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1/23 국가의 탄생 (11)
  2. 2009/11/16 지도자의 자질 (5)
  3. 2009/11/07 씨름과 스모, 또는 의식(ritual)의 중요성에 관하여 (3)

국가의 탄생

정치 2009/11/23 07:02
얼마 전 제가 일하는 곳에서 베를린으로 견학을 다녀왔습니다. 총리관저(청와대와 비슷한 곳이죠)에도 가보고, 국회의사당도 방문하면서 독일의 정치체제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독일 국기가 유럽연합 국기가 함께 걸려 있는 모습이 마치 독일이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 보이더군요. 하긴 최근 유럽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뽑히는 등 유럽 통합의 강도가 강해지는 중이니, 이런 식으로 간다면 텍사스 공화국이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듯, "독일"이라는 나라가 "유럽연합"이라는 시스템에 사실상 흡수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죠.

한반도에는 "국가"의 개념이 오래전 부터 존재했지만, 유럽은 국가라는 개념이 생겨난 지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nation이 국가를 뜻하기도 하고, 민족을 뜻하기도 하고, 국민을 뜻하기도 하는 등 의미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는 유럽의 역사적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국가라는 체제가 존재하지 않았고, 부족(tribe)만이 존재했습니다. 부족은 보통 오늘날의 국가보다 훨씬 작아서 한 지역에 여러 부족이 존재하고, 이들은 많은 싸움을 벌였죠. 하지만, 로마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작은 부족인 라틴족이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결국 지중해 주변을 모두 정복하면서 유럽 대부분은 로마제국에 흡수됩니다.

로마제국이 붕괴하면서 각 지역엔 새로운 정치조직이 들어서는데, 민족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지도자가 드물었기에 보통 하나의 민족은 여러 개의 부족으로 나뉘게 됩니다(민족은 보통 언어와 문화가 같습니다. 부족은 언어와 문화가 같은 사람 중에서도 내가 진정으로 나와 같은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집단입니다. 따라서 게르만족은 한 민족이지만, 그 속에는 반달족, 동고트족, 서고트족, 프랑크족 등 다양한 부족이 존재했죠). 특히 로마제국에 속하지 않았기에 부족 고유의 전통이 강하던 라인강 동쪽 지역과 로마제국 이후 정치적으로 큰 혼란에 휩싸인 이탈리아 지역엔 수많은 왕국, 공국이 생겨나죠. 이러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민족에 속하는 이웃 부족들을 경쟁자로 여겨 적대시했고, "우리는 한 민족이니 힘을 합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예를 들자면, 중세시대에 밀라노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등은 주도권 다툼을 벌였고,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프랑스, 신성로마제국(독일) 등 외세를 끌어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가 찾아오면서 민족에 대한 각성이 시작됩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가 "이탈리아를 통일할 군주"를 꿈꾸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주죠. 사람들은 점차 하나의 민족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진 현실에 대해 반성하고, "하나의 민족을 하나의 정치단위로 묶자!"는 주장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생각이 가장 잘 표현된 지역이 바로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나 독일과 다르게 작은 단위의 국가가 난립하지 않았기에 통합이 쉬웠고, 르네상스 이후로는 중앙정부의 권력이 강하였기에 국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프랑스에서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고,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전파한다며 주변국에 전쟁을 일으키자 주변국가들은 나폴레옹의 군대와 싸우면서 민족주의에 눈뜨게 됩니다. 즉, 민족의식이 확실한 프랑스인들과 싸우다 보니 자신들도 민족의식이 싹튼 것이었죠. 이렇게 해서 19세기에 들어서면 서유럽은 민족국가(nation-state)라는 이념을 중심으로 재편되는데, 이는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정치체제를 갖추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가장 늦게 이러한 흐름에 합류한 국가는 이탈리아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워낙 많은 지역으로 나뉜데다가 교황령이 반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서 통일이 어려웠지만, 가리발디 장군이 혁명군을 지휘해 교황령을 비롯한 모든 지역을 군사적으로 정복함으로 통일을 이룩해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통일이 늦어졌기에 지금도 지역적 차이가 많이 존재하죠.

유럽에서 싹튼 근대적 민족의식은 19세기 유럽의 팽창을 따라 전 세계로 퍼지고, 지금은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민족주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에티오피아를 제외한다면 19세기까지 민족국가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지만, 유럽에서 독립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우리는 나이지리아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우간다 사람은 "우리는 우간다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등 국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민족의식이 빠르게 성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민족의식의 성장은 유럽을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몰아넣습니다. 각국이 민족의식을 중심으로 뭉치자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낫다"라는 경쟁심이 싹트고, 이는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죠. 이러한 아픔을 겪고 난 유럽은 민족주의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였고, 민족이 아닌 유럽을 공동체의 단위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새로운 태도의 표현이 바로 유럽연합이죠. 이제 유럽연합 내의 대부분 지역에선 같은 통화를 쓰고, 여행을 할 때 여권이 없어도 됩니다. 거의 한 나라와 같은 상황이 된 것이죠. 이처럼 유럽이 통합된 상황에선 전쟁을 할 수가 없겠죠. 결국, 유럽은 전쟁을 막고자 민족주의를 약화하고 로마제국식의 거대 정치체제를 받아들인 것이죠.

유럽의 통합이 강화하면서, 한국에서도 "한중일도 통합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민족의 경계가 뚜렷하기에 유럽보다 민족주의가 훨씬 강합니다. 유럽의 민족국가들은 역사가 겨우 100-200년 정도지만(물론 그전에도 유럽의 국가들은 존재했지만, 이러한 국가는 "민족국가"라고 부르지 않죠), 한국은 통일신라 이후로 천 년이 넘도록 단일 국가가 유지되었고, 일본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지가 400년이 넘었습니다. 중국은 땅이 넓고 여러 민족이 함께 살기에 유럽과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중국의 한족이 만주족의 지배를 떨쳐낸 것은 19세기 유럽 민족주의의 영향이 큽니다), 한족 중심의 사고인 중화주의의 전통이 강하기에 주변국과 쉽게 연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민족주의의 역사가 짧은 유럽은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거대한 기구를 받아들였지만, 같은 현상이 동아시아에서 반복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역사가 다르니 의식도 다르기 때문이죠.

P.S. 제가 다음 주에 1주일간 미국을 다녀옵니다. 주말이 끼기 때문에 글을 올리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어쨌든 12월 중순이면 지금 맡은 일이 끝나기 때문에 12월 말 부터 글을 좀 더 자주 올릴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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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지도자의 자질

사회 2009/11/16 06:00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팔레스타인 군대를 대표하는 골리앗은 이스라엘군에게 "한 명이 나와 싸움을 벌여 내가 이기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고, 그가 이기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기로 하자!"고 제안합니다. 골리앗은 키가 큰데다가 청동 갑옷으로 무장하였기에 이스라엘군 중에선 아무도 그와 맞대결을 펼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중 다윗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현대인의 관점에서 읽는다면, 우리는 군사지도자끼리 싸움을 벌여 전쟁의 승부를 가리자는 제안이 얼마나 황당한지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만약 2차대전 때 처칠이 히틀러에게 "레슬링 매치로 전쟁의 승패를 가리자"라고 했다거나,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 사담 후세인이 조지 W. 부시에게 "팔씨름으로 승부를 결정하자"라고 제안한다면 우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고대 전쟁사를 보면 장수끼리 승부를 겨루는 장면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는 그리스군의 장수 아킬레스와 트로이군의 장수 헥토의 싸움이 나옵니다. 삼국지에는 여포가 적장들과 차례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지도자 간의 무력 대결"이라는 개념은 현대로 넘어오면서 거의 사라졌지만, 20세기 중반까지 주먹들의 세계에선 조직의 우두머리끼리 겨뤄 승부를 가리는 풍습이 존재했죠. 문명이 파괴된 미래의 모습을 다룬 포스트맨이라는 영화를 보면, 군사조직의 지도자와 대결을 펼쳐 그를 꺾는 사람은 그 조직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극한다는 규칙이 나옵니다. 이는 영화 속의 사회가 과거의 상태로 돌아갔음을 보여주는 장치죠.

옛날 사람들이 조직 지도자 간의 힘 대결을 정당한 승부로 간주한 것은 당시 인류가 지도자의 육체적인 힘을 대단히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는 몸을 통한 에너지의 효율적인 변환이었습니다. 인간은 음식을 먹음으로 열량을 섭취하고, 이를 힘으로 바꿔 농사를 지음으로 다시 열량을 생산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농사 기술로는 먹는 열량 만큼 식량을 생산하기가 어려웠고, 많은 사람은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힘이 센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생존에 유리했고, 따라서 사람들은 힘이 센 사람을 대단히 우월한 존재로 존경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고대 사회엔 힘이 센 사람에 대한 전설이 많고(이스라엘의 삼손, 그리스의 헤라클레스, 중국의 항우 등), 이처럼 힘이 센 사람은 곧 영웅으로 칭송되고, 심지어 국가의 지도자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힘은 중요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음식을 먹어 에너지로 바꾸기보다는 석탄이나 석유를 에너지의 원료로 해서 기계를 움직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과거엔 큰 돌덩이를 옮기려면 많은 힘이 들었지만, 기계를 쓰면 힘이 약한 사람도 쉽게 옮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산업 사회가 되면 힘이 센 사람을 존경하는 풍습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 대신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자원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존경받게 되죠. 자원 관리는 다양한 자원을 조합해 결과물을 생산해야 하는 산업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만들어 팔려면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판매하는 파트를 각각 관리해야 합니다. 이 중 생산 파트를 살펴보면 재료를 수급하고, 품질을 유지하고, 인력을 관리(사원 복지 문제도 포함)하며, 다른 파트와 의견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활동이 조화롭게 진행되려면 각 부분의 필요를 이해함과 동시에 전체적인 흐름을 잘 파악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산업사회엔 이처럼 자원을 잘 관리해서 결과물을 내놓는 매니저가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습니다.

산업사회 지도자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들은 바로 군사 지도자입니다. 군사지도자들은 다양한 자원(음식, 의복, 무기, 병사 등)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어야 합니다. 군사 지도자가 군대를 잘 관리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저러한 관리자가 나라를 관리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기가 쉽겠죠. 그래서 미국인들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 장군을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또한, 군인 자신도 "내가 군대를 운영하듯 국가를 운영하면 잘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군사지도자가 정권을 탈취한 것은 이러한 논리 때문입니다.

하지만, 효율을 강조하는 산업사회는 비인간화라는 문제를 낳고, 사람들은 단지 자원을 잘 관리하는 지도자가 아닌, 삶에 방향을 제공할 지도자를 찾게 됩니다. 21세기 사회는 물질적 풍요보다 의미의 부재가 더 큰 문제로 부각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은 올바른 삶의 모범을 보여줄 지도자를 찾고, 그러한 지도자를 따름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기 원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지도자가 되려면 능력 뿐 아니라 삶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불거진 대통령 후보의 도덕성 문제는 산업사회에서 자란 세대와 그 이후 세대가 지도자를 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잘 보여줍니다.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관리자형 지도자"의 덕목 중 도덕성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공장장이 공장의 생산성을 올리기만 한다면, 그가 공장 밖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날 젊은 세대는 지도자를 곧 내 이상의 표현으로 보고, 따라서 양심적이지 않은 지도자를 뽑는다면 이는 곧 내가 타락한 인간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러한 세대는 "도덕성과 상관 없이 유능한 사람을 뽑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혐오하기 마련이죠. 그에 비해 산업사회에서 자라난 사람은 유능한 후보를 도덕성 문제로 거부하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판단하겠죠.

21세기형 지도자의 또 다른 중요한 자질은 의사소통 능력입니다. 과거에 사람들은 지도자에게 카리스마, 강한 의지력, 조직관리 능력 등을 요구했지만, 오늘날엔 지도자의 의사소통 능력이 어떤 능력보다 중요한 지도자의 자질로 인정됩니다. 미국에서 무명의 정치인이었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중요한 원인은 그가 Dreams from my Father와 Audacity of Hope라는 책을 쓰고,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효과적으로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행한 연설 때문이었죠. 그의 연설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고, 이로 인해 그는 일약 전국에서 유명한 정치인이 됩니다. 결국 그의 의사소통 능력은 그가 대통령이 되도록 길을 만든 셈이죠.

시대가 바뀌면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격이 바뀌는 것도 당연합니다. 지도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이 나뉘는 원인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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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온 씨름은 1983년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생기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씨름은 힘만이 아닌 기술이 중요하고, 기술이 좋다면 자신보다 덩치가 큰 선수를 넘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죠. 실제로 큰 인기를 끈 이만기 선수는 초기에 한라급 체중이었지만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백두급 선수들을 꺾고 천하장사에 여러 번 올랐죠. 이러한 씨름의 특성 때문에 씨름을 보다가 스모를 보면 억지로 몸무게를 늘린 선수들이 힘으로 상대를 밀어내려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을 살펴보면 한때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한국의 씨름은 완전히 쇠퇴하였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스모는 여전히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왜 씨름은 높은 인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되었을까요?

씨름이 인기를 상실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씨름이 현대적 스포츠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원래 씨름은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명절 때 동네 사람들이 모여 즐기던 놀이였습니다. 따라서 씨름은 명절의 한 부분이었고, 명절이면 빠지지 않고 즐기는 행사였기에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천하장사대회도 처음엔 설날 등 명절에 열렸습니다. 그런데 씨름이 인기가 높아가면서 씨름은 "명절의 한 부분"이 아닌, "힘과 기술로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로 변신합니다. 이렇게 씨름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씨름은 명절로부터 독립하였고, 다른 스포츠, 즉 역도나 권투처럼 효율적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운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올림픽이 아니면 역도 중계를 TV로 보는 사람이 적고, 권투도 인기를 잃은 지 오래되었는데, 씨름만 인기를 끌 이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요즘 시청자는 극도로 사실적인 일본의 이종 격투기, 또는 잘 짜진 연극인 미국의 프로 레슬링을 원하지, 어정쩡하게 둘이 규칙에 맞춰 경기를 치르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포츠로 변신한 씨름이 인기를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이죠.

스모는 전통 의식을 그대로 보존함으로 21세기까지 인기를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씨름과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보기에 우스워 보이는 스모의 여러 가지 요소(기저귀 같이 보이는 마와시, 상투 튼 머리 모양, 경기 전 천천히 다리를 드는 모습)는 관중에게 '당신은 시간을 초월한 의식(儀式, ritual)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도구입니다. 즉, 스모는 스포츠로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일본인에게 역사를 뛰어넘는 일본의 문화에 참여하도록 해주는 통로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띄죠. 그렇기에 스모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요소가 있음에도(예를 들어, 스모선수의 등급은 객관적 성적에 따라 자동으로 결정되지 않고, 스모 협회의 판단에 따라 결정 됩니다), 여전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죠.

인간은 의식을 통해 삶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자신의 주권을 확립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 시간대는 잠에서 깨서 출근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바쁘고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깨자마자 하는 일련의 행위(기지개를 켜고, 세수를 하고, 신문을 먹으면서 아침을 먹고, 시계를 힐끔 보고 지하철 시간에 맞춰 집에서 나가는 등)를 통해 아침 시간대를 다스립니다. 이러한 의식을 확립하고 나면 매일 "오늘은 어떻게 출근 준비를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피할 수 있죠.

의식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에 박자를 표시하는 역할도 합니다. 과거에 인간이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던 시절엔 계절을 따른 의식을 지냄으로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유럽인들은 봄의 기운이 가득한 5월 초가 되면 메이데이를 즐겼고, 한국인은 더위가 극에 달하는 복날이 되면 보양식을 먹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인이 설을 쇠거나 미국인이 가을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도 과거에 계절에 따른 의식이 현대에도 살아남은 예라고 할 수 있죠.

의식은 평범한 행위에 신비한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도 합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이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 고수레(고시래)라고 하며 음식을 땅에 던지는 풍습도 음식을 먹는 행위를 영적인 행위로 바꾸는 의식이었습니다. 마법의 술이라고 알려진 압생트를 설탕 위에 부어서 압생트의 색이 바뀌는 모습을 보고 마시는 사람은 "이 술은 정말 신비한 술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마련이죠.

이처럼 의식은 어떤 행위의 특정한 의미를 강조하거나, 없는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따라서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에 의식을 결합하면 중요한 행위로 바뀔 수 있습니다. 테킬라의 본고장인 멕시코 사람들은 테킬라를 그냥 마십니다. 그런데 멕시코 밖에서는 테킬라를 마시기 전 손등에 묻은 소금을 핥고, 테킬라를 마신 후에는 라임을 빠는 방식으로 마시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작은 의식은 이미 수백 가지 술이 존재하는 세계 주류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테킬라가 자리를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식이 없이 마시는 테킬라는 그냥 술일 뿐이지만, 소금을 핥고 라임을 빠는 행위를 추가함으로 테킬라는 의식의 한 부분이 되기 때문이죠.

마틴 린드스트롬이 쓴 Buyology에 따르면 기업들은 의식이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자사의 제품을 의식과 연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팟 터치나 아이폰을 잠글 때 나는 "철커덕" 소리는 다른 제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소리입니다. 이러한 소리를 들으며 제품을 쓰던 사람이 다른 제품을 쓰면 무언가 허전하게 느끼겠죠. 그러고 보면 맥의 시동음이나 윈도우의 시동음도 사용자를 자사 제품에 묶어 두기 위한 작은 장치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이 리듬을 잃을수록 사람들은 의식을 통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정말 이러한 의식이 내게 의미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의식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만, 올바르지 못한 의식은 인생을 낭비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죠.

P.S. 저는 지난주부터 엇그제까지 이탈리아에 강의차 다녀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글을 쓸 수 있을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일정을 소화하는데 벅차 글을 못올렸습니다. 사실 정해진 날자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하나의 의식이라 그냥 건너뛰고 나니 매우 찜찜하더군요. 어쨌든 약속을 못지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음주엔 베를린과 프라하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다녀오는데, 돌아와서 주말엔 글을 올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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