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이란 국민의 시위가 점차 격화하고 있습니다. 이미 경찰의 발포 등으로 십여 명이 사망하였고,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잦아지는 추세를 볼 때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입니다. 관망하던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도 점차 시위대를 격려하는 듯한 발언을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시위대는 더욱 고무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번 사태는 6월 12일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이 승리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촉발되었습니다. 많은 국민은 극우파 강경론자인 아마디네자드에게 염증을 느꼈고, 이에 따라 개혁을 주장하는 미르 호세인 무사비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막상 선거 결과는 아마디네자드의 승리로 나왔으니 많은 국민은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죠.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의 전통을 물려받은 유서 깊은 나라입니다. 2차대전 중 영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왕위에 오른 레자 팔라비 국왕은 친서방, 근대화 정책을 추구하는 독재 정부를 이끌었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1978년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고, 한때 서양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이란은 정치와 종교가 결합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로 탈바꿈합니다. 이슬람 혁명의 결과 호메이니는 이란의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가 되는데, 최고 지도자는 종교 지도자일 뿐 아니라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실질적 국가의 최고 권력자입니다. 지금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하메네이인데, 하메네이는 아마디네자드의 선거 승리를 "알라의 뜻"으로 인정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시위가 격화할 때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미지수입니다. 만약 그가 끝까지 아마디네자드를 지지하다가 시위로 정부가 무너진다면 그의 권위도 추락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1978년 이슬람 혁명이 이룩한 정치 체제에 금이 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실제로 시위대가 "최고 지도자 타도"를 외쳤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반대로, 그가 종교지도자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동원해 정부를 옹호함으로 시위를 억누르는데 성공할 수도 있겠죠.

이란에서 개혁파 지도자가 인기를 끈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97년 무명의 성직자 모하마드 하타미(Mohammad Khatami)는 개혁을 주장하며 선거에 나와 70%의 놀라운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하지만, 그는 보수파의 견제에 밀려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물러났죠. 하타미는 올해 대선에 다시 출마하려다 포기하였고, 대신 그의 친구 무사비를 지지하였습니다(그래서 무사비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엔 무사비와 하타미가 함께 나옵니다). 즉, 무사비에 대한 국민의 지지지는 단지 무사비가 인기가 높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개혁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렇게 시위가 격화하는 가운데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시민의 모습을 촬영한 비디오가 유튜브에 공개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피가 많이 나는 끔찍한 동영상이라는 사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여러 명의 사상자가 났지만, 눈에 보이는 사진이나 동영상의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는 점에서 이 동영상은 이번 사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이 여성은 인터넷에서 네다(Neda)로 불리는데, 미국의 타임지(TIME Magazine)는 이를 '목소리, 부름'을 뜻하는 이란어(Farsi)라고 해석한 데 비해  , 프랑스의 Le Figaro는 이 여성의 이름이 정말 Neda Soltani라고 보도했습니다. 세계적 언론도 정확한 사태 파악이 안된 것이죠. 분명한 사실은 많은 이란 국민이 이 여인을 정부의 억압에 희생된 대표자로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도 박종철이라는 한 학생의 죽음이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듯, 막연한 "독재"가 독재의 피해자로 구체화할 때 여론의 큰 흐름이 바뀌는 법이죠.

서양을 등에 업고 독재를 추구하던 팔라비 국왕을 내쫓은 이란 국민은 이제 부정선거로 권력을 연장하려는 정부에 대해서도 심판을 내리기 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한때 국민이 지지해서 권력을 잡았더라도, 이를 빌미로 국민의 목소리를 거부하는 정부는 언젠가 국민으로부터 따끔하게 혼이 나야겠죠.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회견을 끝맺으며 했던 이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는 것은 이란 정부만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국민의 목소리는 경청해야 하지, 억압하면 안된다는 것이 보편적 원칙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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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후보의 대통령 당선 소식은 제가 있는 독일에서도 하루종일 큰 화제였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이 대단히 기뻐했고, 독일인을 비롯한 다른 대륙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좋아하는 분위기인데, 미국인 중에는 매우 크게 실망하는 사람이 눈에 띄더군요. 하긴 그들이야 말로 자신의 나라 대통령이 결정되었으니 크게 기쁘든지 크게 슬프든지 하겠지요.

인터넷을 보니까 한국에서도 오바마의 당선에 대해 환영을 하는 사람이 많은 듯 싶습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 부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에 대단히 실망한 많은 사람은 미국에서나마 부시 대통령과 정반대 스타일의 후보가 대통령이 된 사실이 기쁠 것입니다. 또한 무식하게 미국 우월주의를 추구하는 공화당 후보가 아니라, 협력하는 세계를 만들기 원하는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 사실에서 세계가 좀 더 평화로워지길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 취임도 안한 대통령이 어떠한 정책을 펼칠찌 짐작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가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몇가지 상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공화당 대통령들이 힘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데 비해, 민주당 대통령들은 전략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 스타일 외교 노선을 잘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그는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하고,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자주 마찰을 빚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히려 핵무기를 공개해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르자 허겁지겁 태도를 바꿔 북한을 달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였죠. 즉, 공화당 대통령은 힘을 과시하는데는 능하지만 계획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못이룰 가능성이 큽니다 (부시 대통령이 자신 있게 시작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미국의 골치덩어리로 전락한데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죠). 그에 비해 민주당 대통령은 보통 철저한 계산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한 번 목표를 세우면 상대방이 결국 그대로 끌려가기가 쉽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인데, 그는 세계를 미국의 시장과 생산기지로 보고 각국과 수 많은 협약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챙겼고, 그 결과 그가 집권한 90년대는 미국 경제의 황금기로 기억됩니다.

오바마도 취임하고 나면 미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힘이 아닌 전략으로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후보시절부터 오바마는 한미 FTA가 한국에 유리한 조약이라고 많이 비판했습니다. 이는 바꿔말하면 FTA 비준을 거부하거나,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을 하겠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FTA 비준을 대단히 중요한 과업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국정부는 FTA 비준에 목을 맸다며? 우리는 지금 같은 조건으론 비준할 생각이 없고, 우리가 원하는대로 재협상을 해야겠거든? 어떻게 할래?" 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나올까요? 노무현 대통령 처럼 "반미 좀 하면 어떻냐?"고 큰소리 치면서 협상을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민을 대하듯 "나라간의 협상이라는게, 한 번 끝나면 다시 한다는게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가르치려 들까요? 어떠한 일이 벌어질찌 대충 상상이 가시겠죠? 즉, 이명박 정부처럼 미국을 떠받드는 정부는 미국 정부가 보기엔 가장 만만한 상대이고, 따라서 오바마 정부는 한국 정부에 여러가지로 요구사항을 내세우고, 이를 관철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한미 관계의 매우 중요한 주제는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이른바 "통미봉남" (通美封南) 즉, 남한을 무시하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는 방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북한에 대해 유화 제스쳐를 쓰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개인적인 이유에서 북한에 대해 화를 내는 등, 60년대식 냉전 논리로 북한을 상대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욱하는 성격 등 이명박 대통령과 나름대로 통하는 면이 있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래도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사람일찌 파악하고, 아니다 싶으면 남한을 무시하고 북한과 직접 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이미 북한을 미롯한 문제 국가 (rouge countries)의 지도자들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문제 국가에 군대를 보내 전쟁을 벌이는 부시 대통령과 차별화하기 위한 발언이지만, 이를 북한에 대해 적용해 본다면, 김정일을 만날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클린턴 대통령 임기말에 김정일과 클린턴의 회담에 대한 논의가 있었죠). 이렇게 북한이 미국과 직접 협상을 하게 된다면 남한은 그냥 "아, 그런 일이 있구나"하고 옆에서 구경만 하는 처지로 전락해 버립니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다녀와 세계에 한반도의 평화분위기를 광고하는 효과를 누리던 때에 비하면 형편 없이 초라한 신세가 되는 것이지요.

민주당 대통령이 공화당 대통령 보다 영리하기에 더 상대하기 힘든 면도 있지만, 한가지 좋은 점은 민주당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대의와 양심을 외교관계에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즉, 경제문제 등에서는 외국을 치열하게 압박하지만, 대의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이 되면 국익과 상관 없이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지요. 예를 들어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인권을 외교의 중요한 과제로 여겨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인권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다"고 위협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에 맞서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의 의도대로 "자주국방"을 외치던 신문들이 노무현 정부때는 "미군 철수하면 우리는 망한다"고 떠들었으니, 참 이분들도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는 또한 미국이 불법 비슷하게 점령하고 있던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에 돌려주기로 조약을 맺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문제로 난리가 났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파나마 땅이니 파나마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긴 합니다. 즉, 양심과 대의를 국익 앞에 둔 것이었죠.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미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찌는 쉽게 짐작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정부에게 쉬운 협상 상대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논리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잘 설명하고, 약점을 잡히지 않고 행동한다면 부시 정부처럼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괴롭히는 일은 덜 할찌도 모르죠. 그렇게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오바마와 밀고 당기면서 나름대로 국익도 챙기고 관계도 개선할 수 있었을찌 모르는데, 미국에 대해서 일방적인 저자세에만 익숙한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잘 상대할 수 있을찌 걱정이 앞섭니다. 정말 부시 퇴임이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인들이 부럽게 느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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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미국에 TV 정치 시대를 연 정치인으로도 유명합니다. 경력이 일천한 그가 인기 높은 아이젠하워 정부의 현직 부통령인 닉슨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그가 닉슨과 벌인 TV 토론에서 그의 잘생긴 외모로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닉슨은 얼굴의 분위기 자체가 우울한 데다가 아침에 면도를 해도 하루 중에 자라는 수염 때문에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이른바 다섯 시 그늘 (Five O'clock Shadow)현상 때문에 TV에 우중충하게 나왔고,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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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토론에 나온 닉슨 당시 부통령)

케네디 대통령이 보인 젊고, 말 잘하고, 잘생기고, 패기 넘치는 대통령 후보의 모습은 그 후로 많은 민주당 대선주자가 흉내내기 원하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물론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태 이후에 워싱턴 정치인들에 실망한 미국인들이 "순박함"과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한 민주당의 지미 카터 후보를 뽑긴 했지만, 90년대 들어 젊고 말 잘하는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의 롤 모델은 케네디 대통령"이라는 공식이 완성되었죠. 또 다른 젊은 달변가 앨 고어도 전형적인 민주당형 대통령 후보였고, 존 케리는 이름 약자가 JFK이며, 가톨릭 교도라는 점에서 JFK처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길 기대했지만, JFK와 공통점이 많지 않아서인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역사적인 선거로 평가하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승리했다고 합니다. 젊고 말 잘하고, 똑똑한 그는 JFK의 계보를 잇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개인의 재능과 매력으로 성공적으로 극복한 오바마가 백악관의 주인이 된 것은 한편의 드라마 만큼이나 극적입니다.

물론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지만, 아직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백인처럼 살아가기는 힘듭니다. 예를 들어, 미국 상원 의원 중 흑인은 오바마가 사상 두번째고, 지금도 그를 제외하고는 흑인 상원의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즉, 특정한 영역 (예를 들어 스포츠나 연예계)에서는 흑인이라는 신분이 거의 문제가 안되지만, 아직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흑인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감수하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미국인은 오바마의 당선을 계기로 미국이 좀 더 인종간 통합이 잘 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하는 듯 싶습니다. 하지만 한때 일어났던 페일린 열풍이 보여주듯, 아직 미국의 많은 지역에선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 (American values)가 현대적으로 왜곡된 보수주의가 영향력이 큽니다. 즉, 오바마의 당선은 흑백통합의 중요한 계기가 되겠지만, 아직도 미국이 진정으로 평등한 사회가 되려면 갈 길이 먼 셈이지요.

이번 대선의 초점은 단지 흑인 대통령의 탄생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미국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는 중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새로 당선되는 대통령이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해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9월까지 지지율이 오바마보다 10%나 앞섰던 매케인이 오바마에 선두를 내준 원인은 페일린 돌풍의 거품이 꺼진 이유도 있지만, 10월 들어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공화당 정부에 대한 실망과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이 경제를 더 잘 이끌 것이라는 기대가 퍼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대공황을 끝낸 것이 민주당 루즈벨트 대통령이었고, 90년대 장기호황을 이끈 것도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이였죠. 게다가 매케인은 maverick (조직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는 이단아) 이미지가 강한데, 이는 미국인이 좋아하는 모습 (많은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남자주인공이 매버릭이죠)이긴 하지만, 위기상황에 국가를 이끌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에 비해 하버드 법대를 나온 오바마의 지적인 이미지는 경제를 살릴 인물이라는 이미지에 도움이 되었죠. (부시 대통령은 이미지에 걸맞게 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폴슨과 버냉키에 전적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탁한 상태입니다. 나름 큰 석유회사 CEO 출신인데도 이렇습니다. 아, CEO 출신이 경제를 이해못할 수도 있다는 말은 이제 설명 안해도 되겠군요.)

결국 미국의 위기가 오바마에겐 기회가 되어 지지율 역전에 성공하고 대통령이 되긴 했는데, 문제는 그가 미국인의 기대대로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제가 이 블로그에서 계속 글을 올렸듯, 이번 경제 위기는 쉽게 끝날 수 있을 문제가 아니기에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사태를 수습하기까지는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오바마는 분명히 인기는 높고, 말은 잘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도자로서 능력을 발휘할찌는 미지수입니다. 그의 정치경력이라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8년, 미국 상원의원 4년이 전부입니다. 그가 정치인으로 유명해진 것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행한 "소망의 담대함" (Audacity of Hope) 연설 때문입니다. 이 연설이 방송에 나가면서 그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사가 되었고,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4년만에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본다면 케네디 대통령도 인기에 비해서는 이루어 놓은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가 잘한 일은 "60년대가 끝나기 전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선언과 함께 미국의 우주 개발 계획을 시작했다든지, 소련의 베를린 봉쇄로 위기에 빠진 서베를린에 가서 "나도 베를린 사람이다 (Ich bin ein Berliner)"라고 말함으로 자유세계가 베를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인 일, 그리고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줄까를 묻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찌 물으라"는 취임 연설후, 젊은이들이 자원해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섬기는 평화 봉사단 (Peace Corps)을 설립한 일 등입니다. 즉, 그는 연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 넣는 일은 대단히 잘했지만, 실제로 정치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미지수입니다 (이는 그가 취임후 3년도 못되어 암살되었기에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 사람들의 기대처럼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찌는 아직은 미지수라고 하겠습니다.

어쨌든 변화를 모토로 내세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최소한 앞으로 몇달은 새로운 희망이 생겨서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표를 봐도 미국의 금융부분은 많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결혼생활의 현실이 시작될 때, 지도자로서 오바마의 능력이 드러나게 되겠지요. 과연 그가 어떤 지도력을 보일찌 무척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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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서는 미국 중산층의 소득이 70년대에 비해서 더 늘었는가를 놓고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일부에서는 조금 늘었다고 주장하고, 일부에서는 70년대와 비슷하거나 감소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30여 년전과 지금의 소득을 정확히 비교하기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러한 논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 중산층이 처한 곤경을 잘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아무도 "우리가 70년대보다 소득이 늘었는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지금 소득이 70년대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이 명확하기 때문이죠. 이는 영국이나 독일 등 다른 선진국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우리가 부모세대보다 더 가난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일반인의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이 3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폴 크럭먼 (Paul Krugman)은 자유주의자의 양심 (The Conscience of a Liberal)이라는 책에서  이처럼 미국의 중산층이 가난해지고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현상의 원인을 공화당 정부의 정책에서 찾습니다. 그에 따르면 레이건, 부시, 아들 부시로 이어지는 공화당 정부는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감면하고, 노조를 탄압함으로 부자에게 유리한 경제 환경을 조성하였고, 이에 따라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일반인은 갈수록 적은 월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국가 경제는 계속 발전하였지만, 그 유익은 대부분 부자에게 돌아갔고, 일반인은 오히려 빈곤층으로 몰락해 버린 것이지요.

그는 이러한 공화당 정부를 뉴딜 정책을 써서 중산층을 일으킨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비교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노조를 보호하였고,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권익을 확보하였습니다. 또한 2차대전이 일어나자 군수물자의 원할한 공급을 위해 노사분규가 없도록 정부에서 노동자의 월급을 정했는데, 이 월급이 꽤 많았기에 대부분의 노동자가 쉽게 중산층에 편입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뉴딜 정책으로 인해 미국은 짧은 시간 안에 중산층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크럭먼에 따르면 지금의 공화당 정부는 이러한 루즈벨트의 유산을 파괴하고, 양극화가 극심한 20세기 초의 미국 사회로 돌아가도록 노력 중이라고 합니다. 사실 미국은 이미 유럽에 비해 사회보장이 훨씬 약한데, 공화당은 의료보험 등의 영역에서 사회보장을 더욱 약화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죠. 결국 유럽은 경제가 좋건 안좋건 국민 대다수가 최소한의 안정을 누리는데 비해, 미국은 경기가 안 좋으면 해고될 위험도 크고, 해고가 되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고, 또한 가족 중 환자라도 생기면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갈수록 악화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공화당도 과거에는 부자만 위하는 당은 아니었습니다. 공화당은 노예를 해방한 링컨 대통령을 배출한 당이고, 정치적으로 온건한 중도파가 지배하는 당이었죠. 아이젠하워나 닉슨 등 공화당 대통령들은 중도적인 정책을 폈죠. 하지만 문제는 공화당을 파고든 보수주의 운동 (movement conservatism)입니다. 이들은 60년대 반전과 대안문화, 인권문제를 들고 나온 젊은이들과 흑인들의 움직임에 대해 반발했고, "우리가 백인의 이익과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켜내겠다"고 자임하며 공화당을 장악합니다. 인종간의 갈등을 자극하는 전략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되었고, 나중엔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이러한 보수주의 운동의 좋은 예죠.

이와 함께,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미국 남부는 민주당이 경제적 평등 뿐 아니라 인종간 평등을 강조하며 흑인의 인권 보호에 나서자 공화당 편으로 돌아섭니다. 이들은 실제로 공화당이 자신들을 위해 해주는 것이 없지만, 공화당이 내서운 "백인의 이익과 전통적인 가치관"이라는 구호는 선거때 마다 통했고, 따라서 공화당은 남부의 고정표를 바탕으로 많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죠. 이렇게 공화당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은 점차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해졌고, 30년간 중산층의 삶이 거의 나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삶의 질이 더 떨어졌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불행한 역사가 이제 끝날 기미가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공화당이 기반으로 삼는 인종간의 갈등이 점차 약화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흑인인 오바마가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다는 사실만 놓고 봐도, 흑인에 대한 반감이 과거보다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여론조사를 해봐도, 과거에는 미국인의 50% 이상이 흑인과 백인의 결혼에 대해 반대했는데, 지금은 이러한 비율이 대폭 줄었다고 합니다. 물론 여전히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러한 사람의 비율이 줄었다면 보수파가 정치적 기반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볼 수 있지요. 실제로 공화당 내에서도 덜 보수적인 맥케인이 경선에서 앞서는 상황을 볼 때, 공화당 내에서 보수주의 운동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보입니다. 또한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공화당 소속이지만 유색인종에 대한 존중, 환경 보호 추진 등 과거의 공화당과는 많이 다른 색깔을 내고 있습니다. 공화당 내에서 이러한 합리적인 정치인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보수주의 운동의 몰락을 보이는 증거이기에 반갑습니다.

이제 미국도 "잃어버린 30년"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선 정권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와야 되겠고, 공화당은 보수주의 운동의 유산을 탈피해야 겠지요. 올 미국 대선은 이러한 거대한 변화가 실현될찌를 지켜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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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미 대선이 끝났지만, 미국 대선은 이제 시작입니다. 올해 11월 4일에 대통령 선거가 열리고, 오늘 (미국 시간으로는 1월 3일) 아이오와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첫 당원대회 (Caucus)가 열렸습니다. 공화당은 마이크 허커비 (Mike Hukabee)가 1위를 했고, 민주당은 아직 개표중입니다만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때 쯤이면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CNN은 버락 오바마 (Barak Obama)가 1위 하리라고 예측하였습니다. 버락 오바마가 1위를 하였습니다.

아이오와 당원대회는 미국 대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1972년 이후로 아이오와는 대선주자를 뽑는 첫번째 투표지였고, 따라서 당내 경선에 나선 후보가 처음으로 대중의 심판을 받는 자리였습니다. 2004년 대선을 보면, 초반에는 하워드 딘 후보가 대선후보로 뽑히리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존 케리가 1등을 차지했고, 이를 계기로 부터 판도가 바뀌면서 결국 존 케리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뽑혔습니다. 물론 이번 당원대회에서 오바마가 1등을 한다고 해도 힐러리 클린턴, 존 에드워즈와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결국 누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찌는 알 수 없지만, 아이오와 당원대회의 승리는 심리적으로 커다란 소득이 되겠죠.

만약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고, 대통령 선거까지 승리한다면 그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됩니다. 그는 하와이에서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케냐에서 온 유학생)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케냐로 돌아갔고, 얼마 후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하고, 결국 남편을 따라 오바마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가서 4년간 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이혼으로 미국에 돌아오게 된 오바마는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는 하지만, 결국 흑인의 권익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하버드 로 스쿨을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됩니다. 정계에 진출한 그는 일리노이 주의회 의원이 되는데,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소망의 담대함" (Audacity of Hope)을 역설하여 일순간 미국 정치계의 스타로 떠올랐고, 결국 그해 열린 상원의원선거에서 70% 득표라는 압도적인 인기로 상원의원이 됩니다.

저는 그가 쓴 Dreams from My Father를 그가 직접 읽은 오디오북을 들어 봤는데, 그의 목소리는 어느 전문 낭독자의 목소리 보다 훨씬 힘있고, 명확했으며, 호소력이 강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었지요. 그의 이러한 타고난 의사소통 능력이 정치가로서 그의 큰 자산이라고 봅니다.

그의 이름인 Barak은 아랍어로 "복된"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middle name은 후세인이죠. 9/11 사태 이후 아랍계에 대한 반감이 커가는 미국에서 아랍 이름을 지닌 흑인인 그는 "미국의 정신은 평등이다"고 외치며 사회의 편견에 맞서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뽑히고,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을찌 아무도 모르긴 하지만, 대통령은 백인 아니면 안된다는 고정 관념을 깬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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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