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에 해당되는 글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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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1/29 [연재] 아이패드의 의미 2
  3. 2010/01/28 [연재] 아이패드의 의미 1
  4. 2010/01/26 아바타의 역사 (3)
  5. 2010/01/18 분노 (5)
  6. 2010/01/12 미국의 변화 (2)
  7. 2010/01/07 21그램 (1)
  8. 2010/01/05 언론의 사명 (1)
3. 주머니 밖의 인터넷

아이폰이 있기 전, 아이팟이 있기 전,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형기기는 PDA였습니다. 애플이 내놓은 뉴튼 시리즈로부터 PDA를 대중화한 Palm의 제품들, 그리고 컴팩 등이 내놓은 포켓 PC 계열 제품들 까지, PDA는 빠른 시일 내에 발전하였고, 미국에서 PDA의 대명사 처럼 쓰이는 "Palm Pilot"을 내 놓은 Palm 사는 한때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PDA가 인기를 끌면서 심지어 PDA를 소재로한 영화 Little Black Book가 개봉되기도 했죠.

하지만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PDA의 인기는 빠르게 가라앉고, 그 자리를 PDA와 휴대전화의 기능이 결합된 스마트폰이 채우게 됩니다. PDA가 아무리 유용하다고 해도, 전화망을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다면 유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이러한 흐름에 따라 Palm에서는 기존의 PDA 시장을 포기하고 Treo 스마트폰으로 옮겨갔고, 포켓 PC는 윈도우 모바일로 진화합니다. RIM은 비즈니스맨에게 잘 맞도록 이메일 기능에 집중한 블랙베리로 스마트폰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릅니다. 휴대전화시장의 최강자 노키아는 자체 제작한 심비안 OS를 바탕으로 스마트폰 시장도 석권을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회사가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스마트폰은 여전히 일반인이 다루기에 어려운 기기로 인식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컴퓨터와 구조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쓸 때 스마트폰에 대해 한동안 공부를 해야 되기 때문이죠. 게다가 인터넷이 된다고는 하지만 이메일 정도나 잘 될 뿐, 웹 브라우징 등은 컴퓨터로 하는 것 보다 훨씬 불편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플은 2007년에 아이폰을 공개합니다. 아이폰은 "Internet in your pocket"이라는 광고문구가 잘 보여주듯, 그냥 스마트폰이 아니라 인터넷을 쉽게 쓸 수 있는 스마트폰입니다. 따라서 화면이 작긴 하지만 웹브라우저로 컴퓨터에서 보는 웹페이지와 동일한 내용을 볼 수 있고, 내장된 어플들도 웹의 데이타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죠. 물론 이러한 기능은 지금은 당연시 되지만, 3년전만 해도 매우 혁신적이었고, 사람들은 늘 가지고 다니는 휴대전화로 인터넷의 방대한 자료를 쉽게 활용할 때 얼마나 삶이 편해지는지를 경험하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휴대의 편리성은 아이폰의 크기를 제한했고, 크기가 작기 때문에 아이폰의 유용성도 제한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에 썼듯 이북 리더는 어느정도 화면이 커야 하는데 아이폰으로는 편안하게 이북을 읽기가 어렵고, 동영상을 볼 때도 화면이 작아 답답합니다. 게임도 아이폰으로는 작은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내용이 제한되기 마련이죠. 그렇다면 "주머니 속의 인터넷"은 "작은 화면으로 보는 답답한 인터넷"이라는 약점을 지니기 마련입니다. 만약 아이폰의 기능을 대부분 포함하면서 주머니에 들어갈 크기라는 제한을 없앰으로 가능성을 넓힌다면 어떤 기기가 나올까요? 바로 아이패드입니다.

물론 아이패드는 아이폰처럼 쉽게 휴대할 수 있는 기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현대인이 이동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두세시간 이동하고 열시간 이상은 실내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미국인은 회사일을 마치고 나면 저녁이나 주말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이처럼 실내에서 아이폰을 쓴다면 눈이 아프고, 넓은 화면이 필요한 다양한 어플을 쓰지 못합니다. 그에 비해 아이패드를 쓴다면 눈도 편하고 어플 선택의 폭도 넓어지겠죠. 그렇다면 아이폰에 익숙한 사람중엔 실내에 거하는 시간이 긴 장소에 아이패드를 비치하고 아이폰에서 즐기던 내용을 더욱 편하게 즐길 사람이 많겠죠. 이러한 시나리오 때문에 애플은 아이패드 발표회장에 편안한 의자를 놓고 거기 스티브 잡스가 거기 앉아 아이패드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물론 애플은 아이패드를 아이폰이나 아이팟 터치 사용자에게만 판매할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이폰 OS와 어플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일 것이고, 여기에 다양한 기능의 이북 리더를 원하는 사람, 넷북 대신 아이패드를 쓰기 원하는 사람, 예쁜 PMP를 원하는 사람을 합치면 기본적으로 아이패드를 구매할 중심그룹이 형성됩니다. 애플은 이들을 중심으로 1세대를 판매하면서 시장의 흐름을 봐 가면서 2세대를 내놓겠죠. 이는 아이팟이 처음 나왔을 때 매킨토시 사용자들이 주로 아이팟을 구매했지만(1세대 아이팟은 매킨토시에만 연결이 되었습니다) 나중엔 더 넓은 대상으로 마케팅을 했던 것과 같은 수순입니다. 애플은 앞으로 가격과 기능 면에서 아이패드를 더욱 매력적인 기기로 다듬을 것이고, 그때 쯤이면 아이패드는 아이폰 만큼이나 성공을 거둘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연재 순서
1. 모바일 기기 라인업 확대
2. 이북 시장 진출
3. 주머니 밖의 인터넷
4. 규모의 경제
5. 새로운 GUI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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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PDA, 아이폰
2. 이북 시장 진출

얼마 전 아마존은 지난 크리스마스날 이북(ebook) 주문이 종이책을 앞질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아마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북 리더인 킨들을 받은 사람들이 이를 위한 이북을 주문하였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얼마 전까지 존재가 미미하던 이북이 종이책을 앞지르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빠른 변화는 무엇보다 아마존의 노력 때문입니다.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 개념으로 출발하여 지금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로 성장하였는데, 기존의 온라인 서점 비즈니스로는 한계를 느끼고 이북 활성화를 위해 킨들이라는 자체 이북 리더를 개발하였고, 온라인 서점을 운영하며 출판사와 맺은 관계를 활용해 출판사들이 이북 판매에 나서도록 설득하였습니다. 또한, 독자들에겐 낯선 이북에 적응하기 쉽도록 보통 20달러 이상인 신간서적(hardcover)을 9.99달러에 판매하는 파격적인 가격정책으로 이른 시일 안에 이북시장을 석권하였습니다.

아마존이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자 소니를 비롯한 기존의 이북 리더 제조사부터 아이리버 등 후발주자까지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 지금 괜찮은 이북 리더가 꽤 많이 나온 상태입니다. 여기다가 구글은 대학교들과 손잡고 대학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두 스캔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양의 이북을 확보하였습니다. 구글은 저자들과 저작권 협의를 하지 않고 이 일을 진행하였기에 소송이 걸리긴 했지만, 최근에 집단 계약을 통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였고 곧 이북 판매에 나설 계획입니다. 이렇게 되면 구글은 순식간에 엄청난 이북을 판매하는 이북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게 될 뿐만 아니라, 기존에 이북으로 구매가 불가능했던 책들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이북 시장의 규모 자체도 커지리라는 예상입니다.

이러한 이북 시장의 지각변동은 미디어 유통업이 사업의 중요한 부분인 애플에 도전이자 기회를 제공합니다. 지금 애플이 운영하는 아이튠스 스토어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음악, 비디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거래되는 시장입니다. 애플이 이처럼 미디어 유통을 확실히 장악하였기 때문에, 한 번 아이튠스로 미디어를 구매하기 시작한 사람은 이러한 미디어가 재생되는 애플 기기를 구입하기 마련이고, 이는 곧 애플이 MP3 플레이어, 휴대전화 부분에서 강세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이북은 애플에 매우 생소한 영역이고, 이러한 영역에 진출하기 위해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죠.

물론 지금도 애플 제품에서 수많은 이북을 즐길 수 있긴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폰용 킨들이 있기 때문에 아이폰을 쓰는 사람은 킨들 이북을 마음껏 읽을 수 있죠. 하지만 거대한 킨들의 스크린에 비하면 아이폰의 스크린은 너무 작습니다. 과거에도 팜이나 윈도우 모바일 PDA에서 이북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지만, 일단 킨들이 나온 이상 고객에게 작은 화면에서 이북을 보라고 강요하기가 어려워졌죠. 그렇다면 애플이 본격적으로 이북 시장에 진출하려면 이북리더로서 손색이 없는 제품이 필요합니다.

아이패드는 이러한 필요를 정확하게 채워주는 제품입니다. 아이패드는 맥북보다 훨씬 싸고, 휴대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킨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습니다. 특히 킨들이 이북, mp3 재생, 간단한 인터넷 서핑만 가능한 데 비해 아이패드는 기능이 훨씬 다양하다는 점에서 킨들보다 조금 더 비싸긴 하지만, 충분히 대안이 될만합니다.

킨들이 인기를 끈 중요한 원인은 킨들용 이북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킨들에 들어간 e-ink 기술이 책을 읽기에 적합한 화면을 보여주고, 백라이트가 없어도 되기 때문에 배터리가 오래간다는 기기의 장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은 "이북 기기는 e-ink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북이라는 하나의 기능만 하는 기기가 아닌, 범용 기기를 만들어온 애플로선 e-ink를 채용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애플은 기존 제품처럼 LCD를 썼지만, 보통 LCD가 아닌 고가의 IPS LCD를 썼습니다. 따라서 보통 모니터보다 훨씬 화질이 좋죠. 이 정도면 책을 읽는데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 제품은 아이폰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큰 배터리를 장착할 수 있고, 사용시간이 10시간에 달합니다. 이는 킨들 보다 못하지만, 이북리더로서 문제가 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겠죠.

애플은 iPad와 iBooks로 이북시장에 진출하기 원하지만, 애플의 노력이 성공하리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무엇보다 애플은 지금까지 출판사와 거래를 해본 적이 전혀 없어서 얼마나 많은 출판사로부터 이북을 공급받을 수 있을지가 문제입니다. 애플은 우선 다섯 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는데, 아무리 시작이라고 하지만 매우 적은 숫자임이 분명합니다. 만약 애플이 더 많은 출판사와 계약을 맺지 않는다면 그 사이에 아마존이 신제품 출시, 가격 인하 등의 방법으로 킨들 사용자를 더 늘려 애플을 견제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겠죠. 또 한 가지 문제는 킨들이 많은 이북을 9.99달러에 판매하는 데 비해, 애플은 13-15달러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애플은 이 가격의 70%를 출판사에 주는데, 그렇다면 출판사는 권당 10달러 정도만 수익을 얻습니다. 아마존은 출판사에 권당 15달러 정도를 주고 사 와서 9.99달러에 판매하기에 출판사로선 애플보다 아마존에 판매할 때 더 이익이 많이 남습니다. 이는 아마존이 적자를 감수하면서 이북시장을 키우는 데 비해, 애플은 기존의 미디어 유통업에 하나의 분야를 더 추가하는 상황이라 크게 손해를 보면서 이북을 판매할 마음이 없다는 차이 때문이겠죠.

업데이트- 아마존이 애플보다 출판사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데, 출판사들의 반응은 오히려 애플의 모델을 선호하는 듯 보입니다. 맥밀란이 킨들 스토어에서 자사 이북을 제거한 것이 좋은 예죠. 이는 두가지 이유 때문인데, 우선 아마존은 최신 인기도서의 가격으 9.99달러로 정해놓았고, 출판사는 이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없는데 비해, 애플은 출판사가 적정한 범위 내에서 가격을 정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출판사는 가격 결정권을 주는 애플을 선호하는 것이죠(애플은 음악도 과거엔 곡당 99센트로 일괄적용했다가 최근엔 가격을 어느 범위 내에서 선택하도록 허용했죠). 또한 아마존의 이북가격은 너무 낮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마존 이북을 구입하다 보면 "책은 10달러 미만에 살 수 있다"는 인식이 굳어지고, 이는 지금 20달러 이상에 판매하던 책들을 앞으로는 대폭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출판사들은 킨들의 모델에 불만을 품을 수가 있고, 이는 킨들의 모델로 저렴한 가격에 이북을 사기 원하는 소비자들의 뜻과 충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들이 애플의 가격 모델이 마음에 든다고 킨들에 책을 공급하지 않고 애플에만 공급한다면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볼 때, 이번 사태는 일시적인 힘겨루기로 끝나고, 결국은 새로운 협의를 통해 양쪽에 모두 책을 공급하게 되리라고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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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몇 주 전부터 루머로 떠돌던 아이패드가 드디어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루머에 들떴던 네티즌들은 실물을 보자 실망하는 기색이 완연하고, 전문 블로그들의 반응도 Engadget이 "Magical? Really? Doesn't seem that magical to us!"라고 평하고, Gizmodo는 "iPad가 안 좋은 8가지 이유"를 기사로 싣는 등 부정적인 의견이 대세를 이루는 듯 보입니다. 특히 한국어 입출력이 빠진 점은 한국 소비자들이 매우 기분 나쁘게 생각할만한 점입니다(물론 한국 발매에 앞서 추가되긴 하겠지만).

물론 애플이 과거에 Cube 같은 실패작을 낸 적이 있고, 최근에도 Apple TV처럼 빛을 못 보는 제품을 발표하였다는 점을 볼 때 iPad가 꼭 대중에게 사랑받는 기기로 자리 잡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애플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보여주는 제품이라는 데서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앞으로 며칠간 아이패드에 담긴 애플의 전략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바일 기기 라인업 확대

몇 년 전 애플은 Apple Compuer Inc.에서 Apple Inc.로 사명을 바꾸었습니다. 이는 애플이 컴퓨터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는 뜻이죠. 실제로 한국에선 애플이 매킨토시보다 아이폰으로 더 유명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각 기업이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지금, 애플도 사업 영역을 특정 품목으로만 제한할 필요는 없겠죠. 그렇다면 컴퓨터라는 이름을 버린 애플의 새로운 정체성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힌트를 우리는 이번 iPad 발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 발표를 시작하며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모바일 기업이다.시장점유율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가 비교 대상으로 선택한 삼성, 노키아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애플보다 시장점유율이 큰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아이팟, 랩탑 등 휴대기기를 모두 포함한다면 애플이 이들 회사보다 판매액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죠. 이는 다시 말해서 애플이 휴대기기 시장에서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앞으로도 이러한 분야에 집중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애플의 이러한 전략은 고가 데스크탑 맥인 맥 프로의 개발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됩니다. 과거엔 애플이 맥 프로(PowerPC CPU 시절엔 파워맥)를 통해 많은 돈을 벌었고, 따라서 새로운 모델도 자주 내놓았지만, 지금은 업데이트가 느릴 뿐 아니라, 업데이트가 되도 속도가 조금 더 빠른 CPU를 쓰는 등 조금 바뀔 뿐, 획기적인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는 지난 몇 년간 획기적인 변화가 계속 일어난 랩탑 제품군(맥북, 맥북 에어, 맥북 프로)과 비교되지요. 앞으로도 애플은 데스크탑 제품은 아이맥만 신경 쓸 뿐, 맥 프로나 맥 미니 개발엔 큰 투자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휴대전화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지만, 삼성이나 노키아보다 애플의 시장점유율이 작은 원인은 삼성이나 노키아는 수십 가지 제품을 판매하는데, 애플은 아이폰 한 제품만 판매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애플이 정말 모바일 기업으로 거듭나려면 모바일 라인업을 확대해야 합니다. 애플이 2년 전 맥북에어를 발표한 것도 이러한 전략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한 이후, 애플은 제품 라인업을 간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애플이 전통적으로 저가 맥북과 고가 맥북 프로 사이에 들어갈 맥북에어를 발표한 것은 이제는 다양한 제품으로 랩탑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죠. 스티브 잡스가 이번 발표회에서 언급했듯, 아이패드는 아이폰/아이팟 터치라는 소형 모바일 기기와 랩탑 사이의 공간을 채워 주는 기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는 가격에 따라 아이팟 터치부터 맥북프로까지 다양한 애플의 모바일 기기를 선택할 수 있고, 애플은 이를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더욱 늘릴 수 있지요.

이렇게 본다면 아이패드는 "모바일 기기 라인업 확대를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라는 애플의 전략을 위해 꼭 필요한 제품입니다. 맥북에어도 소비자들이 열광한 제품은 아니지만, 랩탑 라인업을 확대함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데 나름대로 기여했듯, 아이패드도 모바일 기기 라인업 확대라는 분명한 역할이 있는 제품입니다. 따라서 모바일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애플로서는 내놓을 수밖에 없는 제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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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의 역사

문화 2010/01/26 06:22
아바타의 역사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천만 관객을 돌파하였고, 심지어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괴물의 벽을 넘을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오더군요. 이로써 카메론 감독은 타이타닉과 아바타로 역대 흥행 영화 1위와 2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화제를 모으는 현상이 있으면 이와 연관된 정책을 만들기 좋아하는 관료들은 이번엔 한국에서도 아바타 같은 영화를 만들도록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아바타 같은 작품이 나온다면, 세계 모든 나라 정부가 영화 산업에 돈을 쏟겠지요. 아바타는 미국 정부가 지원했다고 탄생한 것이 아니듯, 한국 정부가 디지털 영상 산업을 지원한다고 꼭 제2의 아바타가 한국에서 탄생하리란 보장도 없을 것입니다. 정말 아바타의 성공을 본받으려면 할리우드가 아바타를 만든 원동력을 이해하려면 할리우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할리우드는 50년대까지 할리우드를 지배하던 "가족중심의 영화"라는 개념에 반발하면서 탄생하였습니다. 지극히 보수적이고 순진한 미국인들은 영화도 이러한 가치를 반영하기 원했고, 따라서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오락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의 주류를 이루죠(대표적인 예가 사운드 오브 뮤직). 그런데 60년대로 넘어오면서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고민, 불안 등을 반영한 영화가 없다는 점에 대해 실망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단지 온 가족이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봐서는 풀리지가 않기 때문이죠. 이처럼 어른을 위한 영화를 원하는 관객과 전통적인 가족 영화를 만드는 할리우드 사이에 틈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틈새를 비집고 로버트 알트만(올트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피터 복다노비치, 윌리엄 프리드리킨 등의 새로운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들어옵니다. 유럽 영화와 60년대 감수성의 세례를 받고 새로운 미학을 익힌 이들은 엑소시스트, 대부, 라스트 픽쳐 쇼, MASH 등을 내놓으며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둡니다. 이들의 등장으로 감독을 소모품 취급하던 스튜디오들은 영향력을 급격히 상실하고, 미국도 유럽처럼 감독 중심의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작가주의 영화의 황금기인 70년대가 탄생하게 되죠.

하지만, 이렇게 감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선, 감독은 사업가라기보다는 예술가이고, 따라서 예술만 고려한 작품을 만들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감독이 스튜디오의 간섭 없이 마음껏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었다가 흥행에 실패하게 되면 뒷감당이 안되기 마련이죠(스튜디오 중심의 작품이라면 스타 배우 기용 등 최소한의 흥행 안전장치를 두기 마련이고, 또한 제작비를 어느 선에서 제한하기 때문에 사업적인 면에서 감독이 혼자 만든 영화보다 안정성이 높죠). 또한, 거대한 권력을 누리게 된 감독들은 권력에 따르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마약에 중독되거나 정신이상이 나타나면서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70년대 말에 이르면 과거에 대단한 명성을 누리던 감독들의 작품이 흥행에 줄줄이 실패하고, 70년대식 감독 중심의 제작방식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조스를 만들고, 조지 루커스가 스타워즈를 만들면서 할리우드는 또 다른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제는 10대가 열광할만한 주제에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할 볼거리를 많이 집어 넣은 블록버스터가 할리우드의 주류로 자리 잡는 것이죠. 이와 함께 지극히 개인적이고 성인을 위한 영화를 만들던 70년대의 거장들은 대부분 사라지게 됩니다(그 중 알트만과 코폴라는 90년대에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오죠. 스콜세즈는 80년대에도 꾸준히 활동을 하지만, 그가 과거의 명성을 회복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였죠). 이제 스튜디오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저렴한 가격에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젊은 감독을 대거 기용하는데, 그 중의 한 명이 제임스 카메론입니다. 캐나다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카메론은 스타워즈 등 할리우드 영화를 동경하다 결국 영화계에 입문하고,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으로 내세운 터미네이터로 흥행감독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는 70년대 말부터 할리우드를 지배한 블록버스터 정신의 가장 뛰어난 계승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관객을 매료할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잘 알죠. 그가 아바타를 디지털 3D로 만든 것도 "대중을 즐겁게 할 최고의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흥행성공에서 보이듯, 그의 계산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죠.
 
결국, 아바타는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 가족 오락 영화->이에 대한 반발인 작가주의 영화->이에 대한 반발인 블록버스터로 이어지는 할리우드의 흐름 속에서 탄생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지 않고, "영화 산업이 돈 된다더라." 하는 소리만 듣고 영화에 투자한다면 돈도 못 벌고 영화도 망칠 뿐입니다(실제로, 한국 영화계의 한가지 특징은 "블록버스터"를 내세운 영화가 거의 늘 흥행에 실패한다는 점이죠). 진정으로 한국 영화가 발전하려면 아바타를 흉내 내지 말고, 한국 영화 고유의 흐름을 이해하고, 이러한 흐름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도서- Easy Riders, Raging Bulls: How the Sex-Drugs-and-Rock 'N' Roll Generation Saved Hollywood by Peter Bis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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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분노는 현대인을 괴롭히는 두 가지 대표적인 감정입니다. 우울증이 불행의 내적 표현이라면 분노는 불행의 외적 표현이지요. 우울증이 자신을 파괴한다면 분노는 다른 사람을 파괴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파괴한다면 이는 곧 자신의 파괴로 이어지기 마련이죠.

최근엔 한국에도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면서 우울증의 위험을 인식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죠. 이는 한국인이 분노에 대해 관대한 한국의 문화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뒤끝만 없다면" 화를 가끔 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분노를 중요한 감정적 문제로 봅니다. 특히 지도자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함부로 화를 낸다면 이를 심각한 인격적 결함으로 여깁니다(전에 어떤 서양 사람의 강의를 들으니,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원인은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벌을 받아서"라고 하더군요. 한국에선 전혀 들어보지 못한 해석이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분노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분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이 노력합니다. 그래서 서양엔 anger management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회사가 많고, 관련 서적도 다양하죠.

하지만, 다양한 분노 통제 기법이 개발되었음에도, 분노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기법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미국 시트콤 사인펠드에는 분노의 문제가 있는 프랭크가 화가 날 때마다 "Serenity now"라고 말함으로 분노를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하지만, 프랭크는 화가 날 때 이 구절을 소리침으로 화가 더 나고, 결국 분노를 다스리는 데 실패합니다. Anger Management라는 영화에는 분노 치료를 받는 주인공이 화를 더 돋우는 분노 관리 전문가를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코미디이기에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도 분노의 문제는 우울증만큼이나 치료법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노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분노가 삶에서 도움이 되는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싸움을 할 때 상대방에게 화가 나면 평소보다 훨씬 큰 힘으로 맞서 싸울 수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냥 말하면 상대방이 무시하겠지만, 화가 나서 따지고 들면 나의 요청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겠죠. 이처럼 분노는 위급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매우 유용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분노에 의존해서 살다 보면 분노의 부작용이 따라옵니다. 무엇보다 분노는 관계를 해친다는 점에서 해롭습니다. 인간관계는 대부분 개인의 영역 바로 바깥에 있는 공동 영역에서 일어나는데, 어떤 사람이 분노를 통해 공동 영역을 독점해 버린다면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 옆에 있으면 손해를 본다."고 피하게 되고, 결국 외톨이가 됩니다. 물론 다시 안 볼 사람이라면 화를 내서 내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익명의 대상을 상대로 분노를 무기로 써서 이익을 얻기도 합니다. 무리한 요구를 들어달라고 화를 내는 이른바 "진상 손님"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고, 누구를 대상으로 화를 내든, 화를 냄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데 익숙해지다 보면 분노를 의존하게 되고, 이러한 경향이 심해지면 결국은 분노의 노예가 되기 마련입니다. 즉, 처음엔 이익을 위해 분노했는데, 나중엔 분노하면 손해를 보는 줄 알면서도 분노를 그칠 수 없는 지경이 되죠. 이는 뇌가 외부의 자극에 대해 분노라는 방식으로 반응하는데 너무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이른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는 분노를 조절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 약물 중독자와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죠.

분노의 문제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관련이 깊습니다. 어린 시절에 삶에서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방법이라도 써야 된다고 느끼는 사람은 분노라는 무기를 쓰는 습관을 키우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분노의 문제를 겪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바쁜 부모가 생존경쟁을 위해 자녀를 돌볼 시간이 없는 오늘날, 대부분 사람은 분노라는 마약에 의지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며 자라고, 이는 결국 분노의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분노의 문제는 해결이 힘들므로 예방에 힘쓸 수밖에 없습니다. 즉, 자녀가 감정적인 안정감을 느끼도록 사랑을 표현함으로, 화를 내는 습관이 생기지 않도록 지도를 해야 자녀가 감정적으로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죠. 이러한 감정적인 안정이야말로 어떠한 물질적 유산보다 자녀의 인생을 부유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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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변화

사회 2010/01/12 23:20
롤랜드 에머릭 감독이 1996년에 만든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입니다. 지구를 점령하러 온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미국인들의 활약을 그린 이 영화는 예술적 가치를 찾기는 어렵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적인 미국인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정부를 영화의 중심부에 놓는다는 점에서 최근에 나온 외계인 소재 영화와 다릅니다. 정부가 영화의 중심이라면 영화는 사태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룰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개인의 이야기는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비해 2005년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외계인의 침공을 개인의 경험으로 축소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다릅니다. 2008년에 나온 맷 리브스 감독의 클로버필드는 아예 상황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를 완전히 배제한 채(우주 전쟁은 거시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나레이션 이라는 장치를 동원하지만, 클로버필드는 그러한 장치가 없죠), 주인공의 관점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외계인이 지구를 파괴하는 영화에서 외계인은 지구인의 적이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주 전쟁이나 클로버필드는 인류의 적인 외계인에 맞서 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화에서 주인공은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적에게서 도망가려고 노력하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그에 비하면 평범한 소시민부터 대통령까지 전투기를 몰고 출동해 외계인과 싸우는 인디펜던스 데이의 영웅주의(heroism)는 완전히 다른 시대의 정신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90년대까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세계적 재앙에서 인류를 구하는 것은 늘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국은 가장 위대한 나라이기에 세계를 지키는 중요한 임무도 당연히 미국인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지구로 다가오는 소행성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우주로 출동하는 1998년 작 아마겟돈은 이러한 태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죠. 물론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도 외계인을 무찌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국인들이 도맡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 미국은 외계인과 벌이는 전쟁에서 다른 나라들을 이끌고, 다른 나라들은 순순히 미국을 따릅니다. 이는 미국은 세계의 지도자이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지도력을 받아들이리라는 생각의 표현이죠.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9/11 사태에서 보듯 미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자신을 잃게 됩니다. 이제는 헐리우드에서 나온 영화에서조차 미국은 선의 화신이 아니라, 그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평범한 한 나라로 묘사됩니다. 미국과 아랍권의 충돌을 그린 2007년 작 The Kingdom에서 미군 병사들과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동일한 말로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은, 결국 이 분쟁에서 어느 한 쪽이 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2006년에 이오지마 전투를 두고 미국의 시각과 일본의 시각에서 각각 영화를 만들었는데(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이 영화들을 보면 미국이나 일본 어느 한 쪽의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리죠. 심지어 전통적인 관점에서 만든 마지막 대작 전쟁영화라고 할 수 있는 2001년 작 진주만(Pearl Harbor) 조차 일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즉, 이 영화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적을 악당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21세기의 새로운 태도에 가까운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인류가 다른 행성을 착취하는 정복자의 모습으로 나오는 아바타(Avatar)에 이르면 미국인의 자기부정이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죠.

 미국이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포기하면서, 영화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역할을 맡는 국가나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우주 전쟁에서 외계인은 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패배하고, 클로버필드는 외계인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지 패배하는지를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인류가 집단적으로 눈이 머는 상황을 그린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는 이러한 위기에서 인류를 구해내려는 노력을 다루지 않고, 인류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점차 시력을 회복하면서 영화가 끝나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가장 미국인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잘 반영한 인디펜던스 데이를 만든 롤랜드 에머릭 감독이 미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인디펜던스 데이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그가 고질라에서 핵실험이 낳는 재앙에 대해 다루었고,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에서 지구 온난화를 방치한 미국 정부의 잘못으로 환경재앙이 닥치는 모습을 그리는 등 liberal한 정치색을 보인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투모로우는 영화의 중심에 정부가 아닌 가족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개인들을 두었다는 점에서도 인디펜던스 데이와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죠. 그가 최근에 만든 2012에서 미국 중심의 영웅주의에서 얼마나 멀어진 모습을 보였는지 궁금해집니다.

미국인들이 집단적으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고, 거시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조차 자신감을 잃고 애매하게 끝을 맺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21세기에 가장 성공적인 슈퍼영웅 프랜차이즈라고 할 수 있는 배트맨에서 배트맨은 검은 옷을 입고 밤에만 활동하는 어두운 영웅일 뿐 아니라, 다크 나이트에선 대의를 위해 대중에게 거짓말을 하는 도덕적으로 애매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는 과거의 슈퍼영웅 영화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죠. 결국,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이상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은 계속 자신 없고, 연약하며, 도덕적으로 모호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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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느 민족에서나 하늘의 별을 별자리로 묶어내는 풍습은 같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은 너무 많고 다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이를 별자리로 묶으면 영웅과 신, 동물들의 이야기가 탄생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이야기는 단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의미란 곧 이야기에서 나오고, 이야기 중에서도 하늘에 떠 있기에 모두가 볼 수 있는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띄기 때문이죠.

이처럼 대부분 민족은 별을 보며 이야기를 만드는데 그쳤지만, 그리스 민족은 별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물론 별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노력은 중국이나 바빌로니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중국이나 바빌로니아의 학자들은 별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하에서 점성술(astrology)을 연구하였고, 그리스의 학자들은 별의 움직임 자체를 알고자 천문학(astronomy)을 연구하였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처럼 자연현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수학적인 연구의 전통은 결국 서양에 과학이 탄생하는 원인이 됩니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수학적으로 연구한다면 인간은 세상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지식을 활용한다면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학지식의 유용성을 프란시스 베이컨은 "지식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말로 설명했죠. 르네상스 이후에 서양에서 과학이 발달하면서, 세상을 수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과학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양이 과학을 바탕으로 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를 정복하면서 과학적 사고는 모든 나라로 퍼지게 되죠.

하지만, 과학을 바탕으로 한 사고가 좋은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닙니다. 많은 나라가 서양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하고, 가족관계가 멀어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인간성이 황폐해지는 등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자연의 이용은 자연의 파괴로 이어졌고, 이는 곧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과학적, 합리적 사고의 폐해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라, 조금 어리석고, 조금 손해 보는 듯 해도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는 삶에 대해 관심을 보이게 되었죠. 한국에서 몇 년 전 유행하던 "웰빙"이라는 표현도, 결국은 지나치게 합리적으로 목적만 추구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물질세계에 살고, 물질세계는 대부분 수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인간은 단지 물질적 필요만 채우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물질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부분이 있고, 이처럼 신비한 부분을 지닌 인간은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죽어버리기 때문이죠. 모든 민족이 별자리를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었습니다. 물질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인생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잉태된 인간이 우주 역사의 0.00000001%도 안 되는 기간에 존재하다 사라지는 찰나의 삶에 무슨 의미가 존재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인생의 의미라는 말 자체가 비합리적인 언어의 사용 때문에 생겨난 무의미한 표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당신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말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죠.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인간의 마음속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인간은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하기 때문이죠.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과학에서 채워진다면,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인문학, 예술, 종교 등에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오늘날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은 과학의 영향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인생의 의미와는 매우 멀어졌는데, 이처럼 인문학이 변질되면서 인생의 의미 연구라는 본래의 임무를 저버린 것이야 말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경쟁하며 서로 자극하는 가운데 발전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선 대부분의 사람이 인문학, 예술, 종교 등에 관심을 보이고, 과학을 하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오늘날은 과학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원동력이고, 인문학, 예술 종교 등은 점차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기 원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는 과학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론 과학자들도 과학을 바탕으로 인생의 의미, 인간의 의미에 대해 연구합니다. 두뇌를 연구함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신경과학(neuroscience)이나 인간의 본성을 진화에서 찾으려는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 그러한 예죠. 또한, 인간이 죽을 때 몸무게가 21그램 줄어든다며, 영혼의 중량이 21그램이라는 주장도 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이라는 신비를 과학으로만 풀어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과학을 통해 지식을 얻지만, 과학 이외의 활동을 통해 지혜를 얻고, 이렇게 얻은 지혜야말로 인간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삶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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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사명

언론 2010/01/05 05:09
저는 얼마 전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의 특별 사면을 보면서, 이러한 결정을 한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보수언론 조선일보는 몇 시간이 지나도 이에 대해 온라인판에 소식을 올리지 않았고, 나중에야 슬그머니 정부의 결정을 두둔하는 듯한 사설을 시작으로 비판이 결여된 기사들을 올렸습니다. 쉽게 말해 문제가 커지길 원치 않기에 조용히 넘어가겠다는 태도였죠.

이러한 태도는 언론의 사명을 저버린 것입니다. 언론은 사실을 보도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참으로 언론의 본분을 다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인, 경제인들이 권력의 많은 부분을 독점합니다. 이렇게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죠. 이러한 권력의 비리를 언론이 지적하고 비판해야 국민이 목소리를 높이게 되고, 결국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만약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이 없다면 국가가 권력자들에게 휘둘리게 되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지금 이 나라의 보수 언론은 보수 정권이 들어섰기에 정권을 지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중입니다. 물론 정부가 잘한 일이 있을 때 이를 칭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언론이 정부에 대해 늘 긍정적인 보도만 하고, 정부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면, 정부가 잘못했을 때 이런 언론이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기 어렵겠죠. 따라서 정부와 지나치게 친한 언론은 언론의 사명을 망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삼성은 정부보다 더 권력이 강한 집단입니다. 이는 정부가 잘못하면 비판을 하는 언론이 조금이나마 있는데, 삼성을 비판하는 언론은 거의 없기에 삼성은 어떠한 잘못을 해도 국민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죠. 삼성은 한국에서 가장 큰 광고주이고, 자금 사정이 열악한 대부분 언론은 삼성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업습니다. 따라서, 지금 한국에서 삼성을 견제하는 기사를 쓸 수 있는 언론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보도 이후 삼성의 광고가 끊긴 한겨레와 시사저널에서 삼성 관련 보도를 했다가 직장을 잃은 언론인들이 만든 잡지인 시사인 정도뿐입니다. 실제로 조선일보도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는(물론 잘못하다가 선거에서 패할까 봐 충고하는 내용이지만) 가끔 싣지만, 삼성에 대해서는 늘 칭찬 일색의 기사만 쏟아냅니다. 어제 나온 삼성 창업주 이병철 씨에 대한 칼럼은 이러한 태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죠. 삼성이 단지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 한국 최고의 권력집단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권력에 대한 비판의 기능을 상실한 언론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언론의 또 다른 중요한 사명은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사회엔 늘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데, 사람들은 언론의 의견을 가장 모범답안으로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언론을 이렇게 신뢰하는 만큼 언론은 역사 앞에서 막중한 책임을 지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가 독일에서 인기를 끌던 시절, 히틀러를 "게르만 민족의 구원자"로 추켜세운 독일 언론인들은 역사의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관습이다."라고 주장하던 남부의 언론인들도 역사에 큰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기록되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언론은 이 사회가 역사의 어떠한 지점에 서 있는지 알고, 이러한 판단에 따라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언론은 이러한 심각한 고민 없이 일본강점기에는 "황국의 충성스러운 신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군사독재 시절엔 군사정부의 정통성을 옹호하는 등 현실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쪽으로 목소리를 냅니다. 한국의 언론이 이처럼 이익에 얽매이기 때문에 한국에는 큰 언론사는 있어도 미국의 뉴욕 타임스나 영국의 더 타임스처럼 존경받는 언론사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인 발전은 이루었지만 사회 전반에 걸친 불합리한 구조가 바뀌지 않는 중요한 원인은 언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한국 사회가 바뀌기 원하고,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가 되길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건전한 역할을 하는 언론을 키워주고, 이러한 언론이 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도록 열심히 사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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