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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01 일본 민주당의 선거혁명 (5)
  2. 2009/06/25 이란인의 참모습 (1)
  3. 2009/06/22 격화하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 (9)
  4. 2009/03/11 미국의 몰락 (8)
  5. 2009/02/24 위기에 빠진 유럽 (2)
  6. 2009/02/20 자본주의의 쓴 맛을 보는 동유럽 (3)
  7. 2009/02/20 미국과 프랑스 (5)
  8. 2009/02/18 미국의 정체성 (3)
  9. 2009/02/11 오바마와 크랙베리 (2)
  10. 2008/11/05 오바마 대통령, 미국을 구원할 수 있을까? (1)
1955년 이후로 정권을 유지하던 일본 자민당의 아성이 드디어 무너졌습니다. 30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자민당은 480개 의석 가운데 119석을 얻는데 그쳐 308석을 얻은 민주당에 정권을 내줬습니다. 이번 자민당의 패배는 일본 정계, 나아가서 일본 사회 전체에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일본은 형식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관료가 국가를 다스리는 관료주의 사회(bureaucracy)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의사보다 관료의 판단이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선진국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러한 기이한 정치형태는 안정을 추구하는 국민성과 2차대전에 패한 일본을 단기에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유능한 관료들에 대한 믿음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90년대 장기 불황에 시달리면서 관료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렸고, 결국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대장성을 해체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대장성이 해체되었다고 관료 중심의 국가 운영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관료조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죠.

관료조직과 함께 일본을 이끄는 중요한 집단은 바로 자민당이었습니다. 아버지 국회의원의 뒤를 이어 아들이 후보로 나온 선거구에는 대부분 아들이 당선될 만큼 일본인들은 낯선 정치인보다 익숙한 정치인(또는 정치인의 집안)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집단이 대대로 정권을 유지하다 보니 일본 정계에는 부패가 만연하게 되었고, 국민이 심판하지 않으니 아무도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습니다. 고이즈미는 이러한 정치권, 특히 자민당을 안에서부터 개혁하겠다고 약속하며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고이즈미가 약속한 개혁은 일본정치를 바꾸어 놓지 못했고, 자민당은 과거와 같은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어닥친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잠시 회복되는 듯 보이던 일본을 다시 불황의 늪으로 밀어 넣었고, 자민당이 일본을 위기에서 구해낼 정당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졌습니다. 결국, 일본 국민은 반세기 이상 지지하던 정당을 포기하고, 새로운 정당에 정권을 맡긴 것이죠.

정권 교체에는 성공했지만, 일본정치 개혁이 완성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우선, 민주당은 관료조직의 개혁을 주장하는데, 과연 개혁에 저항하는 관료조직을 민주당이 어떻게 길들일지 주목됩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 자체가 자민당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도 많고, 따라서 자민당이 보인 부패와 무능의 모습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선거에서 민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자민당이나 자민당의 뒤를 잇는 정당에 지지를 보낼지도 모르죠.

내각제하에서 장기간 우파 정당이 권력을 독점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와 일본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독민주당(Democrazia Cristiana)은 바티칸의 지지와 공산당에 대한 견제심리를 바탕으로 1944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정권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반세기에 걸친 장기집권은 필연적으로 부패를 낳았고(정권이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정부가 과거 정부의 잘못을 캐내지 않기 때문에 부패의 강도가 갈수록 커지는 법입니다), 결국 1992년 대형 부패 스캔들에 대한 조사(Mani pulite)가 시작되면서 기독민주당의 치부가 드러났고, 연이어 수많은 스캔들이 터지면서 결국 기독민주당은 해체되고 맙니다.

하지만, 기독민주당이 무너지고 난 후에도 이탈리아 정치는 후진적인 부패와 야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맙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파악한 실업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Forza Italia(이를 우리말로 흉내를 내보자면 "오~ 필승 이탈리아!" 정도가 됩니다. 철저하게 대중에게 영합하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라는 당을 만들어 순식간에 정권을 잡습니다. 이렇게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불의와 싸우는 투사였다면 좋았겠지만, 아시다시피 베를루스코니는 부패가 극심한 이탈리아 경제계에서도 매우 부패한 축에 드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가 총리로 있다는 사실은, 이탈리아 국민이 얼마나 부패에 대해 관대한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기독민주당이 해체되고 베를루스코니가 집권한 이탈리아의 상황은 부패한 정당의 권력이 부패한 개인에게 옮겨졌다고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불의한 집단이 무너졌다고 해서 곧바로 정의로운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독민주당의 해체가 이탈리아 정치발전에 중요한 계기였다는 사실을 의심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당은 여러 대에 걸쳐 권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개인은 언젠가 은퇴해야 하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합니다. 또한, 기독민주당은 반세기 동안 늘 권력을 유지했지만, 베를루스코니는 지금까지 두 번이나 권력을 내 주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 기독민주당과 비교하면 훨씬 위태하게 정권을 유지하는 중입니다. 이런 위치에 있는 정치가는 절대권력을 쥔 정치가에 비해 부정을 저지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자민당의 몰락과 민주당의 집권은 일본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긴 여정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앞으로도 수많은 문제가 생기고, 때때로 실망스러운 사태도 일어나겠지만, 이번 선거로 말미암은 구조적 권력의 몰락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중요한 단계라는 말이죠. 앞으로 일본이 과거의 안 좋은 유산을 극복하고 청렴한 정치인들이 다스리는 나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P.S. 저는 휴가 잘 마치고 업무복귀했습니다. 이번주는 정상적으로 블로그 운영을 할 생각인데, 다음주엔 1주일간 회의참석이 잡혀 있어서 블로그를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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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이란인의 참모습

해외 2009/06/25 04:21
 최근에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람은 이란의 소식을 접할 일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미국인에게 이란은 갈 수 없는 나라, 갔다간 잡혀서 고문받고 감옥에 갇히는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죠. 이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갈등의 역사 때문에 생겨난 인식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악연은 1978-79년의 이슬람 혁명(이란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란을 다스리던 팔레비 국왕은 2차대전 중 영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왕위에 올랐고, 따라서 처음부터 외세와 결탁한 지도자였습니다. 그 후, 국민이 선출한 모하마드 모사덱(Mohammed Mossadegh) 총리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외세를 배격하자 미국은 모사덱을 몰아내고 팔레비 국왕의 권력을 강화해줬죠. 이렇게 든든한 미국의 지원에 힘입은 팔레비 국왕은 권력을 독점하면서 이란을 서구화, 근대화하는 정책을 폅니다. 하지만, 팔레비 국왕의 독재에 반발한 이란 국민은 혁명을 일으켜 국왕을 쫓아냈고, 혁명을 주도한 이슬람 성직자 호메이니는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죠. 이처럼 반미감정을 바탕으로 혁명에 성공한 이란 정부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미국과 대치합니다. 이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하고, "강력한 미국 건설"을 주장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듭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레이건 대통령은 이란을 견제하고자 이란과 전쟁 중인 이라크를 지원합니다. 사진은 레이건 대통령이 보낸 특사 로널드 럼즈펠드(훗날 조지 W. 부시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내며 이라크 침공을 지휘함)가 바그다드에서 후세인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미국이 한때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소련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미국이 2000년대 초반 전쟁을 일으킨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한때 미국의 지원을 받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군요.

하지만, 레바논에서 미국인들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자 미국은 인질을 구하기 위해 이란과 협상을 벌이게 됩니다. 당시 이라크와 전쟁을 벌이느라 무기가 많이 필요하던 이란은 인질 석방의 대가로 무기판매를 요구했고, 미국은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무기 판매 대금의 일부를 니카라과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던 반군을 지원하는 데 씁니다. 이른바 이란-콘트라 사건이지요. 겉으로 이란을 그렇게 비판하던 미국 행정부가 뒤로 이란과 무기 수출 협상을 벌였음이 드러나면서 레이건 행정부는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로 인해 이란은 미국인의 머리속에서 다시 한 번 안 좋은 사건과 연관되었죠.

미국 이외의 나라 사람들이 이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루시디에 대한 호메이니의 처형 명령이었습니다. 1988년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는 사탄의 시(Satanic Verses)를 발표하는데, 당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는 이 책이 무하마드에 관해 불경건한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모슬림들에게 루시디를 죽이라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문학작품의 내용을 문제삼아 작가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모습에서 서양인들은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불관용의 태도를 보았죠. 또한, 몇 년전엔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쓸어버려야 할 나라"라고 발언함으로 이란이 호전적인 국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긴 하지만, 실제 이란인들의 태도는 이란 정부의 호전적인 태도와는 매우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저는 몇년 전 프랑스에 살 때 아랍계 프랑스인이 혼자 이란에 들어가 현지인들을 인터뷰한 비디오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9/11 사태가 벌어지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는데, 비디오에 나온 이란인들은 "미국이 이 사건을 핑계로 이란에 쳐들어오면 어쩌나"하고 걱정하더군요. 하긴 얼마 후 미국이 9/11과 연관성 등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사실을 볼 때, 이란인들의 걱정이 꼭 근거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그 비디오의 내용과 비디오를 촬영한 프랑스인의 말을 근거로 판단해보니 이란인들은 반미 감정이 별로 심하지 않고, 오히려 미국에 대한 호감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부가 어떤 나라에 대해 적대행위를 한다고 해서, 국민도 동일한 태도를 보일 이유는 없겠더군요. 오히려 정부가 자꾸 "미국은 나쁘다"고 강조할수록 이란인들은 미국이 더 좋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죠.

요즘 이란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늘 정부 발표를 통해 보던 호전적인 모습뿐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적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이란인들의 모습을 엿볼 기회죠. 부디 이란이 대다수 이란 국민의 바램대로 정의롭고 자유로운 나라로 탈바꿈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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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대통령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이란 국민의 시위가 점차 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미 경찰의 발포 등으로 십여 명이 사망하였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잦아지는 추세를 볼 때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입니다. 관망하던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도 점차 시위대를 격려하는 듯한 발언을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시위대는 더욱 고무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번 사태는 6월 12일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승리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촉발되었습니다. 많은 국민은 극우파 강경론자인 아마디네자드에게 염증을 느꼈고, 이에 따라 개혁을 주장하는 미르 호세인 무사비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막상 선거 결과는 아마디네자드의 승리로 나왔으니 많은 국민은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죠.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의 전통을 물려받은 유서 깊은 나라입니다. 2차대전 중 영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왕위에 오른 레자 팔라비 국왕은 친서방, 근대화 정책을 추구하는 독재 정부를 이끌었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1978년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고, 한때 서양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이란은 정치와 종교가 결합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탈바꿈합니다. 이슬람 혁명의 결과 호메이니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가 되는데, 최고 지도자는 종교 지도자일 뿐 아니라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실질적 국가의 최고 권력자입니다. 지금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하메네이인데, 하메네이는 아마디네자드의 선거 승리를 "알라의 뜻"으로 인정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시위가 격화할 때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미지수입니다. 만약 그가 끝까지 아마디네자드를 지지하다가 시위로 정부가 무너진다면 그의 권위도 추락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1978년 이슬람 혁명이 이룩한 정치 체제에 금이 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실제로 시위대가 "최고 지도자 타도"를 외쳤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반대로, 그가 종교지도자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동원해 정부를 옹호함으로 시위를 억누르는데 성공할 수도 있겠죠.

이란에서 개혁파 지도자가 인기를 끈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97년 무명의 성직자 모하마드 하타미(Mohammad Khatami)는 개혁을 주장하며 선거에 나와 70%의 놀라운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하지만, 그는 보수파의 견제에 밀려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물러났죠. 하타미는 올해 대선에 다시 출마하려다 포기하였고, 대신 그의 친구 무사비를 지지하였습니다(그래서 무사비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엔 무사비와 하타미가 함께 나옵니다). 즉, 무사비에 대한 국민의 지지지는 단지 무사비가 인기가 높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개혁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렇게 시위가 격화하는 가운데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시민의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가 유튜브에 공개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피가 많이 나는 끔찍한 동영상이라는 사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여러 명의 사상자가 났지만, 눈에 보이는 사진이나 동영상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는 점에서 이 동영상은 이번 사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이 여성은 인터넷에서 네다(Neda)로 불리는데, 미국의 타임지(TIME Magazine)는 이를 '목소리, 부름'을 뜻하는 이란어(Farsi)라고 해석한 데 비해  , 프랑스의 Le Figaro는 이 여성의 이름이 정말 Neda Soltani라고 보도했습니다. 세계적 언론도 정확한 사태 파악이 안된 것이죠. 분명한 사실은 많은 이란 국민이 이 여인을 정부의 억압에 희생된 대표자로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도 박종철이라는 한 학생의 죽음이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듯, 막연한 "독재"가 독재의 피해자로 구체화할 때 여론의 큰 흐름이 바뀌는 법이죠.

서양을 등에 업고 독재를 추구하던 팔라비 국왕을 내쫓은 이란 국민은 이제 부정선거로 권력을 연장하려는 정부에 대해서도 심판을 내리기 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한때 국민이 지지해서 권력을 잡았더라도, 이를 빌미로 국민의 목소리를 거부하는 정부는 언젠가 국민으로부터 따끔하게 혼이 나야겠죠.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회견을 끝맺으며 했던 이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는 것은 이란 정부만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국민의 목소리는 경청해야 하지, 억압하면 안된다는 것이 보편적 원칙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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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몰락

해외 2009/03/1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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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얼마전 극장에서 더 레슬러를 봤습니다. 이 영화는 젊은 시절 꽃미남이던 미키 루크가 얼굴이 망가진 채 늙은 레슬러로 나온다고 해서 유명하죠.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미키 루크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방탕한 생활로 낭비한 것에 대한 고해성사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더군요. 한때 잘나가는 배우였지만 권투선수로 나섰다가 얼굴이 망가졌기에 이제는 정상적인 배역을 맡기가 힘들어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찌도 모르는 이 영화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인생의 경륜이 묻어나는 따뜻한 그의 연기는 관객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운동을 통해 구원을 찾는다는 이 영화의 주제는 록키와 비슷하지만,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주인공에게 전통적인 의미의 구원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헐리웃 영화에서 전통적인 구원은 1.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 회복, 2. 큰 돈을 범 3. 불가능에 도전하여 멋있게 성공하거나 장엄하게 실패함 인데, 이 영화엔 이러한 모습이 모두 빠져 있기 때문이죠. 더 레슬러의 주인공인 랜디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사람들 (딸, 사랑하는 여자)과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 마리사 토메이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 장면이 중요하죠), 자신과 직접 관계가 없는 관객들로부터만 사랑받습니다. 또한 그는 돈과 상관 없이 마지막 경기를 벌이기에 돈을 벌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그가 마지막에 거두는 승리는 정정당당한 실력이 아닌, "미국이 이란을 이겨야 한다"는 각본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구원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이 구원을 찾지 못하고 구원의 겉모습만 취하는, 매우 서글픈 내용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지 한 개인이 아닌, 미국이라는 나라일찌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영화의 소재인 프로 레슬링 자체가 매우 미국적인 오락이지요. 옛 이집트인들이 옆모습을 그를 때 조차 눈은 앞쪽을 향한 듯 크게 그렸던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머리속의 개념에 맞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구 때문입니다. "눈"은 옆으로 길어야 눈 답게 보이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이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는 이유는 프로 레슬링이 현실적인 싸움의 모습이 아닌 머리속 싸움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각본이 없이 진짜 싸우는 격투기를 보면, 바닥에 넘어져 엉킨 상태에서는 상대방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 팔을 매우 조금씩 밖에 휘두루지 못합니다. 미국인들이 보기에 이런 싸움은 지나치게 현실적이기에 재미가 없죠. 이들이 원하는 싸움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근육질의 남성들이 로프의 반동을 이용해 날아다니면서, 마음껏 환상적인 기술을 보여주는 싸움입니다. 이러한 싸움에서 좋은편은 질듯 하다가 이기고, 악한편은 이길 듯 하다가 지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환상의 세계에서 미국은 아직도 세계에서 으뜸이고, 아무리 늙고, 힘이 없고, 심장이 마비될 지경이라 할찌라도 악의 상징 이란을 쉽게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이란을 상징하는 아야톨라는 미국을 상징하는 랜디에게 기꺼히 져주는 것이죠. 문제는 한발짜국 떨어져 이러한 싸움을 본다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레슬링 판에서 랜디가 아야톨라를 이기는 모습을 보고 환호하는 관중석의 미국인들이 불쌍하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1776년 독립을 선언했을 때, 미국인 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지식인은 미국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 유럽을 가르칠 것을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남북전쟁 등 어려움을 겪긴 하였지만, 빠른 시일 내에 경제를 발전해 유럽보다 부유해졌고,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우뚝 섰습니다. 또한 냉전시대에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였기에, 지금도 미국인들은 미국 대통령을 "자유세계의 지도자" (Leader of the Free World)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 공산주의가 무너졌을 때, 미국인들은 마침내 미국의 시대가 왔다고 흥분했죠. 심지어 미국인 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미국식 민주주의-자본주의가 승리함으로 역사는 더 이상 발전할 곳이 없어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주장을 담은 "역사의 종말과 마지막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라는 책을 쓰기도 했죠.

하지만 대단히 역설적으로, 미국이 승리한 듯 보였던 1990년대는 미국이 지도력을 잃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죠. 80년대 전세계가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듣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봤다면, 90년대는 나이지리아부터 한국까지 각국에 문화적 각성이 일어나면서 미국으로부터 문화적 독립이 시작된 시기였습니다. 또한 과거에 반미 감정은 남미 등 가난한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지만 90년대 이후론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가 미국을 싫어하는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미국의 지도력이 위협당하는 가운데, 미국은 내부로부터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미국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린든 존스 대통령 등이 부자의 특권을 제한하고 중산층을 육성함으로 골고루 잘사는 나라였는데,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의 등장과 더불어 부자는 극도로 부유해지고, 중산층은 점차 몰락했습니다. 미국인들이 이러한 흐름을 잘 느끼지 못한 원인은 미국이 중국으로 부터 공산품을, 인도로 부터 서비스를 수입하면서 물가가 내려가 생활비가 적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에 봉착하면서 새로운 탈출구로 가계대출이 늘어났죠.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가난해도 가난한 줄 모르고 소비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문제를 은행빚으로 해결하려던 미국식 자본주의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미국의 모습이죠.

역사학자 윌 듀란트는 "국가는 태어날때는 스토아 학파 (자신에게 엄격한 학파)이지만, 몰락할때는 에피쿠로스 학파 (쾌락을 추구하는 학파)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1900년대 중반까지 미국인은 분명히 근검절약하고 책임감이 강한 모습이었는데, 오늘날의 미국인은 방향을 잃고 쾌락으로 마음의 공허를 채우는 모습입니다.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보이던 수십년 전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죠.

미국은 독립한지 200년 남짓한 젊은 나라지만, 세계 역사상 200년 이상 단일 체제가 유지된 공화국은 많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문명의 꽃을 피운 후 마케도니아에 정복당하였고, 고대 로마는 공화정이 제정으로 바뀌었죠. 어찌 보면 미국이 겪는 홍역은 세계 역사에서 늘 보이듯 늙어버린 국가가 힘을 잃어가는 과정일찌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과연 미국의 미래는 무엇일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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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유럽

해외 2009/02/2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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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이후로 다시 가치가 떨어지는 중인 유로화)

최근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위험요인으로 유럽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지난주 동유럽 경제 위기에 대한 무디스의 보고서가 나온 이후로, 동유럽에 돈을 많이 빌려준 서유럽의 은행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유럽 경제 전체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는 양상이 보입니다.

작년 9월 세계 경제 위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유럽이 미국보다 위기를 잘 극복하리라고 보는 견해가 많았습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빚을 내서 과소비를 하는 소비주의가 덜하고, 기업이나 은행들도 미국보다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기에 위험한 투자를 적게 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유럽의 금융기관도 미국과 큰 차이가 없이 위험한 투자를 많이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는 유럽 경제에 대한 신뢰의 상실로 이어졌습니다.

미국은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겪으면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법을 통과하였고, 이 법에 따라 위험한 투자는 투자은행만 할 수 있었지만, 유럽은 이러한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일반 은행이 고위험 고수익 사업에 뛰어들어도 법적인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실제로 1998년 미국에서 LTCM이 고위험 고수익 거래를 벌이다 파산의 위험에 처하는 사건이 벌어질 때, LTCM과 함께 가장 큰 손실을 본 기관 중 하나가 바로 스위스의 UBS였죠. 이처럼 유럽의 금융기관들은 월스트리트의 파생상품부터 동유럽까지 고수익을 쫓아 위험을 감수하며 많은 돈을 빌려줬고, 그 결과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치자 미국 은행들 만큼이나 많은 손해를 봤습니다.

앞서 미국과 프랑스에서 언급했듯, 미국과 프랑스는 문화가 다르고, 따라서 경제를 대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쉽게 말해 미국인은 무조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이 많은데 비해, 프랑스는 포도주를 마시며 예술을 논하는 등 인생을 즐기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최근에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도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이 많이 늘었고, 미국인들처럼 공격적으로 사업을 벌여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그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예로 비방디 유니버셜의 회장이었던 장-마리 메시에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들 수 있습니다.

메시에는 Compagnie Générale des Eaux 라는 작은 회사에서 시작해 인수합병을 통해 유럽에서 미국, 상수도사업에서 영화산업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재벌을 세웁니다. 그런데 그가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벌인 공격적 인수합병은 80년대 미국 기업들의 전략 그대로입니다. 즉, 그는 미국 기업들이 과거에 쓰던 방식대로 미국 기업을 먹어치움으로 미국 경제계의 허를 찌른 셈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인수 합병은 현금 흐름에 조금마한 문제만 생겨도 위기에 처하는 허약한 기업을 낳기 마련이고, 실제로 비방디 유니버셜이 적자를 기록하자 메시에는 회장직에서 쫓겨나고, 그가 건설한 제국은 여러 조각으로 나뉘고 맙니다.

사르코지는 이민자의 아들로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특이한 존재입니다. 샤를 드골에서 자끄 시라크까지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과 각을 세움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습니다. 그런데 사르코지는 처음부터 미국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였고, 프랑스에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물론 프랑스의 문화가 워낙 미국 문화와 다르고, 프랑스에는 전통적인 기득권을 누리는 수많은 세력 (노조, 농민, 심지어 도시 빈민까지)이 있기에 그의 개혁이 이루어질찌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프랑스에서 사르코지처럼 친자본주의, 친미 인사가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프랑스 내에 "미국을 닯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유럽 경제는 위기에 처한 듯 하고, 이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찌가 문제인데, 이를 예측하기 위해 독일 국채와 다른 나라 국채의 이자율 차이인 spread vs bund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다음은 11월의 spread vs bund입니다.


다음은 오늘자 spread vs bund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표를 비교해 보면 세 달 만에 유럽 국가들의 Spead vs bund가 많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유로화의 미래는?에 썼듯, spread vs bund가 벌어진다는 것은 유럽 각국 경제에 대한 평가의 차이가 커졌다는 뜻입니다. 유럽 여러 나라가 유로화라는 하나의 통화를 쓰는데, 이렇게 나라마다 경제상황이 다르다면 결국 유로화는 유지되기가 힘듭니다. 물론 프랑스와 독일이 많은 희생을 해가면서 다른 나라를 도와준다면 유로화 체제가 유지될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심해지고, 프랑스와 독일에도 실업자가 늘어나는 판에 "유럽 통합"이라는 명분을 위해 프랑스와 독일이 다른 나라의 짐을 계속 지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유로화의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 가능성이 크겠죠.

아직은 위기의 시작 단계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긴 힘들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유럽, 특히 유로화의 미래가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과연 유럽이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찌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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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체코에 처음 가본 것은 1994년말 겨울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지내다가 물가 싸다는 소리에 혹해 가보게 되었는데, 당시엔 공산주의 통치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정말로 물가가 싸더군요. 물론 그때 이미 코카콜라를 비롯한 많은 외국 기업이 진출한 상태였지만, 작은 빵 하나가 몇 십원 밖에 안하는 등 생필품은 정말 쌌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프라하는 동유럽의 파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오래된 건물이 많은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를 가보니 공산주의식으로 지은 우중충하고 특징 없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공산주의 통치시대의 우울한 상황을 상상케 하던 기억도 납니다. 체코는 독일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인데, 서독이 한창 경제발전의 열매를 누리던 80년대에도 체코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공산주의 정부에 눌려 신음하였다는 생각을 해보면, 이들이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마자 자본주의를 전심으로 받아들인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005년에 다시 체코 프라하에 찾아갔을 때, 프라하는 완전한 관광객의 도시로 변해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인이 관광객의 10%는 차지할 정도로 많았죠. 1968년 소련의 억압에 저항하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던 바츨라프 광장 주변엔 맥도날드가 들어섰을 뿐 아니라,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한 카지노도 영업중이었습니다. 체코인들은 이제 공산주의가 사라졌으니 맥도날드 햄버거를 즐기고, 카지노에서 도박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할찌 모르지만, 저는 마음 한켠으로 이들이 자본주의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내 한복판에 카지노를 허가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러했죠.

그러고 몇년이 지난 지금, 동유럽이 경제 위기에 쌓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동유럽인에게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자본주의를 과거에 자신들을 억누르던 공산주의의 반대이고, 따라서 절대선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 때문인지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은 지난 20년간 세계 어느 지역보다 적극적으로 경제발전에 나섰고, 그 결과 많은 나라가 짧은 시간 내에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들은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외국의 자본을 많이 들여왔습니다.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공장을 세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죠. 이는 경제발전기의 한국이 쓴 전략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 국가가 공장을 세운다고 수출이 갑자기 잘 될리는 없지만, 일단 수출이 시작되면 외국에선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하기 마련이고, 이렇게 들어온 외채로 인해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국민소득도 올라가게 됩니다. 즉, 빚의 증가로 인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제성장 방식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실찌 모르지만, 사실 한국도 무역수지 흑자기조가 정착한 것은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후이고, 그 이전에는 거의 늘 무역수지 적자였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이 국가부도를 내지 않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한 원인은 한국에 들어온 외국 자본이 많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렇게 들어온 외국 자본이 한번에 빠져나갈 경우입니다. 한국은 1997년이 그러했고, 동유럽은 지금이 그러합니다. 동유럽에 대한 투자를 주도한 지역은 서유럽인데, 서유럽 경제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서유럽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자금회수는 곧바로 동유럽 국가들의 집단적인 국가부도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동유럽의 부도는 시장의 심리를 더욱 위축시켜 다른 지역에서도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곧 한국 경제도 흔들어 놓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지요.

지금 상황은 동유럽인이 느끼기엔 대단히 억울할찌도 모릅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아무것도 모르던 순진한 그들에게 서방의 지도자들이 찾아가 "너희도 한국처럼 외국에서 돈을 빌려 공장을 지어 수출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라"고 종용하였고, 이들은 이 말만 믿고 20년간 열심히 자본주의의 모범생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빌려준 돈을 내놓으라고 닥달을 받고, 결국 부도가 나서 모든 것을 잃게 되었으니, "이렇게 만들려고 경제발전을 재촉한 것이냐"며 화를 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요.

자본주의는 상황에 따라 자상한 선생님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빼앗는 폭군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좋은 점만 보던 동유럽인들에게 이번 사태는 매우 큰 충격이겠지만, 앞으로는 좀 더 균형잡힌 태도로 자본주의를 보는 계기가 된다면, 그들에게 좋은 일이겠죠.

P.S. 인터넷으로 유럽의 주요 언론을 체크해봤는데, 신기하게도 동유럽 경제위기를 다룬 기사가 하나도 눈에 띄지 않더군요. 흥미롭습니다.

P.S.S. 지금 다시 찾아보니 동유럽 관련 몇개 기사가 보이네요. 예를 들어, 르몽드
http://www.lemonde.fr/economie/article/2009/02/21/l-europe-de-l-est-bombe-a-retardement-pour-l-euro_1158606_3234.html#ens_id=1158171

위의 글을 쓸 때는 뉴스 사이클이 어긋났을 수도 있고, 어쨌든 외부의 시각과 유럽의 시각이 틀릴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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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프랑스

해외 2009/02/20 00:30
미국인이 즐겨먹는 감자튀김은 보통 프렌치 프라이라고 부르지만, 한때 미국에선 이 음식을 프리덤 프라이 (Freedom fries)라고 부르던 때가 있습니다. UN을 등에 업고 이라크전을 시작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대해, 프랑스가 독일, 러시아 등과 연합해 거부권 행사로 맞서던 2003년이었죠. 많은 미국인들은 "우리가 2차대전때 프랑스를 구해줬는데 프랑스가 감히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몹시 분개하였고, 프렌치라는 말을 제거하고, 프랑스 회사의 제품도 불매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죠. 저는 당시 프랑스에 살았기에 미국쪽 주장 보다는 프랑스쪽 주장을 더 많이 들었는데, 프랑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라크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기엔 명분이 너무 부족했고, 특히 다른 나라를 무시하는 미국의 태도는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었죠. 결국 미국은 원하는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그 결과에 대해선 여러분도 잘 아시는 대로입니다.

이라크전을 둘러싼 마찰을 제외하고 생각해 보더라도 미국과 프랑스는 두 개의 전혀 다른 문화적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두 나라의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는 모두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따라서 합리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죠. 하지만 미국은 유럽에서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간 이민이 많은 나라이기에 종교적 신념도 강하였고, 따라서 기독교를 중요한 문화적 유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에 비해 프랑스는 "가톨릭 교회의 장녀" (la fille ainé de l'eglise catholique)라고 불릴 정도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강력한 국가였지만, 18세기에 이르면 이미 상당수의 국민이 교회를 곧 국민을 착취하는 세력으로 보기에 반가톨릭, 반성직자 (anti-clerical) 정서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을 뿐 아니라 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지요. 지금도 미국은 중요한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기도할 정도로 기독교가 문화로나마 살아있지만, 프랑스는 비종교성 (Laïcité)을 추구합니다. 몇년 전 프랑스 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이 히잡을 쓰는 문제로 논쟁이 크게 벌어졌는데, 이것도 "학교에서는 종교적 상징을 허용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죠.

미국 문화는 종교적 전통의 영향 때문인지, 영적인 세계나 종교적 체험에 대해 훨씬 열려 있는 듯이 보입니다. 특히, 대중문화를 보면 "기적을 통해 결국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구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죠. 그에 비해 프랑스인들은 기독교에 등을 돌린지 오래이고, 따라서 기적을 통한 구원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기에 대중문화에서도 이러한 모티브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인지 미국인은 대체적으로 낙관적인데 비해 프랑스인은 대체로 비관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어느 독일인이 프랑스에 몇달 살더니 "독일인이 우울한 줄 알았더니 프랑스인은 더하다"고 혀를 내두르더군요).

미국과 프랑스는 테크놀로지를 대하는 태도도 매우 다릅니다. 근대는 유럽이 기술적으로 커다란 진보를 이룬 시기이고, 이러한 시대에 형성된 국가인 미국은 지금도 기술에 대한 애정이 크고, 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합니다. 그에 비해 프랑스인들은 기술의 진보가 결국은 비인간화를 낳는다는 믿음이 강하고 (기술에 의존하는 현대사회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한 자끄 엘룰은 프랑스 사람이었죠), 따라서 기술을 의지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두 나라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미국은 자본주의자들의 국가이고, 개인이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무한히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비해, 프랑스인들은 미국인의 "소비주의" (consumerism)를 강하게 비판하고, 적게 벌고, 적게 일하면서 문화와 음식, 인간관계를 즐기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가 주당 35시간 근무를 도입하였고, 이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이 불평하지 않는 것은, 월급이 적더라도 노동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좋은 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프랑스는 1년에 한달 유급휴가를 즐기는 나라로도 유명하죠.

근래 들어 미국은 자본주의를 발전하기 위해 빚에 많이 의존하였고, 특히 신용카드를 통한 대출을 늘렸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도 많은 비판이 일어났는데(Credit Card Nation에 잘 나와 있죠) 어쨌든 미국에서는 신용카드가 생활의 필수품이고, 지출을 늘려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미국인의 의지를 담은 상징으로 볼 수 있죠. 그에 비해 프랑스는 신용카드 한도가 워낙 적고, 리볼빙 등의 제도가 별로 없어서, 카드를 썼다고 갚지 못하면 바로 정지되기에 돈이 없는데 카드로 마구 돈을 쓰는 일이 매우 적습니다.

정부에 대한 태도를 보자면,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극히 존중하고, 정부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험한 존재로 보는데 비해, 프랑스인들은 정부를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안전장치로 봅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정부는 개인이 어려움에 빠지면 언제나 의존할 수 있습니다.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젊었을 때 정신병원에서 10여년을 살았기에 지금은 전혀 사회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을 만났는데, 생활을 어떻게 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정부에서 싸구려 호텔에 묵게 해주고, 음식과 용돈도 줘서 근근히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물론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일찌도 모르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의식주를 직접 해결해주는 제도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만큼, 사회에 대한 간섭도 많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프랑스 정부의 간섭이 프랑스 경제를 망친다"고 진단하기도 하죠.

이렇게 문화가 서로 다른 두 나라이기에, 서로 의견도 많이 틀리고 논쟁이 벌어지면 끝이 없습니다. 이번 경제 위기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낳은 산물이라는 인식이 강한데, 사실 프랑스도 지금 경제사정이 그리 좋지 않으니 남을 꾸짖을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과연 독립 250주년을 향해 다가가는 미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조금 더 프랑스와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을찌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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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체성

해외 2009/02/18 20:35
한민족은 한반도라는 장소에 수천년간 모여 살았기에 혈통, 즉 DNA에서 다른 민족과 뚜렷이 구분됩니다. 따라서 한민족은 DNA가 같은 사람은 같은 민족으로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같은 민족으로 인정하질 않죠. 그에 비해 미국은 여러 민족이 모여서 형성된 나라이고, 따라서 혈통으로 미국인을 구분할 수는 없고, 미국의 가치관 (American Values)을 공유하는 사람은 미국인으로 인정하죠.

미국의 가치관은 미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모음입니다. 예를 들어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 인생을 나 자신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 행복을 추구하고 싶다는 욕구,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이죠. 이러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미국인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고, 이러한 정신이 없는 사람은 미국에 살아도 진짜 미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흑인 중엔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려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 사회구조에선 흑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고, 따라서 많은 흑인이 암울한 현실 때문에 자포자기 상태인데, 어쨌든 "성공을 위해 능동적으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정신이 부족한 모습을 보면 많은 미국 사람들이 "저 사람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다"고 무시하죠. 그에 비해 흑인이라도 오프라 윈프리나 버락 오바마처럼 밤낮 없이 노력해서 결국 큰 성공을 거둔다면 미국의 이상을 이룬 예로 많은 존경을 얻기도 합니다.

자본주의가 미국의 정신에 포함되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어긋나는 행위는 미국의 이상에 반하는 행위로 지탄받죠. 예를 들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반공열풍이 몰아쳤을 때, 미국 하원은 반미 활동 위원회 (House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를 통해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공산주의 활동이 "반미 활동"이라고 불렸다는 점입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미국이라는 이념의 한 부분이고, 따라서 자본주의에 맞서려는 공산주의는 반미활동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미국인의 정의에 따르면 미국인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기에, 미국은 법적으로 공산당을 허용하지만, 공산주의자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미국 정치계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지배하지만, 엄밀히 말해 두 당 모두 앞서 말한 미국의 가치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외국의 좌파가 보기에 미국의 민주당은 전혀 제대로된 좌파가 아닙니다. 그런데 미국 내부에서는 민주당이 "반미"로 찍히지 않으면서 좌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최대치이지요. 미국의 가치관에 따르면 개인은 성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정부는 이렇게 노력하는 개인을 간섭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추구하는 소외계층에 대한 돌봄 등을 추진하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입해야 합니다. 따라서 민주당은 본질적으로 미국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면이 있기에,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지만 정권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공화당이 추구하는 작은 정부는 미국인의 이상과 딱 들어맞기에, 소수의 부자만 위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히 큽니다.

미국의 가치관에 기독교가 포함되느냐 하는 것은 논란거리일 수가 있습니다. 미국이 독립한 18세기 유럽은 기독교의 세력이 여전히 강하지만 기독교에 등을 돌리는 움직임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는 시기였습니다. 실제로 미국을 세운 사람들 (이른바 Founding Fathers)을 보면, 일부는 기독교인지만, 일부는 기독교와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미국은 기독교의 정신 위에 세운 나라다"라고 말하는데, 미국의 비기독교인들은 "미국은 기독교와는 상관이 없이, 합리주의 정신 위에 세운 나라다"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의 모습은 기독교와 상관이 거의 없어 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대통령 취임식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는 등, 기독교를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인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기독교들을 의식해 크리스마스라는 말 자체를 쓰지 않는 등 (이에 따라 "Merry Christmas"도 "Happy Holidays"로 바뀌었죠) 미국이 기독교인만의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미국의 가치관은 미국이 유럽의 불합리에 등을 돌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문제는 미국의 이상을 따라 200년 이상 살다 보니, 미국의 이상 자체가 하나의 구체제 (ancient regime)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80년대부터 레이건 대통령이 추구한 미국의 이상에 맞는 경제체제 (자본의 논리가 극도로 강화되고, 정부의 역할이 최대한 줄어든 체제)는 결국 오늘날 세계적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정부가 개입하면 안되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미국인의 생각이 정부와 국회의 발목을 잡는 현실을 보면, 미국의 이상이 과연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과연 미국이 18세기에 시작된 미국의 이상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할찌, 아니면 위기를 맞아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낼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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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몇년 전에 미국 시트콤 사인펠드 (Seinfeld) DVD를 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제작과정을 보니 제리 사인펠드, 제이슨 알렉산더 (조지역), 줄리아 루이스-드레푸스 (일레인역) 등은 장난도 많이 치고, NG도 자주 냈는데, 크레이머 역의 마이클 리차즈 만큼은 촬영하는 동안은 대본에 없는 장난을 치지 않고, 상대 배우가 실수를 해도 같이 웃지 않더군요. NG가 나면 주변 사람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기가 쉽고, 따라서 한 번 NG가 나면 웃음이 전염되서 계속 NG가 나기 쉬운데, 마이클 리차즈 만큼은 남의 실수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무언가 불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가 남들 처럼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러한 실수를 억누른다는 뜻이고, 이렇게 억눌렸던 실수는 언젠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었죠.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LA에서 공연을 하다가 갑자기 화를 내며 흑인들을 "깜둥이"로 부르는 장면이 비디오로 공개되어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 한 번의 실수로 인해 그는 코미디언으로서 생명이 거의 끝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간의 영혼은 풍선과 같고, 실수를 억누르는 것은 풍선의 크기를 줄이고자 풍선을 누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르고, 풍선을 지나치게 억누르면 풍선이 터져버리겠죠. 따라서, 평소에 실수를 피하려고 큰 노력을 하는 사람은 큰 실수를 저지르기가 쉽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큰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데, 이는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까지 실수를 억누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인간이 실수를 저지르는 원인은 부주의 때문이라기 보다는, 내면의 문제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면의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해 주면 나중에 큰 문제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를 푼다"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하는 행동은 보통 작은 일탈행위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고, 어떤 사람은 노래방에 가고,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비디오를 보죠. 이러한 행위는 보통 비생산적이고, 지나치면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지만, 지나치지 않다면 내적인 문제가 표출될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작은 일탈행위 조차 용납하지 않고, 그 결과 나중에 정말 큰 일탈행위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내부의 문제를 적절히 다루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는 대통령으로 많은 업적을 이루었지만,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르윈스키와 일으킨 스캔들 때문에 탄핵의 위기에 몰립니다. 이러한 상황은 그가 평소에 내면의 문제를 적절하게 다루지 못하였기에, 즉 스트레스를 풀지 않고 자신을 억압했기에 찾아온 것입니다. 어린 시절 힘든 가정환경에서 자란 클린턴은 내면의 문제가 클 수 밖에 없었고, 책임이 막중한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하며 이러한 문제는 더욱 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쁜 일정과 주변의 눈길 때문에 내면을 돌보거나 스트레스를 풀 여유는 없었고, 그러다보니 문제가 발전해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저지른 것이었죠.

이렇게 본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블랙베리를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계속 쓰기로 결정한 사실은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잘된 일로 보입니다. 블랙베리는 이메일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인데, 중독성이 강해 미국에서는 크랙베리 (크랙은 코캐인이라는 뜻)라고도 불립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블랙베리에 중독된 모습을 보였는데, 규정상 대통령이 된 후에는 블랙베리를 못쓰기에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찌가 관심의 대상이었죠. 결국 그는 규정을 어기고 계속 블랙베리를 쓰기로 발표함으로 자신의 블랙베리 중독을 인정한 셈입니다.

공인으로서 작은 약점이라도 사람들에게 드러내기는 힘듭니다. 오바마도 "대통령씩이나 되어서 기계에 중독이 되어 못 벗어난다"는 비난을 듣기 쉽겠죠. 하지만 이렇게 해가 적은 중독을 유지함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나중에 큰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을 줄인 셈입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삽니다. 하지만 완벽하려고 노력할수록 인간은 더욱 완벽에서 멀어지고, 자신을 망칠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만 커지죠. 완벽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날 그날 받는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결할 방법을 찾는 쪽이 훨씬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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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미국에 TV 정치 시대를 연 정치인으로도 유명합니다. 경력이 일천한 그가 인기 높은 아이젠하워 정부의 현직 부통령인 닉슨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그가 닉슨과 벌인 TV 토론에서 그의 잘생긴 외모로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닉슨은 얼굴의 분위기 자체가 우울한 데다가 아침에 면도를 해도 하루 중에 자라는 수염 때문에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이른바 다섯 시 그늘 (Five O'clock Shadow)현상 때문에 TV에 우중충하게 나왔고,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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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토론에 나온 닉슨 당시 부통령)

케네디 대통령이 보인 젊고, 말 잘하고, 잘생기고, 패기 넘치는 대통령 후보의 모습은 그 후로 많은 민주당 대선주자가 흉내내기 원하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물론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태 이후에 워싱턴 정치인들에 실망한 미국인들이 "순박함"과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한 민주당의 지미 카터 후보를 뽑긴 했지만, 90년대 들어 젊고 말 잘하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의 롤 모델은 케네디 대통령"이라는 공식이 완성되었죠. 또 다른 젊은 달변가 앨 고어도 전형적인 민주당형 대통령 후보였고, 존 케리는 이름 약자가 JFK이며, 가톨릭 교도라는 점에서 JFK처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길 기대했지만, JFK와 공통점이 많지 않아서인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역사적인 선거로 평가하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승리했다고 합니다. 젊고 말 잘하고, 똑똑한 그는 JFK의 계보를 잇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개인의 재능과 매력으로 성공적으로 극복한 오바마가 백악관의 주인이 된 것은 한편의 드라마 만큼이나 극적입니다.

물론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지만, 아직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백인처럼 살아가기는 힘듭니다. 예를 들어, 미국 상원 의원 중 흑인은 오바마가 사상 두번째고, 지금도 그를 제외하고는 흑인 상원의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즉, 특정한 영역 (예를 들어 스포츠나 연예계)에서는 흑인이라는 신분이 거의 문제가 안되지만, 아직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흑인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감수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미국인은 오바마의 당선을 계기로 미국이 좀 더 인종간 통합이 잘 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하는 듯 싶습니다. 하지만 한때 일어났던 페일린 열풍이 보여주듯, 아직 미국의 많은 지역에선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 (American values)가 현대적으로 왜곡된 보수주의가 영향력이 큽니다. 즉, 오바마의 당선은 흑백통합의 중요한 계기가 되겠지만, 아직도 미국이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가 되려면 갈 길이 먼 셈이지요.

이번 대선의 초점은 단지 흑인 대통령의 탄생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미국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는 중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새로 당선되는 대통령이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해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9월까지 지지율이 오바마보다 10%나 앞섰던 매케인이 오바마에 선두를 내준 원인은 페일린 돌풍의 거품이 꺼진 이유도 있지만, 10월 들어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공화당 정부에 대한 실망과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이 경제를 더 잘 이끌 것이라는 기대가 퍼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대공황을 끝낸 것이 민주당 루즈벨트 대통령이었고, 90년대 장기호황을 이끈 것도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이였죠. 게다가 매케인은 maverick (조직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는 이단아) 이미지가 강한데, 이는 미국인이 좋아하는 모습 (많은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남자주인공이 매버릭이죠)이긴 하지만, 위기상황에 국가를 이끌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에 비해 하버드 법대를 나온 오바마의 지적인 이미지는 경제를 살릴 인물이라는 이미지에 도움이 되었죠. (부시 대통령은 이미지에 걸맞게 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폴슨과 버냉키에 전적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탁한 상태입니다. 나름 큰 석유회사 CEO 출신인데도 이렇습니다. 아, CEO 출신이 경제를 이해못할 수도 있다는 말은 이제 설명 안해도 되겠군요.)

결국 미국의 위기가 오바마에겐 기회가 되어 지지율 역전에 성공하고 대통령이 되긴 했는데, 문제는 그가 미국인의 기대대로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제가 이 블로그에서 계속 글을 올렸듯, 이번 경제 위기는 쉽게 끝날 수 있을 문제가 아니기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사태를 수습하기까지는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오바마는 분명히 인기는 높고, 말은 잘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도자로서 능력을 발휘할찌는 미지수입니다. 그의 정치경력이라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8년, 미국 상원의원 4년이 전부입니다. 그가 정치인으로 유명해진 것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행한 "소망의 담대함" (Audacity of Hope) 연설 때문입니다. 이 연설이 방송에 나가면서 그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사가 되었고,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4년만에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본다면 케네디 대통령도 인기에 비해서는 이루어 놓은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가 잘한 일은 "60년대가 끝나기 전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선언과 함께 미국의 우주 개발 계획을 시작했다든지, 소련의 베를린 봉쇄로 위기에 빠진 서베를린에 가서 "나도 베를린 사람이다 (Ich bin ein Berliner)"라고 말함으로 자유세계가 베를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인 일, 그리고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줄까를 묻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찌 물으라"는 취임 연설후, 젊은이들이 자원해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섬기는 평화 봉사단 (Peace Corps)을 설립한 일 등입니다. 즉, 그는 연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 넣는 일은 대단히 잘했지만, 실제로 정치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미지수입니다 (이는 그가 취임후 3년도 못되어 암살되었기에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 사람들의 기대처럼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찌는 아직은 미지수라고 하겠습니다.

어쨌든 변화를 모토로 내세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최소한 앞으로 몇달은 새로운 희망이 생겨서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표를 봐도 미국의 금융부분은 많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결혼생활의 현실이 시작될 때, 지도자로서 오바마의 능력이 드러나게 되겠지요. 과연 그가 어떤 지도력을 보일찌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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