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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3 [연재] 아이패드의 의미 5 (3)
5. 새로운 GUI 패러다임

아이패드가 발표되고 나서 많은 사람은 "스타일러스의 부재"를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았습니다. 하긴 판 위에 작대기로 기록을 남기는 방식은 수메르인들이 문자를 발명한 이래로 인류에게 익숙한 입력방식인데, 판처럼 생긴 아이패드가 작대기를 통한 입력방식을 거부하였으니 아쉬울 법도 합니다. 아이패드에 대한 또 다른 불평은 아이패드에 맥 OS X 대신 아이폰 OS가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맥 OS X가 아이폰 OS보다 더 강력하고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에, 이왕이면 맥 OS X가 들어가는 편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애플이 이러한 두 가지 불평을 반영해 타블렛을 만들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는 윈도우 계열 타블렛의 운명을 보면 쉽게 유추 가능합니다. 지금 시장에 나와있는 윈도우 계열 타블렛은 대부분 스타일러스로 화면에 직접 필기하는 방식이고, OS로는 휴대전화용 OS인 윈도우 모바일이 아닌 PC용 윈도우를 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타블렛을 외면했고, 지금도 윈도우 타블렛은 적절한 시장을 찾지 못해 고전하고 있습니다. 만약 애플이 윈도우 타블렛과 같은 개념으로 타블렛을 만든다면 애플의 타블렛도 PC 타블렛처럼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애플이 생각하는 타블렛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힌트를 우리는 아이폰 OS에서 찾습니다. 아이폰 OS는 OS X을 바탕으로 하지만, 컴퓨터용 운영체제와는 느낌이 매우 다릅니다. 컴퓨터용 OS X은 데스크탑위에 다양한 어플리케이션과 데이타 파일이 존재하고, 사용자가 이러한 파일들을 관리하는 방식이지만, 아이폰 OS는 어플리케이션을 뜻하는 아이콘만이 존재하고, 어플리케이션과 관련한 데이타베이스는 어플리케이션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컴퓨터를 쓰려면 어디에 어플리케이션이 있고, 어디에 데이타 파일이 있는지 알아야 되지만, 아이폰을 쓸 때는 화면에 떠 있는 아이콘을 클릭하기만 하면 모든 데이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리되고, 사용이 훨씬 쉽습니다. 이처럼 사용이 쉽다는 점은 아이폰이 외국에서 많은 인기를 끄는 중요한 원인이죠. 물론 사용이 쉽다는 말은 사용자가 직접 OS를 관리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고, 기계를 잘 다루는 파워 유저들이 아이폰에 대해 답답하게 느끼는 원인이기도 하죠.

아이폰이 사용하기 쉬운 또 하나의 요인은 하나의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그 어플리케이션만 눈에 보이고, 이 어플리케이션에 필요한 내용만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어플리케이션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에 아이콘을 누르는 순간 아이폰은 그 어플리케이션이 지배하는 새로운 도구로 변신합니다. 이는 책상 위에 수많은 파일을 펼치거나 쌓아 놓고,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그래픽 운영체제와는 매우 다른 개념입니다. 현대적 컴퓨터 운영체제의 바탕을 이루는 "데스크탑"의 개념은 많은 사람이 컴퓨터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중요한 원인이죠. 아이폰은 새로운 개념의 운영체제를 도입함으로 기기 활용에 필요한 학습기간을 대폭 줄이는 데 성공합니다.

기즈모도의 Jesus Dias(이는 가명이고, 실제로는 RoughlyDrafted.com의 Daniel Eran Dilger)는 이러한 아이폰 OS가 UI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제프 래스킨(Jef Raskin)이 주창했던 지식 기기(information appliance)의 실현이라고 평가합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기계는 대부분 하나의 기능을 하고, 우리는 이러한 기능을 쉽게 익힙니다. 예를 들어, 전화를 걸려면 전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누르면 되죠. 과일주스를 만들려면 과일을 믹서에 넣고 속도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젖은 머리를 말리려면 헤어드라이어를 머리에 대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래스킨은 정보를 다루는 기기도 한 가지 기능만 수행한다면 복잡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죠. 물론 한 기기가 한가지 기능만 수행한다면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려면 여러 가지 기기를 가지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터치 스크린을 이용한다면, 기능에 맞는 버튼을 화면에 띄우는 방식으로 하나의 기기를 다양한 목적에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이폰 OS는 래스킨의 정보 기기 개념을 훌륭하게 실현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아이폰은 작은 화면이라는 제한을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또한, 아이폰은 전화이기 때문에 정보 기기라는 측면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이폰에서 화면을 넓히고 전화 기능을 뺀다면 사용하기 편리한 다목적 기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패드가 바로 이러한 기기이죠.

아이패드에 대한 평가 중에 "혁신적이지 않다."는 평가는 이러한 측면을 간과한 것입니다. 물론 아이패드 자체가 혁신은 아니지만, 혁신은 이미 아이폰 OS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패드는 이러한 GUI의 혁신을 대중화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스티브 잡스가 왜 아이패드 개발을 "내 평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평가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만약 스티브 잡스의 의도가 이루어진다면, 아이패드는 개인용 컴퓨터의 발명 이상으로 컴퓨터 산업, 더 나아가서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참고글- The Apple Tablet Interface Must Be Like This

연재 순서
1. 모바일 기기 라인업 확대
2. 이북 시장 진출
3. 주머니 밖의 인터넷
4. 규모의 경제
5. 새로운 GUI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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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