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여의도는 정부 예산 통과 문제로 큰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야당은 4대강 사업 예산의 삭감을 주장하고, 여당은 이를 거부하면서 예산 통과가 매우 늦어졌습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처음은 아니고, 과거에도 법이 정한 시한에 쫓겨 겨우겨우 통과될 때가 잦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예년과 다른 점은 정부에서 예산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를 가정해 준예산을 준비하겠다고 발표한 점입니다. 준예산은 정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 자금만 산정해 임시로 집행하는 예산입니다. 따라서 정부의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고, 정부가 벌이는 공공사업이 위축되기 마련이죠. 이렇게 되면 정부의 지원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기 마련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준예산 준비에 나선 것은 국회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회가 어떻게 해서든 예산을 처리해 주기만 기다렸는데, 이제는 준예산을 무기로 국회를 압박하는 것이죠. 만약 정부가 실제로 준예산을 쓴다면 국민이 생활에 불편을 겪고, 이로 말미암은 비난은 "정부예산을 승인하지 않으므로 정부 업무를 마비시킨" 국회가 떠안을 가능성이 큽니다. 평소 정치 혐오증을 보여온 이명박 대통령이 매우 바라는 결과이겠죠.

언론은 이번 사태를 클린턴 대통령 시절 미국의 정부 폐쇄(Government shutdown)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1994년 선거로 다수당이 된 공화당은 클린턴 행정부가 예산을 너무 많이 쓴다면서 예산을 승인하지 않습니다. 다수당이 이렇게 나오면 행정부가 타협안을 내놓기 마련인데, 클린턴 대통령은 "예산을 승인하지 않으면 정부를 폐쇄하겠다."고 강경하게 맞서고, 실제로 1995년 11 부터 여러 달 동안 연방 정부는 대부분의 활동을 중지합니다. 이러한 사태가 온 책임이 클린턴에게 있느냐, 뉴트 깅리치를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에 있느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데, 결국 여론은 클린턴 편에 섰고, 이로 말미암아 클린턴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그가 1996년 선거에서 승리한 원인 중의 하나는 그가 정부 폐쇄 정국에서 승리했기 때문이었죠.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준예산이 편성되는 사태가 왔을 때, 국민은 대통령과 야당을 지지할까요? 여기엔 몇 가지 변수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론은 절대적으로 대통령 편입니다. 지금 대부분 언론은 야당을 비난하며 "명분 없는 투쟁을 포기하고 예산을 승인하라."라고 요구하는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읽는 국민은 야당을 욕하기가 쉽겠죠. 게다가, 파업에 부정적인 한국 사회의 분위기 상(당사자가 아무리 억울한 상황이라도, 파업을 해서 사회에 불편을 준다면 대단한 비난을 듣죠), 많은 국민은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국회를 무조건 욕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정부 폐쇄와 비교했을 때, 미국에선 정부를 길들이려는 공화당의 도발이 발단이 된데 비해, 이번 사태는 국회를 길들이려는 정부의 도발이 사태의 원인입니다. 먼저 공격을 하면 주도권을 잡기도 쉽지만, 반격에 대해 약점을 노출하게 되기 마련이죠. 그렇게 본다면 준예산을 거론하며 먼저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 청와대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저지른다면 결국 정치적인 큰 해를 입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미국 행정부가 다수당과 대결해 이긴 것은 정부를 이끄는 클린턴 대통령이 역사에 남을 만한 정치의 고단수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단 평가를 받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그가 정치를 혐오하는 까닭은 자신이 정치에 잘 맞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이러한 대치 상황을 잘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마련이죠. 마지막으로, 준예산 편성은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도 큰 부담입니다. 만약 정말 국회가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된다면 여당내의 비 이명박계열 의원들은 정부를 동지로 보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죠. 그렇게 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를 길들이기는커녕, 국회의 지지세력을 잃어버리고 집권 후반기를 국회 전체와 싸우는 데 소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연말까지 나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올 한해 정부와 여당에 끌려다니기만 한 야당으로선 4대강 문제만이라도 성과를 올려야 하고, 여당은 정부의 협조 없이는 4대강 사업 예산을 수정할 수가 없는데 정부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만 하니 협상의 여지를 줄 수가 없습니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정부와 여야가 함께 만나 협의를 함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상황이죠. 결국, 정부를 위해 총대를 맨 여당이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라는 선언을 함으로 야당이 아닌 국민 설득에 나섰는데, 이는 곧 야당을 무시한 채 예산처리를 강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준비하는 연말에 이렇게 뒤틀린 정치현장의 모습을 보자니 답답한 마음이 드는군요. 부디 날치기 통과나 준예산 집행 없이, 성숙한 협상과 정치력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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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탄생

정치 2009/11/23 07:02
얼마 전 제가 일하는 곳에서 베를린으로 견학을 다녀왔습니다. 총리관저(청와대와 비슷한 곳이죠)에도 가보고, 국회의사당도 방문하면서 독일의 정치체제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독일 국기가 유럽연합 국기가 함께 걸려 있는 모습이 마치 독일이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 보이더군요. 하긴 최근 유럽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뽑히는 등 유럽 통합의 강도가 강해지는 중이니, 이런 식으로 간다면 텍사스 공화국이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듯, "독일"이라는 나라가 "유럽연합"이라는 시스템에 사실상 흡수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죠.

한반도에는 "국가"의 개념이 오래전 부터 존재했지만, 유럽은 국가라는 개념이 생겨난 지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nation이 국가를 뜻하기도 하고, 민족을 뜻하기도 하고, 국민을 뜻하기도 하는 등 의미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는 유럽의 역사적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국가라는 체제가 존재하지 않았고, 부족(tribe)만이 존재했습니다. 부족은 보통 오늘날의 국가보다 훨씬 작아서 한 지역에 여러 부족이 존재하고, 이들은 많은 싸움을 벌였죠. 하지만, 로마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한 작은 부족인 라틴족이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결국 지중해 주변을 모두 정복하면서 유럽 대부분은 로마제국에 흡수됩니다.

로마제국이 붕괴하면서 각 지역엔 새로운 정치조직이 들어서는데, 민족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지도자가 드물었기에 보통 하나의 민족은 여러 개의 부족으로 나뉘게 됩니다(민족은 보통 언어와 문화가 같습니다. 부족은 언어와 문화가 같은 사람 중에서도 내가 진정으로 나와 같은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집단입니다. 따라서 게르만족은 한 민족이지만, 그 속에는 반달족, 동고트족, 서고트족, 프랑크족 등 다양한 부족이 존재했죠). 특히 로마제국에 속하지 않았기에 부족 고유의 전통이 강하던 라인강 동쪽 지역과 로마제국 이후 정치적으로 큰 혼란에 휩싸인 이탈리아 지역엔 수많은 왕국, 공국이 생겨나죠. 이러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민족에 속하는 이웃 부족들을 경쟁자로 여겨 적대시했고, "우리는 한 민족이니 힘을 합하자!"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예를 들자면, 중세시대에 밀라노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등은 주도권 다툼을 벌였고,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프랑스, 신성로마제국(독일) 등 외세를 끌어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가 찾아오면서 민족에 대한 각성이 시작됩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가 "이탈리아를 통일할 군주"를 꿈꾸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주죠. 사람들은 점차 하나의 민족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진 현실에 대해 반성하고, "하나의 민족을 하나의 정치단위로 묶자!"는 주장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생각이 가장 잘 표현된 지역이 바로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나 독일과 다르게 작은 단위의 국가가 난립하지 않았기에 통합이 쉬웠고, 르네상스 이후로는 중앙정부의 권력이 강하였기에 국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프랑스에서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고,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전파한다며 주변국에 전쟁을 일으키자 주변국가들은 나폴레옹의 군대와 싸우면서 민족주의에 눈뜨게 됩니다. 즉, 민족의식이 확실한 프랑스인들과 싸우다 보니 자신들도 민족의식이 싹튼 것이었죠. 이렇게 해서 19세기에 들어서면 서유럽은 민족국가(nation-state)라는 이념을 중심으로 재편되는데, 이는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정치체제를 갖추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가장 늦게 이러한 흐름에 합류한 국가는 이탈리아였습니다. 이탈리아는 워낙 많은 지역으로 나뉜데다가 교황령이 반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서 통일이 어려웠지만, 가리발디 장군이 혁명군을 지휘해 교황령을 비롯한 모든 지역을 군사적으로 정복함으로 통일을 이룩해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통일이 늦어졌기에 지금도 지역적 차이가 많이 존재하죠.

유럽에서 싹튼 근대적 민족의식은 19세기 유럽의 팽창을 따라 전 세계로 퍼지고, 지금은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민족주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에티오피아를 제외한다면 19세기까지 민족국가를 찾아보기 어려웠고,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지만, 유럽에서 독립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우리는 나이지리아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우간다 사람은 "우리는 우간다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등 국가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민족의식이 빠르게 성장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민족의식의 성장은 유럽을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몰아넣습니다. 각국이 민족의식을 중심으로 뭉치자 "우리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낫다"라는 경쟁심이 싹트고, 이는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죠. 이러한 아픔을 겪고 난 유럽은 민족주의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였고, 민족이 아닌 유럽을 공동체의 단위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러한 새로운 태도의 표현이 바로 유럽연합이죠. 이제 유럽연합 내의 대부분 지역에선 같은 통화를 쓰고, 여행을 할 때 여권이 없어도 됩니다. 거의 한 나라와 같은 상황이 된 것이죠. 이처럼 유럽이 통합된 상황에선 전쟁을 할 수가 없겠죠. 결국, 유럽은 전쟁을 막고자 민족주의를 약화하고 로마제국식의 거대 정치체제를 받아들인 것이죠.

유럽의 통합이 강화하면서, 한국에서도 "한중일도 통합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민족의 경계가 뚜렷하기에 유럽보다 민족주의가 훨씬 강합니다. 유럽의 민족국가들은 역사가 겨우 100-200년 정도지만(물론 그전에도 유럽의 국가들은 존재했지만, 이러한 국가는 "민족국가"라고 부르지 않죠), 한국은 통일신라 이후로 천 년이 넘도록 단일 국가가 유지되었고, 일본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지가 400년이 넘었습니다. 중국은 땅이 넓고 여러 민족이 함께 살기에 유럽과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중국의 한족이 만주족의 지배를 떨쳐낸 것은 19세기 유럽 민족주의의 영향이 큽니다), 한족 중심의 사고인 중화주의의 전통이 강하기에 주변국과 쉽게 연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민족주의의 역사가 짧은 유럽은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거대한 기구를 받아들였지만, 같은 현상이 동아시아에서 반복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역사가 다르니 의식도 다르기 때문이죠.

P.S. 제가 다음 주에 1주일간 미국을 다녀옵니다. 주말이 끼기 때문에 글을 올리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어쨌든 12월 중순이면 지금 맡은 일이 끝나기 때문에 12월 말 부터 글을 좀 더 자주 올릴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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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 억류 문제로 꼬여 있던 북미 관계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과 이에 따른 여기자들의 석방으로 새로운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원래 자신의 임기가 끝나기 전 북한을 방문하려고 노력했는데, 성사되지 못했다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루어졌는데, 여기자의 석방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얻어냈다는 점에서 매우 뜻이 깊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에 끌려간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문을 개인차원으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이번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개선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미국으로선 북한과 대치해보았자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대치의 끝은 결국 전쟁인데, 이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였다 뒷감당이 안돼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경험이 있는 미국 정부가 섣불리 무력 사용을 검토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세계 경제가 아직 어려운 상황에서 동아시아라는 중요한 경제권이 불안에 빠지길 원하지도 않겠죠. 게다가, "못된 놈들은 무조건 무력을 동원해 응징해야 한다."라는 조지 부시 식의 강박관념이 없는 오바마로선 미국의 체면을 구기지 않는 한 북한을 잘 길들여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세계적인 지도자"라는 명성을 얻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따라서 북한이 조금만 태도를 바꾸면 미국은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설 마음이 많은데,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 정부가 조금이나마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싶겠죠.

북한 정부도 미국과 친해지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냉전 구도가 무너지면서 혼자서 "미제 원수"와 전쟁을 벌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고, 북한 지도층은 미국을 적대시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 보입니다. 북한 정부에게 남은 일은 김정일 위원장이 죽기 전까지 나라가 망하지 않게 잘 버티는 일인데, 이를 위해선 미국의 물자 제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핵무기를 활용해서 협상을 통해 최대한 도움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미국과 친구가 되지 말란 법도 없죠.

문제는 남한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 정부와 차별화하려고 일부러 햇볕정책의 반대인 먹구름 정책을 펼쳤는데, 대북 관계에 먹구름이 끼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보는 눈초리가 달라졌고, 이로 말미암아 경제에도 먹구름이 끼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외교는 주도권이 중요한데, 하도 북한과 대치에만 치중하다 보니 북한과 관련해 무슨 문제가 발생해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는 소극적인 위치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개성공단 문제, 북한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문제 등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나서려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북한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보수적인 여권 정서상 이러한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죠.

문제는 아무리 한국 정부가 인상 팍 쓰고 북한과 미국을 째려봐도, 북한과 미국은 앞서 쓴 이유 때문에 언젠가 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싸우면 손해고, 친해지면 이득인데, 어떻게 대치 상태가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남한의 보수층을 주도하는 세력은 6.25때 북진통일을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인 분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분들은 북한이 엄청난 재앙을 겪고, 북한 정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봐야 속이 시원하다고 느끼거든요. 하지만, 북한이 정말 이러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남한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이 다 떠나면서 97년 외환위기 이상의 위기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이를 알기에 북한과 거리를 두면서도 북한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보수층 핵심세력은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자꾸 보수 언론을 동원해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해 좀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라는 식으로 훈수를 둔다는 점이죠. 이분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에 대해서도 "오바마 정부는 북한에 대해 좀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라고 참견합니다. 거 참, 오바마 정부가 조중동 구독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렇게 잉크는 낭비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어쨌든 북한과 미국은 이념의 장벽을 넘어서 서로의 이익을 좇아 가까워지는 중입니다. 북한과 한 민족인 남한이 이념의 장벽에 가로막혀서 아직도 북한을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은 매우 아쉽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통미봉남은 불가능하다." "미국은 한국을 배신하고 북한과 가까워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수층 지도자들을 보면,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관계를 개선한다면 이를 경계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열심히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합니다. 북한은 자원이 풍부하고, 언어가 통하는 저렴한 노동력을 갖추었기에 경제적인 면만 보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국가입니다. 인도적인 면을 보더라도, 이렇게 우리와 가까운 곳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지켜만 본다면 부끄러운 일이겠죠. 부디 이명박 정부가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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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속성

정치 2009/07/24 06:37
요즘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이 쓴 서양 문학의 정경(The Western Canon)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서양의 문학사에서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권위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해설을 곁들여서 서양 문학사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줍니다(그런데 일반이 대상이 아닌, 문학 전공자를 대상으로 해서인지 내용이 몹시 어렵군요). 이 책에서 블룸이 서양 문학의 최고봉이자 가장 영향력이 큰 작품으로 꼽는 것은 바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입니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서양 문학의 흐름을 결정했고, 그 후에 온 작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으며 그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서양 문학이 성립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세속의 성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하도 셰익스피어 찬양을 읽다 보니 저도 셰익스피어를 접해보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글로 읽으면 오늘날의 영어와는 매우 다른 언어 때문에 이해가 어렵고, 대부분이 연극의 대본이기 때문에 그냥 읽어서는 아무래도 흥이 안 납니다. 그래서 전부터 눈 여겨두었던 BBC Shakespeare Collection을 사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한국에선 Yes24에서 판매하더군요), 유튜브에 이미 작품 대부분이 올라와 있더군요. 그래서 천천히 한 작품씩 보고 있습니다.

요즘 보는 작품은 리어왕입니다. 아시겠지만 리어왕은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좋은 말을 하는 딸들에게 영토를 배분해준 리어왕이 딸들의 버림을 받고 미쳐가는 비극을 그린 작품입니다. 극 중 리어왕은 "내가 남에게 죄를 지은 것보다 남이 나에게 죄를 지은 것이 더 많다."("I am a man more sinned against than sinning.")라고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이 장면에서 셰익스피어는 관객들에게 "정말 리어왕은 억울하게 해를 입은 사람인가? 리어왕의 잘못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지요. 과연 리어왕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리어왕의 가장 큰 잘못은 권력을 포기하면서 권력의 특권을 누리기 원한 것입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 왕의 책임을 벗어 버리고 인생을 즐기기 원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죽은 후 국가를 유산으로 남기는 대신 살아 있을 때 딸들에게 영토를 배분합니다. 하지만, 그는 권력을 넘겨주면서도 권력의 특권은 누리기 원했습니다. 이는 그가 백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기 원했다는 사실에서 드러나죠. 그는 '권력을 넘겨주고 나서도 권력의 특권을 누리려면, 나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넘겨줘야겠다.'고 판단합니다. 그가 영토를 배분하기 전, 딸들에게 "나를 향한 사랑을 표현해 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딸들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이 권력의 특권을 누리도록 도와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일단 영토를 배분받은 딸들은 그의 특권을 박탈하고, 그를 박대합니다. 권력은 넘겨줘도 권력의 특권은 누리겠다는 그의 계획은 차질을 빚고, 그가 의지할 대상은 그에게 사랑을 표현하기를 거부했던 딸 코델리아 밖에 남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보여주는 권력의 속성은 현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자는 언젠가 "이 권력을 계속 잡을 것인가, 아니면 넘겨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권력을 계속 잡았다간 국민의 반발 때문에 권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고(이승만 대통령처럼), 아니면 조직 내부의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권력을 상실할지도 모릅니다(박정희 대통령처럼). 따라서 많은 권력자는 후계자를 정해서 그에게 권력을 넘겨줍니다. 이때 권력자가 후계자를 선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신에 대한 충성도이지요. 만약 후계자가 권력을 넘겨 받고 나서 자신을 배반한다면 자신은 감옥에 가거나 처형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권력자는 보통 자신과 절친한 사람에게 권력을 넘겨줍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절친한 친구 노태우 씨를 후계자로 선정한 것이 매우 좋은 예죠. 하지만, 후계자가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전임자에 대한 충성심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됩니다. 우선 자신의 권력이 막강하기에 전임자를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으로 보기가 힘들 뿐 아니라, 자신이 인기를 끌려면 전임자를 비난하거나 처벌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청문회에 나와 곤욕도 치러야 했고, 백담사에 유배도 가야 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도 김영삼 씨가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고 어느 정도 기대했지만, 결국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친구 전두환 대통령과 함께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같은 당 이회창 후보를 어느 정도 밀어줬는데, 나중엔 이회창 후보가 자신을 보호해 줄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그와 거리를 둡니다. 결국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패하고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이 슬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임자 김영삼 대통령이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대표적인 예가 1997년 외환위기), 그를 전혀 처벌하려고 들지 않았죠. 그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전임자를 야멸차게 몰아쳤습니다. 그러고 보면 권력을 내준 사람의 말년이 어떻게 될지는 후임자의 자발적인 태도가 결정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힘없는 아기로 태어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힘없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노년에 이르면 다시 자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인간은 이러한 자연적인 흐름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지만, 결국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그 순간 권력을 쥔 사람의 마음에 달린 일입니다. 아무리 내가 잘해준 사람이라도 나중에 나를 배신할지 모르고, 내가 잘 해주지 않은 사람이라도 나를 보호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이것이 인생의 흐름 앞에서 연약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죠.

그렇게 볼 때 셰익스피어가 그리는 인간은 권력을 잡아도 유지할 수 없고, 일단 권력을 잃고 나면 철저하게 무력해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임자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사람이 권력을 함부로 써서 전임자를 괴롭혀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무고하게 전임자를 핍박하는 사람에겐 정의의 처벌이 따르는 법이죠. 그렇기에 리어왕의 등장인물들은 끊임 없이 신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주 먼나라의 이야기인데 우리 사회에도 울림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리어왕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이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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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썼듯, 저는 지난 주에 스위스에 다녀왔습니다. 스위스에 갈 때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일행이 있다고 해서 차를 얻어타고 갔는데, 알고 보니 그 중 한 분이 스위스에서 가장 득표율이 높은 스위스 국민당(Schweizerische Volkspartei)의 총서기(general secretary)를 지낸 분이더군요. 이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위스 정치의 특징에 대해 들었는데, 스위스는 많은 선출직 정치인이 무보수라고 합니다. 즉, 수입원은 다른 곳에 있으면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20-30년씩 삶을 투자한 사람들이 스위스 정치계의 중추 역할을 한다는군요. 이런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스위스의 정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 부패가 적다고 합니다.

그분과 대화하다 생각해보니, 제가 만난 외국인 중엔 정치인이나 정치인 지망생이 참 많더군요. 작년에 훈련 과정에 들어온 인도인도 고등학교 교사인데 앞으로 자기 지역에서 정치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고, 올해 훈련을 받으러 오는 학생 한 명도 중년의 IT 전문가인데 정치계에서 활동하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전에 독일에서 만난 어느 브라질 청년은 베이스를 연주하는 뮤지션인데, 브라질에서 다시 만나 보니 지금은 정당에서 활동중이라고 했습니다. 전에 한국에서 통역을 하게 된 어느 핀란드 강사는 아내가 작은 마을의 시장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스위스로 가는 차에서 만난 분도 원래는 기독교 단체에서 간사로 일하던 분인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정치계에 들어섰고, 정치에 입문한지 10여년만에 여당의 당수를 지낼 정도로 성공을 하였죠.

이에 비해, 한국에서 내 주위에 아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정치인이나 정치인 지망생은 커녕 정당에 가입한 사람조차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니 "한국인은 정치과잉이다"라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정치인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우선, 젊었을 때 정치인이 되고자 정계에 입문해 평생 정치만 하고 사는 전문 정치인이 있고, 두번째로 자기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둔 후, 이를 바탕으로 정치 영역에 진출한 전문가 출신 정치인이 있습니다. 전자의 예로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들 수 있고, 후자의 경우로는 이명박 대통령을 들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일반인은 젊었을 때 부터 정치만 붙들고 살기도 힘들고,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정치계로 넘어가기도 힘들다는 점입니다. 즉, 한국에서 일반인은 정치계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렵고, 따라서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둘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죠.

한국에서 정치가 일반인의 삶과 거리가 먼 또 다른 원인은 지방 정치의 침체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인은 지방 정치를 중앙 정치로 들어가는 관문 정도로 생각할 뿐, 크게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방정치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정치인들은 결국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 나아가려고 할 뿐, 지방정치에 전념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그에 비해서 외국은 지역 정치 자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지역 정치계에서만 활동할 뿐, 중앙 정치로 진출할 생각이 없는 사람도 사람이 많습니다(클린튼 이스트우드도 미국에서 유명한 배우지만, 인구가 4천명 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인 Carmel-by-the-Sea에서 시장을 지냈죠). 지방정치는 생활과 직결되고 경쟁이 적기 때문에 일반인이 진입하기가 쉬운 영역인데 한국은 지방 정치가 워낙 침체되었으니 일반인의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정치는 공동체가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즉 수많은 선거와 대결과 타협은 지역이나 국가가 의사를 결정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뜻이죠. 그렇게 본다면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은 공동체가 어떻게 의사를 결정하든 상관하지 않는 셈입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결정은 곧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서 어떤 정책을 펼치는가에 따라 국민의 삶은 크게 영향을 받죠. 그러니 투표는 안해 놓고 "왜 이렇게 살기가 힘느냐!"고 하소연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직 깨닫지 못한 셈이죠.

노무현 대통령이 이끈 정부의 정식 명칭은 "참여정부"였습니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정치에 직간접으로 참여할 때에,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사회의 불합리가 해소된다는 뜻이겠죠. 진정으로 일반인의 정치 참여를 이끌어 내려면 정치권에서도 일반인에게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일반인들도 정치 혐오증을 버리고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으로 정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한국의 정치계가 진정으로 국민의 마음을 반영하는 곳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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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에 활동한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당시의 많은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에 심취했지만, 이와 동시에 개인을 억누르는 집단주의의 위험에 대해 깊이 깨달았고, 전체주의 국가가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경고하기 위해 1984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가 창조한 미래의 세계에서 시민은 정부의 사실 날조에 근거한 선전에 세뇌되어 암울한 현실에도 정부에 저항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이 소설 속의 독재정부는 국민을 조종하기 위해 Newspeak을 이용합니다. Newspeak은 영어와 비슷하지만, 정부의 정책과 어긋나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문법을 단순화하고 어휘를 줄인 언어입니다. 소설 속의 독재정부가 Newspeak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람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는데 언어가 단순해지면 생각도 단순해지고, 따라서 생각이 단순한 국민은 어리석을 수밖에 없기에 정부에 함부로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치가가 국민을 속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언어를 파괴하고 나면 국민은 정치자의 잘못을 지적할 방법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정직한 정치가일수록 언어를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써서 국민의 비판을 막아버립니다. 그에 비해 정직한 정치가라면 속일 필요가 없기에 말이 시원시원하게 나오기 마련이죠.

정치가 언어를 파괴하는 예는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라크 침공"을 "이라크 해방"으로 표현한 부시 행정부도 그러한 예죠.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문화 혁명"이라고 부른 중국 정부도 언어를 파괴한 예입니다. 하지만, 언어 파괴에서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정부는 바로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언어파괴는 대통령 취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출퇴근 시간대 직행열차 운영 등 각종 세부사항에 대해 시시콜콜 정책을 쏟아내던 인수위는 영어조기교육 등 민감한 사항에 대해 발표를 했다가 여론이 안 좋으면 무조건 "오해다." 한마디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서 처음부터 이명박 정부는 "오해정부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통신비 인하" 공약을 내걸었다가 "통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통신비가 싸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통신비를 절약하는 방법은 통신비를 올리는 것이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정부가 통신비 인상을 추진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습니다(믿기지 않겠지만, 제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쓴 이명박 정부, 양치기 소년이 되려는가?에 보면 좀 더 자세한 상황이 나옵니다). 미국과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임하겠다"는 말은, "문제 있으면 안 사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뜻으로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촛불시위가 절정에 이르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촛불 시위를 바라봤다"는 그의 감상적인 발언은, 결국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공격 앞에서 의미를 잃고 말았죠. 그리고 떠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깍듯이 예우하겠다"는 말은... 이건 뭐 말할 가치도 없군요.

이명박 정부의 언어사용은 단지 화려한 수사를 넘어 언어의 본질을 뒤흔드는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환경을 보전하는 대신 개발함으로 환경을 파괴하면서, 이러한 작업을 "녹색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환경 보호론자들이 좋아하는 Green이라는 말을 가져다 환경을 파괴하는 데 써 버리는 것이지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언어를 파괴한다면, 도대체 정부의 어떤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정부가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말하면 믿어도 될까요?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언어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간단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을지언정, 언어의 유희를 즐기지도 않고, 문학작품을 읊조리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언어는 인간성의 반영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올바른 언어를 써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처럼 언어를 파괴한다면 인간성도 따라서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인간성이 파괴된 인간은 정의감은 없고 본능만 남기 때문에 권력자가 아무리 불의를 저질러도 본능만 충족시킬 수 있다면 권력자에게 반항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권력자라면 인간성이 파괴된 인간을 다스리기가 훨씬 편한 법이지죠.

하지만, 진정한 인간성이 남아있는 인간이라면 이처럼 언어가 파괴되는 현상을 받아들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해야 올바른 언어이고, 올바른 인간이지요. 지금 한국에 어둠이 짙게 깔린 형상이지만, 이러함 어둠 속에도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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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정치의 재림

정치 2009/05/25 17:52
많은 국민에게 큰 슬픔을 안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집권세력엔 두려움으로 작용했나 봅니다. 뉴스를 들으니 정부는 분향소가 마련된 덕수궁 대한문 부근을 경찰버스로 에워싸고 경찰들을 주둔시켰더군요.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셨던 분이 돌아가셨고, 시민이 자발적으로 추모하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정부 눈에는 이들 시민이 "잠재적 시위꾼"으로 보였나 봅니다. 하긴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는 말처럼, 실력도, 인기도, 정당성도 없으면서 살아 있다는 이점 하나로 버티는 사람은 죽은 사람조차 무섭기 마련이겠죠.

이명박 정부는 "실용"을 구호로 내세우고 집권했지만,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통치이념은 "공포"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자아내게 해서 정부의 정책에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지요. 정부는 공포심을 일으키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우선, 도심에 전경버스를 배치하고 수많은 경찰을 주둔시킴으로 육체적 공포감을 조성합니다. 이는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대학 캠퍼스에 경찰을 주둔시킨 것 만큼이나 시민에게 심리적 압력을 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두 번째, 미네르바 구속에서 보듯, 정부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법적으로 공격합니다. 이는 이미 수많은 블로거가 블로그를 폐쇄했거나 비공개로 바꾼 데서 보듯 파급 효과가 큽니다. 세 번째, 강만수 장관, 어청수 청장이 아무리 욕을 먹어도 한동안 경질하지 않았던 예에서 보듯, 여론을 무시함으로 "정부를 위해 궂은 일을 한 사람은 정부가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알림으로 정부 구성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국민과 대치하도록 격려하고, 국민은 "아무리 정부로부터 피해를 당해도 결국 나만 억울할 뿐이구나"라는 절망감에 빠지도록 합니다.

지금 상황은 70-80년대 군사정권 당시 정부의 공포 분위기 조성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당시 군사정부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정당성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국민을 다스리는 유일한 길은 공포심 유발뿐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정부에 비판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고문하므로 많은 사람이 감히 정부를 비난하지 않도록 압박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고문은 없다고 하지만, 고문만큼이나 무서운 고소, 고발, 세무조사 등으로 사람들을 압박하고, 이로 말미암아 많은 국민은 정부에 대해 비판하기를 겁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비겁한 정책이고, 빨리 사라져야 할 정책이지 결코 정상적인 정책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정부는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찼고, 따라서 국민은 정부를 비판할 권리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당시엔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억누루고자 광화문 네거리를 막아버릴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이처럼 정당성에 자신이 있는 정부는 결코 공포정치를 실시하지 않습니다. 서유럽 대부분 국가도 국민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고소, 고발을 통해 국민을 겁주는 예는 극히 드뭅니다. 물론 이탈리아는 예외적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않은데, 이는 이탈리아가 워낙 정치적 후진국이기 때문이고, 서유럽에서는 흔치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도 선거로 당선된 것은 사실이고, 따라서 정당성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손님으로 초대받아 남의 집에 들어간 사람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손님의 자격을 잃듯, 정당하게 선거로 뽑힌 정부라 할지라도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정책을 펴는 순간 정당성을 잃기 마련입니다. 정당성을 잃으면 국민이 두렵고, 국민이 두려우면 국민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정책에 의존하기 마련이죠. 지금 이명박 정부가 그런 모습이고, 대한문 주위 봉쇄는 이러한 두려움의 표현일 뿐입니다.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떠나간 분이 아쉽고 그리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픈 마음뿐이죠. 그러한 애절한 마음을 무시하고, 끝까지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만에 하나 벌어질 시위의 가능성" 조차 제거해 버리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정말 역겹기 그지없습니다. 자신들이 정당하다면 아무리 많은 시민이 모인들 무엇이 겁나겠습니까?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워낙 국민의 뜻과 먼 정치를 펼치는 중이라는 사실을 자신들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면 반정부 시위를 벌일 것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과연 이러한 현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답답하기만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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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접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참으로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최근 검찰조사를 받는 중이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끝까지 꿋꿋이 싸워내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시다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누구보다도 많은 욕을 먹었지만, 사실 이는 많은 부분 언론의 왜곡 때문이었고, 실제로 자료만 놓고 봤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실용적으로 낭비 없이 국가를 이끌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우파에겐 좌파라고 비난을 들었고, 좌파에겐 우파라고 비난을 들었지만, 그는 이념에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올바르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었고, 그러한 결정들은 이념의 관점이 아니라 현실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의 정책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바는 많았지만, 어차피 완벽하게 나와 뜻이 맞는 지도자는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를 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을 한 후 자신이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개인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입니다. "저를 버려달라"는 그의 말은, 그가 자신을 "버려질 수 있는 존재"라고 보았다는 뜻이죠. 하지만 많은 국민은 여전히 그를 국가의 어른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로 보았고, 결코 버릴 수 없는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를 아끼고 사랑한 국민에게 이러한 사태는 너무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은 쉽게 사라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그분이 못 다 이룬 개혁의 꿈이 한국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만을 바랍니다.

P.S. 여러분 중엔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도 있고 반대자고 있겠지만, 고인에 대한 예의를 잊지 말아주시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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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실체

정치 2009/03/26 21:20
어떤 남자가 처음 만난 여자와 술을 마시가 정신을 잃은 후, 깨어보니 목욕탕 욕조 속이고 신장이 없어진 상태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미국에서 자동차를 몰다가 앞차에게 빨리 가라고 전조등으로 신호를 보냈다간 앞차에 탄 갱단이 당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어떨까요? 이러한 이야기들은 도시의 전설 (urban legends)라고 불리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이러한 이야기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고, 잊을 수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어 결국 사회 전체로 퍼지기 마련이죠. 심지어 "할로윈에 아이들에게 독이 든 사탕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전혀 근거가 없지만, 몇몇 주에서는 이러한 루머 때문에 아이들에게 독이 든 사탕을 나누어주면 가중처벌하는 법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때 배운 교과서 내용은 거의 잊었는데, 어디서 줏어 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는 몇십년이 지나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만약에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이렇게 오래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죠.

이처럼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메시지의 특성에 끈끈함 (stickiness)라는 명칭을 붙인 사람은 The Tipping Point를 쓴 말콤 글래드웰이었죠. 그는 자살에서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범죄까지 특정한 행동이 갑자기 사회에 퍼지는 현상을 놓고 연구한 결과, 소수의 영향력 있는 사람, 끈적한 메시지, 그리고 적절한 상황이라는 세 박자가 맞는다면 하나의 현상이 사회 전체로 순식간에 확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찌보면 뻔한 말이라 그리 중요하지 않긴 하지만, 책 자체가 워낙 재미있기 때문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죠. Chip Heath와 Dan Heath는 이를 발전시켜 "메시지를 끈적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하는 주제로 책을 썼는데, 제가 요즘 읽는 책이 바로 이들이 쓴 Made to Stick 입니다. 위에 나온 예들도 대부분 이 책에서 인용하였죠.

기억에 남는 메시지가 중요한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정치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후보의 정책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관심이 없고,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에 따라 투표할 후보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대통령 후보가 옷에 미국 국기 뱃지를 달았는지 여부에 따라 투표를 결정한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상황이니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정책을 잘 세우는 능력 보다, 간결한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능력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존 F. 케네디는 대중을 상대로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했던,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 물으라"는 말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메시지입니다. 그가 국회연설에서 했던 "60년대가 끝나기 전,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말은 우주경쟁에서 뒤처져 패배감에 사로잡혔던 미국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실제로 미국은 1969년 달에 인간을 보내게 됩니다. 소련이 베를린을 봉쇄하여 위기가 찾아오자, 그는 베를린으로 날아가 "모든 자유인은 베를린 시민이다. 나도 자유인이기에 자랑스럽게 말한다. Ich bin ein Berliner"라는 유명한 연설로 베를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베를린을 구해냅니다. 그가 대통령직을 얼마나 잘 수행했냐에 대해선 의견이 다양하지만, 그가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잘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물론 "그의 연설은 그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작성했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차피 미국 대통령은 모두 남이 써 준 원고를 읽습니다. 그런데 케네디와 동시대를 살았던 닉슨 대통령의 말 중 기억에 남는 말은 "I am not a crook"(나는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이 말을 했다가 범죄자라는 인상이 남았죠)이고, 존슨 대통령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았는데, 케네디 대통령이 한 말은 여러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는 사실은 케네디 자신이 뛰어난 communicator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정치인이 만들어내는 메시지는 때로는 현실과 전혀 상관이 없는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말도 때로는 매우 성공적으로 사람들에게 퍼집니다. 예를 들어 노태우씨는 5공화국의 핵심인물이었지만,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열겠다"는 구호로 민심을 사로잡아 대통령에 당선이 됩니다. 5공화국 정부에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던 사람들이, 다시 5공화국 후보가 나왔는데도 찍어주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죠.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로도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가는 등 대단히 성공적으로 "쇼"를 함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능이 드러나면서 민심은 멀어져갔고, 결국 임기말이 되어선 완전히 무시 당하는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보통사람"이라는 말에 속았던 국민으로선 후회해도 소용 없는 일이었죠.

이와 비슷한 일이 2007년말에도 벌어집니다. 당내 입지가 약했던 이명박 후보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경선에서 승리했고, 대통령 선거까지 쉽게 이깁니다. 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된 후로, 그가 보여준 모습은 경제를 잘 알고, 경제를 살릴 능력이 있는 "경제 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었죠. 즉, 이명박=경제 대통령은 분명히 끈적한 메시지이긴 했지만, 실체는 없는 허상이었다는 말입니다.

다음 선거에서 군인 출신 후보가 "결단력 있는 대통령"이미지를 들고 나오거나, 경제 학자 출신 후보가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 이미지를 들고 나오면 국민들은 또 사실 검증은 건너뛰고 이미지에 근거해 투표하겠죠. 그러고 보면 끈적한 메시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끈적하면서도 사실과 다른 메시지를 구분해 내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선거도 "뽑아놓고 후회하는" 패턴이 나타날까봐 두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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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정부의 인터넷 재갈물리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아고라에 반정부 글을 올리고 조회수를 조작한 네티즌에 대한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컴퓨터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즉, 경찰이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네티즌의 집으로 찾아가 컴퓨터 등을 압수해 조사했다는 말이지요.

경찰은 이번 조사에 대해 "업무방해죄" 등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네티즌이 금전적 이득을 노리지도 않고, 자신의 의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고 클릭수를 조작한 사안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는 이유가 "선량한 다음을 업무방해에서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는 보수 언론의 보도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이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 "경찰은 조회 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베스트 글' 목록에 오르게 함으로써 네티즌들의 관심을 유발해 반정부 성향의 글이 확산되도록 여론을 만들었는지를 수사할 방침이다"라고 합니다. 또한 사정 당국 관계자는 “이들이 특정 시위를 확산시킬 목적으로 조회 수를 끌어 올렸는지 등에 대해서도 수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즉, 이번 수사의 목적은 정부를 비판하고, 이를 시위로까지 연결시킨 네티즌을 탄압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는 법으로 정한 내용만 죄로 처벌하는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정부가 네티즌의 행태에 대해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법이 정하지 않은 내용은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여론 조작 혐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법에서 "여론 조작"을 죄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여론 조작은 죄가 아니고, 따라서 여론 조작을 했다고 조사를 할 수는 없고, 따라서 정부는 "업무방해죄"를 죄목으로 삼아 네티즌을 수사한 것이지요.

사실 많은 언론은 이들이 대단히 큰 죄라도 지은 듯 보도 하였지만, 법적으로는 이들의 행위가 거의 문제가 없습니다. 이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했으니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의사표현의 자유로 보호 받아야 하고, 이들이 특정 시위를 확산 시킬 목적으로 글을 올렸다고 해도 이는 집회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정부가 미네르바 박씨를 구속할 때 쓴 "전기통신법 위반" 혐의를 씌우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들이 명백한 거짓 정보를 유포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죠. 물론 이들이 클릭수 조작을 했다면 이는 문제가 되긴 하지만, 이들이 서버를 다운 시킨 것도 아니고, 이런 사람들이 열심히 아고라에 활동함으로 아고라가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꼭 다음에게 해가 되지도 않았기에, 업무방해죄 적용은 무리로 보입니다. 만약 이 정도 문제로 압수수색을 실시한다면 광고 클릭수 조작을 일삼는 많은 양심불량자들이 공포에 떨어야 하겠지만, 경찰은 이들에 대해선 조사 계획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가끔 자신들의 의견을 사회에 알리고자 인기검색어 순위를 조작하는 일부 사이트도 검색어를 정치와 관련 없는 연예 영역에 국한하는 한 경찰의 방문을 피할 수 있겠죠.

이번 사건은 네티즌에게 심리적으로 대단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미네르바 박씨의 구속 당시엔 미네르바님이 워낙 유명한 분이였고, 정부과 오랫동안 대립각을 세우던 상태라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구나"라는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이번 아고라 네티즌의 압수수색은 무명의 네티즌 까지도 정부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따라서 "댓글 잘못달았다간 나도 경찰 수사 대상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정부는 이런 식으로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면 국민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오리라고 기대하는 듯 보이지만, 정부가 이렇게 꼼수를 쓸 수록 정부에 대해 정이 떨어지는 국민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잠재우려면 전기통신법 위반, 업무방해죄 등을 들고 나올 것이 아니라 화끈하게 "정부 및 국가원수 모욕 금지법"을 만들어 인터넷에서 정부나 대통령을 욕하는 모든 사람을 잡아들이기 바랍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사는지 깨달을테니 말이죠.

P.S. 생각해보니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사이버 모욕죄가 바로 이러한 내용이네요. 물론 "정부 및 국가원수"라는 부분은 빠졌지만... 앞으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업무방해 같은 구차한 핑계 없이 원하는 대로 네티즌을 잡아들이겠군요. 참으로 서글픈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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