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에서 출발한 인간의 역사는 이야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듭니다. 즉, 인격과 구체성, 단순한 인과관계를 배제하는 대신 객관적이며 보편적이고,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더라도 논리적으로 합당한 진리를 찾게 된 것이죠.
이야기에 의존하는 생각은 어린아이의 사고와 비슷합니다. "크리스마스에 받는 선물은 어디서 생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이들은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상을 주는 것이다."라는 설명을 믿습니다. 아이의 관점에서 이러한 말은 대단히 설득력 있게 들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른이라면 "그렇다면 산타클로스가 24시간 안에 전 세계에 다니면서 수십억 명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줘야 할 텐데, 이는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고, 따라서 사실일 리 없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이는 언뜻 생각하기에 맞는 말처럼 보이는 말을 믿지만, 어른은 논리적으로 따져서 보편적인 상황에 맞는 말을 믿는 것이죠. 결국, 사고력이 자라면 아이도 산타클로스라는 인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이죠. 어쩌면 인류가 이야기를 벗어나 논리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찾게 된 것도 인류의 사고력이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이야기를 배제하고 이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서, 수학의 중요성도 커졌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숫자는 세상이 논리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자, 세상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러한 논리와 수학의 결합은 수(numbers)를 만물의 근원으로 본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고, 근대에 들어선 "세상이라는 책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였다"고 말한 갈릴레이에서 보듯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신념이 되었으며,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라는 책에서 물리현상이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뉴턴에서 완성이 됩니다. 이러한 숫자의 세계엔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고, 오직 메마르고 건조한 사실만이 존재할 뿐이죠.
이처럼 이야기 중심의 사회가 논리와 숫자 중심의 사회로 바뀌면서 인간관계도 변하게 됩니다. 과거에 인간들을 묶어 주었던 이야기가 사라지면서 숫자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게 됩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인간을 숫자로만 이해하려고 한다."라는 불평은 이러한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말이죠. 이야기로부터 인생을 어떻게 살지 배웠던 우리 조상과 다르게, 우리는 숫자(연봉, 통장 잔고,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TV 인치 수, 그리고 트워터 팔로윙 수)에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뉴턴의 물리학에서 보듯, 인간은 숫자를 통해 세상을 매우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도 숫자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전통적인 합리론의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인간도 세상의 일부분이고, 따라서 세상이 숫자로 이해될 수 있다면 인간도 숫자로 이해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인간을 분석하고 연구한다면, 결국 인간의 본질을 숫자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인간을 숫자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인간의 독특성을 부인하는 위험한 주장으로 들립니다. 인간은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고, 따라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의 어떤 부분(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부분)은 숫자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논리와 숫자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원인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인간성 파괴는 단순히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현대에 들어서 자주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특히 20세기에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류가 뛰어난 과학기술을 대량살상 무기 만드는 데 썼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라는 이념에 따라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뛰어난 기술로 가스실을 건설한 독일인들은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상실한 채 기술과 지식만 의존하는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주는 예죠. 또한, 선진국일수록 정신질환자가 많다는 사실은 현대 문명이 인간의 영혼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현대인들은 목적을 "어떻게" 이루는지 잘 알지만,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왜" 그런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수학은 이처럼 인생의 목표를 찾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는 영혼의 영역이고, 영혼은 수학이 아닌 이야기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고 느끼는 사람 늘어날수록, 이야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과거에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이야기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고 새롭게 부활하게 됩니다. 다음번엔 이야기의 부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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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의존하는 생각은 어린아이의 사고와 비슷합니다. "크리스마스에 받는 선물은 어디서 생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이들은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상을 주는 것이다."라는 설명을 믿습니다. 아이의 관점에서 이러한 말은 대단히 설득력 있게 들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른이라면 "그렇다면 산타클로스가 24시간 안에 전 세계에 다니면서 수십억 명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줘야 할 텐데, 이는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고, 따라서 사실일 리 없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이는 언뜻 생각하기에 맞는 말처럼 보이는 말을 믿지만, 어른은 논리적으로 따져서 보편적인 상황에 맞는 말을 믿는 것이죠. 결국, 사고력이 자라면 아이도 산타클로스라는 인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이죠. 어쩌면 인류가 이야기를 벗어나 논리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찾게 된 것도 인류의 사고력이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이야기를 배제하고 이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서, 수학의 중요성도 커졌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숫자는 세상이 논리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자, 세상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러한 논리와 수학의 결합은 수(numbers)를 만물의 근원으로 본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고, 근대에 들어선 "세상이라는 책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였다"고 말한 갈릴레이에서 보듯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신념이 되었으며,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라는 책에서 물리현상이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뉴턴에서 완성이 됩니다. 이러한 숫자의 세계엔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고, 오직 메마르고 건조한 사실만이 존재할 뿐이죠.
이처럼 이야기 중심의 사회가 논리와 숫자 중심의 사회로 바뀌면서 인간관계도 변하게 됩니다. 과거에 인간들을 묶어 주었던 이야기가 사라지면서 숫자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게 됩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인간을 숫자로만 이해하려고 한다."라는 불평은 이러한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말이죠. 이야기로부터 인생을 어떻게 살지 배웠던 우리 조상과 다르게, 우리는 숫자(연봉, 통장 잔고,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TV 인치 수, 그리고 트워터 팔로윙 수)에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뉴턴의 물리학에서 보듯, 인간은 숫자를 통해 세상을 매우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도 숫자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전통적인 합리론의 관점에서 생각하자면 인간도 세상의 일부분이고, 따라서 세상이 숫자로 이해될 수 있다면 인간도 숫자로 이해되어야 마땅합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인간을 분석하고 연구한다면, 결국 인간의 본질을 숫자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인간을 숫자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인간의 독특성을 부인하는 위험한 주장으로 들립니다. 인간은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는 존재이고, 따라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인간의 어떤 부분(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부분)은 숫자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논리와 숫자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원인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인간성 파괴는 단순히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라, 현대에 들어서 자주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특히 20세기에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류가 뛰어난 과학기술을 대량살상 무기 만드는 데 썼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국가사회주의(Nationalsozialismus)라는 이념에 따라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뛰어난 기술로 가스실을 건설한 독일인들은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상실한 채 기술과 지식만 의존하는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주는 예죠. 또한, 선진국일수록 정신질환자가 많다는 사실은 현대 문명이 인간의 영혼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현대인들은 목적을 "어떻게" 이루는지 잘 알지만,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왜" 그런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수학은 이처럼 인생의 목표를 찾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는 영혼의 영역이고, 영혼은 수학이 아닌 이야기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고 느끼는 사람 늘어날수록, 이야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과거에 타도의 대상이 되었던 이야기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고 새롭게 부활하게 됩니다. 다음번엔 이야기의 부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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