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곳 독일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 뉴스를 통해 천안함 사건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확인을 해보니 천안함이 서해에서 가라앉았고, 많은 사람이 실종되었더군요. 그게 여기 시간으로 금요일이었는데, 일요일인 지금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금요일에 나온 정보 이상의 내용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 시간이 지나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으니 많은 사람이 답답한 것은 당연한 일이죠.

지금까지 공개된 정보를 정리해보자면, 1,200톤급 초계함 천안함은 서해 백령도 부근을 지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강한 충격에 선체가 두 쪽이 나면서 가라앉았고, 104명의 탑승자 중 46명은 실종이 되었습니다. 지금 정부와 해군은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실종자를 구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지만, 배 앞부분과 뒷부분 모두 위치를 알지 못해 엄밀히 말해 진상 규명도, 실종자 구조도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천암함 침몰의 원인엔 몇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선, 고의로 일어난 사건이라면 북한의 공격 또는 내부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소행으로 보기엔 북한 쪽 반응이 너무 침착하고, 북한이 이러한 일을 저지르려면 잠수함을 보내 어뢰를 발사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한데, 군의 발표로는 이러한 활동이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내부의 소행으로 보자면 탑승한 군인이 저지른 일이라는 뜻인데, 이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군인의 명예를 짓밟는 일이라 함부로 언급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만약 이번 일이 고의가 아닌 단순한 사고라면 암초와 충돌, 선박의 노후로 말미암은 균열, 운반 중이던 어뢰나 석유로 말미암은 사고 일지도 모릅니다. 천안함이 암초와 부딪쳐 침몰했을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백령도 근처 바다는 북방한계선 때문에 해군이 늘 배를 배치해 놓은 지역이고, 반세기 이상 배가 멀쩡히 다니던 길에 갑자기 암초가 생겨났다고 보기는 어렵죠. 선박의 노후 문제는 천안함이 건조된 지 20년이 넘은 배이고, 평소에도 자주 수리를 했다는 보도 때문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배가 노후가 되면 균열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두 쪽이 나면서 침몰했다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운반 중이던 석유나 어뢰가 터졌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목격자의 증언을 따르면 폭발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었기에 이도 가능성이 크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뚜렷한 원인을 찾기가 어렵기에 북한이나 우리 군, 심지어 제삼국 군의 어뢰가 떠다니다가 배에 부딪혀 사고가 났다는 도 나오고 있습니다. 천안함에 탑재했던 기뢰가 떨어지면서 폭발해 사고가 났다는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죠.

천안함 침몰의 원인 분석엔 정치적 성향이 큰 영향을 미치는 듯 보입니다. 보수를 대표하는 조선일보는 피격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하는 기사를 올렸고, 보수 네티즌들도 "북한이 작은 잠수함이나 어뢰정을 파견해 천안함을 공격했다."라며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에 비해 진보 언론과 네티즌은 사고로 말미암은 침몰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부의 무능함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태평양 한가운데도 아니고, 본토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서 사고가 났는데 며칠이 지나도 가라앉은 선체가 어디 있는지 조자 모른다는 사실은 정부와 군 당국의 무능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많은 실종자가 나왔지만 해군의 초동대응은 잘됐다고 생각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의 정서와 청와대의 정서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사고의 원인이) 우리도 궁금하다."라는 박선교 청와대 대변인의 은 정부가 이번 사태를 맞아 얼마나 허둥대고 있는가를 증명합니다.

많은 사람은 이러한 정부의 무능을 대통령부터 총리까지 군 면제자들이 모인 정부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이러한 정부 지도자들이 대부분 석연치 않은 이유에서 면제되었다는 점, 그리고 군 면제자들이 정부의 요직을 독점한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는 군사 부분에서 국민에게 신뢰를 주기 어려운 정부임이 분명합니다. 정부를 경제 발전을 이끄는 조직으로만 생각한 국민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기에 주저하지 않았지만, 그 대가를 군사적 위기 상황에서 치르는 것이죠.

아직도 46명의 군인이 실종 상태이기에 이번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쪽난 배가 떠 있는 사진이 공개되고 나서도 "배가 어디갔는지 모르겠다"는 발표를 접해야 하는 국민은 이 정부가 이번 사태를 제대로 매듭지을 능력이 있는지 심히 의심하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선 민심을 돌이키려면 정부는 빨리 실종자 수색을 완료하고,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고 원인을 규명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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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에 활동한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당시의 많은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에 심취했지만, 이와 동시에 개인을 억누르는 집단주의의 위험에 대해 깊이 깨달았고, 전체주의 국가가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경고하기 위해 1984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가 창조한 미래의 세계에서 시민은 정부의 사실 날조에 근거한 선전에 세뇌되어 암울한 현실에도 정부에 저항하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이 소설 속의 독재정부는 국민을 조종하기 위해 Newspeak을 이용합니다. Newspeak은 영어와 비슷하지만, 정부의 정책과 어긋나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문법을 단순화하고 어휘를 줄인 언어입니다. 소설 속의 독재정부가 Newspeak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람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는데 언어가 단순해지면 생각도 단순해지고, 따라서 생각이 단순한 국민은 어리석을 수밖에 없기에 정부에 함부로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치가가 국민을 속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언어를 파괴하고 나면 국민은 정치자의 잘못을 지적할 방법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정직한 정치가일수록 언어를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써서 국민의 비판을 막아버립니다. 그에 비해 정직한 정치가라면 속일 필요가 없기에 말이 시원시원하게 나오기 마련이죠.

정치가 언어를 파괴하는 예는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라크 침공"을 "이라크 해방"으로 표현한 부시 행정부도 그러한 예죠.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문화 혁명"이라고 부른 중국 정부도 언어를 파괴한 예입니다. 하지만, 언어 파괴에서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정부는 바로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부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언어파괴는 대통령 취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출퇴근 시간대 직행열차 운영 등 각종 세부사항에 대해 시시콜콜 정책을 쏟아내던 인수위는 영어조기교육 등 민감한 사항에 대해 발표를 했다가 여론이 안 좋으면 무조건 "오해다." 한마디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서 처음부터 이명박 정부는 "오해정부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통신비 인하" 공약을 내걸었다가 "통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통신비가 싸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통신비를 절약하는 방법은 통신비를 올리는 것이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정부가 통신비 인상을 추진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습니다(믿기지 않겠지만, 제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쓴 이명박 정부, 양치기 소년이 되려는가?에 보면 좀 더 자세한 상황이 나옵니다). 미국과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임하겠다"는 말은, "문제 있으면 안 사먹으면 될 것 아니냐"는 뜻으로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촛불시위가 절정에 이르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촛불 시위를 바라봤다"는 그의 감상적인 발언은, 결국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공격 앞에서 의미를 잃고 말았죠. 그리고 떠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깍듯이 예우하겠다"는 말은... 이건 뭐 말할 가치도 없군요.

이명박 정부의 언어사용은 단지 화려한 수사를 넘어 언어의 본질을 뒤흔드는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환경을 보전하는 대신 개발함으로 환경을 파괴하면서, 이러한 작업을 "녹색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환경 보호론자들이 좋아하는 Green이라는 말을 가져다 환경을 파괴하는 데 써 버리는 것이지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언어를 파괴한다면, 도대체 정부의 어떤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정부가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말하면 믿어도 될까요?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언어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간단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을지언정, 언어의 유희를 즐기지도 않고, 문학작품을 읊조리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언어는 인간성의 반영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올바른 언어를 써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처럼 언어를 파괴한다면 인간성도 따라서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인간성이 파괴된 인간은 정의감은 없고 본능만 남기 때문에 권력자가 아무리 불의를 저질러도 본능만 충족시킬 수 있다면 권력자에게 반항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권력자라면 인간성이 파괴된 인간을 다스리기가 훨씬 편한 법이지죠.

하지만, 진정한 인간성이 남아있는 인간이라면 이처럼 언어가 파괴되는 현상을 받아들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해야 올바른 언어이고, 올바른 인간이지요. 지금 한국에 어둠이 짙게 깔린 형상이지만, 이러함 어둠 속에도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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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정치의 재림

정치 2009/05/25 17:52
많은 국민에게 큰 슬픔을 안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집권세력엔 두려움으로 작용했나 봅니다. 뉴스를 들으니 정부는 분향소가 마련된 덕수궁 대한문 부근을 경찰버스로 에워싸고 경찰들을 주둔시켰더군요.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셨던 분이 돌아가셨고, 시민이 자발적으로 추모하기 위해 모여들었는데, 정부 눈에는 이들 시민이 "잠재적 시위꾼"으로 보였나 봅니다. 하긴 "죽은 제갈량이 산 중달을 쫓아냈다"는 말처럼, 실력도, 인기도, 정당성도 없으면서 살아 있다는 이점 하나로 버티는 사람은 죽은 사람조차 무섭기 마련이겠죠.

이명박 정부는 "실용"을 구호로 내세우고 집권했지만,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통치이념은 "공포"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자아내게 해서 정부의 정책에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지요. 정부는 공포심을 일으키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우선, 도심에 전경버스를 배치하고 수많은 경찰을 주둔시킴으로 육체적 공포감을 조성합니다. 이는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대학 캠퍼스에 경찰을 주둔시킨 것 만큼이나 시민에게 심리적 압력을 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두 번째, 미네르바 구속에서 보듯, 정부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법적으로 공격합니다. 이는 이미 수많은 블로거가 블로그를 폐쇄했거나 비공개로 바꾼 데서 보듯 파급 효과가 큽니다. 세 번째, 강만수 장관, 어청수 청장이 아무리 욕을 먹어도 한동안 경질하지 않았던 예에서 보듯, 여론을 무시함으로 "정부를 위해 궂은 일을 한 사람은 정부가 보호해준다"는 사실을 알림으로 정부 구성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국민과 대치하도록 격려하고, 국민은 "아무리 정부로부터 피해를 당해도 결국 나만 억울할 뿐이구나"라는 절망감에 빠지도록 합니다.

지금 상황은 70-80년대 군사정권 당시 정부의 공포 분위기 조성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당시 군사정부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정당성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국민을 다스리는 유일한 길은 공포심 유발뿐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정부에 비판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고문하므로 많은 사람이 감히 정부를 비난하지 않도록 압박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고문은 없다고 하지만, 고문만큼이나 무서운 고소, 고발, 세무조사 등으로 사람들을 압박하고, 이로 말미암아 많은 국민은 정부에 대해 비판하기를 겁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비겁한 정책이고, 빨리 사라져야 할 정책이지 결코 정상적인 정책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정부는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찼고, 따라서 국민은 정부를 비판할 권리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당시엔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억누루고자 광화문 네거리를 막아버릴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이처럼 정당성에 자신이 있는 정부는 결코 공포정치를 실시하지 않습니다. 서유럽 대부분 국가도 국민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고소, 고발을 통해 국민을 겁주는 예는 극히 드뭅니다. 물론 이탈리아는 예외적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않은데, 이는 이탈리아가 워낙 정치적 후진국이기 때문이고, 서유럽에서는 흔치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이명박 정부도 선거로 당선된 것은 사실이고, 따라서 정당성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손님으로 초대받아 남의 집에 들어간 사람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면 손님의 자격을 잃듯, 정당하게 선거로 뽑힌 정부라 할지라도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정책을 펴는 순간 정당성을 잃기 마련입니다. 정당성을 잃으면 국민이 두렵고, 국민이 두려우면 국민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정책에 의존하기 마련이죠. 지금 이명박 정부가 그런 모습이고, 대한문 주위 봉쇄는 이러한 두려움의 표현일 뿐입니다.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떠나간 분이 아쉽고 그리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픈 마음뿐이죠. 그러한 애절한 마음을 무시하고, 끝까지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만에 하나 벌어질 시위의 가능성" 조차 제거해 버리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정말 역겹기 그지없습니다. 자신들이 정당하다면 아무리 많은 시민이 모인들 무엇이 겁나겠습니까?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워낙 국민의 뜻과 먼 정치를 펼치는 중이라는 사실을 자신들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면 반정부 시위를 벌일 것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과연 이러한 현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답답하기만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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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달러표시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특히 "3월 위기설"을 부인하기 위해, "한국의 은행들이 달러를 쉽게 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예로 많이 언급이 되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이 워낙 고금리 (8-9%)라서 발행이 가능했더군요. 현재 리보 금리는 1년물이 2%정도인데 8-9%의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렸다니, 한국 은행들의 외환 수급 사정은 여전히 좋지 않은 듯 싶습니다.

이번에 발행한 달러표시 채권 중 일부를 국내 금융기관이 매입하였는데, 언론에서는 이를 "모럴 해저드" "돈놀이" 등 자극적인 문구로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즉, 은행들이 달러가 부족해서 한국은행이 저리로 달러를 공급해줬는데,  이렇게 얻은 달러를 다시 고금리 상품에 투자해 차액을 남겼으니 문제가 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최근 언론에서 "도덕성"을 근거로 비난한 몇가지 예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도 도덕성이 아닌 정부 정책이 문제의 핵심으로 보입니다.

지금 한국은행과 정부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이리저리 뛰느라 보는 사람이 정신이 없을 지경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니 부동산 관련 규제를 다 풀고, 은행이 돈이 없다니 CD를 매입해주고, 달러가 없다니 저리로 달러를 공급해주고, 이자가 높다니 기준금리를 낮추고...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일을 벌인 결과 부동산 가격은 내림세가 주춤하고, 시중금리는 낮아졌고, 은행은 달러가 넘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정작 원하는 경제가 살아났나요? 그건 아니죠. 오히려 경제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제가 엉망이 된 가장 큰 원인은 경제를 살리려는 정부의 간섭 때문입니다.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니 은행들이 대출을 할 의욕이 전혀 안 생겨 (이자도 몇푼 안되는데, 빌려줬다 떼이느니 그냥 가지고 있는 편이 속편하겠죠) 돈이 기업과 가계로 흘러가질 않고, 달러가 남아도니 외국에서 달러를 구해와야 할 외화표시 채권이 국내 달러를 모아오고, 꺼져야할 부동산 거품이 꺼지질 않는 중이죠. 이를 종합하면, 경제 사정은 나빠졌는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할 구조조정과 경제의 체질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특별히 꼬집어 문제를 잡아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는 일본이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요?

시장경제가 효율적인 원인은 창조적 파괴 때문입니다. 즉, 비효율적인 기업은 경쟁에서 도태하고, 효율적인 기업으로 자원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효율성이 올라가는 것이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 바로 "창조적 파괴"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문제 해결 방식은 금융 기관이 문제가 있으면 한은에서 자금을 공급해서 막고, 기업이 문제가 있으면 은행에서 자금을 공급해서 막는 식이죠. 정 문제가 있는 기업은 시장의 논리를 따라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부에는 한 명도 없는 듯 싶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위기가 커도 무너진 기업이 거의 없는 것이죠. 1997년에서 1998년 사이어 얼마나 많은 기업이 무너졌는지를 생각한다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인지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기업이 무너지지 않고 위기를 통과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있겠는가?"라고 물으실지 모르지만, 이번 경제 위기는 절대 고통이 없이는 끝나지 않을 것이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고통을 뒤로 미룰 뿐, 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업과 은행을 정부가 무리해서 생명을 연장한다고 한국 경제가 살아날 리는 없다는 말이죠.

지금 처럼 시장이 왜곡된 상태에서는 "모랄 해저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은행들에게 "돈은 걱정 마라, 우리가 필요한 만큼 공급할께"하고 약속을 하는데, 어떤 은행이 "정부가 준 귀한돈, 한 푼이라도 낭비하지 말고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쓰자"고 도덕군자처럼 행동하겠습니까? "뭐? 필요한 만큼 돈을 준다고? 그러면 위험한 가계대출 같은 것은 다 멈추고 이자 많이 주고 안전한 채권에만 투자해야겠다"고 나설 수 밖에 없죠.

인간, 특히 큰 이익을 눈앞에 둔 인간은 늘 욕을 먹고 돈을 버는 편을 택하기 때문에, 모럴 해저드를 막으려면 모럴 해저드가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을 마련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시장이 완전히 왜곡되었기에, 곳곳에서 모럴 해저드가 생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정부의 심정을 대변하는 언론은 "은행의 부도덕성" "기업의 부도덕성" "외국인 투자자의 부도덕성"을 비난하겠죠. 하지만 이들은 늘 부도덕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고, 이를 막으려면 정부가 이들에게 도덕적 호소를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정책을 잘 써야 합니다. 시장은 있는대로 왜곡해 놓고 모럴 해저드를 탓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맞겨놓고, "고양이의 부도덕성"을 지탄하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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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문을 보니 정부에서 "외환위기가 끝났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단 기사가 나오더군요. 요 며칠 사이에 환율이 많이 내리다 보니 그런 판단이 나온 듯 한데, 상황을 잘 살펴보면 이는 너무 성급한 생각입니다.

우선, 최근 원달러 환율이 많이 내린 원인은 원화가 강세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달러화가 약세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지금 발권력까지 동원해 통화량을 늘이겠다고 공격적으로 나오는 중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달러화의 가치가 유지된다면 비정상이겠죠. 따라서 달러화의 가치가 갑자기 떨어졌고, 이것이 원달러 환율에 반영된 것입니다. 가치가 급변하지 않은 유로화 대비 원화 환율은 그리 많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달러화의 가치하락 없이 원화의 가치가 상승했다고 할찌라도, 지금 환율은 너무 높습니다. 지난 몇 년간 원달러 환율은 900-1100원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내렸다고 해도 거의 1300원에 가깝죠. 즉, 평소보다 20-40%가 절상된 상태인데, 이렇게 본다면 환율이 더 내려야 위기가 끝났다고 할 수 있겠죠.

다음으로,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금리 하락도 외환위기 종식의 근거로 들던데, 흥미롭게도 CDS가 699bp (6.99%)까지 치솟았을 때, 정부는 "CDS는 거래도 얼마 안되고... 어쨌든 별로 믿을 수 없는 수치다"고 주장했습니다. CDS가 오를 때는 믿을 수 없는 수치였는데, 내리고 나니 갑자기 중요한 수치로 둔갑을 하는군요. 그러면 CDS 수치가 다시 솟아오를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현재 미국 국채의 10년물 CDS는 50bp 수준입니다 (11월말 수치인데, 미국 국채 CDS는 유료 자료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최신 수치가 없네요). 이는 사상 최고치로,  평소엔 5-10bp수준입니다. 그에 비해 한국물의 CDS는 많이 떨어졌다고 해도 300bp수준입니다. 즉, CDS가 안전한 수준으로 내려왔다고 하기엔 아직 이르죠.

한국에서 달러 유동성을 표시하는 스왑베이시스는 현재 -300에서 -400bp 수준입니다. 이는 10월에 비해 많이 나아진 수치이지만, 정상적인 상황에서 스왑베이시스가 -50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여전히 상당히 높습니다.

무역수지 흑자와 은행의 외환차입 성공은 매우 반가운 소식임에 분명합니다만, 앞으로도 이러한 기조가 흔들리지 않고 정착해야 외환위기를 끝낼 수 있지, 이제 막 시작한 상황을 보고 "이제 위기는 다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성급해 보입니다.

지금 상황은 죽어가던 환자가 한 고비를 넘긴 상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국내외 환경은 지뢰밭 처럼 위험 요인이 많고, 어느 부분이 어떻게 터질찌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부는 "빨리 외환위기 끝났다는 선언부터 하자"고 성급하게 서두르는 듯 싶네요. 정부가 "외환위기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다시 환율이 오른다면,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기 어렵게 됩니다. 정부는 말로 위기를 끝낼 생각을 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을 골라서 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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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한미 통화 스와프 채결 소식이 들린 이후로 환율은 내리고 주가는 오르는 등 시장이 빠르게 정상화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심지어 조선일보에서는 "IMF 망령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했고, 어떤 외환 전문가는 "앞으로 환율이 급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예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로부터 두 주가 지난 지금, 시장은 거의 10월 30일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3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35.42포인트(3.15%) 내린 1,088.44로 장을 마쳤습니다. 환율도 이틀째 급등해 올라 1,391.5원에 이르렀습니다. 무엇보다도 CRS 금리가 -0.20로 사상 최저 수준을 이어갔습니다. 주1) 이렇게 되면 한미 통화 스와프 채결이 발표되었을 때, 외환 위기가 끝난 듯 호들갑을 떨던 보수언론과 정부가 민망해지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위기가 돌아온 것은 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보는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명박 정부의 판단에 따르면 한국 경제의 펀다멘탈은 문제가 없고, 한국에 대한 외국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는 단지 "한국 흔들기"일뿐이고, 문제는 미네르바님이나 SDE 님 등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 "불순세력" 때문에 시장에 불안심리가 작동하는 것이고, 따라서 정부가 나서 기업에 "외환을 풀어라"고 호통을 치고, 은행에 "대출을 확대하라"고 꾸중을 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게다가 "미국"이라는 울트라 캡숑 초강대국이 이명박 정부를 어여쁘게 봐줘서 300억 달러라는 네번째 선물을 준다니 외국인들도 함께 감격해 외환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으라는 희망찬 생각을 했겠죠.

하지만 이는 현실에 대한 거대한 오판이고, 특히 미국에 대한 맹신은 이들의 판단을 완전히 흐려놓았습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한국이 6.25를 겪고 헐벗고 굶주릴 때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미국은 신과 같이 전능한 존재요, 미국이 나서면 어떠한 투기세력도 벌벌떨 수 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미국이 한국을 돕겠다고 나섰으니, 감히 세상의 누가 한국의 안정성을 의심하겠습니까? 하지만 세계의 투자자들은 미국에 대한 그러한 환상이 없습니다. 그들은 미국이 아직도 세계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은 알지만, 미국이 도와주는 나라라고 꼭 위험에 빠지지 말란 보장은 없다는 사실도 잘 압니다. 특히 이번 통화 스와프 내역을 보면 300억 달러 내에서 내년 4월 30일까지만 보장이 됩니다. 그 이후에는 금액의 증가나 기간의 연장이 될찌 안될찌 모르는 것이지요. 조선일보는 "필요에 따라 추가 협상을 통해 스와프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조선일보의 희망이지 확정된 사안이 아닙니다. 한국을 비롯한 4개국이 동시에 미국과 스와프 협정을 맺었는데, 과연 한국만 추가협상이 가능할까요?

하루에 수십억 달러가 거래되는 한국 외환시장의 크기를 볼 때 300억 달러는 그리 큰 금액이 아닙니다. 즉, 결정적인 위기가 닥친다면 300억 달러가 더 있다고 위기를 넘긴다는 보장은 없다는 뜻이죠. 그렇게 따진다면 300억 달러 통화 스와프는 없는 것 보다는 낫지만, 사태를 바꾸어 놓을 만한 영향력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보지 못한 이명박 정부와 보수 언론은 "미국이 도와줘서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되었다"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이지요.

지금 세계의 언론과 금융기관은 한국의 은행들에 대해 크게 불신하는 모습입니다. 지난달 S&P가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데 이어 며칠전 피치도 같은 판정을 내렸습니다. 또다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지금 국내 은행들을 방문조사 중인데, 만약 무디스까지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다면 국내은행들은 정말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물론 은행들은 "우리의 신용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국제 금융계에서 신용평가회사의 말은 경기장에서 심판의 말과 같습니다. 심판이 잘못된 판정을 내린 것일 수도 있지만, 일단 심판이 판정을 내리면 이에 따라 경기가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즉, 신용평가회사의 판단이 옳건 그르건, 한국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내려간다면 그 자체로 위기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 달간 한국 경제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몇몇 기업은 부도가 나거나 부도가 날 징후를 보이는 중입니다. 이러한 부도가 산업 전반으로 퍼질찌, 그리고 부도사태가 은행의 건전성을 얼마나 손상할찌 등이 주목해 보아야 할 포인트입니다. 미국과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 1)CRS 금리가 마이너스에 머무는 것은 리보 금리가 낮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통화 스왑 (CRS)거래는 원화와 달러화를 일정 기간 교환하면서 달러화를 빌려주는 사람은 리보 금리를 받고, 원화를 빌려주는 사람은 CRS 금리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리보 금리가 4%고 CRS 금리가 3%면 달러화를 빌려주는 사람은 4%를 받고, 원화를 빌려주는 사람은 3%를 받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에선 달러를 빌려주는 사람이 총 1%를 받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리보 금리가 내려가면서 달러를 빌리는 사람이 내야 하는 금리 부담이 줄어들었습니다. 1년물 기준 한달 전 리보 금리가 4.17%였는데, 지금은 2.80%밖에 안합니다. 따라서 달러를 빌리는 사람으로선 CRS 금리가 조금 내려도 전체적으로 볼 때 과거보다 달러화 조달비용이 늘어난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리보 금리가 내려갔다고 하더라도 CRS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분명히 비정상적인 상황이고, 달러화 유동성을 보여주는 스왑 베이시스 (CRS 금리에서 IRS 금리를 뺀 수치)가 거의 -500bp (bp=0.01%)에 가깝다는 사실은 확실히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스왑 베이시스는 0에서 -50bp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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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저는 이명박 정부를 매우 싫어하지만, 그래도  이명박 정부에서 잘하는 일이 있으면 잘하는대로 인정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기에 결국 객관성 없이 감정적으로 헐뜯는 글을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속으로는 '이건 또 무슨 꿍꿍이?'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연히 예감이 안좋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하기 보다는 시장이 긍정적으로 인정한다면 긍정적인 일로 받아들이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협정 소식이 들린 직후 (한국시간으로 새벽 4시 경이였죠)에 쓴 은 스와프 협정에 대해 그리 부정적인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불안감을 떨칠 수 없네요. 그러한 불안감의 근거는 바로 CRS 금리의 동향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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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31일 CRS금리가 0%수준으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이는 지난 10월 중순 최악의 상황일때로 돌아갔다는 뜻으로, 언론의 긍정적인 보도와는 다르게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이 한국의 외환 부족을 해소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전에도 설명했지만 CRS 금리는 외환 (FX) 스왑시장에서 달러화를 빌려주고 원화를 빌리는 사람이 내는 금리입니다. 원화를 빌려주고 달러화를 빌리는 사람은 리보 금리를 내기 때문에 따로 표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CRS 금리가 0%라는 말은, 달러화를 빌려주고 원화를 빌리는 사람은 리보 금리 (오늘 1년물 기준 3.51%)만큼 이자를 받으면서 자신은 이자를 안내도 된다는 뜻입니다. 즉, 달러를 빌려주려는 사람이 워낙 없어서 달러 있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시장이 성립되었다는 뜻입니다.

은행이 외환을 구하는 방법은 세가지입니다. 우선 외국에서 직접 외화를 빌려오면 되는데, 최근 한국의 은행이 외국에서 외화를 빌리는데 성공한 예가 두 어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한국의 은행이 쉽게 외국에서 외화를 구해온다면 제가 이 글을 쓰지도 않겠죠). 두번째 방법은 스왑 시장에서 돈을 구하는 방법인데, CRS 금리가 0%에 스왑 베이시스가 500bp 가까이 된다는 말은 이나마도 쉽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세번째는 현물 시장에서 직접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은행이 현물시장에서 달러를 구하는 것은 프로야구 선수가 동네 야구장에서 500원 동전 넣고 기계에서 나오는 볼 치는 것 만큼이나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일은 없어야 정상인데, 지금 은행의 달러 사정이 너무 안좋아 이러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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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한국의 외환 스왑시장에 들어오는 이유는 이자가 높은 한국에서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거대은행 A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자면, A는 신용도가 높기 때문에 리보 금리로 쉽게 돈을 구합니다. 그렇게 구한 달러화를 한국의 스왑시장에서 풀면 달러가 필요한 한국의 B은행이 이를 받겠죠. B은행은 달러금액에 해당하는 원화와 리보 금리를 A은행에 줍니다. A은행은 CRS 금리를 B 은행에 내죠. 그러면 A은행은 B은행에서 받은 리보 금리로 이자를 갚습니다. 그리고 거래를 통해 받은 원화로 국채를 삽니다. 국채의 가격은 당연히 CRS보다 높고, 따라서 A은행은 쉽게 조달한 돈으로 안전하게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스왑 거래는 처음 정한 금리대로 나중에 다시 돈을 서로 갚기 때문에 환차손의 위험도 없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CRS 금리가 0%에 가깝고 스왑 베이시스가 500bp에 육박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큰 돈을 벌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외국의 금융기관은 한국의 스왑시장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이 발표되었는데도 CRS금리가 떨어진다는 말은 이들이 오히려 한국 스왑시장에서 떠난다는 뜻입니다. 이는 한국의 은행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졌다는 뜻이고, 한국의 은행들은 달러를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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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나면서 신용경색이 시작되자 평소에 50bp이하를 유지하던 스왑 베이시스가 세자리수로 급등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몇달 지속되자 은행에서는 "환전창구에서 바꿔줄 돈도 부족하다"는 소리가 들여왔습니다. 그만큼 스왑시장은 은행이 외환을 구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에 비해 외환 현물 시장은 은행 보다는 기업이나 개인의 돈이 오가는 시장입니다. 따라서 기업이 "환율이 내릴 때가 되었으니 빨리 달러를 팔아버리자"고 판단하고 행동하면 환율은 내려갑니다. 하지만 환율이 내렸다고 은행의 외환부족이 해결되지는 않지요. 은행의 외환부족은 은행이 외국에 나가 돈을 빌려 오던지, 아니면 외환 스왑 시장에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요즘 이 두가지가 모두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SDE님은 현 상황에 대해 "한국의 크레디트 라인이 끊어졌다"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1997년 외환위기의 직접 원인이었기도 하죠. 그런데 'IMF 망령'에서 벗어났다 는 선언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외환위기 끝났다"고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 더욱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 외환위기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찌 고민할 때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한미 통화 스와프 타결로 고비를 넘겼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는 곳이 많더군요. 정말 현실을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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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까지 끝없이 오르던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특히 원유 가격은 60달러대로 떨어져 올 여름 고점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진 셈입니다.

원자재 가격 하락엔 여러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최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달러로 표기하는 가격이 내려가는 면도 있고,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원자재 수요가 줄었기에 가격이 내려가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투기 자금이 원자재에 몰렸는데 (쉽게 말해, 개인이나 기관이 원자재를 사들였다가 더 비싼 값에 판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물론 물건을 직접 사는 것은 아니고, 파생상품을 거래하겠죠), 최근 유동성이 악화한 금융기관들이 자산을 대량으로 매각하였기에 원자재 시장에 몰렸던 자금도 빠져나가는 것도 가격 하락의 원인입니다.

이러한 원자재 가격의 하락은 지금 세계곳곳에서 일어나는 디플레이션 현상의 일부분입니다. 디플레이션은 시중에 돈이 부족하기에 돈의 가치가 올라가고, 반대로 상품이나 부동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죠.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대공황은 디플레이션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대공황 당시 미국에선 곡물 가격이 40-60%나 떨어져 농민들이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는 세계 대공황의 원인이 통화의 부족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돈이 많이 돌지 않으니 돈이 귀해지고, 돈이 귀해지다보니 상품의 가치는 떨어지고, 상품의 가치가 떨어지니 기업은 운영이 힘들어 노동자를 해고하고... 이렇게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대부분의 정부는 세계 대공황의 교훈을 기억하고 통화량이 부족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하지만 통화량이 너무 많으면 두가지 위험이 발생합니다. 우선, 돈이 시중에 넘치면 돈의 가치가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미국은 원래 달러의 가치를 금에 기초로 하는 금본위제를 따랐는데, 무역적자로 돈이 부족해진 닉슨 대통령은 1971년 금본위제를 폐지합니다. 금본위제가 폐지되자 미국 정부는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게 되었고 (금본위제에서는 금을 보유한 만큼만 달러를 찍어낼 수 있죠), 이는 결국 70년대의 오일쇼크와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됩니다.

70년대 경제위기는 물가상승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경기침체를 낳았습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니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데, 이와 함께 기업의 수익이 나빠져 경제성장률도 함께 둔화한 것이지요. 이러한 경제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 (stagflation)이라고 부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대단히 골치아픈 문제인데, 물가를 잡으려고 시중의 돈을 걷어들이면 경기가 더 나빠지고, 경기를 살리려고 시중에 돈을 풀면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기 때문이죠.

통화량 증가가 일으키는 또 한가지 문제는 바로 버블경제와 이에 따르는 거품의 붕괴입니다. 이는 90년대 일본이 겪은 문제죠. 80년대 수출 증가로 많은 돈을 번 일본은 경기가 과열되면서 부동산의 가격이 폭등하였습니다. 문제는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폭등한 부동산 가격은 언젠가 정상적인 가격으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결국 90년대 일본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거품붕괴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와 함께 디플레이션이 발생해 10년간 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했죠.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10년"입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통화량은 늘 적정수준을 유지해야지, 너무 부족하거나 너무 많으면 꼭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통화량을 조절하는 기능은 중앙은행의 역할입니다. 지금 미국이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를 겪는 것은 그린스펀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 (FRB)의장이던 시절에 돈을 너무 많이 풀어서 경기가 과열되면서 집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고, 올라갔던 집값이 떨어지면서 수많은 문제 (예를 들어 금융기관의 부실화, 신용경색으로 인한 기업의 자금 부족)가 함께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지금 상황은 물가는 올라가면서 경기는 침체하는 스테그플레이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집값과 주식가격이 떨어지는 등 디플레이션의 모습도 나타나고 있죠. 이명박 정부는 시중에 돈을 풀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은행에 유동성을 공금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조치가 그러한 예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시중에 돈을 더 공급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지금은 정부의 재정 건정성을 확보하고 한계기업을 정리함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쉽게 말해 "경제의 거품을 빼자"는 주장입니다. 지금 한국 경제에 거품이 많이 끼었는데, 정부가 나서서 거품을 키우면 문제가 더 크게 되기 때문이죠. 제가 보기에도 지금 한국 경제가 살 길은 이 기회에 거품을 빼고 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방법 뿐입니다.

물론 고성장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이명박 정부가 이러한 의견에 귀를 기울일리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 조선일보는 '한국은행이 위기의 진원지'라는 소리 들어서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빨리 유동성을 공급하고 금리를 대폭 인하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돈을 많이 풀어 무너져가는 기업도 살려내고, 집값도 떨어지지 못하게 막아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유동성을 더 공급하면, 망할 기업이 망하지 않아서 부실이 한국 경제 전체로 번질 위험이 극히 큽니다. 특히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외국의 언론은 국내의 부채 문제가 외환부족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데, 지금 돈을 막 빌려준다면 나중엔 국민과 기업 전체가 빚더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한국은행을 공격한 것은 결국 말을 듣지 않으면 한국은행 총재를 바꾸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 총재는 임기가 보장되긴 하지만, KBS 사장 해임에서 볼 수 있듯, 이명박 정부는 임기 같은거 신경 안쓰죠. 즉, "지금 우리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시중에 돈을 풀 작정이니, 한국은행이 우리 정책에 따라오지 않는다면 총재를 바꿔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단순하게 유동성 공급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정말 이명박 정부는 아마추어 정부만도 못해서 뭐라 부를찌 모르겠다는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말이 생각납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도 못한채, 한국은행의 독립성도 무시하면서 돈을 풀어 거품을 키우겠다는 발상이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생각해보면 누굴찌는 뻔하지만). SDE님은 이런식으로 가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올찌도 모른다고 경고하였는데, 요즘 정부 하는 모습 보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찌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부디 정부가 제정신 차리고, 올바른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봐 온 모습으로는 그러한 희망이 안생겨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대한민국, 정말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런지 걱정이 앞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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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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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지만, 주가동향은 관심있게 지켜봅니다. 주가는 실물경제의 흐름을 반영하는 가장 정확한 정보이기 때문이죠. 지난 10년간 주식시장을 관찰한 결과, 한가지 깨달은 사실은 단기 주가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지난 주 미국의 구제금융안이 하원에서 거부된 후, 미국 주가가 대폭 떨어진 다음날, 코스피지수는 거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폭락이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예상과 다르게 폭락하지 않은 것이죠.

주가의 단기적 움직임은 예측할 수 없지만, 주가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대세가 뚜력하게 나타날 때는 장기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찌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그러한 큰 흐름이 눈에 띄었던 예는 2004년말입니다. 당시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가장 안좋은 상황"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주식 시장은 조용히 상승을 거듭해 900선을 돌파한 상황이었습니다.

대세 상승장의 큰 특징은 소문없이 오른다는 점입니다. 그에 비해 하락장의 특징은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점이죠. 또한 상승장은 실물경제가 좋아지기 6개월-1년 전에 시작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경제에 대해 극도로 비관할 때 시작하는 법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면 아직은 상승장이 오지 않은 셈이죠.

무엇보다 상승장과 하락장을 구분하는 좋은 방법은 조중동을 읽는 것입니다. "조중동의 반대로 하면 돈번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2004년말에 대세 상승장을 예측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당시 조선일보가 "굶주린 젊은이들이 음식 가판대 앞에서 먹을 것을 얻고자 서성인다"는 식의 경제파탄 상황에 대한 보도를 잔뜩 실으면서도, 주가의 상승 움직임은 거의 보도를 안했기 때문입니다.

조중동의 보도는 최근에도 그 진가를 발휘했는데,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하기 얼마 전 까지 "리먼을 인수해야 서울과 월스트리트를 잇는 금융고속도로가 생긴다"는 등 미사여구를 남발했고, 6일 전세계 주가가 폭락하기 몇시간 전, 미국 주식을 인터넷으로 직접 매입해 큰 돈을 번 개미 투자자의 예를 보도해 한국에서 망한 개미, 미국에서도 망할 길을 알려주는 영민함을 과시했고, 동아일보도 이에 질세라 손절매를 고민하는 개미들에게 "지금 손절매? 잠깐, 과거 위기 이후를 뜯어보자"며 하락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붙잡았습니다.

물론 "그럼 책임 있는 언론에서 주가 하락을 막는 기사를 써야지, 공황심리를 전파하는 기사를 쓰면 되느냐"고 묻는 분도 있겠지만, 조중동은 노무현 정부때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 붙을 정도로 손발이 오그러지는 경제파탄 상황을 누구보다 열심히 보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중동의 견제에도 주가는 올랐고, 지금은 조중동이 투자자를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함에도 주가는 떨어지는 중입니다.

제가 주가를 중요시 여기는 이유는 주가는 경제상황의 반영이지 정치적 해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상황에 대한 가장 믿을 수 있는 평가라는 뜻이지요. 조중동이 요즘 헛기사를 남발하는 원인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조중동의 평가가 시장의 평가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주가의 흐름을 알고 싶으시다면 조중동의 논조를 잘 읽어보시고 그 반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조중동은 우리에게 변장한 축복 (blessing in disguise)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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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가 주춤하고 국회가 개원하면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작심한 듯 주춤했던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우선 과반수를 훨씬 넘는 한나라당의 국회 운영을 쉽게 하기 위해 단상점거, 몸싸움 금지법을 추진 중이고, 노무현 정부가 남기고 간 기록을 현 정부에서 볼 수 있도록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내놓은 대표적인 대책인 종부세도 대폭 완화해서 비싼 집 가진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한나라당이 추진중인 입법내용에 대해선 한겨레 기사 ‘우향우 입법’ 홍수…‘거여’ 밀어붙이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종부세 완화나 대선 공약인 기업세 감면에서 드러나듯,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실용정책은 쉽게 말해 부유층에 유리한 정책입니다. 하지만 국민에게 설명할 때는 "부자를 잘살게 함으로 가난한 사람도 경제적 이익을 받도록 한다"고 말하는데, 문제는 많은 국민이 이러한 설명을 믿는다는 점이지요.

이러한 정책은 미국 공화당의 Pro-business 정책과 상통합니다. 80년대 이후로 레이건,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세 명의 대통령은 공통적으로 부자에 대한 세금 감면과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축소를 추진했는데, 이들도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정책은 부자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부자의 돈이 아래로 흘러 내려가서 (trickle down) 결국 가난한 사람도 잘살게 된다"는 설명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을 추진한 결과 미국의 빈곤층 문제는 갈수록 악화하였고, 미국 가정의 실질 소득은 70년대 이후로 거의 증가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메기는 대신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 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유럽은 (프랑스를 예로 들자면 가난한 사람에겐 집세의 일부분을 정부가 대신 내주기 때문에 매우 가난한 사람도 어느 정도 괜찮은 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빈곤층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부자가 돈을 벌면 돈을 많이 쓰고, 결국 그 돈이 가난한 사람에게까지 흘러간다는 것은 우파 정책가의 머리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입니다. 부자는 돈을 써도 좋은 백화점, 좋은 식당 등에서 쓰기 때문에 부자가 쓴 돈은 결국 부자에게 다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제가 인도에 갔을 때 본 것은 릭샤 운전사는 한달에 30만원 벌기도 힘든데,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젊은이들은 수백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서구인처럼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젊은이가 번 돈이 릭샤 운전사에게까지 흘러들어가야 하는데, 릭샤 운전사는 릭샤 요금이 워낙 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월급을 얼마나 많이 받듯 소득이 늘기가 힘든 것입니다. 이는 한국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기업세를 감면해서 삼성의 수익이 늘어난다고, 동네 김밥집의 매출이 늘어들까요?

가난한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직접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미국이 중산층의 국가가 된 것은 군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대주고, 최저 임금을 보장해주고, 가난한 사람이 집을 살 돈을 대출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책은 2차대전 전후로 완성이 되었는데, 그에 비해 최근의 미국은 최저임금이 오르지가 않는 등 노동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중이고, 부자의 세금을 감면하려는 노력은 많지만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국가의 도움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과거엔 직장을 구하기만 한다면 중산층으로 사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직장이 아니라면 부부가 함께 밤낮으로 일해야 겨우 빠듯하게 살아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제 특정한 직업에 종사하거나, 사생활을 완전히 포기하고 일하지 않는 이상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는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엔 국민의 시선을 의식해서 통신비용을 낮추겠다,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등 소란을 떨다가, 지금은 그냥 재벌과 부유층만 바라보고 정책을 펴겠다는 생각으로 바뀐 듯 보입니다. 재벌과 부유층을 위한 정책은 그야말로 재벌과 부유층에게만 이익을 줄 뿐입니다. 서민이 잘사는 길은 정부가 직접 서민을 돕는 정책을 펼치는 길 뿐입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는 서민의 지지를 많이 얻고 출범했지만, 실제로는 서민을 도울 마음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존재하는 한 서민경제가 좋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부디 다음 선거에선 "부자를 잘살게 함으로 모두 잘살게 해주겠다"는 후보가 당선되는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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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