 막 지난 아기인지라 걸어 다니고 싶어하는데 혼자 걷질 못해 누가 양손을 위로 붙잡아줘야 하기에 제가 같이 걸어 다녀줬죠. 아기가 옹알이를 시작하는 시기라 계속 "어버어버"하는데, 저도 아기랑 같이 놀다 보니 어느새 "어버어버어버"하고 말하게 되더군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고, 그렇게 따라 한다고 의사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라 억누르기가 어렵습니다.

이 처럼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따라 하는 경향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발견됩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머리를 긁적이면 자신도 머리를 긁적이고, 상대방이 팔짱을 끼면 자신도 팔짱을 끼게 되죠. 자신과 억양(accent)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그 사람의 억양을 흉내 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 오래 살다 보면 그 지역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됩니다. 이러한 행동은 인간뿐 아니라 원숭이에서도 발견되는데, 어린 원숭이 앞에서 특이한 표정을 지으면 원숭이도 그러한 표정을 따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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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ikipedia

이처럼 상대방을 흉내 내는 경향은 두뇌의 거울 뉴런(mirror neuron) 때문에 생깁니다. 거울 뉴런은 원숭이의 뇌를 조사하다가 발견되었습니다. 원숭이가  땅콩을 집을 때 특정한 뉴런이 반응하는데, 이 뉴런은 다른 원숭이가 땅콩을 집을 때도 반응을 한다는 사실일 밝혀졌습니다. 이는 자신의 행동과 남의 행동에 같은 반응을 보이는 뉴런이 존재한다는 뜻이죠.

거울 뉴런의 발견은 두뇌의 작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나고, 남은 남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늘 남과 나를 동일시하며 살아갑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주먹에 맞는 장면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거나, 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려 죽어갈 때 눈물을 흘리는 행동이 좋은 예죠. 축구 경기를 보면서 태클을 당한 선수가 뒹구는 모습을 볼 때 내 몸에 충격이 온 듯 움찔하는 것도 그러한 경우입니다. 심지어 TV 광고에서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던 사람이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장면을 보며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같은 현상이죠. 이는 내가 남의 경험을 내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예인데, 지금까지는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지만 이제 거울 뉴런이 발견되면서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거울 뉴런은 남의 행동을 나의 행동처럼 받아들이는데, 그 결과 나도 남의 행동을 흉내 내게 됩니다. "거울" 뉴런이라는 명칭은 그래서 생겼지요. 예를 들어, 남이 하품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그가 하품하는 것은 그가 피곤하거나, 따분하거나, 산소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그의 하품을 보면서 그의 처지에 처한 듯 느낀다면, 나도 피곤하거나, 따분하거나, 산소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결국 나도 하품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한 사람이 하품을 하면 거울 뉴런의 작용으로 나도 하품을 하게 되죠. 이러한 거울 뉴런의 작용은 매우 강력해서 때로는 하품하는 장면을 보지 않고, "하품"이라는 단어를 보거나, 아니면 머릿속으로 누군가가 입을 쩍 벌리고 "아흐~"하고 하품하는 장면을 상상하기만 해도 하품이 납니다. 아마 이 글을 읽다가 하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분도 많을 것입니다.

거울 뉴런의 작용으로 남의 처지를 나의 감정으로 느낄 때 우리는 공감(empathy)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공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情)의 근원입니다. 여기 한겨울에 난방비가 없어 냉방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정이 없는 사람이고, 그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느껴서 그를 도우려는 사람은 정이 많은 사람이죠. 한국인이 정이 많다고 하는 말은, 다시 말해 한국인이 남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느낀다는 말이고, 이는 거울 뉴런이 잘 발달했다는 뜻이죠.

한국인이 거울 뉴런이 발달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한국인이 패션의 유행에 민감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외국에도 유행은 존재하죠.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의 유행은 주로 스타일의 유행인 데 비해, 한국의 유행은 상표, 심지어 특정 상표의 특정 모델의 유행이라는 점에서 훨씬 강도가 높습니다. 한국인이 남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데 만족하지 않고, 남과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은 그만큼 한국인의 거울 뉴런이 다른 민족보다 잘 발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습니다. 유행은 집단의 거울 뉴런이 집단에 대해 작동하는 현상이고, 거울 뉴런이 발달했다면 남과 거울처럼 똑같이 보일 때 마음이 놓이겠죠. 실제로 커플이 똑같은 옷을 입는 커플룩은 거울 뉴런이 발현된 좋은 예인데, 한국에 커플룩을 즐기는 커플이 많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거울 뉴런은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었기에 아직도 이에 대한 연구가 끝나지 않았지만, 소비자의 행동분석에서 자녀교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행동의 신비를 푸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리라고 보입니다.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더 많은 성과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참고- PBS에서 방영한 Mirror Neuron video(14분, 영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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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7월 1일을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이를 둘러싼 여야, 언론, 기업, 노조 간의 대립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보수언론의 보도로는, 비정규직법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기에 경기 침체 상황에서 기업이 따르기가 어려운 법이고, 이로 말미암아 기업들은 업무에 익숙해진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해야 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든 직장을 떠나 실직자가 돼야 하는, 모두에게 해로운 법입니다. 그러니 한나라당이 이 법의 시행을 유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도, 보수언론이 해고 위기에 몰린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눈물 나는 사연을 연일 보도하는 것도 당연하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언가 이상합니다. 평소에 강남 아파트값 떨어지는 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인 듯 호들갑을 떨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갑자기 노동자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꼴도 이상하고, 노동자가 이 법의 제일 큰 피해자라는데 노동자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은 이 법의 시행 유예를 반대한다는 점도 이상합니다. 과연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공방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우선, 비정규직법 탄생의 배경을 돌아봅시다. 90년대 이후 근로자의 월급이 많이 오르면서 기업들은 싼값에 노동력을 얻기 위해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였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해고도 쉽고, 월급도 정규직 근로자보다 적기 때문이죠. 문제는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안정된 일자리가 점차 줄었고, 이는 젊은이들이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해 방황하는 사회문제를 낳았죠. 또한, 비슷한 일을 하는데 정규직은 좋은 대우를 받고, 비정규직은 나쁜 대우를 받는다는 점에서 형평성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합니다. 그에 비해 민주노동당은 아예 웬만해서는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용사유의 제한을 주장하죠. 이렇게 의견이 갈리자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손을 들어주고, 결국 이 법은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여야합의로 2006년 통과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이 비정규직법 통과에 협조했다는 사실은 당시 기준으로는 기업인들이 이 정도까지는 용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즉, 좋은 인력을 싸게 부리고, 마음대로 해고하는 제도는 사회적 반발을 고려할 때 어차피 영원히 지속할 수 없었고, 조금 희생하는 모양이라도 내서 여론을 달래려면 비정규직을 2년까지 고용하도록 허용하는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최근에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노동시장엔 비정규직이라도 고용만 시켜주면 열심히 일하겠다는 사람으로 넘쳐났고, 이렇게 좋은 상황을 법이 무서워 활용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쪽으로 생각이 미친 것이지요. 이러한 기업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기업인들의 대표인 전경련뿐 아니라 한나라당, 보수언론 등이 일사천리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너무나 손발이 잘 맞기에 한편의 싱크로나이즈드 수영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킵니다. 특히, 정규직 전환 제의를 받은 사람이 "나는 비정규직이 좋다."며 거절했다는 모 언론의 기사는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객관적으로 봐서 비정규직법은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여론에 밀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조금 양보할 용의가 있던 기업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경제환경이 조성되자 과거의 양보를 철회하고 이득을 극대화하겠다고 나서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언론은 일방적으로 기업인들의 주장만 되풀이할 뿐 아니라, 이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과장 보도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비정규직법에 따르면 2년 이상 비정규직을 사용하면 해고하든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비정규직법에 따르면 2년 이상 비정규직을 사용하면 무기계약직으로 간주할 뿐,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무기계약직은 해고할 때 정당한 사유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비정규직과 다를 뿐, 처우는 비정규직과 다르지 않습니다. 즉, 2년이나 고용을 했으면 월급은 못올려주더라도 최소한 이유 없이 해고를 하지는 말라는 것이 법의 요지입니다. 사실 별것도 아닌, 매우 당연한 내용이지요. 그런데 기업인들은 그나마 하기 싫다고 이렇게 난리를 부리고 있습니다. 만약 이 법이 정말 "2년 이상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된다"는 내용이었다면 기업인들이 촛불 시위라도 벌이지 않았을까요?

비정규직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결국 한치의 이익도 포기하기 싫은 기업인들과 이들의 뜻에 따라 열심히 움직이는 한나라당, 보수언론이 일으키는 헛 소동일 뿐입니다. 이번 논쟁은 한국에서 근로자의 권익을 눈곱만큼이라도 증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참고글
한겨레 “어떻게 만든 법인데 시행도 안해보고 유예하자고?”
이정환닷컴 비정규직법? "개정 실패"가 아니라 "저지 성공"이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 비정규직법과 대량해고 그 진실은?
프레시안 '해고대란' 타령은 거짓말…"기자들아 법부터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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