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랜드 에머릭 감독이 1996년에 만든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입니다. 지구를 점령하러 온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미국인들의 활약을 그린 이 영화는 예술적 가치를 찾기는 어렵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적인 미국인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정부를 영화의 중심부에 놓는다는 점에서 최근에 나온 외계인 소재 영화와 다릅니다. 정부가 영화의 중심이라면 영화는 사태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룰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개인의 이야기는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비해 2005년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외계인의 침공을 개인의 경험으로 축소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다릅니다. 2008년에 나온 맷 리브스 감독의 클로버필드는 아예 상황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를 완전히 배제한 채(우주 전쟁은 거시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나레이션 이라는 장치를 동원하지만, 클로버필드는 그러한 장치가 없죠), 주인공의 관점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외계인이 지구를 파괴하는 영화에서 외계인은 지구인의 적이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주 전쟁이나 클로버필드는 인류의 적인 외계인에 맞서 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화에서 주인공은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적에게서 도망가려고 노력하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그에 비하면 평범한 소시민부터 대통령까지 전투기를 몰고 출동해 외계인과 싸우는 인디펜던스 데이의 영웅주의(heroism)는 완전히 다른 시대의 정신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90년대까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세계적 재앙에서 인류를 구하는 것은 늘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국은 가장 위대한 나라이기에 세계를 지키는 중요한 임무도 당연히 미국인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지구로 다가오는 소행성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우주로 출동하는 1998년 작 아마겟돈은 이러한 태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죠. 물론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도 외계인을 무찌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국인들이 도맡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 미국은 외계인과 벌이는 전쟁에서 다른 나라들을 이끌고, 다른 나라들은 순순히 미국을 따릅니다. 이는 미국은 세계의 지도자이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지도력을 받아들이리라는 생각의 표현이죠.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9/11 사태에서 보듯 미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자신을 잃게 됩니다. 이제는 헐리우드에서 나온 영화에서조차 미국은 선의 화신이 아니라, 그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평범한 한 나라로 묘사됩니다. 미국과 아랍권의 충돌을 그린 2007년 작 The Kingdom에서 미군 병사들과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동일한 말로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은, 결국 이 분쟁에서 어느 한 쪽이 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2006년에 이오지마 전투를 두고 미국의 시각과 일본의 시각에서 각각 영화를 만들었는데(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이 영화들을 보면 미국이나 일본 어느 한 쪽의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리죠. 심지어 전통적인 관점에서 만든 마지막 대작 전쟁영화라고 할 수 있는 2001년 작 진주만(Pearl Harbor) 조차 일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즉, 이 영화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적을 악당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21세기의 새로운 태도에 가까운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인류가 다른 행성을 착취하는 정복자의 모습으로 나오는 아바타(Avatar)에 이르면 미국인의 자기부정이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죠.
미국이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포기하면서, 영화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역할을 맡는 국가나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우주 전쟁에서 외계인은 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패배하고, 클로버필드는 외계인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지 패배하는지를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인류가 집단적으로 눈이 머는 상황을 그린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는 이러한 위기에서 인류를 구해내려는 노력을 다루지 않고, 인류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점차 시력을 회복하면서 영화가 끝나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가장 미국인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잘 반영한 인디펜던스 데이를 만든 롤랜드 에머릭 감독이 미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인디펜던스 데이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그가 고질라에서 핵실험이 낳는 재앙에 대해 다루었고,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에서 지구 온난화를 방치한 미국 정부의 잘못으로 환경재앙이 닥치는 모습을 그리는 등 liberal한 정치색을 보인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투모로우는 영화의 중심에 정부가 아닌 가족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개인들을 두었다는 점에서도 인디펜던스 데이와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죠. 그가 최근에 만든 2012에서 미국 중심의 영웅주의에서 얼마나 멀어진 모습을 보였는지 궁금해집니다.
미국인들이 집단적으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고, 거시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조차 자신감을 잃고 애매하게 끝을 맺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21세기에 가장 성공적인 슈퍼영웅 프랜차이즈라고 할 수 있는 배트맨에서 배트맨은 검은 옷을 입고 밤에만 활동하는 어두운 영웅일 뿐 아니라, 다크 나이트에선 대의를 위해 대중에게 거짓말을 하는 도덕적으로 애매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는 과거의 슈퍼영웅 영화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죠. 결국,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이상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은 계속 자신 없고, 연약하며, 도덕적으로 모호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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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정부를 영화의 중심부에 놓는다는 점에서 최근에 나온 외계인 소재 영화와 다릅니다. 정부가 영화의 중심이라면 영화는 사태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룰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개인의 이야기는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비해 2005년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외계인의 침공을 개인의 경험으로 축소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다릅니다. 2008년에 나온 맷 리브스 감독의 클로버필드는 아예 상황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를 완전히 배제한 채(우주 전쟁은 거시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나레이션 이라는 장치를 동원하지만, 클로버필드는 그러한 장치가 없죠), 주인공의 관점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외계인이 지구를 파괴하는 영화에서 외계인은 지구인의 적이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주 전쟁이나 클로버필드는 인류의 적인 외계인에 맞서 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화에서 주인공은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적에게서 도망가려고 노력하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그에 비하면 평범한 소시민부터 대통령까지 전투기를 몰고 출동해 외계인과 싸우는 인디펜던스 데이의 영웅주의(heroism)는 완전히 다른 시대의 정신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90년대까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세계적 재앙에서 인류를 구하는 것은 늘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국은 가장 위대한 나라이기에 세계를 지키는 중요한 임무도 당연히 미국인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지구로 다가오는 소행성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우주로 출동하는 1998년 작 아마겟돈은 이러한 태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죠. 물론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도 외계인을 무찌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국인들이 도맡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 미국은 외계인과 벌이는 전쟁에서 다른 나라들을 이끌고, 다른 나라들은 순순히 미국을 따릅니다. 이는 미국은 세계의 지도자이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지도력을 받아들이리라는 생각의 표현이죠.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9/11 사태에서 보듯 미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자신을 잃게 됩니다. 이제는 헐리우드에서 나온 영화에서조차 미국은 선의 화신이 아니라, 그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평범한 한 나라로 묘사됩니다. 미국과 아랍권의 충돌을 그린 2007년 작 The Kingdom에서 미군 병사들과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동일한 말로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은, 결국 이 분쟁에서 어느 한 쪽이 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2006년에 이오지마 전투를 두고 미국의 시각과 일본의 시각에서 각각 영화를 만들었는데(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이 영화들을 보면 미국이나 일본 어느 한 쪽의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리죠. 심지어 전통적인 관점에서 만든 마지막 대작 전쟁영화라고 할 수 있는 2001년 작 진주만(Pearl Harbor) 조차 일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즉, 이 영화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적을 악당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21세기의 새로운 태도에 가까운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인류가 다른 행성을 착취하는 정복자의 모습으로 나오는 아바타(Avatar)에 이르면 미국인의 자기부정이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죠.
미국이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포기하면서, 영화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역할을 맡는 국가나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우주 전쟁에서 외계인은 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패배하고, 클로버필드는 외계인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지 패배하는지를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인류가 집단적으로 눈이 머는 상황을 그린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는 이러한 위기에서 인류를 구해내려는 노력을 다루지 않고, 인류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점차 시력을 회복하면서 영화가 끝나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가장 미국인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잘 반영한 인디펜던스 데이를 만든 롤랜드 에머릭 감독이 미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인디펜던스 데이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그가 고질라에서 핵실험이 낳는 재앙에 대해 다루었고,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에서 지구 온난화를 방치한 미국 정부의 잘못으로 환경재앙이 닥치는 모습을 그리는 등 liberal한 정치색을 보인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투모로우는 영화의 중심에 정부가 아닌 가족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개인들을 두었다는 점에서도 인디펜던스 데이와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죠. 그가 최근에 만든 2012에서 미국 중심의 영웅주의에서 얼마나 멀어진 모습을 보였는지 궁금해집니다.
미국인들이 집단적으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고, 거시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조차 자신감을 잃고 애매하게 끝을 맺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21세기에 가장 성공적인 슈퍼영웅 프랜차이즈라고 할 수 있는 배트맨에서 배트맨은 검은 옷을 입고 밤에만 활동하는 어두운 영웅일 뿐 아니라, 다크 나이트에선 대의를 위해 대중에게 거짓말을 하는 도덕적으로 애매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는 과거의 슈퍼영웅 영화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죠. 결국,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이상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은 계속 자신 없고, 연약하며, 도덕적으로 모호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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