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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와 픽사

문화 2009/08/22 06:35
저는 평소에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노트북 이외의 장비는 잘 구입하지 않는데, 이제는 독일에 정착하였기에 평소에 늘 갖고 싶던 23인치 모니터를 구입하였습니다. 모니터를 구입하고 나니 모니터에 맞는 고화질 영상을 보고 싶어서 블루레이 플레이어까지 구입했습니다. 모니터나 블루레이 플레이어나 가격이 많이 내려서 큰 부담 없이도 좋은 비디오 감상 시스템을 갖출 수 있더군요. 블루레이 디스크는 lovefilm.de라는 우편 대여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디스크가 배달되기까지 조금 시간은 걸리지만 저렴하게 원하는 디스크를 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풀HD 모니터에서 보는 블루레이의 화질은 정말 우수하더군요. 특히 최근에 나온 디지털 애니메이션 영화는 머리카락 하나까지 정확하게 재현해주는 화면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상을 보다가 손으로 100% 작업한 디즈니의 고전만화 피노키오를 보니 처음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작품해설을 들으면서 보니, 피노키오야 말로 시대를 앞선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모든 요소를 3D로 작업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지정해주면 나머지는 컴퓨터가 알아서 렌더링해줍니다. 하지만, 손으로 그리는 만화는 모든 움직임을 사람이 계산해서 적용을 해야 합니다. 특히 움직임이 여러 번 중첩되는 장면, 예를 들어 마차 속에 매달린 새장 속에서 피노키오가 움직이는 장면은 마차의 움직임, 이에 따른 새장의 움직임, 이에 따른 피노키오의 움직임을 각각 고려해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웬만한 감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죠. 게다가 피노키오가 물속에 들어가서 움직이는 장면은, 물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미묘한 차이를 수작업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죠. 디즈니에서 피노키오를 완성하는데 2년이 걸렸다는 데, 전문가들은 2년 만에 이러한 작품이 나온 것이 놀랍다고 평가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피노키오는 백설공주에 이어 디즈니의 두 번째 장편 만화였고, 따라서 장편 만화 영화를 만드는 노하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작업했다는 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그저 그런 만화영화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 피노키오는 당대 최고의 만화영화 제작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디즈니가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만들기 전까지 만화영화는 단편으로만 존재했습니다. 아무도 관객이 장편 만화영화를 보러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월트 디즈니는 장편영화의 들러리에 불과하던 만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만화로 장편영화 만들기"에 도전합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관계자들은 이 프로젝트를 "디즈니의 미친 짓"(Disney's folly)라고 불렀죠. 대공황으로 많은 사람이 굶주리던 1930년대 중반, 만화로 장편영화를 만드는 일에 돈을 투자할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고, 영화를 완성해도 관객이 들지 확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실제로 디즈니는 백설공주를 3년간 제작하다 제작비가 바닥났고, 은행에 미완성된 영화를 보여주며 설득한 끝에 대출을 받아 영화를 완성합니다. 그는 장편영화를 만들기 위해 직원의 숫자를 대폭 늘렸는데, 대공황이었기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수많은 예술가가 디즈니로 모여들었고, 그는 비교적 작은 투자로 훌륭한 인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어려움 끝에 완성한 백설공주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디즈니가 뒤이어 내놓은 피노키오, 판타지아, 밤비 등이 연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디즈니는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미디어 제국을 세우게 됩니다. 디즈니의 미친 짓은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던 것이죠.

지금은 디즈니의 자회사가 된 픽사도 초기의 디즈니사만큼이나 어려운 시절을 겪고 나서야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원래 루카스필름에 속했다 스티브 잡스가 사들인 픽사(Pixar)는 컴퓨터 그래픽용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픽사의 하드웨어를 사려는 회사가 별로 없었기에, 픽사는 하드웨어의 성능을 보여주는 데모 영상을 만들던 솜씨를 발휘해 다른 회사의 그래픽 작업을 외주 받으면서 영상 제작분야에 뛰어들게 되고, 나중엔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던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된 장편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섭니다. 당시 픽사는 적자가 너무 심해 소유주인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팔아버릴 생각마저 했다는군요. 하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픽사가 발표한 Toy Story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면서 픽사는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자리 잡습니다. 결국, 애니매이션의 미래는 픽사라는 사실을 깨달은 디즈니는 픽사를 인수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픽사의 소유주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의 최대주주가 되죠.

요즘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만 추구한다지만, 어느 분야나 시대를 이끈 사람이나 조직은 커다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살기가 어렵다지만, 미래를 바꾸기 원하는 열정만큼은 잃지 않고 살면 좋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P.S. 전에 쓴 대로 저는 다음 주 한 주간 블로그 휴가를 보내고 다다음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도 남은 여름 보람차게 보내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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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