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미국의 대표적인 극우인사 팻 로버트슨이 TV에 나와 미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를 암살해야 한다고 주장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차베스 때문에 베네수엘라가 "공산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가 대륙 전체로 퍼지는 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며, "[중남미는] 우리 세력권이고, 따라서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방치할 수 없다" (This is in our sphere of influence, so we can't let this happen)고 강변했습니다.

여기서 그가 쓴 세력권 (sphere of influence)이라는 표현은 외교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말은, 하나의 강대국이 존재할 때, 그 주변 국가는 그 강대국의 영향력을 받으며, 따라서 다른 강대국은 함부로 이런 국가들에 접근하면 안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은 19세기에 국력이 강해지면서 유럽 국가들에게 "북미와 남미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바로 몬로 독트린이죠.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이제 남미와 북미는 미국의 세력권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러한 공적인 선언이 없다 할찌라도, 하나의 강대국이 있다면 그 주변 국가는 당연히 그 강대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인정이 됩니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면서 러시아에 "탈레반을 몰아내기 위해 잠시만 군대를 파견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이 러시아 가까이 있으니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국가이고, 따라서 이런 국가에 군대를 보내기 위해선 지역 맹주인 러시아의 이해가 필요했던 것이죠.

물론 세력권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죠. 특히 두 개의 강대국 사이에 있는 나라는 한 나라의 영향력을 벗어나 다른 나라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기도 합니다. 폴란드가 그러한 예인데, 폴란드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세력권에 속한 나라이고, 냉전시대엔 러시아의 위성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적어지면서, 폴란드는 과거에 자신을 괴롭힌 러시아의 영향력을 벗어나 미국의 세력권에 편입되려고 노력중입니다. 특히 폴란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기지를 유치할 계획인데, 당시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은 이에 대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유럽을 향해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지극히 위협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가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길게 뻗은 나라이고, 따라서 그 세력권에 포함되는 나라도 많듯, 미국도 태평양과 대서양에 접한 나라라 세력권이 넓습니다. 하지만 괌이나 사이판 정도가 서쪽의 끝인지라, 그보다 서쪽으로는 영향력을 주장하기가 힘들죠. 그런데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한 이후로, 일본은 미군이 주둔하는 미국의 세력권 국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섬나라라 미국을 위한 아시아의 교두부가 되기는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미국에겐 대륙의 동쪽 끝 한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소련과 미국은 한반도를 놓고 고민을 합니다. 만약 소련이 한반도를 차지하면, 미국은 동아시아 전체를 중국과 러시아에 넘겨주게 됩니다. 소련이 보기엔, 미국이 한반도를 차지하면 미국의 군대가 소련 바로 턱밑에 주둔하는 위험한 상황이 되죠. 미국은 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하자, 핵전쟁을 각오하고 소련과 마찰을 빚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세력권에 다른 강대국의 영향력이 들어오는 것은 허락할 수 없는 일이죠. 결국 고민을 하던 두 나라는 타협을 합니다. 즉, 미국에 아시아의 교두부를 마련해 주는 대신, 소련도 미국의 세력권 국가와 직접 맏닿지 않도록 위성국가를 세우는 것이지요. 외교적으로 보면 참 합리적인 결정입니다만, 우리 민족의 관점에서 보자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멀쩡한 한 민족이 두동강이 난, 처참한 결과였죠.

지금도 한반도는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한 이후, 아시아 대륙 동쪽에 미군이 주둔한 곳은 한국 밖에 없습니다. 즉, 한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아시아에 미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곳이죠. 만약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게 된다면, 나중에라도 중국이 "다른 나라는 동아시아에 간섭하지 말라"는 새로운 독트린을 내놓을 때 이를 반박할 근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미군 철수는 결코 미국이 쉽게 추진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한 "동북아 균형자로"은 미국으로선 섬찟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의 세력권에 속한 나라였는데, 이제는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미국의 세력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죠. 물론 노무현 대통령도 진지하게 이러한 계획을 추진했다기 보다는 미국에 겁을 주기 위한 발언이었겠지만, 어쨌든 미국으로선 거대해진 한국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교통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세력권이라는 개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처럼 열강이 만나는 중심에 선 나라는 세력권의 판도를 바꾸는데 중요한 캐스팅 보드를 쥔 나라입니다. 물론 미국의 영향이 워낙 강력하기에 단기간에 한국이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미국과 관계할 때 단지 우리를 "미국이라는 고목에 붙은 매미"로 볼 것이 아니라,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파트너"로 자각하고, 따라서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외교를 펼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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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버락 오바마 후보의 대통령 당선 소식은 제가 있는 독일에서도 하루종일 큰 화제였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들이 대단히 기뻐했고, 독일인을 비롯한 다른 대륙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좋아하는 분위기인데, 미국인 중에는 매우 크게 실망하는 사람이 눈에 띄더군요. 하긴 그들이야 말로 자신의 나라 대통령이 결정되었으니 크게 기쁘든지 크게 슬프든지 하겠지요.

인터넷을 보니까 한국에서도 오바마의 당선에 대해 환영을 하는 사람이 많은 듯 싶습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 부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에 대단히 실망한 많은 사람은 미국에서나마 부시 대통령과 정반대 스타일의 후보가 대통령이 된 사실이 기쁠 것입니다. 또한 무식하게 미국 우월주의를 추구하는 공화당 후보가 아니라, 협력하는 세계를 만들기 원하는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 사실에서 세계가 좀 더 평화로워지길 기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 취임도 안한 대통령이 어떠한 정책을 펼칠찌 짐작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가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몇가지 상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공화당 대통령들이 힘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데 비해, 민주당 대통령들은 전략으로 다른 나라를 압박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 스타일 외교 노선을 잘 보여주는데, 예를 들어 그는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하고,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자주 마찰을 빚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히려 핵무기를 공개해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르자 허겁지겁 태도를 바꿔 북한을 달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였죠. 즉, 공화당 대통령은 힘을 과시하는데는 능하지만 계획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못이룰 가능성이 큽니다 (부시 대통령이 자신 있게 시작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미국의 골치덩어리로 전락한데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죠). 그에 비해 민주당 대통령은 보통 철저한 계산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한 번 목표를 세우면 상대방이 결국 그대로 끌려가기가 쉽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대표적인 예인데, 그는 세계를 미국의 시장과 생산기지로 보고 각국과 수 많은 협약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챙겼고, 그 결과 그가 집권한 90년대는 미국 경제의 황금기로 기억됩니다.

오바마도 취임하고 나면 미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힘이 아닌 전략으로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후보시절부터 오바마는 한미 FTA가 한국에 유리한 조약이라고 많이 비판했습니다. 이는 바꿔말하면 FTA 비준을 거부하거나,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을 하겠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FTA 비준을 대단히 중요한 과업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국정부는 FTA 비준에 목을 맸다며? 우리는 지금 같은 조건으론 비준할 생각이 없고, 우리가 원하는대로 재협상을 해야겠거든? 어떻게 할래?" 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나올까요? 노무현 대통령 처럼 "반미 좀 하면 어떻냐?"고 큰소리 치면서 협상을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국민을 대하듯 "나라간의 협상이라는게, 한 번 끝나면 다시 한다는게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가르치려 들까요? 어떠한 일이 벌어질찌 대충 상상이 가시겠죠? 즉, 이명박 정부처럼 미국을 떠받드는 정부는 미국 정부가 보기엔 가장 만만한 상대이고, 따라서 오바마 정부는 한국 정부에 여러가지로 요구사항을 내세우고, 이를 관철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한미 관계의 매우 중요한 주제는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이른바 "통미봉남" (通美封南) 즉, 남한을 무시하고 미국과 직접 협상하는 방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북한에 대해 유화 제스쳐를 쓰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개인적인 이유에서 북한에 대해 화를 내는 등, 60년대식 냉전 논리로 북한을 상대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욱하는 성격 등 이명박 대통령과 나름대로 통하는 면이 있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래도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사람일찌 파악하고, 아니다 싶으면 남한을 무시하고 북한과 직접 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이미 북한을 미롯한 문제 국가 (rouge countries)의 지도자들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문제 국가에 군대를 보내 전쟁을 벌이는 부시 대통령과 차별화하기 위한 발언이지만, 이를 북한에 대해 적용해 본다면, 김정일을 만날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클린턴 대통령 임기말에 김정일과 클린턴의 회담에 대한 논의가 있었죠). 이렇게 북한이 미국과 직접 협상을 하게 된다면 남한은 그냥 "아, 그런 일이 있구나"하고 옆에서 구경만 하는 처지로 전락해 버립니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 다녀와 세계에 한반도의 평화분위기를 광고하는 효과를 누리던 때에 비하면 형편 없이 초라한 신세가 되는 것이지요.

민주당 대통령이 공화당 대통령 보다 영리하기에 더 상대하기 힘든 면도 있지만, 한가지 좋은 점은 민주당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대의와 양심을 외교관계에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즉, 경제문제 등에서는 외국을 치열하게 압박하지만, 대의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이 되면 국익과 상관 없이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지요. 예를 들어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인권을 외교의 중요한 과제로 여겨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인권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다"고 위협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에 맞서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의 의도대로 "자주국방"을 외치던 신문들이 노무현 정부때는 "미군 철수하면 우리는 망한다"고 떠들었으니, 참 이분들도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는 또한 미국이 불법 비슷하게 점령하고 있던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에 돌려주기로 조약을 맺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문제로 난리가 났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파나마 땅이니 파나마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긴 합니다. 즉, 양심과 대의를 국익 앞에 둔 것이었죠.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고 한미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찌는 쉽게 짐작하기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정부에게 쉬운 협상 상대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논리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잘 설명하고, 약점을 잡히지 않고 행동한다면 부시 정부처럼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괴롭히는 일은 덜 할찌도 모르죠. 그렇게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오바마와 밀고 당기면서 나름대로 국익도 챙기고 관계도 개선할 수 있었을찌 모르는데, 미국에 대해서 일방적인 저자세에만 익숙한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잘 상대할 수 있을찌 걱정이 앞섭니다. 정말 부시 퇴임이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인들이 부럽게 느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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