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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양말

문화 2009/06/26 05:18
독일에 정착한 지 두 달이 넘어가면서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군요. 그래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한국 음식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인터넷 곳곳에 올라와 있는 맛있는 한국 음식 소개나 사진을 접하면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물론 유럽 대도시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한국 음식을 구할 수 있겠지만, 저는 워낙 시골에 사는데다가, 부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기 때문에 냄새가 강한 음식을 먹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서양 음식을 먹는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죠.

한국 음식 생각을 참기 어려울 때는 '김치를 인터넷으로 주문해볼까?'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김치를 먹으려면 한국식 쌀로 밥을 해서 한국 음식 반찬과 함께 먹어야지, 서양 음식에 김치만 추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망설여집니다. 즉, 한국 음식을 먹으려면 제대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든지, 아니면 전혀 안 먹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음식을 제대로 만들어 먹으려면 한국에서 수입한 재료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한국식으로 밥을 하려면 한국 전자밥통이나 압력솥도 구해야 하겠죠. 그러니 외국에서 외국인들과 살면서 한국 음식을 먹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외국에 살아도 한국인이 가정을 이루고 산다면 한국식 재료와 주방용품을 갖추어 놓고 한국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졌기 때문이죠.

음식의 예에서 알 수 있듯, 문화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문화의 한 요소만 가져다가 다른 문화에 이식하기는 매우 어렵죠.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는 기존의 문화와 융합하지 않기 때문에, 문화 전체를 바꾸지 않는 이상 이러한 요소가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집안에서 신발을 벗는데, 서양인은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에 한국인이 집에서도 신발을 신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한국의 장판은 맨발로 밟도록 만들어졌기에 신발로 밟으면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습니다. 그리고 바닥이 더러워지니 그 위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자기도 어렵겠죠. 또한,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잘 수 없다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온돌의 장점도 사라질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깔끔한 성격상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는 것을 참지 못하겠죠. 즉, 집안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려면 바닥에 카펫이 깔린 집에서, 침대에서 잠을 자고, radiator로 난방을 하고, 더러워도 크게 신경을 안 쓰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한국에선 집안에서 신발 신고 살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죠.

이처럼 외국에서 문화의 한 요소만 받아들이기는 매우 쉽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외국 문화가 유입되기도 하지만, 마치 인간의 몸이 외부의 변화에 반응하지만 결국은 균형상태(equilibrium)로 돌아오듯, 문화도 고유의 색깔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198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가 세계를 휩쓸 때, 사람들은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 세대가 성인이 되고 나면 모두 미국 사람처럼 살리라고 생각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세계 각국의 문화는 언제보다 고유한 색깔이 뚜렷합니다. 이는 미국의 문화가 잠시 각 나라에 침투하긴 했지만, 고유의 문화를 조금 바꾸는데 그쳤지, 문화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지는 못했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이 노란 양말을 선물 받았는데, 구두가 양말과 어울리지 않아 노란 구두를 신게 되었고, 바지가 구두와 맞지 않아 노란 바지를 입게 되었고, 결국 모든 옷을 노란색으로 입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요. 외래문화란 이야기속의 노란 양말과 같습니다. 하나의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다 보면 문화 전체의 색깔이 바뀌는 것이죠. 만약 외래문화가 고유문화를 바꾸지 못한다면 외래문화는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구두를 신은 사람의 노란 양말처럼 특이한 요소로 남을 것입니다.

돌아보면 한국에서 저는 노란 양말 같은 존재였습니다. 특히 제가 추구하는 작고 창의적인 조직은 한국의 조직문화에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이었고, 따라서 한국의 조직은 저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하긴 저를 받아들인다면 마치 노란 양말을 선물 받은 사람처럼 조직 전체의 색깔을 바꾸어야 할 테니 조직의 지도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겠죠. 어쨌든 저는 외국에서 새롭게 꿈을 펼치게 되었으니 억울하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많은 부분이 한국문화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내용일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문화의 성격이 크게 바뀌지 않는 이상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죠. 그래도 의미 없을지 모르는 글을 계속 올리는 까닭은 언젠가 이러한 내용이 한국에 도움이 될 때가 오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문화란 늘 변화하기 마련이고, 특히 세계적인 흐름은 모든 나라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법인데, 제가 제시하는 방향이 시대의 흐름과 맞는다면 언젠가 한국문화도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리라고 믿는 것이죠. 그러한 먼 훗날을 바라보며 쓰는 글이기 때문에, 글에서 제시하는 방향과 한국사회의 방향이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아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쓰겠습니다. 부디 한국문화가 좋은 전통은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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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