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중요성

문화 2009/08/12 06:29
얼마 전 해럴드 블룸의 The Western Canon을 읽고 나서, 그 책에 나온 서양문학의 고전들을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 밀턴의 실낙원 등, 몇번씩 읽으려고 했지만 결국 끝내지 못하고 포기했던 작품들을 다시 읽는 것이죠. 큰 마음을 먹고 시작했지만, 역시 고전을 읽기는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요즘 나온 책은 나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이 오늘날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현대인의 말로 설명하였기에 술술 읽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전은 나와 다른 시대에,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이 나와 다른 시대의 언어로 쓴 책이기에 쉽게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읽으려면 보통 고전을 설명하는 책도 같이 읽어야 하죠. 그래서 고전은 읽는데도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공부하는데도 시간이 걸리기에 대단히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고전은 시간을 초월하는 깨달음을 담고 있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 속에 담긴 보화를 캐낼 수만 있다면, 고전을 연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것이죠.

감독이자 코미디언 로베르토 베니니는 단테의 신곡을 TuttoDante라는 제목의 공연으로 만들어 이탈리아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심지어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로 공연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성공은 그가 신곡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기 때문에 가능하겠죠.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É Bella)도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밑바닥에 깔린 영화입니다. 만약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세상이 나의 의지의 표상이라면, 내가 어떠한 상황에 부닥쳤든 내 의지에 따라 세상의 실체를 바꿀 수 있고, 따라서 수용소에 갇힌 사람도 의지로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겠죠.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러한 철학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철학적 기반 위에 만든 영화와 단지 웃기기 위해 만든 그의 다른 영화(예를 들어 Il mostro)를 비교해 보면, 영화의 깊이가 전혀 다르고, 따라서 완성도도 많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로베르토 베니니를 단지 웃기기만 하는 코미디언이 아닌, 진정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예술가로 격상시킨 요인은 고전에서 발견한 지혜라고 할 수 있죠.

생각해 본다면 과거의 교육은 거의 모두 고전 읽기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젊은이들에겐 호머, 플라톤 등이 남긴 위대한 책을 읽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교육에서도 유교의 고전을 읽는 것을 가장 중요했고, 많은 젊은이는 기본 한자 교육을 마친 후에는 스승도 없이 혼자서 몇 권의 고전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당시엔 책이 워낙 비쌌기에 여러 권을 구해 읽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진리는 이미 성현들이 모두 발견했다."는 인식 때문에 새로운 책보다 고전을 중요시했죠.

하지만, 근대에 들어 보편교육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고전을 읽으려면 대단한 지적 능력이 필요한데, 보편교육을 받는 모든 어린이에게 이러한 능력을 기대할 수 없었고, 따라서 모든 학생이 쉽게 이해하도록 표준화한 교과서가 고전을 대치하게 됩니다. 하지만, 교과서는 저자의 개성이 담긴 책이 아니고 그저 표준 교육을 마치기 위해 소비하는 책일 뿐이죠. 그러니 교과서는 재미가 없고, 교육과정을 마치면 더 이상 읽지 않는 법이죠. 그에 비해 고전은 열심히 읽다 보면 책과 사랑에 빠지고, 이는 더 많은 고전을 읽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교과서만 읽으며 공부하는 요즘 학생들이 공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공부를 나중에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만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해럴드 블룸은 예일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중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예일대가 그 정도라면 다른 대학의 상황은 더 심하겠죠.

교과서의 또 다른 문제는 교과서가 철저하게 삶과 분리된 책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교과서를 누가 썼는지도 모르고, 누가 썼는지 안다고 해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고전은 위대한 사상가의 삶이 녹아 있는 책입니다. 따라서 교과서만 읽으면 지식을 어떻게 삶에 연결해야 할지 깨닫기가 힘든데 비해, 고전을 읽으면 삶 자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교과서를 읽고 삶이 바뀐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고전을 읽다가 인생의 방향을 바꾼 사람은 많죠.

바쁜 현대 사회를 살면서 고전을 읽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지혜가 담긴 고전은 가치를 측량하기 어려울만큼 귀중한 보물입니다. 고전 읽기를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열심히 좋은 책을 읽는다면, 언젠가는 고전 속에 담긴 보물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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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고전, 교육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 중 사교육비 절감은 대운하건설, 7% 경제성장과 함께 핵심 사안입니다. 따라서 인수위에서도 이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였는데, 요점은 수능등급제의 사실상 폐지, 수능과목 축소, 그리고 학생선발권의 대학 완전 이양입니다. 관심이 쏠렸던 본고사 부활에 대해선, "본고사 부활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분간은 수능 위주로 입시가 진행되겠죠.

본고사와 수능의 관계는 우리나라 교육이 처한 딜레마를 잘 보여줍니다. 해방 이후 교육 제도가 여러 번 바뀌긴 했지만, 크게 봐서 70년대까지 대학입시의 중심은 본고사였습니다. 본고사의 특징은 문제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어려우니 아주 뛰어난 학생만 대부분 문제에 대해 정답을 쓸 수 있고, 나머지는 만점에서 한참 못 미치는 점수를 얻기 마련이죠. 이러한 시험은 변별력이 좋습니다. 즉, 누가 정말 공부를 잘하는지가 쉽게 드러난다는 말이죠. 하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본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일반 고등학교의 교과과정을 충실히 따르는 정도로는 안 되고, 정규교육 이외의 공부를 해야 합니다. 즉, 과외가 필요하죠. 따라서 70년대에는 이미 과외가 극성이었고, 지금보다 경제수준이 훨씬 낮은 시절에 과외는 가정경제에 대단히 부담되는 일이었죠.

그래서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장군은 국민의 환심을 사고자 과외 금지를 추진합니다. 지금 말로 하자면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지요. 하지만, 과외의 원인인 본고사를 놔두고 과외만 금지할 수 없어서 본고사도 폐지하고 학력고사로 대체합니다. 학력고사는 학력, 즉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의 양을 측정하는 시험입니다. 여기서 공부란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뜻하죠. 따라서 서울대 수석 합격생이 인터뷰에서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방송에서 내보낸 이유는, "학력고사를 잘 보려면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보급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학력고사는 곧 문제점을 드러냅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모든 과목을 시험으로 내기 때문에 학생은 어떤 과목도 소홀히 할 수 없었죠. 따라서 학생은 거의 20개에 달하는 과목을 모두 공부해야 했습니다. 특히 "학력"이란 "머릿속에 든 정보의 양" 이었기 때문에 암기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이렇게 10여 년을 시험치다 보니, 학생들이 수많은 과목의 엄청나게 광범위한 내용을 달달 외워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죠.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미국의 대입제도를 주목합니다. 미국 고등학생들은 SAT를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죠. SAT는 "학력"이 아닌 "수학능력" 을 검증하는 시험 (Scholastic Aptitude Test)입니다. 학력은 앞서 보았듯, 공부를 통해 머릿속에 담아 놓은 지식입니다. 그에 비해 수학능력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즉, 학력이 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뜻한다면, 수학능력은 대학에서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지요. 따라서 논리적으로 볼 때, 대학에서 공부할 학생을 뽑기엔 수능시험이 학력고사보다 더 나은 시헙입니다.

하지만, 수능시험을 한국에서 실시하면서, 수능시험이 한국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습니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했을 때 좋은 점수가 나오길 바라는데, 수능시험은 꼭 열심히 공부한다고 좋은 능력이 나오는 시험이 아닙니다. 즉, "공부 잘하는 능력"이 있어야 좋은 점수가 나오는 시험이죠. 과거처럼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한 학생보다, 응용력과 창의력이 좋고 통합적인 사고를 잘하는 학생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죠. 시험 경향이 이렇다면, 학생들도 "아, 교과서를 암기하는 과거의 방식은 통하지 않으니까 차라리 다양한 활동을 통해 통합적 사고를 하는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을 바꿔야 하는데, 오히려 "어,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별로 안 나오네. 그렇다면... 학원에 다녀서라도 성적을 더 올려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수능시험이 도입된 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사교육비 부담은 더욱 늘어났고, 게다가 암기의 요소가 적어진 시험이기에 변별력은 더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들은 본고사 부활을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본고사를 치러야 대학이 원하는 인재가 누구인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능만으로도 사교육비 부담이 큰데, 본고사가 도입되면 학생들은 더욱 사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곧 계급의 고착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큽니다. 즉, 돈이 많은 집에서는 아이들을 좋은 학원, 또는 좋은 자립형 사립고에 보내 본고사에 잘 대비하게 하고, 돈이 없는 집에서는 아이들을 고등학교에만 보내서 본고사에 대해서는 잘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본고사 실시에 반대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보기엔 하향 평준화보다 계급 고착화가 더 큰 문제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아시다시피 "시장의 원리"에 맞게 사회를 바꾸기 원합니다. 지금 교육계의 상황을 보면 정부가 강제로 "저가에 저급 제품을 제공하는" 구조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를, "돈을 더 많이 내고 더 좋은 제품을 사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럴 기회를 주는" 구조로 바꾸기 원하죠. 여기에는 자립형 사립고나 대학 본고사도 포함됩니다. 이렇게 되면 하향 평준화의 문제를 피할 수 있겠죠.

문제는 대학 본고사가 부활하면 고등학교 교과 과정으로는 준비되지 않기에 사교육을 받아야 하고, 이는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자는 "사교육비 감소"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당선되었습니다. 따라서 "시장의 원리"에 따르면 본고사를 부활해야 하는데, "사교육비 감소"를 하려면 본고사를 부활하면 안 됩니다. 게다가 이명박 당선자는 "학부모가 봤을 때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도 학교에 갈 수 있겠다. 바로 이거다’라고 무릎을 칠 수 있도록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안을 만들어 달라"고 실무자에게 당부했다는데, 이는 사교육이 없던 학력고사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기에 현실성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좌로도 우로도 갈 길이 막힌 상황에서, 인수위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우선, 대학입시를 정부 관할에서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관할로 바꾸겠다고 밝힙니다. 이는 정부 규제를 풀고 당사자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을 내리게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잘 맞았죠. 이렇게 한다면 대교협에서는 결국 대학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언젠가 "본고사 실시" 등의 정책을 내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는 사교육비 증가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 아닌, 대학들의 책임이 되지요. 문제는 지금 당장 "이명박 정부가 본고사 실시로 사교육비를 올려 놓았다"는 비난을 듣는 것인데, 이는 인수위원회에서 "대교협이 본고사 실시를 막을 것이다"고 밝힘으로 해결했습니다. 대교협은 대학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인데, 대학들이 본고사를 원하면 본고사를 치르지 않겠습니까? 만약 정부에서 대교협에 "본고사는 안된다"고 명령한다면, 이는 "학생선발권의 대학 완전 이양"이라는 발표가 사실이 아니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세히 따지는 사람은 드물 테니, 인수위는 "본고사는 없다"고 모두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한 것이지요. 다시 한 번 이명박 정부가 양치기 소년이 된 예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학력고사나 수능, 본고사가 꼭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한국인의 교육열이 너무나 높고, 따라서 어떤 제도가 나와도 경쟁이 심화되고 사교육비가 증가할지언정 경쟁을 완화하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과감하게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넘겼는데, 이러한 결정이 교육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지,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할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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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일이 다가오면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이 서서히 드러나는 듯한 모습입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이명박 당선자 자신의 말을 근거로 생각할 때, 이명박 정부는

1. 기업환경개선을 통한 경제 성장
2.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 해소
3. 대운하 계획의 변함 없는 추진
4. 부처 통폐합을 통한 작은 정부
 
등의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들은 일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을찌 의문이 듭니다. 우선, 기업환경개선이라는 정책과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 해소라는 정책을 살펴봅시다. 기업환경개선이라는 말은,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데 방해가 되는 여러가지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선 기업이 시장의 원리에 따라 활동할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해 주고, 정부는 기업 활동에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투표자의 대부분은 기업가가 아닌 일반 국민입니다. 따라서 이명박 당선자는 기업만 위할 뿐 아니라 일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도 펼치기 원합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휴대전화 요금을 내리겠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휴대전화 요금을 내리기 위해서는 기업에 "휴대전화 요금을 내려라"라고 지시해야 하는데, 이는 기업환경개선이라는 원칙에 위배됩니다. 그래서 인수위원회는 대통령 취임전에 휴대전화 요금을 인하하려고 추진했다가 기업들이 반발하자 대통령 취임 후 요금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이와 함께 추진하던 유류세 10% 인하 방안은 정부의 결정만으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곧 시행하겠지만, 문제는 정유회사에서 "원가 인상 요인이 생겼다"며 세금 인하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얼마전 정부는 서민용 난방 연로인 프로판 가스와 등유의 세금을 인하했지만, 실제 프로판 가스의 가격은 더 올라갔습니다. 가스 수입 업체들이 국제 가격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정부 말만 믿고 구입을 미운 소비자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썼지만, 소비자가 정부만 믿다가 요금인상이라는 뒤통수를 맞는 일은 이명박 정부의 유류세 인하 이후에도 나타날찌 모릅니다. 그리고 기업이 "세금 인하분 보다 원가가 더 올라서 가격을 올렸다"고 말한다면, 기업환경개선이라는 원칙에 따라 정부는 뒷짐지고 바라봐야만 하겠지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모순을 드러내는 또 다른 영역은 교육입니다. 많은 학부모는 지금의 교육 정책이 마음껏 경쟁하지 못하도록 억누름으로 하향 평준화를 일으킨다고 믿기에 불만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원하는 대로 경쟁할 수 있도록 본고사를 부활하고,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도록 자립형 사립고 100개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학 본고사가 부활하면 일반 고등학교의 느슨한 교육만으로는 감당이 안되기 때문에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자사고 교육이 필수가 되겠죠. 따라서 자립형 사립고가 생기면 우수한 학생들은 좋은 자사고에 진학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즉, 지금 고등학교 부터 시작하는 입시지옥이 앞으로는 중학고, 초등학교에서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하긴 요즘도 초등학교부터 입시경쟁이 치열하다니, 앞으로는 유치원부터 경쟁이 치열해 진다고 보는 것이 낫겠군요).

그런데 이명박 당선자는 사교육비에 등이 휘는 학부모를 의식한듯, 실무자들에게 "학부모가 봤을 때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도 학교에 갈 수 있겠다. 바로 이거다’라고 무릎을 칠 수 있도록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안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는군요. 그런데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서 본고사에 붙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사고는 교육을 잘 시키겠지만, 교육비도 일반 고등학교보다 훨씬 높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의 정책은 교육의 질을 향상하는 대신 교육비용 상승과 경쟁 심화를 일으킬 텐데, 한쪽으로는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도 학교에 갈 수 있"는 정책을 추구합니다. 경쟁을 강화하자는 말인지, 아니자는 말인지, 교육비가 더 많이 들어가게 바꾸겠다는 말인지, 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말인지 도통 모르겠네요.

결국 이명박 정부는 특별한 이데올로기의 기반이 없이, 대중의 인기를 척도로 정책을 세우는 듯 합니다. 이는 단지 출범 초기이기에 나타나는 모습이 아니라, 정권의 본질적인 특색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정체성을 의심하고, 따라서 뚜렷한 지지세력이 없습니다. 그의 인기는 "그가 나에게 이득을 주리라"는 국민의 생각에 근거하죠. 따라서 국민이 그에게 등을 돌리면 순간 인기가 폭락할찌도 모릅니다. 이명박 정부는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이쪽저쪽 모두를 만족케 할 정책을 찾습니다.즉, 기업이 "기업 활동에 규제가 너무 많다"고 하면 규제 다 풀어주고, 국민이 "물가가 너무 오른다"고 하면 기업에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식이지요. 일부 국민이 "왜 교육에서 자유로운 경쟁을 억누르느냐"고 항의하면 경쟁을 허용하고, "경쟁이 너무 심해 못살겠다"고 하면 경쟁이 필요없는 제도를 도입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기 정책은 오래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때로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 국민이 싫어하는 결정도 내려야 하는 것이 정부 지도자의 역할인데, 이명박 당선자는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기는 어려운 듯 합니다. 지금은 정부 출범 이전인데도 이 정도로 정책의 모순이 많은데, 실제로 정부가 취임하고 나면 얼마나 많은 모순이 드러날찌 우려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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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 2학년때, 우리 반에 전학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살던 교포인데, 부모님이 귀국을 하면서 한국에 오게 된 아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미국에 오래 살아서 영어는 잘 했는데, 한국어는 잘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애 집에 가니 Apple III가 있어서 신기해 하며 같이 놀았습니다 (당시 한국엔 Apple II 복제품 밖에 없었음).

그후 그 애의 소식을 모르다가 대학생이 되어 그 애를 봤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영어 학원에서 만났는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배우러 왔다고 하더군요. 단 5년만에 그는 한국어는 잘 못하고 영어만 하는 사람에서, 영어는 잘 못하고 한국어만 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지요.

아마 이런 예를 들면, "설마, 그래도 어린 시절에 배운 영어가 그렇게 빨리 사라질리가 있나?" 하시겠지만, 이는 그 애 만의 경우가 아니라, 제가 자주 목격한 일입니다. 부모님 따라 미국이나 영국에 가서 살다가 귀국한 아이들은 몇년 내에 영어를 쉽게 잊습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안타까울 수도 있지만, 당사자는 한국어 배우기가 영어 잊지 않기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결과이지요.

물론 어릴 때 외국에서 살던 사람이 영어 실력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주로 형제나 자매끼리 영어를 쓰던지, 아니면 한국에서도 외국인 학교에 다니거나 영어를 쓰는 친구들과 계속 사귄다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영어로 생활을 하면 한국어로 진행하는 중고등학교 공부에 지장이 될 수 있겠죠? 결국은 한국 생활에 적응하든지, 영어실력을 유지하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에 영어를 이렇게 쉽게 잊는다면, 초등학생, 또는 미취학 아동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전혀 무의미합니다. 초등학교때 영어로 신문 읽고, 외국인과 만나 영어로 대화하고... 이런 실력은 중고등학교 6년안에 다 없어지고, 대학 들어가면 영어를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입니다.

요즘은 유치원에서 부터 영어를 가르칩니다.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영어를 한다"고 좋아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아이도 영어를 잘 못해서 고민하는 대학생이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07학번도 90년대 말에 초등학교 다니면서 조기영어교육 다 받지 않았나요? 그렇다고 07학번은 외국인 만나면 영어가 술술 나옵니까? 그 중 특별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긴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조기영어교육을 받은 세대도 그 이전 세대보다 그리 영어 실력이 낫지 않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어차피 잊을 영어라면, 차라리 어린 시절이라도 영어 스트레스 주지 않고 키우는 것이 더 낫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영어 교육학원의 선전이나, 주변의 압력만 이겨낸다면, 조기 영어 교육이라는 괴물에서 우리 아이들을 해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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