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미국인은 선과 악을 뚜렷이 구분하고, 선이 무력으로 악을 응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미국인의 세계관은 잔인한 인디언에 맞서 싸우는 서부 개척자들, 악랄한 나치를 무찌르는 미국군 등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잘 드러나죠. 하지만, 베트남전을 겪으면서 미국인들은 선과 악의 분명한 구분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고, 이러한 고민은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으로 이어지면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과거에 대한 반성을 낳았는데, "무고한 백인 개척자를 공격하는 인디언"이 사실은 "자신의 땅에 침범한 적을 내쫒기 위해 사투를 벌인 피해자"라는 새로운 역사적 인식도 이러한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미국인들이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해 생각을 바꾸면서, 미국인들이 만드는 영화도 새로운 세계관을 반영하게 됩니다. 따라서 요즘 나오는 미국 영화에서는 과거 리셀 웨폰의 멜 깁슨이나 다이 하드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화끈하게 악당을 무찌르는 정의의 주인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21세기를 대표하는 슈퍼영웅 배트맨은 검은색 복장을 입고 밤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등 어두운 면을 특징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밝은 이미지만 강조하는 전통적인 슈퍼영웅(대표적인 예가 슈퍼맨)과 차별된 점을 보입니다. 아이언맨은 "악의 세력과 대항해 싸우는" 미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자신의 사업이 얼마나 비도덕적인가를 깨닫고 업종전환을 꿈꿉니다. 헐크는 주인공의 억눌려진 원초적 욕망의 표현이기에, 헐크의 행동은 늘 선과 악의 혼합일 수밖에 없습니다. 벤 애플릭의 감독 데뷔작 Gone Baby Gone은 아동납치라는 주제를 통해 "정의의 집행에 따르는 부정적인 결과를 생각한다면, 정의의 구현이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클로버필드와 우주 전쟁(The War of Worlds)은 외계인의 지구침공을 다루었는데, 주인공들이 적과 싸우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를 보호하는데 그칩니다. 어차피 거대한 악은 내가 나서봤자 해결이 되지 않으니 내 주변사람이나 보호하자는 태도죠. 이러한 영화에서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처단하는 과거의 영웅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할리우드 주류영화가 전통적인 미국인의 변화한 가치관을 반영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 비해, 프랑스 출신의 뤽 베송은 여전히 선악의 구분이 분명한 영화를 만들어냅니다. 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트랜스포터 시리즈는 주인공이 멋있는 자동차를 몰며 악당을 때려눕히는 뻔한 줄거리로 나름대로 많은 팬을 확보하였습니다. 그가 각본과 프로듀싱으로 참여한 테이큰(Taken)은 단순한 선악 구도를 바탕으로 악을 응징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리암 니슨은 딸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는 절대 선이고, 그의 딸을 납치한 범죄자들은 절대 악입니다. 리암 니슨은 단지 딸을 찾을 뿐 아니라 악을 응징하는데, 이는 만나는 모든 악당을 죽이는 것을 뜻합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딸을 인질로 잡은 아랍인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총으로 죽인 것은, "말이 필요없다."는 뜻입니다. 말을 하고, 협상을 하다 보면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악당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지금 죽여버리는 것이지요. 이 영화는 선과 악의 경계가 너무도 분명하기에 범죄자에 대한 잔혹 행위까지 정당하게 보입니다.

이 영화가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반영한 또 다른 예는 악당이 모두 외국인이라는 점입니다. 주인공의 딸을 납치한 이들은 알바니아인이고, 부패한 경찰은 프랑스인, 그리고 납치된 처녀를 사들이는 사람은 아랍인입니다. 사실 나와 외모가 비슷하고, 같은 지역에서 같은 언어를 쓰며 사는 사람을 절대적인 악당으로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낯선 외모에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은 악당으로 상상하기가 훨씬 쉽죠. 문제는 이렇게 외국인을 악당으로 묘사한다면, 인간의 본능적인 공격성이 걷잡을 수 없이 표출되면서 매우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요즘 미국 영화는 외국인조차 함부로 "절대 악"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중동문제를 다룬 The Kingdom이 그러한 예인데, 이 영화는 모슬렘 테러리스트 세력을 소탕하는 줄거리를 담았으면서도, "결국 그들이나 우리나 복수를 원한다는 점에서 같지 않나?"라는 질문을 던짐으로 외국인을 적대시하는 태도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죠. 그에 비해 테이큰의 주인공은 "이 나쁜 외국 놈들을 깡그리 죽여버림으로 복수하겠다"는 식으로 단순 과격한 태도를 보임으로 관객 속에 잠자던 공격성을 일깨웁니다.

영국의 영화평론가 Chris Tookey에 따르면 이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10점 만점에 3.25점을 얻었는데, IMDB.com의 평점은 10점 만점에 7.9점입니다. 즉, 평론가들의 반응은 차가웠지만 관객(특히 젊은 남성관객)에게는 확실한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죠. 이처럼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덕분에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2억 2천만 달러나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고 앞으로도 이러한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의 주류로 자리 잡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미국인들은 전통적인 세계관의 문제점을 직접 목격하며 자발적으로 전통적인 선악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관점을 버렸기에, 이러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 이상 과거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장기적인 인기를 끌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테이큰이 생뚱맞게 20세기 미국인의 세계관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프랑스인들(프로듀서 뤽 베송과 감독 피에르 모렐이)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은 역사적인 원인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길 꺼리지만, 프랑스인은 그러한 금기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영화를 만들 수 있죠. 단순한 대결 구도를 바탕으로 한 폭력성을 코믹한 수준까지 밀어붙인 Hot Fuzz가 영국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즉, 20세기 중반까진 유럽 영화가 미국 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이제는 미국 영화가 유럽 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입니다.

미국 영화가 보이는 선악에 대한 고민의 모습은 단순한 미국문화가 좀 더 복잡해지는 중이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 대외관계에서 많은 실패를 맛본 미국이 이제 좀 더 성숙하고 현실에 걸맞은 생각을 하는 국가로 변화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P.S. 내일 밀라노로 출발해 열흘 후에 돌아옵니다. 가서도 가능하다면 블로그에 글을 하나쯤 올리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일정이 워낙 바빠 글이 자주 못나옴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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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pt Doctor

문화 2009/08/21 06:52
요즘 저는 휴가를 맞아 비디오를 보며 느긋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디즈니의 고전 만화영화 피노키오를 봤습니다. 옛날에 이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 그런지 크게 재미는 없었지만, 손으로 정성스럽게 그려낸 흔적에서 정성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아마 피노키오를 본 적이 없는 분이라도 "When you wish upon a star"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주제가는 지금도 디즈니사의 상징으로 자주 쓰이기 때문이죠. 이 주제가는 극 중 지미니 크리켓이라는 귀뚜라미가 부릅니다. 지미니 크리켓은 피노키오의 친구로, 그를 유혹에서 건져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작품 해설을 들으니 지미니 크리켓은 디즈니가 피노키오를 만드는 과정에서 늦게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탈리아의 카를로 콜로디가 쓴 피노키오의 모험(Le avventure di Pinocchio)에서 따왔습니다. 그런데 피노키오를 만화영화로 만들려고 하니 원작에 나온 말썽꾸러기 피노키오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스토리 전개가 어려웠죠. 그래서 디즈니는 중간에 작품 개발을 중단하고 처음부터 다시 스토리를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작에서는 매우 작은 역할만 하는 귀뚜라미를 인물로 격상하게 됩니다. 귀뚜라미에게 웃음을 일으키는 역할을 맡기면 피노키오는 순진한 어린이 역할만 할 수 있기에 관객이 피노키오를 받아들이기가 쉬웠고, 귀뚜라미가 피노키오에게 유혹에 빠지지 말도록 설득하는 장면을 넣어 영화를 보는 아이들에게 교훈을 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귀뚜라미가 주제가를 부르게 함으로 극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도 맡길 수 있었죠(피노키오는 이 주제가를 부르기에 너무 어렸고, 제페토 할아버지는 너무 나이가 많았죠). 결국, 지미니 크리켓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것이 피노키오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영화가 되는데 중요한 이바지를 했다고 할 수 있죠.

보통 초기 단계의 대본은 영화로 만들기엔 무언가 아쉬운 상태입니다. 매력적인 등장인물, 흥미로운 줄거리에도 어딘가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이런 대본을 손봐주는 사람이 바로 script doctor입니다. Script doctor는 말 그대로 문제가 있는 대본의 병을 고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오리지널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레아 공주로 나왔던 캐리 피셔는 script doctor로도 유명한데, 대본을 쓰다가 난관에 부딪치면 그에게 찾아와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작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보통 당사자는 너무 대본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고, 따라서 제삼자의 조언이 유용하죠.

Script doctor가 대본의 병을 고친다면, 편집자는 영화의 병을 고칩니다. 어떤 영화는 촬영이 끝났지만 무언가 어색하고 스토리가 말이 안되는데, 이럴 때 문제를 제거하고 영화를 살려 낼 책임은 편집자에게 있죠. 꼭 병이 든 영화가 아니더라도, 편집자는 영화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네마 천국 감독판을 보면 감독은 주인공인 토토(살바토레 디비타)가 엘레나와 왜 헤어졌는지 자세히 설명하기 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international version을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이를 상영시간 단축을 위한 결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편집자가 이 영화의 메시지는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영화에 대한 주인공의 사랑으로 해석했고, 따라서  남녀 간의 사랑을 줄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감독판에 들어간 이야기는 사족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죠. 감독은 이러한 장면을 힘들게 찍어 놨기 때문에 빼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배우들은 자신이 나오는 분량이 줄어들면 매우 기분이 나쁜 법인데, 이들과 긴밀하게 작업하는 감독이 이러한 장면을 잘라내기가 쉽지 않죠. 그에 비해 편집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촬영되었는지 모르고, 배우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기 때문에 관객만 생각하며 편집을 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따라서 영화계에선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편집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불문율이죠.

Script doctor나 편집자나 제작 과정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혼자서 하나의 작업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객관적 시각을 잃기 쉬운데, 이러한 사람들이 도와주면 blind spot에 숨은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저도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막히면 물어볼 수 있는 blog doctor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시작은 했는데 결말이 애매해 저장해둔 글들을 활용할 수 있겠죠?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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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영화, 편집

영화 산업의 부활

문화 2009/08/20 06:53
이탈리아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만든 Nuovo Cinema Paradiso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입니다. 한국에도 "시네마 천국"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고, 특히 극 중에 흐르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선율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2차대전 직후 영화관에 모인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영화를 즐기는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전쟁으로 황폐해진 이탈리아에서 영화는 사람들이 삶의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죠. 게다가 40년대부터 60년대까지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페데리코 펠리니 등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명작을 쏟아내던 시기라 질적으로 봐도 이탈리아 영화의 황금기라고 할만 하죠.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 TV가 보급되면서 영화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시네마 천국은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주인공이 추억을 찾아 영화관에 들어갔을 때 보이는 애로 영화 포스터는, 영화관이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으로 추구했던 생존전략이 무엇인지 보여주죠.

실제로 이 영화가 개봉된 1988년은 영화의 미래가 매우 불투명하던 시기였습니다. 모든 가정에 보급된 칼러 TV 덕분에 사람들은 집에서 생생한 화면을 즐길 수 있었고, 게다가 비디오가 대중화하면서 힘들게 영화관에 가서 많은 돈을 들여 영화를 보는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겪고 난 영화산업은 9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 활기를 되찾았고, 지금은 영상시대를 맞아 새로운 부흥기를 맞은 듯 보입니다. 과연 영화산업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19세기 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으로 영화를 발명한 이래로, 영화의 매력은 "신기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뤼미에르 형제가 상영한 영화의 제목을 보면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46초), "금붕어 낚시"(42초), "아기의 아침식사"(41초)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담은 내용이지만, 이러한 내용이 필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화면에 비치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신기했죠. 게다가 영화가 발전하면서 매우 잘생긴 배우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극적으로 사는 모습을 화면에 보여주었기에, 영화를 보는 일은 매우 색다른 체험이었습니다.

하지만, TV가 보급되어 집에서 TV를 볼 수 있게 되자 영화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던 신기한 영상을 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특히 TV산업이 발달하면서 TV용 드라마도 영화에 못지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공짜로 볼 수 있는 내용을 영화관에서 돈 내고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었죠.

이러한 상황은 1977년 조지 루커스가 스타워즈를 발표하면서 점차 바뀌게 됩니다. 스타워즈 이전의 영화는 사랑, 이별, 가족 등 삶을 다루는 영화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일상의 삶과 다르게 매우 극적이었지만, 소제 자체는 평범한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죠. 하지만, 스타워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영화 제작자들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보고 싶은 모습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전까지 이러한 주제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감히 만들려는 사람이 없었지만, 스타워즈의 성공은 "많은 돈을 들이더라도 엄청난 인기를 끌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이는 곧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조스(1975)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는 조지 루커스와 함께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연 장본인입니다. 그가 감독하거나 제작한 영화는 지구에 온 외계인(미지와의 조우, ET), 현대에 되살아난 공룡(쥐라기 공원),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AI), 시간여행(백투더퓨쳐), 상상의 생명체(그램린) 등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소재를 다룬 경우가 많죠. 그런데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작은 화면으로 이러한 영화를 보면 "나는 가짜로 만든 영화를 보는 중이다."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렵고, 따라서 영화를 즐기는 재미가 떨어지죠. 그에 비해 극장이라는 낯설고 어두운 공간에서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크기의 스크린 앞에 앉아 박진감 넘치는 효과음을 듣노라면, 마치 내가 정말 환상의 세계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즉, 평범한 소재의 영상은 TV로 보나 영화관에서 보나 큰 차이가 없지만, 환상적인 소재의 영상을 보려면 영화관에 가야 하죠. 그래서 관객들은 환상적인 소재의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몰려들었고, 이러한 경향 때문에 2000년대 들어서는 환상적인 소재의 영화가 시리즈(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 등)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계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너무 대박을 낼 수 있는 환상적인 소재의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데 집중하다 보니,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가 흥행에 실패하면 타격이 크기 때문이죠. 실제로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출자해 만든 드림웍스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아일랜드의 흥행 실패가 결정타로 작용해 결국 유니버설에 넘어갔습니다. 조지 루커스도 "제작비가 많이 드는 영화는 위험하다."며 스타워즈 시리즈를 영화가 아닌 TV로 만드는 중입니다. 블록버스터로 재기에 성공한 영화산업이 블록버스터의 위험성을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하겠습니다.

영화 산업도 이발소나 마찬가지로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정체성을 새롭게 찾지 않으면 도태하고 맙니다. 또한, 어제 영화 산업을 구한 방법이 오늘은 영화 산업을 망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죠.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관찰할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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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8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클로버필드 (Cloverfield)는 상반기 최고 기대작이라는 평가에 맞게 첫 주말 사흘 만에 4,100만 달러의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1월 흥행수익 최고 기록을 갱신한 성적인데, 특히 제작비가 3,500만 달러밖에 안 든 영화인 점을 생각할 때 대단한 성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이미 1년 전부터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의 예고편 때문이죠.

고화질을 원하는 분은 HD버전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Quicktime 필요)

이 예고편은 유튜브한 해도 다양한 버전으로 수백만 명이 볼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따라서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몰려오는 관객으로 첫 주부터 이처럼 큰 흥행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영화는 장르로 볼 때 괴수 영화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괴수가 나타나 대도시를 파괴하고, 자신과 친구, 또는 연인의 목숨을 구하려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런데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괴수 영화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우선, 이 영화에 나오는 괴수는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주인공은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했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1998년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 고질라의 괴수는 핵실험으로 생겨난 돌연변이입니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의 이무기는 조선에 살던 오래된 신화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클로버필드의 괴수는 어디서 온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고, 단지 주인공들에게 크나큰 시련을 줄 뿐입니다.

이 영화의 초점은 괴수가 아니라 주인공들입니다. 따라서 괴수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찌에 대해선 자세히 다루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괴수 영화는 주인공들이 괴수를 어떻게 잡을찌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 괴수를 잡으려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주인공이 아닌, 얼굴도 나오지 않은 정치 지도자들이고, 주인공은 과수와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괴수로부터 도망 다니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주인공과 괴수의 새로운 관계는 집단을 대하는 현대인의 태도 변화를 반영합니다. 과거 사회에서 개인은 집단 속에서 나의 가치를 찾았고, 가장 이상적인 개인을 집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 즉 영웅으로 봤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집단을 돕기를 포기하였습니다. 이제 집단의 문제는 너무나 커서 내가 나선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누군가 높은 사람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 나는 그저 이 큰 문제가 내 삶을 파괴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지요. 즉,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은 진정한 큰 문제인 괴수가 아니라, 내 수준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새끼 괴수인 것입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카메라 기법입니다. 보통 괴수영화, 아니 대부분의 헐리우드 영화는 조명을 잘 갖춘 상태에서 흔들림을 최소화하며 찍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을 마치 특별한 조명을 쓰지 않고 손으로 찍은 듯하게 촬영했습니다. 이는 이 영화가 실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손으로 찍은 현장의 모습이라는 설정 때문인데, 영화 전체를 이렇게 과감한 방식으로 찍은 예는 극히 드뭅니다. 물론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가 있긴 하지만, 그 영화는 처음부터 초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그런 식의 촬영이 당연했을 수도 있지만, 클로버필드는 우리나라 돈으로 400억원 가까이 들어간 영화인데 이러한 방식으로 찍었다는 것은 매우 큰 모험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생활을 찍는다는 설정은 영화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매우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했습니다. 우리는 세련된 카메라의 움직임을 볼 때 무의식적으로 '이 영상은 배우들의 연기를 찍은 가짜다'라고 생각하고, 그에 비해 카메라가 마구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이 영상은 실제로 일어난 장면의 기록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앞부분에 실생활을 찍은 듯한 모습을 보며, 무의식적으로는 지금 보는 장면이 마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UFO 촬영 장면처럼 실생활 중에 포착한 장면이라고 느끼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보통 영화에서 갑자기 도시 반대편에서 폭발이 일어나도 별 감흥이 없지만, 이 영화에서 파티를 즐기다 폭발을 보는 순간 대단히 놀라는 것입니다.

사실 현대의 문화 소비자는 웬만한 자극에는 별 감동을 하지 않습니다. TV를 틀면 시청자를 울리고 웃기려 별의 별 "쇼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하죠.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현대인은 뭘 봐도 그저 그럴 따름입니다. 따라서 과거의 시청자가 눈물 흘리는 연기를 보고 감동했다면, 오늘날의 시청자는 리얼리티 쇼에서 출연자가 정말 힘들어 눈물 흘릴 때만 감동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리얼리티쇼가 유행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쇼에 싫증이 났고 진정한 감정을 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쇼이지만 쇼가 아닌 듯 진행합니다. 관객은 이 영화가 허구라는 사실을 알지만, 무의식적으로 실제 일어난 일을 보듯 몰입하죠.

결국, 이 영화는 괴수 영화의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인 관객의 상황에 맞게 관객을 끌어들일 줄 알았기에 큰 흥행 성공을 거뒀다고 봅니다. 물론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만 (오늘 영화를 본 관객들은 좀 황당해 하는 분위기더군요), 미국 관객들은 열광하는 듯합니다. 연이은 흥행실패로 우울한 한국 영화계도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잘 파악해서 관객이 호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든다면, 다시 사랑받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죠. 올해는 한국에서도 그러한 좋은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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