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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7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전쟁 (5)
작년 말에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저는 70년대 식 경제위기를 떠올렸습니다. 70년대는 많은 나라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 경제성장은 더딘 스테그플레이션의 시기였죠.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80년대 초반에는 두 자리 수 인플레이션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당시엔 "사재기"나 "인플레"라는 말이 일상 용어였고, 물가상승률이 조금 내려가자 전두환 정권은 "한 자리 수 물가의 기적"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죠. 이러한 기억이 남아있기에 이번 경제위기도 70년대식 경제위기와 비슷하리라고 예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번 경제 위기는 70년대와 다른 양상을 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70년대 경제 위기의 핵심은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경제위기는 물가하락, 즉 디플레이션이 중요한 문제죠. 디플레이션이란 돈이 잘 돌지 않기에 돈의 가치가 높아지고, 따라서 상품과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한국은 인플레이션은 많이 겪었지만 디플레이션은 겪어보질 못했습니다. 요즘은 이자율이 높기에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야 정상인데도 실제로는 거의 떨어지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주택소유자가 "조금만 버티면 집값은 다시 오르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한국인은 디플레이션의 위험을 모르고, 따라서 대비를 전혀 안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20세기 들어 유명한 디플레이션의 예를 들자면 1929년 시작한 미국의 경제 대공황과 1990년대 일본의 거품붕괴를 들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인플레이션의 예는 훨씬 많고, 심지어 물가가 수 백배, 수 천배 오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예 (1930년대 독일, 1980년대 남미, 1990년대 동구권, 2000년대 짐바브웨)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디플레이션 보다 흔한 원인은, 금본위제가 사라진 현대사회에서는 통화량의 증가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 매우 흔하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1929년에 시작한 경제 대공황은 디플레이션의 위험을 잘 보여줬습니다. 그 이후로 각국 정부는 디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 노력을 다합니다. 정부가 디플레이션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이를 막을 방법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 금리를 5%대라고 생각한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금리를 20-30%, 심지어 그 이상 까지라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금리를 0%까지 떨어뜨릴 수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90년대에 제로 금리를 몇년간 유지해야 했죠). 따라서 금리로 디플레이션을 막기는 힘들죠. 디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정부의 지출을 늘릴 수 있긴 하지만, 90년대 일본을 보면 경기부양책을 계속 썼음에도 디플레이션은 1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1930년대 미국에서도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써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진행했지만, 이러한 정책이 디플레이션을 끝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듭니다 (실제로 대공황은 2차대전의 발발로 인해 끝냈다는 설이 더 설득력 있죠).

최근 미국의 소비자 물가 지수 (CPI)가 하락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를 디플레이션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의 주가 하락이나 집값 하락 (작은 폭이지만)도 디플레이션의 한 부분으로 볼 수 있죠. 하지만 디플레이션이 계속될찌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이 듭니다. 각국 정부가 디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돈을 푸는 중이고, 특히 미국 정부도 발권력을 동원해서 돈을 시중에 공급하기로 한 이상,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의 한바탕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통화량 증가로 디플레이션과 맞서 싸우는 전략은 성공한다고 해도 많은 희생이 따릅니다. 우선, 통화량이 증가하면 돈의 근원 가까이 있는 은행 등은 좋을찌 몰라도, 돈이 돌고 돌아 나중에 도달하는 일반인은 물가가 오르는 만큼 수입이 따라 오르지 않기 때문에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정부에서 "디플레이션과 싸워서 승리했다"고 발표한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의 생활은 디플레이션이 온 것 이상으로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통화량이 지나치게 증가한다면 하이퍼플레이션이 올 수 있습니다. 물론 하이퍼플레이션의 발생 가능성은 적긴 하지만, 만약에 현실로 나타난다면 세계적인 재앙이 될 것입니다. 집이나 차 등 물건을 제외하고 돈이나 예금 등은 모두 휴지조각으로 바뀌기 때문이죠.

디플레이션을 막으려는 각국 정부의 노력은 시장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합니다. 즉, 경기가 좋아지면 돈이 많이 돌면서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안 좋으면 돈이 안 돌면서 물가가 내립니다. 이렇게 본다면 디플레이션은 지나치게 올라갔던 물가가 내려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지금 한국 땅을 다 팔면 캐나다 땅을 두 번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뜻이지요. 디플레이션은 이처럼 지나치게 오른 부동산 가격을 적정한 수준으로 내려줍니다. 문제는 이렇게 집값이 내리면 집가진 사람, 특히 빚 내서 집을 산 사람은 큰 손해를 보겠죠. 따라서 주택 소유자들은 정부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집값 하락을 막아주길 바라기 마련입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을 뽑아준 유권자들은 이명박 정부가 "집값 사수"를 해주리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누가 나서도 시장을 상대로 싸워 이기기는 힘듭니다. 만약 디플레이션을 막아낸다 하더라도, 이는 지금의 높은 가격이 유지된다는 뜻이기에, 거품을 미래로 가지고 간다는 뜻 밖에는 안되죠.

결국 지금 경제 상황은 디플레이션이라는 대세에 각국 정부가 돈을 풀어 인플레이션으로 맞서는 상황입니다. 만약에 정부들의 노력이 성공한다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수준에서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는 있어도 경제 전체가 왜곡되고, 정부의 재정적자가 심해져서 앞으로 더 많은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정부의 노력이 실패한다면 디플레이션이 장기간 경제를 억누르고, 주가와 부동산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더 떨어지겠죠. 어느 쪽도 우리에게 쉬운 상황은 아닙니다. 그리고 일단 디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가 다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등 혼조세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한쪽으로 단정하고 대비하기 보다는, 양쪽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조심스럽게 상황을 관찰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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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