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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5/08 세계 경제위기 2.0 (17)
  3. 2010/02/11 부실의 대형화 (13)
  4. 2010/02/06 유럽 경제위기의 배경과 전망 (12)
  5. 2009/12/22 경제 전망 (11)
  6. 2009/12/15 소비는 미덕? (22)
  7. 2009/10/07 출구전략, 성공할 수 있을까? (9)
  8. 2009/09/30 경제위기, 정말 끝났는가? (13)
  9. 2009/06/13 계몽주의와 경제학 8- 경제의 신비 (11)
  10. 2009/06/12 계몽주의와 경제학 7- 미국과 유럽 (9)

경제와 도덕

경제 2010/12/15 18:46
지난 며칠간 인터넷에선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통큰치킨은 롯데마트에서 판매하는 닭튀김인데, 일반 치킨 제품보다 양은 많으면서 가격은 절반 밖에 안 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롯데마트가 이러한 제품을 내놓으면 다른 치킨집의 영업에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죠. 실제로 최근 10여 년간 직장인들은 "잘리면 치킨집 차리겠다."는 말을 쉽게 할 정도로 치킨집은 경험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자영업의 대표였는데, 대기업이 물량공세로 나오면 치킨집을 운영하는 사람들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소비자들도 싼값에 치킨을 즐길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도 언젠가 치킨집을 차려야 할지 모르는 불안한 현실을 생각할 때, 마냥 통큰치킨이 맛있게만 느껴질 수는 없겠죠.

결국,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중단으로 통큰치킨을 둘러싼 논쟁은 어느 정도 끝이 났지만, 이번 사태는 이마트 피자를 둘러싼 논쟁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마트 피자는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피자로, 크기는 엄청나게 크지만, 가격은 저렴해서 많은 관심을 끈 제품입니다. 이마트피자가 화제를 일으키면서 이 제품 때문에 동네 피자집이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비판을 접한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은 "님이 걱정하는만큼 재래시장은 님을 걱정할까요?" "본인은 소비를 실질적으로 하시나요 이념적으로 하시나요?"라며 "싸게 공급하는 제품을 선택하면 되지, 이를 이념의 문제, 사회의 문제로 확대하면 안된다."라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러한 정용진 부회장의 발언은 지금 대형 마트들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통해 작은 규모의 슈퍼마켓 시장까지 독점하려는 움직임을 두둔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러한 대형 마트의 동네 상권 진출은 기존의 슈퍼마켓에 커다란 위협이지만, 엄밀히 말해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기에 불법은 아닙니다. 따라서 대형 마트는 "기업 경영의 자유"를 강조하며 지역 소매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고, 기존의 슈퍼마켓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형 마트의 "탐욕"을 비난하며 이를 막으려고 하는 중입니다.

이처럼 대형 마트의 영업행위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의 뒤에는 "경제활동이 도덕적인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만약 경제활동이 도덕의 영역에 속한다면 모든 경제활동은 도덕의 잣대로 평가해야 마땅하고, 경제활동이 도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면 경제활동을 할 때는 도덕을 무시해도 괜찮기 때문이죠.

전통적인 사회에서 경제활동은 늘 도덕의 영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공정한 가격"(just price)이라는 개념을 통해 각 상품은 가치에 따른 공정한 가격을 지니고, 따라서 어떤 제품을 공정한 가격보다 높게 판다면 이는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동양에서도 팔 매(賣)자엔 선비 사(士)자를 넣는 등 경제활동을 할 때 도덕을 따라야 한다는 믿음이 강했습니다. 상도덕이라는 말의 존재도 이러한 관점의 표현이죠. 하지만,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국제 무역이 발달하면서 제품의 가격이 급격하게 변동하면서 전통적인 경제관은 변화를 맞게 됩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선 밀 1파운드가 은화 하나라고 모두 알고 있었지만, 경제가 복잡해진 오늘날 23인치 모니터의 가격이 얼마이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된 것이죠. 이처럼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제관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애덤 스미스였습니다. 그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우리는 정육점 주인, 양조업자, 빵집 주인의 착한 마음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경제활동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행동이고, 따라서 도덕적으로 보자면 비난받아야 마땅할 행동도 경제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면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많은 문제를 낳았습니다. 우선, 경제를 도덕의 영역에서 분리하자 사람들은 경제의 영역에서 비도덕적인 행위도 쉽게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즉,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에서(또는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한에서) 모든 활동이 허용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경제적으로 영리한 사람만 이득을 보고 사회 전체로는 손해를 보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투기가 대표적인 예인데, 경제가 발달하던 70-80년대에 수많은 사람은 부동산 투기에 나섰고, 이런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한국 사회 전체로 보자면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서 대부분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경제의 영역에서는 부동산 투기로 돈 번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부동산 투기 전력이 있는 사람이 공직에 출마하면 "저런 사람이 어떻게 공직자가 될 수 있느냐"며 비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의 탈도덕화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경제를 다시 도덕과 연관하려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도덕적 의미를 고려해 소비한다는 윤리적 소비주의(Ethical consumerism)가 좋은 예죠 (한겨레가 쓰는 "착한 경제"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에 따르면 물건을 살 때도 제일 싼 제품을 살 것이 아니라 제3세계의 생산자가 생계를 유지하기에 적절한 가격을 지급한 원료로 만든 Fair trade제품을 사야 합니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커피숍에서 Fair trade 커피나 초콜렛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제와 도덕을 결합한다면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불의한 경제구조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경제에 지나치게 도덕적인 관점을 도입한다면 경제가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가격의 결정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시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가 불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이 인기가 많으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고, 이 제품을 비싸게 판매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생산에 뛰어들면서 가격이 내려갑니다. 즉, 사회적 필요가 큰 제품에 자원이 모여들면서 결국 싼 값에 제품의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시장의 기능을 도덕이 대체한다면, 제품의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오르면 이를 "상인들의 탐욕이 가격을 올린다."라는 식으로 해석하게 되고(실제로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요가 많다고 가격을 올리는 상인은 도둑질하는 셈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생산자들은 비난이 두려워서, 또는 정부의 가격 규제 때문에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생산에 참여할 의욕을 잃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소비는 많은데 생산은 적은 상태가 지속하고, 이는 제품의 품귀현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원유가가 올랐는데 가격을 통제해 주유소마다 휘발유가 동났던 오일쇼크 당시의 미국이 그러한 예죠. 더 흔한 경우는 도덕적 비난이나 이를 바탕으로 한 정부의 가격 통제에도 가격이 오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는 출범하면서 몇몇 생필품의 가격을 특별히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정부가 관리하는 품목의 가격은 일반 물가보다 더 많이 오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도덕적 관점과 시장의 기능은 상충하기 때문에 공존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을 도덕과 무관한 영역으로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특히, 시장이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은 현대 사회에서 시장의 활동이 도덕과 무관하다면, 인간의 삶은 대부분 도덕과 무관하다는 말이 되고, 이는 인간의 본성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입니다. 만약 시장이 도덕과 무관하다면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를 핍박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이는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이어져, 강대국은 약소국을 경제적으로 착취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결국, 인간사회는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정글이 되고 말겠죠. 이는 소설이나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이 아니라, 극단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던 19세기의 역사적 현실입니다.

경제를 지나치게 도덕과 연관한다면 경제는 활력을 잃고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반대로, 경제를 도덕에서 완전히 분리한다면 인간성의 파괴와 구조적 불의를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안에 따라 경제와 도덕을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해야 합니다. 통큰치킨 사태만 해도 단순한 상황 같지만 실제로는 "싼값에 제품을 공급하고 소비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는 경제적 시각"과 "가난한 소시민이 대기업의 위협이 없이 치킨집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도덕적 권리"가 부딪치면서 많은 논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쨌든 이번 사태는 경제와 도덕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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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위기 2.0

경제 2010/05/08 06:00
금요일 국내 금융시장은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어제에 이어 불안한 모습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전날 미국 증시는 다우 지수가 장중 1,000포인트나 떨어지는 폭락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수 하락의 큰 부분은 주문 실수로 말미암은 오류 때문이라지만, 이를 제외하고라도 주가가 하루에 3.2%나 떨어졌으니 세계 증시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합니다.

언론은 세계적인 주가 하락이 그리스의 부채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리스 사태는 몇 달 전부터 지금과 같은 상황(정부의 재정고갈과 이에 따르는 긴축재정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예견되어 있었고, 최근에 새로 나온 정보가 없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갑자기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하는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합니다. 언론은 대중이 이해할 만한 원인을 들어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법이고, 이번 주가 하락이 "그리스 사태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그럴듯하기에 대부분 언론이 맹목적으로 보도할 뿐,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은 주식 시장이 재료(주가 변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소식)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주식 시장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재료가 등장했을 때 주식시장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지금 시장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료보다 재료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두바이 사태가 벌어졌을 때, 세계 증시를 뒤흔들 위험한 재료였지만 별문제 없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주식 시장의 분위기가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그리스 사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예견되었지만, 시장이 견디지를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시장의 분위기가 매우 안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2008년 가을 이후, 세계 경제는 늘 안 좋은 상태였습니다. 경제의 핵심인 실물경제가 안 좋았기 때문이죠. 실물경제가 안 좋다는 말은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가 않고,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는 악순환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경제상황이 나빠지자 각국 정부는 이러한 불황을 타개하려고 금리를 낮추고(저금리), 돈을 많이 찍어내고(양적 양화), 재정 지출을 늘리는(재정 적자) 정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돈을 구하기가 쉬워졌고, 경기가 되살아나는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난 돈은 금융권에만 머물렀기에 주가는 올랐지만, 실물경제엔 도움이 전혀 안 되었습니다. 또한, 미국 금리가 낮아지자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나라에 돈이 몰리면서 한국은 2010년 1분기 GDP가 전년대비 7.8%나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으로 들어온 돈도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고, 주가를 올리고 환율을 낮추는 역할만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작년 대비 보유 주식이 7.8% 오른 사람은 많아도, 소득이 7.8% 오른 사람은 적다는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겉으로나마 좋아진 듯 보이던 경제상황이 이제 부실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빚을 내려면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이 좋아야 하는데, 개인의 빚은 정부가 공급할 수 있지만, 정부의 빚은 정부 자체의 신용이 좋아야 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던 몇몇 정부가 지난 2년간 경제위기를 넘기 위해 지출을 더 늘리다 보니 신용이 급격히 안 좋아졌습니다. 유럽만 놓고 볼 때는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이고, 세계적으로는 STUPID(스페인, 터키, 영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두바이)이 여기에 속하죠. 즉, 2008년 경제위기가 본격화하고 정부가 나서 경제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2년이 지나고 나니 경제는 안 살아나고 정부까지 부도가 나게 생긴 것이죠.

지금 세계적으로 돈이 부족한 정부가 많은데 그리스와 포루투갈 등 유럽 정부에서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이들이 유로라는 단일 통화를 쓰기 때문입니다. 유로지역 국가들은 단일 통화를 쓰기 위해 유럽 중앙은행(ECB)을 통해 통화량과 금리를 조절합니다. 이는 한 나라가 돈이 부족하다고 통화량을 늘리거나 금리를 낮출 수 없다는 말이죠. 즉, 유로존 국가는 위기 상황에서 대처능력이 훨씬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만약 지금 위기를 못 넘긴다면 세계 경제는 2008년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될 것입니다. 당시엔 "각국 정부가 나서서 경제를 구할 것이다"라고 믿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부도 믿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물론 당장은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국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겠지만, 사실 미국도 유럽보다 상황이 좋다고 할 수가 없기에 언제까지 세계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지금 위기를 겪는 나라 중 한두 개 정부라도 부도가 난다면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신용경색이 오고, 소비심리가 위축돼 세계적인 공황이 올 수가 있습니다. 1997년 동남아시아의 위기가 한국과 브라질을 거쳐 러시아로 퍼지던 현상이 세계적인 규모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죠. 물론 이러한 시나리오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나왔지만, 지금에야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라는 환상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많기에 증시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죠.

결국, 이번 위기는 각국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세계 경제는 한동안 심한 홍역을 앓고 난 후에야 건강을 되찾을 것입니다. 유럽이 이번 위기를 잘 이겨낸다고 해도(그럴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이지만), 그것이 위기의 끝은 아니라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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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의 대형화

경제 2010/02/11 22:50
지난주 유럽발 악재에 흔들리던 세계 경제는 이번 주에 들어서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는 모습입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그리스가 유럽연합의 도움을 받으리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각국의 증시는 오름세로 돌아섰고, 환율도 안정적인 모습입니다. 제가 전에 "악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악재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중요하다"고 썼는데, 이러한 악재에도 시장이 빠른 시간안에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가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낙관적인 분석으로 끝나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납니다. 작년말의 두바이 사태나 이번 그리스 사태는 시장이 악재를 잘 소화해 내는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부실이 대형 부실로 커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바이 사태는 두바이의 부실을 아랍에미레이트 연합이 떠안고 무마가 되었습니다(두바이는 아랍에미레이트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스 사태는 그리스의 부실을 유럽연합이 떠안고 무마가 되고 있습니다. 더 멀리 보자면 2008년 터진 월스트리트의 위기는 월스트리트의 부실을 미국 정부가 떠 안고 무마가 되었습니다. 이는 좋게 말해 해결사가 등장해 문제가 해결이 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해 부실이 대형화한 것입니다. 팔다리에 난 상처가 잘못되어 썩어들어간다면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치료가 됩니다. 계속 썩어들어가게 놔둔다면 문제는 계속 커질 뿐이죠.

미국의 예를 봅시다. 미국 정부는 부시 행정부 이후 공공부채가 지나치게 늘어나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관심 있는 분은 I.O.U.S.A.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빚에 헐떡이던 미국 정부는 월스트리트에서 문제가 터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월스트리트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의 문제로 경제 전체가 흔들리가 경기진작을 위해 실물 경제 부분에도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빚으로 고생하던 미국 정부가 이번 사태로 빚이 엄청나게 늘었으니 대단한 문제이지요.

유럽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정부 빚이 많은 상태에서 경제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니 경제를 살리겠다고 돈을 쓸 수록 유럽 각국 정부의 빚 문제는 심각해져만 갑니다. 만약 유럽 연합이 정말 그리스를 돕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빚 문제가 유럽 연합 전체의 문제로 퍼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로존을 책임지다시피 하는 두 나라인 독일과 프랑스 중, 프랑스는 채무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리스를 돕기위해 빚을 더 낸다면 프랑스의 상황이 엄청나게 악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재정 상태가 안 좋은 다른 유럽국가(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까지 도와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유로화의 미래 뿐 아니라 유럽 연합의 미래까지도 불투명하게 될 수 있죠.

물론 상황이 이러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경제위기가 벌어지면 정치가들이 사태를 주도하게 되는데, 정치가들은 단기적 해결책을 원하지 장기적인 해결책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당장 선거에 이기려면 몇달 내에 경제위기를 끝내야 하는 법이고, 이를 위해 30년 짜리 국채를 발행하는 쪽이 경제의 썩은 살을 도려내는 쪽 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생에 공짜는 없고, 지금 해결하지 않은 문제는 언젠가 다시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전세계가 심각한 홍역을 앓아야 되겠죠. 결국 이번 경제 위기는 이러한 홍역이 나타날 때 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벌어지는 자잘한 위기들은 사태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여주는 징조일 뿐, 위기의 핵심은 아닌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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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괜찮아 보이던 세계 경제가 다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의 중심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고, 그중에서도 그리스입니다. 그리스는 재정 적자가 심한데다가 사회구조가 경직되어 경제 위기에 취약한 국가입니다. 정부가 적자를 줄이려고 해도 사회적인 반발 때문에 쉽지 않기 때문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리스의 국가 신용도가 낮아질 위기인데, 문제는 지금까지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신용도가 낮은 국채도 담보로 인정해서 은행에 자금을 공급했는데, 이제 출구전략의 하나로 신용도가 낮은 국채를 담보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금융기관들이 이를 담보로 유럽중앙은행의 지원을 받을 수가 없기에 그리스 국채 가격이 폭락하겠죠. 그리고 그리스와 비슷한 상황인 다른 유럽 국가들도 같은 어려움에 빠지고, 이는 곧 유럽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겠죠.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러한 이유에서 유럽중앙은행의 출구전략이 이번 위기의 핵심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스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다 보면 국가부도 사태에 이르거나 유로화 사용을 포기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는데, 이는 유럽 연합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유럽 연합이 나서서 그리스를 구하려고 하겠죠. 하지만, 정치적인 간섭은 경제의 왜곡을 낳고, 이는 헤지펀드가 나서기 좋은 상황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헤지펀드는 그리스가 부도가 난다는 쪽으로 베팅하고, 실제로 그리스 국채를 내다가 팔면 그리스 국채는 폭락하고, 그리스는 부도위기에 몰릴지 모릅니다. 그리스 국채가격이 폭락한다는 말은, 아무도 그리스 국채를 사지 않으려 한다는 말이고, 이는 그리스 정부가 돈을 구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채 만기가 돌아오면 돈을 갚을 도리가 없어 부도가 나는 것이죠.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은 그리스를 구하기 위해 개입하려 들지 모르지만, 아무리 국가가 나서도 시장의 뜻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90년대 조지 소로스와 영국은행(영란은행)의 대결에서 알 수 있듯, 헤지펀드와 정부의 싸움에서 시장의 방향을 따르는 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죠.

이번 위기를 심각하게 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의 상황이 문제의 작은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유럽 국가 중 재정적으로 취약한 나라는 그리스 외에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이 있습니다(이들 국가의 첫 글자를 따서 PIIGS라고 부르더군요). 특히 이탈리아는 경제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탈리아가 큰 위기에 빠지면 유로화 체제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이미 2008년 가을에 다루었는데, 결국 그때 우려하던 방향으로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번 위기는 미국만큼이나 경제규모가 큰 유로존 전체와 관련된 문제이고, 그만큼 이번 위기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느냐가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번 사태가 꼭 세계 경제를 침몰시키는 거대한 태풍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경제 상황을 파악할 때 중요한 것은 악재가 아니라 악재에 대한 반응인데, 하루 만에 시장의 반응을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금요일은 시장이 크게 흔들렸지만, 다음 주에는 안정을 되찾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한 한국은 원화환율이 유로화 환율보다 훨씬 더 떨어진 사실에서 잘 드러나듯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럽의 위기가 전 세계로 퍼질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번 사태는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한 상황에서 출구전략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줍니다. 원래 출구전략은 위기에 빠진 시장에 돈을 공급하고 나서, 시장이 회복되면 시장에서 돈을 회수해서 과열을 막는다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에 돈은 공급했지만, 시장이 제대로 회복은 안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돈을 회수한다면 시장은 돈을 공급하기 전의 위기 상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돈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지나치게 많이 공급된 돈이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기에 내버려둘 수가 없습니다. 지금 각국 정부는 돈을 회수하자니 위기가 돌아오고, 돈을 회수하지 않자니 부작용이 일어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러니 경제위기는 끝나지 않았고, 언젠가 거품이 걷히고 나면 2008년 가을 상황에서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실체가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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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망

경제 2009/12/22 07:07
작년 가을에 시작한 세계적 경제위기는 올봄 이후로 뚜렷한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실업률이 예상보다 낮게 나오는 등 실물경제가 살아나는 기미가 보인다는 점이 중요한데, 경기 회복이 금융계에만 머물지 않고 실물경제로 옮겨간다면 경제가 진정으로 살아나는 중이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몇 주 전 두바이의 경제위기가 불거지고, 그리스와 스페인의 신용등급이 내려가는 등 불안한 모습도 함께 눈에 띕니다. 빚에 의존해 경제 규모를 키우던 두바이의 몰락은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몰고 온 과다 채무 문제가 여전히 잠복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리스와 스페인은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됩니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가지 흐름이 있지만, 저는 단기적으로 볼 때 경기 회복쪽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중요한 근거는 우선 두바이 사태나 일부 유럽국가의 신용도 하락에도 세계 시장이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세계경제가 허약한 체질이라면 작은 위기에도 크게 흔들릴 텐데, 나름대로 금융 시장에 충격을 줄 만한 소식에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금융 시장이 점차 정상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짐작을 가능케 합니다. 이는 작은 소식 하나에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던 작년 말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죠.

단기적으로 경제를 밝게 전망하는 또 다른 근거는 한국의 경제상황이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경제에서 수출 비중이 큰 나라고, 따라서 세계 경제의 상황이 즉시 반영됩니다. 게다가 한국은 나름대로 경제가 안정적이고, 정부의 규제가 심하지 않고, 규모가 크기 때문에 시장에서 빠져나오기 쉬워서 유동자금이 들어오기 좋은 나라입니다. 따라서 세계를 떠도는 돈이 많아질수록 한국으로 많은 돈이 들어오고, 이로 말미암아 경제 전체에 활기가 돌기 마련입니다(물론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줄어들 때 가장 심하게 타격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주가나 환율은 위기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와 비교했을 때 훨씬 좋은 모습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좋아지고, 이에 따라 한국 경제도 좋아진다는 말이 일반인의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반인은 일자리가 안정되고 월급이 많아지며, 내수경기가 살아나 자영업이 잘 되어야 경기 회복의 열매를 누리는 법인데, 지금 한국은 아무리 경기가 살아나도 자산가와 대기업만 수익이 늘고, 일반인은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아무리 GDP가 빠르게 성장하고 세계 언론이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보도를 했어도, 많은 국민은 살림살이가 갈수록 빡빡해진다고 느낀 것도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죠. 따라서 한국 경제가 회복된다고 평범한 국민의 삶이 나아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장기적으로 본다면 작년에 터져 나온 세계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잘못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이론을 마련하고, 이에 맞춰 경제를 전반적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너무나 길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아무도 이러한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고, 결국 문제를 덮고 넘어가는 방식으로 쉬운 해결책을 찾기 마련이죠. 이렇게 문제를 덮어 버리면 당장은 괜찮아 보이지만, 결국 상처는 속으로 썩어들어가기 마련이고, 언젠가는 더 큰 문제가 터져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때는 더 큰 아픔을 겪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한 법이죠.

사람들은 2000년대에 중반에 일본의 10년 불황이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작년 경제위기가 터지자 일본은 다시 불황 상황에 빠져들었고, 그제야 일본이 경험한 경제회복이 일시적 착시현상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불황은 끝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일본의 경제위기는 경직되고 폐쇄된 사회구조와 하드웨어에만 집중하는 편향된 경제구조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일본이 진정으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와 문화를 포함하는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하죠. 그렇지 못한다면 잠깐 찾아오는 호황은 또 다른 위기 속에 묻혀 버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 경제도 금융부분의 지나친 확대와 탐욕을 조장하는 잘못된 제도 등 근본적인 영역을 손봐야 다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이러한 영역에서 성과를 거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고, 따라서 앞으로도 잠깐씩 찾아오는 경기 개선에도 세계 경제를 억누르는 무거운 분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P.S. 유럽의 크리스마스 휴가철을 맞아 저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블로그의 본격적인 운영은 1월 초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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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는 미덕?

경제 2009/12/15 00:23
저는 지난 11월에 미국을 방문했다가 말로만 듣던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를 직접 체험하였습니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추수감사절(11월 넷째 목요일) 다음날을 뜻하는데, 이 날은 대부분 상점이 크게 할인한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많은 소비자가 몰립니다. 특히, 금요일이 시작되는 자정부터는 할인 폭이 어마어마한 반짝 세일을 하기에 밤늦게 상점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오후에 아웃렛 쇼핑몰에서 쇼핑을 시작했는데, 아웃렛이라 싼 가격에 추가 할인을 하니 대부분 물건을 정상가 대비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 매출은 미국 경제의 현실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만약 블랙 프라이데이임에도 매출이 신통치 않다면 실물경기가 당분간 살아나기 어렵다고 예상할 수 있고, 예년 이상의 매출이 기록된다면 실물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매출이 크게 늘지도, 크게 줄지도 않아서 미래를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경기가 살아나는 듯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상황의 반영이지요.

이러한 상황이 답답했는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절약"을 강조하는 새로운 사회 분위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소비를 늘리자!"라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조 퀴난은 이 칼럼에서 "'짠돌이 정신'은 미국의 정신이 아니다."라고 강변하며, 수많은 매력적인 상품을 소개하고 나서, "상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 애국시민의 의무다"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단지 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가 동의하는 바입니다. 즉, 경기침체는 소비의 위축 때문이며, 따라서 경기침체를 극복하려면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죠. 지금 각국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는 이유도 개인이 소비할 여력이 없기에 정부라도 소비를 늘려 경기를 살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소비가 는다면 생산도 늘고, 이렇게 되면 경제가 살아난다고 봅니다. 미국인들이 2000년대 초반, 9/11 사태 등으로 위기에 빠진 경제를 구하기 위해 Consumer patriotism에 나선 것이나, 중국 관료들이 최근 어려움을 겪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애국 소비운동을 제안한 것 등은 모두 이러한 생각에 기초한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정말 올바를까요? 경제가 잘 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사회의 부가 증가한다는 뜻, 즉, 사람들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린다는 뜻 아닙니까? 그런데 소비는 물질이나 자원을 쓰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소비가 늘면 사회의 물질적 풍요가 줄어드는 법이죠. 이렇게 볼 때, 소비가 늘어난다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한국에서도 정부가 소비를 늘이기 위해 신용카드의 사용을 권장했다가 많은 사람이 카드빚 때문에 파산하고, 신용카드회사들이 위기에 빠져 경제 전체가 어려움을 겪는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소비가 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잘못된 믿음이 경제를 망친 좋은 예죠.

물론 때로는 소비자들이 돈이 있지만, 심리적 원인으로 소비가 위축되었을 때 소비를 권장할 필요가 있긴 합니다. 소비가 위축되면 생산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물건을 팔 수가 없고, 결국 경제활동 전체가 위축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소비자가 정말 돈이 없어서 소비를 줄이는데 "애국을 위해 소비를 늘리자!"는 주장은 말이 안됩니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그나마 있는 돈을 소비해 버리고 나면 나중엔 무엇으로 먹고삽니까? 당장은 소비가 늘겠지만 결국 돈이 없어서 빚에 의존하게 되고, 그러면 소비가 전보다 더 줄어들 수밖에 없겠죠.

지금 세계적으로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사람들이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다면 소비를 줄여야 저축을 할 수 있고, 저축을 해야 부를 축적해 나중에 다시 소비를 늘일 수 있죠. 따라서 지금 소비가 줄어드는 현상은 분명히 경제에 부담되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가 살아나는 과정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비가 줄어들어야 수익을 못 내는 산업이 정리되면서 경제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지금 인위적으로 소비를 늘인다면 잠시 경기가 반짝할지 모르지만, 경기가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장기적인 경제의 회복이 늦어집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소비 진작으로 경기를 살리자는 목소리만 큰 것 같아 문제입니다. 결국, 이번 위기는 경제학 패러다임이 바뀔 정도로 나빠지고 나서야 끝이 날 것 같다는 암울한 생각이 듭니다.



P.S. 저는 지난 11월 말에 강의차 미국을 방문했고, 다녀와서는 독일에서 맡은 일을 마무리하느라 블로그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글을 기다리신 분들께 죄송하고, 이제 시간의 여유가 생겼으니 다시 글을 열심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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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10월 6일 주식 시장은 호주의 기준금리 인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코스피지수가 1,600선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호주의 기준금리인상이 중요한 까닭은 이것이 세계적인 출구전략의 신호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구전략(Exit Strategy)이란 중앙은행에서 풀었던 유동성을 거두어 들이는 정책을 뜻합니다. 작년 가을 이후로 경제위기에 처한 각국 중앙은행은 시중에 엄청난 양의 돈을 풀었는데, 이제 위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 돈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출구전략을 실행한 나라가 없었지만, 호주가 시작한 이상 많은 나라가 출구전략을 쓰리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이론대로라면 유동성 공급과 출구전략을 잘만 쓰면 경제위기를 그리 힘들지 않게 끝낼 수 있습니다.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 돈이 부족한 시중에 돈이 돌면서 수요가 촉진되고, 이로 말미암아 경기 전체가 살아나기 마련이고, 일단 경기가 살아나고 나면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을 흡수해 경기과열을 막으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유동성 공급과 출구전략이 이론대로 움직이질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00년대 초반 미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과 뒤이은 출구전략이죠.

2000년에 들어 닷컴 버블이 터지고, 곧이어 9/11사태가 나면서 미국은 불황을 맞게 됩니다. 당시 FRB 의장이던 그린스펀은 유동성을 공급해 불황과 맞섭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불황은 금방 끝났지만, 시중에 넘처 나는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합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그린스펀은 다시 금리를 낮추는데, 그러자 폭등했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였고, 부동산 가격의 폭락은 파생금융상품을 타고 금융권 전체를 부실로 몰고 갔고, 결국 이는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원인이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FRB의 출구전략은 이미 2006년에 실행되었는데 2000년대 초반에 풀린 돈은 시차를 두고 2008년까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한번 흘러나간 돈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짐작하기 어려운 법이죠.

자산가격은 경기가 좋으면 오르고, 경기가 나쁘면 내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경기와 상관없이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기 때문에 자산가격이 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나쁜데 유동성 때문에 자산가격이 올랐다면, 유동성이 줄어들면 자산가격은 폭락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유동성을 조금 공급해서 경기를 살리고, 유동성을 조금 줄여서 경기과열을 막는다는 생각은 실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유동성이 많이 풀려 경기가 과열된 상태에서 유동성을 조금 줄였다간 경제가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죠.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늘리고 줄이는 것도 문제지만, 여기다가 정부의 개입까지 더해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방지를 중요한 사명으로 하기 때문에 경기가 과열되지 않을까 고민을 하지만, 정부는 물가상승보다는 경기침체를 더 무서워하기에 중앙은행이 출구전략을 쓰려고 하면 정부가 이를 제동할 수 있습니다(특히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쉽죠). 그러면 유동성은 위험할 정도로 많이 풀리게 되고, 결국 감당하지 못할 사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한국은행은 출구전략을 검토하겠다는데, 정부는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다."는 입장을 반복합니다. 즉, 정부는 물가가 아무리 오르더라도 유동성을 최대한 늘려 불황을 막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국은 G20국가 중 출구전략을 가장 늦게 쓰는 국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지금 경제 상황은 모래밭에다 기초도 없이 임시 건물을 세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기초가 없으니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이라 불안한지라 중앙은행은 "그만짓자."는데, 정부는 "기초 없어도 이 정도는 문제없다."며 계속 지으라고 종용하는 꼴이죠. 물론 정부의 말이 맞는다면 좋지만, 제가 보기에 이는 대단히 위험한 정책입니다. 일단 중앙은행이 위기를 막겠다고 개입한 이상 출구전략을 잘 써도 시장이 정상화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정부까지 나서 출구전략도 제때 쓰지 못한다면 정말 심각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앞으로 유동성 공급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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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드디어 끝나가는 징후가 보입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기에 세계경제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한국 경제에도 훈풍이 부는 모습입니다. 한때 환율과 주가 역전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지만, 지금은 주가가 1,700선을 돌파하고, 환율은 1,200선 밑으로 떨어지면서 점차 위기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다는 소식도 집을 사려는 사람에겐 나쁜 소식이지만,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미국의 부동산 가격 급락 때문이었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부동산 대출을 해준 금융권의 부실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꼭 나쁜 소식만은 아닙니다. 게다가, 신문에는 "몇 년 만에 추석 분위기가 난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실물경기까지 살아나는 분위기입니다. 이 정도면 경제위기는 이미 다 끝난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경제상황은 몇 달 전과 비교해서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선, 주가와 환율이 제자리를 찾는 것은 수출이 잘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은 경기부양정책 때문에 돈이 넘쳐나는데 금리는 낮아서 투자처를 찾아 달러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입니다. 이렇게 달러가 들어오니 환율이 내려가고, 이렇게 들어온 돈이 주식 시장에 들어가니 주가가 오르는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도 전국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의 현상입니다. 게다가, 거래량이 워낙 적으니 지금 거래가는 실제 경기상황의 반영이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경기가 살아났다."는 보도도 실체가 있다기보다는 소비를 유도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언론플레이에 가까워 보입니다. 실물경제의 상황은 언론을 믿기보다 여러분이 직접 주변을 살펴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지금 각국 정부는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말로 사람들의 심리를 바꾸려 노력 중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경제가 살아난다고 믿는다면 투자와 소비가 늘면서 경제가 정말 살아나기 때문이죠.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안 좋은데 심리만 바뀐다면, 겉 자란 보리가 겨울 추위에 얼어 죽듯 투자와 소비에 나섰던 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결국 경기 회복은 더욱 늦어질 것입니다.

저는 작년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이번 경제 위기가 10년 이상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고, 지금도 이러한 전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아무리 언론과 정부에서 긍정적으로 전망을 하여도, 실제 경제가 살아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경제위기는 나름대로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긍정적인 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한계기업이 대부분 부도가 났고, 수익률이 좋은 기업만 살아남으면서 경제의 체질이 바뀌었습니다. 또한, 돈을 빌리지 못해 고생한 기업들은 엄청난 현찰을 쌓아 놓게 되었고, 이 덕분에 위기대처능력이 향상되었습니다. 경제위기의 또 다른 긍정적인 작용은 성장잠재력이 큰 기업이 사업을 확장할 기회가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2001년 9/11사태로 항공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많은 항공사가 인원절감에 나서자 당시 생겨나기 시작한 저가항공사들은 저렴한 인건비로 유능한 조종사를 많이 채용했고, 그 결과 지금은 저가항공사가 대형항공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제위기는 경제의 체질을 바꾸지도 못했고, 작은 기업이 좋은 자산을 저가에 사들일 기회를 제공하지도 못했습니다. 즉, 각국 정부가 위기를 넘기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경기침체의 긍정적인 기능이 사라져버린 것이지요.

경제위기의 또 다른 순기능은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점입니다. 1930년대 대공황은 "불황기에는 정부가 재정 적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고, 1970년대의 불황은 반대로 정부가 가격, 임금 통제로 경제에 간섭해야 한다는 케인스주의가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년 말 경제위기가 터지자 진정으로 경제를 잘 아는 전문가들은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는데, 막상 1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이 나왔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가 않습니다. 즉,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은 없이, 정부가 돈을 푸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고 넘어간다는 말이죠. 그런데 돈을 풀어 경제위기를 돌파한다는 개념은 이미 그린스펀 의장이 90년대부터 열심히 쓰다가 이번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일으킨 개념에 의지한 해결책이 진정한 해결책일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은 이번 위기가 빠르게 정리되고 호황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과 현실을 혼동하면 안 되겠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이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P.S. 전에 쓴 대로 지난주부터 훈련 과정이 시작되면서 매우 바쁜 일정이 진행 중입니다. 꼭 시간이 없다기보다 정신적으로 피로해 글을 자주 쓰기가 어렵네요. 어쨌든 시간 나는 대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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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200개 이상의 국가가 존재하지만, 그중 어떤 나라는 대단히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대단히 가난합니다. 그런데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원이 많은 나라는 부유하다고 생각하지만,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는 자원이 풍부함에도 대단히 가난합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자원이 거의 없지만,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축에 드는 나라입니다. 물론 사우디 아라비아 등 석유가 많이 나는 나라가 부유한 예도 있긴 하지만, 몇 년 전 저유가 시대엔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실이 재정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음을 생각할 때 석유만으로 국가의 부를 유지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 수준으로, 유럽과 비교해서 절반 정도이기 때문에 사우디 아라비아를 대단히 잘사는 나라고 분류하기도 어렵습니다.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를 착취하기 때문에 부유하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만, 이것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명은 아닙니다. 우선,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착취한다면, 부유한 나라는 어떻게 부유해져서 남의 나라를 착취할 수 있게 되었는지가 설명이 안 됩니다. 즉, 이러한 주장은 "왜 가난한 나라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은 될지언정, "왜 어떤 나라는 가난해져서 남의 나라에 착취당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답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역사를 볼 때 착취를 하는 나라와 착취를 당하는 나라는 정해져 있지 않고, 시대가 지나면서 늘 바뀌기 마련입니다. 중세 시대엔 유럽이 가난했기 때문에 아랍인들에게 억눌렸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인이 아랍인을 억누르게 됩니다. 중국은 오랫동안 주변국을 착취했지만, 근대 이후엔 서구 열강과 일본에 착취당하게 되었죠. 그리고 지금처럼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계속 낸다면, 미국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착취이론은 이처럼 착취를 당하던 국가와 착취를 하던 국가의 입장이 바뀌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죠.

한국인은 국가간 경제력의 차이를 노력의 차이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즉, 열심히 일하는 나라는 잘살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 나라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죠. 이 말은 직관적으로 상당히 설득력이 있지만, 많은 경제학자는 이러한 설명을 거부합니다. 우선, 개인은 노력하는 사람이 돈을 벌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국가 단위로도 이러한 논리가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죠. 또한, 요즘 처럼 양극화 현상이 심한 사회에선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초기 자본이 부족한 사람은 좋은 가정 출신보다 훨씬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국가도 많고, 이런 나라에 함부로 "너희가 가난한 이유는 노력을 안 하기 때문이다." 라고 비난한다면 너무 잔혹한 태도일 것입니다. 물론 가난한 나라에 가 보면 게으른 사람이 많아 보이긴 하지만, 이는 그 나라의 실업률이 높기에 생기는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한국인도 가난하던 시절에는 외국인들로부터 "게으른 국민"이라는 비난을 들었지만(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이, "아침에 일찍 깨는 사람이 없어 조용한 나라"라는 해석도 있더군요), 지금은 잘살게 되면서 어느 나라보다 근면하다는 평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독일인들도 가난했던 19세기엔 게으르다는 평판이 있었다는군요. 이러한 이유에서 제프리 삭스 교수나 장하준 교수 등은 경제수준의 차이가 노력의 차이에서 온다는 해석을 거부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적 차이를 경제수준 차이의 원인으로 보는 해석이 있는데, 이는 막스 베버가 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가 대표적입니다. 베버는 개신교도와 가톨릭교도가 섞여 사는 독일에서 개신교도가 가톨릭교도보다 부유한 원인을 개신교의 교리가 자본주의를 낳았고, 따라서 개신교도는 자본주의 정신에 따라 열심히 돈을 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책을 쓰던 19세기엔 이러한 해석이 상당히 그럴듯했는데, 지금 독일의 경제 상황을 보면, 가톨릭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남부는 부유한 데 비해, 개신교가 강한 북부는 남부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뒤떨어집니다. 국가 간의 경제력을 봐도 과거엔 영국 등 개신교 국가가 훨씬 부유했지만, 지금은 이탈리아 등 가톨릭 국가들이 개신교 국가와 대등하거나 앞설 정도로 경제가 많이 발달했습니다. 또한, 동아시아가 가난하던 시절엔 유교가 경제발전을 가로막는다는 해석이 유행했지만, 동아시아가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유교야말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습니다. 요즘은 BRICs 4개국의 경제발전이 눈부신데, 이 네 나라의 문화에서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찾는 해석도 곧 등장하겠죠.

결국, 크게 놓고 보았을 때, 인류는 아직도 경제의 발전과 후퇴의 원인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도 <경제학의 향연>(Peddling Prosperity)에서 미국이 2차대전 이후에 유지하던 "경제의 마술"을 잃어버린 원인에 대해 "알 수가 없다."라고 설명합니다. 미국처럼 경제학자들이 늘 경제활동에 대해 연구하는 나라도, 왜 수십 년간 잘되던 경제가 갑자기 나빠졌는지 알 수 없다면, 경제활동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남지 않은 나라의 과거사를 근거로 그 나라가 가난해지거나 부유해진 원인을 찾기는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자신의 무지를 화려한 수사로 포장해 마치 모든 경제현상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는 듯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 결과 대중은 "나는 경제를 이해하지 못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이해하고, 따라서 이들이 정부에 제안한 정책을 따르면 꼭 경제가 살아나겠지." 하는 환상을 갖게 되죠. 하지만, 지금 정부에 조언을 하는 경제학자들은 작년에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내년에 경제위기가 다시 찾아온다고 예측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인간은 매우 단순한 현상조차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잦은, 매우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모든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계몽주의가 남긴 유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인식한다면, 미래에 대해 함부로 예측하기 보다는 겸손히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야겠죠. 경제에 대해서도 "미래는 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보다,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엔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인 태도를 모두 경계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계몽주의와 경제학 연재를 마칩니다. 조금 무겁고 딱딱한 내용이라 재미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즐거운 주말 되시고, 월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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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작년 미국 대선에서 세라 페일린은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와 정통 보수층의 지지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던 존 매케인을 도우며 맹활약을 벌였습니다. 알래스카 출신인 페일린은 미국 본토의 보수 정치인들이 잃어버린 보수주의의 가치관(기독교, 가정중심, 동성애 반대, 백인 중심의 사고 등)을 그대로 재현해 냈기에 보수적인 유권자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습니다. 페일린은 "작은 마을에 사는 미국인이 진짜 미국인이다."라는 말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죠. 미국 본토에서 떨어진, 매우 특수한 지역에 사는 사람이 진짜 미국인을 논한다는 사실이 우습긴 하지만, 페일린 자신이 보여주듯, 정치적 경향만 놓고 본다면 알래스카 인들이 본토 미국인보다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더 잘 반영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처럼 본토에서 떨어진 지역이 본토보다 더 본토의 전통적인 사고를 잘 계승하는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교포 중엔 한국의 70-80년대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막상 한국에 사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적인 생각을 버렸는데,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은 미국으로 떠나던 당시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간직하기 때문이죠. 또한, 코리아타운에 가면 한국에선 보기 어려운 90년대풍의 간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도 미적 감각이 한국을 떠난 당시 이후로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18세기 유럽 문화의 산물이고, 유럽이 18세기를 극복하고 21세기로 넘어왔는데 비해, 미국은 여전히 18세기 유럽 문화의 전통을 따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한 예 중 하나가 바로 세계의 질서에 대한 믿음이지요. 18세기 유럽인들은 뉴턴의 물리학으로 자연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사조에 크게 영향을 받은 미국인들은 지금도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20세기에 물리학 혁명을 거치며 근대 과학의 패러다임을 포기하게 된 유럽인들은 세상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존재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죠.

이러한 철학적인 차이는 경제를 대하는 태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인들은 합리적으로 머리를 잘 쓰면 경제현상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즉, 더 훌륭한 수학 모델을 개발하기만 한다면, 남보다 더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이 낳은 열매는 Long Term Capital Management(LTCM)였습니다.

살로몬에서 arbitrage 거래를 하던 사람들이 나와 차린 LTCM은 자신들이 시장의 움직임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한 근거는 바로 어제 쓴 Random Walk Hypothesis 때문이었습니다. Random Walk Hypothesis에 따르면 시장의 움직임은 무작위로 일어나고, 따라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현상의 확률을 계산하는 수학의 모델을 쓴다면 시장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죠.

하지만, LTCM의 생각과 다르게, 시장은 무작위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시장에서 "팔자" 주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공황 심리가 퍼지면서 모두가 팔자에 나서기 마련이죠. 즉, 동전을 던질 때는 한쪽 면만 계속 나올 확률이 극히 낮지만, 시장은 모두가 팔자에 나설 확률이 상당히 높은 것이죠. 다른 말로 하자면, 무작위로 벌어지는 현상은 극단적인 경우가 거의 발생하지 않기에 종단곡선의 양쪽 끝은 거의 바닥에 붙은 모습을 보이는 데 비해, 경제현상에선 극단적인 경우가 가끔은 발생하기 때문에 종단곡선의 양쪽 끝이 바닥에서 뜬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를 fat tail이라고 부르죠.

시장이 무작위로 움직인다는 LTCM의 믿음은 현실을 볼 때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주가가 20% 이상 떨어진 1987년의 Black Monday는 시장이 무작위로 움직인다는 가설에 따르면 우주 역사에 한 번 있음 직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주식의 역사에선 이렇게 주가가 급격히 떨어진 예가 종종 나타나죠. LTCM의 두뇌들은 이처럼 분명한 사례를 알면서도 자신들의 가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LTCM의 종말을 불러온 러시아의 부도 사태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더욱 황당했습니다. LTCM은 복잡한 계산 끝에 러시아의 부도를 미국이 수수방관하지 않으리라는 쪽에 큰 돈을 베팅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러시아를 구제할지는 수학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는 정치적 고려의 영역이고, 심리학의 영역이기에 수학적 확률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의 모델을 맹신하고 러시아에 투자했고, 그 결과 스스로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시장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추구하는 미국인의 태도와 대조를 이루는 태도를 우리는 조지 소로스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로스는 동유럽 출신 유대인이고 영국의 명문 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전형적인 유럽의 유대계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죠. 그는 양자역학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펀드 이름을 Quantum(양자) Fund라고 지었습니다. 양자역학에서 핵심적인 불확정성 원리는 그의 투자철학에 기반을 제공해주었죠. 그는 시장이 안정적으로 움직이리라고 예상하지 않고, 시장이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게 움직이리라고 예상합니다. 따라서 시장이 급격한 혼돈에 빠질 때 시장에 들어가 큰돈을 벌고 나오는 방식으로 투자하길 좋아하죠.

어제 합리적인 경제관에 도전하는 세 명(나심 니콜라스 탈렙, 브느와 만델브로, 조지 소로스)를 언급했는데, 생각해보니 세 명 모두 유럽인, 또는 유럽계네요(탈렙은 그리스계 레바논인, 만델브로는 폴란드 출신 프랑스인, 소로스는 헝가리 출신). 그에 비해 LTCM은 앵글로-색슨계가 주류를 이루는 금융회사였습니다. 이처럼 문화적 차이는 경제관의 차이를 낳았고, 경제관의 차이는 각각 다른 주장을 낳았죠. 작년 경제 위기 이전까지는 미국의 합리적인 경제관이 경제계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작년 가을 이후로는 이러한 경제관이 설득력을 많이 잃었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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