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비디오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뷰 초기에 MBC의 특종 TV연예에 출연해서 공연하고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는 모습입니다. 이때 전문가로 나온 네 명은 "홀로 된다는 것"의 작곡가 하광훈, "타타타"의 작사가 양인자, MC 임백천, 그리고 전영록 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열심히 공연을 하고 각 사람의 평을 듣는데, 비디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두 시큰둥하거나 방송용 멘트만 할 뿐, 누구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좋아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결국 평점을 공개하는데, 10점 만점에 7.8밖에 안되더군요.

하지만 젊은층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에 열광하였고, 서태지는 순식간에 초대형 스타로 성장해 버립니다. 그 후로도 서태지와 아이들은 2집 하여가, 3집 발해를 꿈꾸며, 4집 컴백홈을 연이어 내놓으며 90년대 한국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물론 서태지씨의 음악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난 알아요의 예를 들자면, 방송에 나온 하광훈의 말대로 멜로디가 약하고, 양인자의 말대로 가사가 참신하지 못합니다. 지금 인터넷에 는 서태지 음악에 대해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서태지씨가 90년대 한국의 대중음악을 지배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미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정확이 읽었고, 그 흐름을 몇년 뒤 한국에 도입함으로써, 한국의 대중이 느끼기에는 상당히 신선하고 앞서가는 음악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일부에서는 그를 "보따리상"이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국 대중 음악의 흐름을 흉내낸 가요를 만드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작업이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80년대 까지 마이클 잭슨, 마돈나 등의 미국 음악과 이문세, 현철 등의 한국 음악은 전혀 상관이 없이 발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서태지씨는 가요가 미국 음악의 흐름과 상관 없어도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미국 음악의 흐름을 소화해 한국식으로 소개하였던 것이지요.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90년대에 학교에 다닌 분들은 서태지가 음악에서부터 패션, 라이프 스타일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아실 것입니다. 이는 거의 60년대 영국에서 비틀즈가  행사한 영향력에 비견할만하다고 할 것입니다.

노동운동을 하던 시인 박노해씨는 감옥에 같혔을 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전율에 빠졌다"고 회고했습니다. 만약에 그가 전영록이나 하광훈 대신 방송에서 서태지를 평가했다면 10점 만점을 주고 최고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인인 그의 감성은 시대를 대변하는 서태지의 음악의 가치를 정확히 인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음악 전문가들은 그의 가치를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는 왜일까요?

어느 분야나 전문가는 그 분야의 전통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평가기준을 가지고 그 분야의 신인들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는 지점에서, 그들은 전통에 집착하다 새로운 흐름을 놓치게 됩니다. 서태지는 전문가가 보지 못한 시대의 흐름을 읽고 대중에게 직접 다가갔습니다. 그의 음악은 이른바 "전문가"가 보기에 별로였지만, 대중은 그의 음악에 열광했습니다.

문화를 크게 바꾸어 놓는 사람, 즉 문화혁명가는 전문가의 의견을 뛰어 넘습니다. 그는 전통속에서 자랐지만, 전통에 머무는 대신 전통을 뒤엎는 사람입니다. 그가 전통을 뒤엎는 이유는 이제 전통이 바뀔 시점이 되었고, 대중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전통을 뒤엎을 때, 전문가들은 그의 행동을 비난하고, 그를 나쁘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가 참된 개척자라면 그는 이러한 전문가의 반발을 이겨내고 대중에게 자신의 새로운 방향을 전달할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문화혁명가는

1. 자신이 속한 문화영역의 전통을 잘 알아야 하고,
2.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이 필요하고,
3. 전문가, 그리고 때로는 대중의 반발을 이겨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서태지씨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진정한 문화혁명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전문가의 벽을 넘어 대중에게 다가왔고, 대중의 반응을 통해 90년대 한국의 청년 문화를 바꾸었죠. 이와 같은 거대한 문화의 변화는 기획사의 노력이 아닌, 용기 있는 문화혁명가 만이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태지는 9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를 주도한 문화 아이콘이다. 그가 처음 "난 알아요"를 들고 나왔을 때, 전문가들의 평은 차가왔지만 일반인은 열광했고, 그는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전문가들이 읽지 못한 대중문화의 변화를 읽었기에 전문가들의 벽을 넘어 대중과 직접 호흡했던 것이다. 그가 읽어낸 대중문화의 흐름은 발라드에 국한된 대중가요에 대한 식상이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미국에서 랩, 레게 등을 가져다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 대중은 자신들의 기호를 정확하게 읽고 이에 맞는 음악을 공급하는 서태지를 새로운 문화의 영웅으로 받아들였고, 서태지의 전설은 탄생하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15년이 된 올해도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심형래 감독은 2007년 여름 대중과 평론가 사이에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D-War를 내놓는다. 심형래 감독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기 원했고, 대중이 만족할만한 컴퓨터 그래픽을 담은 영화를 제공하기 원했다. 결국 800만명이 넘는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기에 대중의 반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은 호의적이라 할만 했다. 그에 비해 평론가는 영화 문법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대중의 기호에 맞춘 이 영화를 깎아내렸고, 이 영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한 평론가의 평가가 곧 자신들의 기호에 대한 무시라고 생각하고 평론가들을 공격했다. 디워로 말미암아 디워빠와 디워까 간의 진짜 전쟁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런 상황만 놓고 본다면 서태지와 심형래는 비슷한 방식으로 문화를 바꾸어 놓은 듯 보인다. 서태지나 심형래나 전문가의 무시를 딛고 대중의 기호에 맞는 창작 활동을 하였고, 결국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내었다. 하지만 보다 심층적으로 따져본다면 서태지와 심형래는 문화에 대해 전혀 다른 접근법을 보인다.

서태지는 타고난 음악가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시나위에서 음악활동을 했을 만큼 음악에 미친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음악의 문법과 관습, 전통에 대해 잘 알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소화할 능력이 있다. 말하자면, 그는 어떤 음악 전문가보다 더 음악을 잘 아는 전문가이다. 따라서 다른 음악 전문가가 그의 음악을 무시한 것은 서태지의 음악이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음악이 전문가들의 수준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심형래는 타고난 영화인은 아니다. 그는 원래 TV 코미디언이었고, 코미디의 영역 확장을 위해 코미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그는 영화의 문법과 관습, 전통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는 영화인으로 영화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가로 접근한다. 그가 주목한 사실은 헐리웃의 특수효과 회사들은 너무 많은 제작비를 요구하는데 비해, 그의 영구아트는 훨씬 싼 제작비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헐리웃에서 만드는 괴수 영화를 우리가 만들면, 제작비는 훨씬 적게 들면서도 대중에게는 비슷한 만족을 줄 수 있고, 따라서 거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처음에 그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만든 영화는 용가리였고, 용가리는 그리 좋은 평을 얻지 못한다. 두번째 시도는 디워이고, 디워는 최소한 한국에서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가 사업가로 영화에 접근하였기에, 영화 자체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서태지는 어느 정도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후에는 대중의 눈에서 사라져 조용히 살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계속 발전하는 중이다. 돈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진 지금, 그는 더 이상 대중을 만족 시킬 음악이 아닌, 자신의 음악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실험적 음악을 하기 원한다. 이는 그가 진정한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심형래는 앞으로도 제작비는 적고 관객수입은 많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영화는 사업을 위한 수단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태도가 잘못은 아니다. 사실 그는 언젠가 서태지가 꿈꾸지 못할 정도의 사업적 성공을 거둘지도 모른다. 또한 그의 영화가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다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그의 업적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영화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화라는 장르를 혁신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술의 혁신은 예술의 전통에 익숙한 내부자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