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심리학, 두뇌'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0/01/18 분노 (5)
  2. 2010/01/07 21그램 (1)
  3. 2009/08/15 무의식의 활용 (4)
  4. 2009/07/04 하품이 전염되는 원인은? (4)
  5. 2009/06/30 육체와 정신 (5)
  6. 2009/05/08 마인드맵(Mind Map) (8)
  7. 2009/05/07 바디 맵(Body Map) (6)
  8. 2009/04/30 두뇌의 역할분담 (1)
  9. 2009/04/02 스스로를 바꾸는 두뇌 (15)
우울과 분노는 현대인을 괴롭히는 두 가지 대표적인 감정입니다. 우울증이 불행의 내적 표현이라면 분노는 불행의 외적 표현이지요. 우울증이 자신을 파괴한다면 분노는 다른 사람을 파괴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파괴한다면 이는 곧 자신의 파괴로 이어지기 마련이죠.

최근엔 한국에도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면서 우울증의 위험을 인식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분노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죠. 이는 한국인이 분노에 대해 관대한 한국의 문화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뒤끝만 없다면" 화를 가끔 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분노를 중요한 감정적 문제로 봅니다. 특히 지도자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함부로 화를 낸다면 이를 심각한 인격적 결함으로 여깁니다(전에 어떤 서양 사람의 강의를 들으니,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은 원인은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벌을 받아서"라고 하더군요. 한국에선 전혀 들어보지 못한 해석이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분노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분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이 노력합니다. 그래서 서양엔 anger management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회사가 많고, 관련 서적도 다양하죠.

하지만, 다양한 분노 통제 기법이 개발되었음에도, 분노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기법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미국 시트콤 사인펠드에는 분노의 문제가 있는 프랭크가 화가 날 때마다 "Serenity now"라고 말함으로 분노를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하지만, 프랭크는 화가 날 때 이 구절을 소리침으로 화가 더 나고, 결국 분노를 다스리는 데 실패합니다. Anger Management라는 영화에는 분노 치료를 받는 주인공이 화를 더 돋우는 분노 관리 전문가를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코미디이기에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도 분노의 문제는 우울증만큼이나 치료법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노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분노가 삶에서 도움이 되는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싸움을 할 때 상대방에게 화가 나면 평소보다 훨씬 큰 힘으로 맞서 싸울 수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냥 말하면 상대방이 무시하겠지만, 화가 나서 따지고 들면 나의 요청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겠죠. 이처럼 분노는 위급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매우 유용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분노에 의존해서 살다 보면 분노의 부작용이 따라옵니다. 무엇보다 분노는 관계를 해친다는 점에서 해롭습니다. 인간관계는 대부분 개인의 영역 바로 바깥에 있는 공동 영역에서 일어나는데, 어떤 사람이 분노를 통해 공동 영역을 독점해 버린다면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 옆에 있으면 손해를 본다."고 피하게 되고, 결국 외톨이가 됩니다. 물론 다시 안 볼 사람이라면 화를 내서 내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익명의 대상을 상대로 분노를 무기로 써서 이익을 얻기도 합니다. 무리한 요구를 들어달라고 화를 내는 이른바 "진상 손님"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고, 누구를 대상으로 화를 내든, 화를 냄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데 익숙해지다 보면 분노를 의존하게 되고, 이러한 경향이 심해지면 결국은 분노의 노예가 되기 마련입니다. 즉, 처음엔 이익을 위해 분노했는데, 나중엔 분노하면 손해를 보는 줄 알면서도 분노를 그칠 수 없는 지경이 되죠. 이는 뇌가 외부의 자극에 대해 분노라는 방식으로 반응하는데 너무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이른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는 분노를 조절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 약물 중독자와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죠.

분노의 문제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관련이 깊습니다. 어린 시절에 삶에서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방법이라도 써야 된다고 느끼는 사람은 분노라는 무기를 쓰는 습관을 키우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분노의 문제를 겪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바쁜 부모가 생존경쟁을 위해 자녀를 돌볼 시간이 없는 오늘날, 대부분 사람은 분노라는 마약에 의지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며 자라고, 이는 결국 분노의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분노의 문제는 해결이 힘들므로 예방에 힘쓸 수밖에 없습니다. 즉, 자녀가 감정적인 안정감을 느끼도록 사랑을 표현함으로, 화를 내는 습관이 생기지 않도록 지도를 해야 자녀가 감정적으로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죠. 이러한 감정적인 안정이야말로 어떠한 물질적 유산보다 자녀의 인생을 부유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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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전 세계 어느 민족에서나 하늘의 별을 별자리로 묶어내는 풍습은 같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은 너무 많고 다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이를 별자리로 묶으면 영웅과 신, 동물들의 이야기가 탄생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이야기는 단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의미란 곧 이야기에서 나오고, 이야기 중에서도 하늘에 떠 있기에 모두가 볼 수 있는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띄기 때문이죠.

이처럼 대부분 민족은 별을 보며 이야기를 만드는데 그쳤지만, 그리스 민족은 별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물론 별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노력은 중국이나 바빌로니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중국이나 바빌로니아의 학자들은 별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하에서 점성술(astrology)을 연구하였고, 그리스의 학자들은 별의 움직임 자체를 알고자 천문학(astronomy)을 연구하였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처럼 자연현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수학적인 연구의 전통은 결국 서양에 과학이 탄생하는 원인이 됩니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수학적으로 연구한다면 인간은 세상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지식을 활용한다면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학지식의 유용성을 프란시스 베이컨은 "지식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말로 설명했죠. 르네상스 이후에 서양에서 과학이 발달하면서, 세상을 수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과학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양이 과학을 바탕으로 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를 정복하면서 과학적 사고는 모든 나라로 퍼지게 되죠.

하지만, 과학을 바탕으로 한 사고가 좋은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닙니다. 많은 나라가 서양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전통적인 가치관이 붕괴하고, 가족관계가 멀어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인간성이 황폐해지는 등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또한, 자연의 이용은 자연의 파괴로 이어졌고, 이는 곧 인류의 멸망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과학적, 합리적 사고의 폐해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지나치게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라, 조금 어리석고, 조금 손해 보는 듯 해도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자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는 삶에 대해 관심을 보이게 되었죠. 한국에서 몇 년 전 유행하던 "웰빙"이라는 표현도, 결국은 지나치게 합리적으로 목적만 추구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물질세계에 살고, 물질세계는 대부분 수학을 바탕으로 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인간은 단지 물질적 필요만 채우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물질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부분이 있고, 이처럼 신비한 부분을 지닌 인간은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죽어버리기 때문이죠. 모든 민족이 별자리를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었습니다. 물질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인생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잉태된 인간이 우주 역사의 0.00000001%도 안 되는 기간에 존재하다 사라지는 찰나의 삶에 무슨 의미가 존재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인생의 의미라는 말 자체가 비합리적인 언어의 사용 때문에 생겨난 무의미한 표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당신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말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죠.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인간의 마음속엔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인간은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하기 때문이죠.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과학에서 채워진다면,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는 인문학, 예술, 종교 등에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오늘날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은 과학의 영향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강조하면서 인생의 의미와는 매우 멀어졌는데, 이처럼 인문학이 변질되면서 인생의 의미 연구라는 본래의 임무를 저버린 것이야 말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경쟁하며 서로 자극하는 가운데 발전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선 대부분의 사람이 인문학, 예술, 종교 등에 관심을 보이고, 과학을 하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오늘날은 과학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원동력이고, 인문학, 예술 종교 등은 점차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기 원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는 과학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론 과학자들도 과학을 바탕으로 인생의 의미, 인간의 의미에 대해 연구합니다. 두뇌를 연구함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신경과학(neuroscience)이나 인간의 본성을 진화에서 찾으려는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 그러한 예죠. 또한, 인간이 죽을 때 몸무게가 21그램 줄어든다며, 영혼의 중량이 21그램이라는 주장도 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이라는 신비를 과학으로만 풀어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과학을 통해 지식을 얻지만, 과학 이외의 활동을 통해 지혜를 얻고, 이렇게 얻은 지혜야말로 인간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돕는 삶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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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 자주 오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일주일에 다섯 번 글을 올리려고 노력합니다. 어찌 보면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매일 새로운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때로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죠. 그래서 요즘은 일종의 로테이션 시스템을 개발해, 머릿속에 글을 쓰는 순서를 정해놓으려고 노력합니다. 우선, 주말에는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세 가지 정도 소재를 개발합니다. 월요일이 되면 주말에 생각했던 글을 하나 쓰고, 화요일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이 남는데, 주말에 생각했던 소재가 아직 남아있으면 하나를 더 씁니다. 만약 이 소재를 글로 옮길만한 때가 아직 안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냥 머릿속에 남겨두고(이를 영어로 "putting it on the back burner"라고 하죠), 주중에 인터넷에서 접한 소식을 바탕으로 하나를 작성합니다. 남은 이틀은 주간에 생각난 소재를 활용하거나, 아니면 아주 옛날에 생각해 두었던 소재를 활용합니다(즉, back burner에 눠 두었던 소재를 꺼내 쓰는 것이죠). 물론 이는 매우 엉성한 시스템이지만, 어차피 글 쓰는데 완벽한 시스템이란 존재하지 않고, 대충 패턴만 정해 놓으면 어떻게든 굴러는 가더군요. 그래도 가끔 저녁이 되었는데 글 쓸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오늘 같은 날)는 패닉에 빠지기도 합니다.

글을 쓸 때 가장 신기한 일은, 반쯤 준비된 소재를 머릿속에 담아두면 언젠가 거의 완성된 형태로 다시 생각난다는 점입니다. 제 글에는 많은 예화가 들어가는데, 주제에 맞는 예화를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죠. 하지만, 일단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이를 머릿속에 담아두면 언젠가 이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여러 가지 예화가 연결되어서 거의 완성된 글의 구조를 띠고 다시 생각이 납니다. 이렇게 되면 글쓰기가 쉬워지죠. 이 글도 오래전 부터 생각하던 주제지만, 아까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할 때 갑자기 거의 완성된 형태로 머릿속에 떠올라 쉽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생각이 정리되는 것은 무의식의 작용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고는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동시에 일어나는데, 보통 의식의 영역만 중요시되고, 무의식의 영역은 무시되죠. 하지만, 무의식도 의식만큼이나 중요하고, 의식이 할 수 없는 기능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창작의 영역은 의식의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무의식이 거들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죠. 그래서 많은 위대한 음악가는 자신이 쓴 곡을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받아 적었을 뿐이다."라고 설명하고, 많은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마음대로 활동하도록 풀어놓았을 뿐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전형적으로 의식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영감을 받는 모습을 설명하는 표현이죠. 예술가들이 밤에 작업을 많이 하는 것도, 밤이 되면 의식의 지배가 약해지면서 무의식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의식의 도움은 예술가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반인도 무의식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가 잦죠. 영어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또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Let me sleep on it."이라고 말합니다. 즉, "이 문제를 두고 잠을 자겠다."는 뜻이죠. 잠을 자면 의식이 정지하고 무의식이 활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무의식은 의식과 다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기에, 의식으로는 풀리지 않던 문제를 풀 수도 있습니다.

무의식과 만나는 매우 중요한 통로는 바로 꿈입니다. 꿈은 의식이 정지한 수면 상태에서 이루어지지만, 기억에 남는다는 점에서 의식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의식은 꿈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고, 무의식은 꿈을 통해 의식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있죠. 과학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 케쿨레는 벤젠의 분자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해답을 찾지 못하다가  꿈속에서 뱀이 꼬리를 문 모습을 보고 벤젠이 탄소 원자의 고리로 되어 있다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과학의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무의식의 도움을 받은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컴퓨터에는 보통 CPU(중앙처리 장치)와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장착되기 마련입니다. CPU는 일반적인 연산을 하고, GPU는 그래픽 관련 연산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OS는 대부분 CPU와 GPU를 따로 관리하기에 비효율적이었죠. 하지만, 다음 달에 나오는 애플의 새로운 OS X인 스노우 레오파드는 GPU로 하여금 CPU의 연산 기능을 분담하도록 해준다고 합니다. 즉, 지금까지 CPU 혼자서 정보를 처리해야 했다면, 이제는 GPU도 같이 일한다는 말이죠. 의식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은 CPU만 의지하고 GPU는 거의 활용을 못 하는 컴퓨터와 같고, 무의식을 활용하는 사람은 CPU와 GPU를 함께 활용하는 컴퓨터와 같습니다. 특히, 창조성이 많이 필요한 시대이기에 무의식을 활용하는 법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무의식을 활용하기 위해선 무의식을 적대시하지 말고, 무의식의 영역에서 어떠한 메시지가 오는지 귀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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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오늘은 같이 일하는 사람네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 아기를 잠깐 봐주게 되었습니다. 돌을 막 지난 아기인지라 걸어 다니고 싶어하는데 혼자 걷질 못해 누가 양손을 위로 붙잡아줘야 하기에 제가 같이 걸어 다녀줬죠. 아기가 옹알이를 시작하는 시기라 계속 "어버어버"하는데, 저도 아기랑 같이 놀다 보니 어느새 "어버어버어버"하고 말하게 되더군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고, 그렇게 따라 한다고 의사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라 억누르기가 어렵습니다.

이 처럼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따라 하는 경향은 여러 가지 상황에서 발견됩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이 머리를 긁적이면 자신도 머리를 긁적이고, 상대방이 팔짱을 끼면 자신도 팔짱을 끼게 되죠. 자신과 억양(accent)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그 사람의 억양을 흉내 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 오래 살다 보면 그 지역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됩니다. 이러한 행동은 인간뿐 아니라 원숭이에서도 발견되는데, 어린 원숭이 앞에서 특이한 표정을 지으면 원숭이도 그러한 표정을 따라 한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출처- Wikipedia

이처럼 상대방을 흉내 내는 경향은 두뇌의 거울 뉴런(mirror neuron) 때문에 생깁니다. 거울 뉴런은 원숭이의 뇌를 조사하다가 발견되었습니다. 원숭이가  땅콩을 집을 때 특정한 뉴런이 반응하는데, 이 뉴런은 다른 원숭이가 땅콩을 집을 때도 반응을 한다는 사실일 밝혀졌습니다. 이는 자신의 행동과 남의 행동에 같은 반응을 보이는 뉴런이 존재한다는 뜻이죠.

거울 뉴런의 발견은 두뇌의 작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나고, 남은 남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늘 남과 나를 동일시하며 살아갑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주먹에 맞는 장면을 보며 인상을 찡그리거나, 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려 죽어갈 때 눈물을 흘리는 행동이 좋은 예죠. 축구 경기를 보면서 태클을 당한 선수가 뒹구는 모습을 볼 때 내 몸에 충격이 온 듯 움찔하는 것도 그러한 경우입니다. 심지어 TV 광고에서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던 사람이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장면을 보며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같은 현상이죠. 이는 내가 남의 경험을 내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예인데, 지금까지는 마땅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지만 이제 거울 뉴런이 발견되면서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거울 뉴런은 남의 행동을 나의 행동처럼 받아들이는데, 그 결과 나도 남의 행동을 흉내 내게 됩니다. "거울" 뉴런이라는 명칭은 그래서 생겼지요. 예를 들어, 남이 하품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그가 하품하는 것은 그가 피곤하거나, 따분하거나, 산소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그의 하품을 보면서 그의 처지에 처한 듯 느낀다면, 나도 피곤하거나, 따분하거나, 산소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결국 나도 하품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한 사람이 하품을 하면 거울 뉴런의 작용으로 나도 하품을 하게 되죠. 이러한 거울 뉴런의 작용은 매우 강력해서 때로는 하품하는 장면을 보지 않고, "하품"이라는 단어를 보거나, 아니면 머릿속으로 누군가가 입을 쩍 벌리고 "아흐~"하고 하품하는 장면을 상상하기만 해도 하품이 납니다. 아마 이 글을 읽다가 하품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분도 많을 것입니다.

거울 뉴런의 작용으로 남의 처지를 나의 감정으로 느낄 때 우리는 공감(empathy)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공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情)의 근원입니다. 여기 한겨울에 난방비가 없어 냉방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정이 없는 사람이고, 그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느껴서 그를 도우려는 사람은 정이 많은 사람이죠. 한국인이 정이 많다고 하는 말은, 다시 말해 한국인이 남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으로 느낀다는 말이고, 이는 거울 뉴런이 잘 발달했다는 뜻이죠.

한국인이 거울 뉴런이 발달했다고 추측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한국인이 패션의 유행에 민감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외국에도 유행은 존재하죠.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의 유행은 주로 스타일의 유행인 데 비해, 한국의 유행은 상표, 심지어 특정 상표의 특정 모델의 유행이라는 점에서 훨씬 강도가 높습니다. 한국인이 남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데 만족하지 않고, 남과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은 그만큼 한국인의 거울 뉴런이 다른 민족보다 잘 발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 있습니다. 유행은 집단의 거울 뉴런이 집단에 대해 작동하는 현상이고, 거울 뉴런이 발달했다면 남과 거울처럼 똑같이 보일 때 마음이 놓이겠죠. 실제로 커플이 똑같은 옷을 입는 커플룩은 거울 뉴런이 발현된 좋은 예인데, 한국에 커플룩을 즐기는 커플이 많다는 사실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거울 뉴런은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었기에 아직도 이에 대한 연구가 끝나지 않았지만, 소비자의 행동분석에서 자녀교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행동의 신비를 푸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리라고 보입니다.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더 많은 성과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참고- PBS에서 방영한 Mirror Neuron video(14분,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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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저는 블로그에 올릴 글의 아이디어를 주로 산책할 때 얻습니다. 집안에 가만히 있을 때는 생각이 안 떠오르는데, 밖으로 나와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런 일이 늘 반복되다 보니 '과연 왜 산책을 하면 아이디어가 떠오를까?' 하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그런데 얼마 전 John J. Ratey와 Eric Hagerman가 쓴 Spark: The Revolutionary New Science of Exercise and the Brain 라는 책을 읽다 보니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운동을 하면 몸이 건강해질 뿐 아니라 두뇌가 건강해진다는 주장을 담았습니다.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면 두뇌가 자극을 받아 기억력이 좋아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더 많이 떠오를 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치매 등 정신의 문제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운동이 두뇌에 워낙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운동으로 육체가 건강해지는 것은 부수효과일 뿐이고, 정말 중요한 효과는 두뇌가 건강해진다는 점이다."라고 까지 주장합니다.

이 책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공부는 두뇌발달에만 유익하고, 운동은 육체발달에만 유익하다고 생각하죠. 만약 머리 좋은 학생이 운동도 열심히 한다면 "공부하지 않고 왜 시간낭비하냐"고 꾸짖겠죠.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공부를 하는 틈틈히 운동을 해야 두뇌도 잘 발달하고, 따라서 공부도 더 잘되기 마련이죠.

육체와 정신을 구분하는 태도가 퍼지기 전엔 육체 훈련도 교육과정의 한 부분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많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교육도 문학과 철학뿐 아니라 육체의 단련을 중요시했죠. 이러한 분위기에서 자라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용맹한 군사였고 한겨울에도 맨발로 다닐 정도로 몸이 튼튼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철학자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죠. 유럽에서 계몽주의 영향으로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관점이 지배하게 되면서 점차 정신을 개발하는 사람은 육체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고, 많은 철학자는 운동에 등을 돌리고 연구실에서 사색만 하는 삶을 즐겼습니다. 그 결과 근대 이후로 지식인은 곧 유약하고 머리만 발달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죠. 하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영국의 스포츠계를 이끈 것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엘리트라는 점을 볼 때, 육체와 정신을 함께 개발하는 전통은 유럽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와 정신이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둘로 쪼개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육체와 정신 중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기가 쉽죠. 정신이 육체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이 원하는 대로 육체를 부려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적 성공을 하기 위해 잠을 포기하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 굶기를 밥 먹듯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산다면 정신은 만족할지 몰라도 육체는 정신에 의해 일방적으로 고통을 당할 뿐, 전혀 돌봄을 받지 못하죠. 이렇게 육체를 학대한다면 그 결과 육체는 정신에 반항하여 각종 반란을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알레르기부터 암까지, 육체가 정신을 괴롭힐 수 있는 수단은 대단히 많죠. 결국, 정신의 일방적인 지배는 육체의 파괴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에 비해 정신을 무시하고 육체의 만족만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남에게 큰 피해를 주면서까지 돈을 벌어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은 돈을 위해 정신 건강을 포기한 셈이죠. 이런 사람은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 입고 살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망가져버린 영혼은 고통 속에 살 수밖에 없죠. 이런 사람은 각종 공포증, 신경쇠약, 강박관념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즉, 정신에 대한 육체의 학대는 정신을 황폐화하는 법이죠.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나누어 보는 관점은 이처럼 큰 문제를 일으켰고, 그 결과 사람들은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웰빙이라는 개념도, 단지 몸에 좋은 음식만 먹자는 뜻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온전한 건강을 추구하자는 뜻이죠. 즉, 음식에 신경을 쓸 뿐 아니라 착실하게 운동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는 등 삶의 전반적인 태도와 습관을 바꾸자는 운동입니다. 이는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이 일으킨 문제에 대한 각성에서 출발하는 것이죠.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독립된 실체로 생각하는 태도는 계몽주의가 남긴 가장 잘못된 유산 중 하나입니다. 건강한 삶을 살려면 정신과 육체를 모두 돌봐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정신과 육체 중 돌봄이 필요한 영역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이를 잘 돌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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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사고는 직선적입니다. A에서 B가 나오고, B에서 C가 나오죠. 결국 결론인 Z에 이르기까지, 옆길로 새지 않고 가장 짧은 거리로 달려가는 사람이 가장 논리적으로 효율적인 사람입니다. 만약 A에서 B로 갔다가, B에서 C1, C2, C3로 가고 다시 C1은 D1, D2...D180까지 간다면, 결국 길을 잃고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짧은 거리로 목적지에 다다르려는 논리적인 태도는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놓치는 부분이 많기 마련이죠. 세상에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늘 하나의 대안만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적을 것입니다. 늘 대안은 여러가지이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대안이 더 훌륭한 대안일 수도 있는 법이죠. 그렇다면 세상의 실체는 직선적이지 않고,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퍼지는 대안의 연속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산에 자라는 나무를 봐도 다른 대안은 없는 듯 길죽하게만 자라는 나무는 드물고, 대부분 사방으로 가지를 치고, 가지는 또 다른 작은 여러 가지를 치면서 자라기 마련이죠.

세상이 방사형 구조에 가까운 모습이라면, 인간의 사고도 방사형 구조를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 즉, 너무 목적지를 향해 직진만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안을 펼쳐놓고, 이러한 대안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방사형 사고를 머리로만 하려면 대단한 어려움이 따릅니다. 인간은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만 다룰 능력이 있기 때문에, 직선적 사고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따라서 방사형 사고를 하려면 종이나 컴퓨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필기해 놓은 공책을 보면, 논리적, 직선적 사고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번호와 알파벳에 맞춰 논리적인 순서대로 배열된 내용은 보기에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상상력의 부족과 대안의 무시라는 직선적 사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법이죠. 이는 남의 강의를 받아 적을 때는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커다란 장애물이죠. 직선적인 사고만 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고, 이른바 큰 그림(the big picture)를 볼 수가 없습니다. 큰 그림은 늘 방사형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토니 부잔(Tony Buzan)이 대중화한 마인드맵(Mind Map)은 전통적인 필기의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대안으로 보입니다. 마인드맵은 하나의 중심 컨셉에서 시작해 생각이 사방으로 가지를 치듯 퍼져 나가는 방식이기에 방사형 사고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죠.

토니 부잔과 배리 부잔이 쓴 The Mind Map Book은 마인드맵을 작성하는 자세한 지침을 제공합니다(영어로된 작성 지침을 읽어볼 분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물론 그들의 지침을 따르면 더 훌륭한 마인드 맵을 작성할 수 있긴 하겠지만, 그러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예술적 감각과 창의력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따라할 엄두를 내가기 쉽지 않죠(물론, 이렇게 마인드맵을 작성하면 예술적 감각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겠죠).

제가 보기에 마인드맵의 중요성은, 직선적 사고를 넘어, 방사형 사고를 하는 법을 키우는데 있습니다. 편협하게 하나의 대안만 생각하고, 그 대안이 낳을 결과 중 다시 하나만 선택하는 방식 대신, 여러가지 대안을 펼쳐 놓고, 그러한 다양한 대안이 다시 여러가지 결과를 낳는 모습을 상상하고, 이렇게 무질서한 듯 복잡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겁내지 않고,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 이러한 복잡한 상황을 관통하는 커다란 흐름이나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터넷에서 유명한 구글의 마스터 플랜 그림은 마인드맵의 규칙을 따르지는 않았지만, 방사형 구조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습니다(위의 사진은 전체의 일부분이고, 전체를 보려면 여기를 방문하세요). 만약에 위 그림을 전통적인 필기 방식으로 정리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1. 구글의 사업 영역은 다음과 같다
1) 검색
2) 광고
3) 이메일
...
1)검색
(a)구글의 검색기술이 다른 회사보다 나은 원인
(b)검색을 통해 수익을 올릴 방법
(c)검색을 이메일 등 기타 서비스에 적용하는 방법
...

이런 식으로 써 놓으면 전통적인 회사의 보고서가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고서에는 위의 그림과 같은 창의성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가 힘들겠죠. 그에 비해 거대한 칠판에 아이디어 몇개를 적어 놓고 사람들 마다 생각나는 대로 아이디어를 더하고 아이디어끼리 연결하면서 마스터 플랜을 만들면 무질서해 보이지만 현실을 잘 반영하는 계획을 짤 수 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는 얼마전에 제가 맡은 훈련 과정 책임자(여기서는 훈련과정을 school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School leader가 되지요)의 역할에 대해 마인드맵으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참고로, 이 그림은 XMind라는 프로그램으로 작성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무료인데다가 쓰기가 편하기에 추천할만 합니다(맥용, 윈도우용, 리눅스용 있음). 다양한 역할을 적어 놓고, 이러한 역할들의 의미를 생각하다 보니 결국 학교 책임자는 학교의 행정적 운영을 책임지고, 사람들을 돌보고, 앞으로 학교가 발전하도록 이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학교를 이끌면서 이러한 세가지 영역(행정, 돌봄, 발전)에 충실한다면 좋은 school leader가 될 수 있다는 뜻이죠.

머리속에 생각이 많이 떠오르다 보면 꼭 종이나 컴퓨터의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메모처럼 논리적 순서를 따라 직선으로만 적어놓지 말고, 방사형으로 적어놓으면 생각을 더 잘 정리할 수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도 쉽습니다. 마인드맵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자신이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메모를 바꾸기만 해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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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근처 마을에서 중고 자전거 장이 열린다기에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가보았습니다. 유럽은 워낙 자전거가 비싸서 새로 살 엄두가 안났고, 중고 정도면 50유로 이하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가게 되었죠. 그런데 막상 가보니 50유로 미만으로는 기어가 없거나, 브레이크가 안 듣거나(허걱 -_-;;), 아니면 바퀴가 흔들거리는 제품 밖에 없더군요. 정상적인 제품은 모두 100유로가 넘어 결국 포기하고 이베이에서 가장 싼 자전거로 하나 구입하였습니다.

어제 자전거가 도착했길래 열심히 조립해서 타보았는데, 싸구려라 그런지 좀 조잡한 느낌은 나지만, 어쨌든 핸들을 움직이는대로 방향을 틀고, 브레이크 잡는 대로 속도가 줄어서 그럭저럭 만족합니다. 그러고 보면 전에 타던 브롬톤이 몹시 그러워지는군요. 한국에서 사서 잘 쓰다가 유럽까지 들고 왔었는데, 2003년 한국 돌아올 때 프랑스에 두고 왔죠. 지금도 프랑스 가면 찾아올 수는 있는데, 기회가 나지 않아 아직 가져오지 못했죠. 브롬톤은 타면 몸에 착 맞는 느낌이 납니다. 좋은 자전거와 나쁜 자전거의 차이는 바로 이처럼 몸에 잘 맞는 느낌의 여부겠죠. 자전거 뿐 아니라 자동차도 좋은 차와 나쁜 차는 몸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에 포르쉐를 타 본 사람의 말을 들으니 포르쉐는 시속 200km로 가도 흔들리지 않고 운전자가 원하는대로 움직인다고 하더군요. 그에 비해 보통 차는 시속 200km의 속도가 나올지는 몰라도,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면 흔들거려서 안정적으로 컨트롤 하기가 어렵다죠.

사람이 기계를 조종할 때 기계와 하나된 듯 느끼는 까닭은, 두뇌가 기계를 몸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두뇌엔 신체의 각 부분에 대응하는 영역이 있는데, 샌드라 블랙슬리(Sandra Blakeslee)와 매튜 블랙슬리(Matthew Blakeslee)는 The Body Has A Mind of Its Own에서 이를 바디맵(Body Map)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바디맵은 몸에서 시작하지만, 몸 주위의 사물로도 확대될 수 있습니다. 즉, 두뇌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듯, 몸과 연결된 물체가 몸처럼 움직인다면 두뇌는 그러한 물체도 몸과 마찬가지로 바디맵의 일부분으로 포함하게 됩니다. 좋은 자동차나 자전거는 운전자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기 때문에 쉽게 바디맵에 포함되고, 인간은 자동차나 자전거를 자신과 하나라고 느끼게 되죠(자동차를 몰고 천장이 낮은 주차장을 들어갈 때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이는 두뇌가 자동차 윗부분을 신체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기에 자동차와 천정이 부딪히는 상황을 자신과 천정이 부딪히는 상황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좋은 자동차를 몰고 대단한 속력으로 질주하면 마치 내가 대단한 능력을 얻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람들이 실용성이 없는 스포츠카에 열광하는 원인의 하나도 바로 이러한 심리적 요인 때문이죠.

승마 기술이 좋은 기수는 말과 하나가 된 듯 움직입니다. 이는 실제로 기수의 바디맵과 말의 바디맵이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서로 뚜렷히 구분되는 바디맵을 지니기에 인간이 말을 몰기가 쉽지 않고, 초보자라면 말에서 떨어지기가 쉽겠죠. 하지만 오래 훈련을 하다 보면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두 개의 바디맵이 통합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러고 나면 인간과 말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두 주체의 바디맵이 연결되는 예는 운동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구에서 콤비 플레이가 잘 되는 두 사람은 보지 않고 패스를 해도 공을 받을 수 있죠. 야구에서 뛰어난 유격수와 2루수는 마치 한 사람인 듯 공을 주고 받으며 주자를 아웃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호흡이 잘 맞을 수 있는 것은 바디맵이 연결되었기 때문이죠.

바디맵은 두뇌와 몸을 연결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바디맵이 잘못된다면 두뇌는 신체를 현실과 다르게 인식하고, 이는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뚱뚱하던 사람이 살을 뺀 후에도 마치 뚱뚱한 사람처럼 무겁게 걷는 현상은, 두뇌 속의 바디맵이 몸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게 너무 가벼운 그녀"(Shallow Hal)라는 영화에서 기네스 펠트로우는 잭 블랙이 보기엔 날씬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비만인 여성의 역할로 나오는데, 그녀가 걸을 때 보면 사뿐사뿐하게 걷는 것이 아니라 쿵쿵거리며 걷습니다. 이는 현실과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치인데, 실제로도 이렇게 자신의 현실과 다른 모습을 머리속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식증 환자는 아무리 뼈만 남은 자신의 모습을 거울속에서 봐도, 자신의 뚱뚱하다는 인식을 바꾸지 못하죠. 이처럼 바디맵 이상의 극단적인 예는, 자신의 팔다리가 자신의 일부분이 아니라고 느끼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사람 중엔 일부러 사고를 내 팔다리를 절단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들은 "이 팔은 내 팔이 아니니 제거해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죠. 이와 반대로, 사고로 팔다리를 잃고도 여전히 팔다리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이른바 "유령 사지"(fanthom limb)현상도 쉽게 목격됩니다. 유령 사지는 유령 사지의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미 잘려진 사지에 통증이 오면 이를 없애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최근엔 바디맵에 관한 인식이 퍼지면서 과학자들이 두뇌의 작동원리를 이용해 이러한 통증을 치료하는 방법도 찾아냈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한쪽 팔이 잘려나간 사람이라면 거울을 통해 온전한 팔을 반대편 위치에 보여주면 두뇌는 팔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느끼고, 통증도 사라지게 된다고 하죠.

바디맵이 신체 바깥의 사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개념은 서양인들의 personal space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personal space를 존중하는 문화가 없지만, 서양인들은 한 사람의 주변 공간도 그 사람의 소유라고 인정하고, 따라서 내가 그 공간으로 들어갈 때는 꼭 양해를 구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이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움직일 때도 몇번이나 "Excuse me"를 연발하는 것이죠. 또한 다른 사람의 차가 내 차를 들이 받는 사고가 나면, 돈 문제를 떠나 대단히 기분이 나쁜 까닭도 내 차가 나의 일부분 처럼 느껴지기에 내 차가 들이받히는 사고는 내 몸이 남에게 들이받히는 것 만큼이나 끔찍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우리는 지나치게 두뇌를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 살기에 신체의 중요성을 잊기 쉽지만, 신체는 두뇌와 연결되고, 따라서 신체의 반응과 느낌에도 귀를 기울임으로 두뇌에 올바른 바디맵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고대 로마인들의 격언은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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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휴대폰이나 PDA 등으로 일정을 관리하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디지털 건망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일정을 관리하는 기기를 보지 않으면 일정이 생각나지 않고, 휴대폰이 없으면 가까운 사람의 전화번호조차 기억을 못하기도 하죠. 이러한 증상은 "Use it or lose it"(쓰지 않으면 퇴화함)의 원칙에 따라 쓰지 않는 기억저장 능력이 쇠퇴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기억력은 점차 감퇴하는 추세입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엔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저장할 방법이 기억 밖에 없었고, 따라서 당시 사람들의 두뇌는 기억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지금은 글로 전해지는 일리아드나 오딧세이 등은 고대 그리스에서 구전되던 내용인데, 당시 시인들은 이렇게 방대한 서사시를 몇시간씩 원고도 보지 않고 사람들에게 줄줄 암송해주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판소리도 완창에 5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긴 내용이지만, 명창들은 이렇게 긴 내용을 암송하길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자가 발명되고,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자 기억력은 점차 감퇴하였고, 지금은 전자장치로 인해 웬만한 정보는 기역할 필요가 없게 되어 디지털 건망증까지 나타난 것이죠.

사람들은 이러한 기억렴 감퇴 현상을 안 좋게만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는 두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자신의 임무를 외부에 아웃소싱하는 정상적인 변화이기도 합니다. 오늘 일정을 휴대폰에 담아 놨는데, 같은 정보를 두뇌에도 기록해 놓는다면 이는 공학에서 말하는 reduncancy이고, 매우 비효율적인 일이죠. 그에 비해 외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두뇌에서 삭제한다면, 두뇌는 기억에 쓰던 공간을 다른 정보 처리에 쓸 수 있기에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죠.

제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도,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머리속에 생각이 계속 떠도는데, 이는 두뇌가 아이디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붙잡아 두기 때문이죠. 하지만 생각을 글로 써 놓고 나면 아이디어가 안전하게 외부에 저장되는 셈이고, 따라서 머리는 과거의 아이디어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준비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글을 계속 쓰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떠오르지만, 글을 쓰지 않는다면 옛날에 떠오른 몇가지 아이디어가 두뇌를 꽉 차지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두뇌의 놀라운 점은 두개골 바깥의 세상을 자신의 일부처럼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휴대폰에 정보를 저장한다면 휴대폰은 두뇌의 일부처럼 작동합니다. 수첩에 생각을 기록한다면 수첩도 두뇌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으로,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두 사람의 두뇌가 한 사람의 두 부분처럼 작동하게 됩니다. 즉, 남편이 외부의 일을 하고 아내가 집안일을 돌보는 가정이라면 남편은 집안의 상황에 대해 거의 전혀 기억을 못하고, 아내는 외부의 일에 대해 거의 전혀 기억을 못해도 가정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도 두 사람의 두뇌가 협력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협력하던 부부가 이혼하게 된다면, 두 사람은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을 뿐 아니라, 두뇌에도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됩니다. 즉, 부부로 살 때는 배우자 두뇌를 내 두뇌처럼 활용했는데, 이제 두 사람이 헤어졌으니 배우자의 두뇌에 더 이상 접근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엄청나게 많은 정보와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셈이죠. 실제로 제가 만난 어떤 사람은 이혼의 경험을 "몸의 한 부분이 떨어져나간 것 같은 아픔"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이는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두뇌가 겪는 현실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많은 현대인에게 하드 드라이브 고장은 엄청난 고통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찍은 사진, 자신이 쓴 글 등을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하는데, 이렇게 모아 놓은 자료가 사라진다면 이는 뇌의 일부분이 죽어버리는 것 만큼이나 충격적일 수 있죠. 저도 얼마전에 하드 드라이브가 고장난 적이 있는데, 지난 10여년간 모은 자료가 모두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참 암담하더군요. 결국 소프트웨어로 고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때 이후로 백업을 자주 하려고 노력합니다.

두뇌가 외부로 기능을 확장하는 메카니즘은 때로는 신비의 영역에 속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두뇌가 다른 두뇌에 말 없이 영향을 끼치는 예를 묘사하는 설명이지요. 영어로는 이를 telepathy라고 하는데, 텔레파시에 대해선 과학적 설명은 어렵지만 그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기는 힘듭니다. 운동경기에서 완벽하게 호흡이 맞는 선수들의 플레이나, 연기력이 뛰어난 두 배우의 호연 뒤에는 텔레파시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동물의 세계를 보자면, 바닷속에 떼를 지어 다니는 물고기들은, 앞 부분에 적이 나타나면 앞에 있는 물고기 부터 차례로 방향을 트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고기가 동시에 방향을 틉니다. 이것도 일종의 텔레파시인 셈이죠.

운동장에 가서 경기를 보거나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보는 경험은, TV로 경기 중계나 콘서트 중계를 보는 것과 매우 다른 경험입니다. 여기엔 많은 원인이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할 때는 개인을 뛰어 넘는 유대감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들이 함께 흥분하면 두뇌끼리 연결이 되고, 이렇게 연결된 상태에서는 개인이 겸험할 수 없는 에너지가 분출되기 마련이죠. 이러한 집단의식은 전쟁 등의 상황에서도 생겨나는데,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이라도 국가를 위해 총으로 적을 쏴 죽일 수 있는 것은 집단적 흥분상태로 말미암아 개인의 의식을 넘어서는 다른 힘이 개인에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두뇌에 관한 연구는 아직 초보 단계이고, 어떻게 두뇌가 집단으로 연결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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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TAG 두뇌
많은 사람은 인간의 몸을 일종의 정교한 기계라고 상상합니다. 그러한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두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에 비유할 수 있죠. 그런데 컴퓨터와 두뇌의 다른 점은, 컴퓨터는 입력된 정보를 처리할 수 있을 뿐이지만, 인간의 두뇌는 정보를 처리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바꿀 능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엔 두뇌 속에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이 있고, 한 번 자리잡은 기능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과학자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두뇌에 이상이 생겨 한 부분이 손상되면, 그 부분이 담당하던 기능은 재생이 불가능했죠. 하지만 요즘 두뇌 과학자들은 두뇌가 매우 유연 (plastic)하기 때문에, 한 부분이 고장나도 다른 부분이 그 기능을 이어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각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과거엔 눈 먼 사람은 세상을 볼 방법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눈이 먼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아직 대중화하지는 않았지만, 간략한 원리를 설명하자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정보를 전자 신호로 바꾸어 혀 위에 올려놓은 압력 장치에 보냅니다. 그러면 두뇌는 혀가 눌림으로 입력된 신호를 시각 정보로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장치를 쓰면 눈이 안 보이는 사람도 세상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군요. 만약 이러한 장치가 좀 더 발전하면, 앞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 대단한 희망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장치가 가능한 것은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면 시각을 처리하는 능력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즉, 두뇌는 상황에 맞춰 끊임 없이 자신을 바꾸기 때문에 자극만 들어온다면 없던 기능도 수행할 능력이 생긴다는 말이죠.

노만 도이지 (Norman Doidge)가 쓴 자신을 바꾸는 두뇌(Brain that changes itself)는 이러한 두뇌의 유연성(plasticity)에 초점을 맞춘 흥미로운 책입니다. 저자는 두뇌가 환경에 따라 변하는 흔한 예로 입맛의 변화를 듭니다. 미식가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대부분 아이들에게 먹으라고 줬다간 기겁을 하고 도망갈 음식이 많죠. 하지만 한 번, 두 번 먹다 보면 그러한 맛을 좋아하는 법을 배우고, 나중엔 그러한 음식이야 말로 최고의 맛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프랑스인들은 냄새가 지독한 치즈일수록 훌륭한 치즈라고 치기에, 외국인은 좋은 치즈가 나오면 매우 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이 없으면 못사는 김치도, 처음 접한 외국인에게는 가까이 하기 힘든 괴상한 음식이겠죠. 이는 뇌가 특정한 음식을 좋아하도록 변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에서 생기는 문화적 차이입니다.

두뇌는 유연하기 때문에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는 한 늘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문제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예를 들어, 어린이는 하루에도 모르는 단어를 몇 개씩 접하고, 그러한 단어를 이해하고 외우기 위해 두뇌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새로운 단어를 접할 기회가 훨씬 줄어들고, 두뇌에 들어오는 자극도 줄어들죠. 직업의 영역에서도, 20대에 처음 회사에 들어가면 각종 일처리 방법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40-50대가 되면 새로운 일을 배울 기회는 적고, 지금까지 배워온 기술을 반복해서 적용하는 단계가 됩니다. 따라서 노인은 기억력, 이해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Norman Doidge는 노년에 발생하는 두뇌의 퇴화는 노화의 결과라기 보다는 새로운 자극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는 반대로 계속 뇌를 자극해 주면 노인이라도 뇌가 퇴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는 뇌를 젊게 유지하는 방법으로 외국어를 배우라고 권합니다. 즉, 노년은 "외국어를 배우기에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니라, "외국어를 배우지 않으면 안될 나이"라는 말이죠.

생각해보면 저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뇌가 늘 자극을 받아서 젊음을 유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20대 초반에 두뇌활동이 가장 활발했다"느니 "군대 갔다 오면 머리가 굳는다"는 말을 하지만, 저는 지금 제 머리가 20대 때 보다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제가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여행할 때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느라 그 나라 말을 배워서 써야 하기 때문이죠. 즉, 제 머리엔 늘 강도 높은 자극 (낮선 외국어)이 들어오고, 따라서 늙을 여유가 없는 것이죠. 만약 앞으로도 이렇게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산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두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해봅니다.

두뇌가 자극에 반응하는 성질은 정신질환을 치료할 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강박증 (Obsessive-Compulsive Disorder, OCD)은 서양에 매우 흔한 정신질환인데,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As good as it gets)에서 잭 니콜슨이 강박증 환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죠. 강박증 환자는 꼭 무슨 문제가 발생했거나 발생하리라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이를 막기 위해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문이 잠겼는지 여러 번 확인하기도 하고, 손에 치명적인 세균이 묻었을까봐 하루에 수십 번 비누로 씻기도 합니다. 하지만, 강박증이 있다고 강박관념에 따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강박증은 더해질 뿐입니다. 즉, "지금 당장 손을 비누로 씻지 않으면 세균에 감염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누로 손을 씻으면 두뇌는 강박관념->강박행동이라는 공식을 받아들이게 되고, 따라서 강박증은 더 심해집니다. 심리분석가이기도한 Norman Doidge는 강박증을 없애려면 강박관념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즉 "지금 당장 손을 비누로 씻지 않으면 세균에 감염되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손을 씻지 않아야 결국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사고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즉, 두뇌를 한쪽 방향으로 밀어대면 그 방향으로 가는 관성이 생기니까, 그러한 관성이 생기지 않도록 그쪽 방향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두뇌는 인간의 모든 기관중 가장 신비한 부분이고, 아직도 신비의 영역에 속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주목할만한 과학적 성과가 많이 나오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더 많은 성과가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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