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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2 미국의 변화 (2)
  2. 2009/10/18 케빈 코스트너는 왜 인기를 잃었는가? (1)
  3. 2009/08/20 영화 산업의 부활 (3)

미국의 변화

사회 2010/01/12 23:20
롤랜드 에머릭 감독이 1996년에 만든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입니다. 지구를 점령하러 온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미국인들의 활약을 그린 이 영화는 예술적 가치를 찾기는 어렵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적인 미국인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영화라고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정부를 영화의 중심부에 놓는다는 점에서 최근에 나온 외계인 소재 영화와 다릅니다. 정부가 영화의 중심이라면 영화는 사태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룰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개인의 이야기는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비해 2005년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외계인의 침공을 개인의 경험으로 축소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다릅니다. 2008년에 나온 맷 리브스 감독의 클로버필드는 아예 상황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를 완전히 배제한 채(우주 전쟁은 거시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나레이션 이라는 장치를 동원하지만, 클로버필드는 그러한 장치가 없죠), 주인공의 관점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물론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외계인이 지구를 파괴하는 영화에서 외계인은 지구인의 적이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주 전쟁이나 클로버필드는 인류의 적인 외계인에 맞서 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화에서 주인공은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적에게서 도망가려고 노력하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그에 비하면 평범한 소시민부터 대통령까지 전투기를 몰고 출동해 외계인과 싸우는 인디펜던스 데이의 영웅주의(heroism)는 완전히 다른 시대의 정신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90년대까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세계적 재앙에서 인류를 구하는 것은 늘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국은 가장 위대한 나라이기에 세계를 지키는 중요한 임무도 당연히 미국인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지구로 다가오는 소행성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인들이 우주로 출동하는 1998년 작 아마겟돈은 이러한 태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죠. 물론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도 외계인을 무찌르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은 미국인들이 도맡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 미국은 외계인과 벌이는 전쟁에서 다른 나라들을 이끌고, 다른 나라들은 순순히 미국을 따릅니다. 이는 미국은 세계의 지도자이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지도력을 받아들이리라는 생각의 표현이죠.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9/11 사태에서 보듯 미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자신을 잃게 됩니다. 이제는 헐리우드에서 나온 영화에서조차 미국은 선의 화신이 아니라, 그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평범한 한 나라로 묘사됩니다. 미국과 아랍권의 충돌을 그린 2007년 작 The Kingdom에서 미군 병사들과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동일한 말로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은, 결국 이 분쟁에서 어느 한 쪽이 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2006년에 이오지마 전투를 두고 미국의 시각과 일본의 시각에서 각각 영화를 만들었는데(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이 영화들을 보면 미국이나 일본 어느 한 쪽의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싸우는 인간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리죠. 심지어 전통적인 관점에서 만든 마지막 대작 전쟁영화라고 할 수 있는 2001년 작 진주만(Pearl Harbor) 조차 일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즉, 이 영화는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적을 악당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21세기의 새로운 태도에 가까운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인류가 다른 행성을 착취하는 정복자의 모습으로 나오는 아바타(Avatar)에 이르면 미국인의 자기부정이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죠.

 미국이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포기하면서, 영화 속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역할을 맡는 국가나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우주 전쟁에서 외계인은 인간의 노력과 상관없이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패배하고, 클로버필드는 외계인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지 패배하는지를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인류가 집단적으로 눈이 머는 상황을 그린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는 이러한 위기에서 인류를 구해내려는 노력을 다루지 않고, 인류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점차 시력을 회복하면서 영화가 끝나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가장 미국인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잘 반영한 인디펜던스 데이를 만든 롤랜드 에머릭 감독이 미국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인디펜던스 데이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그가 고질라에서 핵실험이 낳는 재앙에 대해 다루었고,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에서 지구 온난화를 방치한 미국 정부의 잘못으로 환경재앙이 닥치는 모습을 그리는 등 liberal한 정치색을 보인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투모로우는 영화의 중심에 정부가 아닌 가족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개인들을 두었다는 점에서도 인디펜던스 데이와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죠. 그가 최근에 만든 2012에서 미국 중심의 영웅주의에서 얼마나 멀어진 모습을 보였는지 궁금해집니다.

미국인들이 집단적으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고, 거시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 블록버스터 영화들조차 자신감을 잃고 애매하게 끝을 맺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21세기에 가장 성공적인 슈퍼영웅 프랜차이즈라고 할 수 있는 배트맨에서 배트맨은 검은 옷을 입고 밤에만 활동하는 어두운 영웅일 뿐 아니라, 다크 나이트에선 대의를 위해 대중에게 거짓말을 하는 도덕적으로 애매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는 과거의 슈퍼영웅 영화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죠. 결국,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이상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은 계속 자신 없고, 연약하며, 도덕적으로 모호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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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케빈 코스트너는 8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수많은 히트 영화의 주연을 맡은 인기 배우였습니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였을 뿐 아니라 늑대와 춤을(Dancing with the Wolves)이라는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맡을 만큼 재능 있는 영화인이었죠.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로 그의 인기는 하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은 왕년의 스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톰 크루즈가 아직도 세계적인 스타로 군림한다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그의 인기하락은 많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케빈 코스트너가 인기를 끌었던 원인은 그가 헨리 폰다나 그레고리 펙처럼 미국인의 긍정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은 언터처블(The Untouchables), 꿈의 구장(Field of Dreams), 보디가드(The Bodyguard) 등에서 양심적이고, 예의 바르고, 정의를 추구하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무력을 쓰는 케빈 코스트너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인의 모습을 발견했고, 그에게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1993년에 나온 퍼펙트 월드(Perfect World)를 기점으로 그는 훨씬 어둡고 복잡한 인물을 연기하기 시작합니다. 클린턴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이 영화에서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범죄자로 나옵니다. 물론 그가 유괴한 아이와 애정의 관계를 맺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이 전형적인 악당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블록버스터 주연을 맡던 배우의 배역치고는 지나치게 어둡고 폭력적이었죠. 1995년에 나온 워터월드(Waterworld)는 코스트너의 변신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입니다. 육지가 거의 사라진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케빈 코스트너는 매우 차갑고 계산적인 인물을 연기합니다. 그는 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죽일 생각을 하고, 아이를 보호하는 여자를 학대합니다. 물론 나중엔 여자와 아이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이러한 변화는 너무 늦게 나오기에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가 극 중간까지 보인 차가운 인물의 이미지를 떨쳐내기 힘들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의 선한 이미지를 버리고 차갑고 어두운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흥행배우로서 그의 가치는 크게 손상됩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한 모습은 약자를 보호하고 악당을 징벌하는 정의의 심판자인데, 그는 지나치게 어둡고(Mr. Brooks에서 그는 살인충동에 시달리는 역할로 나옵니다), 약자를 보호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며(Open Range에서 그는 총에 맞아 쓰러진 적을 죽이겠다고 달려들다가 주변 사람의 만류로 포기합니다. 도덕심이 보통사람만도 못한 것이죠), 때로는 완전히 악의 편에 서기도 하니(3000 Miles to Graceland에서 그는 악당을 등치는 악당으로 나옵니다) 대중이 그가 나오는 작품을 외면한 것은 당연했죠.

지난 10년간 그가 나온 영화 중 그나마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는 Thirteen Days를 들 수 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는데, 정치적 판단력이 매우 뛰어나면서도 가정을 걱정하는 마음이 끔찍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그가 이 영화의 흥행성공을 결정지었다고 말하기는 무리지만, 어쨌든 그가 과거에 보여주었던 선한 주인공의 이미지를 다시 보인 영화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케빈 코스트너의 문제는 그가 어두운 역할을 주로 맡는다는 점이 아니라, 그가 어두운 역할을 맡을 때 무언가 어색하다는 점입니다. 톰 크루즈는 매그놀리아나 Tropic Thunder 등에서 전혀 블록버스터 주인공 같지 않은 어둡고 기괴한 역할을 맡아도 나름대로 잘 어울립니다. 이는 아마도 톰 크루즈라는 사람 자체가 기괴하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에 비해 케빈 코스트너는 어떤 역할을 맡아도 무언가 착한 면이 숨어 있는 듯이 보이고, 따라서 그가 영화 초반에 조금 삐딱하게 나와도 "저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착한 사람으로 돌아올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죠. 이러한 기대가 이루어지려면 처음에 보이는 불량한 모습이 어느 수준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퍼팩트 월드에서 다른 탈옥수를 죽이는 장면이나 Open Range에서 어린 동료를 발로 차 물에 빠뜨리는 장면은 그러한 수준을 넘어서기에 매우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이러한 장면이 나오고, 나중에도 주인공의 삶이 대단히 변하지 않는다면 관객은 실망하고 속았다고 느끼기 마련입니다.

케빈 코스트너는 1997년 에어포스 원의 주연을 맡을 예정이었는데, 자신의 두 번째 연출작 포스트맨을 만들기 위해 이 역할을 포기합니다. 결국, 이 영화의 주연은 해리슨 포드가 맡았고, 이 영화는 대 히트를 기록했죠. 그가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작품을 포기하고, 암울한 인류 종말상황을 그린 영화를 만든 것은, 과거와 같은 대중적인 작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의 반영으로 보입니다(결국, 포스트맨은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그의 인기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하락합니다). 그는 또한 속편을 만들지 않는 배우로 유명한데, 이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제작과 주연을 맡아 큰 성공을 거둔 톰 크루즈와 비교되는 태도입니다.

결론적으로, 케빈 코스트너는 나름대로 주관을 갖고 새로운 방향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러한 영화에서 그가 보인 이미지는 대중의 기대와 너무도 달랐기에 갈수록 대중에게서 외면을 당한 것입니다. 하긴 존 웨인처럼 대중이 사랑하는 배우도 추격자(The Searchers)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내뱉는 어두운 역할을 맡았다가 흥행에 실패했으니, 대중의 기대에 어긋나는 어두운 역할만 계속 맡는 배우가 인기를 잃는 것은 당연하겠죠. 하지만, 케빈 코스트너는 최근에도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는 등 영화에 대한 애정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좋은 영화를 내놓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부디 이 재능있는 배우가 그냥 그저 그런 배우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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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영화 산업의 부활

문화 2009/08/20 06:53
이탈리아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만든 Nuovo Cinema Paradiso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입니다. 한국에도 "시네마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고, 특히 극 중에 흐르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선율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2차대전 직후 영화관에 모인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영화를 즐기는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전쟁으로 황폐해진 이탈리아에서 영화는 사람들이 삶의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죠. 게다가 40년대부터 60년대까지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페데리코 펠리니 등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명작을 쏟아내던 시기라 질적으로 봐도 이탈리아 영화의 황금기라고 할만 하죠.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 TV가 보급되면서 영화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시네마 천국은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주인공이 추억을 찾아 영화관에 들어갔을 때 보이는 애로 영화 포스터는, 영화관이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으로 추구했던 생존전략이 무엇인지 보여주죠.

실제로 이 영화가 개봉된 1988년은 영화의 미래가 매우 불투명하던 시기였습니다. 모든 가정에 보급된 칼러 TV 덕분에 사람들은 집에서 생생한 화면을 즐길 수 있었고, 게다가 비디오가 대중화하면서 힘들게 영화관에 가서 많은 돈을 들여 영화를 보는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겪고 난 영화산업은 9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 활기를 되찾았고, 지금은 영상시대를 맞아 새로운 부흥기를 맞은 듯 보입니다. 과연 영화산업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19세기 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으로 영화를 발명한 이래로, 영화의 매력은 "신기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상영한 영화의 제목을 보면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46초), "금붕어 낚시"(42초), "아기의 아침식사"(41초)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담은 내용이지만, 이러한 내용이 필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화면에 비치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신기했죠. 게다가 영화가 발전하면서 매우 잘생긴 배우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극적으로 사는 모습을 화면에 보여주었기에, 영화를 보는 일은 매우 색다른 체험이었습니다.

하지만, TV가 보급되어 집에서 TV를 볼 수 있게 되자 영화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던 신기한 영상을 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특히 TV산업이 발달하면서 TV용 드라마도 영화에 못지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공짜로 볼 수 있는 내용을 영화관에서 돈 내고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었죠.

이러한 상황은 1977년 조지 루커스가 스타워즈를 발표하면서 점차 바뀌게 됩니다. 스타워즈 이전의 영화는 사랑, 이별, 가족 등 삶을 다루는 영화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일상의 삶과 다르게 매우 극적이었지만, 소제 자체는 평범한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죠. 하지만, 스타워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영화 제작자들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보고 싶은 모습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전까지 이러한 주제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감히 만들려는 사람이 없었지만, 스타워즈의 성공은 "많은 돈을 들이더라도 엄청난 인기를 끌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이는 곧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조스(1975)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는 조지 루커스와 함께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연 장본인입니다. 그가 감독하거나 제작한 영화는 지구에 온 외계인(미지와의 조우, ET), 현대에 되살아난 공룡(쥐라기 공원),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AI), 시간여행(백투더퓨쳐), 상상의 생명체(그램린) 등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소재를 다룬 경우가 많죠. 그런데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작은 화면으로 이러한 영화를 보면 "나는 가짜로 만든 영화를 보는 중이다."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렵고, 따라서 영화를 즐기는 재미가 떨어지죠. 그에 비해 극장이라는 낯설고 어두운 공간에서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크기의 스크린 앞에 앉아 박진감 넘치는 효과음을 듣노라면, 마치 내가 정말 환상의 세계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즉, 평범한 소재의 영상은 TV로 보나 영화관에서 보나 큰 차이가 없지만, 환상적인 소재의 영상을 보려면 영화관에 가야 하죠. 그래서 관객들은 환상적인 소재의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몰려들었고, 이러한 경향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는 환상적인 소재의 영화가 시리즈(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등)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계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너무 대박을 낼 수 있는 환상적인 소재의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데 집중하다 보니,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가 흥행에 실패하면 타격이 크기 때문이죠. 실제로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출자해 만든 드림웍스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아일랜드의 흥행 실패가 결정타로 작용해 결국 유니버설에 넘어갔습니다. 조지 루커스도 "제작비가 많이 드는 영화는 위험하다."며 스타워즈 시리즈를 영화가 아닌 TV로 만드는 중입니다. 블록버스터로 재기에 성공한 영화산업이 블록버스터의 위험성을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하겠습니다.

영화 산업도 이발소나 마찬가지로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정체성을 새롭게 찾지 않으면 도태하고 맙니다. 또한, 어제 영화 산업을 구한 방법이 오늘은 영화 산업을 망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죠.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관찰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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