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의 역사

문화 2010/01/26 06:22
아바타의 역사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천만 관객을 돌파하였고, 심지어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괴물의 벽을 넘을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오더군요. 이로써 카메론 감독은 타이타닉과 아바타로 역대 흥행 영화 1위와 2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화제를 모으는 현상이 있으면 이와 연관된 정책을 만들기 좋아하는 관료들은 이번엔 한국에서도 아바타 같은 영화를 만들도록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아바타 같은 작품이 나온다면, 세계 모든 나라 정부가 영화 산업에 돈을 쏟겠지요. 아바타는 미국 정부가 지원했다고 탄생한 것이 아니듯, 한국 정부가 디지털 영상 산업을 지원한다고 꼭 제2의 아바타가 한국에서 탄생하리란 보장도 없을 것입니다. 정말 아바타의 성공을 본받으려면 할리우드가 아바타를 만든 원동력을 이해하려면 할리우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할리우드는 50년대까지 할리우드를 지배하던 "가족중심의 영화"라는 개념에 반발하면서 탄생하였습니다. 지극히 보수적이고 순진한 미국인들은 영화도 이러한 가치를 반영하기 원했고, 따라서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오락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의 주류를 이루죠(대표적인 예가 사운드 오브 뮤직). 그런데 60년대로 넘어오면서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고민, 불안 등을 반영한 영화가 없다는 점에 대해 실망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이러한 스트레스는 단지 온 가족이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봐서는 풀리지가 않기 때문이죠. 이처럼 어른을 위한 영화를 원하는 관객과 전통적인 가족 영화를 만드는 할리우드 사이에 틈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틈새를 비집고 로버트 알트만(올트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피터 복다노비치, 윌리엄 프리드리킨 등의 새로운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들어옵니다. 유럽 영화와 60년대 감수성의 세례를 받고 새로운 미학을 익힌 이들은 엑소시스트, 대부, 라스트 픽쳐 쇼, MASH 등을 내놓으며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둡니다. 이들의 등장으로 감독을 소모품 취급하던 스튜디오들은 영향력을 급격히 상실하고, 미국도 유럽처럼 감독 중심의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작가주의 영화의 황금기인 70년대가 탄생하게 되죠.

하지만, 이렇게 감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선, 감독은 사업가라기보다는 예술가이고, 따라서 예술만 고려한 작품을 만들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감독이 스튜디오의 간섭 없이 마음껏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었다가 흥행에 실패하게 되면 뒷감당이 안되기 마련이죠(스튜디오 중심의 작품이라면 스타 배우 기용 등 최소한의 흥행 안전장치를 두기 마련이고, 또한 제작비를 어느 선에서 제한하기 때문에 사업적인 면에서 감독이 혼자 만든 영화보다 안정성이 높죠). 또한, 거대한 권력을 누리게 된 감독들은 권력에 따르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마약에 중독되거나 정신이상이 나타나면서 스스로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70년대 말에 이르면 과거에 대단한 명성을 누리던 감독들의 작품이 흥행에 줄줄이 실패하고, 70년대식 감독 중심의 제작방식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조스를 만들고, 조지 루커스가 스타워즈를 만들면서 할리우드는 또 다른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제는 10대가 열광할만한 주제에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할 볼거리를 많이 집어 넣은 블록버스터가 할리우드의 주류로 자리 잡는 것이죠. 이와 함께 지극히 개인적이고 성인을 위한 영화를 만들던 70년대의 거장들은 대부분 사라지게 됩니다(그 중 알트만과 코폴라는 90년대에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오죠. 스콜세즈는 80년대에도 꾸준히 활동을 하지만, 그가 과거의 명성을 회복한 것은 90년대에 들어서였죠). 이제 스튜디오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 저렴한 가격에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젊은 감독을 대거 기용하는데, 그 중의 한 명이 제임스 카메론입니다. 캐나다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던 카메론은 스타워즈 등 할리우드 영화를 동경하다 결국 영화계에 입문하고,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으로 내세운 터미네이터로 흥행감독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는 70년대 말부터 할리우드를 지배한 블록버스터 정신의 가장 뛰어난 계승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관객을 매료할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잘 알죠. 그가 아바타를 디지털 3D로 만든 것도 "대중을 즐겁게 할 최고의 눈요깃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흥행성공에서 보이듯, 그의 계산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죠.
 
결국, 아바타는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 가족 오락 영화->이에 대한 반발인 작가주의 영화->이에 대한 반발인 블록버스터로 이어지는 할리우드의 흐름 속에서 탄생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지 않고, "영화 산업이 돈 된다더라." 하는 소리만 듣고 영화에 투자한다면 돈도 못 벌고 영화도 망칠 뿐입니다(실제로, 한국 영화계의 한가지 특징은 "블록버스터"를 내세운 영화가 거의 늘 흥행에 실패한다는 점이죠). 진정으로 한국 영화가 발전하려면 아바타를 흉내 내지 말고, 한국 영화 고유의 흐름을 이해하고, 이러한 흐름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도서- Easy Riders, Raging Bulls: How the Sex-Drugs-and-Rock 'N' Roll Generation Saved Hollywood by Peter Bis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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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온 씨름은 1983년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생기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씨름은 힘만이 아닌 기술이 중요하고, 기술이 좋다면 자신보다 덩치가 큰 선수를 넘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죠. 실제로 큰 인기를 끈 이만기 선수는 초기에 한라급 체중이었지만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백두급 선수들을 꺾고 천하장사에 여러 번 올랐죠. 이러한 씨름의 특성 때문에 씨름을 보다가 스모를 보면 억지로 몸무게를 늘린 선수들이 힘으로 상대를 밀어내려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실을 살펴보면 한때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한국의 씨름은 완전히 쇠퇴하였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스모는 여전히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왜 씨름은 높은 인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되었을까요?

씨름이 인기를 상실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씨름이 현대적 스포츠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원래 씨름은 단오, 추석 등 특별한 명절 때 동네 사람들이 모여 즐기던 놀이였습니다. 따라서 씨름은 명절의 한 부분이었고, 명절이면 빠지지 않고 즐기는 행사였기에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천하장사대회도 처음엔 설날 등 명절에 열렸습니다. 그런데 씨름이 인기가 높아가면서 씨름은 "명절의 한 부분"이 아닌, "힘과 기술로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로 변신합니다. 이렇게 씨름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씨름은 명절로부터 독립하였고, 다른 스포츠, 즉 역도나 권투처럼 효율적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운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올림픽이 아니면 역도 중계를 TV로 보는 사람이 적고, 권투도 인기를 잃은 지 오래되었는데, 씨름만 인기를 끌 이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요즘 시청자는 극도로 사실적인 일본의 이종 격투기, 또는 잘 짜진 연극인 미국의 프로 레슬링을 원하지, 어정쩡하게 둘이 규칙에 맞춰 경기를 치르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포츠로 변신한 씨름이 인기를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이죠.

스모는 전통 의식을 그대로 보존함으로 21세기까지 인기를 유지하였다는 점에서 씨름과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보기에 우스워 보이는 스모의 여러 가지 요소(기저귀 같이 보이는 마와시, 상투 튼 머리 모양, 경기 전 천천히 다리를 드는 모습)는 관중에게 '당신은 시간을 초월한 의식(儀式, ritual)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도구입니다. 즉, 스모는 스포츠로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일본인에게 역사를 뛰어넘는 일본의 문화에 참여하도록 해주는 통로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띄죠. 그렇기에 스모엔 여러 가지 불합리한 요소가 있음에도(예를 들어, 스모선수의 등급은 객관적 성적에 따라 자동으로 결정되지 않고, 스모 협회의 판단에 따라 결정 됩니다), 여전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죠.

인간은 의식을 통해 삶에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자신의 주권을 확립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 시간대는 잠에서 깨서 출근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바쁘고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깨자마자 하는 일련의 행위(기지개를 켜고, 세수를 하고, 신문을 먹으면서 아침을 먹고, 시계를 힐끔 보고 지하철 시간에 맞춰 집에서 나가는 등)를 통해 아침 시간대를 다스립니다. 이러한 의식을 확립하고 나면 매일 "오늘은 어떻게 출근 준비를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피할 수 있죠.

의식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에 박자를 표시하는 역할도 합니다. 과거에 인간이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던 시절엔 계절을 따른 의식을 지냄으로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유럽인들은 봄의 기운이 가득한 5월 초가 되면 메이데이를 즐겼고, 한국인은 더위가 극에 달하는 복날이 되면 보양식을 먹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인이 설을 쇠거나 미국인이 가을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도 과거에 계절에 따른 의식이 현대에도 살아남은 예라고 할 수 있죠.

의식은 평범한 행위에 신비한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도 합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이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 고수레(고시래)라고 하며 음식을 땅에 던지는 풍습도 음식을 먹는 행위를 영적인 행위로 바꾸는 의식이었습니다. 마법의 술이라고 알려진 압생트를 설탕 위에 부어서 압생트의 색이 바뀌는 모습을 보고 마시는 사람은 "이 술은 정말 신비한 술이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마련이죠.

이처럼 의식은 어떤 행위의 특정한 의미를 강조하거나, 없는 의미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따라서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에 의식을 결합하면 중요한 행위로 바뀔 수 있습니다. 테킬라의 본고장인 멕시코 사람들은 테킬라를 그냥 마십니다. 그런데 멕시코 밖에서는 테킬라를 마시기 전 손등에 묻은 소금을 핥고, 테킬라를 마신 후에는 라임을 빠는 방식으로 마시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작은 의식은 이미 수백 가지 술이 존재하는 세계 주류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테킬라가 자리를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식이 없이 마시는 테킬라는 그냥 술일 뿐이지만, 소금을 핥고 라임을 빠는 행위를 추가함으로 테킬라는 의식의 한 부분이 되기 때문이죠.

마틴 린드스트롬이 쓴 Buyology에 따르면 기업들은 의식이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자사의 제품을 의식과 연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팟 터치나 아이폰을 잠글 때 나는 "철커덕" 소리는 다른 제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소리입니다. 이러한 소리를 들으며 제품을 쓰던 사람이 다른 제품을 쓰면 무언가 허전하게 느끼겠죠. 그러고 보면 맥의 시동음이나 윈도우의 시동음도 사용자를 자사 제품에 묶어 두기 위한 작은 장치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이 리듬을 잃을수록 사람들은 의식을 통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정말 이러한 의식이 내게 의미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의식은 인생에 도움이 되지만, 올바르지 못한 의식은 인생을 낭비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죠.

P.S. 저는 지난주부터 엇그제까지 이탈리아에 강의차 다녀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글을 쓸 수 있을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일정을 소화하는데 벅차 글을 못올렸습니다. 사실 정해진 날자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하나의 의식이라 그냥 건너뛰고 나니 매우 찜찜하더군요. 어쨌든 약속을 못지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음주엔 베를린과 프라하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다녀오는데, 돌아와서 주말엔 글을 올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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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미국인은 선과 악을 뚜렷이 구분하고, 선이 무력으로 악을 응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미국인의 세계관은 잔인한 인디언에 맞서 싸우는 서부 개척자들, 악랄한 나치를 무찌르는 미국군 등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잘 드러나죠. 하지만, 베트남전을 겪으면서 미국인들은 선과 악의 분명한 구분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고, 이러한 고민은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과거에 대한 반성을 낳았는데, "무고한 백인 개척자를 공격하는 인디언"이 사실은 "자신의 땅에 침범한 적을 내쫒기 위해 사투를 벌인 피해자"라는 새로운 역사적 인식도 이러한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미국인들이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해 생각을 바꾸면서, 미국인들이 만드는 영화도 새로운 세계관을 반영하게 됩니다. 따라서 요즘 나오는 미국 영화에서는 과거 리셀 웨폰의 멜 깁슨이나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화끈하게 악당을 무찌르는 정의의 주인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21세기를 대표하는 슈퍼영웅 배트맨은 검은색 복장을 입고 밤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등 어두운 면을 특징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밝은 이미지만 강조하는 전통적인 슈퍼영웅(대표적인 예가 슈퍼맨)과 차별된 점을 보입니다. 아이언맨은 "악의 세력과 대항해 싸우는" 미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자신의 사업이 얼마나 비도덕적인가를 깨닫고 업종전환을 꿈꿉니다. 헐크는 주인공의 억눌려진 원초적 욕망의 표현이기에, 헐크의 행동은 늘 선과 악의 혼합일 수밖에 없습니다. 벤 애플릭의 감독 데뷔작 Gone Baby Gone은 아동납치라는 주제를 통해 "정의의 집행에 따르는 부정적인 결과를 생각한다면, 정의의 구현이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클로버필드와 우주 전쟁(The War of Worlds)은 외계인의 지구침공을 다루었는데, 주인공들이 적과 싸우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를 보호하는데 그칩니다. 어차피 거대한 악은 내가 나서봤자 해결이 되지 않으니 내 주변사람이나 보호하자는 태도죠. 이러한 영화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처단하는 과거의 영웅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할리우드 주류영화가 전통적인 미국인의 변화한 가치관을 반영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 비해, 프랑스 출신의 뤽 베송은 여전히 선악의 구분이 분명한 영화를 만들어냅니다. 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트랜스포터 시리즈는 주인공이 멋있는 자동차를 몰며 악당을 때려눕히는 뻔한 줄거리로 나름대로 많은 팬을 확보하였습니다. 그가 각본과 프로듀싱으로 참여한 테이큰(Taken)은 단순한 선악 구도를 바탕으로 악을 응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리암 니슨은 딸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는 절대 선이고, 그의 딸을 납치한 범죄자들은 절대 악입니다. 리암 니슨은 단지 딸을 찾을 뿐 아니라 악을 응징하는데, 이는 만나는 모든 악당을 죽이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딸을 인질로 잡은 아랍인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총으로 죽인 것은, "말이 필요없다."는 뜻입니다. 말을 하고, 협상을 하다 보면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악당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지금 죽여버리는 것이지요. 이 영화는 선과 악의 경계가 너무도 분명하기에 범죄자에 대한 잔혹 행위까지 정당하게 보입니다.

이 영화가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반영한 또 다른 예는 악당이 모두 외국인이라는 점입니다. 주인공의 딸을 납치한 이들은 알바니아인이고, 부패한 경찰은 프랑스인, 그리고 납치된 처녀를 사들이는 사람은 아랍인입니다. 사실 나와 외모가 비슷하고, 같은 지역에서 같은 언어를 쓰며 사는 사람을 절대적인 악당으로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낯선 외모에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은 악당으로 상상하기가 훨씬 쉽죠. 문제는 이렇게 외국인을 악당으로 묘사한다면, 인간의 본능적인 공격성이 걷잡을 수 없이 표출되면서 매우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요즘 미국 영화는 외국인조차 함부로 "절대 악"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중동문제를 다룬 The Kingdom이 그러한 예인데, 이 영화는 모슬렘 테러리스트 세력을 소탕하는 줄거리를 담았으면서도, "결국 그들이나 우리나 복수를 원한다는 점에서 같지 않나?"라는 질문을 던짐으로 외국인을 적대시하는 태도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죠. 그에 비해 테이큰의 주인공은 "이 나쁜 외국 놈들을 깡그리 죽여버림으로 복수하겠다"는 식으로 단순 과격한 태도를 보임으로 관객 속에 잠자던 공격성을 일깨웁니다.

영국의 영화평론가 Chris Tookey에 따르면 이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10점 만점에 3.25점을 얻었는데, IMDB.com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7.9점입니다. 즉, 평론가들의 반응은 차가웠지만 관객(특히 젊은 남성관객)에게는 확실한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죠. 이처럼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덕분에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2억 2천만 달러나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고 앞으로도 이러한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의 주류로 자리 잡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미국인들은 전통적인 세계관의 문제점을 직접 목격하며 자발적으로 전통적인 선악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관점을 버렸기에, 이러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과거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장기적인 인기를 끌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테이큰이 생뚱맞게 20세기 미국인의 세계관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프랑스인들(프로듀서 뤽 베송과 감독 피에르 모렐이)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은 역사적인 원인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길 꺼리지만, 프랑스인은 그러한 금기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영화를 만들 수 있죠. 단순한 대결 구도를 바탕으로 한 폭력성을 코믹한 수준까지 밀어붙인 Hot Fuzz가 영국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즉, 20세기 중반까진 유럽 영화가 미국 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이제는 미국 영화가 유럽 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입니다.

미국 영화가 보이는 선악에 대한 고민의 모습은 단순한 미국문화가 좀 더 복잡해지는 중이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 대외관계에서 많은 실패를 맛본 미국이 이제 좀 더 성숙하고 현실에 걸맞은 생각을 하는 국가로 변화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P.S. 내일 밀라노로 출발해 열흘 후에 돌아옵니다. 가서도 가능하다면 블로그에 글을 하나쯤 올리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일정이 워낙 바빠 글이 자주 못나옴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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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코스트너는 8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수많은 히트 영화의 주연을 맡은 인기 배우였습니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였을 뿐 아니라 늑대와 춤을(Dancing with the Wolves)이라는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맡을 만큼 재능 있는 영화인이었죠.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로 그의 인기는 하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은 왕년의 스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톰 크루즈가 아직도 세계적인 스타로 군림한다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그의 인기하락은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케빈 코스트너가 인기를 끌었던 원인은 그가 헨리 폰다나 그레고리 펙처럼 미국인의 긍정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은 언터처블(The Untouchables), 꿈의 구장(Field of Dreams), 보디가드(The Bodyguard) 등에서 양심적이고, 예의 바르고, 정의를 추구하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무력을 쓰는 케빈 코스트너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인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에게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1993년에 나온 퍼펙트 월드(Perfect World)를 기점으로 그는 훨씬 어둡고 복잡한 인물을 연기하기 시작합니다. 클린턴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이 영화에서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범죄자로 나옵니다. 물론 그가 유괴한 아이와 애정의 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이 전형적인 악당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블록버스터 주연을 맡던 배우의 배역치고는 지나치게 어둡고 폭력적이었죠. 1995년에 나온 워터월드(Waterworld)는 코스트너의 변신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입니다. 육지가 거의 사라진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케빈 코스트너는 매우 차갑고 계산적인 인물을 연기합니다. 그는 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죽일 생각을 하고, 아이를 보호하는 여자를 학대합니다. 물론 나중엔 여자와 아이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이러한 변화는 너무 늦게 나오기에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가 극 중간까지 보인 차가운 인물의 이미지를 떨쳐내기 힘들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의 선한 이미지를 버리고 차갑고 어두운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흥행배우로서 그의 가치는 크게 손상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한 모습은 약자를 보호하고 악당을 징벌하는 정의의 심판자인데, 그는 지나치게 어둡고(Mr. Brooks에서 그는 살인충동에 시달리는 역할로 나옵니다), 약자를 보호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며(Open Range에서 그는 총에 맞아 쓰러진 적을 죽이겠다고 달려들다가 주변 사람의 만류로 포기합니다. 도덕심이 보통사람만도 못한 것이죠), 때로는 완전히 악의 편에 서기도 하니(3000 Miles to Graceland에서 그는 악당을 등치는 악당으로 나옵니다) 대중이 그가 나오는 작품을 외면한 것은 당연했죠.

지난 10년간 그가 나온 영화 중 그나마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는 Thirteen Days를 들 수 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는데, 정치적 판단력이 매우 뛰어나면서도 가정을 걱정하는 마음이 끔찍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가 이 영화의 흥행성공을 결정지었다고 말하기는 무리지만, 어쨌든 그가 과거에 보여주었던 선한 주인공의 이미지를 다시 보인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케빈 코스트너의 문제는 그가 어두운 역할을 주로 맡는다는 점이 아니라, 그가 어두운 역할을 맡을 때 무언가 어색하다는 점입니다. 톰 크루즈는 매그놀리아나 Tropic Thunder 등에서 전혀 블록버스터 주인공 같지 않은 어둡고 기괴한 역할을 맡아도 나름대로 잘 어울립니다. 이는 아마도 톰 크루즈라는 사람 자체가 기괴하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에 비해 케빈 코스트너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무언가 착한 면이 숨어 있는 듯이 보이고, 따라서 그가 영화 초반에 조금 삐딱하게 나와도 "저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착한 사람으로 돌아올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죠. 이러한 기대가 이루어지려면 처음에 보이는 불량한 모습이 어느 수준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퍼팩트 월드에서 다른 탈옥수를 죽이는 장면이나 Open Range에서 어린 동료를 발로 차 물에 빠뜨리는 장면은 그러한 수준을 넘어서기에 매우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이러한 장면이 나오고, 나중에도 주인공의 삶이 대단히 변하지 않는다면 관객은 실망하고 속았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케빈 코스트너는 1997년 에어포스 원의 주연을 맡을 예정이었는데, 자신의 두 번째 연출작 포스트맨을 만들기 위해 이 역할을 포기합니다. 결국, 이 영화의 주연은 해리슨 포드가 맡았고, 이 영화는 대 히트를 기록했죠. 그가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작품을 포기하고, 암울한 인류 종말상황을 그린 영화를 만든 것은, 과거와 같은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의 반영으로 보입니다(결국, 포스트맨은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그의 인기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합니다). 그는 또한 속편을 만들지 않는 배우로 유명한데, 이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제작과 주연을 맡아 큰 성공을 거둔 톰 크루즈와 비교되는 태도입니다.

결론적으로, 케빈 코스트너는 나름대로 주관을 갖고 새로운 방향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러한 영화에서 그가 보인 이미지는 대중의 기대와 너무도 달랐기에 갈수록 대중에게서 외면을 당한 것입니다. 하긴 존 웨인처럼 대중이 사랑하는 배우도 추격자(The Searchers)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내뱉는 어두운 역할을 맡았다가 흥행에 실패했으니, 대중의 기대에 어긋나는 어두운 역할만 계속 맡는 배우가 인기를 잃는 것은 당연하겠죠. 하지만, 케빈 코스트너는 최근에도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는 등 영화에 대한 애정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좋은 영화를 내놓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부디 이 재능있는 배우가 그냥 그저 그런 배우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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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는 분은 제가 쓰는 글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형식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사실을 이미 아실 것입니다. 글의 분량이나 시작하고 끝맺는 방식이 마치 틀에 찍어낸 듯 유사하죠. 이는 우연이 아니라 제가 그렇게 의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훌륭한 작가라면 주제에 맞게 어떤 글은 길고, 어떤 글은 짧게, 어떤 글은 충격적인 내용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어떤 글은 애매하게 끝내기도 하면서 변화를 주겠지만, 이렇게 형식을 바꿔가면서 글을 쓰려면 너무 고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글쓰기에 편한 형식을 정해놓고, 글의 내용만 바꿔가며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해놓은 형식 중 하나는 시작할 때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되는 일화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제는 DNA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를 낳는다는 내용이었는데, 글의 시작은 유럽에서 구입한 비타민C가 너무 커서 몇 쪽으로 나눠 삼켰다는 일화입니다. 글의 주제는 추상적이지만, 도입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라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만약 전통적인 글쓰기였다면 "세계에는 많은 민족이 존재하고, 각 민족은 문화뿐 아니라 신체에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서양인은 체구가 클 뿐 아니라 목구멍도 큽니다..."라는 식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글은 과거에는 글쓰기의 모범이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이렇게 썼다가는 구독자들이 다 떠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글은 지루하고, 답답하고, 지나치게 객관적이라 더 읽을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죠.

현대인은 정보범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엔 돈을 많이 줘야 정보를 구할 수 있었기에 정보가 귀중했지만, 오늘날엔 인터넷에서 이미 엄청난 양의 정보를 무료로 얻을 수 있기에 누가 막연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정보가 구체적인 사람의 삶에 연결된 모습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인터넷을 좋아하는 이유는, 인터넷에는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인간의 땀이 느껴지는 진실한 글이 많기 때문이죠. 만약 정말 귀중한 정보만 원한다면 무료로 고전을 다운로드 받아서 보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독자가 원하는 글이 바뀌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도 좀 더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진솔한 글을 써야 독자와 교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저자들은 글을 가면 삼아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가린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글을 썼기에 플라톤의 글에 나오는 철학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인지 플라톤의 생각인지도 알기가 어렵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저하게 감정이 배제된 교과서 같은 책을 썼기에 그의 책을 아무리 읽어도 그의 사생활은 알 수가 없습니다. 칸트, 헤겔 등 위대한 사상가들도 사생활과 분리된 글을 쓰는데 능했습니다. 당시의 독자들은 이러한 저자가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고, 오직 발표되는 책을 통해 저자와 만났을 뿐이죠.

하지만, 점차 정보가 많아지고, 특히 보편교육이 도입되어 국민 대부분이 정규교육의 혜택을 받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과거에 생활고에 쫓겨 국민학교도 나오기 어려웠던 시절엔 혼자서 밤에 공부하면서도 희열을 느꼈지만, 억지로 고등학교, 대학교 교육을 끝내게 된 사람은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많은 정보가 있기에 더 많은 정보를 얻는 일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인간관계가 점차 약화하고, 인간-인간의 만남이 인간-미디어-인간의 만남으로 대체되면서, 사람들은 꾸미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보길 갈망했습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대부분 철저한 연출을 따른 꾸며진 모습이기에 현실과 달랐기 때문이죠.

이러한 대중의 갈망은 스포츠와 리얼리티 쇼의 인기를 낳았습니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표현처럼 꾸미지 않아도 극적입니다. 선수들이 승리하고, 패배하며, 실수를 저지르고, 그러한 실수를 만회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진실성(authenticity)을 보았고, 여기서 매력을 느꼈죠. 인류의 역사에서 20세기처럼 스포츠가 인기를 끈 적은 없었다는 사실과 20세기는 미디어가 대중의 삶에 침투한 시기라는 사실은 분명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한 모습을 보기 원하는 대중의 심리는 리얼리티 쇼의 인기를 낳았습니다. 리얼리티 쇼로는 미국의 American Idol, 영국의 Big Brother, 프랑스의 Star Academie 등이 대표적인 예죠. 엄밀히 말해 리얼리티 쇼도 연출이 없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드라마처럼 완전히 작위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현실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형 리얼리티 쇼인 "우리 결혼했어요"는 유명인 중심이고, 실제 상황(상을 받기 위한 경쟁 등)이 아닌 가상의 결혼생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외국의 유명 리얼리티쇼와 다릅니다. 어쩌면 이는 한국이 서양 국가들보다 미디어가 생활에 들어온 역사가 짧고, 따라서 서양인처럼 "진실한 모습을 보고 싶다"라는 욕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진실한 모습을 보기 원하는 현대인의 갈망은 "리얼리티 쇼 같은 드라마"라는 기이한 장르를 낳았습니다.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화를 다룬 The Office(원래 영국에서 만들었지만 미국판이 더 유명해짐)나 뉴질랜드 청년들의 뉴욕 적응기를 다룬 The Flight of the Conchords(오자 아님), 사인펠드 쇼를 만든 래리 데이비드의 사생활을 보여주는 Curb Your Enthusiasm 등이 그러한 예죠. 리얼리티 쇼의 매력은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인데, 리얼리티 쇼 같은 드라마는 드라마이기에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리얼리티 쇼를 좋아하는 현대인은 드라마조차 리얼리티 쇼 같기를 원합니다. Lost 등을 만든 J.J. Abrams 감독의 영화 Cloverfield도 현실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라는 점에서 리얼리티 쇼 같은 드라마와 공통점이 보이죠.

미디어의 현실왜곡에 질식된 현대인이 미디어를 통해 진실한 모습을 보기 원하는 모습은 매우 모순적입니다. 정말 현실을 보고 싶다면 TV를 끄고 가족,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죠. 하지만, 현대인은 미디어 없이는 살 수가 없기에 미디어를 통해 현실의 환상을 찾습니다. 과연 현대인이 TV와 영화, 인터넷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는 없을지 고민해 보게 됩니다.

P.S. 전에 썼듯 다음 주엔 스위스에 회의를 다녀오느라 글을 못올릴 것 같습니다. 많은 양해 바라고, 9월 14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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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DNA

문화 2009/09/04 06:17
어제는 몸이 안 좋아 비타민C를 먹었는데, 평소에도 목에 잘 걸리더니 몸이 안 좋아 그런지 반쪽으로 쪼개도 넘어가질 않아 결국 네 쪽, 다섯 쪽으로 쪼개서 먹었습니다. 제가 목구멍이 좀 작긴 하지만, 한국에서 만든 비타민C는 기껏해야 두 쪽으로 쪼개면 넘길 수 있었는데, 역시 유럽 알약이 크긴 크더군요. 인터넷에도 미국이나 유럽 비타민C가 너무 커서 목에 걸린다는 글이 올라오던데, 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살다 보면 미묘한 신체적 차이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전에 인도에 갔을 때 리바이스 청바지가 싸기에 입어보니 묘하게 허벅지가 끼는 것이 영 불편했습니다. 치수를 바꿔가며 몇 개 입어봤는데 모두 불편하게 느껴지기에 포기하고 안 샀는데, 나중에 인도에 사는 한국 사람에게 물어보니 원래 한국 사람이 인도에서 만든 청바지를 입으면 안 맞는다고 합니다. 면바지는 그럭저럭 입을 수 있지만, 청바지는 신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체형의 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외국 사람이 한복을 입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복은 한국인의 체형을 바탕으로 한 옷이기에, 외국 사람이 입으면 영 이상하게 느껴지죠. 그에 비해 한국 사람은 아무리 체형이 서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서양 사람보다는 한복을 잘 소화해냅니다. 이는 명절에 한복 입고 나오는 연예인만 봐도 알 수 있죠.

민족의 신체적 특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에서 북미 원주민까지 몽골계통의 아시아인은 몽고반점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보입니다. 스페인과 프랑스 등에 사는 바스크인들은 겉으로는 유럽인처럼 보이지만, 언어가 다른 유럽인들과 전혀 다르고, 이를 볼 때 조상이 다른 지역에서 왔으리라고 추측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종의 차이는 바스크인 중 Rh-형이 35%나 발견되는 등 유럽인과 혈액형 비율이 전혀 다르다는데서 확인할 수 있죠. 전통적으로 우유를 마시지 않은 한국인들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Lactase deficiency)을 보이는 사람의 비율이 높습니다. 알레르기가 현대식 생활의 결과라고 하지만, 여기에도 인종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백인은 주로 음식 알레르기가 나타나는 데 비해, 한국인은 피부에 나타나는 알레르기 증상인 아토피가 많습니다(구글에서 영어로 atopy를 검색하면 50만 개의 결과가 나오는데, 한글로 아토피를 검색하면 2백만 개 이상의 결과가 나옵니다. 그만큼 한국인이 아토피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말이죠).

민족 간의 신체적 차이는 남녀 간의 차이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라틴계통의 민족들은 남자는 남성스럽고, 여성은 여성스럽게 보입니다. 이는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각각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죠. 그에 비해 아시아인들은 그렇게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죠. 이러한 신체적 차이는 문화의 차이를 낳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라틴문화에선 남자가 여자에게 치근덕대는 것이 매우 일상적입니다. 라틴계통의 여자들은 지극히 여성적으로 옷을 입고 여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그에 비해 남녀의 신체적인 차이가 크지 않은 문화에서 여자가 레이스 달린 꽃 치마 등 지극히 여성적인 옷을 입거나, 가정주부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가 성적 자극에 민감하기에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자극할 수 있는 몸매의 여성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은 한국에서는 쉽게 찾기가 어렵습니다. 남자도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오면 턱이 각지고, 목소리가 굵고, 몸에 털이 많기 마련인데, 이런 남자도 한국에는 매우 드뭅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가 한국인의 신체를 바탕으로 발전했기에 지금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이성의 모습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적인 미인은 단아하게 아름다운데, 지금도 한국 연예계의 대표미인 중에는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 많죠. 그런데 이러한 아름다움은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여성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이러한 한국인의 미인관을 이해해야 왜 90년대에 맥 라이언이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있었고,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신디 크로퍼드나 파멜라 앤더슨은 한국에서 인기가 전혀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자도 남성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는 사람은 한국에서는 부담스러운 느끼한 남자일 뿐입니다. 많은 한국 여성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남자는 지나치게 남성성이 강하지 않고 친근한 느낌의 꽃미남이죠.

문화는 환경을 만들지만, 환경도 문화를 만듭니다. 그리고 환경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는 인간이고, 인간의 몸은 DNA가 결정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DNA가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다양한 문화를 DNA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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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와 픽사

문화 2009/08/22 06:35
저는 평소에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노트북 이외의 장비는 잘 구입하지 않는데, 이제는 독일에 정착하였기에 평소에 늘 갖고 싶던 23인치 모니터를 구입하였습니다. 모니터를 구입하고 나니 모니터에 맞는 고화질 영상을 보고 싶어서 블루레이 플레이어까지 구입했습니다. 모니터나 블루레이 플레이어나 가격이 많이 내려서 큰 부담 없이도 좋은 비디오 감상 시스템을 갖출 수 있더군요. 블루레이 디스크는 lovefilm.de라는 우편 대여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디스크가 배달되기까지 조금 시간은 걸리지만 저렴하게 원하는 디스크를 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풀HD 모니터에서 보는 블루레이의 화질은 정말 우수하더군요. 특히 최근에 나온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화는 머리카락 하나까지 정확하게 재현해주는 화면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상을 보다가 손으로 100% 작업한 디즈니의 고전만화 피노키오를 보니 처음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작품해설을 들으면서 보니, 피노키오야 말로 시대를 앞선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모든 요소를 3D로 작업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지정해주면 나머지는 컴퓨터가 알아서 렌더링해줍니다. 하지만, 손으로 그리는 만화는 모든 움직임을 사람이 계산해서 적용을 해야 합니다. 특히 움직임이 여러 번 중첩되는 장면, 예를 들어 마차 속에 매달린 새장 속에서 피노키오가 움직이는 장면은 마차의 움직임, 이에 따른 새장의 움직임, 이에 따른 피노키오의 움직임을 각각 고려해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웬만한 감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죠. 게다가 피노키오가 물속에 들어가서 움직이는 장면은, 물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미묘한 차이를 수작업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죠. 디즈니에서 피노키오를 완성하는데 2년이 걸렸다는 데, 전문가들은 2년 만에 이러한 작품이 나온 것이 놀랍다고 평가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피노키오는 백설공주에 이어 디즈니의 두 번째 장편 만화였고, 따라서 장편 만화 영화를 만드는 노하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작업했다는 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그저 그런 만화영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 피노키오는 당대 최고의 만화영화 제작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디즈니가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만들기 전까지 만화영화는 단편으로만 존재했습니다. 아무도 관객이 장편 만화영화를 보러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월트 디즈니는 장편영화의 들러리에 불과하던 만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만화로 장편영화 만들기"에 도전합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관계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디즈니의 미친 짓"(Disney's folly)라고 불렀죠. 대공황으로 많은 사람이 굶주리던 1930년대 중반, 만화로 장편영화를 만드는 일에 돈을 투자할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고, 영화를 완성해도 관객이 들지 확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실제로 디즈니는 백설공주를 3년간 제작하다 제작비가 바닥났고, 은행에 미완성된 영화를 보여주며 설득한 끝에 대출을 받아 영화를 완성합니다. 그는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직원의 숫자를 대폭 늘렸는데, 대공황이었기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수많은 예술가가 디즈니로 모여들었고, 그는 비교적 작은 투자로 훌륭한 인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어려움 끝에 완성한 백설공주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디즈니가 뒤이어 내놓은 피노키오, 판타지아, 밤비 등이 연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디즈니는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미디어 제국을 세우게 됩니다. 디즈니의 미친 짓은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던 것이죠.

지금은 디즈니의 자회사가 된 픽사도 초기의 디즈니사만큼이나 어려운 시절을 겪고 나서야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원래 루카스필름에 속했다 스티브 잡스가 사들인 픽사(Pixar)는 컴퓨터 그래픽용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픽사의 하드웨어를 사려는 회사가 별로 없었기에, 픽사는 하드웨어의 성능을 보여주는 데모 영상을 만들던 솜씨를 발휘해 다른 회사의 그래픽 작업을 외주 받으면서 영상 제작분야에 뛰어들게 되고, 나중엔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된 장편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섭니다. 당시 픽사는 적자가 너무 심해 소유주인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팔아버릴 생각마저 했다는군요. 하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픽사가 발표한 Toy Story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면서 픽사는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자리 잡습니다. 결국, 애니매이션의 미래는 픽사라는 사실을 깨달은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픽사의 소유주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의 최대주주가 되죠.

요즘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만 추구한다지만, 어느 분야나 시대를 이끈 사람이나 조직은 커다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살기가 어렵다지만, 미래를 바꾸기 원하는 열정만큼은 잃지 않고 살면 좋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P.S. 전에 쓴 대로 저는 다음 주 한 주간 블로그 휴가를 보내고 다다음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도 남은 여름 보람차게 보내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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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 Doctor

문화 2009/08/21 06:52
요즘 저는 휴가를 맞아 비디오를 보며 느긋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디즈니의 고전 만화영화 피노키오를 봤습니다. 옛날에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 그런지 크게 재미는 없었지만, 손으로 정성스럽게 그려낸 흔적에서 정성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아마 피노키오를 본 적이 없는 분이라도 "When you wish upon a star"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주제가는 지금도 디즈니사의 상징으로 자주 쓰이기 때문이죠. 이 주제가는 극 중 지미니 크리켓이라는 귀뚜라미가 부릅니다. 지미니 크리켓은 피노키오의 친구로, 그를 유혹에서 건져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작품 해설을 들으니 지미니 크리켓은 디즈니가 피노키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늦게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탈리아의 카를로 콜로디가 쓴 피노키오의 모험(Le avventure di Pinocchio)에서 따왔습니다. 그런데 피노키오를 만화영화로 만들려고 하니 원작에 나온 말썽꾸러기 피노키오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스토리 전개가 어려웠죠. 그래서 디즈니는 중간에 작품 개발을 중단하고 처음부터 다시 스토리를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작에서는 매우 작은 역할만 하는 귀뚜라미를 인물로 격상하게 됩니다. 귀뚜라미에게 웃음을 일으키는 역할을 맡기면 피노키오는 순진한 어린이 역할만 할 수 있기에 관객이 피노키오를 받아들이기가 쉬웠고, 귀뚜라미가 피노키오에게 유혹에 빠지지 말도록 설득하는 장면을 넣어 영화를 보는 아이들에게 교훈을 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귀뚜라미가 주제가를 부르게 함으로 극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도 맡길 수 있었죠(피노키오는 이 주제가를 부르기에 너무 어렸고, 제페토 할아버지는 너무 나이가 많았죠). 결국, 지미니 크리켓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것이 피노키오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영화가 되는데 중요한 이바지를 했다고 할 수 있죠.

보통 초기 단계의 대본은 영화로 만들기엔 무언가 아쉬운 상태입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 흥미로운 줄거리에도 어딘가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이런 대본을 손봐주는 사람이 바로 script doctor입니다. Script doctor는 말 그대로 문제가 있는 대본의 병을 고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오리지널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레아 공주로 나왔던 캐리 피셔는 script doctor로도 유명한데, 대본을 쓰다가 난관에 부딪치면 그에게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작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보통 당사자는 너무 대본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고, 따라서 제삼자의 조언이 유용하죠.

Script doctor가 대본의 병을 고친다면, 편집자는 영화의 병을 고칩니다. 어떤 영화는 촬영이 끝났지만 무언가 어색하고 스토리가 말이 안되는데, 이럴 때 문제를 제거하고 영화를 살려 낼 책임은 편집자에게 있죠. 꼭 병이 든 영화가 아니더라도, 편집자는 영화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네마 천국 감독판을 보면 감독은 주인공인 토토(살바토레 디비타)가 엘레나와 왜 헤어졌는지 자세히 설명하기 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international version을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이를 상영시간 단축을 위한 결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편집자가 이 영화의 메시지는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영화에 대한 주인공의 사랑으로 해석했고, 따라서  남녀 간의 사랑을 줄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감독판에 들어간 이야기는 사족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죠. 감독은 이러한 장면을 힘들게 찍어 놨기 때문에 빼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배우들은 자신이 나오는 분량이 줄어들면 매우 기분이 나쁜 법인데, 이들과 긴밀하게 작업하는 감독이 이러한 장면을 잘라내기가 쉽지 않죠. 그에 비해 편집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촬영되었는지 모르고, 배우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기 때문에 관객만 생각하며 편집을 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따라서 영화계에선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편집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불문율이죠.

Script doctor나 편집자나 제작 과정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혼자서 하나의 작업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객관적 시각을 잃기 쉬운데, 이러한 사람들이 도와주면 blind spot에 숨은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저도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막히면 물어볼 수 있는 blog doctor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시작은 했는데 결말이 애매해 저장해둔 글들을 활용할 수 있겠죠?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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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TAG 영화, 편집

영화 산업의 부활

문화 2009/08/20 06:53
이탈리아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만든 Nuovo Cinema Paradiso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입니다. 한국에도 "시네마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고, 특히 극 중에 흐르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선율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2차대전 직후 영화관에 모인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영화를 즐기는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전쟁으로 황폐해진 이탈리아에서 영화는 사람들이 삶의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죠. 게다가 40년대부터 60년대까지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페데리코 펠리니 등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명작을 쏟아내던 시기라 질적으로 봐도 이탈리아 영화의 황금기라고 할만 하죠.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 TV가 보급되면서 영화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시네마 천국은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주인공이 추억을 찾아 영화관에 들어갔을 때 보이는 애로 영화 포스터는, 영화관이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으로 추구했던 생존전략이 무엇인지 보여주죠.

실제로 이 영화가 개봉된 1988년은 영화의 미래가 매우 불투명하던 시기였습니다. 모든 가정에 보급된 칼러 TV 덕분에 사람들은 집에서 생생한 화면을 즐길 수 있었고, 게다가 비디오가 대중화하면서 힘들게 영화관에 가서 많은 돈을 들여 영화를 보는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겪고 난 영화산업은 9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 활기를 되찾았고, 지금은 영상시대를 맞아 새로운 부흥기를 맞은 듯 보입니다. 과연 영화산업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19세기 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으로 영화를 발명한 이래로, 영화의 매력은 "신기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상영한 영화의 제목을 보면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46초), "금붕어 낚시"(42초), "아기의 아침식사"(41초)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담은 내용이지만, 이러한 내용이 필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화면에 비치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신기했죠. 게다가 영화가 발전하면서 매우 잘생긴 배우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극적으로 사는 모습을 화면에 보여주었기에, 영화를 보는 일은 매우 색다른 체험이었습니다.

하지만, TV가 보급되어 집에서 TV를 볼 수 있게 되자 영화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던 신기한 영상을 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특히 TV산업이 발달하면서 TV용 드라마도 영화에 못지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공짜로 볼 수 있는 내용을 영화관에서 돈 내고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었죠.

이러한 상황은 1977년 조지 루커스가 스타워즈를 발표하면서 점차 바뀌게 됩니다. 스타워즈 이전의 영화는 사랑, 이별, 가족 등 삶을 다루는 영화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일상의 삶과 다르게 매우 극적이었지만, 소제 자체는 평범한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죠. 하지만, 스타워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영화 제작자들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보고 싶은 모습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전까지 이러한 주제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감히 만들려는 사람이 없었지만, 스타워즈의 성공은 "많은 돈을 들이더라도 엄청난 인기를 끌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이는 곧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조스(1975)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는 조지 루커스와 함께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연 장본인입니다. 그가 감독하거나 제작한 영화는 지구에 온 외계인(미지와의 조우, ET), 현대에 되살아난 공룡(쥐라기 공원),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AI), 시간여행(백투더퓨쳐), 상상의 생명체(그램린) 등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소재를 다룬 경우가 많죠. 그런데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작은 화면으로 이러한 영화를 보면 "나는 가짜로 만든 영화를 보는 중이다."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렵고, 따라서 영화를 즐기는 재미가 떨어지죠. 그에 비해 극장이라는 낯설고 어두운 공간에서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크기의 스크린 앞에 앉아 박진감 넘치는 효과음을 듣노라면, 마치 내가 정말 환상의 세계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즉, 평범한 소재의 영상은 TV로 보나 영화관에서 보나 큰 차이가 없지만, 환상적인 소재의 영상을 보려면 영화관에 가야 하죠. 그래서 관객들은 환상적인 소재의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몰려들었고, 이러한 경향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는 환상적인 소재의 영화가 시리즈(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등)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계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너무 대박을 낼 수 있는 환상적인 소재의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데 집중하다 보니,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가 흥행에 실패하면 타격이 크기 때문이죠. 실제로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출자해 만든 드림웍스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아일랜드의 흥행 실패가 결정타로 작용해 결국 유니버설에 넘어갔습니다. 조지 루커스도 "제작비가 많이 드는 영화는 위험하다."며 스타워즈 시리즈를 영화가 아닌 TV로 만드는 중입니다. 블록버스터로 재기에 성공한 영화산업이 블록버스터의 위험성을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하겠습니다.

영화 산업도 이발소나 마찬가지로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정체성을 새롭게 찾지 않으면 도태하고 맙니다. 또한, 어제 영화 산업을 구한 방법이 오늘은 영화 산업을 망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죠.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관찰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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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의미

문화 2009/08/18 05:10
저는 요즘 휴가 2주차를 맞아 매우 느긋한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고, 같은 공간에 살면서 때로 이메일로 업무도 보고 하기에 완전히 휴가 기분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마음이 매우 가볍네요. 다음주까지 휴가를 즐기고 나면 9월부터 바빠질 일정에 대비할 활력이 비축되리라고 봅니다.

유럽에서 일하다 보면 유럽 사람들은 휴가에 대해 거의 종교적 열정을 낸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 사는 사람도 여름이 되면 한달 정도 일정으로 가족을 이끌고 휴가를 떠납니다. 심지어 돈이 별로 없거나 빚에 허덕이는 사람도 휴가 만큼은 꼭 가더군요. 휴가를 안가거나, 가봤자 1주일 남짓하게 가는 사람이 대부분인 한국에서 살던 저로선 잘 이해가 안되지만, 뭐 제가 남의 휴가를 가지 말랄 것도 없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야겠죠.

유럽인들은 여름 휴가가 한달 정도로 길 뿐 아니라, 평소에도 주말이 이틀 반 정도로 깁니다. 제가 일하는 센터도 금요일 점심식사 후 대청소를 하고, 오후 세시면 차와 케익을 함께 먹은 후 퇴근을 합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되어야 업무가 시작되니 주말이 상당히 여유롭지요. 프랑스는 주간 35시간 노동이 법적인 기준인데, 이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나흘을 일한 후, 닷세째(금요일)는 세시간만 일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모든 프랑스 노동자가 35시간만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노동시간이 국가의 기준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유럽의 분위기와 정반대인 국가가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은 원래 평균 노동시간이 긴 나라인데, 90년대 후반부터 노동환경이 악화하면서 근로시간이 더 늘어났고, 이제는 아홉시 전에 퇴근하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주변에서 "부럽다"는 소리를 들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만약 아침 여덟시에 출근해 저녁 아홉시에 퇴근한다면 하루 13시간 일하는 것이고, 닷세 동안 65시간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거의 프랑스 기준 시간의 두배 가까운 노동시간이지요.)

한국 정부는 몇년 전에는 삶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주5일제를 추진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된 주5일제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기업들은 토요일을 쉬는 대신 평일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고, 직장인들은 주말을 여유롭게 보내며 재충전을 하기 보다 공부를 하기 위해 토요일 새벽부터 학원에 나가거나,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 파트타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진심이 담기지 않은 주5일제는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뿐이죠.

물론 지나치게 휴식을 많이 취하는 것이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유럽은 휴일, 휴가가 많다 보니 툭하면 가게 문을 닫아 놓아서 물건 하나 사기도 쉽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유럽만큼 부유하지 않은 나라라면 경제를 개발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삶을 보면 너무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삶의 리듬이 무너져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해의 움직임이 계절을 낳고, 달의 움직임이 조수간만의 차를 낳듯, 자연엔 거대한 리듬이 존재합니다. 자연속에 사는 인간은 그러한 리듬을 따라 살 때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땡볕이 내리쬐고 곡식이 여물어가는 여름에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일했지만, 논밭이 눈으로 덮히고 동물이 동면하는 겨울이면 일을 멈추고 사랑방에 모여 앉아 이웃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이른바 농번기와 농한기의 순환이었죠. 하지만 기계가 생산을 주도하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노동자도 기계처럼 밤낮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인간은 "자연의 리듬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지식 사회가 도래하고, 기계처럼 작동하는 인간이 아닌, 창조적인 인간이 필요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휴식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영화 모던 타임스에 나오는 찰리 채플린 처럼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나사만 조이는 작업을 하려면 많은 휴식이 필요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창조적인 작업을 하려면 적절한 양의 휴식이 꼭 필요합니다. 창조는 정신적 소모가 큰 작업인 만큼, 창조적 작업이 끝나고 나면 긴장을 풀어야 다시 창조성을 발휘할 준비가 되는 법이죠. 그래서 배우, 가수 등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작업과 휴식을 번갈아가며 하기 마련입니다.

저도 주말에 잘 쉬어야 한주간 글을 쓸 소재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말에도 글을 쓴다면 소재를 소비만 할 뿐, 개발할 여유가 없기에 블로그 운영을 오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휴가는 단지 시간의 낭비가 아닌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자신을 정비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남은 여름 기간 동안 바쁜 삶에서 벗어나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도록 권해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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