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의 대형화

경제 2010/02/11 22:50
지난주 유럽발 악재에 흔들리던 세계 경제는 이번 주에 들어서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는 모습입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그리스가 유럽연합의 도움을 받으리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각국의 증시는 오름세로 돌아섰고, 환율도 안정적인 모습입니다. 제가 전에 "악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악재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중요하다"고 썼는데, 이러한 악재에도 시장이 빠른 시간안에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가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낙관적인 분석으로 끝나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납니다. 작년말의 두바이 사태나 이번 그리스 사태는 시장이 악재를 잘 소화해 내는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부실이 대형 부실로 커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바이 사태는 두바이의 부실을 아랍에미레이트 연합이 떠안고 무마가 되었습니다(두바이는 아랍에미레이트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스 사태는 그리스의 부실을 유럽연합이 떠안고 무마가 되고 있습니다. 더 멀리 보자면 2008년 터진 월스트리트의 위기는 월스트리트의 부실을 미국 정부가 떠 안고 무마가 되었습니다. 이는 좋게 말해 해결사가 등장해 문제가 해결이 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해 부실이 대형화한 것입니다. 팔다리에 난 상처가 잘못되어 썩어들어간다면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치료가 됩니다. 계속 썩어들어가게 놔둔다면 문제는 계속 커질 뿐이죠.

미국의 예를 봅시다. 미국 정부는 부시 행정부 이후 공공부채가 지나치게 늘어나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관심 있는 분은 I.O.U.S.A.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빚에 헐떡이던 미국 정부는 월스트리트에서 문제가 터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월스트리트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월스트리트의 문제로 경제 전체가 흔들리가 경기진작을 위해 실물 경제 부분에도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빚으로 고생하던 미국 정부가 이번 사태로 빚이 엄청나게 늘었으니 대단한 문제이지요.

유럽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정부 빚이 많은 상태에서 경제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니 경제를 살리겠다고 돈을 쓸 수록 유럽 각국 정부의 빚 문제는 심각해져만 갑니다. 만약 유럽 연합이 정말 그리스를 돕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빚 문제가 유럽 연합 전체의 문제로 퍼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로존을 책임지다시피 하는 두 나라인 독일과 프랑스 중, 프랑스는 채무가 엄청나게 많은데 그리스를 돕기위해 빚을 더 낸다면 프랑스의 상황이 엄청나게 악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재정 상태가 안 좋은 다른 유럽국가(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까지 도와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유로화의 미래 뿐 아니라 유럽 연합의 미래까지도 불투명하게 될 수 있죠.

물론 상황이 이러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경제위기가 벌어지면 정치가들이 사태를 주도하게 되는데, 정치가들은 단기적 해결책을 원하지 장기적인 해결책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당장 선거에 이기려면 몇달 내에 경제위기를 끝내야 하는 법이고, 이를 위해 30년 짜리 국채를 발행하는 쪽이 경제의 썩은 살을 도려내는 쪽 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생에 공짜는 없고, 지금 해결하지 않은 문제는 언젠가 다시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전세계가 심각한 홍역을 앓아야 되겠죠. 결국 이번 경제 위기는 이러한 홍역이 나타날 때 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벌어지는 자잘한 위기들은 사태가 흘러가는 방향을 보여주는 징조일 뿐, 위기의 핵심은 아닌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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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망

경제 2009/12/22 07:07
작년 가을에 시작한 세계적 경제위기는 올봄 이후로 뚜렷한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실업률이 예상보다 낮게 나오는 등 실물경제가 살아나는 기미가 보인다는 점이 중요한데, 경기 회복이 금융계에만 머물지 않고 실물경제로 옮겨간다면 경제가 진정으로 살아나는 중이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몇 주 전 두바이의 경제위기가 불거지고, 그리스와 스페인의 신용등급이 내려가는 등 불안한 모습도 함께 눈에 띕니다. 빚에 의존해 경제 규모를 키우던 두바이의 몰락은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몰고 온 과다 채무 문제가 여전히 잠복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리스와 스페인은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퍼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됩니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가지 흐름이 있지만, 저는 단기적으로 볼 때 경기 회복쪽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중요한 근거는 우선 두바이 사태나 일부 유럽국가의 신용도 하락에도 세계 시장이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세계경제가 허약한 체질이라면 작은 위기에도 크게 흔들릴 텐데, 나름대로 금융 시장에 충격을 줄 만한 소식에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금융 시장이 점차 정상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짐작을 가능케 합니다. 이는 작은 소식 하나에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던 작년 말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죠.

단기적으로 경제를 밝게 전망하는 또 다른 근거는 한국의 경제상황이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경제에서 수출 비중이 큰 나라고, 따라서 세계 경제의 상황이 즉시 반영됩니다. 게다가 한국은 나름대로 경제가 안정적이고, 정부의 규제가 심하지 않고, 규모가 크기 때문에 시장에서 빠져나오기 쉬워서 유동자금이 들어오기 좋은 나라입니다. 따라서 세계를 떠도는 돈이 많아질수록 한국으로 많은 돈이 들어오고, 이로 말미암아 경제 전체에 활기가 돌기 마련입니다(물론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줄어들 때 가장 심하게 타격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주가나 환율은 위기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와 비교했을 때 훨씬 좋은 모습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세계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좋아지고, 이에 따라 한국 경제도 좋아진다는 말이 일반인의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반인은 일자리가 안정되고 월급이 많아지며, 내수경기가 살아나 자영업이 잘 되어야 경기 회복의 열매를 누리는 법인데, 지금 한국은 아무리 경기가 살아나도 자산가와 대기업만 수익이 늘고, 일반인은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아무리 GDP가 빠르게 성장하고 세계 언론이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보도를 했어도, 많은 국민은 살림살이가 갈수록 빡빡해진다고 느낀 것도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었죠. 따라서 한국 경제가 회복된다고 평범한 국민의 삶이 나아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장기적으로 본다면 작년에 터져 나온 세계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잘못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이론을 마련하고, 이에 맞춰 경제를 전반적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너무나 길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아무도 이러한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고, 결국 문제를 덮고 넘어가는 방식으로 쉬운 해결책을 찾기 마련이죠. 이렇게 문제를 덮어 버리면 당장은 괜찮아 보이지만, 결국 상처는 속으로 썩어들어가기 마련이고, 언젠가는 더 큰 문제가 터져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때는 더 큰 아픔을 겪어야 문제 해결이 가능한 법이죠.

사람들은 2000년대에 중반에 일본의 10년 불황이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작년 경제위기가 터지자 일본은 다시 불황 상황에 빠져들었고, 그제야 일본이 경험한 경제회복이 일시적 착시현상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불황은 끝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일본의 경제위기는 경직되고 폐쇄된 사회구조와 하드웨어에만 집중하는 편향된 경제구조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일본이 진정으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와 문화를 포함하는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하죠. 그렇지 못한다면 잠깐 찾아오는 호황은 또 다른 위기 속에 묻혀 버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계 경제도 금융부분의 지나친 확대와 탐욕을 조장하는 잘못된 제도 등 근본적인 영역을 손봐야 다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이러한 영역에서 성과를 거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고, 따라서 앞으로도 잠깐씩 찾아오는 경기 개선에도 세계 경제를 억누르는 무거운 분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P.S. 유럽의 크리스마스 휴가철을 맞아 저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블로그의 본격적인 운영은 1월 초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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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주식 시장은 호주의 기준금리 인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코스피지수가 1,600선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호주의 기준금리인상이 중요한 까닭은 이것이 세계적인 출구전략의 신호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구전략(Exit Strategy)이란 중앙은행에서 풀었던 유동성을 거두어 들이는 정책을 뜻합니다. 작년 가을 이후로 경제위기에 처한 각국 중앙은행은 시중에 엄청난 양의 돈을 풀었는데, 이제 위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이 돈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출구전략을 실행한 나라가 없었지만, 호주가 시작한 이상 많은 나라가 출구전략을 쓰리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이론대로라면 유동성 공급과 출구전략을 잘만 쓰면 경제위기를 그리 힘들지 않게 끝낼 수 있습니다.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 돈이 부족한 시중에 돈이 돌면서 수요가 촉진되고, 이로 말미암아 경기 전체가 살아나기 마련이고, 일단 경기가 살아나고 나면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을 흡수해 경기과열을 막으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유동성 공급과 출구전략이 이론대로 움직이질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00년대 초반 미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과 뒤이은 출구전략이죠.

2000년에 들어 닷컴 버블이 터지고, 곧이어 9/11사태가 나면서 미국은 불황을 맞게 됩니다. 당시 FRB 의장이던 그린스펀은 유동성을 공급해 불황과 맞섭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불황은 금방 끝났지만, 시중에 넘처 나는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합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그린스펀은 다시 금리를 낮추는데, 그러자 폭등했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였고, 부동산 가격의 폭락은 파생금융상품을 타고 금융권 전체를 부실로 몰고 갔고, 결국 이는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원인이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FRB의 출구전략은 이미 2006년에 실행되었는데 2000년대 초반에 풀린 돈은 시차를 두고 2008년까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한번 흘러나간 돈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짐작하기 어려운 법이죠.

자산가격은 경기가 좋으면 오르고, 경기가 나쁘면 내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경기와 상관없이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하기 때문에 자산가격이 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나쁜데 유동성 때문에 자산가격이 올랐다면, 유동성이 줄어들면 자산가격은 폭락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유동성을 조금 공급해서 경기를 살리고, 유동성을 조금 줄여서 경기과열을 막는다는 생각은 실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유동성이 많이 풀려 경기가 과열된 상태에서 유동성을 조금 줄였다간 경제가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죠.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늘리고 줄이는 것도 문제지만, 여기다가 정부의 개입까지 더해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방지를 중요한 사명으로 하기 때문에 경기가 과열되지 않을까 고민을 하지만, 정부는 물가상승보다는 경기침체를 더 무서워하기에 중앙은행이 출구전략을 쓰려고 하면 정부가 이를 제동할 수 있습니다(특히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쉽죠). 그러면 유동성은 위험할 정도로 많이 풀리게 되고, 결국 감당하지 못할 사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한국은행은 출구전략을 검토하겠다는데, 정부는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다."는 입장을 반복합니다. 즉, 정부는 물가가 아무리 오르더라도 유동성을 최대한 늘려 불황을 막겠다는 뜻입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국은 G20국가 중 출구전략을 가장 늦게 쓰는 국가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지금 경제 상황은 모래밭에다 기초도 없이 임시 건물을 세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기초가 없으니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이라 불안한지라 중앙은행은 "그만짓자."는데, 정부는 "기초 없어도 이 정도는 문제없다."며 계속 지으라고 종용하는 꼴이죠. 물론 정부의 말이 맞는다면 좋지만, 제가 보기에 이는 대단히 위험한 정책입니다. 일단 중앙은행이 위기를 막겠다고 개입한 이상 출구전략을 잘 써도 시장이 정상화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정부까지 나서 출구전략도 제때 쓰지 못한다면 정말 심각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앞으로 유동성 공급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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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 소비

경제 2009/04/22 03:13
N. 그레고리 맨큐는 하버드대 경제학교수로 한국에서도 인기 높은 "맨큐의 경제학"저자로 유명합니다. 그가 며칠전에 뉴욕타임스에 올린 칼럼을 보면 이번 경제위기에 대한 주류경제학의 교과서적인 해법이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경기침체를 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요를 창출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선 이자율을 낮춰야 하지만, 지금 이자율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더 이상 이자를 낮출 수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맨큐는 0%로 이자를 낮춰도 문제가 해결이 안된다면 이자를 0%미만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자가 -3%라면 100달러를 빌려간 사람은 1년후 97달러만 갚으면 될테니 돈을 빌리는 사람이 늘어나겟죠. 이러면 빌리는 사람은 좋지만, 빌려주는 사람이 없을 테니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마이너스 이자율을 이루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맨큐가 소개한 어느 학생의 아이디어를 보자면, 연방준비은행이 1년에 한 번 0-9 사이의 숫자를 하나 뽑아, 그 번호로 끝나는 돈은 무효로 선언한다면, 돈을 가진 사람들은 연 10%의 손해를 볼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손해를 피하고자 마이너스 3% 금리로라도 돈을 빌려주겠죠. 물론 가장 쉬운 방법은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늘여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는 것이죠. 만약 이자율이 0%인데 물가 상승률이 3%라면, 실제 이자율은 -3%인 셈이 되죠. 이렇게 되면 돈을 빌려 소비하거나 투자하려는 사람이 대폭 늘어나고, 그러면 경기침체가 끝나리라고 맨큐는 설명합니다.

이처럼 이자율을 낮추고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켜 소비를 늘려야 경제위기를 끝낼 수 있다는 주장은 미국 연방준비은행 이사장 벤 버냉키부터 작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까지, 그리고 오바마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대부분의 정치지도자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이러한 주장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면 정신병자로 몰리기 쉽죠. 하지만 이렇게 인기가 높은 주장이 정말 근거가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소비촉진을 통한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소비가 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생각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소비 증가는 정말 경기침체를 끝낼 수 있을까요? 물론 올바른 소비, 적절한 소비는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지만, 무조건 소비가 는다고 경제가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만약 모든 소비가 경제를 살린다면 전쟁을 일으키면 경제가 금방 살아날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소비도 증가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전을 일으키고 전쟁을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미국 경제도 이라크 경제도 살아나지 않았죠. 같은 원리에서 허리케인, 지진 등도 소비를 늘린다는 점에서 재난이 아니라 경제를 살리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지만, 큰 자연재해를 만난 나라가 이로 인해 잘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물론 특정한 지역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복구사업을 벌이기에 GDP가 성장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는 GDP라는 개념 자체의 한계지, 정말 재해를 경제의 구조자로 보면 안 되겠죠.

소비증가가 경제를 살린다는 주장에 대해 제가 문제를 제기하는 또 다른 근거는, 이러한 정책이 큰 경제위기를 끝낸 예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으로 이러한 주장이 제기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였는데, 존 메이나드 케인즈가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을 반박하며, "지금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시초였죠. 하지만, 정부지출을 늘려 경제위기를 끝내려는 각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은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케인지언들은 "대공황이 지속된 것은 정부의 지출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어쨌든 케인즈의 주장이 맞는다는 증거는 1930년대 대공황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2차세계대전 때문에 군사수요가 증가해서 대공황이 끝났다는 통설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대공황은 1929년에 시작했고,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한 것은 1941년입니다. 즉, 12년의 시차가 있는데, 12년이면 어차피 공황 사이클이 끝나는 시점입니다. 즉, 전쟁이 없었어도 1940년대엔 미국 경제가 살아났을 가능성이 큰 것이죠.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또 다른 경제위기의 예인데, 이자율을 낮추고 정부의 지출을 늘려 경제위기를 끝내려고 10년 이상 노력했음에도 일본의 경제위기는 지속되었습니다.  여기서도 인위적인 소비촉진이 경제위기를 끝낸 예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1997년말에 한국이 맞은 외환위기는 또 다른 흥미로운 예인데, 당시 한국은 국가부도 상황에서 소비가 위축되어 큰 위기에 빠졌지만,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IMF의 요구 때문에 정부도 돈을 쓸 수가 없는 어려운 처지였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은 1년 반 만에 IMF의 지원금을 갚는 기적을 이루어냅니다. 물론 이러한 결과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기에 꼭 하나의 원인을 지적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공황(recession) 상황에서 소비가 줄었는데도 경제위기가 끝났다는 사실은 흥미롭다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해 세계 대부분의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고 이자율을 낮춰서 정부와 민간의 소비를 모두 늘이는 정책을 펴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성공했다는 증거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잠깐 경기가 좋아지는 듯 보이지만, 앞으로 다시 나빠질 가능성은 계속 남아있죠.

그렇다면 "소비촉진을 통한 경제위기 돌파"라는 공식은, 이론으로만 존재하지 현실에서 증명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작은 경기침체 정도는 소비자가 지출을 늘이면 금방 끝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제의 구조가 바뀌는 큰 위기 상황이 소비촉진으로 끝난 예는 없다는 말이죠.

소비는 자원을 쓰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꼭 필요한 소비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소비는 곧 자원의 낭비죠. 이명박 정부는 계속 "대운하를 만들면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데, 대운하가 꼭 필요한 시설이 아니라면 이를 짓는 것은 거대한 경제적 낭비일 뿐, 경제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소비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가 어떠한 물건이 필요해서 산다면 이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이고, 국가 경제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만,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산다면 이는 낭비일 뿐이고, 결국 국가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죠. 정부가 이러한 낭비를 조장한다고 경제위기가 끝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거대한 오해일 뿐입니다.

결국, 세계 경제는 각국 정부가 이러한 잘못된 이론을 버리고 새로운 해답을 찾아 나서기 전까지는 개선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어쩌면 그때가 되면 이미 경제위기는 자연스럽게 끝나 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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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만 불던 경제계에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어제 미국 다우지수는 6.84%가 오르면 7800선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이로써 얼마전 6500선까지 떨어졌던 다우의 대반등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한국도 3월 위기설이 남의 나라 일만큼 멀게 느껴지는데, 1600원선까지 갔던 환율은 1300선으로 내려왔고, 주가도 연일 상승세를 보이는 중입니다. 아직 실물 경제가 나아졌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지만, 경제위기가 금융 부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금융 부분이 정상화하면 실물경제도 정상화하리라는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몇가지 이유에서 세계적 경제위기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자본주의 경제는 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기 마련입니다. 호황이 클 수록 불황도 크기 마련이죠. 그런데 미국 경제는 1990년대 초반 이후로 계속 호황을 누렸고,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와 2001년 9/11 사태로 잠시 불황이 왔을 뿐, 큰 관점에서 호황은 거의 20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호황으로 생겨난 거품이 엄청나게 크다는 뜻인데, 지난 반 년간 경제가 큰 홍역을 앓았다고는 하지만 거품은 아직 덜 꺼진 상태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동안 거품이 꺼져야 하고, 이는 경제위기가 끝나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뜻입니다.

두번째로, 경제는 늘 대중의 뜻과 반대로 움직입니다. 특히 모두가 한 방향으로 몰려야 하나의 커다란 흐름이 끝나기 마련이죠. 예를 들어, 주식을 하는 사람들은 "애 업은 주부가 장바구니 들고 객장에 나오면 상투다"는 말을 합니다. 어린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는 보통 육아와 가사에 바빠 주식에 관심이 없는데, 남들이 "주식을 하면 돈번다더라"니까 자기도 주식을 하려고 객장에 나타날 정도라면 대중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뜻이고, 따라서 주가의 큰 흐름이 바뀐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죠. 같은 원리를 적용해 보자면, 대중의 입에서 "경기가 너무나 나쁘고, 좋아질 희망이 안보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인터넷을 잘 살펴보면,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랄지, "곧 경기가 풀릴 것이다"는 일반인의 주장이 많습니다. 이는 바닥은 멀었다는 뜻이지요.

사람들은 전문가의 경기 예측에 귀를 기울이지만, 사실 전문가의 말은 잘 맞지가 않는 법이고, 전문가 중엔 소수의 똑똑한 사람도 섞여 있기 때문에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하지만 대중은 큰 흐름이 바뀌는 순간에는 꼭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중의 움직임을 잘 관찰한다면 큰 흐름을 집어낼 수가 있죠. 3월 초에 환율이 폭등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환율은 끝이 없이 오르겠구나" 했을 때, 저는 대중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느꼈습니다. 얼마 후엔 평소에 환율에 관심 없는 사람 조차 "환태크로 돈을 모으겠다"고 나서기 시작하길래, "그렇다면 환율이 꼭지점에 달했구나"하는 판단이 들었죠. 결국 그때부터 환율이 미끄럼을 타기 시작해 200원 이상 떨어졌습니다. 대중의 판단은 거의 정확히 반대로 맞는 법이죠.

그러면 지금 주가가 오르는 현상은 무엇이냐고 물으시겠지만, 불황기에도 가끔씩 작은 호황은 생기는 법입니다. 미국도 1929년에 주가가 대폭락했지만, 1930년엔 다시 주가가 많이 회복했죠. 하지만 1931년엔 또 주가가 떨어지면서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이번 랠리도 몇 달 이상 지속될 수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 경제가 완전히 위기를 탈출했다는 신호는 아직 없습니다.

위기의 한복판에 서면 위기가 어느 방향으로 갈찌 짐작하기가 극히 힘듭니다. 따라서 위기가 시작하기 전에 앞으로 큰 흐름에 대해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는 2007년 말에 미국발 경제위기가 시작하리라고 예상하였고, 만약 중국, 인도 등이 미국과 상관 없이 경제가 잘 돌아가는 디커플링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장기간 경제 위기가 지속되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경제가 미국 경제 이상으로 흔들린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디커플링은 발생하지 않았고, 결국 세계 경제는 장기 불황이 진행하는 중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경기가 좋아지는 듯 보여도 너무 안심하지 마시고, 언젠가 다시 닥칠 불황을 대비하는 태도를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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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제가 체코에 처음 가본 것은 1994년말 겨울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지내다가 물가 싸다는 소리에 혹해 가보게 되었는데, 당시엔 공산주의 통치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정말로 물가가 싸더군요. 물론 그때 이미 코카콜라를 비롯한 많은 외국 기업이 진출한 상태였지만, 작은 빵 하나가 몇 십원 밖에 안하는 등 생필품은 정말 쌌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프라하는 동유럽의 파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오래된 건물이 많은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지방의 작은 도시를 가보니 공산주의식으로 지은 우중충하고 특징 없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공산주의 통치시대의 우울한 상황을 상상케 하던 기억도 납니다. 체코는 독일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인데, 서독이 한창 경제발전의 열매를 누리던 80년대에도 체코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공산주의 정부에 눌려 신음하였다는 생각을 해보면, 이들이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마자 자본주의를 전심으로 받아들인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005년에 다시 체코 프라하에 찾아갔을 때, 프라하는 완전한 관광객의 도시로 변해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인이 관광객의 10%는 차지할 정도로 많았죠. 1968년 소련의 억압에 저항하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던 바츨라프 광장 주변엔 맥도날드가 들어섰을 뿐 아니라,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한 카지노도 영업중이었습니다. 체코인들은 이제 공산주의가 사라졌으니 맥도날드 햄버거를 즐기고, 카지노에서 도박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할찌 모르지만, 저는 마음 한켠으로 이들이 자본주의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시내 한복판에 카지노를 허가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러했죠.

그러고 몇년이 지난 지금, 동유럽이 경제 위기에 쌓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동유럽인에게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자본주의를 과거에 자신들을 억누르던 공산주의의 반대이고, 따라서 절대선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 때문인지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은 지난 20년간 세계 어느 지역보다 적극적으로 경제발전에 나섰고, 그 결과 많은 나라가 짧은 시간 내에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들은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외국의 자본을 많이 들여왔습니다.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공장을 세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죠. 이는 경제발전기의 한국이 쓴 전략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 국가가 공장을 세운다고 수출이 갑자기 잘 될리는 없지만, 일단 수출이 시작되면 외국에선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하기 마련이고, 이렇게 들어온 외채로 인해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국민소득도 올라가게 됩니다. 즉, 빚의 증가로 인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제성장 방식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실찌 모르지만, 사실 한국도 무역수지 흑자기조가 정착한 것은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후이고, 그 이전에는 거의 늘 무역수지 적자였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이 국가부도를 내지 않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한 원인은 한국에 들어온 외국 자본이 많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렇게 들어온 외국 자본이 한번에 빠져나갈 경우입니다. 한국은 1997년이 그러했고, 동유럽은 지금이 그러합니다. 동유럽에 대한 투자를 주도한 지역은 서유럽인데, 서유럽 경제도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서유럽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자금회수는 곧바로 동유럽 국가들의 집단적인 국가부도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동유럽의 부도는 시장의 심리를 더욱 위축시켜 다른 지역에서도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곧 한국 경제도 흔들어 놓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지요.

지금 상황은 동유럽인이 느끼기엔 대단히 억울할찌도 모릅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아무것도 모르던 순진한 그들에게 서방의 지도자들이 찾아가 "너희도 한국처럼 외국에서 돈을 빌려 공장을 지어 수출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라"고 종용하였고, 이들은 이 말만 믿고 20년간 열심히 자본주의의 모범생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빌려준 돈을 내놓으라고 닥달을 받고, 결국 부도가 나서 모든 것을 잃게 되었으니, "이렇게 만들려고 경제발전을 재촉한 것이냐"며 화를 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요.

자본주의는 상황에 따라 자상한 선생님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빼앗는 폭군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좋은 점만 보던 동유럽인들에게 이번 사태는 매우 큰 충격이겠지만, 앞으로는 좀 더 균형잡힌 태도로 자본주의를 보는 계기가 된다면, 그들에게 좋은 일이겠죠.

P.S. 인터넷으로 유럽의 주요 언론을 체크해봤는데, 신기하게도 동유럽 경제위기를 다룬 기사가 하나도 눈에 띄지 않더군요. 흥미롭습니다.

P.S.S. 지금 다시 찾아보니 동유럽 관련 몇개 기사가 보이네요. 예를 들어, 르몽드
http://www.lemonde.fr/economie/article/2009/02/21/l-europe-de-l-est-bombe-a-retardement-pour-l-euro_1158606_3234.html#ens_id=1158171

위의 글을 쓸 때는 뉴스 사이클이 어긋났을 수도 있고, 어쨌든 외부의 시각과 유럽의 시각이 틀릴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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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질문자님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지금 정부의 정책을 보면 부동산 거품 유지와 경제성장률 높이기가 최우선이고, 은행 건전성 강화나 환율 안정은 큰 문제만 일어나지 않도록 단기적인 땜빵만 하겠다는 태도가 보이는데, 이는 완전히 경제를 망치는 정책입니다. 예를 들어, 금리를 1%나 인하하면서 중국, 일본과 외환 스와프를 거의 동시에 발표한 것은, 부동산 가격과 경제성장에 올인하면서, 이에 따라 일어나는 환율상승 문제를 외환을 빌려 해결하겠다는 뜻이죠. 이런 식으로 환율과 은행 문제를 대충 해결하려고 하니까 무슨 정책을 내놓아도 해결이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정적 수준의 부동산 가격 하락은 정상적인 시장의 반응이고, 따라서 시장에 거스려 싸우고 하면 안됩니다. 또한 전세계가 위기에 빠져 살까 죽을까를 고민하는 판에, 경제성장률에 집착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태도죠. 정말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금리를 올려 외국 투자자의 이탈을 막아야 하고, 은행에 예금이 늘어나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은행의 건전성 (예금으로 돈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과 국가 신용도 (원화를 달러로 바꿔가려는 사람이 적으니 외환부족 사태의 위험이 사라지겠죠)가 향상되기에 은행이 외국에서 달러를 빌려올 수 있게 됩니다. 이러면 외환위기의 급한 불은 껐다고 봐야죠 (게다가 국제수지 흑자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외환위기는 거의 지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고금리 정책으로 경기침체가 따라올 수 있지만, 어차피 지금도 이자율과 상관 없이 은행들이 돈이 없어 대출을 거부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금리를 낮춰도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는 문제죠. 또한 지금 대기업들은 97년 외환위기때 하도 고생을 해서 돈을 상당히 많이 쌓아놓은 상태이고, 그리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실업자가 대폭 증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사회보장 제도를 확립해야겠죠. 이를 위해서는 재정을 마련해야 하고, 따라서 부자에 대한 감세 정책은 즉각 중단하고 서민에 대한 재정지출을 늘려야 합니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소비로 이어져 내수를 살리기 때문에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또한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북한과 관계 정상화가 중요합니다. 북한이 자꾸 도발하는 발언을 하면 외국인은 더더욱 한국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이들이 남은 돈 다 달러로 바꾸어 나가면 경제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겠죠. 사실 나쁜 관계를 좋게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조차 못할 정도로 이명박 정부는 무능했습니다. 앞으로라도 북한과 좋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북한의 위협은 외환수급 상황에 계속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환율을 안정시키고, 은행의 건전성을 개선한다면 그 다음 순서는 기업의 구조조정입니다. 한계기업은 퇴출시키고, 미래에 성장가능성이 높은 산업은 살려야겠죠. 특히 이번 기회에 일본에 의존하는 부품 산업을 국내 중소기업이 대체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중소기업 위주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죠. 이렇게 할 때 일본에 의존하기에 수출이 늘면 수입도 느는 허약한 경제구조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로 간다면 몇년 안에 구조조정이 끝나고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이런 정책을 쓸 리가 없기 때문에, 지금 경제위기는 사실 돌파구가 안보입니다. 최소한 이명박 대통령 임기 동안은 경제위기도 끝나지 않을 듯 하네요. 참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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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LTCM이 남긴 교훈

경제 2008/12/10 05:18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세계 금융계를 흔들어 놓은 롱텀캐피탈메니지먼트 (LTCM)의 몰락은 오늘날 세계 경제가 처한 위기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LTCM은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채권부서를 담당하던 존 메리웨더가 1994년에 차린 회사입니다. 이 회사에는 블랙-숄즈 모델을 개발한 마이런 숄즈와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 등이 참여했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죠.

LTCM는 시장에서 연관된 두 가격이 잠시 벌어지는 현상 (스프레드)에 주목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발행된 재무부 채권과 6개월전에 발행된 재무부 채권은 사실상 같은 채권임에도 불구하고 6개월 전 발행된 채권은 사려는 사람이 적어서 조금 더 쌉니다. 그런데 결국 10년이 지나다 보면 벌어졌던 두 채권의 가격은 하나로 모이기 마련이죠. 따라서 조금 더 싼 오래된 채권을 사들이고, 조금 비싼 새로운 채권을 공매도 한다면, 거의 확실하게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두 채권의 가격 차이라고 해봤자 0.1% 수준이기에 큰 돈을 벌기는 힘듭니다.

LTCM는 저수익을 고수익으로 바꾸고자 레버리지를 이용합니다. 레버리지는 쉽게 말해 돈을 빌려 하는 거래인데, 예를 들어, 내 돈 1억원으로 0.1% 이익이 남는 거래를 한다면 10만원 밖에 못벌지만, 내돈 1억원에 남의 돈 99억원을 더해 100억원으로 거래를 하면 천만원의 이익이 남습니다. 이 경우 내돈 1억원에 대한 수익률은 10%가 되지요. 즉, 레버리지를 이용하면 0.1%짜리 저수익 거래가 10%짜리 고수익 거래로 탈바꿈을 하는 것입니다.

LTCM는 "똑똑한 경제학자들이 모여서 안전하게 고수익을 올리는 신기한 펀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은행돈을 쉽게 좋은 조건으로 빌려다 투자를 합니다. 이들은 한때 59%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려 화제가 되는데, 실제로 이들이 투자한 돈 전체 대비 수익률은 2.45%밖에 안됩니다. 이들이 이렇게 적은 수익이 나는 투자를 하고도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남의 돈을 엄청나게 빌려 투자를 했기 때문이죠.

LTCM가 대단한 수익을 올리자 사람들은 "LTCM에는 천제 경제학자들이 많기 때문에 대단히 정교한 수학 모델을 써서 정확하게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쓴 수학 모델은 일반에게도 공개된 내용이고 별로 새로운 것이 없었습니다. LTCM의 강점은 수학 모델이 아니라 수학 모델을 바탕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이었죠.

LTCM은 수학을 강조하다 보니, 시장도 수학공식처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LTCM의 몰락을 몰고 오죠. 예를 들어, LTCM은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돈의 5%를 잃을 확률은 12%다"라고 예측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수치는 수학 모델을 써서 얻은 것이지만, 이러한 수학적 계산의 결과가 곧 현실이라고 믿은 것이 실수였죠.

성공에 도취한 LTCM은 채권 뿐 아니라 외환 등 익숙치 않은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든지 성공할 것이다"라는 식의 교만이 엿보이죠. 그러던 중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불똥이 러시아로 퍼지고, 러시아 경제에 대한 우려가 퍼지면서, 러시아 채권이 폭락합니다. 수학모델을 컴퓨터로 돌려 본 LTCM의 천재들은 "러시아 채권은 저평가되었다"고 판단하죠. 러시아가 파산하면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이를 방치할 리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미국 등 선진국들은 야멸차게도 러시아의 곤경을 수수방관하였고, 결국 러시아 정부는 "모든 국채는 무효다"라고 선언하고, 러시아 국채에 투자했던 LTCM은 큰 손실을 입죠. 게다가 혼란스러운 경제상황에 위험 자신을 회피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LTCM은 유동성 위기에 몰립니다.

LTCM의 위기는 단순히 한 회사의 위기가 아니었습니다. LTCM이 파생상품에 투자한 돈이 1조 달러가 넘는데, LTCM이 파산하고 이러한 상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시장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죠. 결국 연방준비은행이 주도하여 은행들이 돈을 모아 LTCM의 청산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함으로 위기는 끝나게 됩니다.

LTCM 사태는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선, 90년대만 해도 레버리지를 통해 큰 자금을 운영하는 예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레버리지가 금융계의 기본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레버리지는 경기가 좋을 때는 고수익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그 회사 뿐 아니라 국가 경제 자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합니다.

또한 LTCM 사태는 파생상품의 위험을 잘 보여줍니다. 파생상품은 각종 첨단 금융 기법과 수학 모델을 통해 탄생한 금융상품으로, 그 실체가 대단히 모호합니다. 이러한 파생상품은 평소에는 고소득을 안겨주기에 인기가 높지만, 위기가 닥치면 순식간에 가치를 잃습니다. 또한 파생상품은 역사가 워낙 짧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도 누가 책임을 질찌가 불분명하고, 책임 소재가 명확해도 책임을 져야 할 회사가 이미 망해 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국은 상품을 산 사람만 손해를 볼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 LTCM은 인간이 성공에 도취하면 교만에 빠져 실수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LTCM이 처음에 투자를 했다 큰 손해를 봤다면 LTCM의 실패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LTCM은 설립되자마자 큰 수익을 냈고, LTCM 운영자들은 "우리가 남보다 더 돈을 잘 버는 것은 남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이다"고 말할 정도로 교만해 졌습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 남보다 더 똑똑하기에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들이 갑자기 멍청해지지 않는 이상 늘 남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 겠죠. 이러한 논리에서 이들은 자신의 실패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결국 어리석은 판단을 거듭하며 몰락하였습니다.

레버리지, 파생상품, 교만, 이 모두가 최근 몇년간 세계 경제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빌려 집을 여러 채 사서 부를 축적했고, 은행은 정기예금하러 온 고객에게 조차 "주가와 연동하는 고소득 상품"을 권하였고, 사회는 펀드와 부동산으로 쉽게 돈을 버는 시절이 영원하리라는 낙관으로 가득했죠. 하지만 이는 모두 거품이었고, 지금은 그러한 거품이 꺼져버린 상태입니다.

돌이켜볼 때, 인류가 LTCM 사태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였음은 분명합니다. LTCM은 미국내 몇몇 은행의 개입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지금 사태는 전세계가 LTCM이기에 누가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찌 조차 불분명합니다. 부디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LTCM 사태가 남긴 교훈은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참고도서- 천재들의 실패 (When Genius Failed by Roger Low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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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교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한 1년내에 부자가 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미 작년말 당선자 시절부터 "내년 주가는 3000"이라고 예측하는 등 주식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고, 특히 9월에는 "나는 직접투자가 불가능하지만 간접투자 상품(펀드)이라도 사겠다"고 말해 화제가 되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주식에 대한 대단한 애착을 드러낸 셈이지요.

물론 주가 3000의 꿈은 물건너갔고, 들기로 약속했던 펀드도 안드는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주식을 사면 부자된다는 이번 발언도 크게 무게를 두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주가의 방향을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예측한다는 DC주식갤 둥글게님의 전설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주가의 흐름을 거꾸로 예측하는 능력을 차곡차곡 키우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사실 내년 주가가 오를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기에 누가 주가를 예측하는 것을 보고 비난하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한 1년내에 부자가 된다"고 말한 자리에서, "지금은 한국이 아무리 잘해도 물건을 내다 팔 수 없다... 내년이 되면 정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이 대통령은 이번 경제위기를 "우리 생애 한 번 올까 말까 한 세계적 위기"라고도 평가했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졌으니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도 어려우리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나쁘면 주가도 떨어지기 마련인데, 내년 경기가 나쁘리라고 예측하면서 주가는 오르리라고 예측했다니, 과연 이명박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말을 했을까가 심히 궁금해집니다.

"지금 주식 사면 1년안에 부자" 발언에 묻히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 중 매우 흥미로운 발언을 했습니다. 바로 "BIS 비율 인하" 발언인데, 그 내용을 보자면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는 이유가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이고, 따라서 BIS 비율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최근 정부가 은행을 상대로 "기업에 돈을 풀라"고 호통을 쳐도, 은행들은 국제적인 기준인 BIS 비율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버티는 중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은행이 국제적 기준 때문에 대출을 하지 못한다면 국제적 기준을 바꾸면 된다"고 나선 것이지요.

뭐 어떻게 보면 창의적 발상일 수도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이유가 이렇습니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BIS 비율이라는 국제 기준을 바꾸기 위해 금융안정포럼(FSF) 에서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금융안정포럼의 멤버가 아닙니다. 멤버도 아닌데 남의 포럼에 가서 기웃덴다고 규정을 바꿀 수 있을까요? 물론 내년엔 금융안정포럼이 신흥국을 멤버로 받아들인다지만, 한국이 이에 포함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제적 기준"을 바꾸기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방법은 헛점이 많이 보입니다.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이 바꾸기 원하는 BIS 비율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죠. BIS는 국제결제은행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의 약자인데, 이 기구는 나라마다 다른 관습을 뛰어넘어 금융산업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금융산업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 중요한 한 가지 토대는 바로 은행의 건전성입니다. 은행이 돈을 함부로 빌려줬다가 망하게 되면 그 은행에 투자했던 기관은 큰 손실을 보겠죠. 따라서 은행이 건전하지 못하다면 돈을 빌려주려는 기관이 없어서 금융업이 마비됩니다. BIS는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은행에게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을 최소한 8%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규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1988년 발표된 바젤협약의 핵심이지요. 그런데 은행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자본 8%라는 규정만으론 현재 은행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BIS는 신바젤협약 (Basel II)을 발표했고, 한국에서도 2008년 부터 이를 시행중입니다.

신바젤협약의 핵심은 세 개의 기둥 (Three pillars)라고 부르는 다음 내용입니다.
1. 자기자본 비율 8% 이상 유지
2. 은행은 리스크 관리 시스템 가동 , 감독당국은 은행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 감독
3. 은행이 각종 리스크에 관한 정보를 공시함으로 시장이 각 은행의 리스크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함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서 이러한 체제가 바뀐다면, 이는 곧 은행이 부도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마음껏 돈을 빌려줘도 되고, 대출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아도 되며, 대출금의 위험성에 대해 공시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어떤 은행이 얼마나 건전한지 알기가 힘들어지겠죠. 과연 이렇게 은행의 건전성을 해치면서 대출을 늘리면 경제가 살아날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이해하지 못하는 또하나의 현실은, 은행이 대출을 꺼리는 이유는 BIS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국내 은행이 스위스 바젤에 있는 BIS가 무서울 까닭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은행들이 BIS 비율을 높이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BIS 비율이 낮아지면 외부에서 돈을 빌려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은행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시장의 눈초리고, 시장은 자기자본 비율이 낮은 은행은 곧 파산 위험이 높은 은행이라고 판단하고 거래를 끊기 때문에 죽기살기로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바젤협정을 파기하든, BIS를 해체하든 은행이 대출을 꺼리는 현상은 바뀔 이유가 없습니다.

이번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평소 그의 발언 습관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1. 현실성이 없거나 2. 진심이 담겨 있지 않거나 3. 경제를 모르는 소리가 많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이렇게 무게감이 없으니 다른 나라 투자자가 보기에 한국 경제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사태가 벌어졌을 때 소련과 핵전쟁을 각오하고 쿠바를 봉쇄했습니다. 그의 용기와 판단력 덕분에 미국은 코앞에 소련의 핵무기가 설치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죠. 이처럼 좋은 지도자는 말보다 행동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나랑 오바마는 닮은꼴" 같은 말로 대중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대중이 감동할 수 있는 훌륭한 정책을 펼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말이 앞서는 지도자를 따르지는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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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저는 이명박 정부를 매우 싫어하지만, 그래도  이명박 정부에서 잘하는 일이 있으면 잘하는대로 인정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기에 결국 객관성 없이 감정적으로 헐뜯는 글을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속으로는 '이건 또 무슨 꿍꿍이?'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연히 예감이 안좋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기 보다는 시장이 긍정적으로 인정한다면 긍정적인 일로 받아들이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협정 소식이 들린 직후 (한국시간으로 새벽 4시 경이였죠)에 쓴 은 스와프 협정에 대해 그리 부정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불안감을 떨칠 수 없네요. 그러한 불안감의 근거는 바로 CRS 금리의 동향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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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31일 CRS금리가 0%수준으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이는 지난 10월 중순 최악의 상황일때로 돌아갔다는 뜻으로, 언론의 긍정적인 보도와는 다르게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이 한국의 외환 부족을 해소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전에도 설명했지만 CRS 금리는 외환 (FX) 스왑시장에서 달러화를 빌려주고 원화를 빌리는 사람이 내는 금리입니다. 원화를 빌려주고 달러화를 빌리는 사람은 리보 금리를 내기 때문에 따로 표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CRS 금리가 0%라는 말은, 달러화를 빌려주고 원화를 빌리는 사람은 리보 금리 (오늘 1년물 기준 3.51%)만큼 이자를 받으면서 자신은 이자를 안내도 된다는 뜻입니다. 즉, 달러를 빌려주려는 사람이 워낙 없어서 달러 있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시장이 성립되었다는 뜻입니다.

은행이 외환을 구하는 방법은 세가지입니다. 우선 외국에서 직접 외화를 빌려오면 되는데, 최근 한국의 은행이 외국에서 외화를 빌리는데 성공한 예가 두 어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한국의 은행이 쉽게 외국에서 외화를 구해온다면 제가 이 글을 쓰지도 않겠죠). 두번째 방법은 스왑 시장에서 돈을 구하는 방법인데, CRS 금리가 0%에 스왑 베이시스가 500bp 가까이 된다는 말은 이나마도 쉽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세번째는 현물 시장에서 직접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은행이 현물시장에서 달러를 구하는 것은 프로야구 선수가 동네 야구장에서 500원 동전 넣고 기계에서 나오는 볼 치는 것 만큼이나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일은 없어야 정상인데, 지금 은행의 달러 사정이 너무 안좋아 이러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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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한국의 외환 스왑시장에 들어오는 이유는 이자가 높은 한국에서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거대은행 A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자면, A는 신용도가 높기 때문에 리보 금리로 쉽게 돈을 구합니다. 그렇게 구한 달러화를 한국의 스왑시장에서 풀면 달러가 필요한 한국의 B은행이 이를 받겠죠. B은행은 달러금액에 해당하는 원화와 리보 금리를 A은행에 줍니다. A은행은 CRS 금리를 B 은행에 내죠. 그러면 A은행은 B은행에서 받은 리보 금리로 이자를 갚습니다. 그리고 거래를 통해 받은 원화로 국채를 삽니다. 국채의 가격은 당연히 CRS보다 높고, 따라서 A은행은 쉽게 조달한 돈으로 안전하게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스왑 거래는 처음 정한 금리대로 나중에 다시 돈을 서로 갚기 때문에 환차손의 위험도 없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CRS 금리가 0%에 가깝고 스왑 베이시스가 500bp에 육박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큰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외국의 금융기관은 한국의 스왑시장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이 발표되었는데도 CRS금리가 떨어진다는 말은 이들이 오히려 한국 스왑시장에서 떠난다는 뜻입니다. 이는 한국의 은행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졌다는 뜻이고, 한국의 은행들은 달러를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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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나면서 신용경색이 시작되자 평소에 50bp이하를 유지하던 스왑 베이시스가 세자리수로 급등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몇달 지속되자 은행에서는 "환전창구에서 바꿔줄 돈도 부족하다"는 소리가 들여왔습니다. 그만큼 스왑시장은 은행이 외환을 구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에 비해 외환 현물 시장은 은행 보다는 기업이나 개인의 돈이 오가는 시장입니다. 따라서 기업이 "환율이 내릴 때가 되었으니 빨리 달러를 팔아버리자"고 판단하고 행동하면 환율은 내려갑니다. 하지만 환율이 내렸다고 은행의 외환부족이 해결되지는 않지요. 은행의 외환부족은 은행이 외국에 나가 돈을 빌려 오던지, 아니면 외환 스왑 시장에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요즘 이 두가지가 모두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SDE님은 현 상황에 대해 "한국의 크레디트 라인이 끊어졌다"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1997년 외환위기의 직접 원인이었기도 하죠. 그런데 'IMF 망령'에서 벗어났다 는 선언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외환위기 끝났다"고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 더욱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 외환위기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찌 고민할 때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한미 통화 스와프 타결로 고비를 넘겼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는 곳이 많더군요. 정말 현실을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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