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이나 관계에 기초한 집단(Gemeinschaft)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가족입니다. 가족은 이익을 넘어서는 집단이고, 건강한 가족이라면 가족 구성원이 가족을 위해 손해를 감수할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Gemeinschaft)의 개념이 사회(Geselschaft)의 개념으로 대치되는 흐름 속에서 가정의 의미도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바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죠.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들은 어머니를 놓고 아버지와 겨루고, 딸은 아버지를 놓고 어머니와 겨루는 관계 속에 삽니다. 이는 개인은 가족 속에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산다는 뜻이죠. 이러한 관점은 가족을 이상적인 사랑과 질서의 공동체로 보는 유교의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가족을 모델로 사회를 재구성하기 원했던 유학자들은 사회의 모범이 될 가족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렸고, 그에 비해 구성원의 이익 추구를 집단의 존재 이유로 보는 시각이 강한 서구 문화에서 자라난 프로이트는 가족조차 이익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한 것이죠.

가족을 이익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결혼에 대한 일반의 의식도 바뀌게 됩니다. "결혼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유교의 관점에서 답하자면 "가족을 위해서"입니다. 부모가 나의 결혼을 원하고, 결혼을 함으로 가족 구성원의 숫자를 늘려 가문의 세력을 키워야(농경 사회에서 노동력의 향상은 곧 부의 증가를 뜻했습니다) 하기 때문에 결혼해야 한다는 말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결혼을 해서 행복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젊은이들은 부모가 짝을 지어준 사람과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이익의 관점에서 보자면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나의 행복입니다. 만약 결혼을 해서 지금보다 행복이 줄어든다면 결혼할 이유가 없죠. 그러니 요즘은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한, 행복한 결혼을 하자면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많고(학력, 직장, 돈 등), 따라서 결혼 연령이 점차 높아집니다.

결혼이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면, 결혼을 했다가 행복하지 않다면 결혼을 취소해야겠죠. 따라서 서양이나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는 이혼율이 높습니다. 또한,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한다면 감정적, 재정적으로 손해가 크기 때문에 아예 결혼이라는 부담감을 제거하고 관계를 즐기기만 하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금 유럽에는 결혼한 커플 만큼이나 동거만 하는 커플이 많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동거(concubinage)가 정상적인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았기에 사회적으로 완전히 용납이 됩니다(예를 들자면,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사르코지와 대결을 펼쳤던 세골렌 루와이알이 또 다른 정치인인 프랑수아 올랑드와 결혼하지 않고 같이 살았다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혼과 동거는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동거를 하거나 이혼을 한다면 가정의 재생산이 안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개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동거나 이혼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으로 보이겠죠.

자녀출산도 그렇습니다. 전통적인 가족관에서는 자녀출산은 부모의 의무였지만, 이익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녀를 낳았을 때 얻는 유익이 낳지 않았을 때 얻는 유익보다 커야 자녀를 낳겠죠.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자면 자녀를 낳았을 때 얻는 유익이 자녀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수고보다 더 값지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출산율이 점차 낮아지는 것이죠. 출산을 나의 이익이 아닌, 자녀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즉, 자녀를 낳았을 때 과연 자녀가 행복할 만한 환경을 내가 제공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묻는 것이죠. 물론 이 힘든 세상에 태어나 행복하게 살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고, 그렇게 보자면 자녀를 낳지 않을 이유만 하나 늘어날 뿐입니다. 그에 비해 옛날 사람들은 출산할 때 자녀의 행복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물론 피임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전통적인 사회에서 자녀 출산은 부부의 의무였고, 자녀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든 아니든 부모에게 효도할 의무가 있었을 뿐이죠.

이처럼 가족이 이익 집단으로 바뀌면서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많이 변했습니다. 문제는 이익의 관점에서 가족을 보면 결혼을 할 필요도 없고, 자녀를 낳을 필요도 없는데, 그렇다고 합리적 판단에 따라 가정생활을 거부한다고 꼭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외롭고 쓸쓸하고 우울해질 가능성이 크죠. 영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에 나오는 "가정을 꾸리면 불행할 것 같아 결혼하지 않았는데, 아이와 함께 있는 부부의 모습을 보니 부러워서 눈물이 나더라"는 멕 라이언의 대사는 현대인의 고민을 잘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느라 자녀를 낳지 않으니 국가 전체의 출산율이 낮아져서 결국 국가적 위기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익만 추구하는 태도가 과연 올바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지금 미약하게나마 "공동체 회복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이처럼 인간을 이익 집단에 속한 존재로 보는 관점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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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로마로부터 이익 집단의 개념을 물려받은 유럽은 이익에 따라 작동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냅니다. 바로 근대 국가가 그것이죠. 근대 국가는 부족이나 민족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부족이나 민족은 혈연 공동체이고, 집단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가 전제됩니다(흑인들은 이러한 공동체 개념에 익숙하기에 처음 만나도 서로 "brother, sister"라고 부르죠. 백인들은 이러한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근대적인 국가는 혈연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구성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인위적인 조직이죠. 야코프 부르크하르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에서 국가를 예술 작품에 비유한 것(Der Staat als Kunstwerk)은 이러한 국가의 인위적 성격 때문입니다.

국가는 인위적 조직이기에, 국가는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력이 부족한 독일은 터키인을 많이 받아들였고, 결국 독일에 사는 터키인은 독일인이 되었습니다. 민족의 관점에서 보자면 터키인이 독일인이 될 수는 없지만, 국가의 관점에서는 가능하죠. 또한, 국가의 개념을 쓰자면 같은 민족도 손해를 끼치면 관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던 한국인들이 90년대에 들어오면서 통일에 따르는 비용을 이유로 통일을 꺼리게 된 것이 좋은 예죠.

이처럼 국가의 개념이 공동체에서 이익 집단으로 발전하는 현상은 유럽 역사의 독특한 산물이고, 다른 지역에선 국가를 이익 집단이 아닌 공동체의 연장으로 보려는 시도가 많았습니다. 중국이 좋은 예죠. 중국의 정치사를 지배한 유교 이념은 국가를 가족의 확장으로 봅니다. 유교에 따르면 가족에서 어른에게 예의를 갖추듯 사회에서도 남에게 예의를 갖추고, 친척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해 행동하듯, 사회생활을 할 때도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이처럼 국가를 가족의 확장으로 보면 가족이 구성원에게 하는 요구를 국가도 개인에게 할 수 있게 됩니다. 가족의 요구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효도이죠. 효도는 나를 희생해서라도 부모님께 잘하려는 태도입니다. 이를 국가에 적용하면 충성이 됩니다. 충성은 국가를 위해 나를 희생하려는 태도이죠. 이러한 두 가지 개념을 묶은 충효사상은 가족의 개념을 국가로 확대하는 열쇠였고, 유교문화에서 이상적인 인간은 충효사상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의 모델에 기초한 국가의 개념은 국제관계에도 적용됩니다. 국가 관계를 가족 관계로 보자면 두 나라 사이에 부자 관계나 형제 관계가 성립합니다. 특별한 경우라면 군신 관계(임금과 신하의 관계)도 성립이 되겠죠(군신 관계의 핵심인 충은 곧 효와 병행하는 개념이기에 군신 관계도 일종의 가족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군사부일체라는 표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 관계를 가족 관계의 모델로 이해하면 가족 관계의 덕목이 국가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예를 들어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어버이처럼 섬겨야 하고, 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효심 깊은 아들이 칭찬받듯, 큰 나라를 섬기려는 태도(이른바 사대주의)는 유교에서 마땅히 칭찬받아야죠.

하지만, 국가 관계를 가족 관계가 아닌 이익 관계로 본다면 나라의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이로움을 끼치는 나라는 좋은 나라, 해로움을 끼치는 나라는 나쁜 나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이로운 나라를 가까이하고, 해로운 나라를 멀리하면 될 뿐이죠. 이러한 관점은 유교에선 지극히 불손한 태도로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예를 들어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실용 노선을 추구하던 광해군의 정책은 유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이들이 보기에 중국을 지배하는 명나라는 우리에게 형과 같은 나라이고, 명나라를 돕지 않으려는 태도는 가족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에도 적용됩니다. 많은 사람은 미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고, 한국은 미국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미국은 은인의 나라이고, 미국을 대할 때 손익의 관계에서 보는 태도는 매우 불손하기 때문이죠. 이들이 보기에 한국은 "미국이 감동할 정도로 미국을 도와야" 마땅합니다(물론 이와는 다르게 한국이 미국을 돕는 것이 한국에게 이익이기에 미국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앞의 주장과 결론을 같지만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다르기에 다른 입장으로 봐야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한국이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충격 그 자체였죠. 하지만, 유교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자란 젊은 세대 중에는 국제 관계를 이익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들은 명분에 얽매어 실리를 잃는 외교는 어리석어 보일 뿐이죠. 이처럼 국가라는 집단을 보는 관점의 차이는 국제관계를 보는 관점의 차이를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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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국토가 광대하고 지하자원이 많은 이 나라는 모슬렘과 기독교인이 각각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기에 두 종교 간의 권력 분할이 쉽지 않은데, 최근에 모슬렘 대통령이 신병 치료를 이유로 장기간 외국에 체류하면서 장기간 국가원수가 업무수행을 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결국, 국회의 결정에 따라 기독교도 부통령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하게 되었는데, 과연 권력 이동이 순조롭게 이루어질지 주목됩니다. 이러한 제도권 내부의 혼동과 함께, 모슬렘권과 기독교권이 함께 사는 조스(Jos)시에는 두 세력 간에 무장충돌이 벌어져 400명 이상이 사망하였습니다. 2월에 들어서면서 긴장이 완화하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이미 비슷한 사태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일어났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나이지리아의 종교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무력 충돌의 소식을 자주 듣기에 이제는 이에 대해 둔감할 지경이지만,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끊임 없는 비극의 뿌리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종교갈등이나 민족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프리카에선 왜 이러한 갈등이 즉각 폭력으로 이어질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사람들의 집단을 보는 두 가지 방식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서로 사랑하거나 인간적인 정을 느끼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모여 사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집단의 예로는 가족을 들 수 있고, 두 번째 집단의 예로는 회사를 들 수가 있죠. 독일어로는 전자를 Gemeinschaft, 후자를 Gesellschaft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구분은 독일의 사회학자 Ferdinand Tönnies가 Gemeinschaft und Gesellschaft 라는 책을 발표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죠.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전자는 공동체, 후자는 사회입니다(정확한 번역은 아니지만, Gemeinschaft und Gesellschaft를 영어로 번역한 책이 Community and Society라는 점을 볼 때 큰 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로도 정확한 구분을 할 때는 독일어 단어를 빌려서씁니다).

내가 속한 집단이 공동체(Gemeinschaft)라면, 나는 마치 가족을 대하듯 내 집단을 대합니다. 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다 나의 형제, 자매요, 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고, 나도 그들의 사랑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극한 상황에서 가족을 위해 목숨을 희생할 수 있듯, 나도 공동체를 위해 내 목숨을 희생할 수 있는 법이죠. 하지만, 내가 속한 집단이 사회(Gesellschaft)라면, 나는 이익을 얻기 위해서 집단 속에서 활동합니다. 만약 내가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더는 이 집단에 속할 이유가 없고, 따라서 새로운 집단으로 옮겨가야죠. 하지만, 나는 내가 이 집단에 속한 이상, 이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힘씁니다. 이 집단이 잘 되어야 내게도 이익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집단을 유지하는 힘은 법과 규칙에서 나옵니다. 서로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모두 같은 규칙을 따라 움직여야지 불만이 없고, 집단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인류는 공동체, 즉 관계 중심의 집단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가족, 부족, 민족 등의 집단이 그러한 예죠. 이러한 집단에서는 관계를 잘 맺는 사람들이 인정을 받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류는 점차 이익 중심의 집단을 형성하게 됩니다. 특히 이러한 변화의 중심엔 res publica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세워진 로마가 있죠. 로마는 작은 도시에서 출발했지만, 곧 지중해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합니다. 수많은 종교, 민족을 포함한 로마가 하나의 정체성을 지닌 집단으로 수백 년간 유지된 비결은 로마가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이 아닌, 이익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res publica(공공의 일, 공공의 사업이라는 뜻)였고, 이는 로마가 잘 되는 것이 로마에 속한 사람들에게 이익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공화국을 뜻하는 영어 republic은 여기서 온 말이죠.

로마보다 앞서 지중해 지역을 지배했던 그리스인에게 삶의 중심은 도시 국가, 즉 폴리스(polis)였습니다. 폴리스는 한 지역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그리스는 산이 많아 이동이 쉽지 않고, 따라서 이동이 원활한 작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 끼리는 유대감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가 바로 폴리스죠. 물론 폴리스가 잘 되는 것은 폴리스에 속한 사람들에게 유익이고, 따라서 폴리스는 사회(Gesellschaft)의 성격도 띠지만, 폴리스의 규모가 작고, 특히 노예를 제외한 자유시민의 숫자가 매우 작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폴리스는 관계 공동체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지역 공동체를 넘어섰기에 관계가 아닌 이익으로 뭉친 집단으로 거듭나야 했습니다(물론 Dulce et decorum est pro patria mori나 Pater Patriae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로마에도 관계 중심 집단의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로마가 법률체계를 개선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것은 이러한 원인 때문입니다. 관계가 중심인 집단에서는 법률이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익이 중심인 집단에서는 규칙이 엄격해야 집단이 유지가 됩니다. 로마는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법률을 엄격하게 적용했고, 이는 유럽의 법치주의 전통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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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의 대형화

경제 2010/02/11 22:50
지난주 유럽발 악재에 흔들리던 세계 경제는 이번 주에 들어서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는 모습입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그리스가 유럽연합의 도움을 받으리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각국의 증시는 오름세로 돌아섰고, 환율도 안정적인 모습입니다. 제가 전에 "악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악재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중요하다"고 썼는데, 이러한 악재에도 시장이 빠른 시간안에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가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낙관적인 분석으로 끝나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납니다. 작년말의 두바이 사태나 이번 그리스 사태는 시장이 악재를 잘 소화해 내는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부실이 대형 부실로 커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바이 사태는 두바이의 부실을 아랍에미레이트 연합이 떠안고 무마가 되었습니다(두바이는 아랍에미레이트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스 사태는 그리스의 부실을 유럽연합이 떠안고 무마가 되고 있습니다. 더 멀리 보자면 2008년 터진 월스트리트의 위기는 월스트리트의 부실을 미국 정부가 떠 안고 무마가 되었습니다. 이는 좋게 말해 해결사가 등장해 문제가 해결이 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해 부실이 대형화한 것입니다. 팔다리에 난 상처가 잘못되어 썩어들어간다면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치료가 됩니다. 계속 썩어들어가게 놔둔다면 문제는 계속 커질 뿐이죠.

미국의 예를 봅시다. 미국 정부는 부시 행정부 이후 공공부채가 지나치게 늘어나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관심 있는 분은 I.O.U.S.A.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빚에 헐떡이던 미국 정부는 월스트리트에서 문제가 터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월스트리트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의 문제로 경제 전체가 흔들리가 경기진작을 위해 실물 경제 부분에도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빚으로 고생하던 미국 정부가 이번 사태로 빚이 엄청나게 늘었으니 대단한 문제이지요.

유럽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정부 빚이 많은 상태에서 경제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니 경제를 살리겠다고 돈을 쓸 수록 유럽 각국 정부의 빚 문제는 심각해져만 갑니다. 만약 유럽 연합이 정말 그리스를 돕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빚 문제가 유럽 연합 전체의 문제로 퍼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로존을 책임지다시피 하는 두 나라인 독일과 프랑스 중, 프랑스는 채무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리스를 돕기위해 빚을 더 낸다면 프랑스의 상황이 엄청나게 악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재정 상태가 안 좋은 다른 유럽국가(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까지 도와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유로화의 미래 뿐 아니라 유럽 연합의 미래까지도 불투명하게 될 수 있죠.

물론 상황이 이러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경제위기가 벌어지면 정치가들이 사태를 주도하게 되는데, 정치가들은 단기적 해결책을 원하지 장기적인 해결책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당장 선거에 이기려면 몇달 내에 경제위기를 끝내야 하는 법이고, 이를 위해 30년 짜리 국채를 발행하는 쪽이 경제의 썩은 살을 도려내는 쪽 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생에 공짜는 없고, 지금 해결하지 않은 문제는 언젠가 다시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전세계가 심각한 홍역을 앓아야 되겠죠. 결국 이번 경제 위기는 이러한 홍역이 나타날 때 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벌어지는 자잘한 위기들은 사태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여주는 징조일 뿐, 위기의 핵심은 아닌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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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괜찮아 보이던 세계 경제가 다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의 중심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고, 그중에서도 그리스입니다. 그리스는 재정 적자가 심한데다가 사회구조가 경직되어 경제 위기에 취약한 국가입니다. 정부가 적자를 줄이려고 해도 사회적인 반발 때문에 쉽지 않기 때문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리스의 국가 신용도가 낮아질 위기인데, 문제는 지금까지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신용도가 낮은 국채도 담보로 인정해서 은행에 자금을 공급했는데, 이제 출구전략의 하나로 신용도가 낮은 국채를 담보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금융기관들이 이를 담보로 유럽중앙은행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기에 그리스 국채 가격이 폭락하겠죠. 그리고 그리스와 비슷한 상황인 다른 유럽 국가들도 같은 어려움에 빠지고, 이는 곧 유럽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겠죠.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러한 이유에서 유럽중앙은행의 출구전략이 이번 위기의 핵심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스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다 보면 국가부도 사태에 이르거나 유로화 사용을 포기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데, 이는 유럽 연합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유럽 연합이 나서서 그리스를 구하려고 하겠죠. 하지만, 정치적인 간섭은 경제의 왜곡을 낳고, 이는 헤지펀드가 나서기 좋은 상황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헤지펀드는 그리스가 부도가 난다는 쪽으로 베팅하고, 실제로 그리스 국채를 내다가 팔면 그리스 국채는 폭락하고, 그리스는 부도위기에 몰릴지 모릅니다. 그리스 국채가격이 폭락한다는 말은, 아무도 그리스 국채를 사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고, 이는 그리스 정부가 돈을 구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채 만기가 돌아오면 돈을 갚을 도리가 없어 부도가 나는 것이죠.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은 그리스를 구하기 위해 개입하려 들지 모르지만, 아무리 국가가 나서도 시장의 뜻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90년대 조지 소로스와 영국은행(영란은행)의 대결에서 알 수 있듯, 헤지펀드와 정부의 싸움에서 시장의 방향을 따르는 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죠.

이번 위기를 심각하게 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의 상황이 문제의 작은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유럽 국가 중 재정적으로 취약한 나라는 그리스 외에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이 있습니다(이들 국가의 첫 글자를 따서 PIIGS라고 부르더군요). 특히 이탈리아는 경제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큰 위기에 빠지면 유로화 체제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이미 2008년 가을에 다루었는데, 결국 그때 우려하던 방향으로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번 위기는 미국만큼이나 경제규모가 큰 유로존 전체와 관련된 문제이고, 그만큼 이번 위기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느냐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가 꼭 세계 경제를 침몰시키는 거대한 태풍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경제 상황을 파악할 때 중요한 것은 악재가 아니라 악재에 대한 반응인데, 하루 만에 시장의 반응을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금요일은 시장이 크게 흔들렸지만, 다음 주에는 안정을 되찾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한 한국은 원화환율이 유로화 환율보다 훨씬 더 떨어진 사실에서 잘 드러나듯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럽의 위기가 전 세계로 퍼질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 사태는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한 상황에서 출구전략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줍니다. 원래 출구전략은 위기에 빠진 시장에 돈을 공급하고 나서, 시장이 회복되면 시장에서 돈을 회수해서 과열을 막는다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에 돈은 공급했지만, 시장이 제대로 회복은 안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돈을 회수한다면 시장은 돈을 공급하기 전의 위기 상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돈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많이 공급된 돈이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기에 내버려둘 수가 없습니다. 지금 각국 정부는 돈을 회수하자니 위기가 돌아오고, 돈을 회수하지 않자니 부작용이 일어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러니 경제위기는 끝나지 않았고, 언젠가 거품이 걷히고 나면 2008년 가을 상황에서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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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새로운 GUI 패러다임

아이패드가 발표되고 나서 많은 사람은 "스타일러스의 부재"를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았습니다. 하긴 판 위에 작대기로 기록을 남기는 방식은 수메르인들이 문자를 발명한 이래로 인류에게 익숙한 입력방식인데, 판처럼 생긴 아이패드가 작대기를 통한 입력방식을 거부하였으니 아쉬울 법도 합니다. 아이패드에 대한 또 다른 불평은 아이패드에 맥 OS X 대신 아이폰 OS가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맥 OS X가 아이폰 OS보다 더 강력하고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에, 이왕이면 맥 OS X가 들어가는 편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애플이 이러한 두 가지 불평을 반영해 타블렛을 만들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는 윈도우 계열 타블렛의 운명을 보면 쉽게 유추 가능합니다. 지금 시장에 나와있는 윈도우 계열 타블렛은 대부분 스타일러스로 화면에 직접 필기하는 방식이고, OS로는 휴대전화용 OS인 윈도우 모바일이 아닌 PC용 윈도우를 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타블렛을 외면했고, 지금도 윈도우 타블렛은 적절한 시장을 찾지 못해 고전하고 있습니다. 만약 애플이 윈도우 타블렛과 같은 개념으로 타블렛을 만든다면 애플의 타블렛도 PC 타블렛처럼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플이 생각하는 타블렛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힌트를 우리는 아이폰 OS에서 찾습니다. 아이폰 OS는 OS X을 바탕으로 하지만, 컴퓨터용 운영체제와는 느낌이 매우 다릅니다. 컴퓨터용 OS X은 데스크탑위에 다양한 어플리케이션과 데이타 파일이 존재하고, 사용자가 이러한 파일들을 관리하는 방식이지만, 아이폰 OS는 어플리케이션을 뜻하는 아이콘만이 존재하고, 어플리케이션과 관련한 데이타베이스는 어플리케이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컴퓨터를 쓰려면 어디에 어플리케이션이 있고, 어디에 데이타 파일이 있는지 알아야 되지만, 아이폰을 쓸 때는 화면에 떠 있는 아이콘을 클릭하기만 하면 모든 데이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리되고, 사용이 훨씬 쉽습니다. 이처럼 사용이 쉽다는 점은 아이폰이 외국에서 많은 인기를 끄는 중요한 원인이죠. 물론 사용이 쉽다는 말은 사용자가 직접 OS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고, 기계를 잘 다루는 파워 유저들이 아이폰에 대해 답답하게 느끼는 원인이기도 하죠.

아이폰이 사용하기 쉬운 또 하나의 요인은 하나의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그 어플리케이션만 눈에 보이고, 이 어플리케이션에 필요한 내용만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어플리케이션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에 아이콘을 누르는 순간 아이폰은 그 어플리케이션이 지배하는 새로운 도구로 변신합니다. 이는 책상 위에 수많은 파일을 펼치거나 쌓아 놓고,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그래픽 운영체제와는 매우 다른 개념입니다. 현대적 컴퓨터 운영체제의 바탕을 이루는 "데스크탑"의 개념은 많은 사람이 컴퓨터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중요한 원인이죠. 아이폰은 새로운 개념의 운영체제를 도입함으로 기기 활용에 필요한 학습기간을 대폭 줄이는 데 성공합니다.

기즈모도의 Jesus Dias(이는 가명이고, 실제로는 RoughlyDrafted.com의 Daniel Eran Dilger)는 이러한 아이폰 OS가 UI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제프 래스킨(Jef Raskin)이 주창했던 지식 기기(information appliance)의 실현이라고 평가합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기계는 대부분 하나의 기능을 하고, 우리는 이러한 기능을 쉽게 익힙니다. 예를 들어, 전화를 걸려면 전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누르면 되죠. 과일주스를 만들려면 과일을 믹서에 넣고 속도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젖은 머리를 말리려면 헤어드라이어를 머리에 대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래스킨은 정보를 다루는 기기도 한 가지 기능만 수행한다면 복잡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죠. 물론 한 기기가 한가지 기능만 수행한다면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려면 여러 가지 기기를 가지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다면, 기능에 맞는 버튼을 화면에 띄우는 방식으로 하나의 기기를 다양한 목적에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이폰 OS는 래스킨의 정보 기기 개념을 훌륭하게 실현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이폰은 작은 화면이라는 제한을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또한, 아이폰은 전화이기 때문에 정보 기기라는 측면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이폰에서 화면을 넓히고 전화 기능을 뺀다면 사용하기 편리한 다목적 기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패드가 바로 이러한 기기이죠.

아이패드에 대한 평가 중에 "혁신적이지 않다."는 평가는 이러한 측면을 간과한 것입니다. 물론 아이패드 자체가 혁신은 아니지만, 혁신은 이미 아이폰 OS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패드는 이러한 GUI의 혁신을 대중화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스티브 잡스가 왜 아이패드 개발을 "내 평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평가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만약 스티브 잡스의 의도가 이루어진다면, 아이패드는 개인용 컴퓨터의 발명 이상으로 컴퓨터 산업, 더 나아가서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참고글- The Apple Tablet Interface Must Be Like This

연재 순서
1. 모바일 기기 라인업 확대
2. 이북 시장 진출
3. 주머니 밖의 인터넷
4. 규모의 경제
5. 새로운 GUI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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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규모의 경제

애플에서 만든 제품은 무조건 다른 회사 제품보다 훨씬 비싸던 시절도 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애플은 점차 자사 제품의 가격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내렸고, 지금은 애플 제품에 붙는 프리미엄이 많이 내려간 상태입니다. 특히 MP3 시장을 석권한 아이팟은 가격대 성능이 다른 회사 제품에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가격이 하락했습니다. 과거엔 비싼 가격 때문에 제품을 많이 팔지 못하던 애플이 이제는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삼게 된 것이죠.

애플이 이처럼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었던 원인은 제품을 대량으로 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팟의 예를 들자면, 애플은 아이팟을 다른 회사 제품보다 열 배 이상 팔기 때문에 메모리 등 부품을 경쟁사보다 훨씬 싼 가격에 사올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의 제품을 개발해서 엄청난 숫자를 팔기 때문에 대당 개발비도 다른 회사보다 훨씬 적게 듭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애플은 가격을 낮춰도 이익을 충분히 거둘 수가 있습니다.

아이팟과 아이폰의 성공은 애플이 CPU 설계 분야라는 새로운 영역으로도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아이패드는 애플이 만든 A4칩을 탑재하였습니다. A4는 엄밀히 말해 CPU가 아니고, ARM Cortex-A9 CPU와 ARM Mali GPU를 결합한 SOC(System-on-a-Chip)입니다. 이 칩의 설계는 애플에서 인수한 PA Semi가 담당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애플이 자체적으로 자사 제품에 들어갈 CPU(엄밀히는 SOC)를 개발할 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이고, 이는 앞으로도 애플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 강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실제로 아이패드를 써본 사람들은 아이패드의 반응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고 감탄합니다. 이는 A4칩이 애플의 의도대로 화려한 GUI를 잘 처리해주기 때문이죠. 아이패드의 배터리가 오래가는 것도 CPU가 전력을 적게 소비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이패드가 A4칩의 유용성을 증명한다면, 애플은 다른 모바일 기기에도 A4칩을 채용하겠죠.

지금까지 애플은 매킨토시나 아이팟에 들어가는 CPU를 외부에서 조달해 썼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핵심 부품을 외부에 의존하다간 큰 어려움에 닥칠 위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매킨토시 CPU로 모토롤라가 만든 PowerPC를 쓰던 시절, 모토롤라는 랩탑용 G5를 공급해주지 못했습니다. G5는 원래 랩탑용으로 설계한 제품이 아니기에 발열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죠. 또한,  모토롤라 입장에서 애플은 PowerPC칩을 쓰는 수많은 회사 중 하나일 뿐이기에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사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애플은 PowerPC를 포기하고 인텔 CPU를 채택함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긴 했지만, 다른 회사에 핵심 부품을 의존하다간 이러한 어려움에 닥칠 가능성이 늘 존재하죠.

그래서 애플은 PA Semi를 인수하여 CPU 설계를 내부에서 해결하는 쪽으로 전략을 짰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애플이 엄청난 숫자의 모바일 기기를 판매할 때만 가능합니다. CPU 설계는 워낙 개발비가 많이 들어가는 영역이고, 제품 판매량이 많지 않은 회사는 함부로 진출하기 어려운 영역이죠. 따라서 이러한 사업을 유지하려면 애플은 앞으로도 자사가 설계한 CPU 칩을 장착한 제품을 많이 판매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애플은 iPad처럼 판매량을 늘려 줄 새로운 제품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규모의 경제는 어플 스토어에도 적용이 됩니다. 앱 스토어는 애플의 모바일 제품을 위한 어플리케이션을 판매하는 장터입니다. 이러한 장터는 손님이 많을수록 새로운 제품도 많이 나오고, 새로운 제품이 많이 나올수록 손님도 많이 오기 마련이죠. 반대로, 손님이 별로 없는 장터는 새로운 제품도 나오지 않고, 새로운 제품이 나오지 않으면 손님도 오지 않습니다.

지금 아이튠스 앱스토어는 1년여 만에 다운로드 건수가 20억 번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이패드용 어플이 추가된다면, 앱스토어의 규모는 더욱 커지고, 모바일 어플 시장에서 애플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집니다.

아이패드의 등장은 애플이 규모의 경제를 통한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굳히겠다는 전략의 표현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취미 삼아 만들었다"고 말하는 Apple TV와 다르게, 아이패드의 개발이 꾸준하게 이루어지리라고 예측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 있죠.


연재 순서
1. 모바일 기기 라인업 확대
2. 이북 시장 진출
3. 주머니 밖의 인터넷
4. 규모의 경제
5. 새로운 GUI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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