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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2 디즈니와 픽사 (4)
  2. 2009/08/21 Script Doctor (3)
  3. 2009/08/20 영화 산업의 부활 (3)
  4. 2009/08/19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3)
  5. 2009/08/18 휴식의 의미 (3)
  6. 2009/08/15 무의식의 활용 (4)
  7. 2009/08/14 이발소의 변천사 (7)
  8. 2009/08/13 책과 잡지 (17)
  9. 2009/08/12 고전의 중요성 (4)
  10. 2009/08/11 지도자의 권한 (2)

디즈니와 픽사

문화 2009/08/22 06:35
저는 평소에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노트북 이외의 장비는 잘 구입하지 않는데, 이제는 독일에 정착하였기에 평소에 늘 갖고 싶던 23인치 모니터를 구입하였습니다. 모니터를 구입하고 나니 모니터에 맞는 고화질 영상을 보고 싶어서 블루레이 플레이어까지 구입했습니다. 모니터나 블루레이 플레이어나 가격이 많이 내려서 큰 부담 없이도 좋은 비디오 감상 시스템을 갖출 수 있더군요. 블루레이 디스크는 lovefilm.de라는 우편 대여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디스크가 배달되기까지 조금 시간은 걸리지만 저렴하게 원하는 디스크를 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풀HD 모니터에서 보는 블루레이의 화질은 정말 우수하더군요. 특히 최근에 나온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화는 머리카락 하나까지 정확하게 재현해주는 화면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상을 보다가 손으로 100% 작업한 디즈니의 고전만화 피노키오를 보니 처음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작품해설을 들으면서 보니, 피노키오야 말로 시대를 앞선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모든 요소를 3D로 작업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지정해주면 나머지는 컴퓨터가 알아서 렌더링해줍니다. 하지만, 손으로 그리는 만화는 모든 움직임을 사람이 계산해서 적용을 해야 합니다. 특히 움직임이 여러 번 중첩되는 장면, 예를 들어 마차 속에 매달린 새장 속에서 피노키오가 움직이는 장면은 마차의 움직임, 이에 따른 새장의 움직임, 이에 따른 피노키오의 움직임을 각각 고려해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웬만한 감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죠. 게다가 피노키오가 물속에 들어가서 움직이는 장면은, 물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미묘한 차이를 수작업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죠. 디즈니에서 피노키오를 완성하는데 2년이 걸렸다는 데, 전문가들은 2년 만에 이러한 작품이 나온 것이 놀랍다고 평가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피노키오는 백설공주에 이어 디즈니의 두 번째 장편 만화였고, 따라서 장편 만화 영화를 만드는 노하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작업했다는 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그저 그런 만화영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 피노키오는 당대 최고의 만화영화 제작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디즈니가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만들기 전까지 만화영화는 단편으로만 존재했습니다. 아무도 관객이 장편 만화영화를 보러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월트 디즈니는 장편영화의 들러리에 불과하던 만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만화로 장편영화 만들기"에 도전합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관계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디즈니의 미친 짓"(Disney's folly)라고 불렀죠. 대공황으로 많은 사람이 굶주리던 1930년대 중반, 만화로 장편영화를 만드는 일에 돈을 투자할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고, 영화를 완성해도 관객이 들지 확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실제로 디즈니는 백설공주를 3년간 제작하다 제작비가 바닥났고, 은행에 미완성된 영화를 보여주며 설득한 끝에 대출을 받아 영화를 완성합니다. 그는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직원의 숫자를 대폭 늘렸는데, 대공황이었기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수많은 예술가가 디즈니로 모여들었고, 그는 비교적 작은 투자로 훌륭한 인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어려움 끝에 완성한 백설공주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디즈니가 뒤이어 내놓은 피노키오, 판타지아, 밤비 등이 연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디즈니는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미디어 제국을 세우게 됩니다. 디즈니의 미친 짓은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던 것이죠.

지금은 디즈니의 자회사가 된 픽사도 초기의 디즈니사만큼이나 어려운 시절을 겪고 나서야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원래 루카스필름에 속했다 스티브 잡스가 사들인 픽사(Pixar)는 컴퓨터 그래픽용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픽사의 하드웨어를 사려는 회사가 별로 없었기에, 픽사는 하드웨어의 성능을 보여주는 데모 영상을 만들던 솜씨를 발휘해 다른 회사의 그래픽 작업을 외주 받으면서 영상 제작분야에 뛰어들게 되고, 나중엔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된 장편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섭니다. 당시 픽사는 적자가 너무 심해 소유주인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팔아버릴 생각마저 했다는군요. 하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픽사가 발표한 Toy Story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면서 픽사는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자리 잡습니다. 결국, 애니매이션의 미래는 픽사라는 사실을 깨달은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픽사의 소유주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의 최대주주가 되죠.

요즘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만 추구한다지만, 어느 분야나 시대를 이끈 사람이나 조직은 커다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살기가 어렵다지만, 미래를 바꾸기 원하는 열정만큼은 잃지 않고 살면 좋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P.S. 전에 쓴 대로 저는 다음 주 한 주간 블로그 휴가를 보내고 다다음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도 남은 여름 보람차게 보내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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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 Doctor

문화 2009/08/21 06:52
요즘 저는 휴가를 맞아 비디오를 보며 느긋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디즈니의 고전 만화영화 피노키오를 봤습니다. 옛날에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 그런지 크게 재미는 없었지만, 손으로 정성스럽게 그려낸 흔적에서 정성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아마 피노키오를 본 적이 없는 분이라도 "When you wish upon a star"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주제가는 지금도 디즈니사의 상징으로 자주 쓰이기 때문이죠. 이 주제가는 극 중 지미니 크리켓이라는 귀뚜라미가 부릅니다. 지미니 크리켓은 피노키오의 친구로, 그를 유혹에서 건져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작품 해설을 들으니 지미니 크리켓은 디즈니가 피노키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늦게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탈리아의 카를로 콜로디가 쓴 피노키오의 모험(Le avventure di Pinocchio)에서 따왔습니다. 그런데 피노키오를 만화영화로 만들려고 하니 원작에 나온 말썽꾸러기 피노키오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스토리 전개가 어려웠죠. 그래서 디즈니는 중간에 작품 개발을 중단하고 처음부터 다시 스토리를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작에서는 매우 작은 역할만 하는 귀뚜라미를 인물로 격상하게 됩니다. 귀뚜라미에게 웃음을 일으키는 역할을 맡기면 피노키오는 순진한 어린이 역할만 할 수 있기에 관객이 피노키오를 받아들이기가 쉬웠고, 귀뚜라미가 피노키오에게 유혹에 빠지지 말도록 설득하는 장면을 넣어 영화를 보는 아이들에게 교훈을 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귀뚜라미가 주제가를 부르게 함으로 극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도 맡길 수 있었죠(피노키오는 이 주제가를 부르기에 너무 어렸고, 제페토 할아버지는 너무 나이가 많았죠). 결국, 지미니 크리켓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것이 피노키오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영화가 되는데 중요한 이바지를 했다고 할 수 있죠.

보통 초기 단계의 대본은 영화로 만들기엔 무언가 아쉬운 상태입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 흥미로운 줄거리에도 어딘가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이런 대본을 손봐주는 사람이 바로 script doctor입니다. Script doctor는 말 그대로 문제가 있는 대본의 병을 고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오리지널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레아 공주로 나왔던 캐리 피셔는 script doctor로도 유명한데, 대본을 쓰다가 난관에 부딪치면 그에게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작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보통 당사자는 너무 대본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고, 따라서 제삼자의 조언이 유용하죠.

Script doctor가 대본의 병을 고친다면, 편집자는 영화의 병을 고칩니다. 어떤 영화는 촬영이 끝났지만 무언가 어색하고 스토리가 말이 안되는데, 이럴 때 문제를 제거하고 영화를 살려 낼 책임은 편집자에게 있죠. 꼭 병이 든 영화가 아니더라도, 편집자는 영화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네마 천국 감독판을 보면 감독은 주인공인 토토(살바토레 디비타)가 엘레나와 왜 헤어졌는지 자세히 설명하기 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international version을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이를 상영시간 단축을 위한 결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편집자가 이 영화의 메시지는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영화에 대한 주인공의 사랑으로 해석했고, 따라서  남녀 간의 사랑을 줄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감독판에 들어간 이야기는 사족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죠. 감독은 이러한 장면을 힘들게 찍어 놨기 때문에 빼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배우들은 자신이 나오는 분량이 줄어들면 매우 기분이 나쁜 법인데, 이들과 긴밀하게 작업하는 감독이 이러한 장면을 잘라내기가 쉽지 않죠. 그에 비해 편집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촬영되었는지 모르고, 배우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기 때문에 관객만 생각하며 편집을 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따라서 영화계에선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편집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불문율이죠.

Script doctor나 편집자나 제작 과정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혼자서 하나의 작업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객관적 시각을 잃기 쉬운데, 이러한 사람들이 도와주면 blind spot에 숨은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저도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막히면 물어볼 수 있는 blog doctor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시작은 했는데 결말이 애매해 저장해둔 글들을 활용할 수 있겠죠?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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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영화, 편집

영화 산업의 부활

문화 2009/08/20 06:53
이탈리아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만든 Nuovo Cinema Paradiso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입니다. 한국에도 "시네마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고, 특히 극 중에 흐르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선율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2차대전 직후 영화관에 모인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영화를 즐기는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전쟁으로 황폐해진 이탈리아에서 영화는 사람들이 삶의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죠. 게다가 40년대부터 60년대까지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페데리코 펠리니 등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명작을 쏟아내던 시기라 질적으로 봐도 이탈리아 영화의 황금기라고 할만 하죠.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 TV가 보급되면서 영화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시네마 천국은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주인공이 추억을 찾아 영화관에 들어갔을 때 보이는 애로 영화 포스터는, 영화관이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으로 추구했던 생존전략이 무엇인지 보여주죠.

실제로 이 영화가 개봉된 1988년은 영화의 미래가 매우 불투명하던 시기였습니다. 모든 가정에 보급된 칼러 TV 덕분에 사람들은 집에서 생생한 화면을 즐길 수 있었고, 게다가 비디오가 대중화하면서 힘들게 영화관에 가서 많은 돈을 들여 영화를 보는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겪고 난 영화산업은 9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 활기를 되찾았고, 지금은 영상시대를 맞아 새로운 부흥기를 맞은 듯 보입니다. 과연 영화산업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19세기 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으로 영화를 발명한 이래로, 영화의 매력은 "신기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상영한 영화의 제목을 보면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46초), "금붕어 낚시"(42초), "아기의 아침식사"(41초)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담은 내용이지만, 이러한 내용이 필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화면에 비치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신기했죠. 게다가 영화가 발전하면서 매우 잘생긴 배우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극적으로 사는 모습을 화면에 보여주었기에, 영화를 보는 일은 매우 색다른 체험이었습니다.

하지만, TV가 보급되어 집에서 TV를 볼 수 있게 되자 영화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던 신기한 영상을 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특히 TV산업이 발달하면서 TV용 드라마도 영화에 못지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공짜로 볼 수 있는 내용을 영화관에서 돈 내고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었죠.

이러한 상황은 1977년 조지 루커스가 스타워즈를 발표하면서 점차 바뀌게 됩니다. 스타워즈 이전의 영화는 사랑, 이별, 가족 등 삶을 다루는 영화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일상의 삶과 다르게 매우 극적이었지만, 소제 자체는 평범한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죠. 하지만, 스타워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영화 제작자들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보고 싶은 모습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전까지 이러한 주제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감히 만들려는 사람이 없었지만, 스타워즈의 성공은 "많은 돈을 들이더라도 엄청난 인기를 끌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이는 곧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조스(1975)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는 조지 루커스와 함께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연 장본인입니다. 그가 감독하거나 제작한 영화는 지구에 온 외계인(미지와의 조우, ET), 현대에 되살아난 공룡(쥐라기 공원),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AI), 시간여행(백투더퓨쳐), 상상의 생명체(그램린) 등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소재를 다룬 경우가 많죠. 그런데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작은 화면으로 이러한 영화를 보면 "나는 가짜로 만든 영화를 보는 중이다."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렵고, 따라서 영화를 즐기는 재미가 떨어지죠. 그에 비해 극장이라는 낯설고 어두운 공간에서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크기의 스크린 앞에 앉아 박진감 넘치는 효과음을 듣노라면, 마치 내가 정말 환상의 세계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즉, 평범한 소재의 영상은 TV로 보나 영화관에서 보나 큰 차이가 없지만, 환상적인 소재의 영상을 보려면 영화관에 가야 하죠. 그래서 관객들은 환상적인 소재의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몰려들었고, 이러한 경향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는 환상적인 소재의 영화가 시리즈(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등)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계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너무 대박을 낼 수 있는 환상적인 소재의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데 집중하다 보니,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가 흥행에 실패하면 타격이 크기 때문이죠. 실제로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출자해 만든 드림웍스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아일랜드의 흥행 실패가 결정타로 작용해 결국 유니버설에 넘어갔습니다. 조지 루커스도 "제작비가 많이 드는 영화는 위험하다."며 스타워즈 시리즈를 영화가 아닌 TV로 만드는 중입니다. 블록버스터로 재기에 성공한 영화산업이 블록버스터의 위험성을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하겠습니다.

영화 산업도 이발소나 마찬가지로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정체성을 새롭게 찾지 않으면 도태하고 맙니다. 또한, 어제 영화 산업을 구한 방법이 오늘은 영화 산업을 망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죠.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관찰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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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제가 처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름이 없는 "재야인사"였습니다. 서슬이 퍼렇던 5공화국 당시, 정부는 언론이 그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못하도록 검열했고, 따라서 언론은 그를 "재야인사"라고 둘러 부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정부가 수많은 정치인 중 그만 이처럼 탄압한 이유는 그의 정치적 파괴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맞섰고, 많은 사람은 부정투표가 없었다면 그가 선거에서 이겼으리라고 판단할 만큼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존재를 군사독재 정부가 가만히 놔둘 리 없었죠. 1971년 대선이 끝난 직후,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고(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그는 평생 다리가 불편했습니다), 일본에서 납치되어 죽을뻔했고, 1980년에 신군부가 주도한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처럼 수많은 투옥과 고문, 정치적 핍박을 이겨내었기에 "겨울을 이겨낸 풀"이라는 뜻의 인동초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별명답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해 대한민국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는 부도상태인 국가 경제를 물려받아 이른 시일 내에 정상화했고,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데 힘썼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린다는 판단이 서자 과감하게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하였고, 국민에게 독재의 위험을 경고하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보인 눈물은 그가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죽음이 한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경향을 보고만 있는 후배 정치인들에게 "이 나이의 나도 무언가 하려고 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꾸짖을 만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남긴 업적과 잘못에 대해선 다양한 평가가 존재할 것입니다. 그가 너무 빨리 경제를 살리려고 무리한 정책을 폈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당시 상황이 느긋한 정책을 펼 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를 지나치게 몰아세우는 것은 가혹해 보입니다. 그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썼기에 사회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평가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최소한 그가 자신을 지지해준 서민들을 마음으로 배신하지는 않았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현실참여의 중요성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그의 말은, 자신의 안락만을 위해 현실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모든 사람을 일깨우는 경구입니다. 저도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논란을 일으키는 정치 이야기를 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보는데, 논란이 두려워 글조차 쓰지 않는다면, 행동하지 않는 양심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하게 됩니다.

올해 들어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두 분의 훌륭한 지도자를 잃었습니다. 단지 이분들을 추모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분들처럼 훌륭한 유산을 남기도록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결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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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의미

문화 2009/08/18 05:10
저는 요즘 휴가 2주차를 맞아 매우 느긋한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고, 같은 공간에 살면서 때로 이메일로 업무도 보고 하기에 완전히 휴가 기분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마음이 매우 가볍네요. 다음주까지 휴가를 즐기고 나면 9월부터 바빠질 일정에 대비할 활력이 비축되리라고 봅니다.

유럽에서 일하다 보면 유럽 사람들은 휴가에 대해 거의 종교적 열정을 낸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 사는 사람도 여름이 되면 한달 정도 일정으로 가족을 이끌고 휴가를 떠납니다. 심지어 돈이 별로 없거나 빚에 허덕이는 사람도 휴가 만큼은 꼭 가더군요. 휴가를 안가거나, 가봤자 1주일 남짓하게 가는 사람이 대부분인 한국에서 살던 저로선 잘 이해가 안되지만, 뭐 제가 남의 휴가를 가지 말랄 것도 없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야겠죠.

유럽인들은 여름 휴가가 한달 정도로 길 뿐 아니라, 평소에도 주말이 이틀 반 정도로 깁니다. 제가 일하는 센터도 금요일 점심식사 후 대청소를 하고, 오후 세시면 차와 케익을 함께 먹은 후 퇴근을 합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되어야 업무가 시작되니 주말이 상당히 여유롭지요. 프랑스는 주간 35시간 노동이 법적인 기준인데, 이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나흘을 일한 후, 닷세째(금요일)는 세시간만 일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모든 프랑스 노동자가 35시간만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노동시간이 국가의 기준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유럽의 분위기와 정반대인 국가가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은 원래 평균 노동시간이 긴 나라인데, 90년대 후반부터 노동환경이 악화하면서 근로시간이 더 늘어났고, 이제는 아홉시 전에 퇴근하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주변에서 "부럽다"는 소리를 들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만약 아침 여덟시에 출근해 저녁 아홉시에 퇴근한다면 하루 13시간 일하는 것이고, 닷세 동안 65시간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거의 프랑스 기준 시간의 두배 가까운 노동시간이지요.)

한국 정부는 몇년 전에는 삶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주5일제를 추진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된 주5일제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기업들은 토요일을 쉬는 대신 평일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고, 직장인들은 주말을 여유롭게 보내며 재충전을 하기 보다 공부를 하기 위해 토요일 새벽부터 학원에 나가거나,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 파트타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진심이 담기지 않은 주5일제는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뿐이죠.

물론 지나치게 휴식을 많이 취하는 것이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유럽은 휴일, 휴가가 많다 보니 툭하면 가게 문을 닫아 놓아서 물건 하나 사기도 쉽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유럽만큼 부유하지 않은 나라라면 경제를 개발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삶을 보면 너무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삶의 리듬이 무너져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해의 움직임이 계절을 낳고, 달의 움직임이 조수간만의 차를 낳듯, 자연엔 거대한 리듬이 존재합니다. 자연속에 사는 인간은 그러한 리듬을 따라 살 때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땡볕이 내리쬐고 곡식이 여물어가는 여름에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했지만, 논밭이 눈으로 덮히고 동물이 동면하는 겨울이면 일을 멈추고 사랑방에 모여 앉아 이웃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이른바 농번기와 농한기의 순환이었죠. 하지만 기계가 생산을 주도하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노동자도 기계처럼 밤낮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인간은 "자연의 리듬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지식 사회가 도래하고, 기계처럼 작동하는 인간이 아닌, 창조적인 인간이 필요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휴식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영화 모던 타임스에 나오는 찰리 채플린 처럼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나사만 조이는 작업을 하려면 많은 휴식이 필요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창조적인 작업을 하려면 적절한 양의 휴식이 꼭 필요합니다. 창조는 정신적 소모가 큰 작업인 만큼, 창조적 작업이 끝나고 나면 긴장을 풀어야 다시 창조성을 발휘할 준비가 되는 법이죠. 그래서 배우, 가수 등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작업과 휴식을 번갈아가며 하기 마련입니다.

저도 주말에 잘 쉬어야 한주간 글을 쓸 소재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말에도 글을 쓴다면 소재를 소비만 할 뿐, 개발할 여유가 없기에 블로그 운영을 오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휴가는 단지 시간의 낭비가 아닌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자신을 정비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남은 여름 기간 동안 바쁜 삶에서 벗어나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도록 권해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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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 자주 오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일주일에 다섯 번 글을 올리려고 노력합니다. 어찌 보면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매일 새로운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때로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죠. 그래서 요즘은 일종의 로테이션 시스템을 개발해, 머릿속에 글을 쓰는 순서를 정해놓으려고 노력합니다. 우선, 주말에는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세 가지 정도 소재를 개발합니다. 월요일이 되면 주말에 생각했던 글을 하나 쓰고, 화요일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이 남는데, 주말에 생각했던 소재가 아직 남아있으면 하나를 더 씁니다. 만약 이 소재를 글로 옮길만한 때가 아직 안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냥 머릿속에 남겨두고(이를 영어로 "putting it on the back burner"라고 하죠), 주중에 인터넷에서 접한 소식을 바탕으로 하나를 작성합니다. 남은 이틀은 주간에 생각난 소재를 활용하거나, 아니면 아주 옛날에 생각해 두었던 소재를 활용합니다(즉, back burner에 눠 두었던 소재를 꺼내 쓰는 것이죠). 물론 이는 매우 엉성한 시스템이지만, 어차피 글 쓰는데 완벽한 시스템이란 존재하지 않고, 대충 패턴만 정해 놓으면 어떻게든 굴러는 가더군요. 그래도 가끔 저녁이 되었는데 글 쓸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오늘 같은 날)는 패닉에 빠지기도 합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신기한 일은, 반쯤 준비된 소재를 머릿속에 담아두면 언젠가 거의 완성된 형태로 다시 생각난다는 점입니다. 제 글에는 많은 예화가 들어가는데, 주제에 맞는 예화를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죠. 하지만,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이를 머릿속에 담아두면 언젠가 이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여러 가지 예화가 연결되어서 거의 완성된 글의 구조를 띠고 다시 생각이 납니다. 이렇게 되면 글쓰기가 쉬워지죠. 이 글도 오래전 부터 생각하던 주제지만, 아까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할 때 갑자기 거의 완성된 형태로 머릿속에 떠올라 쉽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생각이 정리되는 것은 무의식의 작용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고는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동시에 일어나는데, 보통 의식의 영역만 중요시되고, 무의식의 영역은 무시되죠. 하지만, 무의식도 의식만큼이나 중요하고, 의식이 할 수 없는 기능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창작의 영역은 의식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무의식이 거들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죠. 그래서 많은 위대한 음악가는 자신이 쓴 곡을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받아 적었을 뿐이다."라고 설명하고, 많은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마음대로 활동하도록 풀어놓았을 뿐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전형적으로 의식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영감을 받는 모습을 설명하는 표현이죠. 예술가들이 밤에 작업을 많이 하는 것도, 밤이 되면 의식의 지배가 약해지면서 무의식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의식의 도움은 예술가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반인도 무의식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가 잦죠. 영어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또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Let me sleep on it."이라고 말합니다. 즉, "이 문제를 두고 잠을 자겠다."는 뜻이죠. 잠을 자면 의식이 정지하고 무의식이 활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무의식은 의식과 다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기에, 의식으로는 풀리지 않던 문제를 풀 수도 있습니다.

무의식과 만나는 매우 중요한 통로는 바로 꿈입니다. 꿈은 의식이 정지한 수면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만, 기억에 남는다는 점에서 의식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의식은 꿈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고, 무의식은 꿈을 통해 의식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있죠. 과학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케쿨레는 벤젠의 분자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해답을 찾지 못하다가  꿈속에서 뱀이 꼬리를 문 모습을 보고 벤젠이 탄소 원자의 고리로 되어 있다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과학의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무의식의 도움을 받은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컴퓨터에는 보통 CPU(중앙처리 장치)와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장착되기 마련입니다. CPU는 일반적인 연산을 하고, GPU는 그래픽 관련 연산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OS는 대부분 CPU와 GPU를 따로 관리하기에 비효율적이었죠. 하지만, 다음 달에 나오는 애플의 새로운 OS X인 스노우 레오파드는 GPU로 하여금 CPU의 연산 기능을 분담하도록 해준다고 합니다. 즉, 지금까지 CPU 혼자서 정보를 처리해야 했다면, 이제는 GPU도 같이 일한다는 말이죠. 의식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CPU만 의지하고 GPU는 거의 활용을 못 하는 컴퓨터와 같고, 무의식을 활용하는 사람은 CPU와 GPU를 함께 활용하는 컴퓨터와 같습니다. 특히, 창조성이 많이 필요한 시대이기에 무의식을 활용하는 법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무의식을 활용하기 위해선 무의식을 적대시하지 말고, 무의식의 영역에서 어떠한 메시지가 오는지 귀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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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의 변천사

사회 2009/08/14 05:57
얼마 전 뮌헨을 방문했다가 저녁을 먹으려고 맥도날드에 갔습니다. 한쪽에서 햄버거를 팔고, 한쪽에서 커피와 샌드위치 등을 팔기에 '매장 하나를 맥도날드와 카페가 나눠쓰나 보다'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둘 다 맥도날드더군요. 한쪽은 전통적인 맥도날드인 데 비해 커피와 샌드위치 등을 파는 쪽은 맥카페였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맥카페 광고를 보긴 했는데, 독일에 와서야 실체를 본 것이죠. 저는 커피를 안 마시니 커피의 맛을 평가할 수는 없었지만, 매장 분위기만큼은 스타벅스에 못지않을 만큼 세련되더군요.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는 패스트 푸드를 비판한 책 Fast Food Nation이나 맥도날드 음식의 유해성을 고발한 영화 Super Size Me 등이 나오면서 맥도날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언제보다도 강해졌습니다. 유럽에서도 맥도날드 하면 유럽 고유의 문화를 파괴하는 미국식 싸구려 문화, 경제 정의를 파괴하는 다국적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맥도날드는 주요 시장에서 총체적인 이미지의 위기를 겪는 중이죠. 그런데 따지고 보면 맥도날드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스타벅스는 세련된 사람이 즐기는 브랜드, 자유로운 도시인을 위한 브랜드, 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 등으로 알려졌기에 이미지가 좋습니다. 그러니 맥도날드로선 스타벅스를 닮고 싶겠고, 이를 위해서 투박한 이미지의 햄버거 판매업을 넘어서 스타벅스처럼 세련된 기업들이 많은 커피 판매업으로 진출해야겠죠. 게다가 패스트푸드업은 건강에 안좋다는 인식 때문에 성장성이 의심되는데 비해 커피 판매업은 아직 성장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미래를 대비해서라도 맥도날드가 카페로 변신을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맥도날드가 커피에 대한 노하우는 부족할지 몰라도, 세계적으로 보유한 엄청난 숫자의 매장을 생각할 때, 언젠가 스타벅스만큼 성공적인 커피 판매 체인이 되지 말란 법도 없겠죠.

맥도날드가 사업 모델을 바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사실 맥도날드는 이미 햄버거 판매업에서 부동산 임대업으로 옮겨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맥도날드는 부동산을 사들이고, 그 부동산을 대리점주인에게 맡기고, 대리점주인으로부터 매달 월세를 받는 것이 주요 사업모델입니다. 맥도날드가 햄버거 판매가 아닌 부동산 임대업에 집중하는 이유는, 임대를 해주면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대리점주인과 계약을 맺으면 매달 정해진 월세가 들어오기 때문에 경기 침체에도 수입이 줄어들 걱정을 안 해도 되죠. Fast Food Nation은 맥도날드가 새로운 메뉴를 계속 개발하는 것은 대리점이 햄버거를 많이 팔아 월세를 잘 내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만약 모든 맥도날드 매장에서 매출이 준다면 결국 월세도 낮춰줄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본다면 맥도날드가 맥카페를 만드는 것도, 결국은 대리점들이 돈을 많이 벌어 월세를 잘 내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기업이 하나의 사업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기업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다른 사업으로 업종을 변경하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분야에서 다른 역할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오늘날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하는 노키아, 삼성, LG가 반세기 전에는 모두 통신과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던 기업들이라는 사실을 볼 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업 종목의 변경은 매우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죠.

이발소를 생각해봅시다. 이발소는 머리를 깎는 일을 하는 단순한 사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이발소가 맡은 기능은 다양했습니다. 의사가 흔하지 않던 시대에는 칼과 가위를 다루는 이발사들이 간단한 수술도 시행했다고 합니다(이발소의 표시인 빨간색, 파란색, 하얀색 띠는 동맥, 정맥, 붕대에서 나왔다는군요). 그런데 의학이 발달하면서 이발소가 의료행위를 하지 않게 되면서 이발소는 지역 사회 사교의 장소라는 역할을 맡습니다. 사람들은 머리를 깎을 순서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환담을 나누었고, 그러다 보니 머리를 깎지 않는 사람도 이웃을 만나려면 이발소에 모여들었습니다(이는 유럽과 미국의 상황이고, 한국에선 비슷한 시기에 복덕방이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발소가 행한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면도였습니다. 안전 면도날이 없던 시절, 숙련된 솜씨의 이발사들에게 면도를 맡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따라서 매일 이발소에서 면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특히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20세기 후반까지 이러한 전통이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역 공동체가 해체되고, 안전면도기가 보급되면서 이발소는 사교장의 의미를 잃었고, 면도를 해주는 일도 무의미해졌습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이발소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고, 특히 남자들이 미용원에 가는 풍조가 생겨나면서 이발소는 추억을 잊지 못하는 중년, 노년의 고객을 중심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이발소는 다시 한 번 새로운 전기를 마련합니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거하고 저렴하게 머리만 깎는 이발소들이 생겨난 것이지요. 이러한 가계는 가격을 낮춘 대신 손님이 기다리는 공간(과거엔 사교의 역할을 위해 꼭 필요하던 공간)을 줄여 임대료를 줄였고, 이발 기술을 배운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이발사들을 고용해 인건비를 낮췄죠. 이러한 이발소들은 다른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고 저렴하게 머리만 깎기 바라던 고객의 필요를 채워줬기에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수십 년 경력의 이발사가 하얀 가운을 입고 면도까지 해주는 이발소는 찾아보기 어렵고, 젊은 이발사들이 간편한 유니폼을 입고 이발하는 체인점이 대다수를 차지하죠.

빠르게 변하는 상황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조직은 도태하기 마련이죠. 시대에 맞게 변하려면 지금까지 이 조직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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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니 세상을 바꾸는 블로그의 한RSS 구독자가 700명에 달했더군요. 생각난 김에 구글 리더 구독자 수를 확인해보니 437명으로, 두 서비스만 합해도 구독자 수가 천 명을 넘었습니다. 작년 가을에 한RSS 구독자가 40명 수준이었다는 점을 본다면 1년 만에 거의 20배로 구독자가 증가한 셈이군요.

재작년에 처음 블로그를 공개했을 때는 무조건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당시엔 다음 블로거뉴스에 원고를 보냈는데, 글이 베스트에 선정되면 하루에 몇만 명도 쉽게 오더군요. 하지만, 베스트에 자주 선정되다 보니 베스트에 선정이 안되면 불안해지면서, '어떻게 하면 다음 글을 베스트에 올릴까?'만 고민하게 되는, 일종의 중독현상이 나타나더군요. 게다가, 방문객이 많이 오다 보니 악플도 많이 달리고, 심지어 저를 공격하는 글을 올리는 블로거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방문자가 많아도 대부분 다음 블로거뉴스를 통한 방문자기 때문에 제 블로그 자체가 좋아서 오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그래서 블로거 뉴스에 글을 보내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자주 올리지 않자 방문자가 만 명대에서 백명대로 뚝 떨어졌죠. RSS 독자수가 적었다는 사실도 애독자가 적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년 가을부터는 메타 블로그에 의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블로그를 찾아오는 독자를 늘리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 결과 급격한 방문자의 증가는 없었지만, 조금씩 독자가 늘어났고, 특히 직접 방문자보다 RSS 구독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제 글을 정기적으로 읽는 독자가 많아졌습니다. 고정 독자가 늘면서 이제는 '읽는 사람도 없는데 괜한 글을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안 해도 되니 기쁩니다.

블로그를 운영할 때 책처럼 운영할 수도 있고, 잡지처럼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책과 잡지는 비슷한 듯하지만 매우 다른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책은 인기 있는 주제를 다루면 많이 팔리고, 인기 없는 주제를 다루면 많이 팔리지 않습니다. 물론 저자가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라면 어떤 주제에 대해 쓰든 책이 잘 팔리겠지만, 이러한 경우는 매우 적겠죠. 따라서 책을 많이 팔려면 인기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에 비해 잡지는 한 번 독자층이 형성되고 나면 꾸준히 고정 독자들에게 팔려나갑니다. 특히 광범위한 독자를 대상으로 만드는 우리나라 잡지와 다르게, 서양의 잡지는 우표 수집, 자동차 모형 제작 등 특수 분야만 다루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잡지는 시류의 흐름과 무관하게 고유의 색깔을 낼 수가 있습니다.

블로그를 책처럼 운영한다면 사람들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글을 쓰고, 사람들이 메타 블로그나 검색엔진을 통해 찾아오기를 기다리겠죠. 이렇게 운영하면 늘 가장 인기가 높은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독자를 많이 모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류에 따라 주제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 더 자극적인 주제, 더 자극적인 제목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가 쉽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에 비해 블로그를 잡지처럼 운영한다면, 블로그의 색깔을 분명히 밝히고, 이러한 색깔을 좋아하는 특정한 집단을 대상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 이러한 블로그는 단기간에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는 없지만, 시류의 흐름과 상관없이 고정 독자층을 위해 글을 쓸 수 있겠죠.

저는 이 블로그를 잡지처럼 운영하기 원합니다.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 글을 사랑하는 소수의 고정 독자가 늘 찾아오는 블로그가 되기 원하는 것이죠. 그럴 때에 더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할 제목, 더 검색엔진에 노출되기 쉬운 제목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을 수 있고, 더 알찬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앞으로도 기력이 다할 때까지 블로그를 운영할 작정입니다. 즉,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앞으로 수십 년간 블로그에 글을 올릴 계획이라는 뜻이죠. 이렇게 장기적으로 본다면 당장 인기를 끄는 것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겠죠. 그럴 때 결국 더 많은 사람을 만날 기회도 따라오리라고 봅니다.

RSS로 읽는 분이나 직접 찾아오는 분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이 블로그를 운영할 힘을 얻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내용으로 글을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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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중요성

문화 2009/08/12 06:29
얼마 전 해럴드 블룸의 The Western Canon을 읽고 나서, 그 책에 나온 서양문학의 고전들을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 밀턴의 실낙원 등, 몇번씩 읽으려고 했지만 결국 끝내지 못하고 포기했던 작품들을 다시 읽는 것이죠. 큰 마음을 먹고 시작했지만, 역시 고전을 읽기는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요즘 나온 책은 나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이 오늘날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현대인의 말로 설명하였기에 술술 읽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전은 나와 다른 시대에,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이 나와 다른 시대의 언어로 쓴 책이기에 쉽게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읽으려면 보통 고전을 설명하는 책도 같이 읽어야 하죠. 그래서 고전은 읽는데도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공부하는데도 시간이 걸리기에 대단히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고전은 시간을 초월하는 깨달음을 담고 있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 속에 담긴 보화를 캐낼 수만 있다면, 고전을 연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이죠.

감독이자 코미디언 로베르토 베니니는 단테의 신곡을 TuttoDante라는 제목의 공연으로 만들어 이탈리아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심지어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로 공연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성공은 그가 신곡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기 때문에 가능하겠죠.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É Bella)도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밑바닥에 깔린 영화입니다. 만약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세상이 나의 의지의 표상이라면, 내가 어떠한 상황에 부닥쳤든 내 의지에 따라 세상의 실체를 바꿀 수 있고, 따라서 수용소에 갇힌 사람도 의지로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겠죠.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러한 철학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철학적 기반 위에 만든 영화와 단지 웃기기 위해 만든 그의 다른 영화(예를 들어 Il mostro)를 비교해 보면, 영화의 깊이가 전혀 다르고, 따라서 완성도도 많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로베르토 베니니를 단지 웃기기만 하는 코미디언이 아닌, 진정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예술가로 격상시킨 요인은 고전에서 발견한 지혜라고 할 수 있죠.

생각해 본다면 과거의 교육은 거의 모두 고전 읽기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젊은이들에겐 호머, 플라톤 등이 남긴 위대한 책을 읽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교육에서도 유교의 고전을 읽는 것을 가장 중요했고, 많은 젊은이는 기본 한자 교육을 마친 후에는 스승도 없이 혼자서 몇 권의 고전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당시엔 책이 워낙 비쌌기에 여러 권을 구해 읽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진리는 이미 성현들이 모두 발견했다."는 인식 때문에 새로운 책보다 고전을 중요시했죠.

하지만, 근대에 들어 보편교육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고전을 읽으려면 대단한 지적 능력이 필요한데, 보편교육을 받는 모든 어린이에게 이러한 능력을 기대할 수 없었고, 따라서 모든 학생이 쉽게 이해하도록 표준화한 교과서가 고전을 대치하게 됩니다. 하지만, 교과서는 저자의 개성이 담긴 책이 아니고 그저 표준 교육을 마치기 위해 소비하는 책일 뿐이죠. 그러니 교과서는 재미가 없고, 교육과정을 마치면 더 이상 읽지 않는 법이죠. 그에 비해 고전은 열심히 읽다 보면 책과 사랑에 빠지고, 이는 더 많은 고전을 읽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교과서만 읽으며 공부하는 요즘 학생들이 공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공부를 나중에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만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해럴드 블룸은 예일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중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예일대가 그 정도라면 다른 대학의 상황은 더 심하겠죠.

교과서의 또 다른 문제는 교과서가 철저하게 삶과 분리된 책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교과서를 누가 썼는지도 모르고, 누가 썼는지 안다고 해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고전은 위대한 사상가의 삶이 녹아 있는 책입니다. 따라서 교과서만 읽으면 지식을 어떻게 삶에 연결해야 할지 깨닫기가 힘든데 비해, 고전을 읽으면 삶 자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교과서를 읽고 삶이 바뀐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고전을 읽다가 인생의 방향을 바꾼 사람은 많죠.

바쁜 현대 사회를 살면서 고전을 읽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지혜가 담긴 고전은 가치를 측량하기 어려울만큼 귀중한 보물입니다. 고전 읽기를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열심히 좋은 책을 읽는다면, 언젠가는 고전 속에 담긴 보물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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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TAG 고전, 교육

지도자의 권한

문화 2009/08/11 05:44
제가 1999년에 LA를 방문했을 때 친척들로부터 들은 일입니다. 당시 부통령인 알 고어가 사촌 동생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왔는데, 학생들을 모아 놓고 연설하고 싶었지만, 교장이 허락을 안 해줘서 교사들만 만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부통령이면 대통령 다음 가는 국가의 권위자인데, 일개 교장이 허락을 안 한다고 학생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당시로는 제게 매우 충격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유럽에 살다 보니 당시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권위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 올라 어떤 권위를 행사한다는 말은, 특정한 일을 해내기 위한 수단을 얻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권위가 아니라 직무이고, 모든 직위에는 직무를 규정하는 job description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Job description은 대통령이나 사장 같은 최고 책임자뿐 아니라 전산 담당자, 비서, 청소부 등 조직 내의 모든 사람에게 존재합니다. 즉,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job description에 나온 대로 일을 해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도자라도 구체적인 job description을 따라 일하는 사람의 고유 영역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서양식 리더십입니다. 그러니 부통령이라도 "학생들에게 최고의 학습환경을 조성해준다."는 job description에 따라 일하는 교장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수 없죠.

그에 비해 한국식 권위자는 권위와 권위자가 구분되지 않습니다(이는 서양에서는 지식을 객관화하는 데 비해, 동양에서는 지식이 곧 지식을 소유한 사람과 동일시되는 현상과 비슷하죠). 따라서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책임자가 된다는 말은 "아랫사람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부릴 권리를 갖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권위자는 job description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자기가 알아서 적절하게 조직을 이끌어 가면 됩니다. 또한, 권위자가 곧 권위이기에, 권위자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아랫사람에게 사적인 업무를 시켜도 대부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교수들이 대학원생들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거나, 군대에서 장교가 사병에게 개인적인 업무를 시키는 경우가 그러한 예죠. 이처럼 아랫사람에게 직업 업무와 관계없는 일을 시키는 경우는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서양인의 머릿속에서 지도자는 업무의 영역에 대해서만 권위가 있지, 업무 외의 영역에 대해선 일을 시킬 권위가 없기 때문이죠.

한국의 지도자는 서양의 지도자와 다르게 아랫사람에게 영역의 제한을 받지 않고 권위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 고유의 영역을 잘 존중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조직 내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문서가 아닌 지도자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그 영역에 대해서도 내가 최고 권위자다."라고 주장한다면, 밑의 사람들은 그냥 따라야 하죠. 그에 비해 서양은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아랫사람의 영역을 침범했다면 객관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죠.

얼마 전 하버드대학의 헨리 루이스 게이츠 교수가 자기 집에 들어가다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은 경찰이 또 인종차별을 저질렀다고 분개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경찰이 어리석게 행동했다."(acted stupidly)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이 엄청나게 반발했고,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좀 다른 말을 썼어야 했다."(I could've calibrated those words differently)며 거의 사과에 가까운 말을 했습니다. 물론 이를 백인 유권자를 겨냥한 제스쳐로 볼 수도 있긴 하지만, 어떤 사람을 어떻게 체포할지는 경찰이 결정할 문제이고,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이를 직접 비난한 것은 월권행위입니다. 따라서 인종 문제를 떠나서,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해야 맞는 일이죠. 조직의 관점에서 봐도, 대통령은 연방정부의 수반이고 지역 경찰(local police)은 연방정부 소속이 아닙니다. "국가의 어른"이라고 아무 영역에 대해서나 코멘트를 하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에선 대통령이라도 연방정부 바깥의 조직에 대해 간섭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죠.

서양식 권위자와 일해보면 편하긴 한데, 정을 느끼긴 어렵습니다. 철저하게 정해진 업무의 영역 내에서만 만나고, 그 이상의 관계는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부당한 요구를 하지 않고, 아랫사람의 영역을 인정해 준다는 점은 장점이기도 합니다. 동양의 권위 개념은 유교에 바탕을 두었는데, 유교라는 이념이 무너지면서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유교가 무너진 이후에 자란 젊은 세대는 전통적인 권위의 개념에 대해 많이 답답해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세대 간에 서로 이해하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권위자도, 권위 아래 있는 사람도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겠죠.

P.S. 저는 오늘부터 3주 휴가이긴 한데, 지난달에 너무 자주 글을 쉬어서 휴가 기간 전체 동안 블로깅을 쉬기는 뭣하고, 8월 마지막주만 한 주 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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