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문화는 내부의 요소를 포괄하는 하나의 단위고, 따라서 문화의 한 요소만 다른 문화에 옮겨 놓으면 기존의 문화와 어울리기 쉽지 않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예를 들어, 김치는 밥이나 라면과 함께 먹어야 제맛이지, 스파게티나 빵 등 외국 음식과 먹으면 무언가 잘 어울리지 않죠. 그런데 서양 음식과 잘 어울리지 않는 김치도 중국 음식이나 일본 음식과는 나름대로 궁합이 맞습니다. 실제로 김치를 반찬으로 내놓는 중국 음식점도 많죠. 물론 이는 한국인이 먹는 중국 음식이 한국문화에 맞게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이 먹는 피자도 한국문화에 맞게 변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여전히 피자와 김치를 함께 먹는 사람은 드뭅니다.

언어도 그렇습니다.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그럼에도 영어를 잘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은 유명하지만, 일본에 건너간 한국인은 1-2 년만 지나면 일어를 능숙하게 합니다. 심지어 별로 고생하지 않고 일본 드라마, 만화를 보다가 저절로 일본어를 익혔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헐리웃 영화, 미국 드라마를 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문화간의 거리가 달라서 생깁니다.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 등 역사를 공유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나라들과 문화적으로 밀접합니다. 그에 비해 미국이나 유럽 등 최근에야 교류가 시작된 나라들과 문화적으로 거리가 멀죠.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음식, 언어, 사고방식 등의 영역에서 호환성의 수준에 영향을 미칩니다. 즉,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음식은 입맛에 잘 맞고, 언어도 배우기 쉬우며, 사고방식도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에 비해 문화적으로 먼 나라의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고, 언어도 배우기 어렵고, 사고방식도 이해하기 어렵죠.

미국은 우리가 대중문화를 통해 늘 접하기 때문에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문화적으로 한국과 대단히 거리가 먼 나라입니다. 이는 미국과 한국의 역사적 배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면 대단한 문화충격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한인사회 바깥으로 나가길 꺼리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니 영어도 잘 늘지 않습니다. 반대로, 교포 2세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라기 때문에 미국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죠. 이러한 교포 2세가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한국어를 못하니까 속상하겠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한국어가 너무나 먼 문화의 일부분이기에 쉽게 배우기가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가까운 문화가 모이면 문화권이 형성됩니다.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을 쓴 새뮤얼 헌팅턴은 문화권을 문명(civilization)이라고 불렀고,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를 쓴 아놀드 토인비는 이를 사회(society)라고 불렀습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비슷하죠. 한국은 동아시아라는 문화권의 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일본에서 유행하는 패션은 한국에서도 유행하고, 한국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는 중국에서도 인기를 끕니다. 이른바 "한류"도 한국의 문화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이고, 따라서 한국과 문화적으로 먼 유럽이나 미국에서 한류가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죠.

아시아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인기를 끄는 현상은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문화권에 대한 각성의 한 부분입니다. 즉, 과거엔 미국, 영국 등 한 나라가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은 문화권 내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들이 등장하는 추세죠. 예를 들어, 인도 주변의 국가들(스리랑카, 네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은 인도의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이집트의 대중문화를 공유합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선 나이지리아의 영화가 영향력이 있습니다.

문화권이 중요해지면서 음식문화도 문화권 별로 영향을 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에 노르웨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노르웨이 전통음식이 사라지지 않았느냐?" 라고 물었더니 "노르웨이 전통음식이 사라지는 것은 맞는데, 그 빈자리를 피자, 스파게티 등 이탈리아 음식이 채우는 중이다."라고 말하더군요. 실제로 지난 몇십 년간 유럽 문화권에서는 스파게티와 피자가 엄청나게 중요한 음식으로 성장했습니다. 그에 비해 유럽 문화권 바깥에서는 이탈리아 음식의 영향력이 여전히 미미하죠.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문화권의 세력화는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현상입니다. 19세기엔 민족이라는 단위가 중요했고(나폴레옹 전쟁과 이탈리아의 통일이 좋은 예죠), 20세기엔 이념이라는 단위가 중요했습니다(1980년대만 하더라도 민주진영에 속한 한국은 공산진영에 속한 중국을 먼 나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세계는 급격하게 문화권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는 아랍 문화권과 유럽 문화권의 충돌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죠.

문화권이라는 단위의 부상은 한국인에게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있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한국은 이러한 나라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어떻게 국가적 유익을 극대화할지 고민해야겠죠. 과거엔 한국이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강대국에 대한 피해의식이 컸지만, 최근 한국 대중문화가 중국과 일봉에서 인기를 끈 데서 알 수 있듯, 한국의 문화적 역량은 절대 작지 않습니다. 강대국에 주눅이 들 것이 아니라, 자신감 있게 역량을 집중한다면, 특정한 영역에서만큼은 한국이 동아시아를 이끄는 나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21세기가 문화권 중심의 시대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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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을 들뜨게 했던 올림픽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옆나라 중국에서 벌어진 이번 대회에서 한국대표 선수들은 금메달 13개, 종합 7위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특히 이번 되회에서는 세계 신기록을 들어올린 장미란 선수, 신세대 꽃미남으로 누나팬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박태환, 이용대 선수, 그리고 그동안의 부진을 떨치고 일본전과 쿠바전 승리를 이끈 이승엽 선수 등 많은 사람이 화제를 일으켰죠.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려보자면, 8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와 육상 100미터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한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가 특히 눈에 띕니다. 펠프스는 "요일도 모르고 수영만 한다"는 말로 유명한데, 이는 그가 얼마나 수영을 좋아하는지를 잘 말해준다고 하겠습니다. 볼트도 달리기를 잘할 뿐 아니라, 즐거운 태도로 달리는 선수로 유명합니다. 그는 100미터 결승에서 다른 선수보다 앞서자 팔을 거의 안흔들며 들어왔는데도 세계신기록을 달성했죠. 그가 "나는 꼭 1등을 할 뿐 아니라 세계 신기록을 세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뛰었다면 다른 사람보다 아무리 앞섰다고 해도 앞만 보고 달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즐겁게 운동하는 모습은 한국 선수에게서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 선수단이 "즐거움" 보다는 "투지"를 강조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겠죠. 또한 이러한 한국 선수단의 분위기는 늘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강조하는 한국 문화의 반영입니다. 한국인은 이처럼 언제나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그와 반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는 태도를 매우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한국인은 "열심히 일하는 민족"으로 인정되지만, "인생을 즐기는 민족"이라는 말은 듣지 못합니다.

제가 요즘 많이 생각하는 말은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즐기는 자는 고민하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 네 가지 유형 중,한국인은 전반적으로 노력하는자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인은 신체조건이 뛰어난 외국 선수도 투지로 이기고, 머리가 좋은 외국 학생도 밤샘 공부로 이겨냅니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에 기반한 성공"은 그 한계가 금방 드러난다는 점이지요. 한국 사회가 지금 겪는 전반적인 침체는 크게 봐서 이러한 노력형 사회가 겪는 한계라고 하겠습니다. 즉, 70-80년대는 노력하면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는데, 최근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경제 성장을 이루기 힘들게 된 것이지요.

많은 사람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더 많은 노력이라고 믿는 듯 합니다. 한국인이 과거보더 더 부유한 것은 사실인데, 노동시간은 더 늘어나는 기현상은 이러한 믿음 때문이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더 노력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한국 보다 1인당 소득이 두배 이상인데, 그렇다고 한국이 미국을 따라 잡기 위해 노동 시간을 두배 늘여야 합니까?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이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하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노동 시간을 늘이겠습니까?

한국인이 지금 걷는 중이라면, 앞으로는 뛰어가야 하고, 날아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즉, 지금까지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열심히 했다면,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즐기는 자의 삶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90년대에는 오히려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말에 외환위기를 겪고 난 후, 사람들은 "역시 우리가 믿을 것은 열심히 일하는 태도 뿐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요즘 젊은이들은 감히 기성세대의 뜻을 거스리며 자신의 갈 길을 개척하기 보다는, 모두가 옳다고 인정하는 길을 열심히 쫓아가려고 하는 듯 보입니다.

위에서 나온 "고민하는 자"는 시스템을 만드는 자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사실 고민은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뛰어난 사람은 하나의 행동이나 개인을 위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민하는 법이지요. 즉, 일과 조직의 밑바탕이 되는 철학을 만드는 사람이 진정으로 고민하는 자입니다. 누구나 알 듯 한국인은 빠르게 결과를 얻기 원합니다. 그래서 일의 밑바탕을 잘 마련하면서 차근차근 일하는 경우를 보기가 힘듭니다. 그 결과, 한국 기업의 노동자들은 고생도 많이 하고 노력도 많이 하지만, 결국은 체계를 잘 갖추고 일하는 외국 기업에게 밀리는 경우가 많죠. 물론 "외국 기업은 자본이 넉넉하기 때문에 체계를 갖출 수 있지만, 우리는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 큰 한국 기업을 봐도 기업철학이 부족한 경우는 많습니다. 즉, 자본의 부재가 문제가 아니라, 체계없이 일하는 문화가 문제인 것이지요.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완전히 선진국가로 다시 탄생하기 위해선 즐겁게 일하는 문화, 체계를 갖춰가며 일하는 문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과로를 통해 많은 일을 이룩하려는 노력은 조금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먼 훗날에나 이뤄질 일로 보이지만, 점차 한국의 문화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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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비디오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뷰 초기에 MBC의 특종 TV연예에 출연해서 공연하고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는 모습입니다. 이때 전문가로 나온 네 명은 "홀로 된다는 것"의 작곡가 하광훈, "타타타"의 작사가 양인자, MC 임백천, 그리고 전영록 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열심히 공연을 하고 각 사람의 평을 듣는데, 비디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두 시큰둥하거나 방송용 멘트만 할 뿐, 누구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좋아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평점을 공개하는데, 10점 만점에 7.8밖에 안되더군요.

하지만 젊은층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에 열광하였고, 서태지는 순식간에 초대형 스타로 성장해 버립니다. 그 후로도 서태지와 아이들은 2집 하여가, 3집 발해를 꿈꾸며, 4집 컴백홈을 연이어 내놓으며 90년대 한국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물론 서태지씨의 음악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난 알아요의 예를 들자면, 방송에 나온 하광훈의 말대로 멜로디가 약하고, 양인자의 말대로 가사가 참신하지 못합니다. 지금 인터넷에 는 서태지 음악에 대해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서태지씨가 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을 지배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미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정확이 읽었고, 그 흐름을 몇년 뒤 한국에 도입함으로써, 한국의 대중이 느끼기에는 상당히 신선하고 앞서가는 음악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를 "보따리상"이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국 대중 음악의 흐름을 흉내낸 가요를 만드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작업이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80년대 까지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의 미국 음악과 이문세, 현철 등의 한국 음악은 전혀 상관이 없이 발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서태지씨는 가요가 미국 음악의 흐름과 상관 없어도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미국 음악의 흐름을 소화해 한국식으로 소개하였던 것이지요.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90년대에 학교에 다닌 분들은 서태지가 음악에서부터 패션, 라이프 스타일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아실 것입니다. 이는 거의 60년대 영국에서 비틀즈가  행사한 영향력에 비견할만하다고 할 것입니다.

노동운동을 하던 시인 박노해씨는 감옥에 같혔을 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전율에 빠졌다"고 회고했습니다. 만약에 그가 전영록이나 하광훈 대신 방송에서 서태지를 평가했다면 10점 만점을 주고 최고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인인 그의 감성은 시대를 대변하는 서태지의 음악의 가치를 정확히 인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 전문가들은 그의 가치를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왜일까요?

어느 분야나 전문가는 그 분야의 전통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평가기준을 가지고 그 분야의 신인들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는 지점에서, 그들은 전통에 집착하다 새로운 흐름을 놓치게 됩니다. 서태지는 전문가가 보지 못한 시대의 흐름을 읽고 대중에게 직접 다가갔습니다. 그의 음악은 이른바 "전문가"가 보기에 별로였지만, 대중은 그의 음악에 열광했습니다.

문화를 크게 바꾸어 놓는 사람, 즉 문화혁명가는 전문가의 의견을 뛰어 넘습니다. 그는 전통속에서 자랐지만, 전통에 머무는 대신 전통을 뒤엎는 사람입니다. 그가 전통을 뒤엎는 이유는 이제 전통이 바뀔 시점이 되었고, 대중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전통을 뒤엎을 때, 전문가들은 그의 행동을 비난하고, 그를 나쁘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가 참된 개척자라면 그는 이러한 전문가의 반발을 이겨내고 대중에게 자신의 새로운 방향을 전달할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문화혁명가는

1. 자신이 속한 문화영역의 전통을 잘 알아야 하고,
2.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이 필요하고,
3. 전문가, 그리고 때로는 대중의 반발을 이겨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서태지씨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진정한 문화혁명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문가의 벽을 넘어 대중에게 다가왔고, 대중의 반응을 통해 90년대 한국의 청년 문화를 바꾸었죠. 이와 같은 거대한 문화의 변화는 기획사의 노력이 아닌, 용기 있는 문화혁명가 만이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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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는 9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를 주도한 문화 아이콘이다. 그가 처음 "난 알아요"를 들고 나왔을 때, 전문가들의 평은 차가왔지만 일반인은 열광했고, 그는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전문가들이 읽지 못한 대중문화의 변화를 읽었기에 전문가들의 벽을 넘어 대중과 직접 호흡했던 것이다. 그가 읽어낸 대중문화의 흐름은 발라드에 국한된 대중가요에 대한 식상이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미국에서 랩, 레게 등을 가져다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 대중은 자신들의 기호를 정확하게 읽고 이에 맞는 음악을 공급하는 서태지를 새로운 문화의 영웅으로 받아들였고, 서태지의 전설은 탄생하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15년이 된 올해도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심형래 감독은 2007년 여름 대중과 평론가 사이에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D-War를 내놓는다. 심형래 감독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기 원했고, 대중이 만족할만한 컴퓨터 그래픽을 담은 영화를 제공하기 원했다. 결국 800만명이 넘는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기에 대중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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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호의적이라 할만 했다. 그에 비해 평론가는 영화 문법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대중의 기호에 맞춘 이 영화를 깎아내렸고, 이 영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한 평론가의 평가가 곧 자신들의 기호에 대한 무시라고 생각하고 평론가들을 공격했다. 디워로 말미암아 디워빠와 디워까 간의 진짜 전쟁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런 상황만 놓고 본다면 서태지와 심형래는 비슷한 방식으로 문화를 바꾸어 놓은 듯 보인다. 서태지나 심형래나 전문가의 무시를 딛고 대중의 기호에 맞는 창작 활동을 하였고, 결국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하지만 보다 심층적으로 따져본다면 서태지와 심형래는 문화에 대해 전혀 다른 접근법을 보인다.

서태지는 타고난 음악가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시나위에서 음악활동을 했을 만큼 음악에 미친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음악의 문법과 관습, 전통에 대해 잘 알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능력이 있다. 말하자면, 그는 어떤 음악 전문가보다 더 음악을 잘 아는 전문가이다. 따라서 다른 음악 전문가가 그의 음악을 무시한 것은 서태지의 음악이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음악이 전문가들의 수준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심형래는 타고난 영화인은 아니다. 그는 원래 TV 코미디언이었고, 코미디의 영역 확장을 위해 코미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그는 영화의 문법과 관습, 전통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는 영화인으로 영화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가로 접근한다. 그가 주목한 사실은 헐리웃의 특수효과 회사들은 너무 많은 제작비를 요구하는데 비해, 그의 영구아트는 훨씬 싼 제작비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헐리웃에서 만드는 괴수 영화를 우리가 만들면, 제작비는 훨씬 적게 들면서도 대중에게는 비슷한 만족을 줄 수 있고, 따라서 거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처음에 그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만든 영화는 용가리였고, 용가리는 그리 좋은 평을 얻지 못한다. 두번째 시도는 디워이고, 디워는 최소한 한국에서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가 사업가로 영화에 접근하였기에, 영화 자체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서태지는 어느 정도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후에는 대중의 눈에서 사라져 조용히 살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계속 발전하는 중이다. 돈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진 지금, 그는 더 이상 대중을 만족 시킬 음악이 아닌, 자신의 음악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실험적 음악을 하기 원한다. 이는 그가 진정한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심형래는 앞으로도 제작비는 적고 관객수입은 많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영화는 사업을 위한 수단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태도가 잘못은 아니다. 사실 그는 언젠가 서태지가 꿈꾸지 못할 정도의 사업적 성공을 거둘지도 모른다. 또한 그의 영화가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다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그의 업적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영화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화라는 장르를 혁신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술의 혁신은 예술의 전통에 익숙한 내부자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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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비자금 의혹으로 사회가 들끓고 있습니다.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예상한 대로, 언론은 삼성의 비자금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떡검 명단"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른바 검찰을 희생양 삼아 삼성 구하기 작전이 펼쳐지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이 삼성의 죄는 미워도 삼성은 국가를 먹여 살리는 기업이니 덮고 넘어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삼성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삼성을 도와주는 것일까요?

우리나라 사람은 개인과 집단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한국인이 잘못을 저지르면 "한국인 모두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도 위축됩니다. 또한, 한국인은 사람과 직책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따라서 어떤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는 말과, 그 사람이 직책을 맡은 자로서 하는 말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한국인에게 개인은 집단의 일부이고, 집단을 대표하는 개인은 곧 그 집단인 것이지요.

삼성 비자금 의혹의 핵심에는 이건희 회장과 삼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의 실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삼성은 곧 이건희 회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건희 회장은 지금 삼성전자를 이끄는 기업인일 뿐, 엄밀히 말해 삼성과는 구분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삼성전자의 주가총액은 80조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의 총재산은 겨우 3조 원 미만입니다. 아들인 이재용 상무의 재산과 합해도 5조 원이 안됩니다. 그렇다면, 이건희 회장 일가의 재산을 다 합쳐도 10조 원도 넘기 어려울 것이고, 이 돈으로는 삼성그룹 전체는커녕, 삼성전자의 주식 중 10% 사기도 쉽지 않은 규모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건희 회장이 곧 삼성이고, 따라서 만약 삼성의 돈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자기 회사 돈을 자기가 따로 떼어낸 셈이니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움직이는 진정한 이유는 삼성전자의 최대주주가 삼성생명이고,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삼성 에버랜드인데, 이건희 회장이 에버랜드 최대 주주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아들 이재용 상무가 최대주주). 즉, 이른바 순환출자를 통해 작은 재산으로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에버랜드를 통한 경영권 승계가 중요했고, 그래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지요.

삼성이 국가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삼성의 경영진이 잘못한다면 잘못에 대해 지적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삼성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래야, 삼성이 진정한 세계 인류 기업이 될 테니까요. 우리 국민이 삼성의 이익과, 삼성 경영진의 이익을 구분할 수 있을 때, 삼성은 더욱 좋은 회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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